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6 14:01:03

국군간호사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관련 틀
대한민국 국군 장교 임관과정 대학민국의 국립고등교육기관 대한민국 국군의 입영부대 대학민국의 보건/복지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國軍看護士官學校
Korea Armed Forces Nursing Academy (KAFNA)
부대
마크
파일:국간사_부대마크.jpg
휘장 파일:afna_img.jpg
교훈 진리의 탐구, 사랑의 실천, 조국의 등불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분류 국립대학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개교 1951년 1월 6일
학교장 제26대 준장 권명옥
링크 국군간호사관학교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캐릭터4. 생도 생활
4.1. 학교 생활4.2. 학과 교육4.3. 교직과정4.4. 군사훈련
5. 임관 후 진로6. 입시
6.1. 입학 전형 및 가입교6.2. 남생도 선발
7. 기타8. 기수9. 출신 인물10. 관련 문서11. 타국의 사례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40519180217_V.jpg

1. 개요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제1조(설치의 목적) 군(軍)의 간호장교가 될 사람에게 필요한 교육을 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 소속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를 둔다.
진리의 탐구, 사랑의 실천, 조국의 등불[1]
대한민국 국군 간호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사관학교. 줄여서 '국간사', ' 간사'라고도 부르며(간사교, 간호교로도 불린다), 애칭 있다면 추가 바람.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고등교육기관이다. 고등교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곳이므로 신입생 모집에 있어 수시모집에서의 지원가능횟수에 포함되지도 않고, 정시모집의 대학군(群)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국방부 직할기관으로[2], 대전광역시 유성구 추목동 자운대에 위치하며, 현 학교장은 제26대 권명옥 준장(간사27기)이다.

2. 역사

6.25 전쟁으로 인해 간호장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였던 1951년 1월 6일 육군군의학교에 2년제 간호사관생도 교육과정을 설치한 것이 시초이며 이때 1기 생도 303명을 최초로 선발, 휴전 전인 1953년 4월 3기가 입교하였다.

휴전 이후 1955년 4월부터 군장학생을 선발, 전국의 주요 민간 간호교육기관에 위탁교육을 실시하였으나 시설 및 교수 부족으로 2회만 배출 후 폐지하였고 육군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 모집은 1957년 10기 입교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1957년 4월 1일 전국의 5개 육군병원 부설 3년제 간호학교를 설치하여 간호사관생도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지만 이 교육과정도 3개 기수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던 1959년 9월 학교 설치법안이 국무회의 심의에서 부결되어 1960년 4월 11일자로 중단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 간호사들의 국외 취업이 늘어나면서 군 간호인력 획득이 어려워졌고 베트남 전쟁 부상 장병들의 귀국이 이어지면서 늘어난 간호장교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1967년 8월 15일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육군간호학교를 설립하였다. 문제는 이 육군간호학교가 교육법에 의거하여 민간 간호교육기관과 동일한 교육을 해왔음에도, 국군조직법에 의해 설립된 학교라는 이유로 졸업 후 학력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

이는 1969년 5월 1일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로부터 정규 간호사를 배출할 수 있는 간호교육기관으로 지정받는 것으로 해결하였고 1970년 9월 9일에는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100명 정원(당시 기준)의 교직과정 설치도 승인받았다.

그러다가 1970년 12월 들어 국방부의 3군 의무부대 통합 운영방침에 따라 육군병원 및 육군간호학교가 육군참모총장 예하부대에서 국방부 직할부대로 지휘감독권이 이양되어 교명도 '국군간호학교'로 개칭되었다.

1974년 3월 문교부의 교육기관 정비계획에 의해 국군간호학교는 전문학교 교과과정으로 개편, 1975년 12월부터 전문학교 학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1979년도부터는 교육법상 전문학교가 전문대학으로 학제가 개편되면서 졸업시 전문대졸 학력이 인정되기 시작했고, 1980년 1월 4일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제정으로 현재의 교명을 갖게 되었으며, 동년 12월부터는 4년제 정규 간호대학 과정으로 학제를 개편하여 3군사관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4년제 사관학교의 반열에 올랐다. 첫 4년제 정규과정을 적용받게 된 기수는 23기.

