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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오세아니아에 있는 비슷한 명칭의 국가에 대한 내용은 호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외스터라이히 공화국
Republik Österreich
파일:오스트리아 국기.png 파일:오스트리아 국장.pn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산의 나라, 강의 나라
국화 에델바이스
국조 제비
역사
976년 오스트리아 변경백국 성립
1156년 오스트리아 공국 성립
1453년 오스트리아 대공국 성립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 성립
1867년 5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성립
1919년 9월 10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성립
1934년 5월 1일 오스트리아 연방국 성립
1945년 4월 1일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 성립
면적
83,879㎢
수도
인문 환경
전체 인구 8,858,000명(2018년 10월 1일)
인구 밀도 106명/㎢(2018년 10월 1일)
출생 인구 84,000명(2015년)
기대 수명 81세(2015년)
출산율 1.45명(2015년)
공용 언어 독일어
지역 언어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헝가리어
종교 기독교 67.3%( 가톨릭 57.9%, 정교회 6.0%, 개신교 3.4%), 이슬람 8.0%, 기타 24.7%
군대 오스트리아군
하위 행정 구역
연방주 9개
헌장 도시 15개
지구 79개
정치
정치 체제 공화제, 이원집정부제, 양원제
대통령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Alexander Van der Bellen)
총리 브리기테 비어라인
(Brigitte Bierlein)[1]
부총리 클레멘스 야블로너
(Clemens Jabloner)[2]
연방 의회 의장 잉게 포슈그루스카
(Inge Posch-Gruska)
국민 의회 의장 볼프강 조보트카
(Wolfgang Sobotka)
헌법 재판소장 브리기테 비어라인
(Brigitte Bierlein)
경제
경제 체제 시장경제
GDP 4,776억 7,2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 53,764 달러(2018년)
GDP(PPP) 4,614억 3,2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PPP) 51,936 달러(2018년)
수출량 1,602억 6,900만 달러(2017년)
수입량 1,667억 100만 달러(2017년)
공식 화폐 유로(€)[3]
단위
기년법 서력기원
시간대 UTC+01:00( 서머타임 적용)
도량형 SI 단위
외교
대한 수교 현황 대한민국: 1963년, 북한: 1974년[4]
국제 연합 가입 1955년
국가 코드
AT
ccTLD
.at
국제 전화 코드
+43
위치
파일:external/media.web.britannica.com/62381-004-B4928181.jpg

파일:austria1.jpg
파일:austria2.jpg
파일:austria3.jpg
오스트리아 전경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언어4. 역사5. 인구6. 행정 구역7. 사회
7.1. 치안7.2. 범죄
8. 정치9. 경제10. 군사11. 문화12. 외교13. 인물
13.1. 유명인13.2. 캐릭터
14. 관련 문서15. 둘러보기

1. 개요

오스트리아 독일의 남동쪽, 정확하게는 독일 바이에른 주의 동남쪽에 위치한 나라로 중부유럽에 있는 국가이자 서유럽에도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는 국가다.[5] 수도는 라틴어로는 비엔나(Vienna)인 (Wien)이다. 국토면적은 83,879㎢, 인구는 약 8,857,960명(2018년 10월 1일 기준).

국가는 다르지만, 민족 언어에서 독일과 동질적이며 그래서 통일을 한번 실제로 하기도 했는데( 안슐루스), 2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다시 갈라졌고, 그뒤로는 다시 합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독일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고, 스페인,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심지어 폴란드 이탈리아 등의 웬만한 유럽국가들의 역사에 걸치고 있어 엄청나게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이를테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현재도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서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과 이웃하고 있다.

알프스 산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숲의 국가이자[6] 영세 중립국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연합군이 군정 통치를 한 뒤 미국과 소련의 협상으로 독립할 때 영세 중립국을 선언해야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영역이 크게 줄었고[7] 베를린과 함께 냉전의 최전방이었다가 지금은 유럽연합 동유럽으로 확대되면서 중유럽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럽에서 비슷하게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 다음으로 최상위권의 높은 소득과 복지 예산을 갖춘 살기 좋은 국가다.

