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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 | |||
출생 | 1948년 2월 2일[1] ([age(1948-02-02)]세) | ||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 (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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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35 (본산리) | ||
현직 |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 이사장 | ||
활동기간 | 제16대 대통령 배우자 | ||
2003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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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 본관 | 안동 권씨 (安東 權氏)[3] | |
부모 | 아버지 권오석, 어머니 박덕남 | ||
배우자 | 노무현(1973년 결혼, 2009년 사별) | ||
자녀 | 아들 노건호, 딸 노정연 | ||
학력 |
진영대창국민학교[4] (37회 /
졸업) 혜화여자중학교 ( 졸업) 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 ( 중퇴) |
||
경력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회장 대한암협회 명예회장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명예회장 방송통신대학교 명예후원회장 국립극장후원회 명예고문 예술의전당후원회 명예후원회장 국립암센터 명예후원회장 |
||
종교 | 불교 ( 법명: 대덕화)[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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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의 배우자.2. 생애
1948년 2월 2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에서 빨치산이자 비전향 장기수였던 아버지 권오석[6]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덕남(朴德南, 1920. ~ 2017.2.24.)[7] 사이의 1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진영대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혜화여자중학교를 졸업, 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현 계성여자고등학교)를 중퇴하였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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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과 노무현의 결혼식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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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 |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2003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청와대에서 생활하였다. 왕성한 대외활동을 했던 이희호 여사와 달리[11] 권양숙은 조용하게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었는데[12] 동자승들이 청와대에 견학을 오면 직접 본인이 행사에 참석해 진행했다.[13]
2.1. 퇴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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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함께 찍은 권양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 |
하지만 귀향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권양숙 본인도 수사 레이더에 올랐다. 수사가 시작된 지 4개월 뒤인 2009년 4월, 검찰은 권양숙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를 벌였으며[14] 박연차가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에게 준 100만 달러 의혹에 대해 집중추긍했다. 언론에서는 권양숙이 마치 피의자 자격으로 불려간 것처럼 기사를 썼지만, 엄연히 권양숙은 참고인 신분이었고 그 어떤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권양숙이 검찰에 불려가고 20여일 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검찰청 중수부에 소환되어 10시간동안 조사를 받았으며 검찰은 5월 중순 쯤 권양숙을 추가 조사할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15]
그러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끝나게 된다. 권양숙은 노무현의 서거 소식을 듣고 양산부산대병원을 방문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였으며[16] 남편의 사망선고가 떨어진 뒤 봉하마을의 사저로 이동해 이틀 동안 요양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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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의 권양숙과 김대중 전 대통령 |
2009년 9월 1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과 봉하재단이 분리되면서 봉하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재직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며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의 싱크탱크 역할도 겸하는 노무현재단과 달리 봉하재단은 순수히 봉하마을 시설관리와 농작물 사업 등 민간 차원의 사업에 집중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에도 봉하마을에 계속 거주하였으나 2018년 5월 1일, 사저가 개방되면서 진영읍 내에 새로운 자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단 봉하마을에 정치인이 방문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전의 사저에서 접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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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과 김건희 |
3. 논란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 씨는 권양숙이 건넨 13억 원을 불법적인 환치기를 통해 송금했으며, 이에 대해 노정연 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권양숙은 입건 유예되었다. 노정연 씨는 13억 원은 어머니가 보내준 돈이라고 밝혔으며, 권양숙이 이 13억 원의 출처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때 청와대를 방문한 지인들과 퇴임 이후 봉하마을 사저로 찾아 온 지인들이 준 돈을 모아서 보관해 오던 것”, "‘지인’에 대해서는 “인간적 정리상 구체적 신원을 밝힐 수 없다” 라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개된 재산 규모를 감안할 때 13억 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개한 전 재산의 1.4배나 되는 규모[19]이기 때문에 재임 중 지인에게 돈을 받았고, 그게 누구인지 공개할 수 없다는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 금전을 받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비서실장이자 노무현의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변호사[20]도 인정한 사실이다. #
4. 여담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2월 안검하수 증세로 쌍커풀 수술을 받았을 때 같이 수술을 받았다. #
- 2003년 싱가포르 국빈 방문 당시 싱가포르에서 헌정용으로 명명된 난초인 권양숙난이 있다. 한국인 이름 최초의 난초이자, 영부인으로서 최초의 난초이다.[22] 현재도 싱가포르 보타닉 가든에 자라고 있다고 한다.
