최근 수정 시각 : 2019-11-20 18:53:36

육군사관학교/출신 인물


사관학교별 출신인물
육군 해군 공군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유명 인물들을 정리한 항목입니다. 본 항목은 기수별로 정리되었습니다.

1. 경비사관학교 1기2. 2기3. 3기4. 4기5. 5기6. 6기7. 육군사관학교 7기8. 8기9. 9기10. 10기 (생도1기)
10.1. 생도2기
11. 11기12. 12기13. 13기14. 14기15. 15기16. 16기17. 17기18. 18기19. 19기20. 20기21. 21기22. 22기23. 23기24. 24기25. 25기26. 26기27. 27기28. 28기29. 29기30. 30기31. 31기32. 32기33. 33기34. 34기35. 35기36. 36기37. 37기38. 38기39. 39기40. 40기41. 41기42. 42기43. 43기44. 44기45. 45기46. 46기47. 47기48. 48기49. 49기50. 50기51. 51기52. 52기53. 53기54. 54기55. 55기56. 56기57. 57기58. 58기59. 59기60. 60기61. 61기62. 62기63. 63기64. 64기65. 65기66. 66기67. 67기68. 68기69. 69기70. 70기71. 71기72. 72기73. 73기74. 74기75. 75기76. 76기77. 77기78. 78기79. 79기

1. 경비사관학교 1기

입교일 : 1946년 5월 1일
입교 인원 : 88명
교육기간 : 1개월
임관일 : 1946년 6월 15일
임관인원 : 40명

2. 2기

입교일: 1946년 9월 24일
입교 인원: 263명
교육기간: 3개월
임관일: 1946년 12월 14일
임관인원: 196명

3. 3기

입교일 : 1947년 1월 13일
입교 인원 : 338명
교육기간 : 3개월
임관일 : 1947년 4월 19일
임관인원 : 296명

4. 4기

입교일 : 1947년 5월 16일
입교 인원 : 120명
교육기간 : 4개월
임관일 : 1947년 9월 10일
임관인원 : 107명

5. 5기

입교일 : 1947년 10월 23일
입교 인원 : 400명
교육기간 : 6개월
임관일 : 1948년 4월 6일
임관인원 : 380명

6. 6기

입교일 : 1948년 5월 5일
입교 인원 : 227명
교육기간 : 3개월
임관일 : 1948년 7월 28일
임관인원 : 235명
참고로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이 육사6기[1]라고 나오지만 잘못된 것이며, 정 장군은 육사 9기다.

7. 육군사관학교 7기

입교일 입교인원 임관일 임관인원
정기 1948년 8월 9일 602명 1948년 11월 11일 561명
특별 1948년 8월 17일~9월 13일 246명 1948년 10월 12일 190명
후기 1948년 11월 22일 350명 1948년 12월 21일 345명

8. 8기

입교일 입교인원 임관일 임관인원
정기 1948년 12월 7일 948명 1949년 5월 23일 1263명
1949년 1월 27일 37명
1949년 3월 19일 315명
특별1 1948년 12월 7일 11명 1949년 1월 1일 11명
특별2 160명 1949년 1월 14일 145명
특별3 190명 1949년 3월 2일 181명
특별4 1949년 2월 21일 ~ 3월 5일 250명 1949년 3월 29일 148명
1949년 4월 27일 99명

9. 9기

입교일 : 1949년 7월 15일 ~ 10월 25일
입교 인원 : 647명
임관일 : 1950년 1월 14일
임관인원 : 580명
  • 강상욱 : 예비역 준장. 공화당 국회의원(6대/9대).
  • 김진기 : 예비역 준장.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으로 반란 진압을 위해 노력했으나 반란 직후 반란군에 의해 예편되었다.
  • 류범수 : 예비역 중령. 공화당 국회의원(7대).
  • 문홍구 : 예비역 중장. 12.12 군사반란 당시 합참본부장으로 반란 진압을 위해 노력했으나 반란 직후 반란군에 의해 강제 예편당했다. 여담으로 반란군은 반란 직후 숙청 작업에서 윤성민과 문홍구 둘 중에 1명만 살릴려고 했었는데 윤성민이 선택되어 대장으로 진급했다. [2]
  • 안종훈 : 예비역 중장. 12.12 군사반란 당시 군수참모부장으로 진압군의 일원이었으며, 반란군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또한 이듬해 5.17 내란 하루 전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노태우, 정호용이 밀어붙인 계엄 확대론에 대해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한 인물이다.
  • 정병주 : 예비역 소장. 12.12 군사반란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반란 진압을 위해 노력했으나 직속 부하 최세창에 의해 체포되었고, 반란 직후 반란군에 의해 강제 예편당했다. 1989년,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그의 죽음에는 의문이 있다.
  • 윤성민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1군사령관 등 역임). 국방부장관 역임. 12.12 군사반란 당시 육참차장으로 진압군의 총지휘관이었다. 그러나 반란 이후 신군부 정권에서 국방부장관,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 최명헌 : 예비역 대령. 민정당/민주당 국회의원(11대/12대/16대). 노동부장관 역임.
  • 하중원 : 예비역 준장. 故 하일성의 부친.

10. 10기 (생도1기)

입교일 : 1949년 7월 15일 ~ 7월 30일
입교 인원 : 338명
임관일 : 1950년 7월 10일
임관인원 : 134명
  • 고재일
  • 김윤호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1군사령관 등 역임). 12.12 군사반란 직후 반란군에 합류하여 신군부의 일원이 되었다.[3] 2013년 사망(향년 84세).
  • 소준열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교육사령관 등 역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윤흥정 전남북 계엄 사령관의 온건 대응에 불만을 품은 신군부에 의해 파견되어 지휘권을 인수하고 강경 유혈 진압을 지휘했다. 2004년 사망(향년 75세).
  • 양창식 : 예비역 준장.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1대/12대/14대).
  • 이상익 : 예비역 대령. 중앙정보부 차장 역임. 공화당/민정당 국회의원(8대/10대/11대/12대).
  • 황영시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등 역임), 감사원장 역임. 12.12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전두환 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다.

10.1. 생도2기

입교일 : 1950년 6월 1일
입교 인원 : 333명
임관일 : 1950년 10월 23일
  • 박경석 : 예비역 준장. 입교 25일만에 6.25 전쟁에 투입되어 여러 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었고 포로로 잡혔다 탈출하기도 했다.특히 1965년 맹호사단 제1진 초대 재구대대장(고 강재구 소령 순직을 기리기 위해 명명)으로 참전 발군의 전공을 세우고 국위를 떨쳤다. 12.12군사반란 직후 정치군인과 결별, 전업작가로 활동 2016년 현재 79권의 저서를 펴냈다.
  • 박보희 : 예비역 중령.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 장정열 : 예비역 중장. 그가 만든 전력증강계획 문서는 90년대 이후에도 참고자료로 활용될만큼 충실했다고 한다. 2010년 자랑스런 육사인상 수상.
  • 황오연 : 예비역 준장. 채명신 월남사령관의 비서실장. 육군본부 작전처장. 초대 제1공병여단장. 그의 형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황정연 대장.

생도 2기는 불운의 기수이다. 본래 첫 정규 4년제 교육과정 기수였으나 입교한지 한 달도 안되어 6.25 전쟁이 터져버렸다. 정신 나간 참모총장 채병덕은 입교한지 한 달도 안된 이들을 육사 10기(생도 1기)[4]와 함께 전장에 투입시켰고 98명이 전사, 실종되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육사가 휴교함에 따라 종합학교에 강제 편입되어 보충장교로 임관해 육사를 졸업하지 못하게 되었고, 전쟁 동안 동기생의 43%가 사망한 '죽음의 기수'가 되었다. 전쟁이 교착되자 생도 2기에 대한 복교 문제가 불거졌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생도 2기는 이후 육사 기수에서 사라져버린 비운의 기수가 되었다. 이들은 국방부에 대해 명예 졸업이란 정당한 요구를 촉구하였고 1996년 5월 4일, 생도 2기 전원에게 명예졸업장이 수여되었다.

11. 11기

11기부터 정규 4년제 교육과정을 거쳤다. 1951년에 입학해 1955년에 임관했다.
  • 권익현 : 예비역 대령. 하나회.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 국회의원(11대/12대/14대/15대).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 예편되나 후에 친구 전두환이 집권하자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고 민정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 김복동 : 예비역 중장(육사 교장 등 역임). 하나회. 민자당/자민련 국회의원(14대/15대). 작전통으로 유명했으며 12.12 군사반란 즈음부터 전두환, 노태우[5]와 갈라섰다. 2000년 사망(향년 68세).
  • 김성진 : 예비역 준장. 체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중앙정보부 차장 등 역임. 생도 시절부터 수학 천재로 유명했다고 한다.
  • 김식 : 예비역 소장. 민정당 국회의원(11대/12대).
  • 노태우 : 예비역 대장(9사단장,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때 최전방 병력을 불법으로 동원했다. 하나회의 2인자로 전두환의 뒤를 이어 13대 대통령이 되었다.
  • 백운택 : 예비역 중장(1군단장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참여자로 한직에 있던 백운택은 반란 이후, 승승장구하나 3년만에 사망했다.
  • 손영길 : 예비역 준장. 하나회. 박정희의 전속부관 출신으로 육사 11기 선두주자였으나,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어 강제 예편당했다.[6]
  • 안교덕 : 예비역 대령. 전 민정수석비서관.
  • 이상훈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합참본부장 등 역임). 국방부 장관, KBO 총재 역임. 하나회의 라이벌 조직 청죽회의 일원이었다.
  • 전두환 : 예비역 대장(기무사령관, 중앙정보부장 등 역임). 하나회. 11대, 12대 대통령.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핵심인물이며, 하나회의 수장. 갑종장교에 탈락하고 시간을 때우다 육사에 입학한 관계로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동기들에게는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 정호용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 등 역임. 13대, 14대 국회의원 역임. 12.12 군사반란 후 신군부의 일원으로[7] 전두환, 노태우에 이은 명실상부한 하나회의 3인자였다.

12. 12기

1952년에 입학해 1956년에 임관했다.
  • 박세직 : 예비역 소장(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쓰리박[8]. 안기부장, 88올림픽 조직위원장, 행자부/체육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역임. 민자당/신한국당 국회의원(14대/15대). 전두환의 진노를 사 강제 예편당했으나 후에 용서 받아 정계에서 다시 중용되었다. 2009년 사망(향년 74세).
  • 박준병 : 예비역 대장(보안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쓰리박. 민자당/민정당/자민련 국회의원(12대/13대/14대). 12.12 군사반란 참여자로[9] 후에 민정당으로 차출되어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정계에서 활동했다. 2016년 사망(향년 83세).
  • 박희도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쓰리박. 12.12 군사반란 당시 휘하 특전사 1공수여단을 동원해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유혈 점령한 반란군 1등 공신으로 전두환의 충복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다.
  • 장기오 : 예비역 중장. 하나회. 총무처 장관 역임. 12.12 군사반란 참여자. 박희도, 최세창과 달리 반란에서 세운 공이 적어서인지[10], 다른 멤버들에 비해 비교적 한직을 맡았고 중장으로 예편했다. 예편 후 장관직을 받았다.
  • 안필준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기무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보사부 장관 역임. 12대 총선 직후 야권이 약진하자 전두환을 위해 국회를 해산하려는 친위 쿠데타를 계획하려 한 전력이 있다. 2009년 사망(향년 77세).
  • 한철수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합참본부장 등 역임).

