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5 23:23:09

제7기동군단

대한민국 육군 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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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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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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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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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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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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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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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기동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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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군단

제7기동군단
第7機動軍團
7th Maneuver Cor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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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바탕 정열적인 젊음과 패기
하단청색 영구한 평화
표지상단의 적색 정열과 복종심
7각 제7군단의 표시
상단의 뾰족한 끝 북진의 의지
1. 개요2. 상세3. 예하 부대
3.1. 기계화보병사단3.2. 군단 직할부대
4. 지원 부대5. 출신 인물
5.1. 7군단장 출신 인물5.2. 7군단 출신 인물
6. 군단가7. 여담

1. 개요



대한민국 국군에 존재하는 유일한 기동군단[1]으로서 1980년대 초반에 창설된 부대이다. 베트남전 이후 72년 수도사단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이후 제20사단을 제20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하고 7군단을 본격적인 기동 군단으로 편성하게 된다. 예하에 전차 기계화보병, 그리고 자주포로 구성된 강력한 기계화보병 사단만을 두고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강의 군단이자 최상급 기동전 제대다. 진급 힘든 기갑 장교의 희망

1969년 1월 18일 現 제7기동군단의 전신(前身)인 동해안경비사령부로 처음 창설되어, 같은 달 31일 강원도 삼척시로 이동하여 강원도 동해안부터 경상북도 일부지역까지 방어하였다. 당시 동해안경비사령관은 한직이었다고 한다.[2] 동해안경비사령부는 1982년 8월 개편되어 7군단이 되었고 이듬해인 1983년 임무가 바뀌어 공격에만 주력하는 기동군단으로 선택되었다. 사령부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다. 이후 2016년 12월 1일을 기해 제8기계화보병사단, 제11기계화보병사단 그리고 제26기계화보병사단[3]을 배속받아 타 군단들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까지 자랑하게 되었다. 이는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해당 사단들을 해체하여 여러 개의 기갑 여단으로 개편하려는 계획에서 통제의 용이성을 위해 임시 배속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2. 상세

유사시 북한군이 남침하면 주둔지에서 방어하며 조금씩 물러나 전력을 보충받는 여타 군단들과는 달리, 주둔지를 떠나 북쪽으로 진격하는 유일한 군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포병여단 예하 대대는 다른 군단 지역 넘어가서 훈련하고 돌아온다. 때문에 하고 있는 훈련들도 대부분 기동전에 관한 것이며, 방어작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상급부대 지휘소연습에 참가할 시에는 방어훈련간에는 할 일이 없어서 상급지휘관에게 보고할 것이 없기 때문에 온갖 잡다한 것을 상황보고에 끼워넣느라 고생한다. 물론 공격훈련 시에는 그야말로 단독주연으로, 혼자서 다 해내야 하기 때문에 7군단장은 매우 요직이며, 군단장 역임은 대장진급의 직진신호이기도 하다. 사실상 오로지 공격뿐인 부대. 아예 경례구호부터가 북진이다. 방어가 주 임무인 다른 군단과는 달리 사령부 시설에 그다지 투자도 하지 않는다. 그 흔한 극장 하나 없으며[4] 사령부 건물도 다른 군단과는 구조도 다르다. 다른 군단 사령부 건물은 죄다 지하에 있어서 밖에서는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반면 제7기동군단 사령부만 유일하게 지상에 올라와 있다. 전쟁나면 버리는 건물이라 시설에 별로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아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군단급 부대 중 전투력이 최강인 부대이며 인민해방군 병단 한 두개쯤은 이 부대 하나로 정리시켜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지닌 부대이다. 기동군단의 특성상 예하 사단이 모두 기계화보병사단밖에 없으며 그 기계화보병사단들 조차 엄청나게 중무장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이 보유한 전차의 과반수가 이 부대 하나에 몰빵되어 있다. 실제로 부대 단위만 군단이지 전투력으로 따지면 야전군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하다.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부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사항 중 하나는 이 군단의 보급 상황이다. 공격전을 수행하는 기동군단의 특성상 우수한 기계화 장비가 필요하기에, 기계화 장비의 보급이 가장 잘 되고 있는 부대이다. 예하의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K-1A1 전차, K-21 보병전투차, K-2 흑표 전차를 전군에서 가장 먼저 수령한 부대이며, 개편 이전까지 다른 한 부대였던 수도기계화보병사단도 차순위로 해당 장비들을 수령하여 국군 중 가장 빠르게 신형 기계화 무기체계들로 무장한 부대가 되었다. 더구나 K-MLRS, K-9 같은 기계화/기동화 포병장비들 또한 이 군단의 예하 포병제대들에 우선 배치되어 있어 육군 군단 중 가장 화력이 강한 군단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개편 이후 기계화보병사단을 더 배속받아 총 5개 사단 체제로 확대됨에 따라, 다른 일반 군단들을 압도하는 전력을 갖게 되었다. 다만 이는 지상군 개편에 따른 한시적인 편제일 뿐이다.

