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2-05 14:54:03

군벌/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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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군벌의 파벌4.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군벌의 운명
4.1. 공산당에 전향 및 투항4.2. 장제스를 따라 대만 망명4.3. 일본에 투항4.4. 기타4.5. 국공내전 이전에 사망한 군벌

1. 개요

한국의 역사책 등의 자료에서 ' 군벌'이라는 단어가 가장 자주 나오는건 세계대전 무렵의 중국( 중화민국)이다. 사실 중국은 항상 왕조교체 시기나 왕조의 말기에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군벌들이 성장해서 대륙을 할거하곤 했다. 초한지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군벌들의 항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항우 유방 등은 현대에 나타난 군벌의 원조격. 한국인들이 잘 아는 삼국지 후한 말 군벌들이 서로 싸우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중국의 군벌을 지칭할 때는 신해혁명 이후 나타난 무장 세력들을 말한다.

2. 상세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몰락한 이후 중화민국이 세워졌으나, 중화민국 자체가 북양군벌과 공화세력의 타협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청나라 북양군이나 신군의 지휘관들은 주둔지에서 행정공백을 이용하여 봉건영주처럼 행세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중국은 고대의 춘추전국시대가 20세기에 재현되었다고 할 정도로 각지에 수많은 군벌이 난립하고 있었다.[1] 이 군벌들은 청나라에서 군에 있던 자들, 마적단의 두목, 혹은 마적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자경단의 리더 등 출신도 다양했으며, 특정 군벌이 어떤 영역을 지배한다 해도 그 안에는 수많은 소군벌들이 그 군벌의 아래 속해 있는 봉건적인 구조였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무수한 분쟁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체계적인 현대적 군사교육을 받지 못했고, 따라서 군벌간의 대립에서 중요한 것은 전략이나 전술, 병기, 심지어 명분조차 아니었고 그저 이었다. 군벌은 모두 모병제였는데, 정치적 혼란기의 중국에는 일자리가 없는 남자들이 넘쳐났고 돈이 많을 수록 이들을 모병하기도 쉬웠다. 전술적으로 모두 미흡했기 때문에 더 많은 보병이 곧 승리를 보장했던 것이다. 또한 돈을 더 많이 쓰는 군벌이 각 지역의 소군벌을 더 많이 포섭할 수 있었고 이렇게 배신을 유도하는 정치공작이 실제 전술적인 능력보다 더 크게 승리에 기여했다.

1910~20년대까지 최전성기를 누렸던 중국의 군벌은 쑨원 1차 국공합작에 성공해 국민혁명군을 구성하고, 그 뒤 장제스의 북벌 1928년 일단 공식적으로는 소멸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군벌의 실력자였던 이들이 여전히 세력을 유지했다. 그래서 북벌이 끝난 후에 반장전쟁이라고 하는 내전의 탈을 쓴 대규모 국가간 전면전쟁이 터졌고, 반장전쟁 후에도 위세를 떨쳐서 중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군벌은 살아남았다. 중일전쟁 국공내전이 모두 끝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될 즈음에야 군벌은 완전히 뿌리뽑힐 수 있었다.

군벌은 일반적으로 군사력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마치 전국시대 국가들이 당시 인구로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양의 병력을 쥐어짠 것처럼 군벌들도 엄청난 양의 군대를 뽑아냈다. 군벌이 지배한 영역이 전국시대의 주요 국가의 영역을 능가한 경우가 많아서 당연한것일수도. 한 예로 제1차 봉직전쟁 당시 봉천(펑톈)군벌 장쭤린(장작림)은 무려 22만 명을 동원했고, 딱 2년만인 제2차 봉직전쟁 당시에는 17만 명, 직예(즈리)군벌은 25만 명을 동원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hinese_warlords_1925_with_Korean_caption.jpg
(1925년 당시 주요 군벌의 지도)

지도를 보면 중국의 주요 지역은 다 군벌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고, 광둥 성을 중심으로 한 남쪽의 푸른색 군벌이 국민당군과 그 동맹 군벌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86px-Chinese_civil_war_map_02.jpg
북벌이 끝난 후 1928~1937년 까지의 난징 10년의 시기의 지도

파란색이 난징 국민정부, 만주가 장쉐량, 광서~광저우에 걸친 세력이 리쭝런, 그외에 펑위샹, 옌시산의 이름이 보인다.

