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2:42:50

마크 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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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 최고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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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General of the Army / Fleet Admiral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 더글러스 맥아더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헨리 아놀드A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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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윌리엄 리히 | 어니스트 킹 | 체스터 니미츠 | 윌리엄 홀시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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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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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 브래들리 | 조지 S. 패튼 | 칼 스파츠AAF | 조나단 웨인라이트 | 조지프 스틸웰 | 월터 크루거 | 조지 케니AAF | 코트니 호지스 | 마크 클라크 | 레너드 T. 게로 | 말린 크레이그 | 브레혼 소머벨 | 존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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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미처 | 토머스 킨케이드 |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 로열 잉거솔 | 홀랜드 스미스M | 알렉산더 밴더그리프트M | 리치먼드 K. 터너 | 제임스 O. 리처드슨 | 해럴드 스타크 | 헨리 켄트 휴이트 | 토머스 홀컴M | 조나스 H. 잉그램 | 러셀 R. 웨이시C 전
중장
Lieutenant general / Vice Admiral
육군
중장
레슬리 맥네어 | 존 리드 하지 | 앨버트 웨드마이어 | 매튜 B. 리지웨이 | 사이먼 B. 버크너 | 월튼 워커 | 로버트 리처드슨 | 루시안 트러스콧 | 호이트 반덴버그AAF | 루이스 H. 브레레턴AAF | 존 C. H. 리 | 윌리엄 H. 심슨 | 알렉산더 패치 | 제이콥 데버스 | 프랭크 맥스웰 앤드루스AAF| 로이드 프레덴달 | 밀러드 하먼AAF†| 델로스 에먼스AAF | 월터 베델 스미스 | 리처드 서덜랜드 | 조지 H. 브렛AAF | 트로이 H. 미들턴 | 아이라 이커AAF | 에니스 화이트헤드AAF | 조지 스트레이트마이어AAF | 존 드위트 | 휴 알로이시우스 드럼 | 해럴드 L. 조지AAF | 바니 M. 자일스AAF | 휴버트 R. 하먼AAF | 토머스 D. 화이트AAF | 네이선 트와이닝AAF | 웨이드 H. 헤이즐립 | 윌리스 D. 크리텐버거 | 제프리 키스 | 에드먼드 B. 그레고리 | 존 K. 캐넌AAF | 오스카 그리스월드 | 벤 리어 | 찰스 P. 홀 | 레이먼드 S. 매클레인 N 전
해군
중장
프랭크 잭 플레처 | 제시 올덴도르프 | 윌리스 리 | 존 매케인 시니어 | 존 H. 타워스 | 줄리안 C. 스미스M| 로이 가이거M | 앨런 H. 터니지M | 드위트 클린턴 램지 | 프레더릭 C. 셔먼 | 찰스 록우드 | 로버트 C. 기펜 | 로버트 곰리 | 루이스 덴펠드 | 찰스 M. 쿠크 주니어 | 아서 L. 브리스톨
소장
Major General / Rear Admiral
육군
소장