나라가 작아서 낙농업과 관광업으로 먹고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철강과 기계공업이 기반산업이고,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오스트리아 산업의 10%아래로 작다.[8] 농업과 임산비율은 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요제프 하이든, 프란츠 슈베르트를 비롯한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고전음악가들의 주 활동 무대였던 음악의 나라이자, 현대언어철학의 이정표를 세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현대물리학의 격전장이었던 비엔나 써클과 논술에도 출제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아르누보의 주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근대건축의 선구자 오토 바그너, 미술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 심리학의 시작을 알린 지그문트 프로이트, 20세기 최고의 지휘자가운데 한명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경제학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고향이다. 또, 흔히 독일인으로 생각하는 아돌프 히틀러의 고향인 곳이다. 물론, 히틀러는 범게르만주의에 따라 나치 독일에 합병( 안슐루스)했지만. .대한민국의 초대 퍼스트레이디 프란치스카 도너 리도 오스트리아인이다. 오질댁[9]

서양사에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던 시기에 문명사적으로 가장 활기찬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제1차 세계 대전 패배를 시작으로 제국에서 소국으로[10] 몰락의 쓴맛을 본 후, 베를린과 함께 냉전의 최전방이었다가 지금은 유럽연합이 동구권으로 확대되면서 동유럽과 만나는 중유럽의 관문으로 경제특수를 누리고 있다. 유럽의 제왕들을 벌벌 떨게 만들던 옛 영광을 생각한다면 현대의 오스트리아는 여러 모로 초라해보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최상위권의 높은 국민소득(48000불, 세계 11위)과 스위스 다음으로 높은 복지 예산(세계 6위)을 갖춘 살기 좋은 나라이다. 다만 형제들(?)이 따로 살림을 차린 현 독일연방공화국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인구수[11]가 존재감을 낮추고 국가 방침도 이웃 스위스처럼 영세중립국이라 이름을 드날릴 일은 없을 듯.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노동기구(ILO)가 빈 유엔 본부에 있다.[12]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가 세계에서 6번째로 많다. 독일어권 전체에서 가장 큰 대학인 빈 대학교는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 상징

2.1. 국호

오스트리아에서는 자국을 독일어로 '동쪽의 국가'를 뜻하는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라 부른다. 오스트리아(Austria)는 과거에 불리던 명칭인 오스타리히(Ostarrîchi)를 라틴어로 옮긴 아우스트리아를 영국식으로 읽은 것이다. 한자로는 음차하여 오지리(墺地利)라 쓰는데, 현재는 이런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13] 그러나 첫글자 오(墺)자는 지금도 꽤 많이 사용된다. 동쪽의 국가라고 불린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오스트리아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던 당시, 최동쪽에 위치하여 이런 명칭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명칭이 비슷한 호주 오세아니아 영어권 국가고 오스트리아는 유럽 중부의 독일어권 국가다. 이러한 이름의 유사성은 한글 표기 뿐만 아니라 로마자 표기 자체가 서로 유사한 상황이다. 사실 외스터라이히를 제대로 라틴어화했다면 라틴어로 동쪽을 뜻하는 오리엔스(oriens)를 사용했어야 한다. 하지만 고대 독일어의 동쪽을 나타내는 오스트(ost)와 라틴어의 남쪽을 나타내는 아우스테르(auster)는 같은 인도유럽어 어원을 공유하였기 때문에 게르만에선 오래 전부터 이 둘이 혼동되어 사용되었다. 프랑크 왕국이 분할 상속되었을 때 동쪽의 땅을 아우스트라시아라고 부른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외스터라이히를 번역할 때 동쪽을 염두에 두고 오스트리아로 번역했지만, 결과적으론 오스트레일리아와 이름이 유사해졌다. 하필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 미지의 남방대륙'이란 개념에서 따와서 라틴어의 남쪽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이름을 따왔기 때문에 의미도 혼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두 국가를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아서 오스트리아에 캥거루 없음(No kangaroos in Austria)이라고 쓰여진 것까지 나오고, 티셔츠 머그컵 등으로 기념품도 나올 정도다.

