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9:58:04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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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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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참전과 역할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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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六二五 戰爭 | The Korean War
<nopad> 파일:600px-Korean_War_Montage_2.png
전쟁 당시 사진 (1950년 - 1953년)[1]
<nopad> 파일:국토교통부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625전쟁 지도.png
전개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3)[2]
기간
1950년 6월 25일([age(1950-06-25)]주년) 4시 20분경 ~ 1953년 7월 27일 22시 (사실상)
1950년 6월 25일 4시 20분경 ~ 현재 (명목상)[3]
( 1953년 7월 27일 22시 이후 [dday(1953-07-27)]일간 휴전 상태)
장소
한반도 본토 및 연안과 부속 도서 일부[4]
원인
냉전, 김일성 조선로동당 한반도 적화통일 야욕
교전국
파일:유엔 엠블럼(흰색).png 유엔군 파일:낫과 망치.svg 공산군
[[틀:깃발|]][[틀:깃발|]][[대한민국|]]
[[틀:깃발|]][[틀:깃발|]][[미국|]]

[[영국|]][[틀:국기|]][[틀:국기|]]
[[틀:깃발|]][[틀:깃발|]][[캐나다 자치령|]]

[[튀르키예|
튀르키예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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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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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틀:국기|]][[틀:국기|]]

[[필리핀|]][[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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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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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틀:국기|]][[틀:국기|]]

[[에티오피아 제국|]][[틀:국기|]][[틀:국기|]][6]

[[벨기에|]][[틀:국기|]][[틀:국기|]]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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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틀:국기|]][[틀:국기|]]

[[북한|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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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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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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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틀:깃발|
기 명칭
소비에트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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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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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소비에트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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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틀:깃발|]][[베트남 민주 공화국|]][10][B] (비공식)
의료 지원국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덴마크|]][[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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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틀:국기|]][[틀:국기|]]
파일:이탈리아 국기(1946-2003).svg.png 이탈리아[13]

[[인도|]][[틀:국기|]][[틀:국기|]][A]
[[틀:깃발|]][[틀:깃발|]][[동독|]][15]
[[틀:깃발|]][[틀:깃발|]][[루마니아 인민공화국|]]

[[인도|]][[틀:국기|]][[틀:국기|]][A]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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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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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명칭
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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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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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틀:깃발|]][[폴란드 인민공화국|]]
[[틀:깃발|]][[틀:깃발|]][[헝가리 인민공화국|]]
물자 및 기타 지원국[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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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 -11px; margin-top: -8px; margin-bottom: -16px"

[[대만|
대만
중화민국
]][[틀:국기|]][[틀:국기|
속령
중화민국
]]

[[에콰도르|]][[틀:국기|]][[틀:국기|]]
파일:쿠바 국기(1902-1906, 1909-1959).svg 쿠바 제1공화국[18]

[[파나마|]][[틀:국기|]][[틀:국기|]]

[[과테말라|]][[틀:국기|]][[틀:국기|]]

[[이스라엘|]][[틀:국기|]][[틀:국기|]]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코스타리카|]][[틀:국기|]][[틀:국기|]]
[[틀:깃발|]][[틀:깃발|]][[멕시코|]][19]

[[도미니카 공화국|]][[틀:국기|]][[틀:국기|]]

[[팔라비 왕조|
팔라비 왕조
이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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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이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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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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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틀:깃발|]][[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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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틀:국기|]][[틀:국기|]]

[[라이베리아|]][[틀:국기|]][[틀:국기|]]

[[리히텐슈타인|]][[틀:국기|]][[틀:국기|]]

[[모나코|]][[틀:국기|]][[틀:국기|]]

[[바티칸|]][[틀:국기|]][[틀:국기|]]
[[틀:깃발|]][[틀:깃발|]][[베트남국|]]

[[사우디아라비아|]][[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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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자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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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틀:깃발|]][[연합군 점령하 일본|
연합군 점령하 일본
]][20]

[[스위스|]][[틀:국기|]][[틀:국기|]]

[[이집트 왕국|]][[틀:국기|]][[틀:국기|]]
[[틀:깃발|
기 명칭
스페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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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명칭
스페인국
]][[프랑코 정권|]] 프랑코 정권

[[버마 연방|]][[틀:국기|]][[틀:국기|]]
[[틀:깃발|
기 명칭
시리아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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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명칭
시리아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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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시리아군
시리아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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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틀:국기|]][[틀:국기|]]

[[아이슬란드|]][[틀:국기|]][[틀:국기|]]
[[틀:깃발|]][[틀:깃발|]][[헝가리 인민공화국|]][22]

[[엘살바도르|]][[틀:국기|]][[틀:국기|]]
[[틀:깃발|]][[틀:깃발|]][[아이티|]]

[[페루|]][[틀:국기|]][[틀:국기|]]

[[우루과이|]][[틀:국기|]][[틀:국기|]]

[[베네수엘라|]][[틀:국기|]][[틀:국기|]]
[[틀:깃발|]][[틀:깃발|]][[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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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인민공화국|]][[틀:국기|]][[틀:국기|]]
지원 의사 표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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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대만
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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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중화민국
]][23]
[[틀:깃발|
기 명칭
스페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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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명칭
스페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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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틀:국기|]][[틀:국기|]][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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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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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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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틀:깃발|]][[이승만|]]
[[틀:깃발|]][[틀:깃발|]][[신성모|]]
[[틀:깃발|]][[틀:깃발|]][[채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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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기 명칭
김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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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명칭
김홍일
]][[김홍일(군인)|]]
[[틀:깃발|]][[틀:깃발|]][[백선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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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틀:깃발|]][[틀:깃발|]][[조지 C. 마셜|]]
[[틀:깃발|]][[틀:깃발|]][[커티스 르메이|]]
[[틀:깃발|]][[틀:깃발|]][[미국|]] 로버트 A. 로벳
[[틀:깃발|]][[틀:깃발|]][[미국|]] 찰스 어윈 윌슨
[[틀:깃발|]][[틀:깃발|]][[알레이 버크|]]
[[틀:깃발|]][[틀:깃발|]][[오마 브래들리|]]
[[틀:깃발|]][[틀:깃발|]][[미국|]] J. 로턴 콜린스
[[틀:깃발|]][[틀:깃발|]][[미국|]] 포레스트 셔먼
[[틀:깃발|]][[틀:깃발|]][[미국|]] 윌리엄 페치텔러
[[틀:깃발|]][[틀:깃발|]][[미국|]] 호이트 반덴버그
[[틀:깃발|]][[틀:깃발|]][[미국|]] 네이선 트와이닝
[[틀:깃발|]][[틀:깃발|]][[미국|]] 토머스 D. 화이트
[[틀:깃발|]][[틀:깃발|]][[유엔|]]
[[틀:깃발|]][[틀:깃발|]][[더글러스 맥아더|]]
[[틀:깃발|]][[틀:깃발|]][[유엔|]] [[틀:깃발|]][[틀:깃발|]][[매튜 리지웨이|]]
[[틀:깃발|]][[틀:깃발|]][[유엔|]] [[틀:깃발|]][[틀:깃발|]][[월튼 워커|]]†
[[틀:깃발|]][[틀:깃발|]][[유엔|]] [[틀:깃발|]][[틀:깃발|]][[제임스 밴 플리트|]]
[[틀:깃발|]][[틀:깃발|]][[조지 6세|]]†
[[틀:깃발|]][[틀:깃발|]][[엘리자베스 2세|
엘리자베스 2세
]]
[[틀:깃발|]][[틀:깃발|]][[윈스턴 처칠|]]
[[틀:깃발|]][[틀:깃발|]][[클레멘트 애틀리|
클레멘트 애틀리
]]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해롤드 알렉산더
[[틀:깃발|]][[틀:깃발|]][[캐나다 자치령|]]
빈센트 매시
[[틀:깃발|]][[틀:깃발|]][[캐나다 자치령|]]
루이 생로랑
[[틀:깃발|]][[틀:깃발|]][[호주|]]
윌리엄 맥켈
[[틀:깃발|]][[틀:깃발|]][[로버트 멘지스|
로버트 멘지스
]]
[[틀:깃발|]][[틀:깃발|]][[튀르키예|]]
젤랄 바야르
[[틀:깃발|]][[틀:깃발|]][[아드난 멘데레스|
아드난 멘데레스
]]
[[틀:깃발|]][[틀:깃발|]][[타흐신 야즈즈|]]
[[틀:깃발|]][[틀:깃발|]][[하일레 셀라시에|]]
[[틀:깃발|]][[틀:깃발|]][[에티오피아 제국|]] 케베데 게브레[27]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뱅상 오리올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틀:깃발|]][[틀:깃발|]][[레오폴드 3세|]]
[[틀:깃발|
기 명칭
보두앵
]][[틀:깃발|
깃발 명칭
보두앵
]][[보두앵(벨기에)|
보두앵(벨기에)
보두앵
]]
[[틀:깃발|]][[틀:깃발|]][[벨기에|]]
조제프 폴리앵
[[틀:깃발|]][[틀:깃발|]][[파블로스 1세|]]
[[틀:깃발|]][[틀:깃발|]][[남아프리카 연방|]]
다니엘 프랑수아 말란
[[틀:깃발|]][[틀:깃발|]][[콜롬비아|]] 라우레아노 고메스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 -11px; margin-top: -8px; margin-bottom: -16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191919>[[틀:깃발|]][[틀:깃발|]][[김일성|]]
[[틀:깃발|]][[틀:깃발|]][[김두봉|]]
[[틀:깃발|]][[틀:깃발|]][[박헌영|]]
[[틀:깃발|]][[틀:깃발|]][[김원봉|]]
[[틀:깃발|]][[틀:깃발|]][[홍명희|]]
[[틀:깃발|]][[틀:깃발|]][[김책|]]†
[[틀:깃발|]][[틀:깃발|]][[최용건|]]

[[북한|]][[틀:국기|]][[틀:국기|]] 박일우
[[틀:깃발|]][[틀:깃발|]][[정준택|]]
[[틀:깃발|]][[틀:깃발|]][[남일|]]
[[틀:깃발|
기 명칭
강건
]][[틀:깃발|
깃발 명칭
강건
]][[강건(북한)|
강건(북한)
강건
]]†

[[북한|]][[틀:국기|]][[틀:국기|]] 김웅
[[틀:깃발|]][[틀:깃발|]][[최광|]]
[[틀:깃발|
기 명칭
리영호
]][[틀:깃발|
깃발 명칭
리영호
]][[리영호(1910)|
리영호(1910)
리영호
]]
[[틀:깃발|]][[틀:깃발|]][[리권무|]]
[[틀:깃발|]][[틀:깃발|]][[방호산|]]
[[틀:깃발|]][[틀:깃발|]][[전우|]]

[[북한|]][[틀:국기|]][[틀:국기|]] 류경수
[[틀:깃발|]][[틀:깃발|]][[오백룡|]]

[[북한|]][[틀:국기|]][[틀:국기|]] 리방남
[[틀:깃발|]][[틀:깃발|]][[최용진|]]
[[틀:깃발|]][[틀:깃발|]][[김광협|]]
[[틀:깃발|]][[틀:깃발|]][[김무정|]]

[[북한|]][[틀:국기|]][[틀:국기|]] 리청송

[[북한|]][[틀:국기|]][[틀:국기|]] 마상철

[[북한|]][[틀:국기|]][[틀:국기|]] 최인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오진우
[[틀:깃발|]][[틀:깃발|]][[틀:깃발|]] 박성철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이오시프 스탈린
[[틀:깃발|]][[틀:깃발|]][[틀:깃발|]] 게오르기 말렌코프
[[틀:깃발|]][[틀:깃발|]][[틀:깃발|]] 마오쩌둥
[[틀:깃발|]][[틀:깃발|]][[틀:깃발|]] 펑더화이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쑹스룬

[[중국|]][[틀:국기|]][[틀:국기|]] 덩화

[[중국|]][[틀:국기|]][[틀:국기|]] 홍쉐즈
}}}}}}
병력 (최대병력 기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 -11px; margin-top: -8px; margin-bottom: -16px"
전투 병력
[[틀:깃발|]][[틀:깃발|]][[대한민국|]] 602,902명
[[틀:깃발|]][[틀:깃발|]][[미국|]] 326,853명

[[영국|]][[틀:국기|]][[틀:국기|]] 56,000명
[[틀:깃발|]][[틀:깃발|]][[캐나다 자치령|]] 8,613명

[[튀르키예|]][[틀:국기|]][[틀:국기|
속령
터키
]] 5,455명

[[호주|]][[틀:국기|]][[틀:국기|]] 2,282명
[[틀:깃발|]][[틀:깃발|]][[태국|]] 2,274명

[[필리핀|]][[틀:국기|]][[틀:국기|]] 1,496명

[[뉴질랜드|]][[틀:국기|]][[틀:국기|]] 1,389명

[[에티오피아 제국|]][[틀:국기|]][[틀:국기|]] 1,271명
[[틀:깃발|]][[틀:깃발|]][[그리스|]] 1,263명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1,185명

[[콜롬비아|]][[틀:국기|]][[틀:국기|]] 1,068명

[[벨기에|]][[틀:국기|]][[틀:국기|]] 900명

[[남아프리카 연방|]][[틀:국기|]][[틀:국기|]] 826명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819명

[[룩셈부르크|]][[틀:국기|]][[틀:국기|]] 52명

의료지원 및 기타

[[인도|]][[틀:국기|]][[틀:국기|]] 346명

[[스웨덴|]][[틀:국기|]][[틀:국기|]] 170명
[[틀:깃발|]][[틀:깃발|]][[연합군 점령하 일본|
연합군 점령하 일본
]] 120명[28]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109명

[[덴마크|]][[틀:국기|]][[틀:국기|]] 100명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72명
}}}}}} 전투 병력

[[북한|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틀:국기|
행정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틀:국기|
속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266,600+명[29]

[[중국|
중국
중화인민공화국
]][[틀:국기|
행정구
중화인민공화국
]][[틀:국기|
속령
중화인민공화국
]] 1,450,000+명
[[틀:깃발|
기 명칭
소비에트 연방
]][[틀:깃발|
깃발 명칭
소비에트 연방
]][[소련|
소련
소비에트 연방
]] 26,000명
[[틀:깃발|]][[틀:깃발|]][[베트남 민주 공화국|]] 3,000+명[30]
경과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 -11px; margin-top: -8px; margin-bottom: -16px"
1950년 6월 25일 폭풍 작전 개시, 전쟁 발발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
1951년 1월 4일 1.4 후퇴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1972년 7월 4일 7.4 남북 공동 성명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월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월 4일 10.4 남북공동선언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선언
2018년 9월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
}}}}}}
영향
미국 소련 주도의 냉전 체제 고착화
남북 분단의 고착과 남북 독립국가 체제 강화
군사분계선(휴전선) 형성[31]
이산가족 발생
한국의 징병제 실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피해 규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 -11px; margin-top: -8px; margin-bottom: -16px"
• [[틀:깃발|]][[틀:깃발|]][[대한민국|]]
137,899명 사망
450,742명 부상
24,495명 실종
8,343명 포로

• [[틀:깃발|]][[틀:깃발|]][[미국|]]
33,686명 사망
92,13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 포로


[[영국|]][[틀:국기|]][[틀:국기|]]
1,078명 사망
2,674명 부상
179명 실종
978명 포로


[[튀르키예|]][[틀:국기|]][[틀:국기|]]
966명 사망
1,155명 부상
163명 실종
244명 포로

• [[틀:깃발|]][[틀:깃발|]][[캐나다 자치령|]]
516명 사망
1,212명 부상
1명 실종
33명 포로


[[호주|]][[틀:국기|]][[틀:국기|]]
340명 사망
1,216명 부상
43명 실종
28명 포로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262명 사망
1,008명 부상
7명 실종
12명 포로

• [[틀:깃발|]][[틀:깃발|]][[그리스 왕국|]]
192명 사망
543명 부상
3명 포로


[[콜롬비아|]][[틀:국기|]][[틀:국기|]]
213명 사망
448명 부상
28명 실종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120명 사망
645명 부상
3명 실종


[[에티오피아 제국|]][[틀:국기|]][[틀:국기|]]
122명 사망
536명 부상


[[필리핀|]][[틀:국기|]][[틀:국기|]]
112명 사망
299명 부상


[[벨기에|]][[틀:국기|]][[틀:국기|]]
99명 사망
336명 부상
4명 실종
1명 포로

• [[틀:깃발|]][[틀:깃발|]][[연합군 점령하 일본|
연합군 점령하 일본
]]
1명 사망[32]
1명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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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납북, 월북
• 대한민국 공업 기반의 절반 소실, 30억 달러 또는 국부의 1/4 손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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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서론3. 원인과 배경4. 전개5. 정전 이후6. 전쟁범죄7. 기타8. 관련 자료
8.1. 학계8.2. 군사적 자료8.3. 다큐멘터리
9. 창작물10. 명칭11. 관련 사건12. 어록13. 외부 링크14. 관련 문서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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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25 전쟁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암호명 '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이자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된 가장 큰 원인이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1129일)간 전투가 이어졌다. 정전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나 북한의 핵개발, 북한과 미국 간의 불신 등의 영향으로 한국과 북한 간의 왕래 불가와 적대적 대치 상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어 공식적인 종전은 요원한 상황이다.

자본주의 진영 공산주의 진영, 자유주의 진영와 사회주의 진영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 때문에 6.25 전쟁은 전후 냉전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건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2. 서론

6.25 전쟁의 전개
전쟁이 발발하기 5년 전인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해방 직후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 소련에 의해 삼팔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미군과 소련군의 점령이 끝나고 한반도에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정부가 수립되었다.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소련과 중국을 설득하여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계획을 수립하며 노골적인 침략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 마오쩌둥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으로부터 협조와 지지를 얻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30분 38도선 이남 대한민국으로 선전포고도 없이 남침을 시도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6.25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1세계 제2세계를 중심으로 대립하게 된 냉전 시기 세계 갈등이 전쟁으로 발전된 대표적 사례로, 미국 소련은 물론 유엔, 중국까지 전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관여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이었다.

공산 정권이 대체로 우세했고 거의 통일도 이룩한 국공내전, 베트남 전쟁과 달리 양측이 한 번씩 승리에 다가섰다가 균등해진 상태에서 정전을 이룬 다소 극적인 전개를 거쳤으며, 1951년 6월 23일 첫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전쟁 포로 송환 등 여러 가지 갈등이 봉합되지 못하여 전쟁이 계속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결국 6.25 전쟁 지속에 반대하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들어서고 1953년 7월 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을 통해 한반도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 북한 두 국가가 대립하게 되었다.