13. 13기

1953년에 입학해 1957년에 임관했다.
  • 민태구 : 예비역 소장. 충북도지사 역임. 민자당 국회의원(14대).
  • 신재기 : 예비역 대령. 민자당 국회의원(13대/14대).
  • 오한구 : 예비역 대령. 하나회. 민정당 국회의원(11대/12대/13대).
  • 우경윤 : 예비역 소장.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허삼수와 함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했다. 납치 중 같은 편의 오인사격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11]
  • 이우재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체신부 장관 역임. 민정당 국회의원(11대).
  • 임동원 : 예비역 소장. 국정원장, 통일부장관 역임. 하나회에 치여 예편했으나 후일 김대중 정권에서 국정원장, 통일부장관을 역임하며 햇볕정책을 총 지휘했다.
  • 정동호 : 예비역 중장. 하나회. 경호실장 역임.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3대, 14대). 12.12 군사반란 당시 경호실장 직무대리[12]로 경호실 병력을 무단으로 동원해 최규하 대통령이 있는 총리공관을 접수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나 국방위 회식 난투극의 책임을 지고 예편, 정계로 진출했다.
  • 정진태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 조홍 :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장. 하나회.
  • 최세창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3군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국방부 장관 역임. 12.12 군사반란 당시 휘하 특전사 3공수여단을 동원해 직속 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유혈 체포한 반란군 1등 공신. 전두환의 충복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다. 반전으로 부친은 의열단 광복군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다.

14. 14기

1954년에 입학해 1958년에 임관했다.
  • 민경배 : 예비역 대장(2군사령관, 교육사령관 등 역임).
  • 배명국 : 예비역 중령. 하나회.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1대/12대/14대).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 예편되었고, 후일 하나회 정권이 탄생하자 정계에서 활동했다.
  • 안무혁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안기부장, 국세청장 역임. 14대 국회의원. 하나회 동기 이춘구와 더불어 5공화국 초기 군복을 벗고 정계에서 활동했다.
  • 이상득 : 우리가 알고 있는 이명박의 형 이상득이 맞다.건강상의 이유로 중도 자퇴[13].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 국회의원(13대/14대/15대/16대/17대/18대). '상왕'이라 불린 이명박 정권 최고 실세.
  • 이종구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2군사령관,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국방부 장관 역임. '하나회의 황태자'. 하나회의 총무를 맡은 조직의 핵심이었으며 이후 하나회 정권인 전/노 정권 모두에서 그야말로 한국군 역사상 최고의 출세 가도를 달리며 영화를 누렸다.
  • 이춘구 : 예비역 준장. 하나회. 내무부 장관,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1대/12대/13대/14대). 하나회 동기 안무혁과 더불어 5공화국 초기 군복을 벗고 정계에서 활동했다.
  • 이강석 : 최종계급은 육군 소위. 이기붕의 친아들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양자. 아버지빽으로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했지만 다른 학생들이 반발해 중퇴하고 육군사관학교 14기로 편입했다.
  • 장준익
  • 최규환(정치인)

15. 15기

1955년에 입학해 1959년에 임관했다.
  • 고명승 : 예비역 대장(3군사령관,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동호와 함께 경호실 병력을 동원해 최규하 대통령이 있는 총리 공관을 점령했다. 이후 전두환의 직계로써 요직들을 꿰차며 승승장구했으나 노태우 정권에서 참모총장은 되지 못했다.
  • 권영해 : 예비역 소장. 국방부 장관, 안기부장, KBO 총재 역임. 하나회 정권에서 소장으로 예편해야 했으나, 김영삼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이 되어 하나회 대숙청 때 김영삼을 도와 하나회를 해체시켰다.
  • 권정달 : 예비역 준장. 민정당/신한국당/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11대/12대/15대). 보안사 정보처장으로 신군부의 정치공작과 민정당 창당을 주도했으나 훗날 신군부 세력과 결별하고 김영삼의 5공화국 심판에 협조했다.
  • 김상구 : 예비역 중령. 하나회.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2대/14대). 전두환의 동서. 1973년 상관이었던 장태완에게 대놓고 항명하여 예편되었다.[14] 형님 전두환이 집권 후 호주 대사, 국회의원을 지냈다.
  • 나중배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 민병돈 : 예비역 중장(특전사령관, 육사교장 등 역임). 하나회. 전두환 직계임에도 부정선거 거부, 6월 민주항쟁 시 유혈 진압 지시 거부 등 자신의 소신을 주저 없이 따른 군 역사상 가장 특이한 인물 중 하나다. 절정은 육사 졸업식에서 대통령 노태우를 눈 앞에서 비판, 무시하며 엿먹이고 예편당했다.
  • 이진삼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1군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체육부 장관 역임. 선진당 국회의원(18대). 노태우의 직계 군맥인 '9.9인맥'[15]의 핵심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다. 국회의원 시절 군번줄 발언과 경례 비난딱! 못해? 등의 똥별 행각으로 유명하다.

16. 16기

1956년에 입학해 1960년에 임관했다.
  • 강재구 : 최종계급 대위(소령 추서). 1965년, 수류탄 투척 훈련 중 이등병이 실수로 놓친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막고 다른 중대원 100여명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했다.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준 인물로 현재도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추모되고 있다.
  • 송응섭 : 예비역 대장(합참차장, 합참본부장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하나회 선배들의 명령으로 휘하 30사단 90연대를 이끌고 반란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2012년 사망(향년 76세).
  • 신말업 : 예비역 대장(3군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 이종찬 : 예비역 소령. 국정원장 역임. 민정당/민자당/새한국당/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11대/12대/13대/14대). 우당 이회영의 손자.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활동했으나 민주화 인사들을 남몰래 보호하기도 했고, 훗날 민주당계 정당으로 전향해 선거캠프의 맏형 노릇을 하며 3명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기도 해 진보 진영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 이필섭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2군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노태우 휘하 연대장으로 노태우의 지시를 받아 최전방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향했다. 이후 노태우 직계 9.9 인맥의 일원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 김영삼에게 숙청당했다.
  • 장세동 : 예비역 중장. 하나회. 안기부장, 경호실장 역임.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 지휘소가 차려진 30경비단의 단장이었다. 전두환의 최고 충복으로 경호실장, 안기부장을 역임하며 자타 공인 전두환 정권의 최고 실세였다. 수지 김 사건 등 정권 유지를 위한 갖가지 공작을 진두 지휘했다.
  • 정순덕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청와대 정무제1수석비서관 역임.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1대/12대/13대/14대 국회의원). 5공화국 초기 군복을 벗고 정계에서 활동했다.
  • 천용택 : 예비역 중장.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역임.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 국회의원(15대/16대). 전남 출신으로 예편 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냈다.

17. 17기

1957년에 입학해 1961년에 임관했다.
  • 김동진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등 역임). 국방부 장관 역임.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으로 경질된 동기 김진영의 뒤를 이어 참모총장이 되었다. 이후 권영해와 함께 하나회를 해체시켰고 후일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 김연각 : 예비역 대장(2군사령관 등 역임).
  • 김용갑 : 예비역 소령. 청와대 민정수석, 행자부 장관 역임. 신한국당/한나라당 국회의원(15대/16대/17대). 예편 후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고 이후 전두환/노태우 정권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활동하며 '강성 보수',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다.
  • 김진영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1기수 선배 장세동처럼, 직속상관 장태완을 배신하고 반란군에게 동조했다. 자타 공인 하나회의 실력자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참모총장에 올랐다. 그리고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의 첫 빠따가 되었다.
  • 민병채
  • 안현태 : 예비역 소장. 하나회. 경호실장 역임. 전두환의 충복 중 한 명으로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냈다. 2011년 사망하자 하나회임에도 불구하고 법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논란이 되었다.
  • 이문석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총무처 장관 역임. 노태우 직계 9.9 인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해 자타공인 차기 참모총장이던 김진영을 제치고 대장으로 1차 진급했다. 그러나, 노태우가 끝내 김진영을 버리지 못해 참모총장이 되지 못했고 대신 장관이 되었다.
  • 이병태
  • 임복진 : 예비역 소장. 민주당/새정치민주회의 국회의원(14대, 15대). 호남 출신으로 하나회에 의해 차별받았다고 한다. 예편 후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등에서 활동했다.
  • 정선호 : 민정당 국회의원(11대, 12대). 동기 허삼수, 허화평과의 연결고리로 정계에서 활동했다.
  • 허삼수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청와대 사정수석 역임. 민자당 국회의원(14대). 전두환의 핵심 참모로 12.12 군사반란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을 납치했다. 이후 전두환을 따라 청와대로 들어가 허화평과 함께 실세로 군림했으나 전두환과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허화평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 허화평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보좌관[16] 역임. 민자당 국회의원(14대). 12.12 군사반란과 정권 장악 과정에서 전두환의 핵심참모로 활약했다. 이후 전두환을 따라 청와대로 들어가 정권 초기 최고 실세로 군림했으나, 동기 허삼수처럼 전두환과 마찰을 일으키다가 쫓겨났다.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 작업으로 김진영 참모총장이 숙청된 후 동기인 김동진 장군[17]이 참모총장에 오름으로써 2명의 참모총장을 배출한 기수가 되었다. 이후 31기와 34기에서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모총장이 두 명 배출되었다.

18. 18기

1958년에 입학해 1962년에 임관했다.
  • 구창회 : 예비역 대장(3군사령관,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9사단 참모장으로 사단장 노태우의 명령으로 최전방 병력을 빼내 서울로 출동시켰다.[18] 노태우 직계 9.9 인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가 김영삼에게 숙청당했다. [19]
  • 김재창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합참차장 등 역임). 하나회.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제거된 하나회 고위 장성이었다. [20]
  • 박흥주 : 예비역 대령.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 유능, 청렴한 인물이었으나 대통령 암살에 얽혀 사형에 처해졌다.
  • 오명 : 예비역 대령. 체신부/교통부/과기부 장관, 엑스포 조직 위원장. 현 카이스트 이사장. 업적을 남긴 기술관료이나 국보위 활동 전력이 있다.
  • 이학봉 : 예비역 준장. 하나회. 민정수석, 안기부 차장 역임. 민정당 국회의원(13대). 전두환의 충복. 수사(고문), 공작 전문가로 12.12 군사반란, 정권 장악 과정에서 수많은 인사들을 수사(고문)했다. 민정수석을 지냈고 안기부장 장세동을 보좌하며 정권 유지를 위한 갖가지 공작들에 관여했다.
  • 장성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육사 교장 등 역임). 하나회 정권에 치여 살다가 김영삼 정권에서 하나회들이 싸그리 대숙청되자 뒤늦게 대장을 달았다. 그의 진급 차수는 중장은 4차 진급, 대장은 무려 7차 진급[21]이다.
  • 조남풍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기무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노태우 직계 9.9 인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 김영삼 정권에서 숙청당했다. 후에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했으나 비리 문제가 불거져 회장직에서 쫓겨났다.
  • 편장원 : 예비역 대장(합참차장, 교육사령관 등 역임).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으로 하나회들이 싸그리 숙청된 후 대신 대장으로 진급해 합참차장을 맡았다.
  • 최창윤 : 예비역 준장. 행자부 장관 역임. 민정당 국회의원(13대). 일찍 예편한 뒤 정계에서 활동했으며 후일 김영삼과 가까워지기도 하였다.

정규 육사 전 기수 중 합참의장과 육참총장을 모두 배출하지 못한 기수[22]이다. 이유는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 장구하던 노태우 직계 하나회 출신 18기 대장(당시 3군사령관 구창회, 1군사령관 조남풍, 합참차장 김재창) 3명이 합참의장과 육참총장으로 영전을 눈 앞에 둔 때에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을 만나 죄다 나가리 되었기 때문이다.

