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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在臺復校대만에서 학교를 다시 열었다는 뜻이다. 1949년 국부천대(國府遷臺) 이후, 중국 대륙에 있던 학교의 교직원과 교우들이 대만 지역에서 원래 학교의 이름으로 재건한 일종의 망명 학교들이다. 이 중에서는 이름만 가져갔을 뿐 실제로는 인적이나 물적으로 전혀 계승된 것이 없는 경우도 있다. 칭화대학처럼 일부는 넘어가고 일부는 대륙에 남아 이름이 같은 두 학교로 분리된 경우도 있다.
중국 대륙에 남아있는 학교들의 경우, 1949년 사립들은 국립으로 전환하거나 폐교 이후 모든 대학이 국립이라는 글자를 떼어낸다. 또한 1952년 공산당 정부의 대학 개편 방안에 의해 역사성이 단절된 경우들이 많다. 그나마 칭화대의 경우에는 문과 계열만 뺏기고 이공계열 대학으로 남아 역사성을 보존한 케이스에 해당하고[1], 중산대학과 중앙대학 등은 그 역사가 뒤죽박죽 뒤틀려 있다. 중국인 손으로 세운 최초의 대학인 북양대학은 그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아픈 역사 후에 살아남은 옛 대학의 건물들은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흔적이 남아있다.
2. 사례
2.1. 대학교
- 젠싱과기대학(健行科技大學)( 상하이)→1953년 타오위안. 가장 먼저 대만에서 복교한 대학이다. 가장 먼저 대만으로 옮겼다는 상징 외에는 역사도 1933년 개교로 아래 대학들에 비해 짧고 4년 만에 중일전쟁으로 이전, 1946년 상해로 돌아온 후 2년 만에 다시 대만으로 이전하여 상해에 있었던 역사가 6~7년 뿐이다.
- 둥우 대학(동오대학, 東吳大學)( 쑤저우) → 1954년 타이베이. 대륙에서는 쑤저우대학으로 남아있는데, 여기는 위치도 옛 둥우대학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현재 두 대학은 자매 결연을 맺고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 국립정치대학 (國立政治大學)( 난징) → 1954년 타이베이. 난징에 남아있던 정치대학은 후신도 없고 예전 캠퍼스도 교육시설이 아닌 공산당 건물로 사용되었다. 1927년 국민당 간부들의 교육을 위해 세워졌으며, 장제스 총통이 초대 교장을 역임했다. 학교 이름부터 정치 등 사회과학에 특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대만 정부의 외교, 양안관계 관련 학자 및 관료들의 상당수가 이 곳 출신. 대만 5대 대학으로 분류가 되기는 하나 대만대, 성공대, 칭화대, 교통대는 다시 4대 대학으로 분류되고 있어 확고한 5위 대학이다.[2] 대만 현지에서는 '정따'(政大)라는 약칭으로 불리기도 함.
- 정의대학(카이펑) → 1956년 타이중. 중국 대륙에서는 고등학교로 있다가 대만에서 대학이 된 케이스.
- 칭화대학( 베이징) → 1956년 신주시. 타이베이 난강에 자리잡을까도 생각했지만 넓은 캠퍼스를 조성할 수 있는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국립칭화대학 참조. 베이징에 있는 대학은 문과만 없어지는 사소한(?) 조정을 거쳤고 다른 오래된 대학들과 달리 원래 캠퍼스 위치에 멀쩡하게 남아 북경대와 중국 탑2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다.
- 국립양명교통대학( 상하이교통대학)( 상하이) → 1958년 신주시. 본래 북양대학과 함께 중국인이 세운 최초의 중국대학이다. 참고로 상하이에 남아 있던 교통대학은 1952년에 순수이과계열 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단과 대학을 푸단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 뺏기고 학교 마저도 시안으로 옮겨가게 되었다가 시안은 본교 상하이는 분교로 분리하기로 하는 수난을 겪었다. 결과적으로 학교 이전이 없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면서 현재 자리에서 명문대학이 되었다. 재대복교한 국립교통대학은 국립칭화대학과 함께 의대가 없었으나 대만에서 의학계열로 유명한 국립양명대학과 통합을 결의해 2021년 2월부로 교명을 국립양명교통대학으로 변경했다.
- 푸런 대학(보인대학, 輔仁大學)(베이징) → 1961년 타이베이현(현 신베이시).[3] 여기는 베이징이 인민해방군에게 점령당한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계속 남기로 한다. 1949년 국립보인대학이 되었다가 1951년 학교가 해산된다. 캠퍼스는 베이징사범대학으로 최후까지 남은 교수진은 북경대학을 비롯한 수 많은 학교로 옮겨가게 된다. 국부천대 때 대만으로 넘어온 동문들과 교수진들에 의해 복교가 되었다.