각각 통일에 실패한 대한민국과 북한은 이후 한반도의 정통 국가로서의 정통성을 걸고 대립하게 되었고, 이는 국가 운영과 국민 여론 및 의식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은 이 전쟁의 결과로 남북이 아직도 갈라져 있는 상태이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연속된 한국의 암흑기를 연 사건인 이 전쟁은 오늘날까지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전쟁으로 굳어진 각 체제(體制, Régime)와 상호간 대치 상태는 정전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6·25 전쟁의 평화협정(종전 및 강화 조약)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으며, 남과 북의 군사•적대적 대치 상태는 여전하기에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지만, 현재 남북 양측의 국민들에게는 전쟁 중이라는 인식은 드물다. 법적으로 볼 때 대법원의 판례는 지금이 '전시'인지 '평시'인지 명확하게 입장을 내린 적이 없으며 사안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국회 또한 그러한데,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과 남북 관계의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3. 원인과 배경

The attack upon Korea makes it plain beyond all doubt that communism has passed beyond the use of subversion to conquer independent nations and will now use armed invasion and war. It has defied the orders of the Security Council of the United Nations issued to preserve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I know that all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will consider carefully the consequences of this latest aggression in Korea in defiance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A return to the rule of force in international affairs would have far-reaching effects. The United States will continue to uphold the rule of law.
대한민국에 대한 이러한 공격(북한의 공격)은 공산주의가 독립 국가를 정복하기 위해 체제전복이라는 수단을 넘어 이제는 무장침략과 전쟁을 사용할 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국제평화와 안보를 지키기 위한 UN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또한 무시하였습니다.
(중략)
저는 UN에 소속된 모든 국가들이 유엔헌장을 무시한 채 한국에 대한 침략의 결과에 대해서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라 봅니다. 국제관계에서 힘에의한 통치로의 복귀는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미국은 계속해서 법치를 지킬 것입니다.
해리 S. 트루먼. 1950년 6월 27일 연설문 #
6.25 전쟁은 중소 양국의 흉도와 사주밑에 북괴의 기습침략으로 발발된 민족공통의 참화이며 수난이었다.
6.25 전쟁사1:북괴의 남침과 서전기, 국방부, 1977년, p.17 #
이 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의한 남북한간의 민족전쟁의 성격과 소련의 세계 공산화 전략의 성격을 지닌 전쟁이었으며, 비록 전장이 한반도에 국한되었지만 남침 이후 20개국의 전투부대가 참전함으로써 양대 진영간의 국제전적인 성격을 띤 전쟁이었습니다.
6.25 전쟁사 1권, p.5 #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김일성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의 한반도 적화통일 기도이다.

1948년 8월과 9월 남북 각자의 정부가 들어서고 38선에서 쌍방의 작은 교전이 여러번 있었다. 그와중 북한은 아주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몰입하였다. 북한 정부 수립 이후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전쟁 일으키자는 요청을 71번이나 했으나 모두 스탈린이 묵살했다. 그러다 1949년 10월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끝나고 아래 설명할 에치슨 라인 선언 이후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용했다.[35]

미국은 유엔에서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유엔 감시 아래 총선거를 실시하고 유엔임시위원단이 선거 및 정부수립을 감독하며, 통일정부가 수립되면 모든 외국군을 철수시킨다는 계획을 제안했다. 그러나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감군과 국방예산의 감축으로 인하여 지상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947년 5월부터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했고, 1948년 4월 8일 미국 국무부 하지 중장에게 동년말까지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도록 한국측과 제반 협정을 체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리하여 정부 수립을 앞두고 미 국무부는 1948년 말의 주한미군 철수를 기정사실화하고 한국의 경비대를 무장하고 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주한미군은 예정대로 1948년 9월 15일부터 철수를 시작하여 1949년 6월 30일부로 철수를 완료했다. 즉, 1950년 1월 12일 애치슨 라인 선포는 주한미군 철수 이후 일어난 일이다. 미군이 남한에 재진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일성과 소련의 판단 하에 1950년 6월 25일 개전을 시작하였다.

일각에선 6.25 전쟁에 대해서 해주진공설을 기반으로 남한의 북침설과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남침유도설이 있으나, 이러한 유도설은 오래전에 이미 논파되었다. 한국에서는 90년대에 갑자기 이런 북침설이나 남침유도설이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당시 국내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김일성 및 공산권의 야욕에 의한 기습남침으로만 규정되어 있었다가 1987년 이후 본격적으로 재조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조사 중에 여러 서적들이 국내로 들어왔는데, 이 중 브루스 커밍스의 6.25 전쟁의 기원 등에 남침유도설 등이 서술되어 당시 NLPDR 등의 운동권에 의해 적극적으로 보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남침유도설은 수많은 반박자료에 의해서 논파되었다.

2010년 이후 국지전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6·25 전쟁을 외적 기원(김일성 또는 스탈린의 기획)과 내적 기원(내전의 확대)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발생한 것으로 보는 복합 기원설에 국제적으로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에 대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36]에서 6·25 전쟁에 대한 명확한 원인과 기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대립하고 있으며, 주류 역사학계의 정설은 존재하지 않는다.[37]

소련은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투입하지는 않았지만 만주의 북한 비행학교에서 소련 전문가들이 조종사 양성에 참여했었으며, 북한의 기초적인 군사교육을 담당했다. 6.25 전쟁사. p.544 심지어 일부 파일럿들을 중공군으로 위장시켜 투입까지 하였다. 이 파일럿들의 통신이 감청되기도 했지만 소련이 개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경우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한 미군과 UN군에서는 이를 일부러 모른 척했다. 6·25 전쟁이 무조건 한반도 내의 국지전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 입장에서는 자꾸 전쟁을 키우려고 하는 맥아더가 굉장히 위험한 인물로 인식되었다. 당시 맥아더는 중국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장제스와 함께 중국 해안에 상륙하자는 작전을 구상했다고 한다.

결국 트루먼에 의해 해임된 맥아더는 일단 전쟁 영웅으로 미국에 귀국하지만, 이후 미 의회 상원위원회 청문 과정에서 그 진실이 드러나 명예가 실추됐다. 한편 6·25 전쟁이 제3차 세계 대전으로 확전되면 안 된다고 봤던 사람은 트루먼뿐만이 아니었다. 세간에 공개된 스탈린의 서필에 의하면, 스탈린 역시 6·25 전쟁이 제3차 세계 대전으로 확전될까봐 노심초사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확전의 두려움에 자기들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전쟁 억제력을 확보해 전쟁이 커지는 것을 막은 것이다.

4. 전개

4.1. 전쟁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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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전쟁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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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미군의 참전과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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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정전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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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전 이후

5.1. 전쟁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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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전쟁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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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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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6.25 전쟁 10대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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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종전 선언 및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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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쟁범죄

6.1. 한국, UN군 및 자유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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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대한민국

한국 정부와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은 보도연맹 학살 사건(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사건 등), 형무소 재소자 학살(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 등), 부역 혐의 학살( 고양 금정굴 학살 사건 등)등의 범주로 나뉜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의 경우 대한민국 국군 및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 단체에 의해 10만~30만 명의 군사분계선 이남 거주 대한민국 국민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한편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경우 민주화 이전 독재 정권 시절부터 공공연한 언급이 가능했던 유일한 학살 사건이며, 이를 제외한 다른 학살 사건의 존재는 4.19 혁명 이후 5.16 군사정변 이전 피학살자유족회가 활동하던 단 1년의 기간을 제외하면 민주화 이전까지는 철저히 금기시되었다. 아울러 학살 외의 전쟁범죄로는 한강 인도교 폭파, 소년병 징집, 국민방위군 사건 등이 있다.

학살을 저지르는 한국군 및 한국 경찰을 유엔군이 저지하여 목숨을 건진 케이스는 있다. 영국군이 서울 홍제리 집단총살 사건 당시 추가적인 학살을 막은 사례 등.

그 외에도 각지에서 민간인 차원의 좌우 갈등이 극에 달하여 학살이 빈번했다. 전라도는 좌우대립이 극심했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사실 양반들이 6.25 전쟁으로 망했다는 옛날의 믿음[38]과 달리 전라도 양반들조차 물론 피해를 크게 입은 사람들도 있으나 오히려 자신들을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히고도 멀쩡한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혐오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에 대비한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 때문에 공격자나 범죄자 혹은 무고한 사람들[39]에 대해 거의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지난 세기에는 독재 정권이라서 진상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이유와 반공이 국시였던 점으로 인해 북한의 사악함과 국군의 영웅적 희생을 강조하기 위해 냉전이 끝날 때까지 은폐되었지만, 민주화 이후 이러한 부분이 재조명되고 일부는 국가의 공식적 사과 및 보상이 이뤄졌다.

6.1.2. 미국

한반도 전역에서의 미군의 전술, 전략 폭격은 큰 민간인 사상자와 영향을 남겼다. 예를 들면 서울 일대 폭격으로 1950년 6월부터 9월까지 4,280명의 서울 시민이 사망했는데 이는 서울시 사망자의 24.8%다. 이는 서대문구, 중구, 용산 같은 인구 밀집 지역에 폭격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서울은 용산과 종로, 중구 정도만 서울이었고 나머지는 다 경기도였기 때문에 서울 전체를 폭격한 것. 민간인에 대한 폭격 문제는 최근 미국의 기밀문서들이 비밀 유지 기한이 풀리면서 당시 폭격기나 전투기 조종사가 쓴 비행 일지가 드러나며 밝혀졌다.

미군은 국군, 북한군, 중국군은 물론이고, 미군 스스로가 저지른 학살까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 모조리 사진과 자료로 남겼다. 그렇게 남은 미군의 대표적인 학살 사건은 제1기병사단이 했던,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다. 그 밖에 세균전을 행했다는 의혹이 있으나, 미국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 인용된 기사를 포함하여, 2010년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서 발견된 미국 측 문서를 통해, 적어도 미군의 세균전 테스트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이 된 상태다.

최근 민간에서 진행된 조사로 미국이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에 생각보다 더 깊이 개입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진실위는 왜 미국 희생사건에 인색했나. '대한민국'이 완전히 '빨갱이 나라'가 되는 걸 목숨 걸고 막아준 그 고마운 미군에 대해, 절대로 고의로거나 실수로라도 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눴을 리 없는 그 미군에 대해 당신들 때문에 수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여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 조사관들이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 내외에서 '좌익 반미주의자들'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 진실위 조사관 백서 준비모임 #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사기간이 만료돼도 40~50%밖에 해결 못한다, 자신도 9명의 상임위원 중에 한 명에 불과해 어떤 일을 하겠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유족회는 “보수정권으로 바뀌니 변명으로 일관하고 기구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려 진실규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략) 부산·대구·대전 형무소 재소자 학살에 미군이 직접 개입했음을 입증하는 문서들도 확인됐다고 유족회는 덧붙였다.
― 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전원 사퇴하라" #

6.1.3. 캐나다

6.25 전쟁 당시 캐나다군 또한 양민을 대상으로 학살과 전쟁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 아래의 기사는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교 존 프라이스 교수가 밝혀낸 자료다. 한국전 때 '캐나다군 범죄' 캐는 프라이스 교수

6.2. 북한, 중국 및 공산 진영

※ 공산군과 좌익이 저지른 학살 행위는 6.25 전쟁 학살/인민군과 좌익 문서 참조.

6.2.1. 북한

6.25 전쟁 당시 호남 지역의 학살 피해자는 8만 4,003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학살 피해자 12만 8,936명의 65%에 이른다. 이는 극심한 좌우대립의 결과로서, 이 지역에 내재해있던 지주-소작농 갈등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 「대한민국 통계연감(1953년)」 내무부 통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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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인민재판으로 알려져 있는 행위가 가장 유명하다. 각 점령지역의 주민을 학교 운동장이나 마을 입구등으로 소집해 모아놓고 자신들이 체포하거나 납치한 인물들을 형식적 재판 이후[40] 공개적으로 처형했다. 이때 처형당한 인물들은 기업인, 교육자 정치인, 대한민국 군경 및 공무원 가족 등 북한과 좌익세력에 의해 반동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었다.

이외에도 서울의대 부속병원 학살 사건, 서천등기소 학살 사건,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 전주형무소 학살 사건, 함흥시 학살 사건 등 인민재판이라는 형식적 절차조차도 없이 자행한 학살들도 빈번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인민군에 의해 개신교인 1,026명, 천주교인 119명이 희생되었다고 발표했다. #

또한 안재홍, 김규식, 조소앙, 정지용, 손진태, 박열, 정인보, 백인제, 이광수, 방응모 등 유명 인사들을 납북하였다. 납북자의 88.2% (84,659명)가 6.25 전쟁 발발 이후 3개월(1950년 7월~9월) 동안에 납북되었으며, 그중 80.3% (77,056명)가 자택이나 자택 인근에서 납치되었다. 납북된 한국 인사 중에는 법조인이 190명, 교수 및 교원이 863명, 언론인이 226명이었다.[41] 또한 이러한 납치의 기획은 전쟁 중에뿐만 아니라 전쟁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생산된 북한 당국의 문서에서도 확인이 된다.[42] 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그 외에 한국군, 유엔군 포로에 대한 처우가 매우 처참했다. 전방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은 2~4주씩 걸어서 가깝게는 평안북도 멀리는 중국 만주지역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이때 부상을 입은 포로의 경우 들것 수송이 금지되어 걷지 못하면 길에 버려져 죽거나 사살당하는 일이 있었다. 포로들에 대한 배급 역시 열악하여 말린 채소 소량 혹은 부패한 생선 따위가 배급되었고, 이마저도 이송시에는 제공되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다. 정전 이후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적대계층으로 차별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렸다.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1990년대 북한 지도부에게는 최소 60만 명이 기근으로 사망한 책임과 1970년대 중반 이래 최소 10만 이상이 수용된 정치범 수용소나 강제노동 수용소의 인권 유린 및 일부 공개 처형 등은 비판을 피할 수 없고, 6.25 전쟁 당시 김일성조차도 한국과 협력했다고 의심받은 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보복이 과도했다고 비난했지만, 북한이 자신의 적을 그렇게 많이 죽였다는 증거는 없다고 역설했다. 예를 들면 해방 이후 토지개혁 과정의 잔인성은 소련이나 중국, 북베트남보다 훨씬 덜했고, 지도부는 지주들이 남쪽으로 피신하게 내버려두거나 농지를 경작하기를 원하는 경우 고향이 아닌 다른 지방으로 이주시켰다. 북한이 한국의 공무원, 경찰, 우익 청년단체 지도자 그리고 미국에 고용되었던 사람들을 처형했다는 보고는 전쟁 초기부터 있었지만, 초기의 처형은 대개 감옥에서 풀려난 좌익들의 한 풀이에서 비롯됐으며, 처형된 이들 대부분은 과거 북한에서 달아난 식민지 경찰, 서북청년단에 가입한 북한 지주의 아들, 한국 지주와 자본가의 아들, 식민지 정부에서 비교적 높은 직책에 있었던 자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일부 학살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사람을 가려가며 처형했다는 것이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이다.[43]

저런 주장은 남침 유도설 같은 과도한 북한을 감싸는 행위라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심지어 북한에서조차 김일성종합대학에 따르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밝히신 토지개혁에 관한 사상의 독창성'이라는 논문에서 "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비롯한 일부 나라들에서는 토지몰수규모를 바로정하지 못하고 일부는 유상몰수를 한 것으로 하여 토지개혁의 철저성을 보장하지 못하였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단순 지주뿐만 아니라 대농까지 숙청시켰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김일성 항일 운동을 인정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도 자신이 월남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대중/일생 문서에서 보듯 6.25전까지는 공산당이 그렇께까지 잔혹한 줄은 몰랐으나 스스로 "남한 사람들이 공산당을 알고 정말 반공의식을 갖게 된 것은 6.25 동란 때문입니다. 6.25 때에 공산당이 인민재판을 하고 숙청을 하고 또 농촌에 가서는 감 한 개까지 옥수수 한 개까지 세고 벼이삭까지 세서 세금받아 낼 준비를 하고 있고, 게다가 길거리 좌판에 담배 몇 갑 놓고 파는 사람들한테까지 매일 세금을 걷어가는 짓을 했습니다. 나중에 쫓겨서 북으로 올라갈 땐 대량학살까지 했습니다. 반대파에 대한 숙청은 이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그 정도가 북쪽이 훨씬 더 심했습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련[44], 중국[45], 북베트남은 최소 유상몰수를 추진한 적이 있거나 반발이 있으면 그 조치를 무르기도 했으나[46], 북한은 사람들 사이에 근로단체 등을 통해 간첩을 심거나 농촌자위대 등을 만들어서 반발을 아예 사전적으로 차단시켰다.

2024년 8월 진실화해위는 호남 지역에서의 학살 사례를 추가적으로 규명해 발표했다. 먼저 전남 영광군 지역에서 인민군 퇴각기였던 1950년 9월~1951년 1월에 그 일대를 장악한 빨치산과 지방좌익이 기독교인 124명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기독교인, 지역 유지이거나 그 일가족이라는 이유로 학살됐으며, 우리 국군 입성 환영대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학살되기도 했다. 65명은 남성, 59명은 여성, 게다가 19세 미만의 희생자는 70명이었다. 또한 전북 지역에서도 군인, 경찰, 마을 이장 등을 지냈거나 군경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학살된 피해자들을 추가로 밝혀냈다. 당시 빨치산과 지방 좌익 세력은 이들을 강제 연행해 구타해 죽이거나 인민재판을 거쳐 현장에서 총살한 것으로 조사됐다. #

6.2.2. 중국

삼대기율 팔항주의를 들먹이며 중국인민해방군은 범죄가 없는 깨끗한 군대였다고 알려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공군에 비해 북한군이 더욱 악랄했기 때문에[47] 상대적으로 비교되어서 중공군이 그나마 좀 나았다는 식의 증언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 중국 지휘관들이 아군도 자주 처벌[48]해서 나온 이야기에 가깝다.[49] 중국군도 식량을 배급하지 않고 행군을 시키거나, 낄낄 웃으며 포로들을 쏴 죽이거나, 채찍 등으로 구타, 부상당한 포로들을 산 채로 불태우는 등 각종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이하는 전부 중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유엔군 장병들이 증언한 내용이다.