19. 19기

1959년에 입학해 1963년에 임관했다.
  • 김진선 : 예비역 대장(2군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수경사 상황실장으로 애매한 태도[23]를 보였으며, 노태우 직계 9.9 인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 김영삼 정권에서 숙청당했다. [24]
  • 서정화 : 예비역 중령.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 국회의원(12대/13대/14대/15대).
  • 서완수 : 예비역 중장(기무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경력에서 보이듯 19기 하나회 대표 주자로 김진영 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의 경질이 김영삼의 전격적인 하나회 대숙청 작업의 장렬한 시작이었다.
  • 윤용남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등 역임). 기동전의 전문가로 알려져있다.
  • 이병호 : 예비역 대령. 전 국정원장.
  • 이준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등 역임). 국방부 장관 역임. 하나회의 견제를 받아 한직을 멤돌았으나 김영삼이 하나회를 싸그리 숙청하자 전격 발탁되어 대장으로 진급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20. 20기

1960년에 입학해 1964년에 임관했다.
  • 도일규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 신정
  • 오영우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등 역임)
  • 이현부 : 최종계급 중장. 하나회. [25] 기계화보병의 대가로 명성이 높았으며 군복무의 대부분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복무한 특이한 경력이 있다. 1992년, 부대 순시 중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했다.
  • 조성태 : 예비역 대장(2군사령관 등 역임).
  • 허청일

21. 21기

1961년에 입학해 1965년에 임관했다.
  • 김척 : 예비역 중장. 의문사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현재까지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 김동신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등 역임). 국방부장관 역임. 김대중 정권에서 첫 호남 출신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 유재열 : 예비역 대장(3군사령관 등 역임).
  • 이재관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등 역임).
  • 이충석 : 예비역 소장. 하나회. 하나회 대숙청 당시 합참 작전부장으로 회식에서 불만을 토로한 사건으로 보직해임당하고 전역해야 했다. [26] 청춘을 바친 군대에서 쫓겨난 후 매일같이 군대 꿈을 꿨다고 한다.
  • 최승우 : 예비역 소장. 하나회. 하나회 21기 대표주자로 요직인 인사참모부장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에서 한직으로 밀려난 후 진급하지 못하고 예편했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민선 예산 군수를 지냈다.

22. 22기

1962년에 입학해 1966년에 임관했다.
  • 길형보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등 역임).
  • 정영무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특전사령관 등 역임).
  • 지만원 : 예비역 대령. 여러가지 발언으로 유명한 그 분 맞다.

23. 23기

1963년에 입학해 1967년에 임관했다.
  • 김석재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등 역임).
  • 박종규 : 예비역 소장. 12.12 군사반란 당시 3공수 15대대장으로 최세창의 지시로 특전사령관인 정병주를 체포하고 절친한 김오랑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을 사살했다. 이후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 당시 관련자[27]로서 예편당했다.
  • 이남신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3군사령관, 기무사령관 등 역임)
  • 전관 : 예비역 소장. 17대 대선 후보. [28] 학군학교장 시절 근무시간 후 청바지를 입고 다닐 정도로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24. 24기

1964년에 입학해 1968년에 임관했다.
  • 김인종 : 예비역 대장(2군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경호실장 역임. 예편 후 이명박 정권에서 경호실장을 지냈으며, 이명박 내곡동 사저 매입 사건의 관련자로 사퇴 후 불구속 기소되었다.
  • 김판규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1군사령관 등 역임). 초대 항공작전사령관.
  • 김희상 : 예비역 중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보좌관을 역임하며 주요 국방정책 결정에 관여했다.
  • 안주섭 : 예비역 소장. 경호실장 역임. 예편 후 김대중 정부에서 정권의 시작부터 끝까지 경호실장을 지냈다.
  • 이건식
  • 이종옥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등 역임).

25. 25기

1965년에 입학해 1969년에 임관했다.
  • 강창희
    12,14,15,16,19대 국회의원. 19대 전반기 국회의장.
  • 권경석
    제17,18대 국회의원
  • 김오랑
    1969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12.12 군사반란때 쿠데타군을 막고자 했던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의 비서실장이었다. 당시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은 전두환의 지시를 받아 휘하의 3공수여단 15 대대장 박종규 중령에게 무장 병력을 이끌고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특전사령관실에 있던 김오랑 소령 권총 한 자루로 체포조에 맞섰으나 안타깝게도 반란군에게 6발의 흉탄을 맞고 현장에서 전사했다. 사후 중령으로 추서.
  • 김종환(1946)
    31대 합참의장을 지냈다. 육사 4기의 김종환과는 동명이인.
  • 남재준
    36대 육참총장을 지내고 전역한 후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 서종표
    18대 국회의원.
  • 유덕준
    충청남도 정무부지사, 행정부지사, 충남도지사 권한대행 역임
  • 채규정
    민선3기 전북 익산시장,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역임
  • 황진하
    17, 18, 19대 국회의원.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보온병 사건의 핵심 인물.
  • 안광찬
    보수, 진보 정권마다 국방부장관 후보로 거명, 육사25기 대표화랑으로 군사작전,기획, 정책전문가로 평가받음, 군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예비역 소장. 한미연합사 부참모장과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지냈으며,예편 이후 참여정부에서 국방부 정책실장과 국가비상기획위원장을, 이명박정부에서는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장을 역임하였다.

26. 26기

1966년에 입학해 1970년에 임관했다.
  • 김충배 예)중장, 육군사관학교장 역임.
  • 신일순 예)대장, 현역 대장이 구속되는 기록을 세운 인물.
  • 양우천 예)대장, 2군사령관
  • 이상희 : 32대 합참의장, 41대 국방장관.
  • 한철용 : 예비역 소장으로 8사단장, 국정원 국방보좌관, 정보부대 5679 부대장을 역임하였다. 정우교 준장과 더불어 총각장군으로 유명했다. 94년 12월 준장(진)시절 10살 연하의 추순삼(예비역 대령) 당시 중령과 결혼하였고, 늦둥이 딸이 하나 있다.
  • 권문택 : 예비역 준장. 대령시절 육군전산소장을 역임했고 준장시절에는 국방정보체계국 차장을 역임했다. 퇴역후에는 경희사이버대학교 초대학장을 지냈다.

27. 27기

1967년에 입학해 1971년에 임관했다.

28. 28기

1968년에 입학해 1972년에 임관했다.
  • 김관진 : 43대 국방장관 역임. 약 4년간 국방장관으로 재임했다. 전 청와대 안보실장. 참고로 김관진 장군이 국방장관ᆞ안보실장을 지내면서 대북제재가 생겨나자 북한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과 묶어서 증오하고있다.
  • 김병관 : 1군사령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손자병법의 전문가이자 대표적인 작전통으로 군내 신망이 매우 높았다. 박근혜 정부 첫 국방장관 후보에 올랐으나, 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드러나면서 사임하였다. 결과적으로 동기이자 늘 그를 앞서간 김관진 장관이 유임되었다.
  • 김종천 : 국방부 차관 역임.
  • 박상돈(정치인)
  • 박흥렬 : 전 청와대 경호실장. 38대 육참총장. 먼저 대장 진급했으며 군내 신망이 두터웠던 김관진과 김병관을 꺾고 참모총장이 되었다. 또한 대장 2차 보직인 참모총장을 1차 보직도 없이 참모차장에서 바로 영전하는 대이변을 연출했는데, 이는 당시 국방부장관으로 영전한 김장수 참모총장의 힘이 컸다. 대표적인 김장수 라인으로 꼽힌다.
  • 신현배 : 예비역 소장. 육군종합행정학교장, 38대 9사단장을 역임했다. 여담으로 온 집안이 육사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친형이 육사 10기 출신인 예비역 중장 신현수, 조카가 육사 36기 출신 예비역 준장 신경철, 아들이 육사 60기 출신 예비역 대위 신윤철이다. 기사링크

29. 29기

1969년에 입학해 1973년에 임관했다.

30. 30기

1970년에 입학해 1974년에 임관했다.
  • 고창부 : 육군 준장 예편. 제7공수특전여단장, 특전교육단장, 특전사 작전처장 정보처장 역임.
  • 구본영 : 최종계급 대위, 現 천안시장(민선 6,7기).
  • 김근태
    1974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소위로 임관, 2007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2009년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32기인 박정이 예비역 대장이 20사단장에 재임하던 시절 그의 직속상관인 제7기동 군단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남도 청양군- 부여군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서 자신보다 15기나 선배인 딱 딱 이진삼을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당선무효 판결을 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근안에게 모진 고문을 받았던 민주화 운동가와는 동명이인.
  • 김중로 : 육군 준장 예편. 101여단장,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 70사단장을 역임하였고,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 10번으로 출마하였고, 당선되었다.
  • 이상의 : 합참의장을 역임하였고, 천안함이 침몰하던 시간에 음주상태여서 논란이 있었다.
  • 이성출 :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하였고, 2016년 국민의당으로 입당을 선언하였다.
  • 허평환 : 예비역 중장. 최종보직 기무사령관. 육군훈련소장 재임 시절 인분사건으로 경고조치를 받았다. 현재 국민행복당 대표로 있다.
  • 백병춘 : 예비역 소장이었다. 충남 논산 강경 출신으로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1군 부사령관, 육군종합군수학교장, 육사 부교장을 역임하였으며, 2011년 6월 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2세. 여담으로 기독교를 믿으며, 부인도 교회 권사였고, 종군교 교장시절 일요일에 영내 교회에 자주 예배보러 왔었다. 그리고 육사부교장으로 가기 직전 마지막 주일에는 백 장군의 아들 내외도 교회에 왔었다.
  • 이영계 : 예비역 중장.수도방위사령관,교육사령관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전쟁기념관 관장(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이다.

31. 31기

1971년에 입학해 1975년에 임관했다.
  • 하정열
  • 한민구 : 예비역 대장. 40대 육군참모총장, 36대 합동참모의장, 44대 국방장관 역임.
  • 황의돈 : 예비역 대장. 한미연합군 부사령관, 41대 육군참모총장 역임.
  • 김영후 : 예비역 중장. 7기동군단장, 병무청장 역임.
  • 한기호 : 예비역 중장. 5군단장, 육군교육사령관 역임. 18,19대 국회의원.
  • 김영석 : 前 영천시장.
  • 박홍건 : 예비역 대령. 철도공사(코레일) 비상계획관. 김일성의 간담을 서늘케 한 유명한 맹장이자 백골부대장인 박정인 장군의 장남이다. 박정인 장군은 2014년 11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중앙보훈병원에 입원 후 투병 중 2016년 2월 3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박 장군이 투병할 동안 장남인 박홍건 대령은 부인 김순실 여사와 매일같이 간병을 왔다고 한다. 또한 박 대령에겐 쌍둥이 아들이 있는데 장남인 박선욱씨는 육사 64기(04년에 입교, 08년에 소위 임관) 출신으로 현재 할아버지가 부대장으로 있던 백골부대에서 병참병과 육군 대위로 복무 중. 쌍둥이 동생은 현재 회계사로서 육군 장교로 병역을 마쳤다. 즉, 3대가 육사 출신이다.
  • 백승도 : 1993년 4월 대령계급으로 교육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서울 모 군인아파트 일대에서 하나회 명단을 살포하였다. 31기생 중에서 준장을 1차로 진급하는 등 선두로 달리고 있었으나 소장진급에서 탈락하였다. 당시 남재준 육참총장은 소장진급에서 탈락한 3명[29]을 계룡대 인근의 식당에 불러 위로하였으나 백승도, 최광준 두 명의 준장은 끝내 전역지원서를 제출하였고, 2005년 1월에 전역하였다.
  • 최광준 : 아나운서 최지인 씨의 부친이기도 하다. 2004년 하반기 장군 인사 때 당시 남재준 육참총장이 위로차 불렀던 세 명의 준장 중의 한명으로서 2005년 1월에 동기생인 백승도 준장과 함께 전역하였다.
  • 김형수 : 연합작전전문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2004년 8월부터 2년간 미 중부사령부의 협조단장으로 있었다. 전역 후에는 예비역 준장 신분으로 육군교육사령부 전투지휘훈련단에서 작전관찰관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32. 32기

