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밀리킨 John Millik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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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8년 1월 7일 |
미국 인디애나주 댄빌 | |
사망 | 1970년 11월 6일 (향년 82세) |
미국 워싱턴 D.C.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소장 |
복무 기간 | 1910~1948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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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미주리주 메이컨에서 태어났고 1910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1] 제5기병연대에서 복무했으며 1918년 미국 원정군 소속 참모진에 속해 있었으며 전시계급 중령까지 진급했고 육군수훈훈장을 받았다.전후 원 계급 중위로 환원되었으며 1920년 대위로 진급했고 기병학교 OAC를 수료했다. 이후 지휘참모학교,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했으며 1939년 대령으로 진급하고 제6기병연대장이 되었다. 1940년 전시계급 준장으로 진급해 제1기병여단장으로 영전했다. 1년 뒤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제2기병사단장이 되어 루이지애나 기동훈련 당시 제2군 제1기갑군단 소속으로 모의훈련에 참가했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자 제33보병사단장으로 임명되었고 태평양 전선으로 가기위해 하와이에서 훈련했다. 이후 레슬리 맥네어의 명령으로 제3군단장이 되었고 매사추세츠에서 훈련을 마치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했다. 조지 S. 패튼의 제3군예하가 되어 프랑스 전역에서 벨기에 방향인 오드프랑스쪽으로 진군했다.
벌지 전투당시 제3군 소속으로 바스토뉴를 구원하러 갔으며 바스토뉴에 당도해 예하 기갑사단인 제4기갑사단이 선봉에 서 독일군 기갑부대의 측면을 공격해 독일군의 공세를 무너뜨렸고 바스토뉴를 구원하는데 성공했다. 전투 직후에는 코트니 호지스 휘하의 제1군으로 이동하였다.
레마겐 전투에서 존 W. 레너드가 이끄는 제9기갑사단에 루덴도르프 다리로 진격할 것을 지시하고, 다리가 무너지지 않자 잽싸게 제9보병사단 예하의 47연대를 기계화시켜 다리를 건너게 하고 7기갑사단으로 하여금 백업하게 하여, 라마겐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지시불이행과 다리 양쪽에 대한 병력배치 부실로 3군단장에서 해임되었고 후임으로는 제임스 밴 플리트가 부임했다. 그러나 전투에서 보인 차분한 자신감과 영웅적인 숙고를 높이 사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그 후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제13기갑사단장에 부임하고 종전을 맞이했다.
종전 후 원 계급인 대령으로 돌아갔으나 계속 진급해 1948년 소장으로 퇴역했다. 1970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