- 국립 중앙대학(國立中央大學)( 난징) → 1962년 먀오리현(현재 소재지는 타오위안시). 대륙 중화민국 시절의 최고학부였다. 괜히 이름이 중앙대학이 아닌 셈이다.[4] 대륙에서는 1949년 국립남경대학으로 개명한 후 남경대학과 난징공업대학, 남경사범대학, 남경농업대학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주요 역사는 남경대학이, 캠퍼스는 난징공업대학(현.동남대학[5])이 가져가는 것으로 되어 현재에 이른다. 현재 남경대학은 구교연맹에 드는 아직도 나름 세계구 명문대지만 재대복교한 중앙대학은 대만 안에서도 대만대는 물론 성공대, 청화대, 교통대 등한테도 밀리는 등 명문대라고 부르기 애매한 수준[6]까지 내려왔다. 대만의 명문 5개 대학 다음인 4중에 포함된다. 그래서 중앙대학에 대한 통폐합 요구가 많은 편이다.
- 세인트 존스 대학 (상하이) → 1967년 타이베이현(현 신베이시). 여기는 재대복교를 하고 싶었는데 당시 대학 신설 제한 때문에 신푸과기학원(institute)으로 머물다 2005년에서야 종합대학이 되면서 옛 이름인 셩위에한(St. John’s)과기대학으로 개명한다. 대륙에서는 1952년 국립 전환이 되지 않고 그대로 해산된다. 현재는 화동정법대학이 캠퍼스를 사용하고 있다.
- 국립 중산 대학(국립중산대학, 國立中山大學)( 광저우) → 1980년 가오슝. 여기는 링난대학과 합병된 후 이름은 중산대학으로 캠퍼스는 링난대학으로 옮겨간다. 옛 중산대학 캠퍼스는 화남이공대학이 쓰고 있다. 1980년에 세워진 대학을 복교로 보는 이유는 사실 1960년대 초부터 동문들이 지속적으로 복교를 시도하고 있었고, 타이중, 자이 등으로 구체적인 안까지 나왔다가 좌절됐고, 1979년 직할시가 되었음에도 국립종합대학이 없었던 가오슝에 대학을 세우려는 장징궈 총통의 의도가 맞아 떨어지면서 늦게나마 복교가 되었다. 그래서 남부지역 종합대학이라는 사명 때문에 광저우 시절에는 없었던 해양학에서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대만에서는 5대 명문대 다음 급인 4중(四中)의 일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대학(타오위안), 중흥대학(타이중), 중산대학(가오슝), 중정대학(자이)이 4중으로 포함되고 있다.
- 국립 즈난대학 (난징) → 1995년 난터우현. 여기는 재대복교 시점도 뜬금없지만 대륙에서도 화둥사범대학과 푸단대학으로 분리 해체된 후 뜬금없이 1978년 광저우에서 복교한다.
2.2. 고등학교
전부 사립학교다.- 이닝중학(난징) → 1949년 타이중.
- 리창중학(상하이) → 1950년 타이베이.
- 리런중학(상하이) → 1953년 타이베이. 위의 지엔싱과기대학과 뿌리는 같은 학교다.
- 웨이다오중학(요북성) → 1954년 타이중. 기존 캠퍼스는 길림성에서 여전히 제1고급중학으로 쓰이고 있다.
- 네이쓰공업직업학교(안후이성) → 1954년 신주현.
- 난산중학(상하이) → 1956년 타이베이현.
- 동난중학(강소성) → 1957년 윈린현.
- 푸단중학(상하이) → 1957년 타오위안현. 우리가 아는 상하이의 그 푸단대학이 맞다. 상하이의 푸단대학은 1952년에 여러 학과가 해체되고 타 대학의 학과를 병합하는 과정 속에서도 현 위치는 그대로 지키고 있다.
- 리밍중학(산동성) → 1962년 타이난. 지난시에 캠퍼스가 여전히 학교로 사용 중.
- 보인중학(베이징) → 1962년 자이. 위의 보인대학 참고.
- 성공여자중학(톈진) → 1963년 타이난. 천주교 풍의 기존 학교 이름(聖功)을 바꿔 옛 조계지에 그대로 남아있다.
- 쉬후이중학(상하이) → 1963년 타이베이현. 타이베이 지하철 쉬후이고교역에 있는 그 학교 맞다. 1850년에 개교한 학교로 상하이에도 똑같은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학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하철역 항목 참고.
- 한잉중학(푸젠성) → 1964년 타오위안현.
- 밍청중학(충칭) → 1965년 가오슝시.
