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4 09:33:04

이준식(군인)


이준식
파일:이준식.jpg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한국의 독립운동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별칭 호: 화강
일명: 웅, 증손, 진탁, 휘석
본관 수안 이씨
생몰년도 1900년 2월 18일 ~ 1966년 4월 5일(향년 66세)
출생지 평안남도 순천시
사망지
국적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직업 군인

1. 개요2. 일생3. 그 외4. 관련 문서
파일:이준식().jpg
한국 광복군 창설을 주도한 군인
한국 광복군 제1지대장

1. 개요

한국 광복군에서 활동한 군인.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으로 독립군과 광복군을 거쳐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활동했다.
  • 1900년 출생
  • 1921년 중국 군사학교 졸업
  • 1929년 조선혁명군 참모장
  • 1931년 한국군인회 조직
  •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시 항일전투 참여
  • 1940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제1지대장
  • 1966년 서거

2. 일생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어 독립운동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고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상하이로 가 군인이 되기로 한다.[1]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그는 임시정부로 들어갔면서 중국의 군관학교의 입학했다. 순간이동

그는 군 간부를 양성하는 윈안강무학교에 입학해 몇년 후 졸업한다. 졸업 이후 그는 대한통의부[2]에 가입했고 3부[3]가 조직되고 3부 중 정의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정의부 군사위원장에 임명된다.

그 이후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활동하다가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의 이봉창[4] 의사의 의거에 감동받아 한국군인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의 활동이 일본 경찰에 알려져 조사를 받던 중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가 일어났고 이때 이준식은 상하이를 탈출했다.

상하이를 떠난 그는 1937년까지 중국군 장교로 활동하며 여러 전쟁을 치렀다. 그 때에도 임시정부를 위해 노력했다. 1940년 한국광복군이 조직되자 그는 총사령부 참모로 임명되어 여러 전투를 벌였다.

그는 해방이 될 때까지 광복군에서 활동했다. 해방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활동하며 사단장, 군단장을 역임하고 육군 중장으로 활동했다. 그 뒤 재향군인회 회장, 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3. 그 외

  • 그와 관련된 만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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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


[1] 당시 상하이는 약소민족 혁명가들이 활동하던 거점이었다. [2] 1922년 만주에서 조직된 항일독립군 연합 단체이다. [3]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4] 독립운동가이지만 과거에는 창시개명을 하고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왠지 친일파 느낌이~ 하지만 많은 차별을 받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