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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 대한민국 육군 |
기간 | 1981년~ 2015년 |
임관 | 육군사관학교 37기 |
최종 계급 | 중장 |
최종 보직 |
국방정보본부장 겸 합참 정보본부장 |
주요 보직 |
국군정보사령관 제22보병사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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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전 군인. 최종계급은 중장. 국방정보본부장을 역임했다.2. 생애
경상남도 합천군 출신이다. 대구광역시 대륜고등학교(26회)를 졸업했고[1] 1977년 육군사관학교(37기)에 입학해 1981년에 임관했다. 이후 국방대학교에서 운영분석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9년 이후 현재까지 제22보병사단장직을 무사히 마치고 중장으로 진급한 사례이다. 이전 이양구 소장(육사 35기), 조성직 소장(육사 38기), 서상국 소장(육사 40기), 표창수 소장(육사 47기), 정형균 소장(육사 48기)은 민간인 월북사건,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2021년 동해 민통선 무단침입 사건, 성추행 피해자 2차 가해 사건 등으로 모두 보직해임되었고 중장 진급에는 모두 실패했다. 즉 2009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총 10명의 사단장 중 유일하게 사단장 보직을 끝내고 정보사령관을 거쳐 중장으로 진급한 것이다. 또한 소장 재직 시절 귀순 완전작전이 성공리에 종료되어 별다른 사고 없이 사단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후 정보사령부 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속초시와 관련된 민원을 해결하면서 뉴스를 타기도 하였다.
2013년 10월 장성 정기인사에서 중장으로 임기제 진급해[3] 국방정보본부장이 되었다.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문제를 질의하던 중에 군이 정치에 개입할 거면 60만을 총동원하지 사이버사령부로 개입했겠냐고 발언했다가 여야 모두에게 질타를 받자 사과했다. 관련기사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이 미군 없이는 북한군에게 이길 수 없다고 발언해 인터넷에서 다시금 떡밥이 터졌다. 관련글
2014년 6월에는 공군 예비역 한성주 소장이 서울에 땅굴이 있고 국방부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의 책을 펴냈고 국방부측에서 한소장(예)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관련기사
2015년 10월 하반기 장성인사에서 후임자 김황록 소장에게 본부장 직위를 인계하고 전역했다.
3. 망언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이 5일 “한미동맹이 싸우면 우리가 월등히 이기지만 미군을 제외하고 남북한이 1대1로 붙으면 우리가 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https://www.viewsnnews.com/article?q=104843
4. 여담
- 사관학교 동기로는 신원식, 양종수(이상 중장 1차 진급자), 이재수, 박찬주, 김영식(이상 중장 2차 진급자), 엄기학, 전인범(이상 중장 3차 진급자), 8차 준장 진급으로 유명한 고명현, 대위로 5년차 전역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 등이 있다.
- 천주교를 믿는 것 같다. 종교행사때마다 동해성당에 참석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당시 제8군단장 정경조 중장이 독실한 불교신자여서 호국위령대제 등을 열었고 여기에도 참석하였다. 재직 시절 군종참모는 계속 불교법사가 담당했다.
- 사단장 시절을 통해 보자면, 별다른 행동통제등의 지침을 내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즉 휘하 지휘관들에게 재량권을 많이 부여하고 이를 지원하는 지휘형식인 것 같다.
- 2010년 7월에는 55연대가 연대전술훈련에서 제23보병사단을 상대로 승리하자 즉각 군악대를 보내어 치하하고 연대장에게 단독군장을 권고하여 훈련병력 모두 복귀행군은 단독군장으로 복귀했다. 모든 병력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행군했고 마치 소풍날 같이 걸어갔다. 날도 맑았고 특히 허브농장을 지날 때에는 소풍날 그 자체였다. 꽃도 꺾어보고 잡담을 해도 간부들도 그저 진로만 잡을 뿐 별다른 통제가 없었다. 그에 비해 패전한 23사단은 복귀행군에서 전원 완전군장으로 복귀했다.
- 공교롭게도 동명이인인 예비역 공군 준장이 있다. 참고로 해당 인물은 경북 영천시 출신이며 공군사관학교 30기 수석졸업자이다. 또한 법무법인 린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