해군 간호장교는 1977년, 공군 간호장교는 1993년에 최초로 임관하였다. 1996년 8월에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현 위치인 대전광역시 유성구 추목동 자운대로 이전했다. 1999년, 국방부의 예산 절감 방침으로 인하여 국방부 산하 군 교육기관 통폐합 및 규모 축소가 논의되면서 간호사관학교는 학교 자체를 해체하기 위해 신입생도 모집을 중단하는 흑역사를 맞이하였고 1999년에 입교한 43기가 마지막 기수가 될 뻔했다. 이때 국방부는 간호사관학교를 해체하고 100% 민간 자원으로 간호장교를 선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률이 거의 100%에 가까운 민간 간호사 자원들이 민간 병원에 비해 급여도 낮고 엄격한 군율 하에 전국 오지의 군부대에 근무해야 하는 군에 굳이 지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100% 민간 자원만으로 간호장교를 충원하기 어려운 현실이 어쩔 수 없었는지[3] 2001년 5월 31일 학교 존치가 결정되었고, 2002년 1월 23일 한국군 최초 여성장군인 양승숙 육군준장[4]이 학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장성급 학교장 체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2002년 46기가 입교했는데 46기가 입학했을 당시 선배는 4학년이던 43기뿐. 2000년과 2001년에 기수 선발을 하지 않아 44기와 45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98년 IMF 경제위기 극복과 군개혁의 일환으로 김대중 정부에 의해 폐교결정이 난 이후 1999년 가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어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법률 제4839호'에 의거 3년연속 신입생을 받지 못하면 자동폐교가 결정된 상태였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이상원 박사는 간호장교 출신 아내 김영신(26기)에게 선물한 사이트를 중심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 폐교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폐교 반대투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5개월간 온·오프라인 상에서 국민들에게 존속의 당위성을 인정 받았다. 2001년 5월 31일, 자동 폐교 3개월을 앞두고 건국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가 집행한 행정행위를 뒤집고, 새천년 민주당 이해찬 정책위 의장과 한명숙 여성부 장관과의 당정협의회를 통해 존속을 결정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여성장교단의 숙원인 여성장군을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2009년 국군간호사관학교 총동문회는 이 공로를 기려 이상원 박사를 명예동문에 위촉하였다.

2002학년도에는 2학년과 3학년이 없었고, 43기가 졸업한 2003학년도에는 분명 4년제 학교인데도 1, 2학년만 존재하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2년에 입교한 56기부터는 남생도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남생도는 8명이었으나 후술할 일로 인해 1명이 퇴교해 최종 7명이 임관하였다.

3. 캐릭터

파일:국간사캐릭터.gif

이름은 한나예다. 한국의 나이팅게일의 후예라는 뜻이라고 한다. 군 관련 기관 마스코트 캐릭터들 중 가장 예쁘다는 평을 듣는데, 국간사가 대중적으로 덜 알려져서 존재감이 낮은 게 문제다. 당시 3학년이었던 한 재교생도가 만들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사관학교 캐릭터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이다!

파일:국간사_캐릭터.jpg
남생도가 입교하게 되면서 남자 캐릭터가 추가되었다. 참고로 이름표에 있는 이름은 한나예로 똑같다(...)

4. 생도 생활

4.1. 학교 생활

다른 사관학교들과 마찬가지로 등록금이 없고 의식주 및 생필품, 학용품 일체가 국비로 지원된다(속옷 및 화장품류는 현금 지급으로 개인 구매). 노트북도 1인당 1대씩 지원되며 매월 48~65만원의 품위 유지비도 나온다. 3금(금주, 금연, 금혼) 제도가 존재하는 것도 다른 사관학교들과 같은 점. 오랫동안 여성 전용 사관학교였던 탓에 피복 규정 등이 여성 위주로 되어 있어, 첫 남생도가 입교한 56기는 여군용 손가방이 지급되는 일[5]도 있었다. 현재 남생도는 대체품인 어깨 가방이 따로 나온다.

