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9 06:47:57

김근태(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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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金近泰)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0803311720511621.jpg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74년 ~ 2009년
임관 육사 30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제1야전군사령관
주요보직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제7기동군단장
육군대학총장
제11사단장

1. 개요2. 생애3. 정치 활동4. 여담5. 선거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군인, 현직 정치인. 종교 개신교이다. 7군단장과 제1야전군사령관을 지냈다.

2. 생애

1952년 12월 27일 생.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진호리 비안동에서 태어났다. 참조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 30기로 입학하여 1974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육군대학 정규 34기를 1등으로 졸업하였다. 그 이후 수 많은 요직을 역임하고 육군 11사단 사단장, 육군대학 총장을 거쳐 중장으로 진급한 이후 2004년 4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육군 제7기동군단의 군단장으로 재직했다. 그 이후 2006년부터 2008년 3월까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1]을 역임하고 대장으로 진급한 이후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하고 전역했다.

3. 정치 활동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남 부여군- 청양군 선거구에서 43.5%의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에 연루되어 1심에선 당선무효형인 벌금 200만으로 판결이 나왔고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당시 의원직 상실을 보도하던 MBC가 자료화면에 1947년 생 김근태 초상을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참고로 그 김근태는 이미 2011년에 사망해서 이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미래통합당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정진석 당시 현역 국회의원에 밀려 컷오프되었다. 이에 민심을 묻는 경선과정을 생략한 일방적 공천에 승복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3월 6일 탈당하였다.

4. 여담

  • 군 시절에 본인이 직접 초임 간부들에게 신경을 썼을 정도로 초임 간부들의 역량을 매우 중요시해왔다. 보통 타 장성들이 병사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과 다르게 김근태는 초임 간부들에게 신경을 썼고 초임 간부들의 처우 개선에 온 힘을 다했다.[2]

*사단장 재직 시인 2002년 8월, 태풍 루사가 강릉지역을 강타하여 전대미문의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11사단 병력이 수해 복구작업에 투입되었다. 이에 김근태 당시 사단장은 물난리 현장에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 수해복구 10대 수칙을 작성하여 국민들에게 군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있다.
다음은 10대 수칙의 일부 항목이다.
-복구작업을 위해 주민들이 이동하지 않는 새벽에 이동한다.
-작업중 커피, 라면 등을 제공하는 주민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지않은 이들로 인지하여 즉시 복구작업을 중단하고 더 피해가 심각한 곳으로 이동한다.

* 2007년 7월 아프간에 우리 국민이 인질로 잡혀 있을 때, 합참 작전본부장으로서 그들의 안전한 석방을 위해 우리나라에 주둔해 있는 미군지휘관들을 설득하는 등 국내외 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관계를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강구함으로써 희생을 최소화한 채 피랍인들을 안전하게 석방하도록 애쓴 일은 작전에 탁월한 전문가라는 평가를 확인시켜 준 사례이다.

5.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부여·청양) 새누리당 22,886 (43.54%) 당선 (1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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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전직능 중장 보직 중 최고의 요직으로 손꼽힌다. [2] 사실 이렇게 하는 것도 매우 좋다. 왜냐하면 병사들이야 강제로 끌려왔고 또 사회에서 보는 눈이 있으니까 군 간부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지만, 초임 간부들은 스스로 왔고 또 사회에서도 신경을 거의 안 쓴다. 실제로 초임 간부들의 자살률이 병사들의 자살률보다 매우 높다. 현역병들과 예비역들은 강력히 반발할지 모르나 초임 간부들은 병사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는 엄청난 3D 직종이다. 급료가 높고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점이 현역병이나 병 출신의 예비역 입장에서는 굉장히 크게 다가오지만 사실 이것을 제외하면 누릴 수 있는 권리나 직무적인 권한은 현역병들만큼 없다시피 하지만, 어쨌거나 간부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할 책임은 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큰 것이 초임 간부이다. 실제로 병의 경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만 아니라면 웬만한 사고를 쳐도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도 많으며, 심하더라도 군기교육대 영창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징계만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간부는 좀 큰 사고를 쳤다 하면 설령 인명 피해가 없었다 하더라도 근무평정이나 인간관계가 박살나 버리면서 앞으로의 군 생활 전체가 오락가락하게 되고, 심하면 정식으로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수도 있다. [3] 2013. 3. 28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