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23:09:09

오스트리아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오세아니아에 있는 비슷한 명칭의 국가에 대한 내용은 호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외스터라이히 공화국
Republik Österreich
파일:오스트리아 국기.png 파일:오스트리아 국장.pn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산의 나라, 강의 나라
국화 에델바이스
국조 제비
역사
976년 오스트리아 변경백국 성립
1156년 오스트리아 공국 성립
1453년 오스트리아 대공국 성립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 성립
1867년 5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성립
1919년 9월 10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성립
1934년 5월 1일 오스트리아 연방국 성립
1945년 4월 1일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 성립
면적
83,879㎢
수도
[1]
인문 환경
전체 인구 8,858,000명(2018년 10월 1일)[2]
인구 밀도 106명/㎢(2018년 10월 1일)
출생 인구 84,000명(2015년)
기대 수명 81세(2015년)
출산율 1.45명(2015년)
공용 언어 독일어
지역 언어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헝가리어
종교 기독교 67.3%( 가톨릭 57.9%, 정교회 6.0%, 개신교 3.4%), 이슬람 8.0%, 기타 24.7%
군대 오스트리아군
하위 행정 구역
연방주 9개
헌장 도시 15개
지구 79개
정치
정치 체제 공화제, 이원집정부제, 양원제
대통령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Alexander Van der Bellen)
총리 브리기테 비에르라인
(Brigitte Bierlein)[3]
부총리 클레멘스 재블론너
(Clemens Jabloner)[4]
연방 의회 의장 잉에 포쉬구르카
(Inge Posch-Gruska)
국민 의회 의장 울프강 소브트카
(Wolfgang Sobotka)
헌법 재판소장 브리기테 비에르라인
(Brigitte Bierlein)
경제
GDP 4,776억 7,2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 53,764 달러(2018년)
공식 화폐 유로(€)[5]
단위
시간대 중앙 유럽 표준시 (UTC+01:00)
외교
대한 수교 현황 대한민국: 1963년, 북한: 1974년[6]
국제 연합 가입 1955년 12월 14일
국가 코드
AT
ccTLD
.at
국제 전화 코드
+43
위치
파일:external/media.web.britannica.com/62381-004-B4928181.jpg

파일:austria1.jpg
파일:austria2.jpg
파일:austria3.jpg
오스트리아 전경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언어4. 역사5. 인구6. 행정 구역7. 사회8. 정치9. 경제10. 군사11. 문화12. 외교
12.1. 대한민국과의 관계12.2. 독일과의 관계12.3. 프랑스와의 관계12.4. 이탈리아와의 관계12.5. 스위스와의 관계12.6. 리히텐슈타인과의 관계12.7. 슬로베니아와의 관계12.8. 크로아티아와의 관계12.9. 헝가리와의 관계12.10. 체코와의 관계12.11. 슬로바키아와의 관계12.12.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관계12.13. 세르비아와의 관계12.14. 알바니아와의 관계12.15. 러시아와의 관계12.16. 미국과의 관계12.17. 터키와의 관계
13. 인물
13.1. 유명인13.2. 캐릭터
14. 관련 문서15. 둘러보기

1. 개요

중앙 유럽 독일의 남동쪽에 있는 국가. 수도는 영어 명칭은 비엔나(Vienna)인 (Wien).

국가는 다르지만 민족, 언어 독일과 비슷하다. 독일의 침략으로 합쳐지기도 했는데( 안슐루스)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해서 다시 갈라졌고 그 뒤로는 다시 합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많은 유럽 국가들과 관련이 있고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도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서북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과 이웃하고 있다.

알프스 산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숲의 국가이자[7] 영세 중립국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연합군이 군정 통치를 한 뒤 미국과 소련의 협상으로 독립할 때 영세 중립국을 선언해야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영역이 크게 줄었고[8] 베를린과 함께 냉전의 최전방이었다가 지금은 유럽연합 동유럽으로 확대되면서 중유럽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럽에서 비슷하게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 다음으로 최상위권의 높은 소득과 복지 예산을 갖춘 살기 좋은 국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노동기구(ILO)가 빈 유엔 본부에 있다.[9]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가 세계에서 6번째로 많다. 독일어권 전체에서 가장 큰 대학인 빈 대학교는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오프로드 바이크로 유명한 메이커 KTM이 오스트리아 기업이다.