2학년 2학기 중에 다른 대학 간호학과들과 마찬가지로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하게 되며, 이때 2학년 생도들은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이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치른 뒤에 겨울에 임상실습 투입). 그외 대부분의 학교 생활은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와 같으나 남녀 비율이 바뀌어 있다.

매년 가을 다른 대학교들과 다름 없이 축제(백합제) 기간이 있으며, 외부에 개방된다.

4.2. 학과 교육

간호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므로 간호학과 단일 전공만 있다는 점이 나름대로 여러 전공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다른 사관학교들과 다른 점이며, 간호사 장교의 기본 자질을 동시에 갖추도록 교육한다.

교양과정 외 전공과정은 간호학과의 전공과정 그대로이며 2학년 2학기에 있는 가관식 이후부터 기본간호 실습을 시작으로 하여 3~4학년 때는 군병원(3학년은 국군수도병원, 4학년은 국군대전병원을 간다.)과 민간병원 등에서 본격적으로 임상실습을 하게 된다. 간호사를 양성하는 학교인 만큼 졸업 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시행하는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하며, 매년 탈락자 없이 100%의 국가고시 합격률을 보이고 있다(국시에 합격하지 못하면 졸업 및 임관이 안 된다).

다른 사관학교와 마찬가지로 무감독 시험인 명예시험의 전통이 있고, 물론 시험 부정행위자는 훈육심의위원회에 회부되어 징계를 받는다.

4.3. 교직과정

대한민국 사관학교 중 유일하게 교직과정이 개설되어 있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며 사범대학 및 일반대 간호학과 교직이수자와 마찬가지로 4학년 1학기에 교생실습도 나간다('학교현장실습'이라 함).

2008년 이후 입학자를 기준으로 정원의 10%가 교직 이수자로 선발되는데[6] 전공이 간호학이므로 교직과정을 이수하면 졸업시 보건교사 자격증이 나온다. 간호사 국시만 합격하면 자동으로 보건교사 자격증이 나와서 임용고사를 볼 수 있었던 2001년 이전 입학자는 교직을 이수하면 교련과 교원 자격증이 나왔으며 실제로 간호사관학교 출신 교련 교사도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화여자대학교 보건교육과(현 보건관리학과)와 함께 유이한 교련과 2급 정교사 자격증이 발급되는 대학과정이었다.

4.4. 군사훈련

간호사관학교도 군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다 보니 하계/동계 휴가를 전후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다른 사관학교와의 다른 점은, 간호장교 양성에 특화된 교육과정 특성 때문에 일반 군사훈련이 적고 각 군별/상황별 간호 실습을 추가로 한다는 점(임상실습과는 별도). 육사/ 3사 생도가 3주간 받는 유격훈련도 1주만 받는다.

일반 군사훈련은 육군3사관학교에 위탁하여 실시하며 3학년 때는 항공/해양간호훈련을, 4학년 때는 야전간호훈련을 실시하는데 이는 육/해/공 3군 어디로 가더라도 각 군 특성에 맞는 군진간호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항공간호훈련은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에서, 해양간호훈련은 진해에 있는 해군 해양의료원에서 실시하며 해양간호훈련 중에는 해군사관학교에서 숙영하면서 해사 생도와도 교류한다.