'6·25전쟁'으로 부르는 대한민국과 달리 중국은 미국에 대항해 북한('조'선)을 지원했다는 뜻의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6.25 전쟁 시각
수용소에 있던 포로 일부는 손이 뒤로 묶인 채 살해되었고, 부상당한 포로들은 수류탄 혹은 몸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여 태워 죽였다.
중국군에게 잡힌 유엔군 포로 중 건강하거나 걸을 수 있는 상태의 부상자들은 수용소까지 걸어갔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들은 그 자리에 버려두고 가거나 총살시켰다. 포로들이 죽은 이유는 대부분 위생 관리 부재, 식량 부족, 이질, 폐렴 등이었다. 중국군들은 소량의 식량을 주거나 아예 주지 않았고, 배급된 식량 또한 영양가가 없었다.
또 중국군은 포로들을 자그마한 철장에 가두고 살을 에는 추위에 맨발로 서 있게 하거나 찬물에 몸을 담갔다 빼게 하곤 했다. 적군은 포로들을 두들겨 패고 물로 가득한 구덩이에 한동안 집어넣기도 했다.
죽음의 수용소들 중 한 곳은 '동굴'이라는 이름의 수용소였다. 이곳에 보내진 포로들은 담요도 없고, 화장실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활했다. 벨리 아타소이 병장은 이러한 포로 수용소들 중 한 곳인 450m짜리 터널에서 며칠을 지냈는지 모르며, 이틀에 한 번 주 모래 섞인 보리밥을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 터키인이 본 6·25전쟁' 지음: 알리 데니즐리, 옮김: 이선미, 감수 이난아
중국군은 부상당한 나를 다른 포로들과 함께 차에 태우고 새끼줄로 묶었다. 차는 여차하면 전복될 것만 같았다. 자동차 바퀴는 울퉁불퉁한 돌길 위를 지나갔다. 부상자들 중 자동차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떨어진 사람은 다시 차에 태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총을 쏴 죽여 버렸다. 중국군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흑인 미군 1명이 떨어졌다. 그는 밧줄을 붙잡고 차 뒤에 질질 끌려오다가 힘이 빠지자 그 줄을 놓았다. 중국군 중 1명이 그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그러다 중국군 1명이 내게도 총을 발사했다. 총알이 내 머리카락 사이에서 머리에 닿을 듯 지나갔다.
터키군 무자페르 쉔부르치 하사의 증언
장진호 전투 제3일째인 11월 30일 저녁까지 사망자는 수백 명에 이르렀으나 땅은 얼어 붙어서 파지지 않았다. 시체들은 잘라 놓은 목재처럼 3겹, 4겹으로 쌓아 올려졌다. 12월 1일 오후 1시를 기해 포위 돌파전은 오후 늦도록 일대 도살극을 연출했다. 이날 오후 늦게 대열이 유린되자 중국군은 부상병들이 실려 있는 트럭으로 기어 올라가서 무력하게 누워 있는 아군 부상병들을 쏘고, 찌르고 했다. 또 어떤 차에 휘발유를 끼얹어 부상병들을 산 채로 불태우기도 했다. 대열을 벗어나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명백하고 완전한 살인이었다. 나는 열두 평생을 살아도 다 하지 못할 너무도 많은 아픔과 피, 죽은 자와 다친 자들을 보았다.
미 육군 7사단 제임스 블롬 하사의 증언

7. 기타

  • 이 전쟁에서 대한민국과 북한 양쪽 모두 어디도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지는 못했다. 대한민국 국군 강계시를 단 한 번도 점령을 못 했으며 조선인민군 역시 부산광역시를 단 한 번도 점령을 못했다.
  • 미국의 역사학자 존 톨랜드가 윌리엄 딘 장군의 유족을 찾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딘 장군이 전쟁 중에 얻어먹었던 음식 중 하나가 마늘 장아찌였는데, 딘 장군은 마늘장아찌의 맛에 매우 감탄하여 일부러 하산해서 더 얻어오기까지 했다. 전후 샌프란시스코 육군 장교 회관에서 백선엽과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말이 "백 장군, 요즘 내가 말이지요, 김치를 잘 담근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김치 맛에 푹 빠졌나 봅니다." 였다고 한다.
  •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전선 각지의 부대에 알리는 전보를 쳤던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송해였다고 추정된다. 고향이 이북( 황해도)인 송해는 6·25 전쟁 당시 전보병으로 근무했는데, 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하여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당시에 쳤던 모스 부호를 기억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소개된 이승만과 로버트슨의 정전 회담 중 1번 항목의 상호 안전 보장 조약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결실을 맺었다.
  • 이오시프 스탈린은 6·25 전쟁 중 인민재판에 대한 정보를 전파받자마자 " 김일성 동무는 이 미친 짓을 중단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것인가?"라며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공산군이라는 집단은 인민의 협조를 얻는 것을 미덕[50]으로 삼는 집단인데 그 인민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짓을 하는 건 정신나간 행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탈린에게는 충격적이겠지만 인민재판을 도입한 이는 다름 아닌 김일성 본인으로, 스탈린은 자제하길 바랬던 그 짓을 김일성은 되려 자기가 앞장서서 부하들에게 명령한 것이다.
  • 이 전쟁에서 양측이 한반도에서 사용한 탄약량은, 2차 대전기 유럽 전선 전체에 쏟아부은 것에 비견될 정도로 많다.[51] 전선이 교착된 후에는 하루에 수십만 발을 쓰기도 해서, '밴플리트 탄약량'이라는 소비량 단위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6·25 직전의 국지전 때 국군 포병대가 사용한 탄약량을 보고 '좀 아껴 효율적으로 쓰라'며 탄약 보급량을 줄이고 탄약고를 걸어 잠근 것이 미국 고문단이었다는 것. 근데 이건 고문단의 잘못이 아니라 초기 한국군이 대책 없이 탄약을 낭비한 게 문제였다고 보는 게 맞다. 미군이 1949년 6월에 5,100만 발의 각종 탄약을 제공했는데, 6개월 동안 3,000만 발 이상을 소모했다. 그 와중에 옹진반도에서는 6일 동안 105mm 곡사포탄 5,572발, 각종 박격포탄 19,000여 발을 포함하여 100만 발 이상을 소모했고 전과는 북한군 69명 사살. 거의 북한군 한 명 죽이는 데 14,700여 발을 쓴 거다. 포탄만 따져도 1명당 350발을 넘기는 판이라 고문단장인 로버츠 준장이 "한국군이 탄약을 너무 낭비하니 달라는 대로 주면 답이 안 나온다"는 소리를 할 지경이었다. 참고로 당시 1개 포병대대가 동원되었으니 15문의 야포가 투입된 셈이니 1문당 하루에 62발을 갈겨댄 셈인데, 미군 포병의 탄약 제한이 105mm 야포는 하루에 50발로 제한되어 있었고 저 양이 크게 부족한 것도 아니었으니, 얼마나 갈겨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렇게 탄약을 소모해서 전과라도 있었으면 모를까[52] 사실 미군도 6.25 때 세계대전 급 화력을 퍼부어서 돈을 너무 많이 낭비했다. 그렇게 갈겨서 올린 전과가 최대로 잡아도 (즉 모든 적 병력이 105mm 탄에 죽었다고 가정할 경우) 69명 사살하는 데 그쳤으니 제한을 걸어도 할 말이 없다.
  • 6·25 전쟁 중 미군의 흑백 인종 통합 운영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인 미 육군 부사관, 아이작 우더드(Isaac Woodard, 1919~1992) 병장 피격 사건으로[53] 제33대 미합중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유색 인종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1948년 7월 26일 행정명령 9981호를 통해 미군 내의 인종 간 분리 정책 폐지를 명령했다.[54] 당시 미 해군과 공군은 즉시 대통령의 명령을 수용했지만, 보수적인 미 육군과 해병대는 그렇지 않았다. 미 극동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를 비롯한 당시 대다수 미 지상군 고위 지휘관들은 미 합중국 대통령의 이 행정명령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시된 채 남아있던 흑인 연대인 제24보병연대가 6·25 전쟁에 급파되고[55], 이런저런 논란을 거쳐 맥아더 해임 후인 1951년 10월 1일 매튜 B. 리지웨이 장군은 24연대와 같은 유색 인종 부대를 해체하고, 유색 인종 장병들은 인종 통합을 위해 백인 부대로 전출시켰다. 이후부터는 백인 부대에서도 흑인 신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 육군에서 완전한 인종 통합이 이루어진 것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더더욱 보수적이었던 미 해병대는 1952년부터 백인 부대에서 흑인 신병을 매우 제한적으로 받았고, 1960년이 되어서야 완전한 인종 통합이 이루어졌다.[56] 보수의 끝판왕인 군에서 민간보다 먼저 인종 간의 화합을 시작하도록 명령한 트루먼 대통령의 혜안은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 하와이 한국계 미국인이나 일본계 미국인도 적지 않게 참전했으며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에서 이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PARK, WATANABE 등) 유명한 인물로는 한국계 김영옥 대령, 장진호 전투 중국계 미국인 커트 리 해병 중위가 있다.(중국명 리추웬) 커트 리 중위는 중공군 포로가 " 중국인이 제국주의자가 되었냐"며 발악하자, 영어로 "나는 커트 추웬 리 중위이고 미합중국 해병대 소속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커트 리는 현재 타계하였고 "중국계로서 중공군과 맞서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용맹한 미합중국 해병대의 장교로서 명령에 따랐고, 부하들과 함께 고국( 미국)으로 귀환했다. 그것이 다이다."라는 굵직한 소회를 남겼다. 그리고 중공군 측에는 통역병으로 다수의 조선족이 참전했고, 한국군 측에서는 역시 비슷한 용도로 화교들이 지대급 병력으로 참전하거나 일선부대에 배속되었다. 전후 근래 들어 지속적 청원으로 화교 참전병들은 훈장수여로 명예회복을 한 상태. 이는 한국 화교의 절대다수가 대만계이기에 가능했던 사항으로 보이며 대만에서 "전 병력을 파견, 참전해서 북진 후 본토(중국) 수복을 하고 싶다"며 UN측에 의사를 전달했으나 확전을 우려한 맥아더에 의해 묵살당하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캐나다, 영국군에 배속되어 전투에 임한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인 ANZAC군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야전에 있어 미군, 터키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정예였으며 의정부, 양주, 가평 등지에서 용맹하게 싸운 정예부대이다. 경기북부에 이들의 전승비가 있으며 소수로 중공군 인해전술을 대파한 전사는 호주 역사에 남을 정도. 당시 미군 장성이었던 월튼 워커 중장은 호주군에게 "강철과 같은 병사"들 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 북한의 남침과 동시에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는 제4회 브라질 월드컵의 개막전 킥오프가 있었다[57]. 북한의 남침이 시작되고 있을 때 브라질 멕시코를 탈탈 털고 있었으며 경기 결과는 브라질 4:0 멕시코였다.
  • 관우의 67대손이자 관평의 66대손인 관충금(關忠金)이 중공군 신분으로 이 전쟁의 1·4후퇴에 참전하였다.
  • 한국 역사 내에서 벌어진 전쟁들 중 가장 최근이자 마지막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현재 기준에서 북한이 벌인 유일한 전쟁이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시작되었으며, 한국 역사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쟁인 만큼 이 전쟁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레전드 테드 윌리엄스는 포항 K-3 비행장에 주둔한 미 해병대 제33해병항공전대 311해병공격비행대대에 소속되어 F9F 팬서 조종사로 참전하여 총 39회의 전투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미국인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데 성공한 존 글렌이 그의 윙맨으로 함께 작전에 참가하였다.
  • 제48대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부친인 에드워드 펜스(Edward Joseph Pence Jrㆍ1929~1988)도 6·25 참전 용사이다. 미 육군 소위로 참전한 그는 이 전쟁에서의 활약으로 동성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전쟁 영웅이다.
  • 미국에 의해 연합군 점령하 일본 병사 60명이 동원되어 참전했다. 일본군이나 자위대 자격이 아니라 미군 군속(군무원) 자격으로 참전했는데, 원래 전투병이 아닌 취사요원으로 참전했었지만 워낙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조리병에서 소총수로 역할이 전환되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 중 2명의 일본인이 전사했다고 한다. 1명은 실종되었고, 그 중 1명이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그의 이름은 '히라츠카 시게하루(平塚重治)'이며 그의 동생 히라츠카 아키마사(平塚昭正)가 직접 다부동 전투의 격전지 중 하나인 경상북도 가산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 또한 미국에 의해 일본 구 해군을 중심으로 일본 특별 소해대가 편성되어 원산, 군산, 인천, 해주, 진남포 등에서 기뢰제거 등 목적으로 1,450명이 동원되었으며, # 최소 57명이 사망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미국의 스키 선수 린지 본의 할아버지 도널드 킬도도 6·25 참전 용사이다.[58] 특히 그는 동계 올림픽이 열린 정선군 인근에 주둔한 부대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다만 안타깝게도 킬도는 손녀가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워 지킨 땅에서 열린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 때문에 린지 본은 할아버지의 유골 일부를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 뿌렸다고 한다.
  • 케이툰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연재되었던 완결 웹툰 야오네집 21화에서는 6·25 전쟁을 거쳤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작가의 어머니는 피난길에 친어머니에게 버려지려다가 그걸 본 유엔군의 흑인 군인이 "아이를 버리지 말라"고 어머니에게 준 담요와 크래커로 버텼고, 그럼에도 결국에는 나무에 묶인 채로 버려졌는데 이를 후퇴하던 북한 인민군의 한 군인이 보고는 안쓰럽게 여겨 나무에서 풀어주고 돈을 쥐어주고는 마을에서 따뜻한 걸 사먹으라고 했다고 한다.[59] 그 돈을 가지고 마을로 내려가다가 한국군 장교의 눈에 띄었고, 그 장교의 지인에게 맡겨졌다가 우연히 그 집을 찾아왔던 영어교사 부인이 데려가 부부가 양녀로 삼았다고 한다. 덧붙여 작가가 어린 시절 옆집에 살았던 할머니는 평소보다 불편했던 체험쯤으로 회고했다고 하고, 작가의 시어머니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작가의 아버지는 평범하게 모내기하다 미군부대 카투사에 들어가 스크램블드에그 만드는 법을 배워온 게 다라고 한다.
  • 1950년 5월에 첫 발매하였던 칠성사이다는 사이다 출시 1달 만에 전쟁으로 사이다 생산이 중단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밀리터리 FPS 게임인 콜 오브 듀티 배틀필드 시리즈에는 2020년 6월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배경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60] 북미권에서의 “Forgotten Wars”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정전 상태인 데다 중국군이 적으로 나와서 중국 시장에 출시가 불가능해지기에 게임으로 내놓기에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전쟁이다.
  • 제주도가 전장이 되지는 않았지만 제주도는 이미 제주 4.3 사건으로 말이 아닌 상태였다. 게다가 4.3 사건으로 구속되어 본토로 수감된 사람들은 당시 전국에서 벌어진 학살로 인해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 당시 제주 출신들은 4·3 사건으로 인해 빨갱이 이미지가 덧씌워져 많은 수의 제주인들이 전쟁 때 해병대에 입대해 싸웠고 상당수의 해병이 제주 출신이었을 정도였다.
  • 중공군은 말도 안 되는 미군의 화력을 막기 위해 지하 만리장성을 수천 km 규모로 건설했다. 중공 기록만이 아니라 UN군 기록에도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공격하는 데 화력 지원을 할 수 없어 피해가 심했고 결국 UN군의 계속된 공세로도 밀지 못하고 포기했다고 한다.
  • 매년 6월 25일 대한민국 정부 주관으로 6.25 전쟁 중앙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쟁 발발일이 여름철이고 참전용사들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인 점을 고려해서 장충체육관이나 잠실실내체육관 등 서울시내 체육관에서[62] 행사를 치르고 있다. 부득이하게 야외에서 행사를 치러야 할 경우 서울공항에서 진행했던 2020년 제70주년 기념행사처럼 기온이 낮보다 낮은 야간에 치르고 있다.
  • 일부 언론사에서는 6·25 전쟁 정전 협정을 맺은 1953년 7월 27일을 종전일인 것처럼 쓰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6·25 전쟁은 종전된 것이 아니다.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정전과 종전은 엄연히 다른 거다. 풀이하자면 정전은 전쟁을 잠시 정지한다는 뜻이고, 종전은 전쟁을 종결한다는 뜻으로 확연하게 다르다. 매년 6월 25일마다 기념식을 국가에서 주최하는 것도 단순히 전쟁이 있었던 걸 기념하는 게 아니라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이니까 사기 진작과 애국심 고취를 위해 행사를 갖는 것이다. 다만, 전쟁 양상이 전면전에서 국지전으로 바뀌었을 뿐이며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제2연평해전 등 계속 전투가 발생했다.
  • 한국군의 전투보병휘장은 6·25 전쟁 기간의 공적으로만 수여하고 이후 폐지하였다.
  • 한국인에겐 가장 임팩트 있고 현재에도 영향이 있는 2개의 근현대사 이벤트[63] 중 하나지만 그동안 세계사로 볼 땐 제2차 세계 대전 베트남 전쟁 사이의 이벤트 정도로 취급되었다. 물론 냉전 시기 제1세계 제2세계가 맞붙은 첫 무력 분쟁이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전쟁 과정과 전후의 임팩트가 앞뒤 전쟁들만 하지 못해 묻힌 감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말부터 미중 관계에 긴장감이 돌며 재평가되었고 특히 중국에서 미국과 처음으로 싸운 6.25 전쟁, 정확히는 전쟁 내 중공군을 고평가하기 시작했다. 2020년에 관련 영화만 3개 이상이 나왔고 방탄소년단이 6.25 전쟁 때 대한민국 쪽의 참전 용사들에 감사를 표하자 전국적인 보이콧이 있었을 정도였다.
  • 대한민국의 참전 용사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전 이후 받은 돈은 32만원 정도밖에 안 되고, 정신적 부담이나 신체적 부담에 대해서도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비무장지대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있었는데, 이를 일부에서는 제2차 한국전쟁(Second Korean Wa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3년에 걸친 분쟁에서는 한국(남한)-미국(주한미군) 측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한국군 1사단, 주한미군, 카투사 등이 참전했으며 중소규모 국지전, 게릴라전에서 박격포를 사용한 소규모 포격전까지 있었을 정도로 나름 격렬했고 파주, 문산, 동두천까지 총탄음이 들렸을 정도였다.
  • 한국전쟁 과정에서 국군과 유엔군에 잡힌 인민군 포로들 중 일부는 정전 후 북한으로의 송환도, 남한으로의 귀순도 아닌 제3국행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남북한 당국자들의 설득, 회유로 남한에 남거나 북송되었으나, 76명의 포로들은 끝까지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은 채 결국 한반도를 떠나 이들을 수용할 의사를 밝힌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흩어져서 떠났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이러한 남도 북도 아닌 제3국행을 택한 포로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며, MBC에서는 이들의 이후 행방을 추적하여 1992년에 6.25 특집 다큐멘터리 "76인의 포로들"을 제작, 방영하였다.
  • 이 전쟁 직후 미군 한국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게 햄, 소시지, 베이크드 빈즈 등을 주었는데 이것을 찌개로 끓인 것이 부대찌개이다. 한국에서 발명되었으며 부대찌개의 기원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 우연의 결과이기는 하나 6.25 전쟁의 시작과 끝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대한민국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다. 먼저 6월 25일 새벽 4시에 전선에서 다발적으로 올라오는 보고를 접하여 본격적인 침략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최초로 인지한, 즉 공식적인 6.25 전쟁의 시작을 접한 육군본부 당직 장교는 후일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되고, 국무총리를 2번 맡은 유력 정치인이 되었다. 또한 정전 협정 석상에서 정전 사실을 협정장 밖으로 전달하며 6.25 전쟁의 끝을 알린 한 무전병은 훗날 유명 코미디언이자 국민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방송인이 되었다. 그 두 사람이 각각 김종필 송해다.
  • 일본 연예기획사 쟈니스의 창립자 쟈니 키타가와는 1952년 CIA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65] 10개월만에 한국어를 마스터 한 후[66] 판문점에서 전쟁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동시에 첩보활동을 하였으며 고아들에게 미군들의 세탁물을 세탁해오는 일을 시키면서 수익을 만들어줘 고아들이 자립할 수 있게 해주었다.
  • 한국광복군 출신의 장교들도 전쟁 과정에서 다수 전사하였다. 개전 초기 서부전선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제일 먼저 교전하다가 동두천 전투에서 전사한 수도사단 제1연대 제2대대장 이의명 소령을 시작으로 장철부, 김영남, 차약도, 박영진, 박재화, 이건국, 최철, 이무중, 이건국, 이진영 등이 전사하였다. 이 중 제6보병사단 소속으로 동부전선에서 전사한 박영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광복군 인면전지공작대 소속으로 임팔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전사한 광복군 출신 장교들은 대부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서 활동하거나 일본군 탈출 후 광복군에 편입한 20~30대의 젊은 장교들이며 이들이 전사하면서 광복군 계열 고위장교들의 명맥이 다소 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 이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을 위한 국립묘지가 국립호국원이다. 애초에 국립호국원을 조성하게 된 계기가 수요에 비해 묘역 공급이 부족했던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을 위한 보훈 강화 차원이었다. 6.25 참전에 대한 공적이 인정돼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사람과 유공자의 배우자는 사망 후 국립호국원에 안장될 수 있다.
  • 대한민국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한국인들을 제주도, 일본, 사모아(서사모아)로 이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일단 제주도는 토지가 대부분이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농사가 불리하고, 일본으로 가기엔 안 그래도 일제강점기를 겪고 해방이 된 지 얼마 안 된 한국인이 극구 반대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이고, 남은 건 사모아(서사모아)로 이주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대한민국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폴리네시아 국가가 되었을 것이고,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 한국의 역사로서는 가장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세계구급 유명세를 지닌 사건으로 볼 수 있고, 남한 대중문화가 선전하기 전까지 분단과 더불어 얼마 안 되는 국가적 이미지이기도 했다. 한편 남한으로부터 흔히 보이는 중국 비난에 대해서는 일대일로 싸웠을 때 망할 것을 외국 지원으로 북진한 거면서 북한이 외국 도움 받은 걸 뭐라 할 처지냐는 반응을 많이 볼 수 있다.
  • 미국에서 Forgotten War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나 밀덕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사건이 있는데, 아이오와급 전함인 USS 위스콘신이 1952년 3월 15일 북한의 152mm포를 한발 맞았으나 경파로 그쳤다. 그러자 위스콘신이 보유한 9개의 포문을 전부 열어 북한군 포가 위치한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자, 호위함인 USS 던칸이 “성질머리하고는…”(Temper, Temper)라고 보낸 일이 있었다.