2. 상징

2.1. 국호

오스트리아에서는 자국을 독일어로 '동쪽의 국가'를 뜻하는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라 부른다. 오스트리아(Austria)는 과거에 불리던 명칭인 오스타리히(Ostarrîchi)를 라틴어로 옮긴 아우스트리아를 영국식으로 읽은 것이다. 한자로는 음차하여 오지리(墺地利)라 쓰는데, 현재는 이런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10] 그러나 첫글자 墺(물가 오)자는 지금도 꽤 많이 사용된다. 동쪽의 국가라고 불린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오스트리아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던 당시, 최동쪽에 위치하여 이런 명칭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명칭이 비슷한 호주 오세아니아 영어권 국가고 오스트리아는 유럽 중부의 독일어권 국가다.

사실 외스터라이히를 제대로 라틴어화했다면 라틴어로 동쪽을 뜻하는 오리엔스(oriens)를 사용했어야 한다. 하지만 고대 독일어의 동쪽을 나타내는 오스트(ost)와 라틴어의 남쪽을 나타내는 아우스테르(auster)는 같은 인구어 어원을 공유하였기 때문에 게르만에선 오래 전부터 이 둘이 혼동되어 사용되었다. 프랑크 왕국이 분할 상속되었을 때 동쪽의 땅을 아우스트라시아라고 부른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외스터라이히를 번역할 때 동쪽을 염두에 두고 오스트리아로 번역했지만, 결과적으론 오스트레일리아와 이름이 유사해졌다.

두 국가의 주한 대사관이 모두 한 건물에 있다. 종로구 교보빌딩[11]에 있는데 주한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이 19층,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21층에 있다.

2.2. 국기

1191년 레오폴드 헬덴툼이 십자군 전쟁 당시, 프톨레마이스 전투에서 적군의 피를 뒤집어써, 갑옷 위에 걸친 흰 겉옷이 띠쪽을 남기고 빨갛게 물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1230년 프리드리히 2세가 처음으로 이 기를 채택했고 이후 오스트리아의 지배 가문인 바벤베르크 가문의 문양이 되었다.

13세기 바벤베르크 가문이 단절되었으나 뒤이어 오스트리아를 다스리게 된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도 이 문양을 종종 사용했다. 특히 19세기 들어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들이 이 문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상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징색은 흑황 문양이었으나, 신성 로마 제국과 같았기 때문에 독일 전체를 아우르는 신성 로마 제국이 아닌, 오스트리아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바벤베르크 가문의 적백적 문양을 부활시켜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2.3. 국가

국가는 1946년에 지정된 산의 나라, 강의 나라다.

3. 언어

공용어는 독일어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되는 독일어는 문어체에서 기본적으로 독일 본토의 독일어와 차이가 없지만, 구어는 억양과 어휘에서 다르다.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의 말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12]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는 지역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고, 주요 외국어는 영어가 널리 쓰인다. EF 영어 능력 지수에 따르면 높은 교육 수준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와 함께 비영어권 국가 가운데, 영어를 가장 잘하는(매우 높음) 것으로 나타났다.[13] 프랑스어를 배우는 비율도 10%다.

4.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오스트리아의 역사
Die Geschichte Österreichs
{{{#!wiki style="color:#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1px"
~ 976년 976년 ~ 1918년 19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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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인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행정 구역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행정 구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color:#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1px"
1. 부르겐란트
(1. 아이젠슈타트)
2. 케른텐
(2. 클라겐푸르트)
3. 니더외스터라이히
(3. 장크트 푈텐)
4. 오버외스터라이히
(4. 린츠)
5. 잘츠부르크
(5. 잘츠부르크)
6. 슈타이어마르크
(6. 그라츠)
7. 티롤
(7. 인스브루크)
8. 포어아를베르크
(8. 브레겐츠)
9. 빈 }}}}}}}}}

독일과 마찬가지로 연방제 국가라서 주의원 선거와 의회・정부 구성도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주별 자치권이 강한 편이다. 주의 공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며, 주 밑으로는 헌장 도시(Statutarstadt)와 지구(Bezirk)가, 그 밑으로는 게마인데(Gemeinde)가 있다. 주도는 연방주당 하나씩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주도와 별개로 헌장 도시가 두군데 이상 있는 연방주도 있다.