청일전쟁 당시부터 이미 군벌의 조짐이 보였기 때문에 당시 청군은 부대간의 유기적인 협동을 하지 못하고 서로 남보듯 하다가 일본에 각개격파당하는 등 추태를 보였고, 청의 멸망 이후로는 군벌로 따로 쪼개져 아예 다른 나라처럼 놀았기 때문에 중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군에 국토 여러군데를 점령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이러한 오합지졸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을 중요시하는 현대의 중국인들은 오호십육국시대와 함께 이 시대 군벌을 정말로 싫어한다.(...)[2] 현대 중국 정부가 그토록 하나의 중국을 중요시하고, 중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일부'라고 여겨지는 세력, 가령 위구르, 티베트, 대만, 홍콩 등이 독립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기만 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3. 군벌의 파벌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png 중화민국의 군벌과 주요인물 파일:대만 국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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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인물만 링크
※ 중일전쟁/국공내전 시기 인물의 전향에 대해서는 군벌/중화민국 4번 문단을 참고
※ 각 군벌의 해체 또는 국민당/ 공산당으로의 흡수는 군벌/인물의 개별문서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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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북양군벌(北洋軍閥, 베이양 군벌)

북양군벌 문서 참조.

3.1.1. 안휘군벌

해당 문서 참조.

3.1.2. 직예군벌

해당 문서 참조.

3.1.3. 봉천군벌

해당 문서 참조.

3.1.4. 산서(山西, 산시)군벌

산서성에 기반한 군벌...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옌시산(閻錫山, 염석산) 개인의 왕국이었다. 염계군벌, 진계군벌이라고도 하며 굳이 분류하자면 안휘군벌의 하위 계파로 분류된다. 주요 인물로는 염석산 외에 쉬융창(徐永昌), 쉬위안취안(徐源泉, 서원천), 샹전(商震, 상진), 양아이위안(楊愛源, 양애원) 등이 있지만 거의 옌시산(염석산)의 심복 같은 인물들이다. 옌시산(염석산)은 산시 성에 근거지를 마련한 뒤 단 한 차례도 실권을 놔본 적이 없으며, 통치 내내 공업 양성과 화폐개혁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산서성을 운영했다. 하지만 중원대전으로 경제적 파탄이 난 후에는 다른 군벌들처럼 산서성을 가혹하게 착취하여 군비를 마련했고 이때 붕괴된 산서성 경제는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던 시점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이후 공산당의 계속된 공격에 토지 사유제를 폐지하여 토지 공유제를 실시할 것을 고려했고 마오쩌둥의 동정항일 장제스의 도움을 받아 격퇴하는데 성공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옌시산은 2전구 사령관에 취임하여 린뱌오와 함께 일본군을 수차례 격퇴했으나 결국 성도 타이위안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영토를 뺏기고 서쪽으로 퇴각한다. 이후 일본군과의 교섭을 통해 암묵적인 휴전협상을 체결하였다. 허나 공산군의 공격으로 산서성 북부를 잃어버렸고 국공내전에서 패배하면서 소멸한다.

이 군벌은 특이하게 독자적인 각인을 새겨 생산해낸 짝퉁 총기들로 유명한데, 가장 유명한 것은 마우저 C96을 카피한 "산시 17식 권총(山西17式, Shanxi Type 17)". 그 밖에도 M1911 톰슨 기관단총도 베껴 썼는데, 특이하게 모두 .45 ACP탄을 쓰게 개조한 데다 중국 불법복제판 중에서는 성능이 가장 좋아서 다른 곳에서도 평이 좋았다고 한다. 군벌이라기보다는 군수기업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무기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수준도 비교적 높아 오합지졸 투성이인 국민당군이 이끄는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상당히 활약하였다.

3.2. 서북군벌

펑위샹의 국민군, 위유런, 양후청의 섬서군벌, 감숙성과 청해성의 마가군벌을 통칭하는 분류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3.3. 상계군벌

해당문서 참조.