5. 임관 후 진로

  • 여군과는 다르다! 여군과는!
    여군은 과거 모든 여군의 군사특기가, 육군에만 있던 여군이던 시절[7], 여군 병과장( 대령)의 통제를 받는 육군 대령~하사를 통틀어 부르던 말이었다. 결코 군인인데 여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군인인데 여자인 간호장교는 여군이 아니었고, 간호병과장 역시 여군 병과장과 같은 대령이었으므로 대등한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간호장교는 여군이랑 엮이는 걸 안 좋아한다(...) 즉, 한동안 국군에선 여성이 군인이 되려면 육군 여군병과나 전군에 다 가는 간호병과만 선택 가능(즉, 해공군의 여군 장교는 전부 간호병과)했다.
    - 간호장교 : 단일직업으로 6.25부터 국군의 건강을 지켜온 자부심
    - 여군 :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
  • 앞에서 서술했듯이 생도들은 졸업 전 간호사 국가고시를 거쳐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하고 졸업시 간호학사 학위를 받음과 동시에 // 공군 소위로 임관한다. 해군 임관자는 해병대에도 배치되며, 여기에서 근무하는 해군 간호장교는 해병대 피복을 받고 빨간 명찰도 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해병부대 소속 해군 군의관이나 의무병, 군법무관, 군종장교와 마찬가지로 해당 해병부대 지휘관 혹은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의 방침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까 해병들은 자기 때 해군들이 해병피복 안 입었다고 이거 구라라고 헛소리 말자. 선/후배 해병들 경험담 들어보면 해병 피복 받던 시절 해군들 얘기 실컷 들을 수 있다. # #
  • 육/해/공군 중 어디로 가느냐는 생도 본인의 희망을 받아 각 군별 TO를 반영하여 결정하며 임관 후에는 초군반 교육 후 군병원이나 사단 의무대 등 자대에 부임하여 본격적인 간호장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부터는 수술/중환자/응급 마취/인공신장/정신 등 주특기를 부여받아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근무할 수 있고, 국비로 석/박사학위 과정 위탁교육을 받아 간호사관학교 교수가 되기도 하며 국외파병을 지원할 수도 있다. 특히 국외파병은 그 자체가 의료지원을 목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고, 분쟁지역에 지원부대로 가더라도 의무 분야를 빼놓고 갈 수는 없으므로, 간호장교의 국외파병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물론 간호사관학교 훈육관으로도 간다.
  •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는 3군의 정규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와는 달리 장기복무장교가 아니라는 점이다. 3사관학교 및 간호사관학교 졸업 장교는 군인사법상 단기복무장교다. 근거는 법 제6조 제③항 1호. 3사 졸업 장교와 마찬가지로 임관 후 6년간 의무복무해야 하며 장기복무나 복무연장은 다른 비사관학교 출신과 마찬가지로 전형에 합격해야 한다. 장기복무자는 일반적으로 소령까지 진급하며 간호병과의 진급 자리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므로 중령 이상부터는 올라가기 힘든 편이다. 이쯤되면 간호사관학교 졸업 장교들이 장기복무자로 임관하지 않고 다 전역을 택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근데 다른 병과도 마찬가지... 중령~대령예편이 일반적인데...
    고위직 자리는 다음과 같다.
    • 준장 : 국군간호사관학교장.[8] 각 군 모두에게 개방은 되어 있으나, 관례상 항상 육군이 독식해 왔다. 더러운 육방부
    • 대령 : 7명. 국군의무사령부 의료관리처장과 국군수도병원 간호부장, 육/해/공군 각 1명인 간호병과장, 간호사관학교 교수부장, 생도대장.
    • 중령 : 국직부대 군병원당 각 1명인 간호부장[9], 간호사관학교 부서장 또는 과장
  • 장기나 복무연장이 아닌 경우는 임관 후 6년간 복무하고 대위로 전역하며, 전역 후에는 민간병원 간호사로 가거나 석/박사과정을 이수하여 대학으로 진출하기도 하고, 재학 중 교직과정을 이수한 경우는 임용고시를 거쳐 각급학교 보건교사가 되기도 한다. 간혹 군무원으로 재취업하여 군대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보건교사는 정년이 보장되는데다 3교대 근무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군에서 근무한 연수를 100% 호봉으로 인정받으므로, 교직과정 이수자들이 선호하는 진로.
    사실 간호장교들의 진급이 어려운 것은 군의관들 중에 장기복무자원이 적기 때문이다. 군의관보다 계급이 높은 간호장교를 많이 두기가 어려워 티오 자체가 적다.
    그리고 간호장교의 계급적체의 원인이 군의관들 장기복무자원이 적어서라는 요소도 있기도 하지만 단순히 장기복무자원이 적은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군의 지원의무부대 규모가 작은것도 이유다. 육군 '사단'급 제대에 소령~중령급이 부대장으로 들어가는 의무 대대가 아닌 대위~소령이 부대장으로 들어가는 의무가 편제되어 있으니 소령급 간호장교들이 갈 수 있는 자리가 국직 병원부대로 제한되는 것. 다만 의무부대 규모가 작은 이유 중 하나도 단기복무하고 나가는 군의관들이 많다는 것도 있어서 어찌보면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상황이 고착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솔직히 군인월급만 받고 사는 것보다 민간병원에서 더 높은 연봉을 가질 기대감이 훨씬 크니까 의무복무 후에 장기복무를 희망할 인원이 많을까?
  • 남자 간호장교들은 워낙 사람이 적다 보니 장기 선발이 매우 잘 되고 진급도 비교적 많이 보장되는데, 특히 해군은 13년도에 남자 간호장교가 처음으로 임관했으며 14년도까지도 한 명이었다. 중령 보장을 해군에서 얘기해 주었지만 군에 질린 나머지 전역하였다. 해군이나 공군으로 남자가 간호장교를 지원할 시 운이 좋다면 중령을 노려볼 만하다. 중령이 별 거 아닐 거 같지만, 이 계급이면 적어도 군생활 20년 이상은 할 수 있고, 연금도 밖에 나가서 부자까진 아니어도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을 만큼, 그것도 65세부터가 아니라 전/퇴역한 그 다음 달부터 나온다.