1972년에 입학해 1976년에 임관했다.
  • 김상기
    1976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09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3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하고 2010년 12월 제42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22개월간의 총장 임기를 끝으로 2012년 10월 한 기수 후배인 조정환 대장이 후임 참모총장에 오르면서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박정이
    1976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10년 6월에 대장으로 진급해 제1 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2011년 10월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2010년 4월 30일 국회 국방위에서 있었던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회의당시,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의 '군번줄 발언' 중 인식표를 차고 있다고 손든 몇 안되는 장성으로 유명하다.
  • 정승조
    1976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09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하고 2011년 10월 제37대 합동참모의장에 취임했다. 24개월간의 의장 임기를 끝으로 2013년 10월 해군참모총장 최윤희 대장이 후임 합참의장에 오르면서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장종대
    정승조 장군과 고향 불알친구로서 중학교(전북 백산중), 고등학교(전북 백산고), 대학교(육사)도 동창이다. 정승조 장군과 소장(사단장)까지는 모두 같이 진급하였으나 장종대 장군은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고, 2009년 12월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육군훈련소장, 1군 부사령관을 역임하였다.
  • 임관빈
    1976년 졸업과 함께 소위로 임관, 중장으로 예편했다.
  • 이봉원
    예비역 중장. 군수사령관, 육군사관학교 교장 역임.[30] 참고로 이봉원을 누르면 개그맨이자 박미선 개그우먼의 남편이 검색된다.
  • 황중선
파일:attachment/starshuttle.jpg
칠판셔틀은 쓰리스타가 제맛
예비역 중장. 1군단장과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했으며,소장 시절 이라크 자이툰 부대 사단장을 지냈던 적이 있다.
육군 역사상 최고의 작전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천안함 피격사건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재직중이었기 때문에 진급을 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예편해야만 했다. 여담으로 선친이 교회의 장로였고, 친형과 친동생이 목사고, 친동생은 군목으로 15년동안 복무하였었다. 전역 후 황중선 장군 본인도 교회장로로 활동하는 듯하다.
* 한홍전
예비역 중장. 수도기계화사단 대대장, 7사단 8연대장, 7사단장, 육군인사사령관을 역임하였다.

33. 33기

1973년에 입학해 1977년에 임관했다.
  • 이홍기
    1977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소장시절 32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대통령 외교안보실 국방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08년 하반기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6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하고, 2010년 12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3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2012년 10월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조정환
    1977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2011년 4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2작전사령관을 역임하고 2012년 10월 제43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12개월간의 총장 임기를 끝으로 2013년 9월 한 기수 후배인 권오성 대장이 후임 참모총장에 오르면서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이성호
    1977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2009년 중장으로 진급하여 3군단장, 합참 군사지원본부장, 국방대학교 총장을 역임 후 11년 말에 전역하였다. 전역 후 한국가스공사 상임감사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4년 7월 안전행정부 2차관으로 임명되었다.[31] 그 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신설된 국민안전처의 초대 차관이 되었고, 현재도 활동중이다.
  • 배득식
    2010년 6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국군기무사령관으로 재직했었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전임자다.
  • 권명국
    1977년 졸업과 동시에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1991년 소령 시절에 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함에 따라 권 장군도 공군으로 전군되었다. 방공포병여단장, 방공유도탄사령관을 역임하고, 공군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전역 후 현재는 군인공제회 감사로 재직 중이다.(2014년 11월 27일에 임명)

34. 34기

1974년에 입학해 1978년에 임관했다.
  • 권오성 :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역임하였으나 윤일병 사건으로 사실상 자진전역 하였다.
  • 권혁순 : 3군 사령관 역임. 윤일병 사건의 지휘책임으로 경질되었다.
  • 김요환 : 2작전 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역임.
  • 박종선 : 육군사관학교장 역임. 항목은 개설되지 않았다. 군복무중 별들의 무덤으로 악명높은 28사단사단장직을 역임했고, 육사의 성폭행 사건도 후임 교장 역임중 일어났을 만큼 불행을 비켜가는 의문의 사나이.. 현재 상명안보통일연구소 소장으로 상명대 군사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 배명헌 : 육군항공병과로서 2010년 소장계급으로 14대 육군항공작전사령관 및 육군항공 병과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성우회 소속 안보강사로 활동중이다. 항작사령관 재임시절인 11년 8월 공금 유용 혐의로 집무실이 압수수색된 적이 있다. http://news.joins.com/article/6091348 수사 결과는 아는분께 추가 바람.
  • 윤광섭 : 예비역 소장. 55사단장, 육군보병학교장, 특전사 부사령관 역임.[32]
  • 서길원 : 예비역 중장. 수도포병여단장, 육본 전력기획처장, 31사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6군단장. 1야전군 부사령관 역임.
  • 신진선 : 충청북도 행정부지사,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 이재영 : 육군사관학교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 현재도 재직 중이다.
17기, 31기에 이어 육군참모총장을 두 명 배출하게 된 기수이다.

35. 35기

1975년에 입학해 1979년에 임관했다.

육사는 6기를 제외[33]하고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 혹은 육참총장을 배출한 역사가 있었다. 4년제 정규육사인 11기 이후부터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이나 육참총장을 배출했는데, 18기에 이어 35기가 합참의장 뿐만 아니라 육참총장도 배출하지 못했다.
  • 박선우 : 최종보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 신현돈 : 최종보직 1군 사령관. 특별경계태세 기간 중 음주 논란으로 전역조치됐다.
  • 황인무 : 예비역 중장. 前 국방부 차관. 32사단장, 육군대학 총장[34], 육군교육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역임.[35]
  • 류제승 : 예비역 중장. 前 국방부 국방정책실장(1급. 고공단 '가'급).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장 시절 젓가락 부대장(11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였고, 11년 전반기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8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을 역임 후 13년 10월 전역과 동시에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으로 임명되었다.
  • 오윤성 :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 이종명 : 12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전력발전부장, 국가정보원 3차장 역임.
  • 김학주 : 전 국방부 군구조·국방운영개혁추진실장. 항공작전사령관 역임.
  • 송재익 : 강남대학교 안보학 교수.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 이계성 : 예비역 준장. 2008년에 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종합군수학교 수송학부장, 국군수송사령관 역임하고 2011년에 전역.
  • 박남수 : 예비역 중장. 수도방위사령관, 육군사관학교장을 지냈으며 육군사관학교 여생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 전동운 : 예비역 중장. 35사단장, 군수사령관을 역임하였다.
  • 방원팔 : 예비역 중장. 52사단장, 인사참모부장과 인사사령관을 지냈다.
  • 박성혁 : 예비역 소장. 1991년에 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함에 따라 공군으로 전군되었다. 공군 제1방공유도탄여단장과 공군방공유도탄사령관을 지냈다.

36. 36기

1976년에 입학해 1980년에 임관했다. 2005년에 처음 준장으로 진급했다.
  • 김현집 : 예)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차장, 제3야전군사령관 등을 역임. 참고로 하나회의 마지막 생존자이다. 나머지는 YS때 강제예편 당하기도 하고 정년을 맞아 전역한 경우도 있고....여하튼 김현집 장군을 마지막으로 모두 전역했다.
  • 장준규 : 예)대장, 육군참모총장역임. 21사단장,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특전사령관, 1군 부사령관, 1군사령관 역임.
  • 김종배 : 예) 중장, 육군부사관학교장, 육군교육사령부 훈련부장, 육군교육사령관 역임.
  • 김유근 : 예) 중장, 육군참모차장, 합참차장 역임.
  • 모종화 : 예) 중장, 제1군단장. 육군인사사령관, 제31사단장 역임
  • 박삼득 : 예) 중장, 국방대학교 총장, 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역임. 문재인 정부 국가보훈처장.
  • 박성우 : 예) 소장, 제 46대 육군훈련소장을 거치고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에 올라서 인사사령관도 바라봤으나 1기수 후배인 이재수에게 밀려서 한직인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조직위원장을 지냈다.
  • 장경욱 : 예) 소장, 기무사령관 역임
    기무사령관을 소장 계급으로 지냈다. 2013년 10월에 취임 6개월 만에 경질되었다고. 장군 인사 당시에 기무사 직원들은 그가 중장으로 정식 진급할 줄 알고 꽃다발까지 준비했는데 한 기수 후임인 이재수 중장의 기무사 보임이 결정되었고 장소장은 이임식도 하지 않고 전역했다. 참모장이었던 김선일 준장(육사40기)도 전역했다. 기무사 간부는 거의 대부분이 싹 다 갈려나갔다고. 김관진 안보실장의 사조직 이슈 건 때문에 대통령 독대보고를 하려 하였으나 만나주지 않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대신 보고를 하였는데, 김기춘이 김관진에게 사실여부를 물어보면서 김관진에게 괘씸죄로 찍힌 것. 그때문에 쌓인것이 어지간히 많은게 아닌지 문재인 후보를 전격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 최익봉 : 예) 중장 특전사령관 재임 중 23사단장 시절 성추문 사건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해임.
  • 강호동 : 육사 36기 출신으로 87년 대위로 예편 후 사무관으로 특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2급), 충북도 재난안전실장(2급) 역임 후 명예퇴임. 현재 충북중소기업진흥원장 재직 중. 현재 나무위키에 강호동 관련 문서는 우리가 아는 씨름선수이자 MC인 강호동 밖에 없다.
  • 김의수 : 1958년 충남 예산군 삽교출신으로 보문고, 육사 36기 출신으로 87년 대위로 예편 후 사무관으로 특채. 대전시 공보관. 대전시 인재개발원장, 교통행정국장, 자치행정국장, 대전시의회 사무처장 역임 후 2014년 7월 후배들을 위하여 명예퇴직하였으나 5개월만인 2014년 12월 26일 새벽에 급성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56세.
  • 원정희 : 1959년생,야전 부대 장교로 복무중에 지난 1987년 국세청 특채사무관 시험(10기)에 합격하여 국세청에 입문했다. 이후 영덕세무서장과 영등포세무서장을 지냈으며,지난 2014년 국세청 조세국장에 오르게 된다.이후 불과 7개월만에 1급 공무원 보직인 부산지방국세청장에 임명되면서 군 특채 출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1급 공무원이 되었다. 지난해 연말을 끝으로 국세청에서 명예퇴직하였다.
  • 김성회 - 예) 대령. 새누리당 소속 제18대 국회의원. 최근 녹취록 공개논란으로 친박계를 개발살 내는 중이다.