3.4. 천계군벌

쓰촨성에 기반한 군벌. 주요 인물은 슝커우(熊克武, 웅극무), 류샹(劉湘, 유상), 류원후이(劉文輝, 유문희), 양썬(楊森, 양삼), 판원화(潘文華, 반문화), 단마오신(但懋辛, 단무신), 왕쫜쉬(王纘緖, 왕찬서), 뤼차오(吕超, 여초), 탕시준(唐式遵, 당식준), 왕링지(王陵基, 왕능기), 쑨젠(孫震, 손진) 등. 다른 지역 군벌들의 경우 특정한 한두 명의 군벌이 주도권을 잡고 타 군벌을 축출하는 일이 많았으나 쓰촨 지역은 열악한 교통 사정과 비교적 풍족한 경제적 환경으로 비슷한 세력을 가진 수많은 군벌들이 난립하여 끝까지 쓰촨 지역을 통일하지 못했다. 또한 주변의 윈난, 구이저우 성에서 온 객군(客軍)까지 독자적으로 지역을 장악해 중국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막장 판도를 그렸다. 중앙 정부는 물론 성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진 상태에서 각 세력들은 자군이 주둔한 지역에서 마음대로 행정권을 휘둘렀고, 이렇게 나온 세력권을 방구(防區)라 불렀다. 이런 갈등을 그나마 안정시킨게 류샹과 류원후이의 세력이었지만, 중일전쟁으로 인해 장제스가 충칭으로 천도하면서 쓰촨 지역은 중앙에서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상황이 되었다. 류샹은 장제스와 가까워진 것에 깊은 빡침을 느끼다가 1938년에 급사했으며, 쓰촨은 장제스에 의해 장악되었다.

3.5. 계계군벌

해당 문서 참조.

3.6. 월계군벌

광둥성을 기반으로 한 군벌. 통칭 월군(粤軍)으로 불렸다. 주요 인물로는 천중밍, 천지탕, 리지선, 장파쿠이, 위한머우(餘漢謀, 여한모), 뤄쭤잉(羅卓英, 나탁영) 쉐웨, 차이팅카이, 장광나이, 천밍수 등이 있다.

원래 광동은 계계군벌 루룽팅의 지배를 받았으나 천중밍이 월인치월의 구호를 내걸고 루룽팅을 토벌하고 광동군벌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쉬충즈가 광동군벌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하여 국민정부의 초기 군사력의 핵심이 되었으나 랴오중카이 암살 사건을 계기로 쉬충즈가 숙청되면서 크게 약화되었고 장제스가 지휘하는 당군, 즉 국민혁명군 1군이 주축이 되었다. 그럼에도 광동군벌은 리지선이 지휘하는 국민혁명군 4군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하였다.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리지선은 4.15 광저우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원을 숙청하여 장제스와 난징 국민정부를 지지하였고 반장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장제스와 계계군벌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등 장제스와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장제스가 계계군벌과 친한 리지선을 반역죄로 수감하면서 리지선은 몰락한다. 이후 광동은 천밍수 천지탕이 실권자가 되었으나 1차 양광사변을 계기로 천밍수가 축출되면서 천지탕의 일인 독주체제 하에 들어간다. 하지만 천지탕도 2차 양광사변을 일으켰다가 박살나서 축출되고 이후 위한머우가 실력자가 된다.

장파쿠이도 월계 계열이었으나 독고다이에 가까웠고 반장과 친장을 반복하다가 1차 양광사변 이후 장제스에게 복종했다. 이후 천밍수, 리지선 등은 해외에서 장제스에 대한 암살, 반대 운동을 시도했으며 1933년 복건사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복건사변은 50여일만에 박살났고 이후 이들은 중국 국민당 혁명위원회 설립에 참가하여 중공에 붙어버린다. 한편 천지탕, 위한머우 계열은 국부천대 이후 대만에 따라간다.

3.7. 전계군벌

해당 문서 참조.