빈은 1986년 이전까지는 수도인 동시에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주도였지만, 현재는 독자적인 연방주이자 주도로 분리되었다.
연방주 주도 헌장 도시 주요 지역
1. 부르겐란트(Burgenland) 1. 아이젠슈타트(Eisenstadt) 1. 아이젠슈타트(Eisenstadt)
2. 루스트(Rust)
마테르스부르크(Mattersburg)
2. 케른텐(Kärnten) 2. 클라겐푸르트(Klagenfurt) 3. 클라겐푸르트(Klagenfurt)
4. 필라흐(Villach)
슈피탈 안 데 드라우(spittal an der drau)
3.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österreich) 3. 장크트 푈텐(Sankt Pölten) 5. 크렘스(Krems)
6. 장크트푈텐(Sankt Pölten)
7. 바이트호펜 안 데 어입스(Waidhofen an der Ybbs)
8. 비너 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
호른(Horn)
멜크(Melk)
4. 오버외스터라이히(Oberösterreich) 4. 린츠(Linz) 9. 린츠(Linz)
10. 슈타이어(Steyr)
11. 벨스(Wels)
바트 이슐(bad ischl)
클라우스(Klaus)
프라이슈타트(freistadt)
5. 잘츠부르크(Salzburg) 5. 잘츠부르크(Salzburg) 12. 잘츠부르크(Salzburg)
6.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 6. 그라츠(Graz) 13. 그라츠(Graz) 슈타이나흐-이르드닝(stainach-irdning)
젤츠탈(Selzthal)
레오벤(leoben)
유덴부르크(Judenburg)
마리아첼(Mariazell)
리첸(Liezen)
슈라트밍(Schladming)
라이프니츠(Leibnitz)
7. 티롤(Tirol) 7. 인스브루크(Innsbruck) 14. 인스브루크(Innsbruck) 상트 안톤 암 아를베르크(St. anton am Arlberg)
키츠뷜(kitzbuhel)
리엔츠(Lienz)
마이어호펜(Mayrhofen)
옌바흐(Jenbach)
8. 포어아를베르크(Vorarlberg) 8. 브레겐츠(Bregenz) 블루덴츠(Bludenz)
도언비언(Dornbirn)
펠트키어히(Feldkirch)
루스테나우(Lustenau)
9. (Wien) 15. 빈(Wien)

7. 사회

1984년부터 아버지가 딸을 감금하고 성폭행하여 아이를 7명이나 낳게 한 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 사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세 자매가 어머니에게 감금당한 사건, 1998년부터 2006년까지 44세 남성 볼프강 프리클로필에게 유괴되어 감금되어 있었던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등의 감금 범죄가 많았다.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고 그리펜 대신 유로파이터를 사왔는데 그나마도 피아 식별 장치조차 안 달린 수준의 기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1985년에는 일부 와인 생산 업자들이 와인에 부동액을 집어넣은 사건도 있었다.[14]

돈세탁과 조세 피난처로도 유명한데, 원래 이웃 국가로 비슷한 스위스가 유명했으나 최근 유로폴의 단속으로 오스트리아와 리히텐슈타인 등으로 옮겨 왔다.

전반적으로 길거리, 카페, 대중 교통 등에서 보이는 사람들 표정이나 인상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북부 독일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표현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문화도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이지만, 반대로 이민 같이 민족이나 사회 내부 결속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68혁명의 사회적 변화의 영향을 적게 받았고, 알프스 산자락에서 오랜 시간을 영구 중립국으로 지내면서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되었던 만큼 스위스처럼 폐쇄적인 마인드도 강하다. 그래서 서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다민족적인 분위기를 찾아보기 좀 어렵다. 이미 인종의 전시장처럼 되어가는 서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빈은 관광객이나 일부 대학생들을 제외하면 비유럽권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극히 적다.[15]

오랫동안 우익 성향의 정당이 집권하고 있으며, 여전히 가톨릭 전통을 중시하는 여러 면모를 보았을 때, 오스트리아는 다른 서유럽 국가, 심지어는 같은 언어에 비슷한 역사,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독일에 비해서도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많이 준다.[16] 그래도 동양인 관광객들이나 유학생들에게 대놓고 인종 차별을 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친절하게 잘 대해주기는 한다. 과 같은 주요 도시가 수려한 미관으로 유명하다. 건물 벽에 전단지, 광고물을 부착하거나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너는 것마저 국가에서 벌금을 물리며 통제한다.

