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9 20:45:10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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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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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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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통일과 정의와 자유
상징
국가 Deutschlandlied[1]
국화 참나무[2]
국조 검독수리
역사
독일 통일 1990년 10월 3일
면적
357,168㎢
수도
베를린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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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구 83,513,000명(2019년)
인구 밀도 230명/㎢(2018년)
출생 인구 738,000명(2015년)
기대 수명 80세(2015년)
출산율 1.45명(2015년)
출신 구성 백인 90%(독일 79.9%, 기타 10.x%), 아시아 8%(터키 4%, 아랍 1%, 기타 아시아인 3%), 아프리카 1%, 기타 1%
공용 언어 독일어
종교 기독교 54%( 가톨릭 28%, 개신교 26%), 무종교 37%, 이슬람 5%, 기타 4%
군대 독일 연방군 }}}}}}
하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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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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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공화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민주주의 지수 169개국 중 13위(2017년)[3]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Frank-Walter Steinmeier)
총리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상원 의장 다니엘 귄터
(Daniel Günther)[4]
하원 의장 볼프강 쇼이블레
(Wolfgang Schäuble)[5]
헌법 재판소장 안드레스 포스쿨레
(Andreas Voßkuhle)
대법원장 베티나 림페르크
(Bettina Limp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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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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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시장경제
GDP 4조 291억 4,0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 48,670 달러(2018년)
GDP(PPP) 4조 3,790억 7,3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PPP) 52,897 달러(2018년)
수출량 1조 4,479억 6,700만 달러(2017년)
수입량 1조 1,666억 8,800만 달러(2017년)
세출량 1조 5,730억 달러(2017년)
세입량 1조 5,980억 달러(2017년)
외환보유고 2,003억 9,400만 달러(2016년)
신용 등급 Moody's Aaa, S&P AAA, Fitch AAA
공식 화폐 유로(€) }}}}}}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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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년법 서력기원
시간대 UTC+01:00( 서머타임 적용)
도량형 SI 단위 }}}}}}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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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수교 현황 대한민국: 1955년, 북한: 2001년[6]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90일
국제 연합 가입 1973년[7] }}}}}}
주한 대사관/총영사관
서울특별시 중구 한강대로 416
국가 코드
276, DEU, DE
ccTLD
.de
홈페이지
https://www.bundesregierung.de
국제 전화 코드
+49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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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ndenburger_Tor_abends.jpg
독일 전경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언어4. 역사
4.1. 과거사 문제
5. 인구6. 행정 구역7. 지리
7.1. 기후
8. 교통9. 관광10. 민족11. 교육12. 종교13. 사회
13.1. 이민13.2. 욕설에 대한 처벌13.3. 학문
14. 정치15. 경제
15.1. 최저임금15.2. 자산15.3. 연금제도15.4.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
15.4.1. 사회지표에 대한 반론
16. 군사17. 문화18. 외교19. 인물
19.1. 유명인
20. 캐릭터21. 관련 문서22. 둘러보기

1. 개요

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또는 독일 중부유럽에 위치한 국가이자 서유럽에 포함되기도 하는 국가다.

시계 방향으로 북쪽에 덴마크, 동쪽에 폴란드, 체코, 남동쪽에 오스트리아[8], 남서쪽에 스위스, 프랑스, 서쪽, 북서쪽에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댄다. 그야말로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수도는 베를린.

유럽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프랑스와 함께 현 유럽연합 체제를 이끄는 국가[9]다. 그리고 EU의 경제를 책임지는 유로존 최대의 물주이기도 하다.

독일에는 여러 운하가 있는데 그 중에서 독일 북부에 있는 킬(Kiel) 운하는 지금까지도 잘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강 사이 사이를 연결한 마인 도나우 운하는 환경 파괴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고, 카를스루에 대학 베른하르트 교수가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하며 마인-도나우 운하를 예시로 든 적이 있다. 다만 킬 운하로 와전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GDP 4위[10][11], PPP 5위, 특별인출권 유로화, 1인당 GDP 18위, 국제통화기금 투표권 4위[12], 보유고 2위[13], 무역량 총합 3위 # , AIIB 지분율 4위이다.[14] 국방 분야에서는 국방비 세계 9위, 군사무기 수출은 세계 5위를 하고 있다.

2. 상징

2.1. 국호

독일어로 도이칠란트(Deutschland, /ˈdɔʏtʃ.lant/)라고 부른다. 풀어서 쓰면 독일인의 땅(Das Deutsche Land)이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다. 더치(Dutch)와도 어원이 비슷하다. 과거에는 Diutschlant, Tiutschlant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했다.

다른 언어는 유래가 다른 국호를 쓰고 있다. 이탈리아어, 영어, 러시아어는 라틴어 게르마니아(Germania)에서 따온 저머니(Germany), 제르마니아(Germania)[15], 게르마니야(Германия),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는 게르만 민족인 알레마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알마뉴(Allemagne), 알레마냐(Alemanha), 알레마니아(Alemania), 폴란드어는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한 녬치(Niemcy),[16]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는 작센족에서 유래한 삭사(Saksa), 삭사마(Saksamaa)로 부른다. 라트비아어, 리투아니아어는 발트어권의 어원이 불분명한 바치야, 보키에티야로 부른다.

대한민국에서 부르는 독일(獨逸)이라는 명칭은 일본의 한자 음역으로 들어온 것이 정착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독일이라고는 거의 쓰지 않으며 도이츠(ドイツ)라고 쓴다. 독일이라는 한자 표기도 도이칠란트를 줄여부른 도이치를 한자로 음차한 단어를 의도한 표기였다.[17] 한글을 쓰는 대한민국에서는 독일, 도이치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독일이라는 표현이 자리잡았지만, 일본에서는 획수가 복잡한 독일보다는 도이츠가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 도이츠라는 표현이 자리잡았다.

개화기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덕국(德國)[18]이라는 표현도 쓰였으나 지금 이 표현은 독일을 일컫는 속어로만 쓰인다. 또 다른 중국식 음역으로 알레마니아에서 따온 일이만(日耳曼)이 있다. 많은 국가들이 한국어로 원어 명칭에 가까운 발음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영국, 미국, 호주 등과 함께 어지간해선 원어 명칭으로 불리지 않는 국가에 속한다. 1980년대 교과서에서 원어 발음을 따른 도이칠란트를 쓰기도 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도이칠란트 표기를 고집하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명칭이 독일로 쓰이고 있다. 원어 명칭을 한국어 발음으로 바꾸었을 때 5음절이나 되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원어로는 도이치-란트[ˈdɔʏtʃ.lant]로 2음절에 불과하지만 한국어에는 없는 이중 모음인 오이[ɔʏ], 음절 끝의 치[tʃ], 은트[nt] 때문에 음절 수가 늘어나서 독일이 더 선호된다.

2.2. 국기

파일:attachment/germany1.jpg

국기는 검정, 빨강, 금색의 3색으로 구성된 연방기(Bundesflagge)다. 국장인 독수리가 붙어 있는 연방국가 직무기(Dienstflagge der Bundesbehörden) 혹은 연방직무기(Bundesdienstflagge)도 있는데, 연방 정부의 부서에서만 사용되고 민간이나 주 정부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가끔 연방직무기가 현 독일과 구분하기 위해 서독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가로로 다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민간에서는 세로로 달기도 한다.

파일:attachment/독일/5CIpRHp.png

검정은 억압과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1813년 해방 전쟁에서 나폴레옹에 대항한 뤼트초프 의용군의 군복색에서 이 3색이 왔다고 보기도 한다. 프로이센 왕국의 소장(Generalmajor) 아돌프 폰 뤼트초프 아래로 모인 독일 전역의 의용병들은 저마다 다른 군복이나 사복을 들고왔기 때문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 옷을 검정으로 물들였고 놋쇠 단추를 금색으로 달았고 소매를 빨강으로 썼다. 당시에 이 3색은 예속의 어둠에서 피의 살육을 지나 자유의 금빛으로라는 의미를 가졌다.

1848년 처음 국기로 지정되었으나 폐지되고 검정, 하양, 빨강으로 구성된 삼색기로 바뀌어서 이것이 독일 제국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1918년 제정이 폐지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되었을 때도 1919년까지 잠깐 독일 제국의 검정, 하양, 빨강의 삼색기가 사용되었다. 1919년 검정, 빨강, 금색의 국기가 국기로 재지정되었으나 1933년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 체제가 세워지면서 폐지되고 다시 독일 제국의 국기가 잠시 쓰였다가 1935년 하켄크로이츠로 바뀌었다. 1945년 나치 독일이 패배하자 1949년 다시 서독, 동독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동독은 1959년 이 국기에 호밀, 망치, 컴퍼스가 그려진 국장을 추가하여 서독과 구분되게 하였다.[19]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가입하면서 동독의 국기는 서독의 국기가 대체하고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동독이 서독에 포함될 당시 이것을 환영하던 동독 국민들은 동독 국기에서 문장이 있는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 내거나 검은 테이프 등으로 문장에 X자를 쳐서 서독 국기처럼 만들고 서독 국민들과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20]

독일에서 국기의 금색을 금색(Gold)이 아니라 노랑(Gelb)이라고 하는 건 모독으로 불법이다.[21] 1959년 6월 독일 연방재판소(Bundesgerichtshof)의 판결에 따르면 독일의 국기를 노랑으로 부르는 것은 나치 시기 민주주의 비방 중 하나며 나치 옹호와 동급으로 여긴다. 과거 나치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검정, 빨강, 금색의 국기의 금색을 노랑, 겨자색, 똥색 등으로 부르며 비하했다.

