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에드슨 챈들러 Theodore Edson Chandler |
|
|
|
출생 | 1894년 12월 26일 |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 |
사망 | 1943년 7월 21일 (향년 61세) |
필리핀 제2공화국 루손섬 링가옌만 | |
복무 | 미합중국 해군 |
최종 계급 | 미국 해군 소장 |
복무 기간 | 1915~1945 |
학력 | 미국해군사관학교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메릴랜드주 애너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뉴햄프셔주 상원의원이자 해군본부 비서실장이였던 윌리엄 E. 챈들러의 손자였다. 해군사관학교 생도시절 라크로스, 농구로 학교를 대표하는 래터맨에 선정되었다. 1915년 소위로 임관했고 전함 플로리다, 뉴햄프셔에서 복무하다가 1917년 구축함 USS 코너를 지휘했다. 1차대전 당시 보호선단으로 대서양에서 U보트와 맞섰다.전후 자신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구축함의 함장이 되었으며 계속 군생활을 계속하다가 1926년 소령으로 진급후 경순양함장이 되었고 1930년 육군산업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작전부에서 일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시 대령이였으며 경순양함 오마하를 이끌고 대서양에서 독일군의 봉쇄 돌파선을 나포했고 남대서양에서 U보트, 봉쇄 돌파선과 전투를 치렀다.
1944년 태평양 전선으로 이동했고 제시 올덴도르프가 이끄는 제77기동부대에 배치되어 제4순양함전대 사령관으로 기함인 중순양함 USS 루이빌에 승선했다. 필리핀 탈환전의 일환인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했다. 특히 필리핀의 주요 섬인 루손섬인근의 링가옌만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1945년 1월 5일 16대의 일본 항공기가 카미카제로 들어오자 기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1대가 함교에 적중해 화재가 발생했고 화상을 입었다. 이후 부상당한 몸으로 수병들과 함께 소방 호스를 직접 들고 화재진압을 하고, 계급과 상관없이 부상자 치료 또한, 수병들과 함께 기다리다가, 다음날 부상악화로 인해 전사했다. 챈들러 소장은 사후 은성훈장이 수여 되었으며, 기어링급 구축함, 키드급 구축함에 챈들러 소장의 이름이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