- 권양숙의 모친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모인 박덕남이 2017년 2월 24일에 사망했다. 향년 96세.
-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최상위권이자 민주당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다음가는 작은 어른으로 대우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지만, 남편과는 달리 이미지가 좋지 않은 편이다. 보수 진영에게는 영원한 정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며 부친 권오석의 빨치산 활동 논란과 부패 논란으로 인해 찍혀 있고, 반대로 민주당계 진영에게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남편인 노무현이 자살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하여 원한을 샀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좌우 양측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어느 쪽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 셈이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역대 대통령 영향력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가 보수 진영에서 가졌던 이미지, 육영수 사후 대통령 배우자 직무 수행을 한 박근혜가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통령에 올라선 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 이희호[23]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마지막까지 진보의 큰어른 대우를 받아왔다는 것과 비교하면, 권양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언론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처신하고 있다. 현재는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 진영읍 내의 다른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고, 사저가 개방된 이후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예방할 때 얼굴을 비추는 것 말고는 공개적인 활동은 피하고 있다.
- 갑론을박을 떠나 국가정보원에 의한 미행 피해자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 건으로 관련하여 재판을 받고 있으며 대법원에서 국정원 직원에게 박 전 시장과 권양숙을 미행하게 한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
- 도전 골든벨 300회, 독서 골든벨에 나와서 문제를 직접 낸 적이 있었다.
-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와 함께 단 둘뿐인 불교 신자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법명이 '대덕화'로 같으며, 남편은 아내와 달리 특정 종교를 깊이 믿지 않았다는 점도 비슷하다.[24]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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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대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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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1949년 | 8월 15일 | 이승만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0년 | 8월 13일 | 윤보선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3년 | 12월 5일 | 12월 17일 | 박정희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7년 | 6월 23일 | 육영수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79년 | 12월 7일 | 최규하 | 대통령 | 대한민국 |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 ||
1979년 | 12월 7일 | 홍기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80년 | 8월 29일 | 8월 29일 | 전두환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1980년 | 8월 29일 | 8월 29일 | 이순자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88년 | 2월 24일 | 2월 25일 | 노태우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1988년 | 2월 24일 | 2월 25일 | 김옥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93년 | 2월 11일 | 2월 23일 | 김영삼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93년 | 2월 11일 | 2월 23일 | 손명순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98년 | 2월 17일 | 2월 25일 | 김대중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98년 | 2월 17일 | 2월 25일 | 이희호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08년 | 1월 28일 | 노무현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08년 | 1월 28일 | 권양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2일 | 이명박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2일 | 김윤옥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9일 | 박근혜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22년 | 5월 3일 | 문재인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22년 | 5월 3일 | 김정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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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하인리히 뤼프케 | 대통령 | 서독 | 외국인 최초 상훈자 |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빌헬미네 뤼브케 | 영부인 | 서독 | 외국인 최초 상훈자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이스마일 나시루딘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틍쿠 인탄 자하라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푸미폰 아둔야뎃 | 국왕 | 태국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시리낏 끼띠야콘 | 왕비 | 태국 | ||
