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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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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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690년 ~ 705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당 | ||
별칭 | 무주(武周) | |
위치 | 중국 | |
수도 | 낙양(洛陽), 장안(長安)[2] | |
국성 | 무(武) | |
국가원수 | 황제 | |
황제 | 측천무후 | |
언어 | 중세 중국어 | |
문자 | 한자 | |
종교 | 대승 불교, 도교, 유교, 마니교, 경교 | |
종족 | 선비족, 한족 | |
통화 | 불명[3] | |
현재 국가 | 중국 |
[clearfix]
1. 개요
武周(690 ~ 705)중세 중국의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집권시기에 건국한 왕조. 당의 황후 측천무후가 중국사 최초의 유일무이한 여제로 즉위하여 건국한 국가이다. 국호를 주(周)라고 정하였으나, 훗날 서주, 동주, 북주, 후주 등 여러 주왕조와 구별하기 위해 그의 성을 따 무주라고 흔히 부른다.
2. 역사
690년 9월 9일, 중양절을 기해 당의 황후 측천무후가 중국의 여황제로 즉위하여 창건하였다.측천무후는 15년간 주나라의 황제로서 중국 대륙을 통치했으며, 당시는 여성이 본인의 자식에게 일반적으로는 성씨를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무씨라는 성씨를 유지하기 위해 자식 대신 친조카들 무승사, 무삼사에게 세습을 고려하기까지 하였으나 적인걸 등 당의 구신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당고종과 자신의 아들 당중종을 황태자로 정하여 무씨 왕조로의 세습을 사실상 포기한다. 신룡정변으로 그녀가 퇴위하고 나서, 당중종이 복벽됨에 따라 무주왕조는 실질적으로 1대에서[4] 멸망하고 다시 당 왕조로 복고했다.
3. 역사적 평가
실질적으로 당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었으며, 후계자도 측천무후와 당 고종의 자식들이라 사실상 당 혈통. 무엇보다도 얼마 안 가 측천무후가 퇴위했기 때문에, 별개의 정통왕조로 보지 않기도 한다. 보통 독립된 왕조라기보다는 왕망의 신나라처럼 '당나라' 시기 잠깐 국명이 바뀐 정도로 취급받는다.기존 통일왕조의 중간에 들어선 왕조이지만 정통왕조로 취급하지 않는 셈 쳤다는 점에서는 왕망이 세운 신나라와도 비슷하다. 신나라는 한나라의 중간 전한을 대체시키고 들어섰다가 후한에 멸망했고 전근대 역사가들이 따로 독립된 왕조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주와 비슷하다. 측천무후의 정치는 오늘날 재평가가 이뤄져 긍정적 측면도 부각되고 있다는 점도 왕망의 신나라와 유사하다. 반면 현한, 후한에 무력으로 타도된 신나라의 왕망은 끔살당하고 이후 신 왕조와 왕망은 전근대시대 망탁조의의 최초 역적으로써 멸칭되어 근현대의 재평가까지 철저히 부정당했으나 측천무후는 전 왕조 당의 황후 및 황태후에서 폐위된 것이 아니라 다시 당나라 황족 출신인 자신의 아들들에게 반강제적으로나마 제위를 계승시켜 그녀의 후예들로 이어졌기 때문에 비록 무주 왕조는 부정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으로 황제에 즉위하여 부군과 아들의 왕조를 멸망시키고 신왕조를 창립한 측천무후 역시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어도 당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당나라의 황후 측천무후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어 무후 자신은 당나라의 황태후로써 여생을 보내어 천수를 누릴 수 있었고 그녀의 지위 역시 인정받아 일정 대우를 받았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둘 다 원래 왕조의 넓은 의미에서 원래[5] 외척이기도 했다. 외척 출신으로써 한나라( 전한)를 찬탈한 왕망, 북주에게서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개창한 수문제처럼 외척이 집권세력으로 신왕조를 건국했으나 중화제국의 장기왕조로 이어지진 못한 역사적 사례이다.