현재 나치 독일의 국기였던 하켄크로이츠는 다른 나치의 상징들과 마찬가지로 달거나 쓰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독일 제국의 검정, 하양, 빨강의 국기는 금지되지는 않았으나 독일 제국의 군국주의에 부정적인 독일인들은 독일 제국의 국기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22] 3색 국기에 국장이 들어간 동독의 국기는 금지되어 있지는 않으나,[23] 과거 서독에서는 다른 국가의 국기였기 때문에 입장이 애매하다.

독일에서도 북유럽식 십자가 국기를 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되었다.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 가담했던 요제프 비르머(Josef Wirmer)가 암살에 성공했을 경우 하켄크로이츠를 없애버리고 대신 쓰려고 만든 것도 있었다.

2.3. 국가

국가 Deutschlandlied다. 1절은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여겨져 독일인들도 어지간하면 부르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24] 시인 호프만 폰 팔러슬레 벤이 쓴 가사에 하이든이 지은 곡을 붙여 만든 것이다. 서독, 동독 분단 당시에는 동독은 쓰지 않고 서독에서만 단독으로 불렸던 국가였으나[25] 서독, 동독이 통일되면서 통일 국가로 지정되었다.

3. 언어

공용어로는 독일어를 쓴다.[26] 독일어 참조.

전반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이 있는 편이라서 영어가 잘 통하며,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한다. 오히려 젊은 사람에게 영어로 말을 걸면 대답만 겨우 해 주거나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다만 평균적으로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보기도 한다. 학업에 따른 영어 구사 능력 차이가 큰 편이다.[27] 게다가 상대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우가 많이 있는 편이다.[28]

독일은 학교에서 라틴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나라이다.[29] 과거에는 프랑스어가 인기있었으나 요즘엔 스페인어의 인기에 밀리는 추세이다. 독일에서 불어나 스페인어를 배우는 건 한국으로 치면 학교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해서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학교에서 러시아어나 터키어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통일 이전에 구동독 지역은 러시아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통일 이후의 지금은 제1외국어는 무조건 영어다. 프랑스어도 많이 가르치고 있으며 북부에는 덴마크어, 프리지아어 사용자가 일부 존재한다. 동부에서는 소르브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르브인도 거주하고 있다.[30] 소련에서 이주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독일계 후손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1]

독일에서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터키어만 써도 사는 데에는 별 지장 없다. 일단 웬만한 깡촌이 아닌 이상 관공서부터 터키어를 사용하는 터키인 공무원이 있고, 터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은 한국의 김밥천국 수준로 널려 있으며[32] 터키 물건을 판매하는 슈퍼마켓과 카페트 가게도 있으며, 심지어 터키에선 관광지에서나 파는 물담배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모스크도 곳곳에 있고. 심지어 베를린은 터키 제3의 도시라고 할 정도고 출산율 차이로 인해 한 도시 내에서 독일인의 비율보다 터키인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고 이미 추월한 도시도 존재한다. 이쯤 되면 독일이 아니라 그냥 터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항상 독일 내에서는 독일의 정체성에 대해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어 화자가 줄어들고 있어서 독일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33]

4.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독일의 역사
Die Geschichte Deutsch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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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2년 962년 ~ 1918년 19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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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과거사 문제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과거사 청산 문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독일은 통일을 한 이후에 강력한 국가를 형성해서 많은 영향력을 가졌다. 규모가 컸던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과거사 청산 문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5. 인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인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독일은 통일되고 나서부터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였다. 독일이 유럽의 강대국이 된 것에도 인구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권이고 고령화가 많이 진행되어서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 여지가 크다. 독일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억지로 출산을 해서 부작용을 겪는 것[34]보다 이질적인 사람이라도 능력 있는 인구가 많은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많은 이민 인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민 인구가 늘어서 출산율도 다시 반등했다는 분석도 있다.

6. 행정 구역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행정 구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color:#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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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1px"
바이에른
(뮌헨)
작센
(드레스덴)
튀링겐
(에어푸르트)
바덴뷔르템베르크
(슈투트가르트)
브란덴부르크
(포츠담)
헤센
(비스바덴)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슈베린)
니더작센
(하노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뒤셀도르프)
라인란트팔츠
(마인츠)
작센안할트
(마그데부르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킬)
자를란트
(자르브뤼켄)
브레멘
(브레멘슈타트)
베를린
함부르크 }}}}}}}}}

7. 지리

독일의 면적은 35만 7,022㎢로 한반도의 1.5배 정도이며 일본(37만 7,915㎢)보다 약간 작다. 세계 면적 순위를 보면 일본 바로 밑에 독일이 자리하고 있다. 국토가 유럽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서 접경 국가가 매우 많다. 북쪽은 덴마크와 접경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와 접경하고 남쪽으로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경하며 동쪽으로 폴란드, 체코까지 총 9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독일의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低)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북부 독일은 북독일 평원이라 불리는 넓고 평탄한 평야지대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볼 수 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데 그 이유는 그 유명한 알프스 산맥 때문이다. 다만 독일 영토 지역의 알프스 산맥은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에 속한 곳보다는 그나마 고도가 낮은 편이라 표고도 최고 3000m가 못 된다. 독일의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산은 높이가 2,963m이다.

7.1. 기후

독일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남부 지방이 북부 지방보다 겨울이 더 춥다! 그 이유는 북부 독일은 해안가와 인접해 있기에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띠지만 남부 독일은 알프스 산맥과 가까워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위도 상으로는 더 남쪽에 있어서 따뜻할 것 같은 남부 독일 지역이 위도 상 더 북쪽인 북부 독일 지역보다 오히려 겨울이 더 춥고 연교차도 크다.

실제로 북부 독일의 함부르크는 북위 53° 33′ 55″에 위치해 있지만 1월 평균기온은 영상 1°C로 위도 상으로 한참 남쪽인 대한민국 대구광역시(북위 35° 52′ 17″)의 1월 평균기온(0.6°C)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도 베를린 역시 북위 52° 31′ 07″로 상당히 위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베를린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0.6°C로 역시 위도 상 한참 남쪽인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의 1월 평균기온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 남부 독일의 대표 도시인 뮌헨의 경우는 위도 상으로 북위 48° 08′으로 더 남쪽에 있지만 1월 평균기온은 -2.2°C로 오히려 함부르크나 베를린보다 더 춥다. 뉘른베르크 역시 위도는 북위 49° 27′으로 함부르크나 베를린보다 더 남쪽에 있지만 1월 평균기온은 -0.1°C로 더 춥다.

다만 여름은 남부나 북부 모두 서늘한 편이며 연중 강수량이 고르다는 것도 똑같다. 그리고 독일이 암만 춥다고 해도 대한민국이나 북한보다는 겨울이 더 따뜻한 편이다. 가장 추운 곳 중 하나인 뮌헨 역시 독일에서나 제일 추운 곳이지 한국의 서울특별시 기온과 비슷한 수준이고 대부분의 지역은 대체로 한국의 중남부 지역 겨울철 기온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비가 자주 오는 곳이라 습도가 높은 편이기에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뼈가 시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8. 교통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교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관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관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민족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교육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교육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종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 개신교가 탄생한 곳이다. 해당 문서 참조.

2017년 기준으로 종교별 인구 비율은 가톨릭 28.2%, 개신교 26%, 이슬람교 5%, 무종교 37%이다.[35] 20세기 중반 ~ 21세기 초반에 들어서 이슬람교도와 무종교인들은 증가하고 있고,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인들의 비율은 대부분 점점 감소하는 추세이다. 이슬람인들은 대부분 난민출신이다. 난민을 계속 받는다면 이슬람인구는 계속 증가할것이다. 특히 무종교인들은 20세기 후반 ~ 21세기에 매우 빠르게 증가했으며, 개신교와 가톨릭 인구 모두 2010년대 초중반에 30% 미만으로 감소했다.