1966년 | 2월 1일 | 2월 15일 | 장제스 | 총통 | 중화민국 | ||
1968년 | 5월 10일 | 5월 18일 | 하일레 셀라시에 | 황제 | 에티오피아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반티에우 | 총통 | 남베트남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티마이아인 | 제1부인 | 남베트남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하마니 디오리 | 대통령 | 니제르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아이샤 디오리 | 영부인 | 니제르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 대통령 | 엘살바도르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 영부인 | 엘살바도르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오마르 봉고 | 대통령 | 가봉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조세핀 봉고 | 영부인 | 가봉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 대통령 | 세네갈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 영부인 | 세네갈 | ||
1980년 | 5월 11일 |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 국왕 | 사우디아라비아 | |||
1980년 | 5월 14일 |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1981년 | 6월 25일 | 수하르토 | 대통령 | 인도네시아 | |||
1981년 | 6월 25일 | 시티 하티나 | 영부인 | 인도네시아 | |||
1981년 | 6월 29일 |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81년 | 6월 29일 | 틍쿠 아프잔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81년 | 7월 6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대통령 | 필리핀 | |||
1981년 | 7월 6일 | 이멜다 마르코스 | 영부인 | 필리핀 | |||
1981년 | 10월 13일 | 로드리고 카라소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1981년 | 10월 13일 |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 영부인 | 코스타리카 | |||
1982년 | 5월 10일 | 사무엘 도 | 대통령 | 라이베리아 | |||
1982년 | 6월 7일 | 모부투 세세 세코 | 대통령 | 자이르 | |||
1982년 | 6월 7일 | 보비 라다와 | 영부인 | 자이르 | |||
1982년 | 8월 25일 | 압두 디우프 | 대통령 | 세네갈 | |||
1982년 | 12월 21일 | 케난 에브렌 | 대통령 | 튀르키예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 대통령 | 수단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 영부인 | 수단 | ||
1983년 | 9월 10일 | 후세인 1세 | 국왕 | 요르단 | |||
1983년 | 9월 10일 | 누르 | 왕비 | 요르단 | |||
1984년 | 4월 9일 | 하사날 볼키아 | 국왕 | 브루나이 | |||
1984년 | 4월 21일 |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 국왕 | 카타르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다우다 자와라 | 대통령 | 감비아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치렐 자와라 | 영부인 | 감비아 | ||
1985년 | 5월 17일 |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 대통령 | 파키스탄 | |||
1985년 | 5월 20일 |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1986년 | 9월 4일 | 4월 10일 | 엘리자베스 2세 | 국왕 | 영국 | ||
1986년 | 9월 4일 | 4월 16일 | 보두앵 | 국왕 | 벨기에 | ||
1987년 | 4월 7일 | 아메드 압달라 | 대통령 | 코모로 | |||
1988년 | 11월 3일 | 이스칸다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88년 | 11월 3일 | 자나리아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20일 |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 대통령 | 서독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프랑수아 미테랑 | 대통령 | 프랑스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다니엘 미테랑 | 영부인 | 프랑스 | ||
1990년 | 6월 21일 |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 대통령 | 파라과이 | |||
1990년 | 11월 5일 | 괸츠 아르파드 | 대통령 | 헝가리 | |||
1991년 | 9월 13일 | 아즐란 샤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91년 | 9월 13일 | 투안쿠 바이눈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91년 | 9월 25일 |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 대통령 | 멕시코 | |||
1992년 | 8월 13일 |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 대통령 | 과테말라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피델 라모스 | 대통령 | 필리핀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 영부인 | 필리핀 | ||
1994년 | 11월 7일 | 11월 21일 |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 대통령 | 칠레 | ||