8. 관련 자료

8.1. 학계

  • 브루스 커밍스: 대표 저서: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1(한국전쟁의 기원)은 6.25 전쟁 발발 전까지 대한민국의 내부 상황을 다뤘는데 최고의 실증 연구를 보여줬고 실제 많은 한국의 학자들이 감탄했다.그러나 정작 6.25 전쟁과 그 이후를 다룬 2권은 남침유도설을 주장하였는데, 소련 해체 이후 잘못된 점이 많다는 게 밝혀졌다.[67] 이유는 군사학적 분석을 무시한 지나친 실증주의 집착이 주 원인이었다. 반대로 1권은 주로 한국 내부를 미군 문서를 중심으로 분석했기 때문에 실증주의 집착이 오히려 강점이 됐다. 최근에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 캐서린 웨더스비: 대표 저서 "Korea, 1949-1950: To Attack, or Not to Attack? Stalin,Kim Il Sung, and the Prelude to War”,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적으로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 역사관을 깨트린 장본인이다.[68] 다만 국내에서 인지도는 낮다. 커밍스만 알고 웨더스비는 모르는 한국 국제적으로 냉전사 연구의 선봉이자 중심인 우르도윌슨센터에서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의 6.25 전쟁 연구 책임자로 일했다. 특히 그녀는 6.25 전쟁에 관련된 구소련 문서 번역을 주도했다. 그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브루스 커밍스와의 설전이다.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 회보(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Bulletin)" 에서 커밍스의 수정주의에 비판을 가했고, 커밍스는 공개된 소련 문서의 신빙성에 태클을 걸면서 수정주의를 방어했다.
  • 김학준: 대표 저서 "김학준. 『한국전쟁: 원인, 과정, 휴전, 영향』. 서울: 전영사. 2010." 1980년말 6.25 전쟁에 대한 미국 학계의 연구 성과를 국내에 소개하였다. 김학준은 추후에 6.25 전쟁을 연구하지 않았지만, 6.25 전쟁의 원인에 대한 미국의 연구 결과를 한국 학계에 소개한 것만으로 엄청난 것이었다.[69] 1980년 계간 현대사가 폐간된 일로 한국 학계에서는 6.25 전쟁을 금기시해 왔는데, 그 터부를 깨부쉈기 때문이다. 물론 김학준의 저서와 논문은 기존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고, 정교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 학계의 터부를 깨부순 것만으로 언급될 만하다. 참고로 이 도서는 1980년대 말 논문집을 집대성한 것이다.
  • 박명림: 대표 저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정치학 박사 학위 논문으로 브루스 커밍스의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에서 주장된 남침 유도설을 논파하였다. 1999년 한국전쟁의 기원을 출간하여 당시 국내 기준에서는 최고의 실증 업적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학술적인 연구를 할 때 봐야 하는 책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내놓은 한국전 요약의 비중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이 요약은 당시 스탈린과 소련의 개입을 축소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2010년대 중반에도 6.25 전쟁기를 전후한 시기의 외교 문서 관련해 가끔 새로 발굴한 자료 소식이 들려온다.
  • 김영호: 대표 연구 논문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 스탈린의 세계 전략이 6.25 전쟁에 미친 파급력을 분석하였다.
  • 김명섭: 대표 연구 저서 『전쟁과 평화 (6.25전쟁과 정전체제의 탄생)』, 정전 협정과 한미 동맹으로 구성된 6.25 전쟁과 정전 체제에 관한 연구를 집대성하였다.
  • 와다 하루키: 일본인 학자이다. 소련사와 북한사를 연구한 일본인 학자다. 북한사와 김일성 항일 투쟁사를 연구한 학자이다 보니 뉴라이트를 비롯한 세력들에게 빨갱이로 까이기도 한다. 6.25 전쟁 관련한 책도 썼다.
  • 김동춘: 대표 연구 저서 '전쟁과 사회'
  •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라는 책을 집필했다. 미군 참전자들의 회고록과 기록을 모아서 만든 책이므로 추천한다.
  • 테사 모리스-스즈키: 일본계 호주인으로 호주국립대학 교수. 한국전쟁 중 비밀리에 참전한 일본인들에 관한 기밀자료를 미 국립공문서관(NARA)에서 열람하는 데 성공, 이를 바탕으로 논문 <Post-War Warriors: Japanese Combatants in the Korean War>을 작성하였다.
  • 일본방송협회( NHK) 보도국: 위 논문을 통해 테사 모리스-스즈키 교수와 접촉하여 관련 다큐를 제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朝鮮戦争を戦った日本人>(NHK出版, 2020)를 간행했다.(<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후지와라 가즈키, 박용준 옮김, 소명출판 , 2023.으로 국내 정식 발간.)
  •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교수가 쓴 책이며, 책 서문에 몇 년 동안 집필한 혼신을 기한 책이라고 한다. 6.25 한국 전쟁을 다루지는 않았고, 한국 8.15 광복 후, 한국전쟁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북한과 남한의 상황을 보여준다.

8.2. 군사적 자료

지난 60년간 세계 각국에서 발간된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존재한다. 아마존에서 'Korean War'로 검색하면 5,263종의 책이 검색된다. 절반 이상이 참전 용사들의 수기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보니, 한국어로 된 책자도 그 양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그러나 수준이 제각각 천차만별이라 기본 텍스트는 대한민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공식 간행물부터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초등학생용부터 중고등학생용, 일반인용, 전문가용 각종 버전의 자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세금이 아깝지 않은 훌륭한 사례 중 하나다. 물론 책으로 소장하려면 구입도 가능하다. 오프라인상으로는 서울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 내부 1층 우측의 카페에 책꽂이에 판매 도서용이라 해서 진열되어 팔고 있다. 재고가 있다면 1권당 거의 2만 원대 돈으로 살 수야 있겠지만, 상업용 서적(?)이 아닌 비매품에 가까운 책이라 상설 재고 여부는 불투명하다. 군에서 발간한 전문 학술 자료인 만큼 흥미 위주의 민간 서적에 비해 훨씬 자세하게 전쟁 기간 동안 군사적, 전술적 상황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두드러진 점은 어느 전투, 전역, 작전이 있으면 세부 내용과 특정 전장의 지리 환경, 투입 부대, 전투 서열과 각 제대 지휘관 성명, 전술 지도(?)로 당시 상황 구현과 일자별 각 제대,부대의 전투 기록 명시가 있다.

그 다음은 미 육군 당국의 공간사(Official History)를 읽어 보는 게 좋다. 영문판은 미 육군 전사감실 홈피에서 무료로 구독할 수 있다. 국문판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피에서 무료로 원문 보기를 할 수 있다.
<정책과 지도> 제임스 F. 슈나벨, 온창일 옮김, 육군본부, 1974. (James F. Schnabel, Policy and Direction: The First Year, OCMH, 1972.)
<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로이 E. 애플먼, 육군본부, 1984. (Roy E. Appleman,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 OCMH, 1961.)
<밀물과 썰물> 빌리 C. 모스맨, 대륙연구소출판부, 1995. (Billy C. Mossman, Ebb and Flow, November 1950-July 1951, OCMH, 1990.)
<휴전천막과 싸우는 전선> 월터 G, 허메스, 육군본부, 1968. (Walter G. Hermes, Truce Tent and Fighting Front, OCMH, 1966.)

* 휴전천막과 싸우는 전선의 경우에는 국문판을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원문보기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현재 존재하는 미 육군 당국의 공간사 국판들의 경우, 원본에 비해 생략, 오역된 내용들이 존재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저《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The Coldest Winter)는 꼭 읽어보도록 하자.[70] 한국전을 둘러싼 열강들의 정치 싸움과 맥아더의 삽질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단, 미국인이 지은 책인 만큼 한국의 시각과 한국군에 대한 내용은 전무하다시피 하니 이 점은 참고하도록 하자.

기밀문서의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공개된 사례로는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후지와라 가즈키, 박용준 옮김, 소명출판 , 2023. (朝鮮戦争を戦った日本人, NHK出版, 2020))가 있다. NHK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출판된 도서로, 한국전쟁 시기 비밀리에 참전한 일본인 70명 및 그 유가족에 관한 기록이다. 이들은 미군과 동행하면서 실탄을 지급받아 직접 북한군 및 중국군과 교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군 당국은 오히려 일본인 요원들을 엄중히 심문했으며, 이들의 존재 및 활동을 극비에 부치는 등 사실을 은폐했다. 그 과정에서 1,03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일급비밀(TOP SECRET) 문서가 작성되었는데, 기밀에서 해제된 후 일본계 호주인 교수가 최근에 그 존재를 파악하였다. 해당 교수와 접촉한 NHK 보도국의 후지와라 가즈키(藤原和樹)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생존한 일본인 요원 또는 유가족들을 취재한 내용이다. 개요

8.3. 다큐멘터리

  • KBS 제작 10부작 <한국전쟁>
    개론적이지만 전반적으로 꼼꼼히 설명된 자료를 찾는다면, KBS에서 제작, 방영한 10부작 <한국전쟁> 다큐멘터리를 추천할 만하다. 원작은 1990년에 제작, 방영되었고 그해 한국방송대상 대상까지 받았던 작품이며, 1994년에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선정한 세계 100대 다큐멘터리에 선정됐다. #

    전 세계 아카이브를 동원해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 과정, 정전 이후 1990년까지의 상황을 정리한 프로그램이다. 전쟁의 배경, 당시 한반도와 관련된 국제적 역학, 관련 인물들의 증언 등이 잘 소개되어 있다. 이후 2010년에는 1990년 다큐를 기초로 하여 새롭게 밝혀진 사실과 자료들을 증보하여 새롭게 제작됐다. 구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문서/영상 자료와 중국 측의 협조를 받은 자료 등을 대폭 보강하였다. 또한 그간 추가로 축적된 자료에다가 각국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더했다. 이 다큐는 현재까지도 KBS가 제작한 대표적인 웰메이드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특히 1990년판 당시 생존해 있던 여러 관련자들의 증언을 많이 실어놓았는데 DVD에서 갑자기 화면비가 4:3으로 나오는 부분이 있다면 90년판 내용을 활용한 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한편으로는 비참한 전쟁의 충격에 대한 당시 휘말린 사람들[71]에 대한 인터뷰도 많이 담겨 있다. DVD로도 출시됐으며, 현재는 유튜브에 전 편이 올라왔다. KBS 홈페이지에서도 다시보기로 볼 수 있다.
  • Thames TV 제작 6부작 < Korea : The Unknown War>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는 별명답게 오랫동안 미디어에서도 소외받아온 주제였다.

    제2차 세계대전 같은 경우 영국 Thames Television에서 1973년 26부작에 달하는 걸작인 'The World at War'를 제작 및 방영했었고 베트남전 같은 경우도 종전 후 불과 8년 후인 1983년 미국 PBS에서 13부작인 Vietnam : A Television History를 제작, 방영했으나 한국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간혹 단편적으로만 제작됐을 뿐, 학자들의 심층 연구 및 주요 인사 인터뷰를 통해 만들어진 장편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전쟁이 끝나고 30년이 지났어도 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전쟁이 미디어의 관심을 받게 된 건 경제 발전 및 서울올림픽 개최 등 한국의 이름이 점점 국제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당시 한국전쟁 연구자였던 존 할리데이와 브루스 커밍스는 1982년부터 본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원했고 1986년 연구 프로젝트를 영국 Thames TV에 판매했다. Thams TV 측은 보스턴의 지역공영방송인 WGBH로부터 약 40프로 정도 펀딩을 받아 총 6부작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Korea: The Unknown War'를 1988년 6월 방영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이후 제작된 다큐멘터리들처럼 주로 미국, 서구측의 시각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해방, 분단부터 시작되는 한국전쟁 불씨부터 발발, 전개, 휴전 협상 등에 이르는 당시 한반도의 상황을 굉장히 상세하게 다뤘다. 또한 자유진영 측은 물론이고 공산권을 통틀어 그 때까지 생존해있던 한국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주요 인사들을 샅샅이 뒤져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부 인사들의 경우는 1990년에 KBS에서 제작했던 '한국전쟁'에도 똑같이 출연해 인터뷰를 했는데 KBS가 제작에 있어 나름 참고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북한 측의 시각에도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점이다. 해당 다큐에는 발발 당시 선봉에 서서 스미스 부대를 격파했던 북한군, 빨치산, 거제도 수용소의 친공포로, 평양 폭격을 촬영한 카메라맨, 지하 공장에서 군수품을 생산한 여성, 북한측 휴전협상단 등 기존 다큐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인물들이 나온다. 물론 대상이 대상인만큼 왜곡된 발언들이 대다수지만 지금 다큐에서는 보기 힘든 당시 북한 측의 주요 경험자들도 인터뷰 한 점은 다소 놀랍다.

    특히나 강태무 표무원 월북 사건의 주동자였던 강태무가 직접 나와 본인이 월북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다큐멘터리 끝에는 남쪽의 가족들을 걱정하는 발언까지 하는데 아마 서구권에서 촬영한 다큐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그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는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전쟁을 글로벌적인 시각으로 다룸에 비해 대한민국 측의 시각은 다소 빈약하게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 당시 할리데이와 커밍스의 수정주의적 시각도 반영돼 있어 지금 기준으로는 틀린 내용도 있다.

    후일담을 읽어보면 당시 브루스 커밍스와 할리데일의 수정주의적 접근은 영국과 미국 내 프로덕션에서도 꽤 논란이 돼 제작이 쉽지 않았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대본 검수 자리에서 안소니 파라 하클리 장군[72]의 반발은 물론 당시 한국측에선 촬영 허가도 제대로 내주지 않았고 심지어 나중에 한국측이 커밍스를 아예 간첩 빨갱이로 몰려고 시도했었다고 FBI가 밝히는 등 심한 방해가 있었다고 적혀있다.

    1990년 WGBH에서 방영될 때 프로듀서였던 오스틴 호이트는 Thames 방영 버전의 일부 장면 및 나레이션이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편집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할리데이와 커밍스는 제외됐다고 한다.
  • BBC 제작 4부작 <한국전쟁: The War in Korea>
    1988년에 KBS를 통해 방영된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고품격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한 BBC의 명성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당시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해당 다큐는 위의 Thames TV에서 방영된 Korea : The Unknown War보다 몇개월 앞선 1월에 방영됐었다.
  • 오르칸키노 제작 2부작 <한국전쟁의 실상>
    1994년 SBS에서 방영된 러시아 오스탄키노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는 6.25 전쟁 당시 소련, 중국 등 공산권의 동향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기밀 해제된 구 소련 문서를 통해 당시 소련이 6.25 전쟁에 비공식적으로 참전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SBS에서 먼저 방영되고 다음 날 KBS에서 방영되었다. 당초 방송 3사가 공동 구매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SBS 측이 이를 깨고 프리미엄을 얹어서 독점 방영권을 따냈고, 이에 KBS 측이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을 내세워 항의하는 바람에 SBS는 이 프로그램을 KBS에 무상으로 제공해야 했다. 당시 SBS 가시청권은 서울 및 수도권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KBS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고, KBS는 정규 편성을 변경하여 긴급 편성 방영했다. SBS에서 방영된 이후 국립영상제작소에서 재편집하여 '한국전쟁의 내막'이라는 영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 KBS 제작 <제3의 선택>
    1989년 KBS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포로교환 당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 3국을 택했던 포로출신 인물들을 심층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다.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3군데를 찾아다니며 평생을 이방인으로 떠돌아 온 그들의 삶을 추적한 작품이다.
  • MBC 제작 <76인의 포로들>
    <1부>
    <2부>
    <40년만의 귀국>
    1993년 MBC에서 제작된 2부작 다큐멘터리로 그해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중립국행을 택한 76인의 포로들의 이후 행적과 현재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로 몇년 전 KBS에서 방영됐던 다큐보다 더 다양한 지역의 포로 출신 인물들의 현지 취재를 통해 그들의 삶을 돌아본다.

    성공한 사람들도 있으나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나오며 특히 KBS 제3의 선택에도 나왔던 의대교수 출신으로 한국어를 다 잊은 '임창용'씨는 불과 몇년 후 뇌출혈로 인해 거동과 발음이 불편한 사람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다큐멘터리 방영 후 40년 만에 대한민국을 다시 찾아 거제도 포로수용소, 판문점 등을 방문했고 이 역시 방영됐다.
  • <끝나지 않은 전쟁>
    KBS가 미국의 공영방송사 WETA, 영국의 공영방송사 BBC,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사인 ZED와 공동제작한 한국전쟁 다큐멘터리. 2019년 방영되었으며, 총 2부작이다. KBS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로 볼 수 있다.
  • <숨겨진 "전쟁협력" - 한국전쟁과 일본인> (2019)[73]
    [navertv(43939750)]

    NHK에서 방송된 보기 드문 한국 전쟁 관련 다큐, 일본의 민간인 남성 60명[74]을 미군이 대동하고 그 중 18명이 한반도 최전선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것이 미 국립 공문서의 미군 작성 일급 비밀 문서에서 밝혀졌다. # 이에 관한 내용은 2020년에 국내 언론에서 일본 마이니치 신문 기사를 베이스로 국내언론들에서도 다룬적이 있다. 이 영상에서는 한국전쟁 개전초기 미국은 주일 미군을 중심으로 한국에 급파하지만 이후 부산을 중심으로한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게 되자 일본인들도 살아남기 위해 소총을 들게 된 사연이 나온다.[75]

위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출간된 단행본은 <朝鮮戦争を戦った日本人>(NHK出版, 2020)이 있으며, 최근에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후지와라 가즈키, 박용준 번역, 소명출판, 2023)으로 정식 출간되었다.