6. 입시

6.1. 입학 전형 및 가입교

다른 사관학교들과 같이 전형 단계가 많으므로 입시가 일반 대학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특수대학이라서 수시지원 6회에 해당하지 않으며, 국간사에 합격해도 일반대학에 정시로 지원 가능하다. 1차 시험날짜가 겹치므로 경찰대학과 각 군의 사관학교에 복수지원이 불가능하다. 2017학년도 입시부터 문이과를 구별해서 뽑는다. 2018년 현재 1차 전형은 국어, 영어, 수학각 100점씩, 총 300점 만점의 학과시험을 7월말에 실시하며(4개 사관학교 공동 출제) 정원의 4배수를 선발한다.

1차 합격자를 대상으로 9월중 2박 3일로 학교에서 2차 전형을 실시한다. 첫째날에는 안보관 약술시험, 둘째날은 신체검사와 체력검정, 셋째날에는 면접을 실시한다. 체력검정은 50점 만점이고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오래달리기 중 어느 하나라도 과락이 있으면 탈락이다. 보통 팔굽혀펴기에서 짐싸는 케이스가 많으니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연습해 두자. 신체검사는 육군 규정을 적용한다. 사지검사...

1차 시험을 치고 학교당 2인까지 받을 수 있는 학교장추천을 받으면 우선선발 대상자가, 받지 않으면 정시선발 대상자가 된다. 1차 성적과 내신, 2차의 체력, 면접점수를 합산하여 10월 중에 모집정원의 50%(2018년 기준)를 우선선발로 뽑는다. 우선선발 탈락자는 자동으로 정시선발 대상자로 전환되고, 정시선발은 1,2차 점수에 수능성적까지 합산하여 12월 중 발표한다. 2번의 기회가 있는 학교장 추천을 받는 것이 무조건 이득인 셈..

가입교 전까지 추가 합격자를 선발하고 가입교 1주차가 지나면 추가 합격자를 선발하지 않는다. 경쟁률은 보통 30~40대 1 정도를 꾸준히 유지(2017년도 경쟁률은 51.7대 1)하고 있으며 입결은 보통 인서울 대학교 간호학과 수준.