1994년 | 12월 5일 | 12월 9일 | 레흐 바웬사 | 대통령 | 폴란드 | ||
1995년 | 2월 7일 | 2월 16일 | 이슬람 카리모프 | 대통령 | 우즈베키스탄 | ||
1995년 | 2월 21일 | 3월 6일 | 로만 헤어초크 | 대통령 | 독일 | ||
1995년 | 3월 28일 | 4월 3일 | 젤류 젤레프 | 대통령 | 불가리아 | ||
1995년 | 6월 26일 | 7월 7일 | 넬슨 만델라 | 대통령 | 남아프리카 공화국 | ||
1995년 | 9월 26일 | 9월 29일 | 카를로스 메넴 | 대통령 | 아르헨티나 | ||
1996년 | 7월 23일 | 9월 4일 | 알바로 아르수 | 대통령 | 과테말라 | ||
1996년 | 7월 23일 | 페르난두 카르도주 | 대통령 | 브라질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후안 카를로스 1세 | 국왕 | 스페인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 왕비 | 스페인 | ||
1996년 | 11월 26일 |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96년 | 12월 10일 | 12월 15일 | 레오니드 쿠치마 | 대통령 | 우크라이나 | ||
2000년 | 2월 22일 | 3월 3일 |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 대통령 | 이탈리아 | ||
2000년 | 2월 22일 | 3월 6일 | 자크 시라크 | 대통령 | 프랑스 | ||
2006년 | 3월 12일 |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 대통령 | 알제리 | |||
2007년 | 3월 26일 |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2007년 | 3월 28일 |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 국왕 | 카타르 | |||
2009년 | 5월 13일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 대통령 | 카자흐스탄 | |||
2009년 | 11월 12일 | 알란 가르시아 | 대통령 | 페루 | |||
2012년 | 5월 30일 | 칼 16세 구스타프 | 국왕 | 스웨덴 | |||
2012년 | 11월 21일 |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 대통령 | 아랍에미리트 | |||
2018년 | 10월 8일 | 에마뉘엘 마크롱 | 대통령 | 프랑스 | |||
2019년 | 하랄 5세 | 국왕 | 노르웨이 | ||||
2021년 | 6월 14일 |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 대통령 | 오스트리아 | |||
2021년 | 6월 16일 | 펠리페 6세 | 국왕 | 스페인 | |||
2021년 | 6월 16일 |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 왕비 | 스페인 | |||
2021년 | 8월 25일 | 이반 두케 | 대통령 | 콜롬비아 | |||
2021년 | 9월 21일 | 보루트 파호르 | 대통령 | 슬로베니아 | |||
2023년 | 7월 13일 | 안제이 두다 | 대통령 | 폴란드 | |||
2023년 | 11월 21일 | 찰스 3세 | 국왕 | 영국 | |||
2024년 | 11월 16일 | 디나 볼루아르테 | 대통령 | 페루 | }}}}}}}}} |
노무현 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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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배우자, 형제자매, 처가 및 직계 가족 일람 | ||||
부친 노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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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 노영현 |
차형 노건평 |
노무현 (아내 권양숙[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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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노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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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 노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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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오석의 딸. |
[1]
포털 인물정보에는
1947년생으로 나온다.
[2]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
[3]
복야공파 응경(應慶)계 36세손.
[4]
現 진영대창초등학교
[5]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와 법명이 같다.
[6]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했을 당시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이에 노무현은 그 유명한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는 내용의 연설로 강경하게 대응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득이 되어 순조롭게 정치인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참고로 노무현은 장인어른의 빨치산 경력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7]
규정공파 25세손,
혁거세 69세손. 박희진(朴熙進)의 딸이다.
[8]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 학력 문제로 정치적 반대파 및 우익 세력들로부터 온갖 비하와 음해를 받기도 했지만 당시는 여성이 고등학교까지(중퇴이긴 하지만) 갔다는 것만 해도 지금의 대졸자 급의 취급을 받던 시대였다. 권양숙이 재학하던 1960년대 초반 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계성여자고등학교)는 부산 서구 학교 밀집지역에 소재한 중위권 사립학교에 속했다. 정치적 반대파와 우익 세력들이 계성여자고등학교를 훗날의 실추된 이미지를 가져와서
똥통학교라고 비하했지만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가 지금의 수준으로 몰락한 것은 1974년 고교평준화로 인해 부산의 고등학교 서열이 완전히 뒤엎어진 이후였다. 1974년 이전에는 명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학교였다.