9. 창작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6.25 전쟁/창작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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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명칭

일반적으로 전쟁은 전쟁의 주체, 전투는 발생한 장소를 그 명칭으로 쓴다. 반면 이 전쟁은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발발한 날짜가 전쟁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및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공식적으로 6·25 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민간에서도 관습적으로 날짜-사건을 조합해 6·25 전쟁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방송공사에서는 공식적으로 한국전쟁으로 표기하고 있다.[76] 6·25 전쟁, 한국전쟁 외에는 6·25 사변, 6·25 동란, 한국동란, 인공난·인공난리[77], 김일성의 난(...) 등이 있는데 요즘에는 잘 쓰이지는 않는다.

북한에서는 조국 해방 전쟁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정전협정 체결일인 7.27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이라고 포장하여 매년 열병식 등의 행사를 주최하여 기념하고 있다. 당시 북한에서는 남측을 미국의 괴뢰정권, 미국의 하수인이 지배하는 악의 소굴, 미군정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침략당한 영토라는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에 남쪽에 잔존하는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조국의 남반부를 해방시키자는 의미에서 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다닌다. 좀 덜 공격적인 표현으로는 '한국전쟁'에 해당하는 ' 조선전쟁'이 있으며, 북한에서도 다소 낮은 빈도로 ' 6.25전쟁'이라고도 쓴다.

영어로는 The Korean War라고 부른다. Korean War라는 이름은 제1세계 진영에서 전쟁을 주도한 유엔군사령부에서 붙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를 '한국전쟁'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서양권 매체의 번역본에서 번역체로 쓰인다.

한편 중국에서는 조선전쟁 혹은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의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임진왜란을 부르는 표현은 보통 '만력조선지역'(萬曆朝鮮之役)이지만, '항왜원조전쟁(抗倭援朝战争)이라고도 한다. 이는 왜적에 대항해 ( 명나라가) 조선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6·25를 의미하는 항미원조와 대상만 다르다.[78] 중국 측이 6·25전쟁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전쟁을 중립적으로 바라보고자 할 때에는 조선전쟁(朝鲜战争)이라 칭한다.

일본에서는 조선전쟁(朝鮮戦争), 조선동란(朝鮮動乱) 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한국(韓國)을 한반도 남반부의 국가(대한민국)에 한정된 의미로 보고 아직도 조선(朝鮮)을 서양의 Korea에 해당하는 '한반도' 혹은 '한민족'을 일컫는 말로 쓰기 때문에 '조선전쟁'이라는 용어를 쓴다. 일본TV에서 종종 한국계 일본인들이 아리랑 등 한국문화 공연을 하는 영상이 나올때, 반드시 "조선민요 아리랑"이라고 안내 자막을 넣는다. 현대 한류문화가 아닌 전통 한반도문화를 말할 때 일본 방송과 신문은, 항상 한국문화란 표현 대신 "조선문화"라는 표현을 쓴다. (고려청자 같은 고려시대 문화라도 일단 표현은 조선문화라고 한다.) 이는 북한을 지지하는 일본 내 재일교포들의 영향도 있다.

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한전(韓戰)이라고 부른다. 대만에서는 베트남 전쟁도 월전(越戰)으로 부르고 있다. 다만 대만에서도 지명으로서는 조선(朝鮮)이 더 익숙하다. 대만의 아버지 장제스 카이로 회담 때 카이로 선언문에 "조선의 독립"이라는 어휘를 반드시 넣으라고 요구하며, 이를 반대하던 윈스턴 처칠[79]과 갈등을 빚은 적도 있을만큼, "조선"이라는 표현을 좋아하고 존중했다. UN상임이사국 시절에도 UN회의에서 한반도를 조선이라 칭한 적이 많다. 국부인 총통이 조선이라는 호칭을 좋아하니 대만 국민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제스는 결국 처칠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실제 카이로 선언문 원본(중국어 버전)에 "決定在相當時期使朝鮮自由與獨立"[80]이라고 명백하게 "조선" 및 "독립"이라고 적어놨다.[81] 민간에서는 조선전쟁(朝鮮戰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52년 공보처에서 발간한 정부 간행물 "6·25 사변 피살자 명부"와 1952년 국방부에서 간행된 정부 간행물 "한국전란지"로 표현되기도 했다. 행정 관서에서는 주로 '6·25'로 표기했다. 1973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제정한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서도 6·25 사변일(六二五事變日)이 등장하고, 2014년 3월 24일에는 6·25 전쟁일로 개정되었다. 반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국전쟁이 등재되어 있다. 민간에서는 전쟁이 발발한 날짜를 근거로 6·25 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6·25 사변 또는 6·25 동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25 전쟁이란 말은 한국, 드물게 북한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로 한국인(한국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나 국제적으로 6월 25일이 들어간 단어는 통용되지는 않는다. 한편 국제적으로 (영어권에서) 통용되는 Korean War라는 명칭은 객관성 중립성을 보여준다고는 하나, 그 번역어인 '한국전쟁'은 엄밀하게 말해 중립적이지는 않다. 전쟁의 한쪽 주체인 북한에서 스스로를 '한국'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학계에서는 학자들의 입장에 따라서 대체로 6·25 전쟁 또는 한국전쟁으로 쓰인다.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6·25'라는 명칭을 통해 우리가 얻을 교훈은 북한의 '적화 야욕'을 경계하고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자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이런 단세포적인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주장을 남겼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6·25라는 용어는 사건 발생일을 기준 삼아 단일의제로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냉전시대 절대적 사유체계로서의 6·25 담론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명섭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09년에 『한국정치외교사논총』에 발표한 논문에서, The Korean War를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과 '한국'이 가지는 역사적, 개념적 차이를 간과한 것으로 기계적인 번역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통일이후 '조선'이나 '한국'을 대신할 새로운 국호가 등장하거나 혹은 한국이라는 국호가 계속 사용될 것을 가정한다면, 그 때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명명이 적당하다고 볼 수 있느냐고 문제제기 하였다. 또한 7월전쟁, 8월전쟁, 겨울전쟁 등과 같은 다른 나라의 전쟁명명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사건발발 날짜를 기준으로 명명하는 것은 오히려 자국 민중의 경험이 온축되어 있는 동시에 가장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란 용어를 사용할 경우 '한국전쟁'은 '남한전쟁', '한국이 일으킨 전쟁' 같이 전쟁 발발 주체가 모호해지거나 전도될 우려가 있다면서 6·25전쟁이라 부르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6·25가 당시 미소 냉전체제 하에서 국제전의 성격을 띤 점을 감안하면 이 전쟁의 영문 표기는 'The 6·25 War in Korea 1950-53' 혹은 'The Communist War in Korea 1950-53'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2

참여정부에서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바 있는 서동만 상지대학교 교수 역시도 “한국전쟁은 분명히 잘못된 명칭이기 때문에 더 이상 쓰지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대한민국의 약칭이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를 무대로 남북이 모두 당사자인 이 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전쟁의 무대, 전장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반도 전쟁'이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하지만, “더 적합한 명칭을 찾을 때까지 잠정적인 것으로서 일부 연구자들이 제안한대로 6∙25 전쟁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국방부에서 발간한 군 공식 간행물을 보면 1952년부터 2004년까지 발간된 서적은 제목이 '한국전쟁'으로 되어 있었지만, 2004년부터 '6·25 전쟁'이 사용되기 시작해 2005년부터는 6·25 전쟁 한 가지만 사용하고 있다.[82] 국방부 지정 공식 용어가 과거에는 한국전쟁이었으나 2004년부터 6·25 전쟁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 중인 단행 자료를 검색하면 1980년 이전에 발간된 자료 중 제목이 한국전쟁으로 되어 있는 자료는 제목이 6·25로 되어 있는 자료보다 2배가 더 많이 검색되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출판계나 학계에서도 '한국전쟁'이란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83]

한국의 역사에서 벌어진 전쟁이 6·25 전쟁만 있는 게 아닌데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혼동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고[84], 6·25가 사건의 성격을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5·18 민주화운동이나 6·10 만세 운동 등도 바꿔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유럽에서도 2월 혁명이나 7월 혁명처럼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 근거해 명칭을 부여한 예가 존재하므로 6·25 전쟁이라고 쓰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역사적 용어는 특정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즉 역사관이 반영된 것으로서 날짜 또한 그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의회에서는 군사적인 충돌의 의미를 가진 'conflict'라는 단어를 사용해 6·25 전쟁을 지칭했다. 6·25 전쟁이 대규모 국제 전쟁으로 비치면 안 된다고 봤던 트루먼 대통령과 미국 의원들에 의해 'war'라는 단어의 사용이 사실상 금기시되었다. 6·25 전쟁이 World War III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6·25 전쟁이 '전쟁이지만 전쟁같이 느껴지지 않도록' 이를 축소하여 지칭한 것이었다. 당시엔 'Korean Conflict'라고 불렸다.[85][86] 후에 6·25전쟁이 정치인들의 손에서 역사가들의 손으로 넘겨질 때쯤, 'war'가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남한과 북한이 싸웠다고 해서 남북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간혹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87] 이는 1860년대 미국의 내전[88]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져 있는 데다, 남북으로 갈라진 (적이 있는) 곳이 한국과 미국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89] 덜 쓰인다.

11. 관련 사건

12. 어록

"나는 정전이라는 것이 결코 싸움을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게 하며 고난과 파괴를 더하고 전쟁과 파괴적 행동으로 공산 측이 더욱 전진하여 오게 되는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정전의 조인을 반대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전이 조인되었음에 나는 정전의 결과에 대한 나의 그동안 판단이 옳지 않았던 것이 되기를 바란다."
- 이승만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 더글러스 맥아더
"포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조그맣게 갈비 조각이 나요. 사람이 분해돼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요. 펑 하고 터지고 나서 가 보면 (손바닥을 반절쯤 붙잡아 보이며) 나무에 창자 조각 요만큼 걸려 있고 살 토막 요만큼 걸려 있고 그래요. 포탄 맞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버린 게 아니라 (시체를) 찾을 수가 있어야 버리죠. (영화 고지전을 보았느냐는 질문에) …그런데 그건 애들 장난이지."
- 김달육 육군 소령(퇴역), 6사단 7연대 2대대 6중대장, 8사단 16연대 1대대 2중대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평화 시에 한국에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I cannot in good conscience return to Korea as a Christian missionary in peacetime if I am not first willing to be there to help the Koreans defend their freedom in time of war,”
- 미 해군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
( 미 해병대 제1사단 5연대 본부중대 정보장교로 6.25 전쟁 당시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녹번리에서 전사)
"모두들 앉아 내 말을 들어라. 그동안 잘 싸워주어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후퇴할 장소가 없다. 더 밀리면 곧 망국이다. 우리가 더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저 미군을 보라.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 백선엽[90]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 월튼 워커
"Stand or die."
고수 혹은 죽음뿐.
- 월튼 워커
"가거라!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서 전사하거라![91] 만약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짐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저들의 손에 꼭 안겨주거라!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해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은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 모른 척한다면,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 하일레 셀라시에[92]
"한국은 걱정마세요. 한국은 걱정마세요. 여기 영웅들이 모인 군대가 가고 있습니다."
"ስለ ኮሪያ አትጨነቅ... ስለ ኮሪያ አትጨነቅ... የጀግኖች ሰራዊት እዚህ አለ።"
- 에티오피아 제국 황실근위대 메할 세파리[93], 배멀미로 인한 구토와 곧 닥칠 피바다의 두려움을 이기는 자기암시를 위한 노래를 부르며
"저는 육군 중령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언제나 전쟁터에서 살아 왔습니다. 저는 곧 태어날 자식에게 제가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 라울 마그랭베르느레 프랑스 육군 중장[94]
"국군은 대통령으로부터 명령을 기다리고 있으며, 명령만 있으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수 있다."
- 신성모
"조국통일이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소련에 가서 스탈린 동지를 만나 조선인민군의 공격허가를 받아오라."
- 김일성, 스탈린의 남침 허가를 설득하면서. #
"인민군이 서울만 점령하면 남로당원이 들고 일어나 남조선 전 지역을 해방시킬 것이다. 인민군의 진격은 해방된 지역을 향한 승리의 행진이 될 것."
- 박헌영
"특히 작년에 중국혁명이 승리함으로써 세계의 정치적 역량관계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중국혁명의 승리로 국제민주역량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국제반동세력은 심히 약화되었습니다. 중국혁명의 승리는 이승만 괴뢰도당에게도 심대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지금 장개석 도당은 이승만 괴뢰도당을 도와줄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나라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습니다."
- 김일성의 북한 내각비상회의에서 한 개전 당일의 연설.
" 장관님은 숙소에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장관님은 영국에서 오래 사셨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아무도 만나시지 않고 또 전화도 받지 않으십니다."
- 신동우
"어느 나라에서든 인민은 그들의 주권과 독립을 위해서 유혈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승리를 얻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주저해서는 안 되고 지금부터라도 장기전을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박헌영
"이 전쟁은 내전이므로, 남조선군이 38선을 넘는 것은 무방하나, 유엔군이 38선을 넘는다면, 이는 중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
- 저우언라이[95]
"우리 인민군대는 전투를 계속하면서 부득이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 인민군은 마지막 피 한 방울을 다 흘릴 때까지 용감히 싸우라."
-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향해 진격해 오던 1950년 10월 11일 밤 평양에 방송된 김일성의 음성. 그리고 몇 시간 뒤 김일성은 평양에서 도망쳤다.
"야, 이 자식아! 전쟁이 잘못되면 나뿐 아니라 도 책임이 있어!"
- 김일성[96]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통일에 착수하자는 조선 사람들의 제청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과 조선이 공동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고 중국 동지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시 검토할 때까지 연기되어야 한다."
- 이오시프 스탈린
"조선 통일은 무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미국이 대한민국 같은 작은 나라 때문에 3차 대전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미국의 개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마오쩌둥
"대한민국은 미국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나라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미국인들에게 중요합니다. 6월 25일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공격했습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독립 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북한의 남침은 유엔 헌장 위반이고 평화를 침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도전에 정면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 해리 S. 트루먼
"딘,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개새끼들을 막아야 하오. 그게 전부입니다."
“Dean, we'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and that's all there is to it.”
- 해리 S. 트루먼
"이곳은 극동의 그리스다. 만일 우리가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만 하면 다음 단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해리 S. 트루먼
"한국에서 미국의 행동은 악당들의 기습(Bunch of bandits)을 유엔이 격퇴시키는 것을 도우려고 취해진 것이오."
- 해리 S. 트루먼[97]
" 인천 상륙 작전은 5,000 대 1의 도박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확률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고, 나는 그들을 격멸할 것입니다."
"...Inchon is a 5000 to 1 gamble, but I am used to taking such odds... We shall land at Inchon and I shall crush them."
- 더글러스 맥아더
"우리는 지금 인천 앞바다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오늘 상륙 작전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전이야말로 불법 남침한 북괴군을 분쇄하고 위기에 처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정의와 자유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손원일,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USS Pikaway (APA-222)함 함교에서 상륙 개시를 기다리는 해병대 장병들에게 한 훈시.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
- 손원일
"친애하는 동포 형제자매들,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과 남녀 빨치산들, 용감한 중국인민지원군 장병들, 친애하는 동지들, 지난 7월 27일 10시에 판문점에서는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들을 일방으로 하고 미 제국주의자들을 위수로 한 무력침공군 대표들을 타방으로 하여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조선에서 정전의 달성은 외래 제국주의 련합 세력을 타승하고 미 제국주의 리승만 매국도당들을 반대하여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여 우리 조국 인민이 3년간에 걸친 영웅적 투쟁의 결과이며 우리나라와 우리 인민이 쟁취한 위대한 력사적 승리입니다."
- 김일성[98]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조선 문제는 동양의 발칸 문제다. 조선은 세계 평화와 혼란을 좌우하는 열쇠다. 전 세계의 문제이자 전 인류의 문제다."
- 후세 다쓰지[99]
"6.25 당시에 만주를 폭격했으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100]
- 김영삼, 1996년 6월 24일 중부전선 시찰 당시 발언.[101]