예전에는 전략무기인 현무 탄도 미사일까지 운용한 적이 있다. 7군단 예하 제7포병여단에는 '제1000대대'라고 하여 현무 운용을 담당하는 부대가 있었다. 유도탄사령부를 창설한 뒤 현무의 운용을 유도탄사령부에서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다른 군단과 달리 제대로 된 관할 위수지역이 없다고 볼 수 있는데, 7군단 지역이 수도군단 지역과 6군단 지역이 겹치기 때문.

평시 담당구역이 없기 때문에 각종 훈련 참가,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위한 연구 배당 등이 매우 잦은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다른 군단은 몇 년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오는 '군단급 FTX 연습'에 매년 참가한다. 홀수년에는 통제부대, 짝수년에는 실제 훈련부대로 참가하는데, 통제부대든 훈련부대든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특히 사령부 작전과의 업무량이 어마어마한데, 실제로 이쪽 간부들의 경우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는데도 몇 달간 못 보고 사는 경우가 빈번하다. 작전처 간부와 행정병이 함께 늙어가게 된다. 행정병들은 매일 야근을 불려가서 야간점호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며, 작전처나 정보처 내무실들은 전원이 사령부에서 일하느라 점호시간에 아예 한 명도 남아 있지를 않아서 내무실 문을 잠궈놓기 일쑤다. 특히 훈련과 각종 보고가 피크를 이루는 3월-6월경에는 야간점호나 아침점호를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과 후 본부대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방송은 누군가를 야근으로 부르는 전화가 왔다는 방송이며, 장교들의 인사이동이 있는 늦가을을 제외하면 일 년 내내 바쁘다.

사령부의 주요장교들은 소령급인데 소령에서 중령으로 올라서려면 그야말로 피와 살을 깎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 특히 육군 주요보직은 보병병과가 차지하기 때문에 기갑병과는 진급이 쉽지 않은데 7군단사령부는 그나마 기갑 병과 간부들이 진급하기 쉬운 곳이다. 가끔은 한 처부에서 중령 진급자가 두 명이나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만큼 요직을 맡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실제로 소령들끼리 서로 작전장교를 맡겠다고 드잡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부대 안에 야생화된 흑염소 무리가 산다. (최소한 이준구 중장 이전의) 군단장이 사적으로 기르던 것을 방사했더니 야생화 되었다고 전해진다. 여름에는 낮은 지대-화학대- 쪽으로 내려가고, 겨울에는 높은 지대-통신단- 쪽으로 이동하며 사는 듯하다. 닭도 방사해서 키우고 있다. 토끼도 있다.[5]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에 따라 곧 제30기계화보병사단을 배속 받아 예하에 3개 기계화보병사단을 편재할 예정이었다. # [6] 그러나 8사단, 11사단, 26사단이 2016년 12월 1일부로 7군단 예하에 배속되었다. 당분간 군단 전투력만은 야전군 수준인 군단이 되어버렸다(...).

2018년 11월 30일 제26기계화보병사단 제8기계화보병사단으로 흡수합병되어 해체되었다.