독일은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을 통해 정교분리가 이루어져 국교는 없다. 다만 역사적 전통을 존중하여 국가는 교회의 재산권과 신자에 대한 종교세 부과를 인정하며 교회활동의 유지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루터교회는 독일 인구의 26.1%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북부 지역에서 강세다. 가톨릭은 28.2%를 차지하고 있고, 남부·서부에서 강세다.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루터교회가 우월하고 농촌 지역에서는 가톨릭이 우세한 점이 특징이었는데, 2차대전 이후 가톨릭 우위 지역인 바이에른의 빠른 산업화로 더 이상 이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상공업이 발달하였던 신교 지역이 2차대전 후 대부분 동독 지역에 편입되어 공산주의 치하에서 종교가 쇠퇴했던 점도 있고 상대적으로 덜 발달되었던 가톨릭 지역은 자본주의 서독 지역에 대부분 남아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상대적으로 종교전통이 보존된 점도 한몫한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 구교 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독일 교회의 특징이다. 그 외에 소수 교파로서 장로회· 침례회나 독립 루터회[36] 등 자유교회(Freikirche)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구 동독 지역에선 전통적으로 개신교가 우위였지만 이웃한 체코와 마찬가지로 공산정권 40년의 영향으로 무종교인 비중이 높다.[37] 그래서 과거에는 개신교:가톨릭 비중이 2:1이었는데 지금은 1:1로 바뀌었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교회세와 각종 지원을 통해 바티칸 재정의 20% 이상을 지원하면서 가톨릭계 안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확보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 사제 및 사제의 결혼, 이혼 및 재혼, 동성애 문제 등에 있어서 급진적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는 특히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기간 중에는 교회 안에 270개 낙태 상담소를 설치한 뒤 여성들에게 확인서를 발부하기 시작하면서 교황청과 3년 동안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교회가 분열되는 사태로 발전될 조짐까지 보였으나 마침내 독일 주교회의가 교황의 최후 통첩을 받아들여 낙태확인서 발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3년 동안 지속되던 교황청과 독일 천주교회 간 다툼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런 풍모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독일의 한 대교구의 종교개혁 기념 미사 중에 보수파 청년들이 항의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루터회 교인이자 동성애자인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의 합동(가톨릭[38]과 루터교회[39] 공동 주최) 장례예식이 가톨릭 성당에서 치뤄지기도 했다. 독일 가톨릭의 급진적인 면은 독일에서 복고 가톨릭교회가 탄생하는데도 기여했으며, 이런 측면 때문인지 전통 가톨릭 성향의 신자들 중 일부는 '독일은 이상한 신학의 발원지다', '게르만은 영적으로 이상한 것이 나오는 동네다', '게르만(독일) 애들은 영성이 이상하다'며 경계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독일 가톨릭교회가 막나가는 곳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워낙 철학적 기반이 탄탄한 국가이다 보니, 현대 가톨릭 신학에서 사실상 대장님 소임을 맡고 있다.[40] 게다가 철학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모두 발달해서 우수한 신학자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그리하여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카를 라너,[41] 교황이자 초 네임드 신학자인 베네딕토 16세 등 다른 나라 가톨릭교회가 부러워 죽는 수퍼스타 라인업을 자랑한다. 그리고 '기념'은 그 대상이 긍정적일 때만 쓰는 말이 아니다.

독일 개신교는 2차대전 이후 EKD라는 교회협의회 체제로 개편되었으며, 11개의 지역 연합교단, 7개의 루터교단, 2개의 개혁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소속된 신자들은 7%정도를 종교세로 납부해야 한다. 2011년 조사 기준으로 개신교 신자가 많은 지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55.7%)과 니더작센(51.5%)으로 나왔다. 다만 실제 출석률은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한 자릿수대에 불과하다. 한국 개신교와 정반대로 독일에는 국민선동금지법이 있어서 근본주의적인 설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015년에는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를 비판한 브레멘의 한 목사가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42] 독일 정부는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 정체성을 바꾸기 위한 치료를 금지하기로 하고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43]

개신교 신학에서도 독일의 위상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44] 일찍이 마르틴 루터가 탄생하기도 했고,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디트리히 본회퍼, 루돌프 불트만 등의 신학자 라인업을 자랑한다.

독일에서도 기독교외에도 소수의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중 독일내의 이슬람교 알바니아,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터키, 이란, 이라크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주로 믿고 일부 독일인들중에도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비율도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로 독일에 정착했던 터키인들이 이슬람 신자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내에서는 유럽 난민 사태로 무슬림비율이 높아지자 독일은 교회세를 본따서 모스크세를 걷고 터키, 이란, 사우디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 또한, 독일정부는 외국인 성직자에 대한 입국요건으로 독일어 구사 능력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 유대교도 있었지만, 나치 독일의 탄압, 학살 등으로 유대인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불교,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적지만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슬람은 특히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종교로 부상하고 있는데, 이들은 터키에서부터 노동자 신분으로 독일에 60년대부터 들어와 자신들의 터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점차 생활방식과 풍습이 다른 것을 기점으로 기존 독일인들과 자주 충돌을 벌이기 시작하여 갈등을 빚고 있다.

13. 사회

동포사회 커뮤니티로 베를린리포트(독일에 오면 방문하지 않게 되는 곳)가 있다. 이전 독일 전체가 비뚤어진 애국심을 가져서 애국이라더니 결국 나라를 망쳤기 때문에 현대 독일은 교육 과정에서 애국심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국을 '우리' 민족, 조국 등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꺼리도록 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나라는 전범국이니깐 국까가 되셈"하는게 아니고 "평화로운 독일인으로서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어울리는 것"을 가르친다. # 독일인들은 은근히 열받을 듯하다. 옛날 어떤 놈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해야 하니까 즉 결론적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까진 좋지만 그것보다 평화와 민족평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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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폴란드공에서 풍자했다(...). 독일이 애국심의 강조를 다른 국가 수준으로만 평범하게 해도 득달같이 나치 드립까지 꺼내며 경계하니까 '내가 그런 거 신경쓰게 생겼냐!'라며 폭주하고, 2주 뒤 진짜로 나치가 부활해서 프랑스가 벙찌는 이야기.[45]

독일 스키장들은 대개 남부인 바이에른에 몰려 있고, 스키 시즌이 길어서 9월 말에서 10월부터 개장해서 4월에서 5월 초까지 한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 본부가 위치해있어 패럴림픽에서 활동한 마스코트가 대회 폐막 후 남아있다. 차두리는 유년기를 독일에서 보냈고 하동훈도 독일 출신이다.[46] 중국의 보이 그룹 WayV의 멤버인 양양도 독일인이다. 상상원정대에서도 독일을 방문해서 독일 최대의 롤러코스터 실버스타에 탑승했다.

13.1. 이민

이민자들이 많아져 사회 통합이 저해되고 이민자들에 의한 범죄가 급증한다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민자의 증가와 구 동서독 간에 미묘한 감정 대립이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나 터키계 이주민 때문에 실업자가 됐다고 화내는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네오 나치가 생겨났다. 나치는 관심 끌기 위한 떡밥으로 이름만 빌려 쓴 단순한 양아치 집단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당연한게 대부분 이민반대파 동독인들 역시 막상 보면 단순히 이민반대고 독일내 거주하는 아시아계 이주민을 싫어하는 거지 나치 즉 국가사회주의의 필수적인 주요요소 전체주의, 게르만 최고주의 , 국가팽창주의, 유태인을 비롯한 각각인종 하등론을 주장하지 않으며 나치당 그 자체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독일이 네오나치가 경찰 보호없으면 시민들한테 집단 린치당해서 죽는 나라인것을 생각하면 당연한것. 그래도 독일 내부에서는 이런 이민반대파와 인종차별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국가사회주의를 찬양하든 말든 통째로 묶어서 인종차별=네오나치라고 칭한다. 그정도로 독일의 일반 시민들에게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편집증적 혐오가 심하다는 것. 그러나 이민자들로 인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이로인해 점차 겉으로는 나치로 몰릴까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반이민정서가 높아지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난민을 주권국가인 독일이 무조건 받아야할 이유도 없으며 다만 인도적 차원일 뿐이지 그것을 마치 권리인양 남용하고 오용하며 깽판부리고 행패를 부릴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면 결국 부글부글 끓다가 폭발하여 극단적 전체주의 세력을 야기시킬 수 있다.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아랍 등지의 구 식민지 국가들에서 몰려드는 다양한 인종, 민족의 이주민들로 고생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과는 달리, 거의 터키계 이민자들이 300만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이는 독일 전체 인구의 4%에 달하는데,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이 식민지가 많은 영국, 프랑스와 대항하기 위한 동맹자로서 터키(당시 오스만 제국)와 손잡은 이래 우호관계가 지속되어 터키인들이 독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의 외교 정책의 근간이었던 3B 정책, 베를린 - 비잔티움 - 바그다드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 것. 지금도 독일은 터키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서, 유명한 터키 여행지에 나온 설명문이 자국어 다음에 먼저 독일어로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영어로 되어 있다. 터키어 알파벳에도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터키인들의 유입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축구선수들의 경우 2002년 당시 독일로 유입된 터키의 축구선수인 일한 만시즈나 마찬가지로 독일 태생인 하미트, 하릴 알튼톱 형제, 메흐메트 에키지는 터키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고 하칸 찰하노글루도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을 택해서 터키 국적으로 뛰고 있는 반면 똑같이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계인 메수트 외질[47]이나 메흐메트 숄, 엠레 찬등은 아예 독일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외에도 전반적인 분야에서 터키인들의 유입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아예 터키 쉬페르 리그 갈라타사라이 SK가 한때 베를린 갈라타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분데스리가로 갈려다가 좌절된 적이 있을 정도다.