제임스 밴 플리트 | 모리스 로즈 | 커티스 르메이AAF | 맥스웰 테일러 | 레슬리 그로브스 | 윌리엄 F. 딘 | 클레어 셰놀트AAF·전 | 랄프 스미스 | 월터 쇼트 | J. 로턴 콜린스 | 로버트 올즈AAF | 리먼 렘니처 | 호바트 R. 게이 | 로스코 B. 우드러프 | 에드윈 F. 하딩 | 스태퍼드 리로이 어윈 | 윌리엄 J. 도너번 | 존 P. 루카스 | 에드윈 D. 패트릭| 클래런스 L. 팅커AAF† | 로버트 아이첼버거 | 찰스 윌로비 | 윌리엄 B. 킨 | 핸퍼드 맥나이더 | 폴 뉴가든 | 프랭크 캐들 마힌 | 폴 J. 뮐러 | 노먼 코타 | 어니스트 N. 하먼 | 찰스 H. 게르하르트 | 앤드루 데이비스 브루스 | 로버트 W. 해즈브룩 | 제임스 로턴 콜린스 | 존 B. 콜터 | 패트릭 헐리 | 프랭크 W. 밀번 | 앨버트 W. 월드론 | 클로비스 E. 바이어스 | 윌리엄 W. 이글스 | 윌리엄 F. 샤프 | 프랭클린 C. 시버트 | 아이작 D. 화이트 | 조지 데커 | 카터 매그루더 | 로버트 B. 매클러 | 클라크 L. 러프너 | 앤서니 맥콜리프 | 레이먼드 바턴 | 로버트 N. 영 | 윌리엄 M. 호그 | 제임스 L. 브래들리 | 클래런스 R. 휴브너 | 윌러드 G. 와이먼 | 루이스 A. 크레이그 | 찰스 H. 콜렛 | 에드워드 H. 브룩스 | 가이 V. 헨리 주니어 | 앨버트 E. 브라운 | 월터 M. 로버트슨 | 새뮤얼 E. 앤더슨 AAF | 도널드 윌슨 AAF | 테리 앨런 | 도일 히키 | 길버트 R. 쿡 | 제임스 E. 채니 | 데이비드 바 | 에드워드 알몬드 | 에드워드 P. 킹 | 조지 M. 파커 | 조지 F. 무어 | 토머스 B. 라킨 | 러셀 P. 하틀 | 프랭크 오드리스콜 헌터 AAF 전 | 헨리 오랜드 | 찰스 W. 라이더 | 아처 L. 러치 | 찰스 L. 볼트 | 알프레드 그루엔터 | 로리스 노스타드 | 아치볼드 빈센트 아널드 | 레이 바커 | 에드윈 P. 파커 주니어 | 해리 J. 맬로니 | 찰스 L. 스콧 | 브루스 매그루더 | 올랜도 워드 | 존 밀리킨 | 존 W. 레너드 | 제임스 개러시 오드 | 제이 L. 베네딕트 | 로버트 S. 바이틀러N | 레너드 F. 윙N | 존 달퀴스트 | 프레드 L. 워커 | 어니스트 J. 돌리 | 유진 M. 랜드럼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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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킴멜 | 아이작 C. 키드 | 노먼 스콧 | 대니얼 J. 캘러헌 | 해리 슈미트M | 윌리엄 H. P. 블랜디 | 존 W. 윌콕스 주니어 | 찰스 P. 세실 | 로버트 H. 잉글리시 | 그레이브스 B. 어스킨M| 돈 P. 문 | 클리프턴 스프레이그 | 시어도어 E. 챈들러| 리틀턴 월러 주니어M | 찰스 D. 바렛M | 아서 D. 스트러블 | 르무엘 셰퍼드M | 시어도어 스타크 윌킨슨 | 윌리엄 P. 업셔M | 패트릭 N. L. 벨린저 | 제임스 H. 도일 | 헨리 M. 뮬리닉스 | 포레스트 셔먼 | 윌리엄 H. 루퍼터스M | 칼튼 H. 라이트 | 말론 티스데일 | 클리프턴 B. 케이츠M | 칼 헨리 존스 | 프랜시스 W. 록웰 | C. 터너 조이 | 윌리엄 페치텔러 | 올리버 스미스 M | 새뮤얼 L. 하워드M | 아서 래드포드 | 로버트 웹스터 캐리 | 클로드 A. 존스 | 로버트 카니 | 러셀 S. 버키 | 토머스 L. 스프레이그 | 펠릭스 스텀프
준장
Brigadier general / Rear admiral (lower half)
육군
준장
마크 클라크 | 돈 프랫 | 케네스 N. 워커 | 프레더릭 워커 캐슬AAF† |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 3세AAF†| 제임스 돌턴 2세 | 스톤월 잭슨 | 가이 포트| 클로디어스 이즐리 | 허버트 다그AAF| 제임스 둘리틀AAF | 찰스 키런스 주니어 | 앨런 C. 맥브라이드 | 제임스 로이 앤더슨AAF | 브라이언트 무어 | 시어도어 루스벨트 주니어 | 제임스 에드워드 워튼 | 로렌스 B. 카이저 | 노먼 슈워츠코프 시니어 | 리 S. 게로 | 찰스 H. 바스 주니어 | 하워드 녹스 래미AAF† | 헤이우드 핸셀AAF | 로버트 싱크 | 조지 A. 테일러 | 존 H. 처치 | 찰스 D. 파머 | 윌리스턴 B. 파머 | 윌리엄 H. 윌버 | 에드윈 L. 시버트 | 해럴드 휴스턴 조지AAF† | 에밋 오도넬 주니어 AAF | 윌리엄 켈리 해리슨 주니어 | 앨버트 M. 존스 | 프랜시스 윌리엄 패럴 | 윌리엄 E. 브라우어 | 루서 R. 스티븐스 | 클리퍼드 블루멀 | 클린턴 A. 피어스 | 루이스 C. 비비 | 브래드퍼드 G. 시노웨스 | 찰스 C. 드레이크 | 칼 H. 실즈 | 제임스 R. N. 위버 | 케네스 로열 | 벤저민 O. 데이비스 시니어 | 러셀 A. 윌슨AAF 전 † | 넬슨 메이시 워커 | 에드먼드 윌슨 서비전 † | 데이비스 던바 그레이브스AAF 전 † | 클라이드 D. 에들먼 | 브루스 C. 클라크 | 제이 W. 매켈비 | 아서 트루도 | 구스타프 J. 브라운 | 에이사 N. 던컨AAF † | 칼라일 H. 워시AAF †
해군
준장
알레이 버크 | 해리 W. 힐 | 로렌스 A. 애버크롬비 | 메리트 에드슨M | 레이 A. 로빈슨M | 제임스 알렉산더 로건
AAF:육군 항공대, M: 해병대, N: 주방위군 C: 해안경비대
※ 문서가 있는 인물만 종전 당시 계급으로 서술
※ 윗 첨자 : 전사
