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2 14:51:01

박희도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박희도(축구선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2.12 군사반란 가담자(총 3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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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도(朴熙道)
파일:amp044028.jpg
1934년 7월 22일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56년 ~ 1988년
임관 육사 12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육군참모총장

1. 소개2. 일생
2.1. 어린 시절2.2. 12.12 군사 반란 이전2.3. 12.12 군사 반란 이후2.4. 예편 이후
3.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가, 종교인( 불교)이다. 본관은 밀양 박씨이다. 12.12 군사반란 가담자 중 한명으로 전두환 하수인. 개인적으로 아주 독실한 불자라고 한다. 한마디로 군부의 실세로 박정희 인사로 대입하면 막강한 정치군인 윤필용과 비슷한데, 정작 윤필용과 같은 말로를 맞은 건 박세직이였지만 박세직은 말실수로 숙청당한건 비슷하지만 권력과 신임은 박희도의 네임드나 권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2. 일생

2.1. 어린 시절

1934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직속선배가 김수한 새누리당 상임고문이다.

2.2. 12.12 군사 반란 이전

1956년 3월 육군사관학교 제12기로 육군 소위에 임관했다. 한 기수 선배인 전두환과는 생도시절부터 깊은 친분을 쌓아온 사이로 전두환과의 인연으로 인하여 1960년대 중반에 하나회에 가입했다.
파일:hnh.jpg
하나회에서 박희도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하고 군 수뇌부 인사가 발표된 뒤인 1979년 12월 14일, 쿠데타 지휘부와 행동대장들이 국군보안사령부 건물[1]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에서는 그 노태우 바로 옆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1975년 준장에 진급하자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추천으로 제1공수특전여단에 부임했다. 사실 박희도가 준장에 진급한 것도 정병주 장군이 진급심사에서 박희도를 준장으로 진급시키는데 크게 도움을 줬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박희도가 1공수특전여단장에 부임한 지 1년만인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박정희는 이 사건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노재현 당시 합동참모본부장에게 시켜서 박희도를 몰래 만난 뒤 보복작전을 지시했다. 작전명령은 판문점 뒤에 있는 북한의 불법초소 4개를 완파하는 내용이였다. 이에 박희도는 김종헌 소령을 특공대장으로 임명한 64명의 특공대원을 특전사 1여단에서 차출해서 권총과는 별개로 개인화기를 지참시켰다. 이에 주한미군 겸 유엔군사령부[2] 사령관인 리처드 스틸웰 미 육군 대장이 이에 분노하여 박희도를 몰아세웠다. 그러자 박희도는 오히려 성질을 내며 "이보시오, 지금 이게 스포츠인 줄 아시오?"라며 스틸웰 대장에게 반박하고 당초 계획대로 개인화기를 지참하고 작전을 실행했다. 미국 측에서 대단히 분노하여 박희도를 보직해임 시킬 것을 강요했으나 박정희는 미국 측을 잘 달래서 이 사건을 무마시켰다. 사실 먼저 쳐들어온 쪽이 북한이었고 작전지시를 내린 사람이 박정희이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게 무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의 비호를 받은 바 있는 박희도는 이번에는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1978년 북한에서는 무장공비를 파견하여 서산앞바다에서 군사기밀을 캐가고 1공수특전여단의 위수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닌 뒤 임진강을 건너 복귀하는 데에 성공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인하여 박희도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이세호 대장에게 격렬하게 문책을 받았고 쪼인트를 까이는 등 말이 아니였다. 이세호는 머리끝까지 빡쳐서 박희도의 군복을 벗겨버리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이때 또다시 정병주가 나서서 이세호에게 그래도 박정희가 특별히 지시한 작전을 완수한 지휘관이고 하니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진짜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이 정도로 박희도를 정병주가 보호해줘서 겨우 군생활의 위기를 넘겼지만 1년 후 박희도는 12.12 군사 반란에 참여함으로써 자기의 은인인 정병주를 배신했다. 그의 인생을 총평하자면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세상 누구에게라도 기꺼이 충성하는 소인으로 유취만년 [遺臭萬年]이란 이런 자에게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3. 12.12 군사 반란 이후

대한민국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7대 정호용 8대 박희도 9대 최세창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25대 정호용 26대 박희도 27대 이종구

1979년 12월 12일, 1공수특전여단장( 준장) 신분으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해 반란의 1등 공신이 되었다. 직속 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지시에 항명하고 박희도는 병력을 동원하여 총격전[3]을 벌이고 국방부 육군본부를 불법적으로 점거하였다. 숨어있던 국방장관 노재현도 확보하는데 성공하여 대통령 재가를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최세창의 3공수여단에 체포되어 진압군은 결국 무력화되고 만다.