독일의 터키인 이주자들은 대체로 본토의 동포들보다 더 종교적이다. 독일 거주 터키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72%가 이슬람만이 참 종교라고 하였으며, 90%가 자신을 종교적이라고 대답했다. 터키인의 독일 이민은 터키에서 군사 정권에 의해 세속주의가 정점에 달하던 시절에 많이 이루어졌는데, 단순히 돈벌러 동부 시골에서 독일로 간 경우도 많지만, 터키 본국의 강압적 세속주의 정책에 반발해 독일로 이주한 이들도 있었다.[48] 주로 종교 지식인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터키인은 외국에서도 터키인이다."라며 모스크 이슬람 학교를 중심으로 터키 이주자들을 결합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을 통해 일반 터키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이슬람주의에 경도되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2016년 현재 독일 내의 터키 이민자들은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아니면 독일화되어 터키어만 모국어로 사용할뿐 사고방식은 완전히 독일인이거나 양극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런 종교적 보수성은 터키계 공동체만의 문제도 아니라, 유럽 난민 사태로 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조차 아랍어 사용 모스크가 와하비즘- 살라피즘 물이 들어 너무 수구성이 짙다고 평가한다. 자이쉬 알 이슬람(시리아의 이슬람원리주의 반군)이 생각난다는 평이 압권. #[49] 그러다보니 독일 내에서 터키인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심하며 이들로인해 독일에서도 우파적 성향의 국민들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물론 지금은 가리지 않고 상당히 많이 받은 상태라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 흑인들도 80만명 정도 살고 있고 쿠르드인들도 80만명이 살고 있다. 또한 유럽 연합이 생긴 이후로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등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폴란드 태생이나 독일로 이민가 독일 대표팀으로 뛰었던 축구선수 루카스 포돌스키가 그 예이다. 물론 동유럽권 이민자들은 같은 유럽 가톨릭 문화권이고 인종도 백인이기 때문에[50] 타 이민자들에 비해 비교적 독일 사회에 동화가 쉬운 편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발생한 중동 난민들을 수용하고자 하는 것도 인도주의적 명분뿐만 아니라 저출산 극복 목적도 크다. 하지만 역시 이들도 대체로 세속주의와 사이가 좋지 못할 뿐더러 독일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마찬가지라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2016년 독일 열차 테러,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등의 범죄를 저질러 독일 내에서 인식이 나쁘며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계속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건 위에서 언급했듯이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인 출산율 때문이다. 물론 독일도 나름 중산층 대상 출산 장려에 힘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식 문제라 해결이 안된다는 걸 동서독 분단 시절부터 뼈저리게 체험하고 이후부터는 이민 수용과 빈민층 출산 장려로 전환했다. 그러나 구 동독 지역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있다. 구 동독 지역의 소득수준이 낮은 만큼 이민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구 동독 주민들이 가장 손해를 볼 여지가 있다.

그래도 독일은 서유럽에서는 다문화사회가 가장 잘 정착한 국가 중 하나다. 고위층에서도 이민계 독일인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이들 또한 대부분 독일 사회에 잘 녹아들어 생활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 등의 대도시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보다 더 인종차별이나 서로 간의 인종적 거리감이 적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많은 독일 교민들이 얘기하는 게, 인종차별은 별로 없지만 언어차별은 있다는 점. 일반적으로 아시아인이라고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않는데, 독일어를 못하거나 한국어로 뭐라고 얘기하면 "쟤 외국인인가?" 하고 이상하게 쳐다볼 수는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2018년 4월 12일에 독일 통계청은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약 1,060만명을 나타낸 것으로 나타났고 이중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출신 등의 신규 EU 회원국 출신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 그리고 독일측은 4월 19일에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 2018년 8월부터는 독일에 정착한 난민 가족을 월 1천명씩 받아들이기로 확정했다. #

13.2. 욕설에 대한 처벌

독일은 욕설에 매우 엄격한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일반적인 욕설은 250유로, 경찰에게 반말은 600유로, 늙은 돼지[51]라고 하면 2,500유로. 행동으로 하는 욕설은 혀를 내밀면 150~300유로, 머리를 손가락으로 치면[52] 750유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면 최대 4,000유로까지 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나치를 굉장히 혐오하기 때문에 나치와 관련된 행위를 하거나, 나치나 히틀러를 찬양하는 내용을 말하거나, 관련 물품을 가지고 다니면 독일 법에 의해 잡혀간다. 또한 나치라는 단어를 사람한테 쓰는 것은중지를 드는것보다 수십배는 심한 욕이다.

13.3. 학문

전 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국가가 독일이다. 물론 무작정 노벨상 수상자와 과학기술력이 정비례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치당이 독일에 집권했을 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위시한[53] 고급 인력들이 대거 미국과 소련으로 빠져나갔고[54] 패전으로 몰락해버렸음에도 다시 일어났음을 생각해 본다면 기본적인 기술 기반은 탄탄하다. 물론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지원의 덕을 톡톡히 본 것도 있다. 또한 현대에는 일부 분야에서 특출난 수준이기는 하지만 전성기 시기처럼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독일의 시대이다. 1991년 미국의 역사학자 노먼 캔터는 "20세기는 가히 독일의 세기가 될 수도 있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그만이 아니라 베를린에서 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에 참석한 프랑스 철학자 레몽 아롱도 이 세 사람이 모두 1878~1879년에 태어난 것에 주목하며 독일계 미국 역사학자 프리츠 스턴에게 캔터와 같은 발언을 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는 캔터와 아롱의 말에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라는 재앙이 닥치지만 않았더라면 이 시기에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랐던 독일의 사상가, 예술가, 작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서 갓 통일된 조국을 전에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새로운 나라로 만들 수도 있었다는 의미가 숨겨져있다. 이 1848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에 활약한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포함한) 독일계 인물들의 명단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 역사학 : 레오폴트 폰 랑케,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 게오르크 바이츠, 빌헬름 폰 기제브레히트, 하인리히 폰 지벨, 테오도어 몸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하인리히 폰 트라이치케, 한스 델브뤼크, 루트비히 폰 파스토어, 율리우스 벨로흐, 에두아르트 마이어, 카를 람프레히트, 오토 힌체,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게르하르트 리터, 프란츠 슈나벨,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오토 브루너
  • 법학 정치학 :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로렌츠 폰 슈타인, 베른하르트 빈트샤이트, 루돌프 폰 예링, 파울 라반트, 오토 폰 기르케, 게오르크 옐리네크, 구스타프 라트브루흐, 한스 켈젠, 카를 슈미트, 헤르만 헬러, 카를 뢰벤슈타인, 에른스트 프랭켈, 오토 키르히하이머
  • 고고학과 성서학 : D. F. 슈트라우스, 하인리히 슐리만, 에른스트 쿠르티우스, 페터 호르흐하머, 게오르크 그로테펜트, 카를 리하르트 레프시우스, 브루노 마이스너.

14. 정치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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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산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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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는 미국과 함께 세계 수출 1위를 다툰 적도 있었다. 현재도 경상수지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서비스 산업 부분에서는 거의 막장을 달리고 있어서 미장원이나 식당에 가도 대부분 셀프 서비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서 서비스업의 무덤, '서비스의 사막 독일' 이라고도 불린다. 다만 조목조목 따지면 툴툴거리면서도 들어주는 점만은 칭찬할 만하다. 일본처럼 공손하게 말하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츤데레 성향을 보여주는 의외의 면도 있다. 또한 매춘이 합법화된 얼마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기업 문서를 보면 기계공업과 화학공업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배된걸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DHL, 루프트한자 같은 글로벌 물류업체가 있는 등 선진국답게 고루고루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5.1. 최저임금

독일엔 모든 직업군에 적용되는 통일된 최저임금이 없었다. 기존에는 직종별 노사간 합의에 따른 최저임금이 존재해서, 고용주가 어디냐에 따라 법정 최저임금이 달랐다. 그래서 노조가 사실상 전무한 소규모 서비스업종들에선 보호받기가 힘들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독일 통일과 그에 따른 독일병으로 전체 노동자의 25%가 이웃 프랑스의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일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임금 침체를 겪었었다.[60] 21세기를 10년 이상 넘겨서야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었다.

전체 일자리의 1/5이 450유로 월급이 안 되는 미니잡(mini-job)이다. 미니잡은 소득세 면제 및 의료 보험에 들 필요가 없어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으며, 고용주도 각종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에 900유로 월급에 한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미니잡으로 2명을 고용하는 것을 훨신 선호한다. 저소득층의 소득세는 겨우 14%이기 때문에,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은 월급의 1/4에 달하는 의료보험료. 또한 미니잡은 의료보험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직업으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61] 이런 이들은 배우자나 부모를 통해 해결한다. 한국에서 학생이나 백수들이 돈 못 번다고 의료보험에서 제외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수는 전체 국민의 0.2%에 불과하다.

