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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colbgcolor=#fff,#191919> 1979년 ~ 1989년 | ||
장소 | 태국- 캄보디아 국경, 타이만 | ||
결과 | 베트남의 철수 | ||
교전 국가 및 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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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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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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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캄보디아를 점령한 베트남과 태국 간의 국경 분쟁으로 벌어진 전쟁이다.2. 배경
베트남 전쟁 시기 태국은 인도차이나의 공산화를 우려하여 미국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고 4만 6천명의 미군을 태국에 유치하였으며, 1951년부터 1975년까지 태국 국방예산의 50%에 해당하는 9억 3,500만 달러 어치의 군수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괌 독트린을 선언하고 1975년에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은 극적으로 줄어 1976년까지 태국에 주둔한 미군은 모두 빠져나갔고 태국은 주변의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이 모두 공산화되어 공산주의에 완전히 포위된 형세가 되었다. 태국의 지도자들은 물론 중국까지도 베트남의 최종 목표는 태국을 병탄하는 것에 있다고 봤다. 덩샤오핑은 미국 방문 때 베트남의 1차 목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이며 그 다음엔 태국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경고했고, 싱가포르와 호주 역시 베트남 세력권의 확장에 경기를 일으켰다.[1]한편 캄보디아-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이 승승장구하면서 민주 캄푸치아 내에 베트남군이 입성했다. 초기에 태국은 이상할 정도의 낙관을 보이면서 프놈펜은 절대로 베트남군에게 점령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베트남의 침공이 전면공세인 것이 확실해지자 태국 측은 즉시 조용해졌다. 민주 캄푸치아의 영토 대부분이 베트남에게 점령당하면서 크메르 루주가 태국의 국경 지대로 도망쳤다. 이후 중국의 도움으로 크메르 루주의 군대가 재편성 되었다. 베트남은 크메르 루주의 게릴라를 추격하기 위해 태국 국경에 포격을 하고 태국 국경에 침공하면서 베트남과 태국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캄보디아에 주둔한 베트남군은 소련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그 수가 무려 12개 사단, 16만명에 달해 태국군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반면 태국은 미국이 떠나면서 방위공백에 시달릴 뿐더러 어떠한 전쟁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1954년 마닐라 조약과 1962년 러스크-따낫 합의를 통해 유사시에 미국이 태국을 방위해줄 것이라는 안전보장이 그나마 태국의 자산이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세아토가 1977년에 해체된 상황이었으며, 미국은 지상군까지 보내준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나마 중국에 기대볼 수 있었지만 중월전쟁에서 중국의 시원치 않은 전투력은 태국 지도자들을 절망시켰다.
3. 전개
베트남이 크메르 루주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면서, 많은 크메르 루주군과 난민들은 태국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크메르 루주군을 추격하러 태국에 들어온 베트남군이 태국의 마을 2곳을 포격하고 임시 점령했다. 또한 태국 군용기 2대를 격추시키는 등 베트남군이 크메르 루주군뿐만이 아니라 태국 또한 공격하면서 사실상 태국과 베트남의 전쟁으로 번졌다. 베트남군은 크메르 루주를 완전히 박멸시키기 위해 소련제 탱크를 동원하여 태국 국경을 침공하는 작전을 개시했고, 태국 영토에 소련제 무기를 배치하였고, 태국은 자국 영토에 들어온 베트남군을 쫓아내기 위해 포병과 공군을 동원하였다.태국은 국경경비대를 동원해 베트남군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태국과 베트남이 대립하던 소식을 들은 캄보디아 22,000명의 민간인들은 베트남군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태국으로 피신했다. 1983년 12월에는 베트남이 태국 동부 국경 근처에 군대, 탱크, 장갑차를 이동시켰고, 지속적으로 태국군과 충돌했다. 베트남군의 공격으로 태국군뿐만 아니라 민간인들까지 베트남군의 공격을 맞고 사망했으며, 태국군은 전투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해 전 병력이 총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1984년 태국군이 태국 영토에 침입한 베트남군을 체포하여 캄보디아로 송환했는데, 이들은 태국으로 도망친 크메르 루주군을 추격하기 위해 들어왔다고 말했다.
1985년 베트남군이 대부분의 크메르 루주군의 주요 기지를 모두 점령했다. 2월에는 베트남군이 크메르 루주의 진지를 포격했으며 이 근처에 있던 태국군들은 크메르 루주군의 탈출을 위해 베트남군에게 경고 사격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태국인 1명이 사망했다. 4월에 태국 국경에 있던 경찰이 침입한 베트남군과 마주치면서 10분 간 교전이 발생하던 중 태국 경찰이 베트남군 1명을 사살했고, 5월에는 다수의 태국군이 베트남군이 설치한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
태국 정부는 1984년 11월부터 1985년 5월까지 베트남군이 태국 국경에 침입한 보고가 40건이나 들어왔다며 베트남을 비난했으나, 베트남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여전히 태국군은 태국에 침입한 베트남군을 최대한 캄보디아로 되몰아넣으려고 했다.
1986년 베트남이 태국에게 크메르 루주를 지원하지 말라고 하였고, 이를 거부할 경우 '결과'를 감수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겁주기였고 이어 태국도 강하게 나서기 시작했다. 1987년 태국의 육군 총사령관이 태국 영토에 침입한 베트남군에 대한 총공세를 예고하였고, 정말로 얼마 후 베트남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태국인들의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그러나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는 베트남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이 태국의 보호를 뚫고 크메를 루주를 지속적으로 공격한 결과 크메르 루주의 대부분이 소탕되었고 캄보디아 본토를 전부 점령한 상황이라 목적을 이룬 베트남은 1989년 마지막으로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난민캠프 중 최대 규모의 캠프를 포격 후 9월부터 베트남군은 태국에서 철수하였다.
[1]
예외적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중국을 더 위협으로 봤기 때문에 베트남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자고 주장했지만 태국 측에게 기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