3. 예하 부대

3.1. 기계화보병사단

3.2. 군단 직할부대

  • 제7포병여단
  • 제7공병여단 - 제108공병대대, 제311도하대대, 제315도하대대가 있다. 2013년에 진짜사나이에서 촬영된 적이 있다. 7공병여단 청룡대대#1 7공병여단 청룡대대#2
  • 본부근무대
  • 제107정보통신단 - 제771통신대대와 운용대대(제7107통신대대)가 있다.[8]
  • 제517방공대대
  • 제7강습대대 - 현재 대한민국 전군유일의 공중강습부대이며 94년 개편 이전에는 707 특공공정연대였다. 현재는 특공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 않으나 병과는 엄연히 특공이다. UH-60(가끔 CH-47도 탄다)을 이용한 공중강습을 통해 기계화사단의 진격로를 확보하는 기동보병의 임무에 특화되어 있다. 이를 이용한 다른 주임무중 하나가 마찬가지로 장호원읍에 있는 국군교도소 탈옥수 추적임무다. 국군교도소에서 탈옥하면 헬기가 추격한다. 명칭이 제707특공공정연대였던 시절엔, 군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름이 비슷한 707특임대를 나온 걸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707특임대는 특전사 예하의 대대다. 제7강습대대의 경우 군기가 빡센 편으로 그 영향 덕분인지 낭설이 있다.[9] 실상은 7군단이 기계화군단으로 재편됨에 따라 타군단과는 다른 현대화된 기동군단의 임무에 맞게 기동성을 살린 헬기강습을 전문적으로 하는 특공부대의 창설이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기존의 707특공공정연대 중 1대대만 소규모 정예로 강습대대로 개편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로 7군단 사령부 실무장교 중 보병/정보 병과 소령이 중령으로 진급한 인원 중에서(주로 군단 작전장교) 이 대대의 대대장으로 많이 내려온다. 그리고 7강습대 출신 어느 한 예비역의 노력으로 2011년부터 경찰특공대 응시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북진강습 카페
  • 제17화생방대대
  • 헌병대
  • 통합의무실
  • 17항공단

4. 지원 부대

5. 출신 인물

5.1. 7군단장 출신 인물

7군단장을 역임한 인물은 거의 대부분 대장으로 진급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1년 취임한 23대 군단장 김장수 중장 이래 2013년 지휘관인 30대 박찬주 중장까지 군단장을 역임한 총 8명 중 대장까지 진급한 인물은 4명이다. 즉 7군단장을 역임했다고 해서 무조건 대장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7군단장은 육군에서도 손꼽는 요직이다.[10] 그래서 여기로 들어오는 사람은 중장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유능한 사람이며, 7군단장 대다수가 대장으로 승급했기 때문에, 7군단장 = 4성 장군 확정코스 라는 지금의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최근 대장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군단장 보직은 1군단과 5군단이다. 그리고 결국 휴전선과의 거리가 얼마나 가깝냐에 따라 군단장의 대장 진급 여부가 가려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배출한 군단장 보직이니만큼 진급코스 최상위 보직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육군 1차 대장 자리는 3개뿐인데( 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11] 육군 중장은 20명이 넘는다. 4명이 한꺼번에 갈려도 중장의 상위 1/5밖에 진급을 못 한다. 그 와중에 최근 8명 중 4명이 대장진급했다는 것은 확실히 엄청난 것이다. 이 이상 가는 보직자리는 합참 작전본부장이나 전략기획본부장 정도인데 이 자리들은 참모고 7군단장은 지휘관이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1군단과 5군단에게 밀리는 추세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또 두고봐야 할 일이다. 7군단은 2010년대 들어서 30대 군단장 박찬주 이외에 대장 진급자가 없는 반면 1군단은 엄기학, 김용우, 서욱 3명의 군단장이 연속으로 대장에 진급했고 5군단 또한 4명의 군단장(김현집, 김영식, 임호영, 최병혁)이 대장으로 진급했다.[12] 게다가 34대 군단장 윤의철 중장은 교육사령관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대장으로 진급할 가능성이 대단히 낮아졌다.