37. 37기

1977년에 입학해 1981년에 임관했다. 2006년에 처음 장성급에 진출했다. 18기, 35기에 이어 합참의장과 육참총장 모두 배출하지 못했다.
  • 고명현 예비역 준장.
    前국군체육부대장.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시절에 수석부관을 지냈다. 남재준 총장이 당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운 탓에 진급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가 장교단 내에서 돌았다. 남총장이 국정원장이 되자 부사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고대령을 국정원 국방보좌관[36]로 불러들였고 2013년에 13차 진급으로 준장을 달았다. 이 해에 육사 43기가 처음으로 준장에 진출했다. 본래는 3차 진급 이상 떨어지면 진급을 시키지 않으나 관행에서 벗어나 4차 이상의 진급 대상자들도 포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13차 진급이라는 위엄은 다시 쉽게 나오지 않을듯 하다.[37]
  • 김영식 예비역 대장.
    제1야전군사령관. 항공작전사령관을 역임하였고, 2015년에 대장까지 진급하였다.
  • 박지만 : 박정희 前 대통령과 육영수 사이의 아들, 박근혜 前 대통령의 남동생.
    1981년 졸업과 동시에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1985년 3월 교통사고로 후유증을 얻었고, 결국 5년차인 1986년 3월 대위로 예편했다.
  •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7군단장을 지냈으며, 독일 육사 유학생 출신이다. 기갑 병과 역사상 최초의 대장이자 사상 두번째로 구속수감된 대장. 이분의 갑질사건으로 인해 공관병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엄기학
    前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합참 작전부장 시절 노크 귀순 사건으로 견책을 받았으나 2013년 중장 진급에 성공하였고 2015년에 대장까지 진급해 관운이 좋다는 평을 받았다.
  • 신원식
    수방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했다. 육사 37기 중 1차로 중장 진급한 2인 중1인.
  • 양종수
    2군단장과 육사교장을 역임했다. 육사 37기 중 1차로 중장 진급한 2인 중1인.
  • 이재수
    기무사령관 역임. 위의 박지만 EG회장과 중앙고 동창이다. 기무사령관 맡기 전에 반년 정도 육군인사사령관도 지냈다. 장경욱 소장이 그가 기무사령관을 달기 전에 잠시 기무사령관을 지냈다. 이재수 중장이 37기라 워낙 주목을 받기 쉬운 터라 좀 시간을 고르란 의미에서 이런 인사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 3군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역후 세월호 불법사찰관련 조사를 받던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전인범 예비역 중장.
    1981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13년 10월 중장으로 진급하여 특수전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생도 시절 후배들을 엄하게 교육해 그의 별명은 ‘잔인범’이었다. 다음은 월간조선 2013년 12월호에 실린 육사 37기생들을 다룬 기사의 원문. 1군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였다.
박지만 씨에 대해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육사 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 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며 “특히 시골에서 올라온 선배들은 정의감에 불타 유명인사 자제들의 잘못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영웅심리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37기 동기회의 한 간부는 “1979년 여름, 포천 8사단 신병교육대 훈련장에 갔는데 대통령 아들 기수가 왔다며 쓸고 닦고 했다고 들었다”며 “우리는 처음 가는 야전부대라 부대가 원래 이런가 보다 했고, 삼계탕을 주면 부식이 원래 이런가 보다 했다. 훈련을 마치고 육사에 복귀하면서 선배들이 37기 동기 전체를 집합시켰다”고 했다. 그는 “해당 부대의 갓 졸업한 육사 선배들이 육사 선배들이나 훈육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때문에 하사관학교 학생들이 교육도 못하고 쓸고 닦는다’고 해서 얼굴을 못 든다고 했다”며 “우리들은 대통령 아들이 지원한 줄도 모르고 육사에 들어왔는데, 선배들은 ‘유사 이래 너희가 훈련소에서 삼계탕을 처음 먹었다’고 말해서 속상했다”고 했다. 그는 “하도 36기 선배들에게 들볶이다 보니 38기 후배들을 교육시킬 여력이 없어 동기들 사이에선 38기들이 기어오른다는 이야기도 했었다”며 “동기생 중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잔인범’ 소리를 들어 가며 후배들 교육을 시키지 않았으면 선배 노릇도 못할 뻔했다”고 했다.
— 오동룡. 2013. “朴志晩 同期 陸士 37期生들.” 『月刊朝鮮』 2013년 12월호, 98-115.

38. 38기

1978년에 입학했고 1982년에 임관했다. 2007년 10월에 준장 1차, 2010년 12월에 소장 1차가 있었다. 그리고 중장 1차 진급자가 2013년 10월에 나온 김용현 중장 1명 이고, 2차는 2014년 4월에 정연봉, 최병로, 정항래 중장이, 2014년 10월에는 3차로 임호영, 조현천, 위승호 중장이 진급했다.

38기의 입학생은 377명이었고, 입학 경쟁률은 137:1 이었는데 경쟁률이 이렇게 높았던 건 대위 복무 후 공무원 5급으로 채용되는 유신사무관이란 제도 때문이었다. 1988년에 유신사무관이 폐지되는 바람에 육사 38기부터 인사적체가 심각해졌다. 결국 37기와 마찬가지로 육참총장과 합참의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 김용현 예)중장 : 前 합참 작전본부장. 17사단장, 수방사령관 역임(중장1차). 정권이 바뀌면서 대장진급이 유력했으나, 1기수 후배인 김용우한테 물먹었다.
  • 고성균 예)소장 : 2016년 1월 31일에 전역[38].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육사교장 역임[39]
  • 위승호 예)중장 : 前 국방대학교 총장(중장3차). 합참 전략기획차장, 36사단장, 합참 신연합방위추진단장 역임. 현역임에도 국방부 정책실장을 맡았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THAAD보고 누락에 대한 책임으로 직무배제되고, 얼마후 전역했다.
  • 조현천 예)중장 : 前 기무사령관(중장3차). 전역후에 2016년 계엄령 모의사건의 책임자로서 미국으로 도주하였고,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다.
  • 최병로 예)중장 : 前 육사 교장(중장2차). 수도군단장 역임.
  • 정연봉 예)중장 : 前 육군참모차장(중장2차), 8군단장 역임.
  • 정항래 예)중장 : 前 군수사령관(중장2차).
  • 임호영 예)대장 : 5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중장3차) 역임. 최종보직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알자회로서 대장진급후 1년도 안되어 2기수 후배인 김병주 장군에게 이임하였다.
  • 오정일 예) 소장 : 現 육군사관학교 초빙교수. 합참 및 육군자문위원. 합참민군작전부장. 28사단장, 육군포병학교장 역임. 광운대에서 2015년 안전분야 박사 학위. '북한에 김정일(!)이 있으면 남한에 오정일이있다.'라는 별명이 있었음. 포병학교장 시절 그 유명한 우레(ULEH) 구호를 만들었다. 이미 28사단장 시절 무적태풍 구호라는 손발이 시공간으로 빨려들어갈정도의 구호를 만들었다. 꽤 원리원칙자 였는지, 현역시절 이분한테 눈밖에 나서 군생활이 꼬인사람도 있었다고함. 부산 가야고 졸업
  • 조성직 예)소장 : 2015년 12월에 전역하였다. 前사이버사령관. 노크귀순사건이 발생한 22사단장 역임. 22사단장직에서 보직해임이후 사이버사령관을 맡았는데, 국정감사때 김진태 의원에게 '작전에 실패한 군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 신만택 예)소장 : 국방전직교육원장
  • 정주교 예)소장 : (주)해안건축 부회장. 국방시설본부장 역임.
  • 연제욱 예)소장 : 국군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임기제 진급으로 2011년에 준장, 2012년에 소장에 올라갔다.
  • 옥도경 예)준장 : 국군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 박형진 대령(추서계급) : 네팔로 파병되어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던 중 2008년 불의의 헬기추락 사고로 순직하였고, 대령으로 추서되었다.
  • 윤완선 소장 : 3사단장, 前 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합동군사대학 총장, 육군종합행정학교장 역임.[40]
  • 이승호 예)준장 전 9공수여단장
  • 이상철 예)준장 : 성신여대 교수, 現 국가안보실 1차장

39. 39기

1979년에 입학했고 1983년에 임관했다. 2008년에 처음 준장으로 진급했다. 여담으로 알자회를 최초로 고발한 기수이다.
김용우 장군만이 유일하게 4성장군이자 육참총장으로 영전했다.
  • 김용우 예)대장 : 前 육군참모총장. 2017년 08월 대장진급, 합참전략기획본부장, 1군단장 역임.
  • 장재환 예)중장 : 39사단장 역임. 2014년 중장진급(1차). 7군단장, 교육사령관 역임. 박찬주 갑질사건때 같이 언급된바 있음.
  • 장경석 예)중장 : 前 항공작전사령관. 2015년 전반기 중장진급(2차). 26대 특전사령관역임. 알자회로서 정권이 바뀌고(문재인 정권) 본보기로 후임자 없이 경질되었다.
  • 김완태 예)중장 : 2015년 후반기 중장진급(3차). 수도군단장 역임 前 육군사관학교장. 같이 중장진급한 1기수 후배 김운용이 정권이 바뀌고 대장진급과 동시에 3군사령관을 맡으면서 얼마간 지휘를 받았다.
  • 제갈용준 예) 중장 : 1군사령부 참모장 역임. 2015년 후반기 중장진급(3차). 5군단장, 교육사령관역임. 동기 김완태와 같이 진급하였고, 동일하게 1기수 후배인 김운용 장군의 지휘를 받았다.
  • 김규하 예)소장 : 56사단장, 육군훈련소 소장 역임, 육군종합행정학교장 역임.
  • 류성식 예)소장: 前 육군부사관학교장. 인사참모부장 시절 육사 동기인 윤모 (예)소장의 전역지원서 조작을 지시하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불기소. [41]
  • 변재선 소장 : 육군본부 정보화기획실장 역임. 前 사이버사령관 겸 국방부 원광사 금강회장[42].[43]
  • 서진욱 예)준장 : 육군본부 교육훈련처장. 국방정신전력원 초대 원장 역임.
  • 이진원 예)소장 : 前 미사일사령관. 육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27사단장 역임. 전임자가 1기수 후배이자, 당시 중장진급한 김병주 장군이었다. 군인은 어떠한 경우라도 위국헌신이 우선이고, 설령 개인 사생활 및 집안일이라도 군의 임무가 우선이라고 할 정도로 참 군인이었다. 이에 대해 현역 간부들의 호불호가 심했다. 미사일사령관 시절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군인에게는 가차없이 갈굼을 동반한 비난을 하거나, 심지어 보직해임 시키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현재는 모교인 대전고등학교 운영위원장으로 재직중이다.
  • 장광현 예)소장 : 항공작전사령관 역임.
  • 하창호 예)소장 : 6군단 참모장, 1사단장, 합참 전력기획부장 역임.
  • 이종구 예)준장 : 수송병과 출신으로 종합군수학교 수송교육단장 및 수송병과장, 국군수송사령관(준장) 역임. 저서로는 '앱솔류트 리더십'이 있다.
  • 이종명 예)대령 : 現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前 합동군사대학 교관
    2000년 6월 27일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작전에 나섰다가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었다. 수색대대장(중령)으로 후임 대대장( 설동섭,육사 40기, 중령 예편)에게 임무 인수인계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후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았고, 함께 있던 중대장도 관통상을 입었다. 이 대령은 두 사람이 쓰러진 곳까지 갔다. 수년 동안 수색작전을 하며 파악해 놓은 이 지역 지리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음하는 후임 대대장을 업으려고 쪼그려 앉는 순간 그의 발 아래에서 다시 지뢰가 폭발했다. 수도 없이 다녔던 길이라 지뢰가 없다고 확신했던 곳이었다. 전날 비가 왔지만 지뢰가 떠내려 올 정도는 아니었다. 북한군이 우리 군 동선을 파악해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이 대령은 두 다리를 잃었다. 다리를 잃은 뒤 이 대령은 2년 반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다. 전역할 줄 알았지만 군은 하반신이 절단된 그에게 정년까지 복무토록 했다. 2015년 9월 전역.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자로 나왔다. 그리고 이번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44]
  • 이기덕 예)준장 : 50사단 모 여단(대구관할) 여단장 역임. 2013년 하반기 임기제 준장으로 진급하여 전투지휘훈련단장 역임 후 전역. 알자회
  • 공회식 예)준장 : 방공병과 출신으로 수도방위사령부 1방공여단장, 육군방공학교장을 역임하였다. 참고로 현 육군방공학교장 정용담 준장의 전임자다.

40. 40기

1980년에 입학했고 1984년에 임관했다. 2009년에 처음으로 준장, 2015년 10월에 첫 중장 진급.

바로 1기수 선배들이 알자회를 고발하면서 이들도 고발을 했는데 한술 더떠서 아예 25기수 선배인 권영해 장관을 찾아가서 알자회 군내퇴출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기수이다. 특히 김운용 전 지상작전사령관이 더 적극적이었는데 이때문에 알자회를 가장 강력하게 후원하는 박근혜 정권때 소장진급을 사실상 막차를 탔고 이대로 군생활이 끝나나 싶었지만 선두그룹들이 4명이나 한꺼번에 날아가는 바람에 운좋게 중장 2차진급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3달 뒤 전격적으로 3군사령관에 승진발령된다.