유럽 국가 중에서 치안이 좋은 편이다. 치안이 안 좋은 서유럽의 일부 다른 도시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안전하며, 밤 늦게 관광객 혼자 돌아다녀도 할 게 없기는 하지만 문제가 없는 편이다. 그래도 어느 국가에서나 그렇듯이 소매치기의 위험은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선 목도리나 스카프로 얼굴을 다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럽의 테러 위험 때문에 최근에 통과된 법으로, 신원 확인을 위해 얼굴을 반 이상 가리지 않도록 했는데, 특히 무슬림에게 히잡은 허용했지만, 니캅, 부르카 착용은 금지했다. 그러나 법이 통과된 뒤에도 무슬림, 비무슬림 상관없이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겨울이 다가오는 10월달에 통과된데다, 법 자체에 논란이 많은 게 이유였다. 법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는 진짜 춥거나 운동을 하려고 같은 이유가 대부분이고, 시민들은 법에 대해 조롱하면서도 최대한 얼굴을 보이게 목도리를 맨다. 법이 시행되었지만 시 중심에서도 간간히 부르카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담당 부처에 오늘 날씨가 추운데 머플러로 얼굴을 가려도 되는지 전화로 물어보기도 한다.[17]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괜한 제재를 받지 말도록 하자. 60~70년대에 넘어온 터키 출신 노동자 후손들과 보스니아 내전 때 넘어온 무슬림 후손들이 증가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인구의 5%를 약간 넘지만 아이들은 오스트리아 신생아의 10% 이상을 차지한다.[18] 2018년 새해 첫 아기의 부모님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페이스북에 인종 차별적인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도배된 사건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난민들이 중급 독일어 시험, 상급 영어 시험에 합격해야 최저 생계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법안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 우파 정부와 여당이 라마단 금식을 비판하면서 이슬람 단체들은 반발했다.

예술 쪽에서는 사회 분위기와 반대로 과격할 정도의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거침없고 노골적인 행보로 찬반 양론이 심한 소설가 엘프리드 옐레니크부터 시작해 미카엘 하네케, 하네케 밑에서 영화를 시작한 예시카 하우즈너와 미카엘 슐레진저, 울리히 자히들, 베로니카 프란츠 부부 모두 냉정한 톤으로 숨겨진 폭력성과 선정성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없다는 평을 받는다.

8. 정치

의원내각제 국가로, 독일처럼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원수에 머물며 총리가 행정 수반으로서 실권을 갖는다. 연방 대통령(Bundespräsident), 연방 총리(Bundeskanzler)의 명칭은 독일과 같다. 독일과 다른 점은 대통령은 국민 직접 투표로 선출되며, 독일에 비해 대통령에게 약간의 권한이 더 부여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원집정부제 국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이 성립되고 나서 정권은 중도 좌파 성향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거 사회당)과 중도 우파 성향의 오스트리아 국민당이 번갈아가며 맡고 있다. 2016년까지는 2007년부터 두 당이 대연정을 통해 연립 정권을 이루고 있었으며 사회민주당 소속의 총리가 나오고 있었다.

나치 숙청을 열심히 하고 있는 독일에 비해 오스트리아는 나치를 그저 터부로만 생각하며 덮기에 급급한 편이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유럽 국가들이 시간만 나면 나치를 언급해서 그에 대한 반발로 지난 수십년 동안 변화했다.