4. 기타
무주시기 쓰인 한자로 측천무후가 제정한 측천문자가 있다. 이후 측천문자는 당으로의 복귀와 더불어 거의 쓰이지 않게 된다.5. 한국사와의 관계
무주시대 당의 기미 통치가 무너졌고, 698년 요서의 영주[6]에서 동모산으로 이동한 대조영이 천문령 전투에서 당의 추격군을 격파하고 고구려부흥운동을 성공, 발해를 건국하여 후기신라와 대치하여 남북국시대로 이어진다.6. 황제
6.1. 역대 황제
대수 | 묘호 | 시호 | 이름 | 연호 | 재위 기간 |
1대 | - |
측천대성무상자씨천책월고금륜성신대황제 (則天大聖無上慈氏天冊越古金輪聖神大皇帝) 측천순성황후(則天順聖皇后) |
무조(武曌) |
천수(天授, 690년 ~ 692년) 여의(如意, 692년) 장수(長壽, 692년 ~ 694년) 연재(延載, 694년) 증성(證聖, 695년) 천책만세(天冊萬歲, 695년) 만세등봉(萬歲登封, 695년 ~ 696년) 만세통천(萬歲通天, 696년 ~ 697년) 신공(神功, 697년) 성력(聖歷, 698년 ~ 700년) 구시(久視, 700년 ~ 701년) 대족(大足, 701년) 장안(長安, 701년 ~ 705년) 신룡(神龍, 705년) |
690년 ~ 705년 |
2대 | - | - | 이현 | - | 705년 |
형식상으로는 직접 무주를 없앤게 아니라 먼저 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며칠 뒤 당나라 국호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이현은 며칠이나마 무주의 황제로 지냈다. 희한하게도 한 사람이 두 왕조의 황제가 된 셈이다.
6.2. 추존 황제
묘호 | 시호 | 이름 | 비고 |
- | 제성황제(齊聖皇帝) | 계(啓) | 무조 추숭, 하의 2대 군주 |
시조(始祖) | 문황제(文皇帝) | 희창(姬昌) | 무조 추숭, 주문왕 |
예조(睿祖) | 강황제(康皇帝) | 희예조(姬睿祖) | 무조 추숭, 주평왕의 아들 |
엄조(嚴祖) | 성황제(成皇帝) | 무극기(武克己) | 무조 추숭, 무조의 5대조 |
숙조(肅祖) | 장경황제(章敬皇帝) | 무거상(武居常) | 무조 추숭, 무조의 고조부 |
열조(烈祖) | 혼원소안황제(渾元昭安皇帝) | 무검(武儉) | 무조 추숭, 무조의 증조부 |
현조(顯祖) | 입극문목황제(立極文穆皇帝) | 무화(武華) | 무조 추숭, 무조의 조부 |
태조(太祖) | 무상효명고황제(無上孝明高皇帝) | 무사확(武士彠) | 무조 추숭, 무조의 부친 |
6.3. 추존 황제 (비황족)
묘호 | 시호 | 이름 | 비고 |
- | 신악천중황제(神嶽天中皇帝) | 중악대제(中嶽大帝) | 무조 추숭, 도교의 신 |
7. 대중매체에서의 무주
사실 690-705년 사이의 당나라는 잠깐 사라지고 '무주' 시대이므로, 대조영 등 한국 사극 등에서 측천무후 재위기를 다룬다면 무주 시대를 다룬 것이지만, 매체들 대다수에서는 기존의 당나라와 별다른 차별점을 두지 않고 그냥 '당나라'로 퉁친다. 무미랑전기 등, 중국 사극들도 그냥 '당나라'를 다룬 사극 취급받는게 현실. 애초에 존속 기간이 15년에 불과하므로 측천무후 본인을 포함한 이 시기 인물들의 일대기를 다루면 결국 당나라로 시작해서 당나라로 끝나니 틀린 말도 아니다.7.1. 호텔 델루나의 무주국
호텔 델루나의 주인공 장만월( 이지은)은 1000년전 고구려 유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도적패 가오리촌의 일원이었다. 고구려 귀족의 후손이었지만 현재는 무주국 변방 영주성의 무장인 고청명이 호위하던 행렬을 가오리촌이라는 도적단이 습격한다. 고청명은 가오리촌의 일원인 장만월에게 매혹당한다.
[1]
정확히는 8세기경의 당나라 강역.
서역을 빼앗긴 것을 제외하면 당나라 초중기의 강역과 거의 같다.
[2]
낙양은 신도(神都)라는 명칭으로 정도였으며 장안은 낙양 수도일때도 배도(陪都)로서 기능했다.
[3]
당나라와 같은 개원통보(開元通寶)였을수도 있다.
[4]
형식상으로는 2대까지 갔다.
[5]
즉
삼국지에서
동승 및
복완 등 외척들이 본인을 상대로 연거푸
반란을 일으키자 아예 본인이 스스로 외척이 되어 이런 사태를 원천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조조가
딸들을
헌제의
후궁으로 들여서 반강제로 외척이 된 경우를 제외.
[6]
현
랴오닝성의
차오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