※ 윗 첨자 : 전시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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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극무공훈장 약장.png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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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극무공훈장 부장.png
||<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373a3c,#ddd><width=20%> 1950
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원수 ||<width=20%> 1951
이근석
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백선엽
육군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정일권
육군대장 ||<width=20%> 1951
심일
육군소령 ||
1951
이명수
육군일등상사
1951
김용식
육군일병
1951
홍재근
육군일병
1951
홍재근
육군일병
1951
김용배
육군준장
1951
박노규
육군준장
1951
김백일
육군중장
1951
김홍일
육군중장
1951
함준호
육군중장
1951 1953중복수훈
손원일
해군중장
1951
최용남
해병소장
1951
김성은
해병중장
1951 1952중복수훈
김정렬
공군중장
1952
이형근
육군대장
1951
권동찬
육군준장
1952
김종오
육군중장
1952 1953중복수훈
신현준
해병중장
1953
장덕창
공군중장
1953
최용덕
공군중장
1953
마크 클라크
미 육군대장
1953
김교수
육군대위
1953
김한준
육군대위
1953
김용배
육군대장
1953
민기식
육군대장
1953
임충식
육군대장
1953
한신
육군대장
1953
김점곤
육군소장
1953
이성가
육군소장
1953
이용문
육군소장
1953 1954중복수훈
임부택
육군소장
1953 1954중복수훈
강문봉
육군중장
1953
김동빈
육군중장
1953
김종갑
육군중장
1953
백인엽
육군중장
1953 1954중복수훈
송요찬
육군중장
1953
유재흥
육군중장
1953
최영희
육군중장
1953
함병선
육군중장
1953
최치환
총경
1954
김만술
육군대위
1954
허봉익
육군대위
1954
김경진
육군소령
1954
김웅수
육군소장
1954
송석하
육군소장
1954
엄홍섭
육군소장
1954
임선하
육군소장
1954
백재덕
육군이등상사
1954
최득수
육군이등상사
1954
김옥상
육군일병
1954
조재미
육군준장
1954
안낙규
육군중사
1954
박병권
육군중장
1954
이응준
육군중장
1954
이준식
육군중장
1954
장도영
육군중장
1954
최석
육군중장
1954
최창언
육군중장
1954
박옥규
해군중장
1954
김석범
해병중장
1955
김창룡
육군소장
1955
정긍모
해군중장
1956
서정학
이사관(치안국장)
1960
미군무명용사
-
1961
김금성
공군준장
1961
국군무명용사
-
1964
박정희
대통령
1966
이종세
육군상사
1966
강재구
육군소령
1966
이인호
해병소령
1967
송서규
육군대령
1967
채명신
육군중장
1967
지덕칠
해군중사
1967
정경진
해병대위
1967
신원배
해병소위
1968
최규식
경무관
1968
이익수
육군준장
1968
최범섭
육군중령
1970
이세호
육군중장
1972
이무표
육군대위
1972
임동춘
육군대위
1975
찰스 B. 스미스
미육군중령
1980
전두환(취소)
육군대장
2002
장철부
육군중령
2006
김영옥
미 육군대령
2011
조달진
육군소위
2015
윌리엄 스피크먼
영 육군병장
2021
에밀 카폰
미 육군대위
2023
랄프 퍼켓
미 육군대령
}}}}}}}}} ||
제3대 연합국 최고사령관
<colbgcolor=#4b92db><colcolor=#fff> 제3대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Mark Clark
파일:Mark_Clark.jpg
본명 마크 웨인 클라크
Mark Wayne Clark
출생 1896년 5월 1일
뉴욕주 사케츠 하버
사망 1984년 4월 17일 (향년 87세)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묘소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시타델
재임기간 제3대 연합국 최고 사령관, 유엔군사령관
1952년 5월 12일 ~ 1953년 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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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b92db><colcolor=#fff> 종교 성공회
복무 미합중국 육군
1917년 ~ 1953년
최종 계급 대장 (미합중국 육군)
주요 보직 미 제5군 사령관
영-미 제15군집단 사령관
유엔군사령관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주요 서훈 수훈십자장 }}}}}}}}}