[9]
느낌표에 출연한 노 대통령의 회고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권 여사에게
유주현의
대원군을 건네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10]
여기서 '꽤 준수한'이라는 말은 노무현 자신이 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법연수원 성적 순서대로 판사가 뽑혀나가고 그 다음으로 검사가 뽑혀나간다. 그래도 당시에는 사법시험 선발 인원 자체가 100명 미만으로 극히 적었기 때문에 사법시험 합격 자체가
먼치킨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특히 노무현이 합격한 17회 사법시험 합격 인원은 60명으로 다른 해보다도 유난히 적었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300명으로 늘어난 23회 사법시험 (연수원 13기) 이전에는 사법시험 합격자는 과거 민주화운동 전과 등 결격사유가 없는 한 거의 100%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었다. 노무현이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보기 위해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와서 변호사 개업을 했을 때도 그 자신을 포함해서
부산직할시 내 전체 변호사가 3명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11]
이희호는 김대중과 결혼하기 전부터 여성운동에 참여하면서 여러 사회활동을 해 오고 있었는데 특히 여성운동계에서는 1세대 여성운동가로 불리며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DJ과 지금과 같은 정치적 명성을 쌓게 된 데에는 이희호 여사의 영향력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여성부 창설과 같은 김대중 정부의 여성, 복지 정책은 이희호 여사의 의중이 많이 반영되었다.
[12]
이를 두고 홍준표는
김건희에게 "지금 대통령의 국민 지지가 낮은 이유 중 하나가 퍼스트레이디의 처신이라면 당연히 권양숙 여사처럼 처신하셔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
[13]
이 때 권양숙은 동자승들에게 손수 끓인 목련차와 한과를 내주었다. 훗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윤옥이 동자승들을 청와대로 불러 고래밥과 헬로팬돌이 음료수를 내주어 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뒤 재조명되기도 했다.
[14]
이 때 아들 노건호도 함께 참고인 신분으로 불려갔다.
[15]
이 때도 권양숙은 참고인 신분이었다.
[16]
문재인이 자신의 자서전 <운명>에서 밝히길, 권양숙은 비서관들에게 남편이 조금 심하게 다쳤다 정도로만 알고 병원에 왔으며 의료진들에게 권 여사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상처부위를 조금만 치료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에 의료진들은 권양숙이 도착하기 전까지 긴급수술을 해서 상처부위와 찢어진 피부를 모두 봉합했으며, 상처 없는 깨끗한 얼굴로 남편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17]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에게 "뒤돌아보지 말고 편히 가세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18]
발인식에서 손녀
노서은과 며느리가 권양숙을 부축하기도 했다.
[19]
2008년 2월 말 공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산규모는
노건호(예금 5,400만 원), 손녀 노서은(2,700만 원)의 예금까지 다 더해도 9억 7,200만 원이었다.
[20]
이후 제 19대
대한민국 대통령.
[21]
작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아닌 송우석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듯이 권양숙은 장수경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22]
그 후
김정숙,
김건희의 이름이 적힌 난초가 생겼지만, 영부인 이름 단독으로 새겨진 난초는 이 난이 유일하다.
[23]
이희호는 이미 김대중과의 결혼 이전부터 여성계에서 꽤 지명도가 높았고, 대통령 배우자 치고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인물이었다. 오히려 김대중과의 결혼 및 내조로 인해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았거나, 당시 시대상으로 저런 한계가 있었으니 2020년대처럼 김대중이 역으로 이 여사를 여성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내조했으면 여성계의 더 큰 거물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24]
박정희는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으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발길을 끊었고, 불심이 깊은 아내의 영향 때문인지 집권기간 비교적 친불교 성향을 보였다.
부처님오신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나
만원권에
석굴암 도안을 넣으려 했던 것이 그 예. 노무현은
절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불경도 읽었다 하며, 변호사 시절에는 부산 당감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바빠서 신앙 생활은 거의 못했다고 한다. 사후 입관식은 불교식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