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8 20:49:23

이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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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호 (李世鎬)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1407301656449481.jpg
1925년 ~ 2013년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45년 ~ 1979년
임관 육사 2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육군참모총장
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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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7월 26일 ~ 2013년 4월 28일

대한민국의 전 육군참모총장이다. 호는 산남(山南). 종교는 개신교.

1925년 경기도 개성군(현 개성특급시) 출생. 제37보병사단, 제28보병사단장, 제6군단, 제3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했다. 박정희의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막역한 친구 사이[1]로 알려지며 무려 4년간 참모총장으로 재임하여 현재까지도 최장 기간 재임한 참모총장이다. 1979년 참모총장에서 퇴임한 후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전두환에게는 본의 아니게 은인이 되었는데, 이세호는 자신이 예편한 이후 보안사령부에서 보안사령관 직위를 기존의 중장 계급에서 대장 계급으로 격상시키려 한다는 것을 들었다. 재임 시절 보안사령부의 권력 남용과 폐단을 인식한 이세호는 박정희에게 탄원서를 올려 권력 남용의 폐단을 막으려면 군 수사기관은 계급을 오히려 소장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탄원했다. 이세호의 탄원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보안사령관인 진종채 중장이 물러나고 그 후임에 전격적으로 소장인 전두환이 임명되게 된다.

본래 보안사령관은 중장 보직이며, 그 것도 군단장을 거친 이후 2차적으로 맡게 되는 보직인데 이제 막 사단장을 지낸 소장 전두환이 전격적으로 보안사령관에 오르게 된 것이다. [2]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는데 이 인사 후 9개월이 지나 전두환은 보안사령부를 기반으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다. 전혀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전두환의 정권 장악에 기여하게 된 셈.

이세호는 인터뷰에서 “그 후 갑자기 10·26이 터지면서 보안사령관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대통령까지 되는 것을 보면서, 참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내 충정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 탄원서가 전두환의 권력 만들기에 일조를 해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며 씁쓸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1980년 전두환과 신군부( 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자 구정권의 유력인사로서 부정축재 혐의로 몰려 재산을 강제 헌납당하였다.[3]

여담으로 병원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 노인 환자분에게 들으라 카더라 애기지만. 이분이 베트남 전쟁 주월사령관으로 있을때 그 밑 부하 사병들은 훈련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고 한다. 그냥 그렇다 카더라

참고로 참전용사들한테 인기는 그렇게 없다(...) 이세호 장군이 총사령관이셨을 당시 복무했던 참전용사들도 채명신장군을 "영원한 사령관"으로 받드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채명신 장군은 그리 큰 논란에 시달리지 않으셨고 참군인의 표본으로 남았지만 이세호 장군은 전투수당 발언등 여러 발언으로 참전회들을 가른 장본인이라...

또한 이 총장 시절인 1976년에 군 급양 역사상 종전의 1식 2찬에서 1식 3찬으로 바뀌었다.

[1] 이세호 총장이 올린 인사안은 단 한번을 제외하고 박정희에게 반려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단 한번이 바로 1976년 초 전두환이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임명된 것으로, 박정희가 이세호의 인사안을 반려하고 직접 지시하여 총애하던 전두환을 요직인 경호실 차장보로 임명했다. 이 인사를 계기로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아들'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2] 전두환은 술 한병을 사들고 뛰어와 이세호에게 '총장님 앞으로 잘 지도해 주십시오'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3] 사실 이세호 대장은 육군참모총장 재임시 하나회 출신 박희도와 악연이 있었다. 박희도가 준장계급으로 진급한 뒤 공수1 여단장에 처음 부임한 시기에 무장공비가 1여단 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복귀에 성공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때 이세호 대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박희도를 보직해임하고 전역시켜버리려 했지만, 박희도의 상관이자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이 이세호 대장에게 싹싹 빌어서 더이상 문책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박희도는 최고의 은인인 정병주 소장을 철저하게 배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