3.8. 검계군벌

귀주성을 중심으로 하는 군벌 세력. 군벌들을 연구하는 논문에도 거의 언급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탕지야오처럼 전국구로 명성을 떨친 인물을 배출한 전계군벌이나 청나라 시절부터 80년 이상 지배를 영위해온 마가군벌, 짧은 집권기간에도 소련과 중국 사이를 오가면서 중일전쟁기 중소관계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제공하는 신강군벌과는 달리 정말 아무것도 한것도 없고 남긴 것도 없고 살펴볼 가치조차 없다.(...)

다른 지역군벌들처럼 귀주성을 기반으로 하는 토착군벌들의 정권이 세워졌으나 곧 붕괴되었고 이후 룽윈의 장기말 신세로 접어들어서 대장정 중에는 결국 중앙군에게 완전히 복속되어버린다. 허잉친이 검계군벌 출신이었다가 중국 국민당에 합류한 인물.

4.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군벌의 운명

중일전쟁에서 살아남은 군벌들은 대부분 중화민국 국군 장성 계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공내전이 벌어지자 장제스의 명령을 받고 공산당과 싸웠다. 중일전쟁 중에서 장제스와 사이가 벌어진 군벌들은 공산당과의 전투에 소극적으로 임하다가 대세가 기울자 투항하기도 했다.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가든, 공산당에 투항하든 이들은 명예직만 얻고 철저히 실권에서 배제되었다. 의외지만 공산당도 투항한 군벌들을 실권에서는 배제했을지 몰라도 박해하지 않고 꽤 대우해주었다.

4.1. 공산당에 전향 및 투항

상당수의 군벌들은 대륙의 패자가 된 공산당에 투항하였다. 탕성즈, 루한 등은 투항을 넘어 아예 기의를 일으켜서 자신의 영지를 통째로 공산당에 바치기도 했는데 윈난, 구이저우, 후난 등이 이렇게 공산당이 들어오기도 전에 항복해버렸다. 이런 군벌들은 공산당의 여러 고위직들과 학연, 지연 및 국공합작 시절의 인연으로 친분을 맺은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에[3] 이들의 투항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자발적 투항이 아니라 공산군과의 전투에서 포로가 된 경우 전범으로 기소되어 10년정도 감옥살이를 하긴 했지만 풀려나서도 공산당은 민심 수습을 위해 정협 감투 등으로 이들을 회유했다.

4.2. 장제스를 따라 대만 망명

자신의 영지 내에서 공산당을 크게 탄압하거나 처형한 군벌들은 당연히 공산당에 투항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반을 잃고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도피했다. 대만에서 자신의 기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만으로 도피한 군벌들은 대륙에 있을 때처럼 장제스에 반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 성스차이
  • 옌시산
  • 바이충시
  • 마부팡 - 회족이기 때문에 중화민국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로 재임하여 그곳에서 사망했다. 마씨 일족은 청나라 말기부터 중국 서북에서 회족군벌로 위세를 떨쳤지만, 삼국시대에는 마등 일족이 이곳을 장악했다국공내전 이후 대부분 대만으로 도피했다. 서북삼마(마부팡, 마훙쿠이, 마훙빈) 중에 마부팡, 마훙쿠이(마홍규)는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도피했고, 마훙빈(마홍빈)은 중공에 투항했다.
  • 위한머우(여한모) - 광둥군벌. 국공내전 막바지에 광저우 수비를 맡고 있었으나 중일전쟁 때 광저우를 날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허망하게 잃었다. 이후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떠나 총통부 전략고문을 맡았고 1981년에 8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황추쉬(황욱초) - 마찬가지로 광동군벌. 역시 대만에서 총통부 전략고문을 맡는다.
  • 천지탕
  • 허젠
  • 자오헝티
  • 양썬
  • 친더춘

4.3. 일본에 투항

아예 일본 제국에 붙어 한간이 된 케이스... 대개 종전 이후에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4.4. 기타

4.5. 국공내전 이전에 사망한 군벌


[1] 펄 벅 대지 2부 아들들에서 이 모습이 생생히 묘사된다. [2] 사실 여기에 더 나아가 (각종 창작물에 많이 쓰이는) 삼국시대조차 싫어하는 사람까지 있다. [3] 예를 들어 탕성즈는 천이 및 펑더화이와 큰 친분관계가 있었고, 푸쭤이는 딸이 공산당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