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1 12:03:20

로이드 프레덴달

로이드 프레덴달
Lloyd Fredendall
파일:1000140395.jpg
본명 로이드 랠스턴 프레덴달
Lloyd Ralston Fredendall
출생 1883년 12월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샤이엔
사망 1963년 10월 4일 (향년 79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중장
복무 기간 1907~1946
학력 미국육군사관학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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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와이오밍주 샤이엔에 있는 군사기지 포트 D. A. 러셀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필리핀이 초임지였고 이후 여러 보직에서 복무하다가 1차대전 당시 프랑스 후방에서 교육장교로 복무하며 좋은 평을 받아 중령으로 진급했다.

전후 교육, 참모직에서 복무하며 육군보병학교 훈육관을 거쳐 지휘참모학교,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했으며 1939년 준장으로 진급했고 제5보병사단에서 복무했다. 소장으로 진급후 제4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다.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이 2차대전에 뛰어들자 조지 C. 마셜의 추천으로 중장으로 진급하자마자 제2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 횃불 작전당시 오랑에 상륙해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상륙작전은 성공했다.

그러나 튀니지 전투 중 시디 부지드, 카세린에서 미군들이 실전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롬멜에 의해 패배를 당했다.

공병대에게 최전선에서 수백 마일에 떨어진 곳에 거대한 벙커를 건설하라는 등 무모한 명령들을 암호로 남발해 혼란을 부추겼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부대를 넓게 분산시켰으며, 시디부지드 전투 당시 사단장을 무시한 채 지형을 관찰하는 대신 직접 방어선에 명령을 했고, 고지의 섬에 부대들을 배치하는 바람에 전투 중 고립되었으며 180여대에 달하는 전차 및 대전차자주포 손실과 함께 1만명 가까이 되는 사상자가 발생하며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 전투는 유럽 전선에서 미군이 맛본 치욕적인 신고식이 되었다. 영국군 사령관들은 2차대전 내내 미군을 경험없는 군대로 낮춰보게 되었다. 3월 5일 아이젠하워는 제2군단 본부를 방문해  오마 브래들리와 의논 했다. 아이젠하워는 "이런 명령은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질문했고, 브래들리 준장은 "매우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답변했다. 결국 수뇌부의 신뢰를 잃어버라고 결국 3월 6일 프레덴달을 제2군단장직에서 경질했다. 후임은  조지 S. 패튼이었다.

이후 후방에서 부대훈련을 담당하다가 1946년 퇴역했고 1963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