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15:49:33

군사분계선

민간인 출입통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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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GP
남방한계선
전방 GOP
민통선
FE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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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
軍事分界線
Military Demarcation Line (MDL)
파일:군사분계선 팻말.jpg
<nopad>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놓인 군사분계선 팻말[1]
<colbgcolor=#000><colcolor=#fff> 접경 국가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
[[북한|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길이 동서 약 238km
설정일 1953년 7월 27일
관할 기관 유엔군사령부
대한민국 육군 민정경찰
조선인민군 육군 민경대대

1. 개요2. 성격3. 지리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6.25 전쟁 정전 협정에 따라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휴전 상태로 대치하는 군사적 경계선. 대중적으로는 휴전선(, Armistice Line)이라고도 한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각각 1991년 유엔에 가입하면서 사실상 '국경선'처럼 됐는데, 2024년 1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한반도에 두 개 국가가 병존한다고 발언하고 군사분계선을 "남쪽국경선"이라고 지칭하면서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국경선이라 주장하고있다. #

2. 성격

파일:삼팔선 및 휴전선.png
군사분계선과 삼팔선의 비교[2] 정전협정문 첨부 지도[3]
군사분계선은 국제법상 실질적인 남북간의 국경을 뜻하기도 하는데[4],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남북 양측이 독자적 주권 국가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또한 6.25 전쟁은 공식적으로는 ' 종전'이 아닌 ' 휴전(정전)' 상태로 '지속 중'이지만 국지적 충돌 이외에 전면전이 중단된 지 [age(1953-07-27)]년이나 지났기 때문이기도 하다.[5]

물론, 명목상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따라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대한민국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지도에는 실선으로 표기되는 국가 간의 국경선과 다르게 남북 간의 군사분계선은 대부분 점선으로 표기된다. 군사분계선 이북도 엄연한 대한민국의 미수복 영토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북 5도 문서 참조)[6] 일부 지도는 북한의 행정구역을 반영하여 황해북도와 경기도의 경계선, 북한 측 강원도와 남한 측 강원특별자치도를 따로 취급하고, 여기에 도(道) 경계선을 그려넣어 사실상 휴전선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실질적인 남방 국경선인데, 북한에서 발행한 지도에서는 국경 표시는 없지만 도(道) 경계로 사실상 찾을 수 있다. 서쪽은 개성시 경기도의 경계선으로, 동쪽은 북한 강원도 강원특별자치도를 따로 표기해서이다.

군사분계선 설정 이전, 실질적인 남북간 경계 기능을 했던 삼팔선과 오인되는 일이 있으나, 삼팔선의 경우 명칭 그대로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분계선으로 1945년 8.15 광복 직후 미·소 양군에 의해 그어져 6.25 전쟁 발발 전까지 존재하였다. 그러나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면서 삼팔선의 존재는 무효화되었으며, 1953년 7월 27일 현재의 군사분계선이 설정된 이후 삼팔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군사분계선이 삼팔선 근방에 걸친 상태에서 경기도 서부는 기존보다 남쪽으로 좀 더 밀려나고 동부(경기도 중동부~강원특별자치도)는 기존보다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간 정도인지라 둘을 헷갈리기 쉽다. 경기도 북부 지역과 강원도에는 아예 구 삼팔선 지역에 기념비를 마련해둔 곳도 있기 때문에 더욱 헷갈리기 쉽다.

3. 지리

파일:external/kookbang.dema.mil.kr/3223.jpg
파일:external/wmk.kr/F93068043_0_0_0_0_0_0.jpg
<rowcolor=#fff> 북한 측 팻말 남한 측 팻말
남북 양측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 2km씩, 총 4km 폭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했다. 실제로는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민간인 출입통제선을 더 그었기 때문에 민간인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군사분계선과 출입통제선 지역을 포함한 전방 지역은 야생동물 서식지가 산재해 있다.

흔히 군사분계선하면 철책(철조망)이 떠오르지만, 사실 군사분계선 자체는 철책이 아닌 팻말로만 표시한다.[7] 일반인이 철책으로 알고 있는 건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북방한계선· 남방한계선, GOP 민간인 출입통제선 같은 것들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을 향하는 팻말은 한글과 영문으로 '군사분계선, Military Demarcation Line'이라 적었고, 북쪽을 향하는 팻말은 한글과 한자로 '군사분계선, 軍事分界線'이라 적었다. 당연히 휴전 당시 남쪽은 한국군 유엔군, 북쪽은 북한군 중공군이 주둔했으니 각각의 언어를 따른 것. 한자가 간체자가 아니라 번체자인 이유는 당시 중국이 아직 간체자를 쓰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기준으로 한다면 '军事分界线'로 표기한다.

군사분계선의 길이는 동서로 총 238km이며,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하구에서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강리 동해안에 이르며 이 선상에 약 500~600m 간격으로 총 1,292개의 팻말이 있다. 이 중 남쪽을 향하는 696개를 남한, 북쪽을 향하는 596개를 북한이 관리한다. 한때 '휴전선 155마일(248km)'이라는 근거없는 표어가 오래 와전되어 왔고, 정부 공식적으로도 이렇게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 길이는 238km로, 환산하면 약 148마일이다. # 군가 대한의 사나이에서는 '휴전선 육백리'로 언급되는데 환산하면 235km로, 실 수치에 더 근접한다.