2.3. 사관/경찰학교
- 해군군관학교( 상하이) → 1949년 가오슝시 쭤잉(左營)구
- 공군군관학교( 항저우) → 1949년 가오슝시 강산(岡山)구
- 육군군관학교( 난징)[7] → 1950년 가오슝시 펑산(鳳山)구
- 중앙경찰학교( 난징) → 1954년 타오위안
3. 번외: 재항복교(在港復校)
같은 주체를 피하기 위해 재대복교와 비슷한 이유로 중국 대륙을 떠나 대만이 아닌 홍콩에서 학교를 다시 연 사례도 있다. 재대복교가 아닌 재항(港)[8]복교라고 할 수 있을텐데, 링난대학(嶺南大學)이 그 사례이다. 링난대학 교수진이나 임원진 등 주요 인원들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색이 짙어진 장제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중국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넘어가는 걸 거부했다. 그렇게 중국에 남았지만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에게 뒤통수를 맞아 임원진은 숙청당하고 교수들만 영국령 홍콩으로 망명하여 대학을 연 것이다. 그래서 로마자 명칭이 홍콩에서 사용되는 광동어가 아닌 관화 기준으로 로마자화한 것이다. 홍콩에 위치한 8개 대학 중 유일하게 학교명에 "홍콩"이 들어가지 않는 대학교이다.4. 유사 사례
4.1. 대한민국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도 이북 지역의 학교를 학교의 교직원과 교우들이 남한 지역에서 원래 학교의 이름으로 재건한 일종의 망명 학교들이다. 미션스쿨이 많았던 사립학교의 경우 1930년대 일본의 기독교 탄압에 따라 이미 역사가 단절되었던 경우가 많다.대학의 경우 국립으로는 경인교육대학교(옛 개성사범학교), 사립으로는 평양에 있다가 서울에서 다시 세운 숭실대학교가 있다. 숭실대학교와 김일성종합대학은 인적, 물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오히려 김일성대는 경성제대-서울대와 학문적 관련이 많다. 많은 서울대 교수들이 국대안 파동 당시 자진 월북했거나 6.25 당시 납북당하거나 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개성에서 내려온 인천 송도중학교, 송도고등학교(1952)나 대전 호수돈여자중 고등학교(1953), 황해도 옹진에서 내려온 부천 시온고등학교(1958)[9], 인천해양과학고등학교(1953), 평양에 있던 숭의여자중 고등학교(1950), 각각 평북 정주와 선천에 있었으나 서울에서 재건한 오산고등학교(1953)와 보성여자고등학교(1950), 함남 함흥에 있었으나 수원에서 재건한 영생고등학교(1990)[10] 등의 사례가 있다.
6.25 전쟁 시기에도 서울대, 건국대, 동국대 등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수업했던 것과도 유사하다. 6.25 직전 이미 서울에서 재건되었던 보성여자고등학교의 경우 2차 피난을 해야 했다.
4.2. 해외
독일 베를린에서는 분단되면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가 동베를린으로 넘어가 소련군정에 의한 학내 탄압이 심해지자, 그 1948년 구성원들이 서베를린에 베를린 자유대학교를 세웠다. 독일 통일 후에도 이 두 학교는 병존하고 있다.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해 트리아농 조약으로 국토가 반토막난 헝가리에서도, 루마니아령이 된 콜로즈바르에서 페렌츠 요제프 대학[11]이 세게드(Szeged)로 옮겨왔고, 체코슬로바키아령이 된 포조니 대학도 페츠(Pécs)로 옮겨와 두 곳 모두 1921년 대학을 재개교했다.
코소보 내전 이후 프리슈티나 대학교도 민족별로 나뉘어져, 세르비아계 프리슈티나 대학교는 세르비아의 영향 아래 있는 북부 코소보의 코소브스카미트로비차에서 1999년 복교했다. 물론 알바니아계 프리슈티나 대학교는 지금도 프리슈티나에 있다.
[1]
나중에 다시 종합대학으로 돌아가지만 예전에 있었던 단과대학들은 여전히 다른 대학에서 그 역사를 계승하고 있고, 다시 생긴 학과들은 칭화대학에 새로 생긴 케이스다.
[2]
사실 이 반열 정도 되면 압도적인 1위 위치인 대만대를 맨 위에 둔 후에는 나머지 4개는 순위가 큰 의미가 없는게 정치대는 문과, 청화대랑 교통대는 이과 위주의 대학교이기 때문이다. 문과만 보면 성공대와 함께 2위/3위 정도의 포지션이며 보통 정치대를 더 우위로 쳐준다.
[3]
가톨릭계 대학으로, 이 학교 부근에
푸런대학교역이 있다.
[4]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인
장쩌민도 국립중앙대학 출신이였다.
[5]
1927년 이후 새로 개교한 중앙대학에 통합되었다. 현 동남대학이 옛 국립동남대학의 역사를 계승한다고는 하지만 1927년 이전의 국립동남대학은 사범대학을 기초로 했고, 현 동남대학은 공과대학을 기초로 성장한 학교인데다가 동남대학의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도 1988년이다.
[6]
대만의 명문대하면 보통 대성청교정(臺成清交政), 즉 대만대, 성공대, 청화대, 교통대, 정치대 이 5개의 대학교를 꼽는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대학은 한때 진짜로 중국의 중앙을 자부했지만 현재에는 이 반열에도 들지 못한다.
[7]
1924년 장제스를 교장으로 설립된
황포군관학교(黃埔軍校)에서 유래했음. 개교 당시에는 본토의 광저우에 위치했고, 지금도 광저우의 주요 관광명소로 남아있다.
[8]
홍콩은 한자로 향항(香港), 줄여서 항(港)이라고 쓴다.
[9]
옹진읍에 있었을 당시 교명은 옹진학교였다.
[10]
원래 여고로 재건하려 했었으나 인가를 받을수 없어서 남녀공학으로 개교했다.
[11]
이쪽은 1940년에 제2차 빈 중재로 헝가리가 콜로즈바르를 수복하면서 원위치 복귀했지만 5년만에 다시 쫓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