1. 개요2. 생애3. 진급 이력4. 저서5. 여담

[clearfix]

1. 개요

미 육군의 장군.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에 참전했다.

2. 생애

아버지가 육군 장교여서 아버지의 영향으로 군인을 동경하게 되었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생도 시절 그리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강이 안 좋아서 자주 쉬었고, 음식물 밀반입을 자주 해서 별명이 '밀수꾼'이었다. 졸업 성적은 139명 중 110등으로 최하위권이었지만,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장교들이 매우 부족해졌다. 따라서 사관학교들은 졸업식을 조금 앞당겨 장교를 전장으로 보냈으며, 이로 인해 임관 후 한 달 만에 중위, 석 달 만에 대위로 고속진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급 후 얼마 되지 않아 독일군의 포격으로 큰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일선지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이후로 후방 참모직을 맡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전간기에는 주로 참모직과 신병교육직에 복무했다. 이 기간에는 인사가 적체되어 대위에서 소령까지 진급하는 데에는 15년이 걸렸다. 하지만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되자 중령으로 진급하고 레슬리 맥네어의 참모가 되어 군대를 증강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진주만 공습이 시작될 무렵에는 다시 두계급을 바로 진급하여 장군으로 승진하며 미 육군의 참모장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장 계급으로 이탈리아 전선을 지휘했는데 사실 처음부터 해당 전선을 지휘했던 게 아니라 도중에 아이젠하워 버나드 로 몽고메리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옮겨가자 임시중장으로 진급하며 대타로 연합군본부 제15집단군 지휘를 이어가게 되었다.