두 국가의 주한 대사관이 모두 한 건물에 있다. 종로구 교보빌딩[14]에 있는데 주한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이 19층,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21층에 있다.

2.2. 국기

1191년 바벤베르크 가문의 레오폴트 5세가 십자군 전쟁 당시, 아크레 공방전에서 적군의 피를 뒤집어써, 갑옷 위에 걸친 흰 겉옷이 띠쪽을 남기고 빨갛게 물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1230년 프리드리히 2세가 처음으로 이 기를 채택했고 이후 오스트리아의 지배 가문인 바벤베르크 가문의 문양이 되었다.

13세기 바벤베르크 가문이 단절되었으나 뒤이어 오스트리아를 다스리게 된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도 이 문양을 종종 사용했다. 특히 19세기 들어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들이 이 문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상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징색은 흑황 문양이었으나, 신성 로마 제국과 같았기 때문에 독일 전체를 아우르는 신성 로마 제국이 아닌, 오스트리아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바벤베르크 가문의 적백적 문양을 부활시켜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2.3. 국가

국가는 1946년에 지정된 산의 나라, 강의 나라(Land der Berge, Land am Strome)다.

3. 언어

공용어는 독일어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되는 독일어는 문어체에서 기본적으로 독일 본토의 독일어와 차이가 없지만, 구어는 억양과 어휘에서 다르다.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의 말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15]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16], 헝가리어는 지역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고, 주요 외국어는 영어가 널리 쓰인다. EF 영어 능력 지수에 따르면 높은 교육 수준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와 함께 비영어권 국가 가운데, 영어를 가장 잘하는(매우 높음) 것으로 나타났다.[17] 프랑스어를 배우는 비율도 10%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 있다. 오스트리아도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터키어, 아랍어, 중국어( 표준중국어), 페르시아어를 포함한 언어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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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역사
Die Geschichte Österrei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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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6년 976년 ~ 1918년 19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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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활동하면서 유럽의 강대국으로도 활동한 적도 많았다.

5.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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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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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겐란트
(1. 아이젠슈타트)
2. 케른텐
(2. 클라겐푸르트)
3. 니더외스터라이히
(3. 장크트 푈텐)
4. 오버외스터라이히
(4. 린츠)
5. 잘츠부르크
(5. 잘츠부르크)
6. 슈타이어마르크
(6. 그라츠)
7. 티롤
(7. 인스브루크)
8. 포어아를베르크
(8. 브레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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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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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회

전반적으로 길거리나 카페, 대중교통 등에서 보이는 사람들 표정이나 인상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북부 독일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표현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문화도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산을 이어받아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이지만, 반대로 이민 같이 민족이나 사회 내부결속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68혁명의 사회적 변화가 비껴갔고, 제국 해체 후 알프스 산자락에서 오랜 시간을 영구 중립국으로 지내면서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되었던 만큼 옆동네처럼 폐쇄적인 마인드도 강하다. 그래서인지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에 (정치적인 의미로) 긍정적인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민족적 분위기를 찾아보기 좀 어렵다. 이미 인종의 전시장처럼 되어가는 서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빈은 관광객이나 일부 대학생들을 제외하면 비유럽권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극히 적어보인다[18]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까지는 동유럽 문화의 영향도 많이 있었고 동유럽 요리는 지금도 오스트리아에 널리 퍼져 있다(예를 들어서 헝가리의 구야시는 오스트리아에서도 많이 소비된다).