2014년에 온갖 사고가 터져 선두로 장군을 단 인물들 셋이 자리를 잃게 되어 격동을 겪고 있다. 여기에 헌병병과 선두주자 선종출 예)준장까지 포함하면 병과별 1차 진급자들 네명이 날아갔다. 거기다 육참총장과 합참의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 김병주 예) 대장 : 2017년 08월 대장 진급. 30사단장, 미사일사령관(이하 소장 시절), 3군단장(중장 시절),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역임.
  • 김운용 예) 대장 : 2017년 08월 대장 진급. 3사단장, 육군본부정보작전지원참모부장(이하 소장 시절), 2군단장(중장 시절), 3군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 역임.[45]
  • 구홍모 예) 중장 : 특전사 여단장 및 참모장, 7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역임. 중장1차진급
  • 김해석 예)중장 : 2015년 10월 1차 중장 진급. 육군인사사령관 역임. 국방대학교 총장, 50보병사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역임.
  • 김황록 예)중장 : 2015년 10월 1차 중장 진급. 前 국방정보본부장.
  • 이종섭 예)중장 : 합동참모차장, 7군단장, 합참 신연합방위추진위원단장, 2사단장 역임
  • 김상철 예)소장 : 20사단장, 미사일사령관
  • 김선일 예)준장 : 기무사 참모장을 지냈다.
  • 김대열 예)준장 : 김선일 장군에 이어 기무사 참모장을 지냈다. 김선일 장군과는 같은 경기고를 나왔는데 재수생 출신이라 고교는 선배다.
  • 박병기 소장 : 국방부 군수관리관 / 31사단장 역임.
  • 박주성 준장 : 75사단장 역임.
  • 노희준 소장 : 55사단장, 육본 동원참모부장 역임 국방부 동원기획관
  • 조영진 예)소장 :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 겸 군사정전위원회 한측대표, 남영신 장군이 특전사령관에서 기무사령관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특전사령관 직무대리를 맡았음. 참고로 병과는 포병임.
  • 김영준 소장 : 국방부 국방개혁실장
  • 김교성 소장 : 수도군단 부군단장 / 전 복지근무지원단장
  • 이친범 소장 : 전 국군정보사령관
  • 서상국 예)소장 : 前 육군훈련소장.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당시의 사단장이었으며 임관 25년만에 준장을 단 엘리트 출신이었다. 사단장에서 보직해임이후 육군훈련소장, 교육사 소장급 참모직위를 맡다가 전역하였다.
  • 송유진 예)소장이등병 : 17사단장 재직 중에 부사관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었다.
  • 이문석 예)소장 : 육군보병학교장 역임.
  • 이붕우 예)준장 : 육군본부 정훈공보실장 역임. 강릉지구 무장공비 작전시 2사단 민심참모. 국방부장관 공보담당. 자이툰부대 공보참모. 국방부 공보과장 겸 부대변인.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 현 국방홍보원장
  • 이순광 예)소장 :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의 사단장. 본인은 병영 생활 개선에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사고가 터졌다. 이후 한직인 국군복지단장을 역임후 전역하였다.
  • 양병희 소장 : 합참 전력발전부장 / 제35대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 역임.
  • 정용담 예)준장 : 前 육군방공학교장.
  • 주창환 소장 : 제5보병사단장 역임. 前 육군보병학교장.
  • 이한기 예)소장 : 부사관학교장
  • 선종출 예)준장 :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 헌병실장. 보고누락으로 경질되었다.
  • 탁부영 예)소장 : 공병병과 출신으로 前 국방부 시설본부장
  • 황태섭 예)소장 : 육군기계화학교장
  • 윤국 예)준장 : 수송병과 출신으로 前 국군수송사령관(준장). 대령 때는 육군종합군수학교 00처장, 국군수송사령부 항만운영단장을 역임하였다.
  • 이형국 예)준장 : 수도방위사령부 부사령관
  • 윤홍근 예)준장 : 제2군단 부군단장
  • 김영훈 예)준장 : 제3군단 부군단장
  • 최록하 : 포병병과 출신이다. 1군단 1포병여단 X 포병단장을 역임하였으며, 한미연합사 인사처장을 역임하였다. 준장 진급 대상자에 없는 것으로 보아 끝내 별을 달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올해 하반기 정년퇴직 할 가능성이 높다.
  • 설동섭 : 00년 6월 27일 1사단 수색대대장으로 보임돼서 전임 대대장인 이종명 중령과 함께 비무장지대를 정찰하던 중 지뢰를 밟아 두 다리가 모두 절단되고 머리, 팔에 파편상을 입는 등 중상으로 2년 넘게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03년에 중령으로 전역했다. 머리 상처로 인한 뇌경색 때문에 과거의 기억이 상당부분 잃었고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안타까운 사례.
  • 염완균 예)준장 : 포병병과 출신이다. 포병임에도 대령시절 동명부대장을 역임한바있고, 준장시절 2포병여단장, 연합사 화력부장을 역임하였다. 현역시절 별명이 '염라대왕'이었는데, 별명에 걸맞게 보통이 아니었다고한다. 2포병여단장시절 CNN에서 야외훈련하는걸 취재한바 있었는데, 리포터와 통역없이 영어로 대화했다.

41. 41기

1981년에 입학했고 1985년에 임관했다. 2010년에 처음 준장에 진출했다.
  • 서욱 : 現 육군참모총장 대장진급 2019.04.08. 중장 1차 진급, 합참 작전부장,25사단장, 1군단장, 합참작전본부장 역임.
  • 최병혁 : 現 한미연합사부사령관 대장진급 2019.04.08. 중장3차진급 22사단장, 5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역임
  • 이정기 : 전 지작사 참모장 2017년 9월 중장3차진급. 전 7군단장 32사단장 역임,현재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
  • 최영철 : 중장3차진급제 47대 2군단장. 2018년 5월 27일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영전.
  • 이석구 :국방대 총장 중장2차진급 합참작전기획부장, 수기사사단장, 기무사령관, 2작사 부사령관 역임. 기무사령관 시절 기무사 계엄 조사관련하여 송영무 장관과 마찰을 빚다가 청와대로 부터 전격 해임되었음.
  • 조종설 : 중장 1차 진급, 지상작전사령부 부사령관. 특수전사령관 역임[46]. 알자회
  • 이정근 :중장 1차 진급, 군수사령관, 2013년 소장진급. 물자처장. 37사단장 역임. 육군본부군수참모부장.
  • 조인희 : 빠른 63년생으로 국군 통신분야 전문가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기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10월부터 국군지휘통신사령관(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 강천수 : 수도포병여단장, 9사단장 역임.
  • 오영한 : 육군공병학교장
  • 장세욱 : 1996년 육군 소령 예편, 동국제강 부회장

42. 42기

1982년에 입학했고 1986년에 임관했다. 42기부터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데 2011년부터 기간이 4년에서 5년으로 늘어남에 따라 2012년에 처음 준장을 배출했다.
  • 박주경 : 2019년 5월 중장 4차진급. 現 육군군수사령관. 국방부군수관리관, 제11기계화보병사단장(10월) 역임.
  • 김성일 : 現 국방대학교 총장. 2018년 4월 중장 3차진급. 제6군단장, 육본 정보작전참모부장, 제23보병사단장(10월) 역임.
  • 김혁수 : 2018년 4월 중장 3차진급. 現 육군본부 정책연구관, 제2군단장, 제21보병사단장, 제13공수특전여단장 역임.(4월)
  • 정진경 : 2018년 4월 중장 3차진급. 現 육군사관학교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제5보병사단장 역임(4월).
  • 김영환 : 2017년 12월 중장 2차진급. 現 국방부정보본부장 .정보부장역임.
  • 안영호 : 現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2017년 9월 중장 1차진급. 육군 제 1군단장. 2015년 소장 진급.
  • 김정수 : 現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 2017년 9월 중장 1차진급. 수도방위사령관. 2015년 소장 진급. 제27보병사단장, 2군단장 직무대리 역임.
  • 김승겸 : 現 육군참모차장. 2017년 9월 중장 1차진급. 3군단장 역임. 2014년 소장 진급. 제28보병사단장(10월) 국군의날 행사단장,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차장 역임.
  • 구원근 : 2015년 소장 진급. 동원분야 전문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現 육군동원전력사령관. 2작전사령부 동원전력처장, 육군본부 동원참모부 차장 역임,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36보병사단장 역임(2차.4월) 동원직능의 육군 장교가 현실적으로 진급 가능한 최종계급이 소장이고, 최종보직이 육본 동원전력실장이나 육군 동원전력사령관이기에 중장으로의 진급 가능성은 낮다.
  • 김종문 :現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 2015년 소장 진급. 신연합방위추진단장. 제2보병사단장, 3군단장 직무대리 역임.
  • 신인호 : 現 교육사 전투발전부장.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 역임.(4월)2015년 소장 진급.
  • 이종화 : 육군학생군사학교장, 3군사령부참모장. 제1보병사단장 역임(4월)2015년 소장 진급.
  • 유무봉 : 육군본부 아미타이거4.0 통합기획단장 ,육본 기참부장.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역임(1차 10월). 2014년 소장 진급
  • 김갑수 : 국군복지단장. 제8기계화보병사단장(10월) 역임. 2014년 소장 진급
  • 김회수 : 육군준장, 육군정보통신학교장 역임, 한미연합군사령부 통신전자참모부장 역임 후 퇴역(19.01.31)
  • 이국재 : 육군종합행정학교장. 3군사령부 참모장, 제6보병사단장 역임(10월). 2014년 소장 진급
  • 임종득[47] : 수도군단 부군단장, 교육사 교육발전부장. 제17보병사단장(10월) 역임. 2014년 소장 진급
  • 서정천 : 육군종합군수학교장. 제50보병사단장(10월) 역임. 2014년 소장 진급
  • 이종협 : 2016년 소장 진급. 국방부 조사본부장 역임 후 퇴역(17.12.31)
  • 지영관 : 2016년 소장 진급. 기무사 참모장 역임 후 퇴역(18.4.30)
  • 구재서 : 2017년 소장 진급. 육군훈련소장 역임 후 퇴역(19.10.23). 천안북일고등학교 졸업.
  • 최세환 : 2018년 소장진급. 現 국군정보사령관. 2014년 준장 진급.
  • 곽합 : 2013년 준장 진급. 국군체육부대장 역임 후 퇴역(18.4.30).
  • 김용덕 : 2013년 준장 진급. 특수전학교장 역임 후 퇴역(18.4.30).
  • 송희섭 : 2013년 준장 진급. 국방정신전력원장, 21사단 포병연대장, 6포병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화력처장 역임 후 퇴역(17.12.31)
  • 황인 : 2013년 준장 진급. 육군 시험평가단장 역임 후 퇴역(18.4.30)
  • 장세훈 : 2014년 준장 진급. 現 군사연구소장. 육군훈련소 참모장(10월) 역임.
  • 김무수 : 2014년 7월 준장 진급. 現 75사단장.
  • 김대석 : 2015년 준장 진급.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부장 역임 후 퇴역(16.12.31).
  • 강재구 : 2017년 준장 진급. 現 탄약사령관.
  • 허욱구 : 예비역 준장. 2019년 2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취임.
  • 이철원 : 현 대령. 파병부대 아라우 부대장 역임. 現 미8군 한국군지원단 단장. 이 대령은 예산중학교 1학년인 1976년에 캐슬린 스티븐스 씨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참고로 캐슬린 스티븐스 씨는 08~11년에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했었다.