저축된 돈도 없는 최하층으로 진입한 빈민을 위해 기초수당인 Hartz IV가 존재한다. 2014년 기준 1인 가구 382유로, 2인 가구 706유로로 한국보다 낮은 상황이다.[62] 다만 3인 이후 가구부터는 자녀에 따라 달라지는데, 미성년자 자녀 기준으로 3인 가구 967유로, 4인 가구 1228유로를 받게 되어서 한국보다 한화 5만원 가량 높은 수준이 된다. 이 외에 추가로 임대주택와 난방비 보조금액 소액이 나오나 대한민국에서도 나오는 수준의 금액이며 당연히 대도시에 거주시 주택 수당으로 주택비 납부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무의미해진다. 사실 Hartz IV를 수령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한번이라도 정부에 손을 벌렸다면 은행신용도는 최하로 내려가서 제1 금융권과는 영영 이별이라는 점이다. 간단한 창업을 위해서 돈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경력 단절로 인해 정규직 입사도 힘드니 당연히 미니잡으로 직행이며, 독일의 빈민층의 고착화는 유럽 내에서도 최상위권이다.

독일 전국에서 140만 명이 시간당 5유로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63] 거기에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유럽의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 독일인들이 도저히 오지 않을 시급에 부려먹으며 세금을 아끼려 정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사업장이 속속 발각되고 있으며, 그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통계는 더 암울한 수준까지 내려가리라 독일 정부에서 예측중. 월 400유로 이하를 받는 근로자가 170만에 달할 정도로 미니잡을 늘리면서도 정재계에서 성공이라면서 자화자찬을 하고[64], 최저임금법 제정 이전에는 시급 0.26유로로 부려먹은 일까지 발생했었다. 물론 이런 일자리는 대개 실습을 겸하기에 많은 돈은 안 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렇다 쳐도 생각 외로 착취가 심해도 너무 심해서 독일 내에서도 문제가 된다.

동독 지방정부에서 시간당 55센트(약 800원)직업을 강제한 일이 지난 몇 년 동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밝혀져 논란이 된 적이 있을 정도다. 하기 싫어도 일을 하지 않으면 기초생활수당이 끊기니 어쩔 수 없이 저런 곳에 가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오는 수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독일 정론지 벨트지의 취재 결과, 시급 400원에 알바생을 고용하던 호텔까지 발견되었을 정도 역시 선진국

독일 정치인들은 옆 나라 프랑스의 낮은 고용률을 들먹이며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것이 최저임금을 하고서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실제 독일의 고용률은 프랑스보다 10%나 높은 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제가 있는 영국의 고용률은 71.7%로 독일과 동급이다. 사실 독일의 고용률이 영국의 고용률을 추월한 것은 2010년에서나 이루어진 최근의 일이다. 독일은 제조업 중심이라 일자리가 많았다는 주장을 단번에 논파하는 자료다. 1990년 통일 직전 서독의 고용률은 당시 이탈리아에 국내총생산을 추월당했던 영국보다도 10% 가량이나 낮았던게 현실. 현재 독일의 고용률은 미니잡에 힘입어 2005년 이후 폭등한 결과로 내실이 별로 좋지 않다.

2013년 총선 이후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간 연정 협약서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전국 시간 당 8.5유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이 도입 결정된 이후 오히려 그동안 많이 주었다며 주던 시급을 2017년부터 적용 예정인 최저임금 수준으로 내리는 만행을 저지른 기업들에 대해 독일 내에서 지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15.2. 자산

자산격차의 문제가 알고보면 심각한데 독일의 서민이 가진 재산은 유럽에서도 적은 편이다. 장기간 바캉스를 즐기며 주택 구입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독일인의 특징이 그 이유로 꼽힌다. 특히 휴가를 비슷하게 가며 자가주택비율만 독일보다 10%가량 높은 영국 서민의 재산이 독일의 2.25배, 더 긴 바캉스를 즐기면서 자가주택비율은 독일과 비슷한 프랑스 서민의 재산은 독일의 3배나 되는 상황이다. 크레디트 스위스 Global Wealth Report

서민 재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하면 일자리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들은 결국 다시 1달 450유로가 안 되는 미니잡에 뛰어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자산 평균값/중간값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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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의 자산 상위 20%/하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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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자산 빈부격차는 독일이 유럽 내 최고 수준이다. 진짜 부자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돈과 자산이 많은 사람이며 자산 격차는 한국보다도 많이 나쁜 수준이다.

독일은 스웨덴,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과 같이 소득지니계수가 낮으며 복지제도가 우수한 국가이지만, 그에 반해 자산지니계수는 높은 국가에 속한다. 1 2

2014년 독일 최대 경제연구소인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의 빈부격차는 더 심각해져 유로존 내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

ECB의 조사 결과에서도 독일은 주요 유럽 국가 중에 압도적으로 자산이 낮았다. #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독일에서도 구 동독 지역의 주민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전후 호황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해 서독 주민에 비해 압도적으로 자산 축적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난한 구 공산권 국가와 부유한 서방 선진국이 한 국가로 통합된 국가는 오직 독일뿐이기에 지역 격차도 동서를 중심으로 심하다.[65] 지역별 불평등은 유럽에서 영국 다음 가는 수준으로 최근에는 고질적인 동서 격차에 이어 남북 격차[66]까지 강해지는 추세이다. 또 상속 부자들이 매우 많은데 독일 전체 부의 50%가 상속 재산으로 프랑스나 영국보단 낮지만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른데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율이 20%대를 유지했다.

15.3. 연금제도

연금제도도 유럽 내에서는 최하위로 전체 연금 수령인의 50% 이상이 1달 700유로(100만원)가 안되는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1인당 GDP가 비슷하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경우 유로화 사태 이후 삭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620유로의 기초노령연금을 보장[67] 중인 것과 심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다수의 복지 선진국들은 가정주부에게도 어느 정도 금액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나 북미의 캐나다등에서는 매달 실수령 100만원 근처가 나온다.

남유럽의 이탈리아도 유로화 사태 이후 삭감되었지만 2014년 기준 기초연금이 1달 540유로 #이다. 근데 기초연금과 전체 수령액 자체가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인의 41%가 매달 1,000유로 이하의 연금을 받았다고 한다. # 스페인은 15년간 세금을 낸 연금 수령인들에게 550유로를, 독일과 함께 최하위 케이스로 자주 언급되는 영국조차 30년간 납세한 연금 수령인들에게 매달 500파운드를 보장해 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기초노령연금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연간 실수령 기준 연간 2,400만원 가량이며[68] 2위인 호주는 2,100만원이 나오고 있다.

독일 하위계층의 노년문제는 상당히 심각한데, 정말 최악의 케이스를 가정해 비정규직인 미니잡으로 취업해 45년간 연금을 부으면 월 140유로 수령(...). # 물론 마음만 먹으면 맥도날드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채용이 되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만큼 비현실적이지만 독일의 황당한 연금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예다. 이웃나라인 프랑스는 납세를 한 적이 없어도 620유로를 보장해주는 판에... 괜히 독일에서 30년 이상 연금을 부은 수령액의 결과가 700유로(100만원)도 안되는게 아니다.

그래도 현재 기초노령연금 지급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SPD의 연방의회 선거 공약으로 Union과 대연정을 시작하면서 주요 의제로 논의 중이라고 한다. 우선 초안은 2021년부터 최소 월 775유로를 지급하며, 이를 위해 호텔 숙박 세금을 올려 예산을 충당할 계획임을 밝히면서 정치권 내부에서도 CDU 및 호텔 업계가 SPD와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그리고 연금보험 가입자를 상대로 최소한 기초생활 수급액 이상의 연금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기본연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

15.4.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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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별 대졸이상/고졸이하의 임금 격차

이런 저임금 노동자들의 상황과 반대로 대졸자 연봉은 1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며,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는 이웃의 프랑스보다 최소 만 유로가량 높다. 대졸자와 비대졸자간의 소득격차가 아일랜드에 이어 서유럽에서 2위이다. 근데 서유럽에서 2위라는 건 조금 말장난에 가까운 것이 안 그래도 가뜩이나 청년고용률이 시망 중의 시망인 그리스, 포르투갈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마저 독일보다 높다는 건 참 뭐라고 해야할지(...)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3에서는 한국, 독일 등 각 나라의 교육 지표들을 연구해서 내놓고 있다. [69]
목차 독일 한국
대졸 임금 고졸임금의 1.64배 고졸임금의 1.47배
고졸~전문대졸 실업률 5.8% 3.4%
대졸 실업률 2.4% 2.9%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고졸은 독일 대졸보다 실업률이 훨씬 높고 임금도 훨씬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2014년 현재 BMW의 뮌헨 본사 공장에서는 막 성인이 된 고졸들을 생산직 견습을 시켜준다며 4년간 1,000유로를 주고 있다 세후 770유로니 한화 110만원이 월급이다. 그렇덴 이 말이 틀린게 독일은 고졸 4년차 부터는 대졸와 같은 임금 받으며, 독일은 중소기업이 탄탄하며 복지가 잘되어 있는국가다. 이게 일반화 하는것 무리이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한다면 전문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고졸이라도 마이스터 자격을 얻으면 생계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마이스터 자격을 얻는 것이 대학 졸업보다 쉽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류에 따라서는 더욱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기도 하다.[70]