쿠르트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호평을 받은 적이 있으나, 나치 경력이 있는데도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비난을 받았다. 이후 외르크 하이더[19]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자유당(FPÖ)[20]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자유당은 1999년 총선에서 공동 2위의 의석을 확보하였는데, 당시 유럽 민주 국가에서 극우 정당이 거둔 최대의 승리 중 하나였다. 자유당은 국민당이 주도하는 연립 정권에서 참여한 적도 있으며, 나치와 반유대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자유당이 연정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과는 외교적으로 냉랭해지고, 유럽연합의 정치적 제재를 받기도 했다. 자유당은 최근 다른 유럽 국가의 극우 정당과 마찬가지로 반 이민, 반 난민 정책을 주장하고 2013년 총선에서도 3위를 하며 선전해서 2016년 대선에서는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장 우세하던 사회민주당과 국민당 후보가 모두 떨어지고 극우 성향의 자유당 후보와 진보 성향의 녹색당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1, 2위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특히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는 반 난민 분위기에 힘입어 예상 득표율에서 35%로 1위를 기록했는데, 사회민주당과 국민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친 것보다 높은 것이었다. 호퍼는 반이민을 주장하고 기행을 일삼아 오스트리아판 도널드 트럼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독일 ZDF의 호이테 쇼에서는 이것을 하켄크로이츠 모양 슈니첼로 풍자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본 선거에서는 호퍼 후보가 현장 투표에서 간소하게 앞섰으나, 부재자 투표가 개표되면서 결과가 뒤집혀 자유당의 호퍼 후보는 49.7%, 무소속 판 더 벨렌 후보는 50.3%로 무소속 후보가 승리했다. 표차가 아주 적었던 만큼, 대선 결과에 불복한 자유당이 선거 무효 소송을 하고 헌재는 선거 무효를 주문해 다시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부정 선거가 아니라, 우편 투표(부재자 투표)의 조기 개봉이 문제가 되었다. 한 투표소에서 일정보다 빨리 부재자 투표를 개봉하였고, 헌재는 이 표들을 모두 무효표로 처리했다. 오스트리아 내무부는 영향을 받은 표가 최대 23,000표 정도라고 발표하였고, 헌재는 최종적으로 약 78,000표를 무효로 처리하였다. 오스트리아 헌재는 선거 무효 주문과 함께 부정이 의심되나 증거(No evidence)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부정을 의심 할 징후(No indication) 자체가 없어서 선거에 부정이 없다는 사실도 발표하였다. 무효 처리된 표들이 녹색당의 표도 아니었을 뿐더러, 앞서 언급하였듯 해당 후보는 무소속이다. 10월 2일에 치르기로 한 재선거에서 투표 봉투 불량이 발견되며, 선거는 다시 연기되고 12월 4일에 치러졌다. 기존에 대통령이던 하인츠 피셔가 그 전에 퇴임함에 따라 취임 시기까지 대통령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재선거는 녹색당 출신의 무소속 판더 벨렌이 53.8%, 자유당 호퍼가 46.2%로 결과가 바뀌지 않았다.

2017년 10월 15일 총선에서 우파 국민당과 극우파 자유당의 약진이 확실시되어, 외무 장관을 지내고 국민당 당수에 오른 31세의 청년 정치인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차기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총리로 선출되면 세계에서 가장 젊은 정부 수반 중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사민당은 현직 케론 총리가 참모들이 상대당에 대한 네거티브 뉴스 공작을 페이스북을 통해 모의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지지율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예상되었던 대로 국민당이 득표율 31.5%로 1위, 사민당 26.9%, 자유당 26.0%로 2, 3위를 했다. 사민당은 여론 조사보다는 괜찮은 결과를 보여줬지만, 대신 녹색당이 3.3%로 창당 이후 역대 최악의 결과를 내면서 한 석도 건지지 못해, 없어져버렸다. 2017년 12월 18일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신임 총리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국민당(원내 1당), 오스트리아 자유당(원내 3당)이 연립 여당을 형성했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원내 2당), NEOS-신오스트리아 자유포럼(원내 4당), 페터 필츠당(원내 5당)이 야당을 구성했으며 원외에 녹색-녹색 대안 등이 포진해 있다.

2019년 5월 17일에 자유당 대표이자 부총리인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가 2017년 당시 밀회를 가져 언론 통제를 할 것을 밝히고 담합을 모의하는 몰래카메카 영상이 독일 슈피겔 지를 통해 폭로되어 조기 총선이 결정되었고 부총리는 사퇴했다.

9. 경제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군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문화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외교

12.1. 대한민국과의 관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인 1892년에 조선과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단교했다가 1963년에 외교 관계를 복구했다.[21] 그 이전에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의 고향이 오스트리아였던지라 이미 간접적인 외교를 맺었다. 영세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기도 해서 1974년에는 북한과도 수교했다. 소록도 수녀로 유명한 마리안느 수녀의 출신지기도 하다. 축구 선수 황희찬 이진현이 오스트리아의 리그에서 뛰고있고, 과거에는 현재 수원 삼성의 감독인 서정원도 활약했다.