비록 연합군에 있어 유럽전선이 태평양보다는 우선 순위가 높았지만, 처칠은 유럽본토 상륙을 극단적으로 꺼렸으며, 스탈린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태평양에서 써야 할 물자들이 대서양으로 간다고 분개하는 미군 제독들에 의해 이탈리아 전선은 한때 몬테카시노 전투와 같은 격전을 치르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이탈리아 전선은 우선순위가 낮아 적극적인 작전이 벌어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살레르노 상륙작전은, 상륙자체는 대성공해 이탈리아의 항복까지 받아놓고도 이후 우물쭈물하다 주도권을 독일에 내주는 바람에 무솔리니의 몰락을 1년 이상 늦춰버렸고, 시간을 번 독일군이 아펜니노산맥 일대에 강력한 방어선을 치는 바람에 몬테카시노 등지에서 엄청난 피해를 냈는데다가, 자신들이 로마에 가장 먼저 입성하겠다는 목적으로 후퇴하는 독일군을 방치해서 그들이 다시 북이탈리아에 방어선을 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클라크는 이를 자신의 일기에 '로마로의 경주(race to Rome)'라고 기록했는데, 이는 이것이 고의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이로 인해 연합국 내 수뇌부조차 가차없는 비판을 가하는 등 연합군 내에서 평판은 매우 좋지 않은 편이었다. 특히 그의 선배였다가 부하로 들어가게 된 패튼은 그를 매우 싫어했다고.[1] 하지만 처칠이나 아이젠하워[2]는 그를 신뢰했고, 특히 처칠은 그를 '미국 독수리'라고 불렀다. 그는 1945년 3월 부로 미국 육군 대장에 임명되어 맥아더와 함께 미국 최연소 대장이 되었다.[3] 이후 이탈리아 주둔군 사령관, 오스트리아 점령군 사령관등을 지냈고, 종전후 미 6군 사령관등을 역임했다. 이때 몬테카지노 전투 초반에 라피도강에서 벌어진 미군의 막대한 손실[4]에 대한 클라크의 책임을 묻는 조사가 진행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가장 거대한 실수 중 하나'이며, '(클라크를 비롯한 지휘부가) 작전이 실패할 것을 모두 알았면서도 이를 진행했다'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클라크에게 직접 처벌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후에 6.25 전쟁에서 1952년 8월 15일 나토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매튜 B. 리지웨이를 대신해 3대 유엔군 총사령관을 맡아 전선을 지휘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당시 유엔군 대표로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다만 클라크 또한 트루먼 행정부와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휴전협정을 서두르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였다. 클라크는 휴전협정 막바지에 J. 로턴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에게 대규모 공세를 위해 원산 지역에 기습 상륙작전을 펴겠다고 건의하였으나 거부당했다. 또한 52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의 방한 당시, 서울 동숭동 미8군 사령부에서 재차 상륙 작전 승인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휴전협정에 조인하였다.

휴전협정 직후에 그는 군에서 퇴역했고, 1954년부터 1965년까지 사우스캐롤라이나 군사대학, 통칭 시타델의 총장을 역임하다가 모든 공직생활에서 은퇴했고, 1984년 찰스턴에서 사망한 후 시타델에 묻혔다.

3. 진급 이력

  • 1941년 8월 4일: 전시 준장
  • 1942년 4월 17일: 전시 소장
  • 1942년 11월 11일: 전시 중장
  • 1943년 9월 14일: 정규군 준장
  • 1944년 10월 7일: 정규군 소장
  • 1945년 3월 10일: 전시 대장
  • 1953년 10월 31일: 대장 (은퇴 계급)

4. 저서

  •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From the Danube to the Yalu)

5. 여담

  • 6.25 전쟁 때 휴전 회담장에 가기 직전 클라크는 이승만을 예방했는데 이승만이 견장에 달린 별 4개 계급장을 보면서 "이건 적에게 항복하라고 달아준 거냐?"며 비꼬았다고 한다.[5]
  • 자신의 저서인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에서 이승만에 대해 아시아 반공국가들의 지도자이며,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극동지역에 존엄과 자존심을 가져다 준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 어머니는 유태인인데 본인은 성공회 신자면서 프리메이슨 단원이라는 다소 묘한 종교관을 가졌다. 트루먼 대통령은 그래도 성공회가 카톨릭과 가깝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교황청 주재대사로 지명했으나, 라피도강 사건으로 인한 여론악화와 개신교 단체들의 반대로 인해 지명을 철회했다고 한다.


[1] 패튼은 겉으로는 그와 잘 지내는 척 했지만, 뒤에서는 클라크를 '겉만 번지르르하다'라거나, ' 스컹크 같은 놈이라, 마찰을 일으키면 나한테 고약한 오줌을 쌀까봐 잘 대해주는 척하는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험담을 했다. [2] 사실 아이젠하워는 사관학교 2년 선배로 생도시절부터 그와 절친한 관계였다. [3] 그리고 90살 가까이 장수하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대장 중 마지막 생존자(이자 사망자)가 되었다. [4] 1944년 1월 20일부터 22일까지 몬테카지노 부근에서 벌어진 미군의 도하작전으로, 첫날부터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독일군의 포격에 받고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에도 정면으로 공격을 고집하다가 대패했는데, 독일군이 100명 미만의 전사자와 200명 미만의 부상자를 낸 것에 비해 미군은 1000명 이상이 사망,실종,포로가 되었고, 다른 1000명 이상은 부상을 당했다. [5] 이승만은 휴전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