문제는 최근에 보직한 군단장들 중에서 박찬주, 장재환, 윤의철 이 3명은 질적수준이 굉장히 낮아서 도대체 어떻게 장성급 장교까지 올라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썩어빠진 인원들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요직임에도 불구하고 대장 진급이 매우 더뎌져 가고 있다.
  • 이현부(육사 20기)
    제19대 군단장. 기계화보병의 아버지이지만, 부임한 지 얼마 못 가 사고를 당해 순직했다. 자세한건 해당항목 참고.
  • 김장수(육사 27기)
    제23대 군단장. 대장까지 진급하여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예편[13], 국방부 장관까지 올랐다. 2013년 2월 신설된 국가안보실의 초대 실장에 임명되었다.
  • 김병관(육사 28기)
    제24대 군단장.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을 거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후 예편했다. 이 사람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공과를 한 학기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 진로를 바꿔 육사에 지원해 수석으로 입학 후 수석 졸업까지 했다. 한국경제 기사 심지어 곧바로 육사에 진학하지 않고 서울대를 한 학기 다녔다가 들어간 이유에 대해 "고등학교에서 워낙 입시 위주 교육만 받는 바람에 사회성이 부족하다 싶어 1년 쉬었다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新東亞 인터뷰 또한 손자병법에 통달한 전술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2사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오전 8시에 시작한 전술 강의를 오후 6시에 끝낸 것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된다. 2013년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으나 방산업체 로비문제가 불거져서 자진 사퇴하였다.
  • 김근태(육사 30기)
    제25대 군단장. 대장까지 진급하여 1 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예편했다( 이근안에게 고문당했던 민주화운동가/정치인인 김근태와는 무관한 동명이인). 전역 후 새누리당에 입당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자격을 상실했다.
  • 박성규(3사 10기)
    제27대 군단장. 3사 출신 가운데 2번째로 대장에 진급한 동시에 이 출신 최초로 1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 이준구(육사 34기)
    제28대 군단장. 육군본부 군수참모부 장비정비처장, 39사단장, 국방부 군수관리관 등을 역임하였다.
  • 임국선(학군 17기)
    제29대 군단장. 이 사람은 소장이었던 20 사단장 시절 예하부대를 순시 중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노인을 발견하고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어 구조해내어 유명해진 인물이다. 기사 전문 2013년 4월 군단장 임기를 마치고 2작사 부사령관으로 영전했다. 대장 진급에는 실패했지만 최종 보직은 육군 본부 정책관이다. 학군 17기로 임관했는데 특이하게 임관하자마자 특전사 부중대장이 된 탓에 소대장 경력이 없다.
  • 박찬주(육사 37기)
    제30대 군단장, 2014년 10월 육군참모차장으로 이임하고 이후 제2작전사령관까지 지냈다가 이후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이 발생했다.
  • 장재환(육사 39기)
    제31대 군단장. 이전 제39보병사단장 역임, 2014년 10월 중장 진급과 동시에 7군단장을 역임 2016년 10월 육군 교육사령부 사령관 역임. 2017년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으로 전군의 공관병 갑질 등의 전군의 대대적인 조사로 부대복지기금을 전용해 지휘관 관사 비품을 구매한 것이 발각되어 대장 진급에 차질을 빚고 김용우에게 시원한 물 한사발을 쳐먹었다.
  • 이종섭(육사 40기)
    제32대 군단장. 제2보병사단장 역임, 2016년 4월에 중장 진급과 동시에 7군단장으로 취임했다. 2017년 9월 합참차장으로 이임하였다.
  • 이정기(육사 41기)
    제33대 군단장. 2017년 9월 중장 진급 후 취임하여 2018년 12월에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으로 옮겼다.
  • 윤의철(육사 43기)
    제34대 군단장. 2018년 12월 7일 취임하였는데, 미친듯한 체력단련 강조와 동시에 특급전사를 강요하며 특급전사가 아닌 장병들은 사람 취급도 안하는 등의 논란이 발생하고 있어서 7군단의 간부와 병사들은 윤의철이 빠른 시일 내 떠나길 바라고 있는 분위기이다. 결국 2019년 후반기에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으로 영전하면서 전역 테크를 탔다.
  • 허강수(3사 23기)
    제35대 군단장으로 2019년 11월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휘하부대인 7포병여단장 역임.