2018년 10월 26일에 박종범 오스트리아 영산 그룹 회장이 국회 헌정 회관에서 열린 '제3회 21세기 장보고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2019년 2월 15일에 이낙연 총리는 서울 정부 청사에서 오스트리아의 피셔 전 대통령을 맞이했고 '세계 시민과 국제 평화를 위해 더 많이 기여해달라'고 요청했다. 2019년 6월 14일에 광주시는 박종범 오스트리아 영산 그룹 회장과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12.2. 독일과의 관계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같은 독일 민족으로 여겨진다. 언어도 같은 독일어를 사용한다. 방언의 차이 등은 있지만, 그 정도 격차는 독일 안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오스트리아는 독일이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독자적인 세력으로 존재했고 나치 독일 시기의 잠깐의 합병을 제외하면 독자적인 국체를 유지했기 때문에 독일과 민족적 일체감은 있어도 국가적 일체감은 딱히 없는 편이다.

민족이 비슷한 것이지 국가는 다르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독일인인지 물으면 화를 내거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다르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바이에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독일인보다 바이에른인이라고 일컫는 것처럼 독일은 통일이 늦은 만큼 이탈리아와 비슷하게 지역색이 꽤 강한 편인데, 오스트리아는 독일과는 달리 오랜 시간 전부터 하나의 단일 국가를 이뤄왔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편이다.

19세기 후반 독일 제국이 생겨나기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인과 함께 여러 독일 국가의 민족은 있었지만 독일인이라는 개념은 희박했다. 하지만 독일인의 국가를 자처하는 독일 제국이 생겨나면서 다른 독일계 집단들은 독일인이 되었지만 독일 제국에 합류하지 않은 오스트리아인들은 그대로 남겨진 것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이후 통일된 프로이센은 북부의 독일계 개신교 국가들을 대표하였으며, 오스트리아는 남부의 독일계 가톨릭 국가들을 대표하였다. 특히 독일 남부( 바이에른)는 가톨릭을 믿는다는 점에서 오스트리아와 매우 비슷했고, 오스트리아에서 쓰이는 독일어 방언도 독일 남부에서 쓰이는 독일어 사투리와 매우 비슷한 편이다.

때문에 민족적 의미에서의 '독일 민족'이라 하면 오스트리아인 역시도 포함된다. 하지만 독일 제국을 주도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 적대적인 편이였다. 아돌프 히틀러 때문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의해 합병된 이후 독일과의 통일을 영구히 포기하는 조건으로 영구 중립국으로 겨우 해방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한 국가며, 따라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은 결코 진정한 '통일 독일'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은 19세기 말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독일의 통일은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가문을 제외한 통일이라는 의미에서 소독일주의가 있으며,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모든 독일 국가의 통일이라는 의미에서 대독일주의가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모두에 존재해 나치 독일 시기에 이르러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한 국가가 되는 안슐루스가 이루어지기도 한 것이지만 그 결과가 끔찍한 파멸이었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언급이 매우 금기시된다. 이미 독일인이라는 생각이 형성되어버린 다른 지역은 분리시키지 않았지만 20세기가 되어서야 독일에 합류한 오스트리아는 다시 떼어냈고 이후 나치의 만행 때문에 독일 민족주의나 대독일주의가 그것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정치적 품성을 의심받게 만들 수 있는 철저한 금기로 여겨지면서 오스트리아인을 독일인과 결부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금지된 상태로 현대에 와서 지금과 같은 오스트리아인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

오스트리아 내부에서는 독일과 다시 통합하려는 분위기도 있다. 오스트리아가 축소되면서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진 것에 대한 반발심이 크다. 게다가 유럽연합 체제에서 독일이 워낙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오스트리아는 독일과의 영구 분단을 전제로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가 연합국 군정하에서 해방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오스트리아인들이 외국인한테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2018년 6월 18일에는 독일이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국제 기구, 기업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12.3.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와는 이전부터 적대적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도 갈등했고 그 이전에도 동맹을 맺거나 결렬했던 기간이 상당했다. 프랑스의 군가 중 하나인 양파의 노래가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인들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공화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 사이의 비스마르크 체제에서도 역시 대립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떨어져 있기도 하고 서로 별다른 갈등이 없다.

12.4. 이탈리아와의 관계

이탈리아와는 가톨릭을 많이 믿는다는 점에서 종교적으로는 비슷하지만, 과거부터 사이가 좋지 못한 관계였다. 이탈리아의 통일도 오스트리아가 방해를 했다. 이탈리아의 쥐트티롤 지역에서는 오스트리아에 포함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 같은 파시즘 정권이 들어섰던 1934년부터 1938년까지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려는 나치 독일을 이탈리아가 막으려고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쥐트티롤의 국민들에게 시민권을 줄 수 있다는 발언을 해서 이탈리아 정부가 반발했다. 2018년 4월 19일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쥐트티롤의 국민들이 해외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오스트리아 영사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2.5. 스위스와의 관계

과거 스위스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를 받다 독립한 적이 있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스위스의 감정은 그리 좋지 않다.