다른 사관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최종합격자는 고3 겨울방학 기간동안 간호사관학교에서 가입교 훈련을 받게 되며 가입교 기간을 무사히 넘겨야 정식 입교하여 신입 생도로 인정받는다. 물론 가입교 기간에서 중도포기하면 입교한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관학교를 포함한 간부 양성과정 지원에 결격 사유가 되지 않지만 정식 입교 후 중도포기하면 퇴교가 되어 다른 간부 양성과정 지원자격이 상실된다. 단, 질병이나 성적미달로 인한 퇴교는 지원자격을 상실하지 않는다.

생도가 대부분 여성이라 가입교시 보급품에 대해 궁금해할만도 한데 2008년 이전까지는 속옷 화장품도 가입교시 보급을 해줬으나[10] 2009년 이후부터는 속옷과 화장품류는 가입교시 개인별로 준비하여 들어오고 차후에 피복비(현금)으로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자세한 것은 보급품/여군 문서 참조). 물론 2012학년도부터 입교하는 남생도는 속옷이 보급될 것으로 보인다 남군은 그냥 닥치고 브레이브맨.

6.2. 남생도 선발

본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입교일 기준 만 17세~22세 사이의 미혼 여성만 지원할 수 있었지만 2012학년도 입시(56기)부터는 남생도도 선발한다(연령과 미혼 제한은 동일). 남생도 선발은 2006년부터 나왔던 이야기지만 국방부가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시행령 개정을 계속 미뤄오다가 2011년에 드디어 개정하여 2012학년도부터 모집하게 되었다.

공고상 선발 인원은 한 자리수일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처음에 학교측에서는 남/녀 생도 선발 비율을 공개하지 않았었다. 최초의 남생도는 8명이며 이들은 가입교 훈련을 거쳐 2012년 2월 23일 정식 입교했으며 관련 기사[11] 57기부터 59기도 역시 기수당 8명씩 입교하여 2015년 현재 4학년까지 남생도가 재학중이다. 다만, 이들이 최초의 남자간호장교는 아니다. 1974년에 남자간호후보생을 모집하여 5명의 남자간호장교가 최초로 탄생한 바 있다.

남자 생도 선발 1년만에 동기인 남자 생도와 교제하던 여자 생도가 임신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당연히 둘 다 퇴교당했다.

7. 기타

  • 다른 사관학교와 마찬가지로, 국군의 날 행사인 시가행진에 참여한다. 1998년까지는 간호사 캡에 수수한 정복 차림으로 총 대신 흰색 핸드백을 휴대한 채 참가했으나, 2003년 시가행진부터는 다른 사관생도처럼 화려한 생도 예복을 갖추고 행진하고 있다.
  • 위치가 위치다보니, 대전광역시에서 주말에 국간사 생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 2016년부터 간호사관학교 본부중대가 자운대 근무지원단에 흡수되어 더는 여기 소속된 육군 기간병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
  • 2016년, 기존의 부대표지 없던 국직부대들이 대부분 부대표지를 만들면서, 국간사도 표지를 만들었다.

