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6 12:03:28

존 W. 윌콕스 주니어

파일:us_army_ww2.png 제2차 세계 대전 미군 장성급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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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W. 윌콕스 주니어
John W. Wilcox Jr.
파일:1000141563.jpg
본명 존 월터 윌콕스 주니어
John Walter Wilcox Jr.
출생 1882년 3월 22일
미국 조지아주 미드웨이
사망 1942년 3월 27일 (향년 60세)
북대서양
복무 미합중국 해군
최종 계급 미국 해군 소장
복무 기간 1905년 ~ 1942년
학력 그리셤 고등학교
미국해군사관학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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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군인.

2. 생애

1882년 3월 22일 조지아주 미드웨이에서 태어났으며 그리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추천으로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905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1차 대전 이전 중위로 진급했다. 1917년 12월 10일 제1차 세계대전 호송 호위 및 대서양에서 대잠 임무를 위해 취역한 건보트 USS 야코나의 첫 번째 지휘관으로 독일의 U보트와 전투를 치렀다.

미국 제2대서양함대 소속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해군십자장을 받았다. 1919년 3월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전후 유럽에서 미국 군인을 수송하는 데 참가했고 병력수송함 USS 본슈토이벤 소속이었다.

전후 구축함에서 주로 복무했고 1931년부터 1934년까지 해군사관학교의 체육전담 훈육관으로 복무했다. 1939년 5월 27일부터 1939년 6월 30일까지, 윌콕스는 대령로 재직하는 동안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에 있는 해군전쟁대학의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총장 찰스 P. 스나이더 소장이 퇴역후 차기 총장이 부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준장으로 진급한 후 1940년 8월 3일 파나마 운하에서 복무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소장으로 진급해 대서양함대의 전함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버지니아의 요크강에서 자신의 기함인 전함 USS 워싱턴에 탑승하여 제6전함전대의 지휘도 맡았다. 1942년 3월까지 미국 동부 해안과 멕시코만에서 모의 훈련을 실시했다.

1942년 3월 25일, 전함 USS워싱턴, 항공모함 USS 와스프, 중순양함 USS 터스컬루사, USS 위치타, 구축함 8척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39의 사령관이 되었다. 오크니 제도의 영국 함대에 합류한 후 북극을 통해 소련으로 향하는 수송전단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함대를 엄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942년 3월 26일 메인주 캐스코만을 출발하여 스캐파플로우로 향했다.

항해 둘째 날인 1942년 3월 27일 아침, 윌콕스는 방한장비도 입지 않은 채 갑판에 나왔고, 태스크포스 39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북대서양의 추운 날씨 속에서 세이블 아일랜드 앞바다의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실종되기 전에 승조원들과 잠깐 대화를 나누고 행방불명되었다.

10시 31분에 워싱턴의 승무원이 한 남자가 배 밖으로 나왔다고 보고했고, 그 직후 터스컬루사함에선는 한 남자가 물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발견했지만 멈추지 않고 항해를 지속했다. 인원 보고를 위해 담당 중위가 사령관인 윌콕스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보이지 않자 실종자가 윌콕스임을 파악했고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워싱턴의 승조원들을 조사했으나 본 적이 없다고 밝혔고

항공모함 USS 와스프는 수색을 지원하기 위해 4대의 빈디케이터를 보냈으며, 그 중 한 대는 착함을 시도하던 중 와스프의 후미에 추락하여 2명의 승무원이 사망했다. 윌콕스가 바다에 빠진 지 약 80분 뒤 구축함 USS 리버모어는 그의 시신이 거친 바다에 엎드려 떠 있는 것을 목격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쓸려나갔다. 결국 수색을 중단하고 목적지로의 항해를 재개했다.

사인이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윌콕스가 실종된 후 로버트 C. 기핀이 후임 태스크포스 사령관으로 임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