종교는 가톨릭을 믿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이민자들의 증가로 이슬람을 믿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익성향의 정당이 집권하고있으며, 여전히 가톨릭 전통을 중시하는 여러 면모를 보았을때, 오스트리아는 다른 서유럽 국가, 심지어는 같은 언어에 비슷한 역사,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독일에 비해서도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많이 준다[19]. 과 같은 주요 도시가 수려한 미관으로 유명한데, 사실 이도 강력한 공권력탓이 크다. 왜냐하면 건물벽에 전단지, 광고물을 부착하거나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너는 것마저 지자체에서 벌금을 물리며 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양인 관광객들이나 유학생들에게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단은 친절하게 잘 대해주기는 한다. 자국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쓰면서 자국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는데, 안반길 이유가 없으니까.

예술 분야에서는 사회 분위기와 반대로 과격할 정도의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거침없고 노골적인 행보로 찬반 양론이 심한 소설가 엘프리드 옐레니크부터 시작해 미카엘 하네케, 하네케 밑에서 영화를 시작한 예시카 하우즈너와 미카엘 슐레진저, 울리히 자히들, 베로니카 프란츠 부부 모두 냉정한 톤으로 숨겨진 폭력성과 선정성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없다는 평을 받는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선 목도리나 스카프로 얼굴을 다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럽의 테러 위험 때문에 최근에 통과된 법으로, 신원확인을 위해 얼굴을 반 이상 가리지않도록했는데, 특히 무슬림에게 히잡은 허용했지만, 니캅, 부르카 착용은 금지했다. 그래도 사실 법이 통과된 뒤에도 무슬림, 비무슬림 상관없이 얼굴 가리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이 다가오는 10월달에 통과된데다, 법 자체에 논란이 많은 게 이유였다.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은 법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는 진짜 춥거나 운동해서같은 이유가 대부분이고, 시민들은 법에 대해 조롱하면서도 최대한 얼굴을 보이게 목도리를 맨다. 법이 시행됐지만 시 중심에서도 간간히 부르카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담당부처에 '오늘 날씨가 추운데 머플러로 얼굴을 가려도 되나요?' 라고 전화로 물어보기도 한다고[20]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괜한 제재를 받지 말도록 하자. 또 60~70년대에 넘어온 터키 출신 노동자 후손들과 보스니아 내전 때 넘어온 무슬림 후손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이 현지인 아이들에게 폭력를 행사하거나 이슬람 국가에 가입하는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문제는 인구 5%를 약간 넘는 무슬림들이 오스트리아 신생아의 10%~1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21] 그리고 2018년 새해 첫 아기의 부모님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페이스북에 인종차별적인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도배된 사건까지 터졌다. # 거기에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난민들이 중급 독일어 시험, 상급 영어 시험에 합격해야 최저생계소득을 얻을 수 있는 법안을 발표했다. # 그리고 오스트리아 우파 정부와 여당은 라마단 금식까지 비판하면서 이슬람 단체들은 반발했다. #

오스트리아 정부는 11월 1일부터 식당과 술집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법을 발효시켰다. #

7.1. 치안

유럽 국가 중에서 치안이 좋은 편이다. 막장 치안을 자랑하는 서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안전하며, 밤 늦게 관광객 혼자 돌아다녀도 문제가 없는 편이다그런데 밤 늦게 돌아다녀봤자 할 게 없다. 하지만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이 소매치기의 위험은 어디에나 있으니 조심하자. 애초에 일본이나 싱가폴, 대만이 아닌 이상 한국과 같은 수준의 치안을 기대하여서는 안 된다.

7.2. 범죄

1998년부터 44세 남성 볼프강 프리클로필에게 유괴되어 8년간 감금되어 있었던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세 자매가 생모로부터 감금당한 사건, 1984년부터 아버지가 딸을 감금하고 성폭행하여 아이를 7명이나 낳게 한 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 사건 등의 감금 범죄가 많았다.