13. 외부 링크

1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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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대내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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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전쟁·전투 교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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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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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보안청의 평화선 침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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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
,1775 ~ 1783,
<colbgcolor=#fff,#191919> 파일: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기.svg 영국 파일: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 국기.svg 하노버 선제후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ge_Herzogtum_Braunschweig.svg.png 브라운슈바이크 파일:이로쿼이 연맹기.png 이로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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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 ~ 1800,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1공화국
1차 바르바리 전쟁
,1801 ~ 1805,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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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 ~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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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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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멕시코 전쟁
,1846 ~ 1848,
파일:700px-Flag_of_Mexico_(1823-1864,_1867-1893).svg.png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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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 ~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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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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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 ~ 1865,
파일:아메리카 연합국 국기(1861-1863).svg 아메리카 연합국
시모노세키 전쟁
,1863 ~ 1864,
파일:모우리 가몬.svg 조슈 번
포르모사 원정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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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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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침공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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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파일:스페인 국기(1785–1873, 1875–1931).svg 스페인
미국-필리핀 전쟁
,1899 ~ 1902,
파일:필리핀 국기(1898-1901).svg.png 필리핀 제1공화국
의화단의 난
,1900 ~ 1901,
파일:의화단 기.svg 의화단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멕시코 국경 전쟁
,1910 ~ 1919,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니그로 반란
,1912,
파일:쿠바 국기(1902-1906, 1909-1959).svg 쿠바 PIC
니카라과 점령
,1912 ~ 1933,
파일:니카라과 국기(1908-1971).svg 니카라과 자유주의자
아이티 점령
,1915 ~ 1934,
파일:아이티 국기(1859-1964).svg 아이티 반군
도미니카 점령
,1916 ~ 1924,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제1차 세계 대전
,1917 ~ 1918,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내전
,1918 ~ 1920,
파일: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1918–1937).svg 소비에트 러시아 파일:극동 공화국 국기.svg 극동 공화국
제2차 온두라스 내전
,1924,
파일:온두라스 국기(1898-1949).svg 온두라스군
제2차 세계 대전
,1941 ~ 1945,
태평양 전쟁
,1941 ~ 1945,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필리핀 국기.svg 필리핀 제2공화국
북아프리카 전역
,1940 ~ 1943,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서부전선
,1941 ~ 1945,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추축국 석유 차단 작전
,1940 ~ 1945,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루마니아 왕국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헝가리 왕국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내전
,1944 ~ 1948,
파일:그리스 공산당기.png 그리스 공산당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1958년 레바논 위기
,1958,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국가 운동
피그만 침공
,1961,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베트남 전쟁
,1964 ~ 1973,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파일: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기.svg 베트콩
라오스 내전
,1964 ~ 1973,
파일:라오스 국기.svg 파테트라오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1968,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EC-121 격추 사건
,196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도미니카 내전
,1965 ~ 1966,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헌법론자 파벌
캄보디아 내전
,1970 ~ 1975,
파일:민주 캄푸치아 국기.svg 크메르 루주 파일: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기.svg 베트콩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76,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엘살바도르 내전
,1979 ~ 1992,
파일: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기(1980-1992).svg FMLN
시드라 만 사건
,1981~1989,
파일: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국기.svg 리비아
그레나다 침공
,1983,
파일:그레나다 국기.svg 그레나다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레바논 내전
,1982~1984,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파일:헤즈볼라 당기.svg 헤즈볼라
리비아 공습
,1986,
파일: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국기.svg 리비아
사마귀 작전
,1988,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파나마 침공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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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필리핀 쿠데타 시도
,1989,
파일:필리핀 국기.svg 반민주 필리핀 군부 세력
걸프 전쟁
,1990 ~ 1991,
파일:이라크 국기(1991-2004).svg 이라크
모가디슈 전투
,1993,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통일소말리아회의
민주주의 유지 작전
,1994 ~ 1995,
파일:아이티 국기.svg 아이티
보스니아 내전
,1995,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파일:스릅스카 공화국 국기.svg 스릅스카 공화국
무한 도달 작전
,1998,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사막의 여우 작전
,1998,
파일:이라크 국기(1991-2004).svg 이라크
코소보 전쟁
,1999,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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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 ~ 2021,
<colbgcolor=#fff,#191919>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탈레반 정권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호라산 이슬람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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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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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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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군사 개입
,2007 ~ 현재,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알샤바브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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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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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현재,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ISIS 파일:보코 하람 엠블럼.png 보코 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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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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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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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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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파일:바그너 그룹 로고(-2023).svg 바그너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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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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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파일:카타이브 헤즈볼라 깃발.svg 카타이브 헤즈볼라
순교자 솔레이마니 작전
,2020,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2023년 이라크·시리아 주둔 미군기지 공격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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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수호자 작전
,2023 ~ 현재,
파일:최고정치위원회 엠블럼.png 최고정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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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파일:최고정치위원회 엠블럼.png 최고정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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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란 민병대의 주요르단 미군기지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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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 ~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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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보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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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스 왕국 어기.svg 프랑스 왕국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합스부르크 제국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제국 파일:스웨덴 해군기.svg 스웨덴 제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제1차 영국-마라타 전쟁
,1775 ~ 1782,
파일:마라타 제국 국기.svg 마라타 동맹
미국 독립 전쟁
,1775 ~ 1783,
파일:미국 독립전쟁기.svg 미국
프랑스 혁명 전쟁
,1793 ~ 1802,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1공화국
나폴레옹 전쟁
,1803 ~ 1815,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1제국
제2차 영국-마라타 전쟁
,1803 ~ 1805,
파일:마라타 제국 국기.svg 마라타 제국
미영전쟁
,1812 ~ 1815,
파일:미국 국기(1795-1818).svg 미국
제3차 영국-마라타 전쟁
,1817 ~ 1818,
파일:마라타 제국 국기.svg 마라타 동맹
제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839 ~ 1842,
파일:1280px-Flag_of_Afghanistan_(1931–1973).png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
제1차 아편전쟁
,1840 ~ 1842,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영국-시크 전쟁
,1845 ~ 1849,
파일:시크 왕국 국기.png 시크 왕국
크림 전쟁
,1853 ~ 1856,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제국
태평천국의 난
,1850 ~ 1864,
파일:태평천국 국기.svg 태평천국
제2차 아편전쟁
,1856 ~ 1860,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영국-페르시아 전쟁
,1856 ~ 1857,
파일:카자르 왕조 국기(1907-1933).svg 이란 숭고국
세포이 항쟁
,1857 ~ 1858,
파일:external/www.rumormillnews.com/British_East_India_Company__1801_.png 세포이 반란군 파일:무굴 제국.png 무굴 제국
사쓰에이 전쟁
,1863 ~ 1864,
파일:사츠마 시마즈 가문 문장.svg 사쓰마 번
시모노세키 전쟁
,1863,
파일:모우리 가몬.svg 조슈 번
제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878 ~ 1880,
파일:1280px-Flag_of_Afghanistan_(1931–1973).png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
줄루 전쟁
,1879,
파일:Conjectural_flag_of_Zululand_(1884-1897)_by_Roberto_Breschi_taken_from_The_South_African_Flag_Book_by_A.P.Burgers.png 줄루 왕국
제1차 보어 전쟁
,1880 ~ 1881,
파일:트란스발 공화국 국기.svg 트란스발 공화국
마흐디 전쟁
,1881 ~ 1899,
파일:마흐디국 국기.png 마흐디국
영국-이집트 전쟁
,1882,
파일:이집트 국기(1882-1922).svg.png 아라바 파샤 반란군
영국-잔지바르 전쟁
,1896,
파일:잔지바르 술탄국 국기.svg 잔지바르 술탄국
파쇼다 사건
,1898,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3공화국
제2차 보어 전쟁
,1899 ~ 1902,
파일:트란스발 공화국 국기.svg 트란스발 공화국
의화단의 난
,1900 ~ 1901,
파일:의화단 기.svg 의화단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티베트 침공
,1903 ~ 1904,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제1차 세계 대전
,1914 ~ 1918,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 헝가리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러시아 내전
,1918 ~ 1920,
파일: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1918–1937).svg 소비에트 러시아 파일:극동 공화국 국기.svg 극동 공화국
아일랜드 독립전쟁
,1919 ~ 1921,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공화국
제3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919,
파일:Flag_of_Afghanistan_(1919–1921).svg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
터키 독립전쟁
,1919 ~ 1923,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대국민회의
제2차 세계 대전
,1939 ~ 1945,
<colbgcolor=#012169> 서부 전선
,1939 ~ 1945,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1943
북아프리카 전역
,1940 ~ 1943,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동아프리카 전역
,1940 ~ 1941,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영국-이라크 전쟁
,1941,
파일:이라크 왕국 국기.svg 이라크 왕국
페르시아 침공
,1941,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이란 제국
태평양 전쟁
,1941 ~ 1945,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버마국 국기.svg 버마국 파일:자유 인도 임시정부 국기.svg 자유 인도 임시정부
그리스 내전
,1944 ~ 1948,
파일:그리스 공산당기.png 그리스 공산당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1945 ~ 1946,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비상사태
,1948 ~ 1960,
파일:Flag_of_the_Communist_Party_of_Malaya.svg 말레이시아 공산당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제2차 중동전쟁
,1956,
파일:이집트 국기(1953-1958).svg.png 이집트
제1차 대구전쟁
,1958 ~ 1961,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
,1963 ~ 1966,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
아덴 비상사태
,1963 ~ 1967,
파일:남예멘 민족해방전선.png NLF 파일:남예멘 국기.svg FLOSY
베트남 전쟁
,1964 ~ 1975,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제2차 대구전쟁
,1972 ~ 1973,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제3차 대구전쟁
,1975 ~ 1976,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포클랜드 전쟁
,1982,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걸프 전쟁
,1990 ~ 1991,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이라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공화국
보스니아 전쟁
,1992 ~ 1995,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코소보 전쟁
,1999,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시에라리온 내전
,2000 ~ 2002,
파일:Sl_RUF.png RUF 파일:라이베리아 국기.svg 라이베리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 ~ 2020,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탈레반 정권
이라크 전쟁
,2003,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이라크
제1차 리비아 내전
,2011,
파일: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국기.svg 리비아
이라크 내전
,2014 ~ 2017,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ISIS
시리아 내전
,2017 ~ 현재,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ISIS
홍해 위기
,2023 ~ 현재,
파일:최고정치위원회 엠블럼.png 최고정치위원회
번영의 수호자 작전
,2023 ~ 현재,
파일:최고정치위원회 엠블럼.png 최고정치위원회
2024년 예멘 공습
,2024 ~ 현재,
파일:최고정치위원회 엠블럼.png 최고정치위원회 }}}}}}}}}

파일:프랑스 국장.svg 프랑스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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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전쟁·전투 교전국
<colbgcolor=#ed2939> 백년전쟁
1337 ~ 1453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왕국(플랜태저넷 왕조)
제1차 이탈리아 전쟁
1494 ~ 1498
파일:나폴리 왕국 국기(1442-1516).svg.png 나폴리 왕국
제2차 이탈리아 전쟁
1499 ~ 1504
파일:나폴리 왕국 국기(1442-1516).svg.png 나폴리 왕국 파일:Flag_of_the_Duchy_of_Milan_(1450).svg.png 밀라노 공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제3차 이탈리아 전쟁
1508 ~ 1516
파일:베네치아 공화국 국기.svg 베네치아 공화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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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 ~ 1526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제5차 이탈리아 전쟁
1526 ~ 1530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제6차 이탈리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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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제7차 이탈리아 전쟁
1542 ~ 1546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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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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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 ~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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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1618 ~ 1648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파일: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국기.png 폴란드-리투아니아
프랑스-스페인 전쟁
1635 ~ 1659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상속 전쟁
1667 ~ 1668
파일:스웨덴 해군기.svg 스웨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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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 ~ 1678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파일:네덜란드 공화국 국기.svg 네덜란드 공화국
9년 전쟁
1688 ~ 1697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왕국 파일:네덜란드 공화국 국기.svg 네덜란드 공화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1 ~ 1714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합스부르크 제국 파일: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기.svg 영국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701-1750).svg.png 프로이센 왕국 파일:네덜란드 공화국 국기.svg 네덜란드 공화국 파일:포르투갈 왕국 국기(1707-1816).svg.png 포르투갈 왕국
사국 동맹 전쟁
1718 ~ 1720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1733 ~ 1735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합스부르크 왕조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제국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701-1750).svg.png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 ~ 1748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합스부르크 제국 파일: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기.svg 영국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제국
7년전쟁
1754 ~ 1763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750-1801).svg.png 프로이센 왕국 파일: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기.svg 영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Flag_of_Hanover_1837-1866.svg.png 하노버 선제후국 파일:포르투갈 왕국 국기(1707-1816).svg.png 포르투갈 왕국 파일:이로쿼이 연맹기.png 이로쿼이 연맹
미국 독립 전쟁
1775 ~ 1783
파일: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기.svg 영국
프랑스 혁명 전쟁
1792 ~ 1802
파일: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기.svg 영국 파일:포르투갈 왕국 국기(1707-1816).svg.png 포르투갈 왕국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제국 파일:네덜란드 공화국 국기.svg 네덜란드 공화국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1793-1844).svg 오스만 제국
나폴레옹 전쟁
1803 ~ 1815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제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 제국
제1차 프랑스-멕시코 전쟁
1838 ~ 1839
파일:700px-Flag_of_Mexico_(1823-1864,_1867-1893).svg.png 멕시코 중앙집권공화국
벨기에 혁명
1830 ~ 1831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연합왕국
태평천국의 난
1850 ~ 1864
파일:태평천국 국기.svg 태평천국
제2차 아편전쟁
1856 ~ 1860
청나라
코친차이나 원정
1858 ~ 1862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vn_tonki.gif 대남국
제2차 프랑스-멕시코 전쟁
1861 ~ 1867
파일:Bandera_Histórica_de_la_República_Mexicana_(1824-1918).svg.png 멕시코 제2연방공화국
시모노세키 전쟁
1864
파일:모우리 가몬.svg 조슈 번
병인양요
1866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 ~ 1871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북독일 연방
청불전쟁
1884 ~ 1885
파일:청나라 국기(1862-1889).svg 청나라
프랑스-시암 전쟁
1893
파일:태국 국기(1855).svg.png 시암
파쇼다 사건
1898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의화단의 난
1900 ~ 1901
파일:의화단 기.svg 의화단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제1차 세계 대전
1914 ~ 1918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러시아 내전
1918 ~ 1920
파일: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1918–1937).svg 소비에트 러시아 파일:극동 공화국 국기.svg 극동 공화국
터키 독립전쟁
1919 ~ 1923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터키 대국민의회
프랑스-시리아 전쟁
1920
파일:시리아 아랍 왕국 국기.svg 시리아 아랍 왕국
리프 전쟁
1925 ~ 1926
파일:Flag_of_the_Republic_of_the_Rif.svg 리프 공화국
스페인 내전
1936 ~ 1939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포르투갈 제2공화국 파일:스페인국 국기(1936-1938).svg 스페인 국민전선
제2차 세계 대전
1939 ~ 1945
<colbgcolor=#ed2939><colcolor=#fff> 서부전선
1939 ~ 1945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1943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sv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1943~
북아프리카 전역
1940 ~ 1943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서아프리카 전역
1940 ~ 1942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태평양 전쟁
1941 ~ 1945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필리핀 제2공화국 국기.svg 필리핀 제2공화국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1946 ~ 1954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민주 공화국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알제리 전쟁
1954 ~ 1962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민족 해방 전선
바밀레케 전쟁
1955 ~ 1964
파일:300px-Cm-upc1.png 카메룬 인민연합
제2차 중동전쟁
1956
파일:이집트 국기(1953-1958).svg.png 이집트
이프니 전쟁
1957 ~ 1958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가재 전쟁
1961 ~ 1963
파일:브라질 국기(1960-1968).svg 브라질
서사하라 전쟁
1977 ~ 1978
파일: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국기.svg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카반 작전
1979
파일: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중앙아프리카 제국
리비아-차드 분쟁
1986 ~ 1987
파일: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국기.svg 리비아
걸프 전쟁
1990 ~ 1991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이라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공화국
르완다 내전
1990 ~ 1994
파일:Rwandan_Patriotic_Front_Flag.svg.png RPF
보스니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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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진달래 작전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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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전쟁
1999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 ~ 2020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탈레반 정권
제1차 코트디부아르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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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드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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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 ~ 1784
파일: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기.svg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1672 ~ 1678
파일:프랑스 왕국 어기.svg 프랑스 왕국 파일:스웨덴 해군기.svg 스웨덴 제국
9년 전쟁
1688 ~ 1697
파일:프랑스 왕국 어기.svg 프랑스 왕국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1 ~ 1714
파일:프랑스 왕국 어기.svg 프랑스 왕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사국 동맹 전쟁
1719 ~ 1720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 ~ 1748
파일:프랑스 왕국 어기.svg 프랑스 왕국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스페인 제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the_Kingdom_of_the_Two_Sicilies_%281816%29.svg.png 양시칠리아 왕국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701-1750).svg.png 프로이센 왕국
미국 독립 전쟁
1775 ~ 1783
파일: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기.svg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프랑스 혁명 전쟁
1792 ~ 1795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1공화국
나폴레옹 전쟁
1803 ~ 1815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국
벨기에 혁명
1830 ~ 1831
파일:벨기에 혁명기(1830).svg 벨기에 저항군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국민의 왕국
시모노세키 전쟁
1863 ~ 1864
파일:모우리 가몬.svg 조슈 번
제2차 세계 대전
1941 ~ 1945
<colbgcolor=#ff9900> 서부전선
1940 ~ 1945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1943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sv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태평양 전쟁
1941 ~ 1945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1945 ~ 1949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트리코라 작전
1961 ~ 1962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소련
걸프 전쟁
1990 ~ 1991
파일:이라크 국기(1991-2004).svg 이라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공화국
코소보 전쟁
1999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제1차 리비아 내전
2011
파일: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국기.svg 리비아
시리아 내전
2017 ~ 현재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ISIS
번영의 수호자 작전
2023
파일:최고정치위원회 엠블럼.png 최고정치위원회 }}}}}}}}}

파일:벨기에 국장.svg 벨기에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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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ED2939> 벨기에 혁명
,1830 ~ 1831,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연합왕국
제1차 세계 대전
,1916 ~ 1918,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왕국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제2차 세계 대전
,1940 ~ 1945,
서부전선
,1941 ~ 1945,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한국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콩고 위기
,1960 ~ 1965,
파일:콩고민주공화국 국기(2003-2006).svg 콩고 공화국
걸프 전쟁
,1990 ~ 1991,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이라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공화국
코소보 전쟁
,1999,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

파일:이탈리아 국장.svg 이탈리아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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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ED2939>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1895 ~ 1896,
파일:에티오피아 제국 국기.svg 에티오피아 제국
의화단의 난
,1900 ~ 1901,
파일:의화단 기.svg 의화단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1911 ~ 1912,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제1차 세계 대전
,1914 ~ 1918,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러시아 내전
,1918 ~ 1920,
파일: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1918–1937).svg 소비에트 러시아 파일:극동 공화국 국기.svg 극동 공화국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1935 ~ 1936,
파일:에티오피아 제국 국기.svg 에티오피아 제국
스페인 내전
,1936 ~ 1939,
파일:스페인 제2공화국 국기.svg 스페인 공화국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알바니아 침공
,1939,
파일:알바니아 왕국 국기(1934-1939).svg 알바니아 왕국
제2차 세계 대전
,1940 ~ 1945,
<colbgcolor=#ED2939> 프랑스 침공
,1940,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북아프리카 전역
,1940 ~ 1943,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폴란드 국기(1928–1980).svg 폴란드 망명 정부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남아프리카 연방 파일:자유 프랑스 국기.svg 자유 프랑스 파일:그리스 국기(1822-1978).svg 그리스 왕국 파일:이집트 왕국 국기.svg 이집트 왕국
동아프리카 전역
,1940 ~ 1941,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그리스 침공
,1940 ~ 1941,
파일:그리스 국기(1822-1978).svg 그리스 왕국
유고슬라비아 전역
,1941 ~ 1943,
파일:유고슬라비아 왕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왕국 파일: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깃발.svg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파일:150px-Chetniks_Flag.svg.png 체트니크
독소전쟁
,1941 ~ 1943,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태평양 전쟁
,1941 ~ 1943,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이탈리아 전역
,1943 ~ 1945,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파일:자유 프랑스 국기.svg 자유 프랑스 파일:폴란드 국기(1928–1980).svg 폴란드 망명정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캐나다 자치령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남아프리카 연방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파일:인도 제국 국기.svg 인도 제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sv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걸프 전쟁
,1990 ~ 1991,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이라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공화국
코소보 전쟁
,1999,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제1차 리비아 내전
,2011,
파일: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국기.svg 리비아
아스피데스 작전
,2024,
파일:최고정치위원회 엠블럼.png 최고정치위원회 }}}}}}}}}