8. 기수

1기부터 10기까지는 1951년부터 1957년까지 모집했다. 그후로는 한동안 간호사관후보생으로 민간 모집을 하다가 1967년에 11기부터 모집을 재개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950년대에 모으던 기수를 합산하지 않았다. 그래서 1995년에 임관한 35기의 경우엔 당시의 기사에선 25기였다.
기수 입교 임관 기수 입교 임관 기수 입교 임관 기수 입교 임관
1기 1951[12] 1953 21기 1977 1980 41기 1997 2001 61기 2017
2기 1952 1953[13] 22기 1978 1981 42기 1998 2002 62기 2018
3기 1953 1953[14] 23기[15] 1979 1983 43기 1999 2003
4기 없음[16] 24기 1980 1984 44기 없음
5기 1954(1월)[17] 1954 25기 1981 1985 45기
6기 1954(5월) 1955 26기 1982 1986 46기 2002 2006
7기 1954(12월) 1955 27기 1983 1987 47기 2003 2007
8기 1955 1956 28기 1984 1988 48기 2004 2008
9기 1956 1957 29기 1985 1989 49기 2005 2009
10기 1957 1958,
1960[18]
30기 1986 1990 50기 2006 2010
11기 1967 1970 31기 1987 1991 51기 2007 2011
12기 1968 1971 32기 1988 1992 52기 2008 2012
13기 1969 1972 33기[19] 1989 1993 53기 2009 2013
14기 1970 1973 34기 1990 1994 54기 2010 2014
15기 1971 1974 35기 1991 1995 55기 2011 2015
16기 1972 1975 36기 1992 1996 56기[20] 2012 2016
17기 1973 1976 37기 1993 1997 57기 2013 2017
18기[21] 1974 1977 38기 1994 1998 58기 2014 2018
19기 1975 1978 39기 1995 1999 59기 2015 2019
20기 1976 1979 40기 1996 2000 60기 2016

9. 출신 인물

  • 양승숙
    18대 교장. 육군. 최초의 여군 장성이자 최초의 장성급 학교장. 이 학교 출신은 아니고 전남대학교 간호학과 출신이다.
  • 이재순
    16기. 육군 준장진급, 교장역임. 전역 후 한국폴리텍대학 경북구미캠퍼스 학장으로 역임했다...(2006년부터 2008년까지.. 당시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좋은 이미지의 인기가 많은 학장님이었다고.....)
  • 윤종필
    17기. 육군 준장진급, 교장역임. 제20대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
  • 박순화
    19기. 육군 준장진급, 교장역임
  • 신혜경
    20기. 육군 준장진급, 교장역임.
  • 박명화
    21기. 육군 준장진급, 교장역임.
  • 최경혜
    22기. 육군 준장진급, 교장역임.
  • 윤원숙
    23기. 육군 준장진급. 교장역임. 첫 4년제 기수 출신이다.
  • 선효선
    43기. 육군.[22]
  • 송주영
    48기. 육군. 간호사관학교 재학 시절 교내 방송 아나운서를 했고 2008년 졸업/임관하여 간호장교로 근무하던 중 2011년 10월 국군방송 현역 앵커 4기로 선발되어 국군 방송 현장에서 2013년까지 활약하였다.
  • 신보라
    49기. 청와대 파견 간호장교 역임.
  • 이슬비
    51기.
  • 조여옥
    51기. 육군 대위진급, 청와대 파견 간호장교 역임.

10. 관련 문서

11. 타국의 사례

간호사관학교를 따로 두지는 않았지만 미군의 경우 국방의학전문대학원에서 간호장교 일부를 양성한다. 일본 역시 방위의과대학교에 과거에는 고등간호학원을 두어 부사관 간호사[23]를 양성했고 2014년부터는 간호학과 학생을 받아 이들이 졸업하는 2018년부터는 간호장교를 신규로 배치할 계획이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림춘추군의대학에서 양성하는 듯 하다.