5.2. 7군단 출신 인물

  • 강은탁(영화배우)
    2010년 10월 군번으로 군단 사령부 간부식당에서 근무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근무여건 때문에 사령부에 근무하는 본부대 병사임에도 쉽게 볼 수가 없었다. (군단 본부대 본청 간부식당 병사들은 진짜로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들어온다. 간부식당 동기를 두었던 본부대 병사의 말이다.)
    당시 부대내 병사 증언에 의하면 출연했던 CF 덕에 '질레트 퓨전' 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했다고 한다.
  • 백종원
    학사장교 출신. 중위 계급으로 만기 전역하였다. 병과는 포병이었던 것으로 보아 군단 포병연대에서 근무했을 확률이 높다. 원래 보직인 관측장교에서 취사담당관과 보직을 바꾸어 근무하며 병영식당을 개선시켰던 일화와 부대 근처 중국집에서 짬뽕을 배워와 높으신 분들에게 대접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군 시절 사진을 보면 원색으로 된 계급장과 초기형 얼룩무늬 전투복을 착용한 것으로 보아 90년대 초중반, 적어도 96년도 이전에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 송유근
    2018년 12월 24일 입대. 6사단 신교대로 입대했지만 자대배치는 7공병여단으로 받았다.

6. 군단가

1절 군단가 링크

<1절>
겨레의 부름에 젊음을 바쳐
조국수호 다짐한 피끓는 용사
필승의 함성 아래 굳게 뭉쳤다
나가자 앞으로 백두산까지
내 생명 백골되어 다할 때까지
북진선봉 주력되자 기동 7군단

<2절>
민족의 소망아래 목숨을 걸고
조국통일 맹세한 피끓는 용사
북진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진격이다 앞으로 두만강까지
원수의 붉은무리 멸할 때까지
민족통일 선봉되자 기동 7군단

7. 여담

  • 위의 개요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빠르게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부대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2013년 중에 평일 06시에서 06:30에 기상하는 시범운영 부대 중의 하나였다.(그 외의 부대는 육군훈련소, 육군정보통신학교도 있다.) 이 기상시간의 변경은 추후 전 군으로 확산되어 동계나 하계 상관없이 평일 06:30, 주말 07시 기상으로 전군 정착이 되었다. 다만 예비군 훈련(동원훈련) 중에는 6시 기상. 이건 타 부대도 비슷하다.
    • 2016년부터 권역화 동원훈련 부대로 선정이 되었다.
  • 7군단은 우리나라 군 통신체계 구성에 있어 한 획을 그은 부분이 있는데, 2010년대 초반 군 일반전화(흔히 말하는 전술전화망을 제외한)망을 IP기반으로 바꾸는 시범사업을 시행하여 구축한 부대이다. 관련기사 이때, 시범사업 버프를 좀 받았는지 일부 전화기들은 화상전화(...)기능을 가지고 있다.
  • 이외에도 군 전술전화망의 경우도 광케이블 관련 장비도 시범용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현용으로 운용하는 전술망을 활용하여 차기 전술전화망과 호환되게 하는 신규 장비로 추정.
  • 군단 사령부에 작게나마 역사관이 존재한다. 부대개방행사 등을 할 때 입장 가능한데 우리나라 기갑사를 훑어볼 정도의 컨텐츠를 가지고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방문을 권한다.
  • 예하 사단의 사단장 인사명령 상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이었던 강인순 소장(육사 44기)이 훗날 7군단장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에는 강인순보다 1기수 아래인 유기종 소장(육사 45기)이 부임했고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은 한 술 더 떠서 학사장교 출신인 최진규 소장(학사 9기)이 부임했다.[14] 강인순 소장은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보직을 무사히 완료한 후 지상작전사령부 작전참모부장으로 발령되었는데 동기들이 아직 사단장에 보직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매우 유력하다. 사실 강인순은 중령 시절에도 동기들이 대대장을 하고 있던 2005년 당시 이미 대대장 보직을 무사히 마치고 7군단 작전처 작전계획과장을 역임했는데 동기들보다 진급과 보직이 한 단계 이상 빠르다. 2019년 현재 맡고 있는 보직은 육군본부 정보작전지원참모부장으로 이 보직은 소장 보직이지만 사실상 중장(진)급이라 봐도 좋은 보직이다.[15] 강인순의 병과는 기갑이라서 더욱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1차진급때 물먹어서 중장진급시 수방사령관이나 1군단장, 5군단장으로 갈 확률이 높아졌다.