지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대한민국의 속초시는 북한의 개성시 해주시보다 더 북쪽이며, 남한 최북단인 고성군 통일전망대 일대는 평양시 바로 아래 있는 남포시 송림시보다 약간 남쪽이다. 게다가 남한의 입장에서는 서울특별시가 삼팔선 때보다 오히려 북한에 좀 더 가까워졌다. 실제로 한국전쟁 전까지는 삼팔선 이남인 황해도 옹진반도, 연백군[8] 경기도 개성시도 대한민국 관할이었다. 반대로 삼팔선 이북인 경기도 포천시 북부(영중면·창수면·영북면·관인면 전체와 이동면 대부분, 일동면 일부), 연천군(전곡읍·백학면·청산면 각 일부 제외)·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남면·신남면·기린면 각 일부 제외)· 양양군(서면·현남면 각 일부 제외)의 대부분과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철원군· 양구군· 화천군· 고성군 설악산도 포함한 부분이 북한 관할이었다.

군사분계선이 이와 같이 설정된 이유는 정전 협정을 하던 당시 유엔 측과 공산군 측이 각각 점령하고 있던 지역의 지배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싸움을 하며 경계를 나누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장단군, 연천군, 철원군 등 일부 지역은 원래 하나였던 것이 휴전선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었다.
파일:mdl.png
오픈스트리트맵에서 본 군사분계선(주황색 굵은 선[9]).

중부전선 김화군 및 화천군 섹터의 경우 금성 돌출부가 한때 남한 지역이었으나, 이승만 정부의 정전협상 방해 및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이 원인이 되어, 종전 2주 전 북중연합군의 대규모 공세를 받았다. 한국군은 끈질긴 저항과 분투 끝에 최악의 결과는 막아냈으나 결국 금성천 이남으로 후퇴해야만 했고 지도에 나온 대로 양국간의 경계가 최종 확정되었다. 휴전협정 체결직전 국군 7사단이 중공군을 상대로 한 425고지-406고지 전투에서 승리해서 빼앗긴 땅의 일부라도 되찾아오는 성과는 있었지만 휴전파탄 및 확전을 우려했던 터라 여기서 멈추게 되었다. 공산군 측 입장에선 화천 수력발전소까지의 진격은 실패했지만 중동부 전선에 한국군의 위협을 제거하고 4~5km 가량 남쪽으로 밀어내 금강천 북쪽을 손에 넣어 영토를 확장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목적은 이룬 셈이다. 따라서 이 전투 결과는 무승부라고 볼 수있다. 금성 전투 문서 참고 바람.

4. 관련 문서



[1] 총 1292개의 팻말 중 번호 0090번. 이곳의 경우 휴전선은 실제로는 이 다리 밑에 흐르는 하천(사천강)을 지나가지만, 물 위에 팻말을 세울 수는 없으므로 땅에 올려서 세워놓았다. [2] 대한민국은 황해도 옹진반도 연백평야, 개성시를 잃은 대신, 경기도 북동부와 강원특별자치도 북부를 영토로 수복하였다. 당시 북한강 상류에 있는 남한 전력 수요의 30%가량을 생산하고 한강의 유량을 통제하는 화천댐( 파로호)과 설악산도 차지하였다. [3] 22장의 지도 중 무려 9장이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전도다. 그 다음 1장은 한강 하구 수역의 전도, 그 다음 1장이 바로 서해 5도의 지도다. 나머지 11장은 그 당시 중립국시찰소조가 통행할 수 있는 곳을 표기한 지도다. 덧붙이자면, 11장 중 한반도 전도가 나온 1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10곳은 신안주, 신의주, 만포, 청진, 흥남, 인천, 대구, 부산, 군산, 강릉이다. [4] 실제로 외국 언론에서는 관습적으로 남북 관련 뉴스를 보도할 때 이 선을 'MDL'(군사분계선)보다 'border'(국경)라고 많이 부른다. [5] 실제로 국내든 해외든 일반적으로는 6.25 전쟁(Korean War)을 1950-1953년에 일어난 전쟁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실상(de facto) 종전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6]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이나 경기도 연천군의 '국토 정중앙'과 같은 슬로건 역시 당연히 이러한 지리적 인식을 근거로 한 것이다. [7] 강원특별자치도 모 부대원의 경험에 따르면 남측 팻말을 따라 유자철선이 길게 이어진 구간이 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다른 것으로 보인다. [8] 한편 이 지역들은 전쟁 직전에 경기도로 편입된 적이 있었기에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실향민 2세대들은 황해도=미수복 경기도라는 잘못된 내용으로 이해하며 자란 경우가 있다. 게다가 이 잘못된 전제가 받아들여지면 이 전제를 확증 편향시킬 수 있는 정황이 의외로 제법 있다. [9] 임진강 및 한강 하구에 해당하는 지역은 ‘중립수역’으로 지정되어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사분계선을 그려 넣은 일부 지도가 오히려 오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