박희도는 이 공로로 그 해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에 부임했다. 그 이후 1년도 안되어 중장으로 진급하여 하나회 선배 정호용의 후임으로 특전사령관에 부임했다.[4]

하나회 12기 멤버였던 특전사령관 박희도, 보안사령관 박준병, 수경사령관 박세직은 '쓰리박'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희도는 12.12 군사반란 이전까지만 해도 육사 12기 선두 주자인 박준병, 박세직보다 진급이 1년 늦었지만, 박세직이 일명 '박세직 사건'[5]으로 소장 계급에서 예편당하고, 박준병이 8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차출되어 전역[6]하면서 1985년 박희도가 육군참모총장에 오르게 된다.

참모총장 시절 1986년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2년 임기가 만료되었던 1987년 12월에 예편 수순을 밟아야 했으나 전두환에 의해 임기가 1년 연장되었다. 이는 노태우에게 정권 이임을 눈앞에 두고 있던 전두환이 자신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고자 자신의 직계인 박희도를 유임시킨 것이다.[7] 이에 분노했지만 일단은 내색하지 않았던 노태우는 취임 이후 즉각 보복 인사를 행한다.

국민 여론을 명분으로 전두환계를 숙청하기 시작한 노태우에 의해 1988년 6월 임기를 6개월 앞두고 보직해임되어 전역했다. 전역 이후에도 다른 하나회 인사들처럼 공직이나 정계로 진출하지 못했다. 두 차례 총선 출마를 시도하긴 했지만 한 번(14대 총선)은 공천이 거의 유력했다가 탈락했고 한 번은 12.12쿠데타 단죄로 불발되었다.

2.4. 예편 이후

1994년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12.12 쿠데타에 대한 혐의로 인하여 징역을 살다가 석방되었으며 현재는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상임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2014년 11월 28일 서북청년단 재건총회에서 서북청년단의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서북청년단이 어떤조직이었는지는 항목참고

2014년 12월 대한민국불교도총연합 상임고문 자격으로 통합 진보당 해산 촉구를 주도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시위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3. 기타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는 기정수가 연기했고, 제5공화국에서는 전인택이 연기했다. 코리아게이트에서는 서상철이 연기.

파일:ParkHD-K.jpg
(코리아게이트의 박희도)


[1]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2] 이전 문서에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이라고 썼는데, 한미연합사는 1978년에 창설되었다. 그 이전의 주한미군 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총괄 작전권을 행사했다.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3] 제대 2개월을 남기고 있던 국방부 헌병대 정선엽 병장, 신원 불명의 국방부 옥상 발칸 운용병이 총격전에서 사망했다. 정말 애꿎은 죽음을 맞은 이들은 12.12의 진짜 피해자들로도 언급받지 않고 잊혀져버렸다. [4] 사령관 재임 중 제주 C-123 추락사고가 발생하여 휘하 특전사 장병 53명이 희생되었으며, 강제로 특전사 장병의 월급을 각출하여 자기 명의의 추모비를 세웠다. 정적 본인은 오래전 일이라 기억 안난다고 발뺌하고 있다 [5] 박세직이 2인자 및 후계자를 자처했다는 이유로 전두환의 진노를 사 예편당한 사건. [6] 정치권 차출 목적 외에도 충복 박희도를 총장으로 고려한 전두환의 염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7] 이 외에도 3군사령관에 고명승, 기무사령관에 최평욱, 수경사령관에 김진영을 임명하며 노골적으로 자신이 상왕으로 군림하려하는 태도를 내비쳤다. 노태우는 당연히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