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P. 새빌 Gordon P. Savil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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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고든 필립 새빌 Gordon Philip Saville |
출생 | 1902년 9월 14일 |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 | |
사망 | 1984년 1월 31일 (향년 81세) |
미국 텍사스주 래클랜드 공군기지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미합중국 공군 |
최종 계급 | 소장 |
복무 기간 | 1923 ~1951 |
학력 |
워싱턴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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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태어났다. 형은 군인이 되기위해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으며 본인도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려했으나 하늘을 날고싶은 꿈이 간절했고 워싱턴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항공단에 입대했다. 조종과정을 거치고 여러 비행장에서 경력을 쌓았다.항공전술학교의 교관으로 복무하던 도중 해럴드 L. 조지[1]를 중심으로 한 폭격기 마피아와 대척점에 있던 전투기파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였으며 제공권확보를 위해 신형 전투기를 개발해야한다고 주장했다.[2] 그래서 전투기를 추격기, 폭격기를 추격하는 요격기의 개념으로 양분화했다.
이에 항공공학자, 테스트파일럿이던 벤저민 S. 켈시, 벨사와 함께 신형 전투기 개발을 시작해 P-39 에어라코브라를 만들었다. 또한 P-38 라이트닝의 개발에도 관여했다.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하고 전쟁이 발발하자 항공방위사령부에 속해 방공쪽을 담당했다. 이후 파나마에서 복무하다가 해군과 함께 신형 전투기를 고민했으며 항공전술연구관 자격으로 전술연구에 힘썼다.
1944년 북아프리카 전선 지중해공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임명되어 루마니아를 폭격할 것을 주장했고 타이델웨이브 작전을 시행에 옮겼으나 추축국의 방공망으로 인해 177대 중 53대가 격추당하고 310명 전사, 190명이 포로로 잡히며 실패로 끝났다.
이후 노르망디, 용기병 작전 등 프랑스 전역에 참가했다가 귀국해 제3전술항공사령관, 항공수송부사령관을 지내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종전 후 브라질에서 복무했고 뮤어 S. 페어차일드가 공군참모차장에 임명되었고 페어차일드와 함께 1949년 전투기에 미사일을 달 것을 어필했으며 그 결과가 F-86 세이버이다.
1951년 퇴역했고 공군 자문으로 일하다가 1984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