12.6. 리히텐슈타인과의 관계

리히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어서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다.

12.7. 슬로베니아와의 관계

슬로베니아와는 오래 전부터 같이 프랑크 왕국의 일부였고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가 이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포함되기도 해서 오스트리아와 가까운 편이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이후에는 외교 관계를 맺었고 지금도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베니아어를 쓰는 사람도 일부 있다.

12.8. 크로아티아와의 관계

과거에 그나마 온건한 지배를 받았고 자치권을 얻었다.

12.9. 헝가리와의 관계

헝가리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헝가리어는 오스트리아에서 쓰는 사람도 일부 있다.

12.10. 체코와의 관계

예전에 체코를 지배한 적이 있어서 착취를 당했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다.

12.11. 슬로바키아와의 관계

슬로바키아는 헝가리가 지배하던 지역인지라 체코와는 달리 안 좋은 감정은 그다지 없는 편이다.

12.12.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관계

오스트리아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편이고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기도 했다.

12.13. 세르비아와의 관계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을 검은 손이 일으켜서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다.

12.14. 알바니아와의 관계

예전에 오스트리아가 알바니아의 독립을 지지한 적이 있어서 관계는 좋은 편이다.

12.15.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는 과거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러시아가 발칸 반도로 진출할 때마다 오스트리아가 견제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은 19세기에 외교적인 갈등은 물론 몇 차례의 전쟁도 겪었다( 크림전쟁 등).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자, 러시아 제국은 범슬라브주의를 앞세우고 세르비아를 지지하면서 서로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의 국민당과 연립 정부를 꾸린 극우 성향의 자유당은 친러 성향을 보이고 있고 EU의 러시아 제재를 반대하고 있다. 2018년에 영국에서 일어난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EU 회원국들과 미국, 호주 등의 서방 국가들이 영국의 정책에 동참해서 러시아의 외교관을 추방한 것과는 반대로 오스트리아는 외교관 추방에 참여하지 않았고, 러시아와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오스트리아의 현 총리는 러시아는 매우 중요한 협력 관계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와 가까워지자 2018년 6월 5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2018년 7월 6일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2018년 8월 18일에는 오스트리아 외무 장관의 결혼식에 푸틴 대통령이 참가했다. 야당은 결혼식장에서 푸틴과 같이 춤을 춘 것에 대해서 비판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한 퇴역 장교가 자신이 러시아의 스파이라고 밝히면서 양국 간에 갈등이 있었고 그 사람은 결국 구속되었다. 2019년 5월 15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맞이했고 회담을 가지면서 양국의 관계를 높이 평가했다.

12.16.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미국에도 오스트리아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83년에 미국으로 귀화했다.

12.17. 터키와의 관계

터키와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1차 빈 포위 때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합스부르크 제국이 점령당할 뻔하기도 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함께 헝가리를 지배하기도 했지만, 그 뒤로 오스트리아가 헝가리 전역을 지배하고,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발칸반도로 진출하면서 영토를 빼앗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동맹국이라 관계가 좋아지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지금도 터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했다.

2018년 6월 8일에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터키 출신의 이슬람 성직자 60여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혀서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극우 성향 자유당의 대표는 에르도안을 찍은 터키인들은 터키로 돌아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오스트리아에서 터키어 운전 면허 시험을 폐지시키기도 했다.

13. 인물

13.1. 유명인

13.2. 캐릭터

※ 해당국의 작품 제외.