파일:태국 국장.svg 태국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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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a51931> 9군 전쟁
,1785 ~ 1786,
파일:꼰바웅 왕조 국기.png 꼰바웅
타보이 전쟁
,1787,
파일:꼰바웅 왕조 국기.png 꼰바웅
탈랑 침공
,1809 ~ 1812,
파일:꼰바웅 왕조 국기.png 꼰바웅
라오스-시암 전쟁
,1826 ~ 1828,
비엔타인 왕국 참파삭 왕국
시암-베트남 전쟁
,1831 ~ 1834,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vn_tonki.gif 대남국
시암-베트남 전쟁
,1841 ~ 1845,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vn_tonki.gif 대남국
켕퉁 전쟁
,1849 ~ 1855,
파일:꼰바웅 왕조 국기.png 꼰바웅
프랑스-시암 전쟁
,1893,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1차 세계 대전
,1917 ~ 1918,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왕국
프랑스-태국 전쟁
,1940 ~ 1941,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제2차 세계 대전
,1941 ~ 1945,
태평양 전쟁
,1941 ~ 1945,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대만 국기.svg 중국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라오스 내전
,1959 ~ 1975,
파일:라오스 국기.svg 파테트라오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베트남 전쟁
,1967 ~ 1972,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파일: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기.svg 베트콩
말레이시아 공산반란
,1968 ~ 1989,
파일:Flag_of_the_Communist_Party_of_Malaya.svg 말레이시아 공산당
베트남의 태국 국경 습격
,1979 ~ 1989,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파일:캄푸치아 인민공화국 국기.svg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
태국-라오스 국경 분쟁
,1987 ~ 1988,
파일:라오스 국기.svg 라오스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걸프전쟁
,1990 ~ 1991,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이라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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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CE1126> 필리핀 혁명
,1896 ~ 1898,
<colbgcolor=#f5f5f5,#191919> 파일:스페인 국기(1785–1873, 1875–1931).svg 스페인 제국
미국-필리핀 전쟁
,1899 ~ 1902,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미국
제2차 세계 대전
,1941 ~ 1945,
태평양 전쟁
,1941 ~ 1945,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베트남 전쟁
,1964 ~ 1969,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파일: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기.svg 베트콩
마라위 전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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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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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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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2169> 제2차 보어 전쟁
,1899 ~ 1902,
[[트란스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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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스발 공화국]]
제1차 세계 대전
,1914 ~ 1918,
[[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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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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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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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 공화국]]
제2차 세계 대전
,1939 ~ 1945,
<bgcolor=#012169> 태평양 전쟁
,1941 ~ 1945,
[[일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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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1945 ~ 1946,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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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 1960,
[[말레이시아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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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공산당]]
6.25 전쟁
,1950 ~ 1953,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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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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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
,1963 ~ 1966,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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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1964 ~ 1972,
[[베트남 민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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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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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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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2020,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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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 2017,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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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2017 ~ 현재,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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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수호자 작전
,2023,
파일:최고정치위원회 엠블럼.png 최고정치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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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0D5EAF> 그리스 독립 전쟁
,1821 ~ 1829,
<colbgcolor=#fff,#191919>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그리스-오스만 전쟁
,1897,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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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 1913,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제2차 발칸 전쟁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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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1918–1937).svg 소비에트 러시아 파일:극동 공화국 국기.svg 극동 공화국
튀르키예 독립전쟁
,1919 ~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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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1940 ~ 1945,
그리스 침공
,1940 ~ 1941,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왕국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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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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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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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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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 ~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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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1939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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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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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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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비상사태
,1948 ~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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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공산당]]
6.25 전쟁
,1950 ~ 1953,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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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
,1963 ~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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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1964 ~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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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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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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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2017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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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수호자 작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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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에티오피아 국장.svg 에티오피아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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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FCDD09>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1894 ~ 1895,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1935 ~ 1936,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제2차 세계 대전
,1942 ~ 1945,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제1차 수단 내전
,1955 ~ 1972,
앵글로-이집트 수단
에리트레아 독립전쟁
,1962 ~ 1991,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
오가덴 전쟁
,1977 ~ 1978,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소말리아
에티오피아-에리트리아 전쟁
,1998 ~ 2000,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내전
,2009 ~ 현재,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2020년 에티오피아-수단 분쟁
,2020 ~ 현재,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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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장.svg (구) 남아프리카 연방/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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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001489> 제1차 세계 대전
,1914 ~ 1918,
<colbgcolor=#f5f5f5,#191919>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러시아 내전
,1918 ~ 1920,
파일: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1918–1937).svg 소비에트 러시아 파일:극동 공화국 국기.svg 극동 공화국
제2차 세계 대전
,1939 ~ 1945,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그리스 내전
,1944 ~ 1948,
파일:그리스 공산당기.png 그리스 공산당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
,1966 ~ 1990,
파일: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당기.svg SWAPO 파일:앙골라 해방인민운동 당기.svg MPLA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파일:아프리카 국민회의 당기.svg ANC 파일:잠비아 국기(1964-1996).svg 잠비아
앙골라 내전
,1975 ~ 1990,
파일:앙골라 국기.svg 앙골라 인민 공화국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파일: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당기.svg SWAPO 파일:아프리카 국민회의 당기.svg ANC }}}}}}}}}

파일:북한 국장.svg 북한의 대내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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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ed1c27> 서부전선 교전
194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개성 인근 교전
194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개성 송악산 전투
194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포천 전투
194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옹진-은파산 전투
194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양양 돌입 사건
194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춘천 682고지 전투
194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파일:UN기.svg 유엔군
진주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베트남 전쟁
1967 ~ 1969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남베트남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1.21 사태
196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EC-121 격추 사건
1969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제4차 중동전쟁
1973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197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앙골라 내전
1975 ~ 1980년대
파일: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 당기.svg 앙골라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파일:앙골라 민족해방전선 당기.svg FNLA]] 파일:카빈다 월경지 해방전선기.svg FLEC]]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3.23 완전작전
198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우간다 내전
1980 ~ 1986
파일:우간다 국기.svg 민족저항군
판문점 총격사건
198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부여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
199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제1연평해전
199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일본 순시선 괴선박 격침 사건
2001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제2연평해전
200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대홍단호 사건
2007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Flag_of_Edward_England.svg.png 소말리아 해적
대청해전
200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연평도 포격전
201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시리아 내전
2011 ~
파일:시리아 임시정부 깃발.svg 자유 시리아군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ISIS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
201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서부전선 포격 사건
201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2020년 5월 GP 총격 사건
202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2022년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202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4 ~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

파일:소련 국장.svg 소련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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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color: #1D1D1D; margin: -6px -1px -11px"
<colcolor=#ffd700> 전쟁 교전국
1924년 에스토니아 쿠데타 시도
,1924,
<colbgcolor=#f5f5f5,#191919>
봉소전쟁
1929
스페인 내전
1936 ~ 1939
에스토니아-소련 국경분쟁
,1938,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에스토니아 공화국
소련-일본 국경분쟁
1938 ~ 1939
<colcolor=#ffd700> 하산 호 전투
1938
할힌골 전투
1939
제2차 세계 대전
1939 ~ 1945
폴란드 침공
1939
겨울전쟁
1939 ~ 1940
베사라비아-북부코비나 침공
1940
발트 3국 점령
1940
대조국전쟁
1941 ~ 1945
계속전쟁
1941 ~ 1944
페르시아 침공
1941
소련-일본 전쟁
1945
이저사변
1944 ~ 1949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그리스 내전
1944 ~ 1948
파일:그리스 국기(1822-1978).svg
그리스 왕국
6.25 전쟁
1950 ~ 1953
1953년 동독 봉기
1953
라제즈드노이호 사건
1953
헝가리 혁명
1956
U-2 격추 사건
1960
베트남 전쟁
1960 ~ 1975
소모전
,1967 ~ 1970,
프라하의 봄
1968
소련-중국 국경분쟁
1969
앙골라 내전
1975 ~ 1991
파일:앙골라 민족해방전선 당기.svg
FNLA
파일:카빈다 월경지 해방전선기.svg
FLEC
오가덴 전쟁
1977 ~ 1978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1979 ~ 1989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1988 ~ 1994
리투아니아 독립 무력 진압 시도
1991
라트비아 독립 무력 진압 시도
1991
← 러시아 제국의 대외전쟁
→ 러시아의 대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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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 국장.svg 중화인민공화국의 대내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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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국공내전
,1946 ~ 1950,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UN기.svg 유엔군
티베트 침공
,1950,
파일:티베트 국기.svg 티베트
하이난 상륙작전
,1950,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1954 ~ 1955,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이장산 전투
,1955,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진먼 포격전
,1958,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베트남 전쟁
,1955 ~ 1975,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베트남 공화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중국-버마 국경작전
,1960 ~ 1961,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중인전쟁
,1962,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1967년 인도-중국 국경 분쟁
,1967,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중소 국경분쟁
,1969,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파라셀 군도 점령
,1974,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베트남 공화국
중월전쟁
,1979,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1995 ~ 1996,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2017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2017,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2020,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2022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2022,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

북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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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역사적 사건
<colbgcolor=#ccc,#333><colcolor=black,white> 김일성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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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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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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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항일무장투쟁 타도제국주의동맹 (1926) · 카륜회의 (1930) · 명월구회의 (1931) · 조선인민혁명군 (1932) · 민생단 사건 (1932~1936) · 남호두회의 (1936) · 미혼진회의 (1936) · 동강회의 (1936) · 조국광복회 (1936)
6.25 전쟁 전쟁 발발 책임 · 승패 인식
백두혈통
우상화
김응우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김형직 · 강반석 · 김정숙 · 김정일 출생지 왜곡
관련 서적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 ·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 세기와 더불어 · 조선력사
* 괄호 안의 연도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한 연도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 및 사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연도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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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국군 및 유엔군의 기갑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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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한국전쟁 시기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국군 / 파일:UN기.svg 유엔군 기갑차량
전차 경전차 <colbgcolor=#fff,#1c1d1f> M24 채피, M41 워커 불독
중형전차 M4A1, M4 컴포지트 헐, M4A3 (76) W VVSS, M4A3 (76) W HVSS, A27M 크롬웰, A34 코멧, M26 퍼싱, T-34-85C
돌격전차 M4 (105), M4A3 (105), M4 (105) HVSS, M4A3 (105) HVSS, M4 (105) 셔먼 도저, POA-CWS-H5, M4A3 (105) "포큐파인", M45 중형전차
주력전차 센추리온 Mk.3, M46 패튼, M47 패튼
중전차 A22 처칠 크로커다일, A22 처칠
구난전차 M32 TRV
장갑차 차륜장갑차 M8 그레이하운드, BA-64AC
반궤도 장갑차 M3A1 하프트랙
궤도 장갑차 M39 AUV, M44, M75, 유니버설 캐리어 Mk.I/II
상륙장갑차 LVT-3, LVT(A)-4
구난 및 견인차량 92식 8톤 견인차 니쿠?/IJA/R, M32B1A1, M32B1A2
대전차 자주포 M18 헬캣, M36 GMC, M36B2, M10 GMC, M10 아킬레스, SU-76MC
자주포 M7B1/B2 프리스트, M37 자주곡사포, M40 GMC, M41 고릴라
차량 차량 윌리스 MB, 닷지 M37
트럭 CCKW, 닛산 180IJA, 토요타 BM, GAZ-51C, GAZ-63C, ZIS-150C
자주대공포 M16 MGMC, M19 더스터
※ 윗첨자C: 노획 차량
※ 윗첨자?: 전시 중 사용 여부가 불확실하고 일부 자료에만 등장하는 차량이거나 사용 기록 실증이 되지 않은 차량.
※ 윗첨자IJA: 일제 패망 후 남겨진 차량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둘러보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한국군 운용무기 · 파일:미국 국기.svg 미군 운용무기·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군 운용무기 ·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캐나다군 운용무기 ·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군 운용무기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군 운용무기 | 파일:tank_icon__.png 냉전기 기갑차량 }}}
}}}}}}


한국전의 북한군 및 인민지원군 기갑차량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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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한국전쟁
조선인민군, 인민지원군 기갑차량
전차 경전차 <colbgcolor=#fefefe,#191919> 공신호 전차CN, M5A1CN/?
중형전차 T-34-76X, T-34-85, M4A2 (76) WX
중전차 IS-2CN
화염방사전차 OT-34CN
장갑차 BA-64, BTR-40
자주포 SU-76M, LVT(A)-4 (ZiS-2)CN
다연장로켓 카츄샤 다연장로켓
차량 GAZ-51, GAZ-63, GAZ-64, GAZ-AA, ZiS-5, ZiS-6, ZiS-150
모터사이클 M-72
노획 차량 M24 채피, M4A3 (76) W HVSS, A27M 크롬웰NONE, M26 퍼싱, M19 더스터, M41 고릴라, 센추리온, M36 GMC, 옥스포드 캐리어, 와스프 IIC, M46 패튼, M18 헬캣
※ 윗첨자?: 사용 여부가 불확실하고 일부 자료(사진 등)에만 등장하는 차량이거나 증명이 되지 않은 차량
※ 윗첨자CN: 인민지원군이 사용
※ 윗첨자X: 소련에게 공여받은 차량이나 소수 만을 운용
※ 윗첨자NONE 전시 중 전량 유실
}}}}}}}}}


한국전쟁기의 대한민국 군경 보병장비
{{{#!wiki style="margin: 0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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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0px -11px"
한국전쟁 시기
대한민국 국군 보병장비
개인화기 소총 볼트액션 소총 <colbgcolor=#fefefe,#393b42> 38식 소총, 44식 기병총, 99식 소총, 스프링필드 M1903, M1917 엔필드
반자동소총 M1 개런드, M1 카빈
자동소총 M1918A2, M2 카빈
기관단총 M3 기관단총, 톰슨 기관단총
권총 M1911A1, M1917, M10
지원화기 기관총 92식 중기관총, M1917A1, M1919A4/A6, M2 중기관총
대전차화기 M9, M20 로켓발사기, 57mm 무반동총, 75mm 무반동총
화염방사기 M2 화염방사기
박격포 M1 81mm 박격포, M2 60mm 박격포
유탄 Mk.2 수류탄, MK3A2 수류탄, M7 총류탄발사기
냉병기 군도 구군도, 신군도, 경찰도, 30년식 총검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둘러보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한국군의 운용장비 | 파일:gun_icon__.png 냉전기 보병장비 }}}
}}}}}}



6.25 전쟁기의 영연방군 보병장비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px -11px"
한국전쟁 시기
영연방군 보병장비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파일:호주 국기.svg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개인화기 볼트액션 소총 <colbgcolor=#fefefe,#393b42> Rifle No.1 Mk.III*, No.4 Mk.I, No.4 Mk.I(T), No.5 Mk. I, P14, De Lisle Carbine
반자동소총 M1 Garand, M1 Carbine, M3 Carbine
기관단총 M1928A1, M1A1, Sten Mk.II, Mk.V, L2A1, Owen Mk.I
권총 Webley Mk.IV, Pistol No.2 Mk.I, M1911A1
지원화기 기관총 경기관총 Lewis Mk.III/IV, Bren Mk.I/II/III
중기관총 Vickers Mk.I, BESA, Browning M1919A4, Browning M2HB
대전차화기 PIAT
화염방사기 Flamethrower, Portable, No.2
박격포 Ordnance SBML 2 inch mortar, Ordnance ML 3 inch mortar
유탄 Mills No.36M
냉병기 Fairbairn-Sykes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둘러보기 : 파일:영국 국기.svg · 파일:캐나다 국기.svg · 파일:호주 국기.svg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 파일:gun_icon__.png 냉전기 보병장비 }}}
}}}}}}