독일은 기본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낮으며, 대학에 입학 후에도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기 때문에, 대졸자의 경우 취업과 전혀 상관없는 과가 아닌 한, 취업하지 못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대학 졸업자 이상의 고학력자는 독일에서 꽤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분야는 박사학위 없이는 취업이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독일에서 실업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에서는 청년층 전체 실업률을 이야기하는데, 서독 지역에서 대졸자/전문대졸자/고졸로 나눠서 분석한 실업률은 대졸자는 3~4% 수준, 전문대졸자는 7~8% 수준, 고졸은 20% 이상으로 최근 통계에서 집계되었다. 그러나 서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된 동독지역의 경우는 대졸자/전문대졸자/고졸로 나눠서 비교하면 상관관계 자체는 서독과 비슷하지만, 비율 자체가 크게 상승하여 대졸자 10% 수준, 전문대졸자 20% 수준, 고졸 50% 수준에 육박한다. 이는 사실 한국과 산업 구조 상 차이가 약간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학사 수준의 지식으로도 일부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으며, 석사의 경우 취업 못해서 석사갔다는 소리까지 나돌지만, 독일의 경우 취업 시 고학력자가 요구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저학력자들에게는 기회가 비교적 적다.

대학교 학위가 없는 계급을 독일에서는 Arbeiterkinder 즉 노동자로 칭하는데, 노동자 계급의 자녀 중 단 9%만이 대학교 진학을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부모의 학력에 따라 자녀의 학력도 대물림이 되는 경향이 유럽 내에서도 제일 높은 나라가 바로 독일인데, 이는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진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인문계열(대학 진학)과 실업학교가 갈린다. 한국이 성적이 우수하든 아니듯 적어도 고3 대학입학시험을 볼 때까지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비슷한 교육을 받는 것과 상당히 대조된다. 독일 여자의 32%는 최종 학력이 중학교(하웁트슐레) 졸업 이하다[71]. 이쯤 되면 대학교 학비가 무료인 것이 나라의 부의 재분배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대졸자와 기술 숙련자의 연봉 차이가 독일 내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미용사의 평균 연봉은 15,787유로, 트럭 운전기사의 평균 연봉은 28,534유로로, 겨우 22세 먹은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평균 초봉이 40,000유로대라는 걸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게 낮은 금액이다. 참고로 저 40,000유로는 본봉 기준이며 수당이나 보너스는 포함하지 않은 통계다. 기사참고 민간기업들은 물론이고 공무원조차 학벌에 따른 차등연봉을 지급하는데 대졸 공무원은 고졸 공무원에 비해 2배 더 높은 연봉으로 시작한다. 한국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트럭운전사 평균 연봉은 2,850만원, 대학교 학부 졸업생 초봉은 4,000만원이라는 이야기. 한국에 적용되면 대학 경쟁률이 지금의 10배로 오를 기세 이는 부분적으로 독일의 대졸자 비율이 한국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이다.

13,000유로부터 53,000유로까지는 같은 24%의 소득세를 내기에 생활 수준 격차가 좁혀지기가 절대 쉽지 않다. 북유럽보다는 덜하지만 어느정도 서민증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53,000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게는 53,000유로 이상의 소득분에 대해 40%를 가져가서 전반적으로 소득이 촘촘하게 모여있다. 덕분에 퍼진 정도가 낮아 소득격차는 한국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니계수로는 0.297. # 실제 서민들끼리의 차이는 당연히 크다. 연봉 1,300만원 받는 사람과 5,300만원 받는 사람의 세율이 같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아무튼 일을 시작해 10~15년 경력을 쌓아도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초봉을 못 따라잡는 나라는 서유럽에서도 독일이 사실상 유일.

청년실업 문제와 구직시장에서 구직자와 구인자 간의 미스 매치 현상이 이슈가 되면서 독일의 직업교육을 본받자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는데 특히 경제지를 중심으로 확실히 독일의 청년고용률 자체는 매우 높은 편이나 그렇게 독보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며, 안 좋은 면을 보면 빠른 진로의 결정이 사회계층화를 강요하고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자세한 통계는 OECD/교육지표 문서 참조.

15.4.1. 사회지표에 대한 반론

우선 독일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물가가 상당히 저렴하다. 물론 난방/전기/수도 요금은 상당히 비싸지만, 공산품과 식료품[72]의 경우는 인근 프랑스나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보다 확실히 저렴하며, 경제 사정이 안좋다는 이탈리아 등[73]에 비해서도 물가가 낮고 안정되어 있다. 또한 공교육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도 나쁘다고는 하지만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실업급여제도도 이전 세후 소득의 60~67% 수준에서 최장 960일까지 지급될 정도로 잘 보장되기 때문에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낮다. 따라서 큰 돈 들 일이 없으니 저축이나 투자에 대한 욕구가 적은 편.

독일 국민 특성상 사치를 싫어하고, 높은 소득을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치를 싫어하더라도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열악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생활수준 차이는 다른 서유럽 선진국과 비교하면 통계로도 명확히 크게 나타난다.

김나지움을 가지 못한다 하여 반드시 취업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회사의 사무직은 김나지움이 아닌 레알슐레를 나오면 충분히 가능하다.

미니잡 역시 월급을 적게 주기 위한 나쁜 제도가 아니라, 소득세율이 높은 독일에서 소득세를 피하면서 부가수입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독일은 가구당 소득세를 부부 합계로 납부한다. 1인 기준 53,000유로 이상 소득을 납부해야 2번째 세율구간에 진입하지만, 부부의 경우는 그 2배에 달하는 10만유로까지 연봉을 받아도 24% 세금만 낸다. 단, 배우자가 전문의라서 10만유로를 넘는 연봉을 받는다면, 월 400유로 미만의 임시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파트타임이나 임시직들이 활성화되어 있어, 주부나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로 활용된다. 보통 주당 10~16시간 미만 선에서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미니잡 시급이 결정되므로, 이것을 풀타임 급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편. 단 이는 독일 남부의 부자지역의 기준이 그렇고, 베를린만 가도 400유로를 주면서 40시간 근무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

물론 위에서 예시든 것처럼 45년 동안 미니잡으로 사는 경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일단 그 기간동안 미니잡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는 예시라 하겠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결국 사회보장제도 역시 정상적인 노동을 일정기간 충족하는 경우를 전제로만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위의 미니잡 관련 외부링크 기사 역시 말미에 수치가 과장되어 해석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여성이 받는 평균 연금액은 533유로이나, 이는 연금액만 가지고 계산된 것이며, 실제로 미혼인 노령여성의 평균 수익은 1,188유로이며, 부부의 경우 평균 2,248유로를 벌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단 연금액 자체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출산율이 2.0명(서독, 동독 모두)을 밑돌기 시작하고 이게 2010년대까지 회복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65세 이상인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져나가자 재정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독일 정부에서 연금제도를 개편해 많이 내고 덜받는 식의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유념해야 될 것은 바로 통일이다. 서독과 동독이 합쳐지고 이제 겨우 25년 가까이 지났는데, 그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터지면서 독일 경제를 시궁창에 몰아넣은 바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로 근로자들의 능력과 생산성 등을 감안하지 않고 통화를 무조건 단일화하면서[74] 동독 지역의 임금이 폭증[75] 실업률은 50%까지 폭증했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보장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것은 당연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할 경제 통합 과정 역시 날림으로 진행되었다.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만만치 않게 남아있는 셈이다.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 간의 경제 격차는 여전히 독일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1991년에서 2003년까지 통일 비용이 대략 1조 7,000억 유로(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2,300조. 물론 화폐가치를 고려해야 한다)인데 이 중에서 50% 가까이가 사회보장(연금, 노동시장, 의료보험)에 소요되었다.[76] 이러한 복지 지출의 급증에 이어 통일 직후 독일은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들으며 실업률이 10%까지 올라가고 재정지출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국가 파탄을 방치할 생각이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든 개혁은 필수적이었다. 실업급여를 필두로 사회보장을 빡세게 깎고 대규모 노동시장 유연성 정책을 펼친 것도 대충 이 시기이다. 재밌게도 이러한 정책을 이끈 것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 수십 년만에 정권을 잡은 독일 사회민주당에 의해서였다. 이후 메르켈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이러한 기조는 이어가고 있다. 물론 실업자의 상대적 빈곤율이라든지 비정규직의 급증 등 부작용으로 인해 반발과 비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며 상술했듯이 최저임금을 도입하는 등 기존의 정책에서 어느 정도 선회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 이후 사실상 독일이 유럽을 이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시경제적으로는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옆나라 프랑스에 비교하면 국민 삶의 질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사실 프랑스가 대단히 관대한 사회보장정책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인 것도 있다.