14. 관련 문서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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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인 인구 변화는 빈(오스트리아)/인구 참조. [2] 역사적인 인구 변화는 오스트리아/인구 참조. [3] 오스트리아의 헌법 재판소장이었다. [4] 법무부 장관을 겸임한다. [5] 2002년까지는 오스트리아 실링이었다. 은행에서 기한없이 유로로 교환이 가능하다. [6] 조선과 1892년에 최초로 수교했다. [7]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8]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면적은 681,727㎢, 인구는 52,800,000명이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하고 난 1919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면적은 83,879㎢, 인구는 6,800,000명으로 거의 1/8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9] 외교부 안에서도 주 오스트리아 대사는 고위직에 속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 총장도 오스트리아 대사로 근무. [10] 한국외대 독일어과에서 운영중인 독일 원서 도서관 이름이 오지리 도서관이다. 독일어로는 Österreich Bibliothek. [11]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있는 건물이다. [12]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는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편이라, 바이에른 사람과 오스트리아 사람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어디 사람인지 말하기 전에는 겉모습이나 말투로 자기들끼리도 구별을 잘 못한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쭉 살았던 히틀러(오스트리아에서는 서부와 동부를 오갔다)는 프랑스로 가서 몇해 살다가 독일로 이민가기로 했을때, 바이에른으로 이민을 갔고, 거기서 군대도 가고 정치도 하며 자기 인생의 기반으로 삼았다. 게다가 고향이 오스트리아에서도 바이에른 접경 지역이어서, 그가 바이에른 정계에 입문할 때도 언어적인 곤란이 없었고,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것처럼 해서 오스트리아 출신임을 쉽게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바이에른 뿐만이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활동하는 유명 정치인이 되어 베를린에서 많이 활동하게 되자, 오스트리아-바이에른 사투리 때문에 평생 놀림을 받아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 [13]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을 때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헤맸다는 증언도 더러 존재한다. EF 영어 능력 지수 통계도 개인 간의 편차 등을 모두 반영한 정확한 통계라 볼 수 없으며, 비영어권 국가에 여행을 가서 영어로만 의사 소통이 되지는 않는다. 그나마 외국인이 영어로만 의사 소통이 잘되는 유럽 국가는 저지대나 스칸디나비아계(북유럽) 쪽. [14] 어떤 해에 생산한 포도에 곰팡이가 많이 생겨서 다수의 와인이 귀부 와인으로 생산되었고 해당 와인은 대히트를 쳤다. 하지만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였기에 이후 생산된 와인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고 와인의 판매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수의 와인 판매점에서 와인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부동액을 첨가하여 판매하였다. 덕분에 오스트리아는 부동액 관련 농담에 자주 출연한다. [15] 그래서 할리우드와 같은 대규모 문화 매체나 축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에 관련된 것이 아닌 이상, 해외의 문화 매체에 대한 관심도도 높지 않다. [16] 그래도,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관대한지라 수위 높은 성적 표현이나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고 다니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까지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대마초는 오스트리아에서 불법이며, 길에서 대놓고 피우다간 잡혀간다. [17] 이것만으로도 말이 많았다. 춥고 더운 건 주관적인 건데 그걸 담당자가 머플러를 둘러도 되는지를 말하는 것 자체가 논란을 불러올 만한 일이다. [18] 2015년 신생아 84,000명 중에서 11,000명이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다. [19] 틈만 나면 반유대주의적 발언에 친나치적 발언을 하는 탓에 1991년 케른텐 주지사에서 짤린 적도 있을 정도. 그러나 그 이후로도 국회에서 무장친위대는 존경받아야 하며, 나치 수용소는 단순히 훈육 캠프였을 뿐이다 같은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9년 주지사직에 복귀한 이후로는 새로 당까지 만들었지만, 2008년 10월 갑작스럽게 사망. 사인이 무려 어머니 생신날을 맞이하여 게이바에서 동성 애인이랑 왕창 퍼마시고는 술에 잔뜩 취한채, 관용 폴크스바겐 페이톤의 운전대를 잡고 어머니 집을 향해 과속하다가 사고가 났다. 참고로 그 동성 애인은 하이더가 죽고 하이더의 당 총재가 되었다. [20] 자유당의 전신인 독립연합(VdU)은 동유럽에서 추방된 독일인과 옛 나치 인사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정당이었고, 1955년 자유당이라는 군소 정당과 합당하면서 현재의 오스트리아 자유당이 되었다. 이 당의 첫 지도자였던 안톤 라이트할러는 나치 장관이자 친위대 장교 출신이었고 2번째 지도자인 프리드리히 페터 역시 성향은 온건한 편이었지만 SS장교 출신이었다. [21] 주 오스트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공식적인 수교 연도를 1892년으로 명시하고 있고, 2012년에는 수교 120주년 행사도 열었다. [22] 토마와 리리나의 아버지. [23] 프란츠의 딸이자 토마의 이복 여동생. [24] 이와츠치(과거 오스트리아) 소속 멤버들이다. [25] 과학반 반장. [26] 과학반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