[1] 90년대에 6군단이 기동군단으로 개편된 적이 있으나 다시 통상 군단으로 돌아왔다. [2] 1979년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12.12 쿠데타를 일으킨 배경에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월권을 보다못해 이곳으로 보직이동을 시키려고 했던 것도 원인이었다. [3] 제8기계화보병사단으로 통폐합 [4] 북진관이라는 다용도관에서 매주 상영한다. 좌석은 없다. 때문에 접이식 의자나 오락실 의자를 지참해서 관람한다. [5] 이준구 중장-박성규 중장-김영후 중장 때에도 관사에 동물은 많이 있었다. [6] 본 기사에서는 30기보사를 배속시킬 예정이라고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3개 기계화보병사단이 7군단에 배속될 텐데 11, 26, 8사단이 해체될 예정임을 감안한다면 30사단이 7군단에 배속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7] 2019년 11월 30일 제11기계화보병사단과 통합될 예정이다. # [8] 특히 제7107통신대대의 경우 위성장비(위성 운용/정비)를 사용하는 통신대대이다. 참고로 위성장비는 스파이더망으로 잘 알려진 TMR(무선전송장비 운용/정비)이나 타 각종 통신 장비에 비하면 매우 비싼 장비로 사단급 이상부터 배치되는 장비이다. 자세한 내용은 통신병 문서를 참고. [9] 강습대대로 개편된 초기, 워낙 많은 구타사고가 있어와서 말썽의 화근을 없애고자 특공연대를 대대로 쪼개버렸다는 소문이 인근 직할대에 돌았고 2010년 이후에도 한동안 구타가 있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으며 2012년 당시 타 대대 목격자에 의하면 짬축구(이등병 골키퍼 시키고, 상대팀에서 병장이 공 몰아서 절대 막지 못하게 하는 기막힌 축구)를 기똥차게 하고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707 특공공정연대가 하도 구타 가혹행위가 기승을 부려 해체한 후 재편성됐다거나 따라서 이 부대도 보호관심부대라는 등. 무능해서 보호관심부대가 아니라 구타사고가 잦았던 과거 때문에 보호관심부대이라는 카더라도 돌 정도. [10] 상술되었다시피 대다수의 신형 무기체계가 가장 먼저 실전배치되는 곳이다. [11] 물론 총장을 1차로 달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김용우 장군과 서욱 장군이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하며 바로 육군참모총장직에 올랐다. 링크 [12]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육사 37기 동기인 박찬주, 엄기학, 김영식이 대장으로 진급했을때 엄기학과 김영식이 전방의 3야전군, 1야전군 사령관을 지낸 것에 비해서 7군단장 출신의 박찬주는 후방의 2작전사령관이 되었다. [13] 이게 대단한 게 국방부 장관을 시키기 위해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예편 처리시킨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2007년 12월까지 재임해야 하지만 2006년 12월에 전역했다. [14] 최진규 소장은 2019년 중장 진급과 동시에 수도군단장으로 영전했다. 학사장교 출신 최초의 소장이며 최초의 중장이다. [15] 수많은 1군, 3군 사령관이 거쳐갔고 무려 전직 대통령도 거쳐간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