43. 43기

1983년에 입학했고 1987년에 임관했다. 2013년에 첫 준장을 배출했다. 2015년 10월 첫 소장 진급, 2018년 11월 첫 중장 진급
  • 성일 : 방사청계획운영단장,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2015년 10월 소장 진급( 제12보병사단장)1차.
  • 정형희 : 現 2작사부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2015년 10월 소장 진급( 제32보병사단장)1차
  • 문병호 : 예)소장, 2015년 10월 1차 진급( 제39보병사단장). 하지만 공관병 폭행으로 보직해임당했다.
  • 김경수: 국군의날행사기획단장,합참인사부장. 2016년 04월 소장 진급( 제35보병사단장)2차
  • 김한태: 부사관학교장,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2016년 04월 소장 진급( 제23보병사단장)2차
  • 이상호: 現 한미연합사 군수참모부장, 2016년 04월 소장 진급( 제52보병사단장)2차
  • 인성환: 국방부전력정책관. 2016년 04월 소장 진급( 제56보병사단장)2차
  • 이영철: 합참북한정보부장.2016년 04월 소장 진급( 국방정보본부 정보기획부장)2차
  • 권삼 : 현 국방부 동원기획관 2016년 10월 소장 진급( 제31보병사단장)3차 주로 동원과 관련된 보직을 맡은 걸 보아 직능은 동원으로 추정되는데, 동원직능의 장교의 상한선이 소장인지라 중장 진급은 힘들어보인다.
  • 김만기 : 2017.12.28 소장 진급(육군보병학교장) 4차
  • 최낙중 : 現 합동참모본부 사이버지휘통신부장, 2017.12.28 준장 진급(국군지휘통신사령관)4차
  • 김문곤 : 2017.12.28 소장 진급(육군인사사령관)4차
  • 김용호 : 소장 지상작전사령부 정보참모부장
  • 김갑진 : 소장 2019.11.08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
  • 김재봉 준장 : 국방시설본부장
  • 이기흥 준장 :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 차장
  • 나승용 준장 : 국방정신전력원장
  • 심동현 준장 :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부 차장
  • 김태업 준장 : 한미야전사 제8군 한국측 부사령관
  • 이우조 준장 : 육군군수사령부 보급처장
  • 주행식 준장 : 육군본부 전력지원체계사업단장
  • 고효욱 준장 :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
  • 최병호 준장 : 육군종합행정학교 교수부장
  • 이창영 준장 : 육군교육사령부 지원부장
  • 이동훈 준장 : 육군공병학교장
  • 최세영 준장 : 육군종합군수학교 수송교육단장
  • 김주재 준장 : 육군보병학교 교육여단장
  • 송지호 준장 : 육군전투지휘훈련단장
  • 서영만 준장 : 육군특수전사령부 참모장
  • 김덕영 준장 : 제60보병사단장
  • 김동열 준장 : 제66보병사단장
  • 정찬호 준장 : 제201특공여단장

44. 44기

1984년에 입학했고 1988년에 임관했다. 2014년에 첫 준장 진출했다.
  • 정찬환 : 군수사령부 참모장, 2017년 9월 소장 진급( 제25보병사단장) 2차
  •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 2017년 12월소장진급(청와대 국방비서관) 3차
  • 이정수 : 2017년 12월 소장 진급(미사일사령관) 3차
  • 이대웅 : 2018년 05월 소장 진급 (제56보병사단)4차
  • 허건영 : 합참전력기획부장, 2018년 05월 소장 진급 (항공작전사령관) 4차
  • 이정웅 : 2018년 05월 소장 진급(합참전략기획부장) 4차
  • 박호 : 2018년 06월 소장 진급(육군본부 정보화기획참모부장) 4차
  • 현승하 : 육군 제 2기갑여단장
  • 서천규: 육군 제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 연경흠 : 육군 3군단 참모장, 준장
  • 이장근
  • 오성대
  • 이시천 : 병과는 공병, 직능은 군수로 추정된다.[48] 현재 3공병여단장이고, 2015년 상반기에는 대령, 2015년 하반기에 준장(진)이 되었으며, 2016년 1월 1일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 하종식: 육군 인사사령부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

45. 45기

1985년에 입학했고 1989년에 임관했다.

46. 46기

1986년에 입학했고 1990년에 임관했다.
  • 심진선 : 2018년 11월 소장 진급 1차(제6보병사단장)
  • 박원호 : 2018년 11월 소장 진급 1차(제7보병사단장)
  • 이규준 : 現 제17보병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역임. 2018년 11월 소장 진급 1차(제17보병사단장)
  • 황유성 : 2018년 11월 소장 진급 1차(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 이두희 : 現 제28보병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화력처장 역임. 2018년 11월 소장 진급 1차(제28보병사단장)
  • 엄용진 : 2018년 11월 소장 진급 1차(제50보병사단장)
  • 김홍석 : 2019.05.07 소장 진급 2차(제1보병사단장)
  • 함희성 : 2019.05.07 소장 진급 2차(제8기계화보병사단장)
  • 강신철 : 2019.05.07 소장 진급 2차(제11기계화보병사단장)
  • 장현주 : 2019.05.07 소장 진급 2차(제21보병사단장)
  • 이계철 : 2019.05.07 소장 진급 2차(제23보병사단장). 그러나 취임 한달 만에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이 터져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데다, 23사단 소속 병사 1명이 휴가 중 한강에서 투신자살하는 악재가 거듭 발생하였다.
  • 고태남 : 2019.05.07 소장 진급 2차(제25보병사단장)
  • 정해일 : 2019.05.07 소장 진급 2차(제27보병사단장), 前국방부 군사보좌관
  • 박안수 : 2019.05.07 소장 진급 2차(제39보병사단장)
  • 김흥석 : 예비역 준장. 육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위탁교육으로 군법무관이 됐다. 그 때문에 동기들보다 4~5년 빠른 2012년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준장으로 진급 후 육본 법무실장을 역임하고, 마지막으로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했다. 군법무관의 특성상 준장이 계급상한선이므로 준장 위로의 진급은 힘들다.
  • 황일웅 : 예비역 준장. 육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위탁교육으로 군의관이 됐다. 전공은 정형외과다. 그 때문에 동기들보다 4~5년 빠른 2012년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최종 보직은 국군의무사령관.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청와대 의무실장을 맡다가 현재는 민간에서 일하고 있다. 군의관의 특성상 소장이 계급상한선이므로 소장 위로의 진급은 힘들다.

47. 47기

1987년에 입학했고 1991년에 임관했다.
전 국군의무사령관. 천안 북일고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하고, 뒤에 위탁교육으로 서울대 의과대학에 갔다. 전공은 피부과다. 군의관으로 근무하였고, 2000년 대위시절 유엔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동티모르에 파견된 적이 있다. 2014년에 준장을 달았다. 2014년에 준장에 첫 진출한 기수는 44기였다. 1차로 준장 다는 인원들보다 3년이나 일찍 진급한 것. 국군고양병원장, 국군춘천병원장, 국군양주병원장, 미육군사관학교 교환교수 역임.

48. 48기

1988년에 입학했고 1992년에 임관했다.

49. 49기

1989년에 입학했고 1993년에 임관했다.
  • 하기룡
    소위 임관 후 군법무관이 되기 위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위탁교육을 받았으나 군법무관 시험에 탈락하고 은행강도를 하다가 붙잡혀서 육사 동문회에서 영구제명 당했다.

50. 50기

1990년에 입학했고 1994년에 임관했다.
  • 서경석
    입학은 했으나 한달만에 퇴교하여 졸업자는 아니다. 정식 입학식 전 기초군사훈련 중 자퇴하였다. 다만 동문을 넓은 의미에서 보는 일이 많은 한국의 특성상 육사와 연관이 있는 인물로 보고는 있다.
  • 김특중
    94년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의 주인공이다. 비록 탈영은 했지만 이 분 덕택에 '소대장길들이기'라는 악습이 없어졌으며, 군의 질서가 바로 잡힌 순기능이 있다. 수감 중에 95년 3월 중위로 진급한 후 징역이 확정되자 현 계급에서 제대하였다. 그 후 육사에서 수학을 전공한 것을 살려 입시학원 및 논술학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51. 51기

1991년에 입학했고 1995년에 임관했다.
  • 표영재
    1995년 임관하여 중위로 예편했다. 예비역 계급이 높고 학력이 좋은 대표적인 성우. 당연하지만 육사 출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군인, 대통령만 되지는 않는다.

52. 52기

1992년에 입학했고 1996년에 임관했다. 졸업식 날 묘한 타이밍인것이 대선배들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법정에 선 날이었다. https://youtu.be/PazQBkbQ4ko동기인 김훈 중위의 죽음에 군에 실망한 사람이 많아 5년차에 33명이 대거 전역했다. 보통은 10명 내외이다. 관련기사[49]
졸업을 앞두고 백혈병으로 그의 부친이 대신 참석했고 동기들은 자진해서 채혈검사를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대장 시절 전국구급사고때문에....[50]
https://youtu.be/km2me6cBFsE

53. 53기

1993년에 입학했고 1997년에 임관했다.
  • 정성우 : 1군사령관을 역임한 정수성 장군[51]의 차남이며, 현역 중령이다.

54. 54기

1994년에 입학했고 1998년에 임관했다.
권영환 : 연대장 생도. 現 중령. JSA 경비대대장으로 복무 중. JSA 북한군 귀순 사건에서 북한군 병사를 직접 몸을 이끌고 나가 구해온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55. 55기

1995년에 입학했고 1999년에 임관했다.

56. 56기

1996년에 입학했고 2000년에 임관했다.

57. 57기

1997년에 입학했고 2001년에 임관했다.

58. 58기

1998년에 입학했고 2002년에 임관했다. 처음으로 여성 사관생도를 받아들인 기수이다.
  • 유영재 : 2008년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故 선효선 소령( 국군간호사관학교 43기)의 남편
  • 강유미 : 여군 최초 사법시험 합격자. 병과는 보병에서 법무로 전과.
  • 최준혁 : 육사 졸업식에서 합참의장상 수상. 26사 신교대 중대장 등 역임.
  • 권성이 : 28사단 돌풍연대 대대장. 여군 최초의 전방부대 대대장.

59. 59기

1999년에 입학했고 2003년에 임관했다.

  • 정근홍: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교수

60. 60기

2000년에 입학했고 2004년에 임관했다.

61. 61기

2001년에 입학했고 2005년에 임관했다.

62. 62기

2002년에 입학했고 2006년에 임관했다.
  • 김용우 : 27기인 김장수 예비역 대장의 아들. 프랑스 육사 위탁생 출신인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되었다. 링크를 타고 가면 동명이인만 있으며 아직 본인 항목은 없다. 근데 동명이인이 본인의 육사 23기수 선배(육사39기)이자 문재인 정부 첫 육군참모총장이다(...) 복싱과 헬스를 취미삼아 한다고 한다.

63. 63기

2003년에 입학했고 2007년에 임관했다.

64. 64기

2004년에 입학했고 2008년에 임관했다.
  • 이석 소령 : 前 합참의장 이순진 대장의 아들.
  • 조홍래 소령 : 육군사관학교 개교 이래 최초로 대통령상과 대표화랑상을 동시에 수상함.
  • 박선욱 소령 : 박정인 전 3사단장의 장손이다.

65. 65기

2005년에 입학했고 2009년에 임관했다.

66. 66기

2006년에 입학했고 2010년에 임관했다.

67. 67기

2007년에 입학했고 2011년에 임관했다.
공주고에 재학했던 '장서희'씨가 입학 했다면 해당 기수에 입학했을 것 이다, '장서희'씨는 1차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고 '장서희'씨 외에 다른 기수에서 만점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구글링 해보면 '장서희'씨 빼고는 나오지 않는다.

68. 68기

2008년에 입학했고 2012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199명(남 179, 여 20). 관련기사
  • 백인준 : 대표화랑상
  • 서경준 : 국무총리상
  • 윤가희 : 첫 번째 여성 생도 대통령상(수석졸업)

69. 69기

2009년에 입학했고 2013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205명. 관련기사
  • 김용 : 국무총리상
  • 양주희 : 두 번째 여성 생도 대통령상(2년 연속 여성생도 수석졸업)[52]
  • 윤성원 : 대표화랑상
  • 한동윤, 한지윤 : 남매로 육사에 동기로 입학했다. 오빠가 재수해 입학했고 동생은 현역으로 입학. 동생 한지윤은 한미연합사령관상을 수상
  • 윗사루 루왕스리 : 태국 출신 수탁생도(아버지가 육군 중령)

70. 70기

2010년에 입학했고 2014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198명 임관.(남 178, 여 20) 관련기사

역사상 가장 많이 입학(무려 300명이 넘었고, 1991년생들이 290명이었다)하였으나 정작 퇴교자들이 100명이 넘어갔을 정도로 퇴교생도 가장 많았던 기수. 스스로 퇴교한 생도들은 대부분 다시 재수를 해서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군사관이나 학사장교로 대거 입대한 상황.