6.25 전쟁의 북한군 및 인민지원군 보병장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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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6.25 전쟁
조선인민군, 인민지원군 보병장비
개인화기 소총 볼트액션 소총 <colbgcolor=#fefefe,#191919> 30년식 소총, 38식 소총, 44식 기병총, 97식 저격총, 99식 소총, 모신나강, 50식 보총, 한양 88식C, 24식 보총C, 81식 마병총C, Kar98kC, Vz.24C. 스프링필드 M1903C. M1917 엔필드C
반자동소총 SVT-40, SKS
자동소총 AVS-36C
권총 남부 권총, 나강 M1895, C96, TT-33, 발터 P38, 루거 P08C
기관단총 PPSh-41, 49식 기관단총, 50식 기관단총, PPS-43, 봉천 2형 기관단총C, 36식 기관단총C, M1921C, M1928A1C, M1A1C, MP34C, 스텐 기관단총C, 100식 기관단총C
지원화기 기관총 경기관총 11년식 경기관총, 91식 경기관총, 89식 기관총, 96식 경기관총, 99식 경기관총, DP-28, DPM, Vz.26, Vz.30
중기관총 92식 중기관총, 97식 중기관총, 24식 중기관총, PM M1910, DT, DTM, DShK, SG-43, KPV, MG34C
대전차화기 PTRD-41, PTRS-41, RPG-43, 52식 무반동포C
화염방사기 ROKS-3
박격포 27년식 척탄통C, 82-PM-37, 120-PM-43
유탄 F1 수류탄, RGD-33, RG-42
지뢰 목함지뢰, POMZ-1
※ 윗첨자C: 중공군이 사용
취소선 : 사용 여부에 논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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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장진호 전투 당시 후퇴하는 미 해병대, 인천 상륙 작전, 미군 M46 패튼 전차 앞의 한국 피난민,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가 이끄는 미 해병대 ( 인천 상륙한 미 해병대), 미군 F-86 세이버 전투기. [2] 유엔군의 최대북진선의 경우 선 이남의 지역을 동시에 점령한 것이 아닌 단순히 최대 북진 지점을 연결한 선이다. 서부전선에서 초산까지 진격했을 때 동부전선에서는 이원까지 진격한 상황이었고, 동부전선에서 혜산 청진까지 진격했을 때 서부전선에서는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청천강 부근까지 내려온 상황이었다. [3] 1953년 7월 27일 22시부터 휴전 상태이다. 정전 협정 이후에도 몇 차례 군사 충돌이 있긴 했지만 현재 실질적으로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대법원도 딱히 통일된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런 관계로 만일 남북한 간에 직접적인 교전이 다시 벌어질 경우 이를 6.25 전쟁의 연장선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전쟁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4] 제주도, 울릉도, 독도에서는 섬은 물론이고 인근 해역에서도 교전이 없었다. 다만 대한해협 해전 등 본토 연안과 서해 5도, 거제도 등 도서 지역에서는 많은 전투가 있었다. [5]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끝난 직후 자원자에 한하여 참전했다. [6]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과거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를 물리친 계기로, 황실의 친위대 소속 군인들도 포함된 칵뉴 대대가 창설되어 파병되었다. [7] 중국 인민지원군의 형식으로 참전하였다. 당대에는 중화민국(대만)이 국제사회에서 정통 중국으로 인정받으며 그에 따른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에 중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중화인민공화국은 국제사회에서 'Red China', 한국에선 ' 중공'으로 불리우는 등 정통 중국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8] 군사 고문단 및 무기 지원, 극비리에 소련 공군 참전. 2024년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전투비행'이 있었음을 언급하였고 소련 조종사들의 참전 보고서도 공개되며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소련의 참전 여부는 더이상 비공식이 아니게 되었다. 해당기사 [B] 미국은 소련과 북베트남의 참전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는데 이는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번질 우려 때문이었다. [10] 북베트남 내에 의용군을 차출하여 중공군 군복을 입고 위장시킨 후 중공군 소속으로 비밀리에 참전. 한월관계를 고려하여 베트남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B] 미국은 소련과 북베트남의 참전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는데 이는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번질 우려 때문이었다. [12] 서독 정부는 1953년 5월 80여 명 규모의 의료 지원단을 대한민국에 파견해 정전 이후인 1954년 5월부터 약 5년간 의료 지원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의료 지원 활동 시점이 정전 이후였다는 이유로 의료 지원국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2018년에야 대한민국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독일을 6번째 의료 지원국으로 인정했다. # 이에 따라 전쟁기념관이나 UN 평화 기념관 등지에서 내용 수정 작업이 이루어졌다. [13] 이탈리아는 6·25전쟁 발발 5년 후인 1955년 12월 22일에 UN에 가입했지만 6·25전쟁 당시에는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하였다. 링크. 병력도 파병했지만 전원 군의관 간호장교뿐이며 전투병력은 없다. [A] 제3세계 중립국으로서 전투병력이 아닌 의무부대를 파견하였고 포로교환 감시단 역할도 하였다. [15] 동독은 1949년부터 1959년까지 서독과 같은 국기를 사용했다. [A] [17] 참전 및 의료지원국 제외 [18] 당시에는 카스트로 정권 수립 전이어서 국군 측에 의료 및 물자 지원을 했다. [19] 물자 지원 이외에도 '멕시코와 미국 간 상대국 거주 자국민 병역에 관한 협정'에 따라 미국에 거주하던 멕시코 국적자들이 미군에 소속되어 참전했다. 6.25 전쟁/관련 기록 참조. [20] 당시 일본은 주권이 없고 미군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물자 지원 이외에도 일부 일본인들이 기뢰제거에 동원되었으며 미군의 해상운송 등에 미군 점령하 일본인들이 동원되었고 일본의 군무원이 군인(미군 소속)으로 동원되어 일부가 전투에 참가한 기록도 있다. 6.25 전쟁/관련 기록 참조. [21] 쿠바와 마찬가지로 당시엔 사회주의 계열의 바트당이 정권을 잡기 전이라서 국군 측으로 의료 및 물자 지원을 했다. 또한 이 당시 UN 정회원국이 아니었다(1955년 UN에 가입했다.). [22] 헝가리 인민공화국은 제2세계에 소속되었지만, 당시 헝가리의 반소 감정이 컸기 때문에 양측을 모두 지원하였다. 결국 소련이 1956년 무참히 밟아버려 위성국으로 만들어버린다. 의외인 점은 당시 헝가리 서기장이 "작은 스탈린"이라 불릴 정도로 열렬한 스탈린주의자인 라코시 마차시였다는 점이다. [23] 3개 사단 파병을 결정하며 참전 의사를 밝혔으나, 확전을 우려한 미국의 반대로 참전하지 못했다. 그 대신 물자를 지원했다. [24]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병력을 파병하려 했으나 무산되었고, 그 대신 물자 지원을 했다. [25]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가 참전 의사를 밝혔으나, 이스라엘 노동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 대신 물자를 지원했다. [26] 참전국의 파병 책임자 및 통수권자는 볼드체로 표기. 북한 측 지휘관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대한민국사연표에 근거함. [27] 에티오피아군 사령관으로, 최종 계급은 중장. 1974년에 공산 정권이었던 멩기스투 정권이 벌인 '60인 학살 사건' 당시 부르주아 및 황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 [28] 또한 당시 일본은 주권이 없고 미국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미군 소속으로 일본의 군무원들이 군인으로 전환되어 전투한 기록들이 있다. 또한 미군에 의해 일본 특별 소해대가 편성되어 원산, 군산, 인천, 해주, 진남포 등에서 기뢰제거 등 목적으로 1,450명이 동원되었다. # [29] 초기 인원. 전쟁중 계속 점령지에서 징집을 했기에 정확한 수는 알기 어렵다. 후지이 히데토(藤井秀人) 같이 국적이 일본인인데, 해방 후 대한민국에 남았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고 조선인민군 징집 → 국군포로 → 한국군 편입 → 일본귀국한 사람도 있다. [30] 중공군 개입 당시 중공군의 일원으로 파병한 병력으로 실제 파병 인원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31] 대한민국은 중동부 전선에서 대폭 북상한 반면 북한은 서부 전선에서 남하하며 기존의 삼팔선과 다른 분계선이 형성되었으며, 대한민국은 태봉국 철원성, 금성천, 금강산, 오성산 이남 지역을 수복하여 중동부 전선이 약 38km 북상했다. 북한은 개성시, 개풍군, 연백군, 강령&옹진반도를 점령하였다. (이후 이 지역들을 신해방지구로 북한에 편입). 결과적으로 남한이 수복한 영토가 북한에 뺏긴 영토보다 더 많아 전쟁 전의 삼팔선 대치 시기보다 남한 면적이 4,000km² 더 증가했다. 한반도 전체를 먹으려던 북한은 결국 남한에게 땅만 더 내어 준 꼴이 된 것이다. 안보적으로도 삼팔선보다 방어가 더 유리한 편이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관광이나 문화유산은 삼팔선이 더 낫다는 의견이 많다. 옹진은 금광과 온천이 있었는데, 속초보다도 큰 도시였다. 연백은 옹진보다 인구가 많으며 한반도 최대의 염전이 있었다. 무려 개성은 고려의 수도라 가옥이나 관광거리가 많다. 북한도 이를 알기에 관광지로 만들어놨다. 다만 38선 기준으로 개풍(개성의 교외지역), 연백 전 지역이 남한 영토였던건 아니다. [32] 또한 일본 특별 소해대는 1950년 11월 15일엔 원산 앞바다에서 예인선 LT-636호가 침몰해 일본인 선원 22명 사망한다. GHQ와 외무성 간에 교류된 통신기록 등 자료에서 알게 된 일본인 선원의 사망자는 최소 57명에 이른다. [33] 이대근, 현대한국경제론: 고도성장의 동력을 찾아서, 경기: 한울 아카데미, 2008, p.60 [34] 공산군의 경우 누락된 수치가 많기에 정확한 수치 추산은 힘들다. 그래서 자료를 보면 온갖 추측이 다 있다. 다만 중국과 북한과는 다르게 소련 측 자료는 확실한데, 소련군 사망자는 299명, 335대의 각종 군용기 손실. [35]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에치슨 라인은 스탈린의 남침 허락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도 한다. [36] 소련 문서는 매우 파편적이고 제한된 기록이기에 6·25 전쟁의 기원을 해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37] 김태우, "한국전쟁 연구 동향의 변화와 과제,1950-2015." 『한국사학사학회』, 32권, 2015, pp. 325-364 [38] 다만 북한은 전통적인 '양반'이 드문 지역이었다. 대신 현대 한국과 비슷하게 경제적인 격차만 있었는데 이들이 숙청의 표적에 포함된다. 이런 숙청을 피해 한국에 온 사람들이 세운 기업이나 학교 등이 현재도 남아 있다. 함석헌이나 황순원 같이 북한의 이러한 숙청을 목격한 경우 북한에서는 머슴 같은 사람들의 권력욕을 부추겨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처리하였음을 주장하였고, 심지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이라고 하여 탱크와 항공기가 시위 진압에 동원되기도 했다. 함석헌은 "김일성의 무리가 계급 갈등이 적은 이북에 '어거지 혁명'을 일으켰다"며 분개했다. 《 카인의 후예》라는 작품에서도 개판이 된 북한의 모습이 등장한다. 여기서 트라우마에 시달린 사람들이 제주 4.3 사건에 가담하는 등 북한의 정국은 대단히 혼란스러웠으며, 이는 북한에서도 정당한(?) 계급투쟁으로써 인정하고 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고위층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제거할 수 없었다. [39] 서로 말이 다르긴 하다. [40] 문제는 이 형식적인 재판이라는 것도 말이 재판이지, 사실상 사람 하나 죽이려고 몰아가는 마녀사냥의 느낌이었다. [41] 이미일,〈6·25전쟁 중 한국 민간인 납북 문제에 대한 전후 처리 현황과 과제〉 [42] 1949년 8월 5일 〈연천주재지사업보고서〉"…반동분자들을 분열.와해시키고 납치함으로써 국토완정의 결정적 역할을 높일 임무…" 1950년 8월 17일〈북조선 군사위원회 결정사항 제18호〉"서울시임시인민위원장은 각 부 각 청의 요구에 맞추어 북조선의 농업 및 산업 현장으로 50만 명을 후송하도록 한다." [43] 브루스 커밍스, 조행복(역),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현실문화, 2017, p.256~262를 참조 [44] 그나마 라스쿨라치바니예 같은 부농도 탄압하는 정책이 북한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런 정책은 훗날 비판을 자국에서도 받을 수는 있었다. 게다가 북한 쪽에서 농업개혁에 동원된 사람은 사회주의 이론에 무지한 사람들이 많았고, 봉건적 계급제를 악용하여 복수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문맹이나 빈농을 타락시킨 경우가 많았다. 괜히 스탈린조차 김일성이 너무 나간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45] 국민당의 토지개혁을 공산당도 이어받다가, 훗날 대륙을 석권하고 몇 년 지나서야 국유화를 시킨 것이었고 그런 정책도 덩샤오핑 이후 철회될 수 있었다. [46] 아예 북베트남에 통일된 남베트남 쪽은 적절한 합의점을 못해 농업 집산화를 추진하지 잘 못했을 정도나, 인민군이 점령한 남한 땅에서는 그렇지 않고 총칼로 이를 강제했다. [47] 인민재판 문서에 나오듯, 특히 초창기 북한군의 점령지 관리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48] 전쟁 범죄를 저지른 아군을 처형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6.25 회고록을 보면 중국군을 꽤 고평가한 장군들이 있다. 그런데 학살이나 약탈을 명령하지 않았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하면 처벌하는 게 일반적 군대라 딱히 특별한 건 아니다. [49] 어떤 중년의 미군은 젊은 중공군 병사가 몰래 풀어줘서 본대로 복귀할 수 있었는데, 중공군 병사가 풀어준 이유가 압권이다. (그 병사가 한 말) “난 어릴 적부터 항일 동지들이었던 미국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제 그 소원을 이뤘으니 어서 여기서 떠나라.” [50] 미덕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스탈린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가 그 "미덕"을 무시할 수 있었던 배경은 강력한 집권 체계와 전시 동원 체제가 완비된 다음이라 점령지 주민을 짓밟아도 전쟁을 수행하는 데 지장 없었기 때문이다. [51] 물론 중공군은 비뢰포 같은 빈자의 무기를 사용해서 직접 비교는 곤란하다. [52] 물론 항목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아무 효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53] 1946년 2월 12일 미 육군에서 명예 제대하고 민간 버스 편으로 집으로 귀가하는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어 휴게소 정차를 요구한 아이작 우더드 병장과 이를 거부한 버스기사 사이에 시비가 붙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아이작 우더드 병장을 집단 구타 후 유치장에 불법 감금하고 부상당한 눈을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여 실명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에서 이 사건을 공론화하여 미합중국 정부의 흑백 분리 정책 철회를 이끌어냈다. [54] 당시에는 주요 전투 병력은 대부분 백인이었고 흑인 황인종, 히스패닉등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입대 자체가 힘들었다. 입대했더라도 대부분 비전투직에다 인종별로 나누었다. 지금이야 다민족국가의 대표 주자지만 이 시절만 해도 미국은 '백인의 나라'였다. [55]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연대장 성씨가 화이트였다고 한다. 전쟁 전 한국 근무 경험이 있어서 백선엽하고도 안면이 있었다고 한다. [56] 지금처럼 피부색 따윈 상관없이 여러 인종의 병사들이 같은 참호와 막사에서 먹고 자며 부대끼는 풍경은 6·25 전쟁 당시에는 아주 생소한 모습이었으나 베트남전에 이르러서는 매우 당연시되었다. 물론 아직 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이라 장교진은 대부분이 백인이었고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패싸움을 하는 등 순탄치만은 않았다. [57] 그 유명한 마라카낭의 비극이 일어난 그 대회이다. 리우데자네이루 현지시각 기준 1950년 6월 24일 15시에 개막전이 열렸는데 리우데자네이루는 서울과의 시차가 12시간이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서머타임을 실시하고 있었으므로 동시발생이 맞다. [58] 또한 본의 전 남자친구였던 타이거 우즈의 부친은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이다. [59] 그 때문에 작가의 어머니는 그 유엔군에게 고마워서 아프리카 고아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버릇처럼 말했고, 겨울만 되면 길가에 보이는 군고구마 장수의 모자를 보면 그 인민군이 생각나서 항상 고구마를 사 온다고 한다. [60] 콜 오브 듀티의 경우 몇몇 등장인물들의 배경으로 간간히 언급되었고 미래전을 다룬 어드밴스드 워페어에선 2차 한국전쟁 미션이 있기도 하다. [61] 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으로 대한민국 국군이 밀려났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측근으로부터 "제주도로 피난해야 한다"는 제안을 들었으나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월튼 워커 미8군 사령관은 아예 대한민국 정부 서사모아로 이전하는 계획을 고려하기도 했는데, 이때 정부 이전 후보지 중에 제주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단, 제주도는 면적이 너무 좁고 농경, 식수 환경이 척박하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결국 후보지에서 제외되었다.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1.4 후퇴로 대표되는 위기가 닥치자, 미국 합동참모본부 유엔군사령부가 북한군과 중공군이 금강-소백산맥 방어선을 도달할 경우, 한국 정부를 제주도로 이전해서 차후 공세 전환의 거점으로 삼자는 구체적인 안건이 나왔지만 연합군이 서울을 재탈환하면서 백지화되었다. [62] 193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나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이들도 21세기 기준으로 모두 70세 이상의 노인이 됐다. 젊고 건강한 청년들도 6월 하순의 더위와 땡볕 아래에서 야외 행사를 치를 경우 온열질환 관련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크다. 청년들보다 체력이 떨어지는 70대 이상의 노인들의 경우 온열질환 관련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몇 배나 더 높다. [63]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 [64] 비공식 참전국 포함 [65] 일본계 미국인이었기에 당시 병역의무가 있어 징집되었다. [66] 훗날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쟈니스 소속 아이돌의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했다. [67] 원서는 레이건 집권 초기인 81년에 나왔으나 한국어판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나왔다. [68] 그렇다고 해서 웨더스비의 시각이 전통주의 시각은 아니다. 자세한 것은 6.25 전쟁/전쟁 발발참고. [69] 김학준은 주로 러시아학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70]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과 엘리트들의 실수를 조명한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를 집필한 인물이기도 하다. [71] 참전 당시 끔찍한 기억을 증언하는 군인이나 학살이 일어난 지역의 주민 등 [72] 한국전쟁 당시 글로스터 부대의 임진강 전투 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됐고 석방 후 군에 남아 이후 대장까지 올라갔다. 한국에도 그의 회고록이 발간돼있다. [73] 이 영상의 심문 기록은 1급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미군은 일본인 당사자들에게 외부 발설을 금지하고 이 사실을 봉인해 왔다. [74] 호주국립대학교의 테사 모리스 스즈키 교수와 NHK에서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70명으로 나온다. 군무원 신분으로 통역/취사/수리/의무/운전 등을 담당했다. [75] 이들 중에 전사자도 나오게 되는데 하필이면 대전 전투[103], 다부동 전투[104] 등의 네임드급의 한국전쟁 주요 전투였다. [76] 일반적으로 전쟁의 명칭은 전쟁이 벌어진 돈바스 전쟁처럼 지역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처럼 세력이나 국가의 명칭이 붙는 경우가 많다. 그도 아니라 기간이 긴 경우를 의미하고자 할 때는 백년전쟁이나 30년 전쟁처럼 전쟁이 일어난 기간을 넣기도 한다. 전쟁이 발발한 날짜를 넣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77] ' 인민공화국의 난리'란 뜻. [78] 물론 항왜원조의 조선은 옛 조선왕조라 오늘날의 남북한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반면, 항미원조의 조선은 북한 한정이고 남한은 적의 입장에 있다. 정작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수도는 남한의 수도인 서울이다. [79] 영국은 영일동맹이나 LON 시절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임을 공식 인정한 경력이 있어서, 일본과 원수가 된 뒤에도 조선의 독립이 껄끄러웠다. [80] 결정재상당시기사조선자유여독립. 상당한 시기에 조선을 자유 독립하도록 결정한다. [81] 영어 버전은 Korea이다. [82]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간행물 목록에서 확인 가능. [83]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자료 검색에서 확인 가능. [84] 하지만 이 견해는 The Korean War’라는 영어 표현에 대해서는 타당한 지적이지만 국문 명칭인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약점이 있다. 한국(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벌어진 전쟁은 아직까지는 한국전쟁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85] 굳이 번역하자면 한국에서의 충돌, 한국 사태 [86] Police Action(치안활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탓에 6.25 전쟁과 관련된 영문 유튜브 영상들에선 '한국 전쟁이 이 정도로 규모가 큰 전쟁인 줄은 몰랐다'며 충격을 받는 미국인들의 댓글 반응을 종종 접할 수 있다. [87] 실제로 남한과 북한을 모두 표현할 때 남북이라는 표현을 쓴다. [88] 한국어 명칭으로, 정작 미국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그냥 미국 내전, 영어 표현으로는 American Civil War라고 자칭한다. [89] 대표적으로 베트남. 다만 이 쪽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명칭이 따로 있다. [90] 다부동 전투 당시 방어 담당 구역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후퇴한 11연대 1대대 장병들에게 한 발언. 이 발언 직후 백선엽은 주머니 속 권총을 뽑아 사단장 일선 돌격을 감행한다. 참고로 김석원은 맨날 이런 짓 하다가 미군에게 일본군 출신답다고 찍혔다. 결국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인식이 다른 것이다. [91] 이는 정말로 가서 죽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원정군의 결의와 의지를 고취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발언이다. [92]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편입되고 국제적인 평판을 올리려는 계산도 있지만 1, 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가 침공하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끝내 무시당하고 이를 아득바득 간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집단 안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93] 보병, 기병, 포병, 저격병 중에서 최상위의 성적을 낸 초일류를 혹독하게 훈련시켜 구성된 부대로 창과 방패를 든 기병대가 기관총을 들고 온 이탈리아군을 여러번 깨부순 전적이 있으며 이탈리아군 내부에선 이 자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성기를 자르고 다닌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6.25 전쟁에서는 스위스군의 훈련을 받은 황실 근위대말곤 별 다른 전력이 없었던 에티오피아의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예병 올인에 가까운 6,037명이 투입되어 253전 253승의 괴물같은 전적을 쌓았으며 중공군과 북한군 내부에서는 난생 처음보는 검은 귀신들 사람을 잡아먹고 다닌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94]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와 베트남 독립문제로 병력 대부분이 동남아에 주둔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본국에서 대대급인 외인부대를 파견하는데, 당시 대대장에 위임하려면 중령이어야 했음으로 중장이던 그를 중령으로 강등시킨 후 위임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본국 프랑스에선 이미 2차대전 전쟁영웅인 그가 제발로 가려는 걸 만류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국방차관인 막스 르젠이 "미군은 대대장이 중령인데 중장인 당신이 대대장을 하는 건 이치에 안 맞는다." 라는 식으로 만류했다. 하지만 위의 말을 남기며 스스로 강등을 자처하여 파병되었고 몇 개월 후에 본 계급인 중장 계급을 돌려받는다. [95] 1950년 10월 1일 대한민국 국군 제3보병사단이 강원도 양양에서 삼팔선을 넘어 북한 영토로 진격을 시작한 직후 한 발표. [96] 1950년 11월7일 피난 당시 만포진에 있는 소련대사관 파티에서 만취한 김일성이 박헌영 부수상과 전쟁에 대한 이견으로 언쟁할 때, 대리석으로 된 잉크병을 박헌영에게 던지며 한 말이었다. [97] 1950년 6월 28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 행위를 유엔의 경찰 행위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한 기자에게 트루먼이 한 대답. [98]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전쟁 승리를 자축하는 이른바 '전승열병식'에서 한 연설 내용 # [99] 6.25 전쟁과 관련이 깊지 않지만 정치인이나 외교관이 아닌 일개 변호사가 무서울 만큼 한반도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통찰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발언을 한 후세 다쓰지는 6.25 전쟁 발발과 정전까지 모두 지켜보고 사망하였다. 이후 발칸반도에서도 구 유고 내전,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연방의 대립, 키프로스 분쟁을 비롯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것을 구 1세계 및 유럽권 전체가 떠안게 됨으로써 이 발언이 역으로 실행되기도 하였다. 뭐 이 발칸반도는 1차 대전의 원인으로써 지목된 것이고 구 유고 내전은 그렇게 전 세계에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100] 여야, 김대통령의 6.25 만주 폭격 발언 놓고 치열한 성명전 [101] 김영삼대통령의 6.25만주폭격주장 회고 관련 안보 논쟁 가열 1996.6.26 kbs뉴스 김영삼 대통령 만주 폭격 발언 일파만파 여야 만주 폭격 공방 김영삼대통령의 6.25만주폭격주장 회고 관련 안보 논쟁 가열 1996.6.26 kbs뉴스 김영삼 대통령 만주 폭격 발언 일파만파 여야 만주 폭격 공방 [102] 국군의 전투보병휘장은 오로지 50년대에 6.25 전쟁의 포상으로만 수여되고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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