16. 군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 연방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독일은 2011년 7월 1일 징병제를 폐지했다.[77] 공식 명칭은 징집 유예지만 유럽인들의 성향이나 징병제의 비효율성 등 여러모로 봤을 때 독일이 다시 징병제 국가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힌다. 더군다나 나치 정권 때문에 큰 죄를 짓고 자신들도 고통받은 이후 나치의 나자와 국가사회주의의 국자, 그리고 팽창주의라든가 과거 영토 회복같은 것만 들어도 당장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이는것이 정상인 독일인들로서는 나치 독일과 연관성이 깊은 징병제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시행하고 싶지 않은 제도가 되는 셈. 모병제로 전환해서 군대에 남은 병력도 평화유지군에 도움을 주는 임무 위주로 활동한다고 한다. 현역 군인으로 징집된 인원들은 늘 징병제 폐지 과정이 그렇듯 지원자에 한해서 직업군인으로 전환되며 전역을 원하는 인원은 순차적으로 전역을 한다. 또한 대체복무로 해왔던 사회봉사요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집공고를 실시했다.

냉전 이후의 군축을 통해 독일이 바란 독일군은 고도로 훈련된 소수 정예의 군을 가지는 걸 원했겠지만 현실은 예비 총열도 못 사서 해외 훈련에 기관총 총열 대신 빗자루대를 꽂아놓고 훈련에 참가할 정도다. 거기다 유로파이터, NH-90 같은 각종 악재들이 겹치면서 국방력 강화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이를 통해 대체하려고 했던 F-4F 팬텀이나 도르니어 205 등 노후화된 장비들을 몇 년 더 연장해서 사용하게 되면서 예산이 더 빠져나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레오파르트2의 허상이 드러나고 H&K G36의 과열로 인해서 총몸이 녹는 문제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는데 예산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여 전력 강화는 커녕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유럽에 신냉전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독일군의 정규군 전력은 냉전 시기와 비교하기 초라할 정도인 3개 사단으로 축소되었고 상당수의 병력이 아프간, 소말리아, 동유럽 등으로 파병나간 상태다. 이마저도 아프간 등 파병지에서 근무 실태들이 드러남에 따라 실전 능력을 고려하기 전에 군인으로서의 기초가 안 되어있다.[78]

어느 정도 실상을 알고 있는 밀덕판에선 2차 대전, 냉전기의 강한 독일군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현재는 퇴물, 이빨 빠진 호랑이, 속빈 강정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똥군기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병영부조리/해외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가혹행위는 현대 독일군에서도 문제가 된 바 있다.

17. 문화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orig06.deviantart.net/germanballs_bundeslaender_by_arminius1871-d95rgqc.png

독일에서는 부모가 있는 앞에서 어린 아이에게 혈액형을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된다. 독일에서 혈액형을 묻는 것은 일종의 부모와의 혈연 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혈액형을 모를 가능성이 높고, 아이의 혈액형을 병원에서 안 가르쳐 주기 때문에 부모마저도 아이의 혈액형을 모른다.

18. 외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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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인물

19.1. 유명인

  • 헤르만 폰 헬름홀츠 - 물리학자
  •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 물리학자
  • 에른스트 마흐 - 물리학자
  •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 물리학자
  • 하인리히 헤르츠 - 물리학자
  • 빌헬름 뢴트겐 - 물리학자
  • 막스 플랑크 - 물리학자
  • 필리프 레나르트 - 물리학자
  • 빌헬름 빈 - 물리학자
  • 요하네스 슈타르크 - 물리학자
  • 구스타프 헤르츠 - 물리학자
  • 리제 마이트너 - 물리학자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물리학자
  • 막스 폰 라우에 - 물리학자
  • 제임스 프랑크 - 물리학자
  • 발터 마이스너 - 물리학자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물리학자
  • 볼프강 파울리 - 물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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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츠 하버 - 화학자
  • 에밀 피셔 - 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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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 - 수학자
  •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 - 수학자
  • 페터 구스타프 르죈 다리클레 - 수학자
  • 에른스트 쿠머 -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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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하르트 데데킨트 -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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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리우스 벨로흐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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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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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인리히 뵐플린 - 미술사학자
  • 아비 바르부르크 - 미술사학자
  • 에르빈 파노프스키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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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울 클레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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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스 야블렌스키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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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베르트 슈만 -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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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음악가
  • 요하네스 브람스 - 음악가
  • 구스타프 말러 - 음악가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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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오도어 폰타네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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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츠 카프카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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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츠 베르펠 - 작가
  • 넬리 작스 - 작가
  • 요제프 로트 - 작가
  • 에른스트 윙어 - 작가
  • 한스 팔라다 - 작가
  • 카를 추크마이어 - 작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작가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작가
  • 에리히 캐스트너 - 작가

20. 캐릭터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인 캐릭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 관련 문서