[1] 공식 교훈. [2] 합동군사대학과 동일하다. [3] 물론 여기에는 당시 현역 및 예비역 간호장교와 여성계의 노력도 있었다. [4] 여군 및 간호병과 최초의 장성이다. 이전까지는 대령이 학교장이었으며 전투병과 최초의 여군 장성은 2010년 진급한 송명순 육군준장. [5] 가입교시 피복 지급 감독하며 고성을 지르던 상급생에게 한 남생도가 용기를 내어 손들고 "저희도 핸드백 듭니까?"라고 묻자, 잠시 당황하던 상급생 여생도가 "남생도는 안 들어도 된다."고 자의적으로 지시했다고 한다. [6] 2002년 이전 입학자는 정원의 30%였으나 이후 줄었다. 국간사 뿐만 아니라 다른 간호학과에서도 2008년 이후 교직이수 가능인원이 확 줄었다. 현재 교직이수가 있는 간호대의 교직 정원은 5~10% 수준이다. [7] 1990년까지는 여군의 모든 병과가 '여군'이었다. 1940년대 미 육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8] 최초로 4년제 정규과정을 적용받은 23기 이후 졸업생에서 준장이 배출되었다. [9] 해군 및 공군본부 예하 병원은 소령. [10] 사제 물품을 구매해서 보급했고 정식 입교 후부터는 현금 지급 [11] 사진 속 56기 땐 남생도에 대한 피복 규정 정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여성용 핸드백을 보급받았다. 현재는 남자 생도는 별도의 가방을 받는다. [12] 3월과 6월 2번에 걸쳐 입교 [13] 실습교육 1년 후에 임관부터 시키고, 2년 과정을 마친 후 졸업을 시켰다. 따라서 졸업은 1954년. [14] 입교 5개월 만에 전원 임관. 졸업은 1955년. [15] 1980년 법령개정으로 4년제가 된 첫 기수. [16] 4기가 없는 것은 기록의 누락이 아니라 '죽을 사'를 기피하는 전시 풍토 때문에 의도적으로 건너뛴 것. 군의학교 군의 초등군사반도 4기가 없다. [17] 휴전으로 인해 귀향이 이루어진 1954년에는 모집인원의 확보가 어려워 3차례에 걸쳐서 모집이 이루어졌다. 5기부터 10기까지는 입교 10개월 교육이수 후 임관됨. [18] 10기는 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2년제)로 입교하여 1958년 임관한 38명과 육군병원 부설 간호사관생도(3년제)로 입교하여 1960년 임관한 131명이 혼재되어 있다. 전후 사관생도 지원자가 크게 줄어 5기부터는 50명도 채 안되었다. 타개책으로 민간학교 위탁교육을 실시하였으나 이것도 2년만에 폐지되고, 5개 육군병원에 3년제의 간호사관생도교육대를 설치하여 1957년 1기, 1958년 2기, 1959년 3기가 입교하였다. 그런데 1959년 국무회의에서 학교설치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제도가 폐지되고 만다. 1,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기와 3기생은 민간 간호교육기관에 위탁되어 해당 학교의 졸업 자격을 얻었고, 3년 과정을 마친 1기생은 간호사 검정고시와 군의학교 교육을 거쳐 임관함으로써 국군간호사관학교 10기생으로 인정되었다. [19] 대한민국 공군에 처음으로 간호사를 공급한 기수이다. [20] 처음으로 남자생도들이 들어온 기수이다. [21] 대한민국 해군에 처음으로 간호사를 공급한 기수이다. [22] 국군철정병원(현 국군홍천병원)에서 중환자 특기 간호장교(당시 대위)로 근무하던 중 2008년 2월 20일, 당직이 아님에도 심야 응급환자 후송작전에 나섰다가 복귀하던 중 용문산 근처에서 기상 악화로 헬기가 추락하면서 순직했다(탑승자 7명 전원 사망). 이때 추락한 헬기 기종은 노후 기종으로 악명높은 UH-1. 순직 당시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체육복 차림이었다고 하며(그것도 탑승자 중 유일하게) 각 3살/생후 6개월 된 딸들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관련 기사. 소령으로 1계급 추서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장교제2묘역에 안장되었으며 2009년 2월 11일 보국 훈장 삼일장이 추서되었다. 2012년부터는 '선효선 상'을 제정하여 간호병과 창설일인 매년 8월 26일에 모범이 되는 간호장교 대위 1명을 선정, 시상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학교 동문 전체와 현역 간호장교들이 뜻을 모아 2009년 11월 6일 생도회관에 고인의 부조상을 건립하였고 국군의무학교에도 당시 순직한 장병들의 흉상을 건립, 사고일인 매년 2월 20일 추모 행사를 한다. 남편 역시 군인으로, 육군사관학교 58기이다. [23] 진급하면 장교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