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4 11:54:38

김백일



金白一
(1917~1951)

파일:김백일.jpg

1. 개요2. 생애3. 논란

1. 개요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1]훗날 국군으로서 흥남 철수에 공을 세운 인물.

2. 생애

1917년 만주 길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찬규였으나 해방 후 김백일로 개명했다. 1935년 보성고보를 나온 후, 1937년 봉천군관학교를 5기로 졸업하고 만주군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1938년 강재호, 신현준, 송석하, 마동악 등과 함께 간도특설대 창설 멤버로 참여하여 일제 패망시까지 복무하면서 항일무장세력을 진압하는 활동을 지휘했다.

해방 후 고향인 함경북도 명천군에 돌아왔으나 북한에서 인민군 창설에 참여하라는 제의를 받자 월남하여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국방경비대에 중위로 임관했다. 이 때 김백일로 개명했는데 세상이 다 붉게 물들어도 나는 청천백일하여 반공을 견지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1946년 군보급품인 C-레이션을 처분해 화려한 결혼식을 한 것 때문에 연대장에서 해임된 흑역사가 있다.

6.25 전쟁기에는 제1군단장을 맡았고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흥남 철수시 미 10군단 사령관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을 설득하여 약 10만 명의 피난민을 배에 태워 피난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1951년 항공기 사고로 사망하였고,[2] 육군 중장으로 추서되고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아들 김동명(전 함경남도 도지사)또한 육군사관학교를 진학하여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군(軍) 부문에 등재되었다.

3. 논란

  • 광주 서구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 앞의 도로명이 김백일의 이름을 딴 '백일로'라서 문제가 불거졌다. 백일로 외에도 백일초등학교, 백일 어린이공원, 백일산 등도 마찬가지였다. 서구 화정동의 '백일'이란 지명은 1950년대 이 지역에 만들어진 백일사격장을 유래로 하고 있다. 육군이 초대 육군보병학교장인 김백일의 이름을 따다 사격장 명칭으로 삼았고, 이후 1990년대 초반 '백일택지개발지구' 등의 이름이 붙은 도시 조성사업이 진행돼 지금껏 백일이란 지명이 이어진 것. 결국 도로명이 학생독립로로 변경되었고, 백일초등학교도 성진초등학교로 바뀌었다.
  • 경남 거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진 김백일 동상에 대해 철거 논란이 있다. 흥남 철수시의 공로를 기려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와 함북6·25전적기념사업회에서 세운 것인데 거제시와 시민단체에서 철거를 요구한 것이다. 결국 대법원에서 동상 존치 확정판결을 받았다. #
  • 김백일 장군 동상 옆 에 친일 단죄비가 세워졌다 한다. #

[1] 반대로 아버지 김영학은 독립운동가이다. [2] 사망당시 입었던 자켓과 군화가 육군사관학교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자켓에는 팔부분을 보면 응급처치 흔적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