22. 둘러보기

중부유럽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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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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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는 3절만 취급한다. [2] 프로이센 왕국의 국화는 수레국화였다. [3] 완전 민주주의 [4] 독일 각 주의 주 총리와 도시주의 시장들이 1년씩 돌아가며 맡는다. 현재는 2018년 11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주 총리가 하고 있다. [5] 기독교민주연합 소속으로 헬무트 콜 내각에서 내무 장관으로 근무했고, 동서독 통일 조약에 직접 서명하기도 한다. 헬무트 콜이 5번째 총리 당선에 실패하고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게 내준 이후 헬무트 콜의 뒤를 이어 기독교민주연합의 대표가 되었지만 정치 자금 사건으로 중도 사퇴하고 후임 당 대표는 앙겔라 메르켈이 되었다. 앙겔라 메르켈 내각에서도 내무 장관으로 4년, 재무 장관으로 8년 가까이 근무했다. [6] 대한민국과 독일은 수교 연도를 조선과 독일의 수교 연도인 1886년으로 간주한다. 이후 대한민국은 서독과 수교하고 동독과 수교한 적은 없다. 북한은 서독과 수교한 적은 없고 동독과 1949년에 수교한다. [7] 서독 동독이 동시에 가입한다. [8] 오스트리아와 접한 남쪽 끝 부분은 알프스 산맥의 중턱에 해당한다. [9] 경제력으로는 영국도 있지만, 유로존에는 참가하지 않는 등 내내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제외. 게다가 영국은 2019년 3월에 유럽연합을 탈퇴하였다. [10] 네이버 GDP IMF 순위 [11] 다음 GDP IMF 순위 [12] 영어위키백과 IMF Voting power [13] 영어위키백과 Officially reported holdings [14] 연합뉴스 [15] 대신 이탈리아어에서는 독일과 달리 독일어/ 독일인은 위에 서술된 Diutisc에서 유래한 테데스코(tedesco)라는 단어를 쓴다. [16] 러시아를 제외하면, 슬라브어권 국가에서 독일을 부르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녜메트에서 나온 것이다. 녜메트는 해당 명칭으로 부르는 게르만 민족에서 따온 것으로 '벙어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게르만인이 슬라브인과 외형은 닮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벙어리라고 느낀 모양이다. 러시아어도 형용사로 쓸 때는 니몌츠끼(Немецкий)로 쓴다. [17] 해당 한자는 일본식 음독을 그대로 쓰면 도쿠이츠가 된다. [18] 도이치의 음차 덕의지(德意志)에서 따온 것이다. 독일 제국 칭다오에 건설한 식민지인 키아우초우에서 사용한 화폐를 대덕국보(大德國寶)라고 부른다. [19] 올림픽 등에서 서독, 동독 단일 팀을 구성하거나 단일 팀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가 있었다. 동독의 국기가 서독과 달라진 이후에는 서독, 동독 공동으로 쓸 때 서독, 동독의 국기에 모두 있는 검정, 빨강, 금색의 3색 국기 위에 작게 흰 오륜 마크를 추가한 것을 썼다. [20] 동유럽에서 공산 정권에 반대하여 투쟁할 때도 비슷하게 국기의 가운데를 동그랗게 오리거나 검은 테이프 등으로 X자를 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을 떼어내기도 했다. 과거 동유럽권 공산 국가들의 국기들은 전통적으로 썼던 과거 국기 위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국장을 덧붙인 디자인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21] BGH, Urteil vom 16. November 1959, Az. 3 StR 45/49. [22] 다만 완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례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이 독일 제국의 국기의 검정, 하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3] 독일의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과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 등의 관광지에 가면 미국, 소련, 서독, 동독의 국기를 들고 해당 국가의 군복을 입은 채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돈을 내면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다. [24] 독일이 모든 것 위에 있고 세계 최고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25] 올림픽 등에서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환희의 송가를 국가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참고로 환희의 송가는 현재 유럽연합에서 쓰이고 있고, 프랑코포니에서도 쓴다. [26] 독일어는 국가, 지역마다 방언이 나누어져 있지만, 전반적으로 표준 독일어가 많이 사용된다. 독일어는 유럽연합의 공용어 중 하나이자 영향력이 매우 큰 언어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27] 독일은 EF EPI 2018에서 10위로 우수 등급 중 하위에 속한다. 영어를 잘하는 국가끼리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못하는 편이지만 독일은 인구도 많고 영어를 자주 쓰는 환경에 노출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잘하는 축에 속한다. [28] # [29]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대학교에서 라틴어 학습자와 비학습자를 따로 구분했다. [30] 소르브어는 슬라브어계 언어이고 소르브인들은 독일 정부에서 인정한 슬라브계 소수 민족이다. [31] 1990년대에 구소련의 독일계 후손들이 독일로 많이 이주했지만, 대부분이 독일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32] 하지만 보통 되너집이고 진짜 정통 터키요리를 접할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널려있진 않다. [33] 옌스 슈판 외무 장관도 이러한 상황을 우려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 [34] 출산을 많이 하는 서유럽 국가의 경우 한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출산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분석도 있다. [35] # [36] 교회협의회(EKD) 소속이 아닌 루터교회를 말한다. [37] 다만 폴란드와의 접경지대는 폴란드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38] 몬시뇰 [39] 루터회 목사 [40]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표현을 빌리자면 독일 가톨릭교회는 최강의 집사를 보유한 셈이다. [41] 하이데거의 제자이며, 하이데거 사상을 신학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대략 중세 신학자들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집사로 삼은 것과 비슷하다. [42] 독일에서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를 비판하거나 할 경우 증오발언 내지는 혐오선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다. 독일은 기독교(가톨릭+개신교+기타 소수종파) 인구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지만 국민의 절대다수가 성소수자들에게 호의적인 국가이다. [43] # [44] 한국의 개신교 고학력 목사 중 유학파는 영미권 아니면 독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45] 오류가 있는데, Vive Le France가 아니라 Vive La France다. France라는 단어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프랑스어 문서 참조. 그리고 Vamos España 이다. [46]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슈투트가르트 출신이다. [47] 외질이나 알튼톱 형제 모두 똑같이 겔젠키르헨(Gelsenkirchen)이 고향이다. [48] 1980년대 케난 에브렌 정권 시절에도 알라의 알 자만 입에 담아도 '인민의 집(Halk Evi)'으로 끌려가 케밥을 코로 흡입할 수 있었다. [49] 이런 이민자 사회의 보수성은 사실 만국 공통, 민족 공통이다. 한국계 미국인, 재미동포들도 터키계 독일인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한국인들보다 훨씬 보수적인, 거의 70~80년대 한국의 사고 방식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민 와서 자기들끼리 뭉쳐서 살려면 구심점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해주는 게 바로 민족 의식과 종교이다. 재미 한인들도 대다수가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한인 교회는 그 극성맞음으로 악명높다. [50] 사실 터키인들과 아랍인들, 쿠르드인들도 인종적으로 볼 때는 백인이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유럽 백인들과 비슷한 게 적다. 그리고 본인이 열심히 동화되려고 노력하는게 아니라 이민자 사회 내에 머무르며 살아가는 경우 복식이나 헤어 스타일 등에서 차이가 나므로 기존의 게르만계 독일인과는 외적인 측면에서 이질적일 수 밖에 없다. 당장 아무 터키인을 데려다가 서양식 정장을 입히고 독일에서 유행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세팅하면 터키인임을 알아보기 어렵겠지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수염을 기르고 페스를 쓰고 있다면 그가 실제로 게르만계 독일인이라 해도 터키인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51] 독일어로는 Altes Schwein. 사람에게 늙은 돼지라고 하는 건 독일에서 아주 심한 욕이다. [52] 멍청이라는 뜻. [53]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독일국적을 버리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스위스에서 대학을 나와서 스위스에서 특허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그 뒤에 독일에서 연구활동을 한지로 애매하다. [54]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처럼 독일에 남아 과학부 장관 자리에 올라서 독일 핵개발을 지휘했던 사람도 있다. [55] 1896년에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1901년에 국적까지 얻었다. 1914년에 다시 독일 국적을 얻고 1933년에 다시 국적을 포기하고 1940년에 미국 국적을 얻어서 1955년에 사망할때까지 스위스와 미국 국적을 유지한다.더럽게 복잡하다 [56] 독일에서 연구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57] 기상학보다는 대륙이동설로 더 유명하다. [58] 기본적으로 헝가리인이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시절 출생했고 독일에서 공부한데다 학술 활동도 독일어로 했기에 독일 철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59] 정확히 말하면 칸딘스키는 러시아 태생이지만 뮌헨에서 활동하면서 현대 예술의 중요한 돌파구인 추상화에 이르렀다. [60] 기사 참고 [61] Minijobs sind sozialversicherungsfrei, d.h., sie begründen keinen eigenen Sozialversicherungsschutz [62] http://www.gegen-hartz.de/hartzivregelleistung.html 참고로 대한민국의 기초생활수급 수당과 비교시 1인가구 60만원, 2인가구 102만원, 3인가구 133만원, 4인 가구 163만원. 국민소득이 2배는 높은 독일이니 상대적으로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 대충 짐작이 가능할 듯. [63] 참고로 각종 보험과 세금을 납부해야 하므로 시간당 7.5유로를 받아야, 현재 주휴수당을 포함한 한국의 최저임금과 같은 수준이 된다. [64] # [65] 다만 유럽에서 지역 격차 문제는 이탈리아가 더 심한데 쭉 같은 나라였던 이탈리아 남북 격차보다 독일 동서 격차가 덜하다(...) [66] 루르 지역이나 브레멘 같은 독일 북서부 도시들이 공업 쇠퇴로 경제가 침체된 데 반해, 뮌헨이나 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같은 남부 도시들은 첨단 산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물론 북독일이라도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같이 잘 나가는 지역은 있다.) [67] 기초노령연금이란 간단히 말해서 일정 이상의 나이가 들면 다 주는 연금을 말한다. 당연히 연금이 발달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기초노령연금 외에도 공적연금으로 세대간 부양의무를 지우는 국민연금, 그 외에 사적연금으로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으로 다양한 노후보장체계를 마련하여 노후의 빈곤을 막는다. 즉 연금 수령액 전체를 통털어서 700유로인 것과 기초노령연금 500~800유로인 것은 천지차이다. 물론 이탈리아 같은 경우 노인들 빡세게 보장해 주면서 세금 부담 때문에 나라가 망해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둥 꼭 좋게 볼 수만은 없다. [68] 물가가 저렴한 나라로 이사를 가면 괜찮을 것 같지만, 해외 거주 시 그 나라 물가 대비해서 연금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스페인에 거주한다고 치고 세금 전부 다 떼면 1달 600유로 실수령(...). 스페인에 집이 있다면 모를까 노르웨이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다만 기초노령연금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잊지 말자. 대다수의 노르웨이인들은 이것보다 당연히 많이 받는다. [69] 실업률, 임금은 만 25세에서 만 64세 사이 [70] 어느나라가도 직업훈련 안받으면 저임금 노동 하는것 마찬가지다. 독일만 그렇것 아니다. [71] 한국 노년층까지 포함하면 평균학력이 저정도 수치로 나올 것이다. [72] 마트에서 파는 식자재 말하는 것. 외식 가격은 누가 유럽 아니랄까봐 더럽게 비싸다. [73] 이쪽은 관광객 프리미엄이 붙어서 프랑스급으로 비싸다. [74] 헌데 당시 상황으로는 통화교환을 1:1로 안하기에도 그랬던게 당시 동독의 임금수준이 명목상으로는 서독의 1/3 정도수준에 머물렀었고 (대신 그 만큼 물가는 싸긴 했지만) 동독 마르크의 가치는 잘쳐도 서독 마르크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이 아닌 동 3: 서1으로 통화를 교환했을 경우에는 동서독의 임금 격차가 무려 1:9까지 벌어지고 거기에다가 서독의 물가수준은 동독의 물가수준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동 3: 서 1로 교환한다면 통일후엔 그 만큼 빈부격차, 생활격차가 커진다는 얘기이니 셈이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75] 물론 그래도 임금수준이 서독보다는 많이 낮은 편이었고(대신 생산성도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물가(바나나나 향수 가격같은 건 크게 싸졌고 여타 물품도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그 대신 주택임대료나 전기료, 수도요금, 식사료는 폭증했다.)는 그보다 더 올라서 동독인들이 많이 불평했었다. [76] 통일연구원, 독일통일 20년 조망 : 독일통일이 한반도 통일에주는 시사점 - 통일 주변환경 조성 중심 기사도 참고 [77] # [78] 아프간에서 독일군과 같이 근무했던 캐나다 군인 수기에선 경계근무 도중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독일 군인들이 막사로 돌아가는 근무지 이탈이 있었다고 언급되었고 소말리아에 해적 퇴치를 위해 파견된 독일군 장병들이 지급된 장비를 들고 소말리아에서 용병 활동도 겸업했다는 사실은 한때 독일 내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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