2017년부터 대위로 진급하기 시작했다.
  • 김수찬(남) : 대통령상.(수석졸업) 1991년생. 현재 육군사관학교에서 무기시스템공학 교수(대위)로 복무 중.
  • 강은정(여) : 국무총리상.(차석졸업) 1990년생으로 재수해서 육사에 입학했다.
  • 최영환(남) : 1991년생. 사관생도로는 처음으로 건축시공대전 최우수상 수상.

71. 71기

2011년에 237명(남214/여23)[53]이 입학했고 2015년에 220명(남 201, 여 19)이 임관했다.

72. 72기

2012년에 입학했고 2016년에 임관했다.

73. 73기

2013년에 입학했고 2017년에 임관했다.

개교이래 최초로 1,2,3등을 모두 여생도가 싹쓸이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https://youtu.be/sdRI55yc32U

74. 74기

2014년에 입학했고 2018년에 임관하였으며 오랜만에 문재인대통령이 졸업 및 임관식을 주관하였다. 현재 중위로 복무중 이다.

75. 75기

2015년에 입학했고 2019년에 임관하였다. 현재 소위로 복무 중이다.

76. 76기

2016년에 입학했다. 2020년에 임관할 예정이다.

77. 77기

2017년에 입학했다. 2021년에 임관할 예정이다.

78. 78기

2018년에 입학했다. 2022년에 임관할 예정이다.

79. 79기

2019년에 입학했다. 2023년에 임관할 예정이다.
[1] 전두환이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를 붙잡기 위하여 요정으로 초대하는데 정병주 장군(배우 : 민욱)이 요정에 도착 후 차에서 내리는 씬 [2] 윤성민이 진압 과정에서 반란군에 유화적이었던 점,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되어 회유 대상이 되었다. 윤성민은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1군사령관, 합참의장, 국방부장관을 역임한다. [3] 반란 직후 논공행상과 반대파 숙청 작업을 했던 6인 위원회(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김윤호)의 1인이다. [4] 생도 1기는 그나마 교육을 거의 마치고 임관을 앞둔 기수임에 반해 생도 2기는 아직 이등병이나 다름없는데 채병덕은 뒷날에 대한 생각도 없이 소중한 장교 재원들을 총알받이로 갈아버린 것이다. 패전 직전의 일본군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다. [5]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의 오빠, 즉 노태우의 손윗처남이다. [6] 박정희의 총애를 바탕으로 초기에는 전두환보다도 더 잘나가는 실력자였다. 윤필용 사건에서 전두환, 노태우가 하나회 주도권을 쟁취하고자 자신을 배신하고 모함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전두환이 이 사건에서 윤필용과 손영길이 숙청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여러 정황으로 확인된다. [7] 당시 50사단장으로 지방에 근무했기 때문에 12.12 군사반란 당일에는 빠졌으나, 반란이 끝난 다음날 새벽에 반란군에 합류했다. 본인은 반란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8] 하나회 12기로 전두환 정권 초기 실세로 군림한 박세직, 박준병, 박희도를 일컫는다 [9] 반란 당시 휘하 20사단이 서울로 출동하지 않아 후일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처벌을 피했다. 본인은 전두환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 [10]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유혈 점령한 박희도의 1공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유혈 체포한 최세창의 3공수와 달리 당일 장기오의 5공수는 효창 운동장에서 예비대로 대기했다. [11] 휠체어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소장까지 달고 예편했다. 반란군에 대한 복지는 참 가관일 따름이다. [12] NO.1 경호실장 차지철이 김재규에 피살, NO.2 경호차장 이재전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 NO.3 경호차장보 김복동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좌천되는 바람에 NO.4인 정동호가 3계급을 뛰어넘어 경호실장 직무를 대리하고 있었다. 경호실장 직무를 맡은 인간이 반란군 수괴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을 사실상 감금했다. [13] 재학 시절 이춘구, 안무혁, 배명국, 이종구 등 하나회 멤버들과 절친이었고 훗날 이춘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회의 대부 이종구는 이 인연을 기반으로 MB 정권에서 국방 정책에 영향력을 끼쳤다. [14] 자신의 잘못을 비판하는 장태완(갑종 출신)을 자신은 정규 육사 출신이라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대놓고 깔보며 항명했다. 전두환의 하나회와 장태완의 악연의 장렬한 시작이었다. [15] 노태우의 9공수여단장, 9사단장 재임 시절 직속 부하들로 이루어진 군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크게 중용되었다. [16] 허화평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로 전무후무한 자리였다. [17] 17기의 후임 기수 대장들인 1군사령관 조남풍, 3군사령관 구창회는 모두 하나회 핵심 멤버여서, 부득이하게 동기인 김동진을 올렸다. [18] 휘하 9사단의 불법 출동 소식을 접한 3군사령관 이건영이 전화를 걸어 사실이냐고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여러 번 발뺌하고, 출동하지 말라고 재차 지시했음에도 계속 출동시켰다. [19] 당시 인사참모부장-수방사령관-기무사령관-3군사령관이라는 그야말로 최강 진급 코스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차기 참모총장으로 매우 유력했다. [20] 하나회 대숙청의 시작이었던 김진영 참모총장 전격 해임 후 약 1년 뒤인 1994년 4월 해임되었다. [21] 통상 3차만 넘어가도 진급하기가 힘든데 무려 7차다. 독보적인 기록. [22] 다른 기수로는 최근 기수인 35기와 37기가 있다. 35기는 두 명의 대장이 있었는데 신현돈은 음주 추태로 예편당했고, 합참의장이 유력하던 박선우는 충격과 공포의 '3사 출신 이순진 합참의장 내정'이라는 대이변이 일어나 영전 없이 예편해야 했다. 37기는 2작전사령관 박찬주의 공관병 갑질로 인해 나머지 1,3야전사령관도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23] 확실하진 않으나 상황실에서 반란군에 협력한 정황이 있다. [24] 본인은 하나회가 아니라고 주장해서 하나회 1차 숙청 때 살아남아 대장으로 진급했으나 결국 40일만에 예편되었다. 본인은 하나회가 아니라고 하지만 12.12 군사반란 이후 무척 애를 써 뒤늦게 하나회에 가입한 정황이 있다. [25] 하나회 20기 멤버로 거론되나 오늘날까지 진위가 불분명하다. [26] 소란을 피운 다음날 당시 이양호 합참의장에게 사과해서 별 일 없을 줄 알았으나, 결국 청와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일벌백계의 대상으로 이충석은 군복을 벗게 되었다. [27] 12.12 군사 반란 관련자이나 하나회 멤버는 아니다. [28] 군소 정당을 차려 기호 9번으로 출마하여 유명해졌다. 대선에서는 최저득표율로 낙선하는 굴욕을 겪었다. [29] 백승도, 최광준, 김형수 준장 [30] 대개 군수사령관을 하고, 전역을 하지만 이봉원 장군은 전역을 하지 않고, 육사교장을 하고, 전역하였다. [31] 사실 이 때부터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떡밥이 있었고, 국민안전처에 대한 구상과 계획이 어느정도 완료되었기 때문에 이성호 장군을 안전행정부 2차관으로 임명한 듯하다. [32] 최익봉 특전사령관이 여군하사 성군기 문제로 보직해임 당했을 때 특전사 부사령관 윤광섭 장군이 직무대리를 했었다. [33] 육사 6기이자 백골부대장으로 유명했던 박정인 장군의 자서전에서는 육사 6기는 5.16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고, 박경원 같은 유능한 장군이 일찍이 공직분야로 차출되는 바람에 대장을 배출하지 못했다고 써져 있다. 또한 육사 5기와 육사 8기가 주축이 된 5.16이기 때문에 낀세대(?)인 육사 6기는 찬밥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4] 황인무 장군이 32사단장까지는 진급라인을 잘 탔으나 소장 2차보직을 육군대학 총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꼬이게 되었다. 또한 중장 1차보직이 육군교육사령관이었는데 이것이 군단장급 야전지휘관을 역임하지 못한게 되어 13년 말 1군사령관 자리를 놓고, 동기생 신현돈 장군과 경합을 벌였으나 대장진급에 실패하고 예편하였다. [35] 여담이지만 2015년 11월 20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에 있는 황인무 차관의 자택에서 화재가 나서 소방서 추산 900여 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당시 자택에 황인무 차관의 사모님이 계셨지만 다행이도 대학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면 회복될 수준의 부상을 입었었다. [36] 본래는 준장이나 소장이 보임된다. [37] 종전에는 8차 진급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육사 37기 동기가 2007년 10월에 최초로 준장으로 진출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13차 진급이 맞다. 1년에 장군인사가 4~5월, 10~11월 두번 있으므로. 육사 37기 신원식은 2006년 10월에 준장 진급이 결정되어 준장(진)을 달았으니까 실제로는... 거의 15차... [38]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는 현역으로 교육사 교육훈련부장을 맡고 있다고 하지만 육사38기 동기회카페에서 전역했음을 알 수 있다. 전역식은 따로 하지 않고 악기연주로 전역을 기념하는 사진이 올라온적 있다. [39] 육사에서 생도간 성폭행 사건으로 육사교장 박남수 중장이 자진전역하고, 후임으로 육사 교장을 임명하였는데 이례적으로 소장계급의 고성균 장군이 맡게 되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기관징계(?)형식의 인사스타일인 듯하다.(참고로 윤일병 사건때 국방부 조사본부도 이와 같은 징계를 당했다. 당시 조사본부장이었던 백낙종 소장이 전역하고, 이종협 준장(진)이 조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40] 3사단장까지는 진급코스를 잘 밟았으나 그 다음 보직인 합동참모대학 총장때부터 진급이 꼬이기 시작했으며, 총장 역임 후 육군종합행정학교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중장 진급에 완전히 밀리게 되었다. [41]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시다. 세례명은 스타슬라니오 [42] 독실한 불교신자인 듯하다. [43] 이왕근 前 공군참모총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44] 비례대표는 여자는 홀수, 남자는 짝수 순번이기 때문에 이종명 당선자는 사실상 비례 1번이나 마찬가지였다. [45] 참고로 동기인 서상국, 이순광, 송유진이 줄줄이 나가리되면서 영전할 수 있었다. [46] 여담으로 임기를 1년도 못채웠다. [47] 강신명 前 경찰청장과 고딩동창이다. [48]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08년 당시 중령 때 사단 군수참모를 맡고 있었다. [49] 생도들이 이런 식으로 대거 전역한 사례는 해외에서 1991년 방위대학교 35기의 임관포기가 있다. 걸프 전쟁 당시 자위대 파견을 두고 일본 사회의 여러 논쟁을 겪으면서 자위대에 실망했다며 떠난 사람이 많았다. 졸업생 494명 가운데 95명이 임관을 포기했다. 관련기사 [50] 심대평의 아들이자 본인의 육사동기인 심우찬의 자서전에도 언급되어 있다. 둘은 육사시절 룸메였다고 한다. [51] 갑종장교 출신으로 대장까지 진급하였고, 새누리당 국회의원(경북 경주시) 겸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52] 사실 탈락했는데 가입교 2일 전에 추가합격으로 합격하는 바람에 짐도 제대로 못싼 채 몸뚱이만 가입교훈련 입소를 하러 갔고 그렇게 입학해서 수석으로 임관한 입지전적인 인물. 입학은 꼴찌로 했지만 임관은 수석으로 했다. 양주희의 전례로 인하여 이후 기수부터는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적성 합격으로 수능을 무시하고 선발하는 티오가 생겼다. [53] 외국수탁생 합치면 24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