유럽 선진국이지만 비리사건이 자주 있으며, 정치인들이 뇌물 먹고 그리펜 대신 유로파이터를 사왔는데 그나마도 피아식별장치조차 안달린 깡통수준의 기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1985년에는 일부 와인 생산 업자들이 와인에 부동액을 집어넣은 사건도 있었다.[22]

돈세탁 조세피난처로도 유명한데, 원래 이웃나라로 비슷한 구조인 스위스가 돈세탁으로 유명했으나 최근 유로폴의 단속으로 이 나라와 리히텐슈타인 등으로 옮겨 왔다.

8. 정치

원래는 의원내각제 국가로, 독일처럼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원수에 머물며 총리가 행정 수반으로서 실권을 갖는다. 연방대통령(Bundespräsident), 연방총리(Bundeskanzler)의 명칭은 독일과 같다. 독일과 다른 점은 대통령은 국민 직접 투표로 선출되며, 독일에 비해 대통령에게 약간의 권한이 더 부여된다는 점이다.[23] 때문에 이원집정부제 국가로 분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이 성립되고 나서는 정권을 중도 좌파 성향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거 사회당)과 중도 우파 성향의 오스트리아 국민당이 번갈아가며 맡고 있다. 2016년까지는 2007년부터 두 당이 대연정을 통해 연립 정권을 이루고 있었으며 사회민주당 소속의 총리가 나오고 있었다.

나치 숙청을 열심히 하고 있는 독일에 비해 오스트리아는 나치를 그저 터부로만 생각하며 덮기에 급급한 편이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유럽 국가들이 시간만 나면 나치를 언급해서 그에 대한 반발로 지난 수십년 동안 변화했다.

쿠르트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호평을 받은 적이 있으나, 나치 경력이 있는데도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비난을 받았다. 이후 외르크 하이더[24]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자유당(FPÖ)[25]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자유당은 1999년 총선에서 공동 2위의 의석을 확보하였는데, 당시 유럽 민주 국가에서 극우 정당이 거둔 최대의 승리 중 하나였다. 자유당은 국민당이 주도하는 연립 정권에서 참여한 적도 있으며 나치와 반유대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자유당이 연정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과는 외교적으로 냉랭해지고 유럽연합의 정치적 제재를 받기도 했다. 자유당은 최근 다른 유럽 국가의 극우 정당과 마찬가지로 반 이민, 반 난민 정책을 주장하고 2013년 총선에서도 3위를 하며 선전해서 2016년 대선에서는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장 우세하던 사회민주당과 국민당 후보가 모두 떨어지고 극우 성향의 자유당 후보와 진보 성향의 녹색당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1, 2위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특히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는 반 난민 분위기에 힘입어 예상 득표율에서 35%로 1위를 기록했는데, 사회민주당과 국민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친 것보다 높은 것이었다. 호퍼는 반이민을 주장하고 기행을 일삼아 오스트리아판 도널드 트럼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독일 ZDF의 호이테 쇼에서는 이것을 하켄크로이츠 모양 슈니첼로 풍자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본 선거에서는 호퍼 후보가 현장 투표에서 간소하게 앞섰으나, 부재자 투표가 개표되면서 결과가 뒤집혀 자유당의 호퍼 후보는 49.7%, 무소속 판 더 벨렌 후보는 50.3%로 무소속 후보가 승리했다. 표차가 아주 적었던 만큼, 대선 결과에 불복한 자유당이 선거 무효 소송을 하고 헌재는 선거 무효를 주문해 다시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부정 선거가 아니라, 우편 투표(부재자 투표)의 조기 개봉이 문제가 되었다. 한 투표소에서 일정보다 빨리 부재자 투표를 개봉하였고, 헌재는 이 표들을 모두 무효표로 처리했다. 오스트리아 내무부는 영향을 받은 표가 최대 23,000표 정도라고 발표하였고, 헌재는 최종적으로 약 78,000표를 무효로 처리하였다. 오스트리아 헌재는 선거 무효 주문과 함께 부정이 의심되나 증거(No evidence)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부정을 의심 할 징후(No indication) 자체가 없어서 선거에 부정이 없다는 사실도 발표하였다. 무효 처리된 표들이 녹색당의 표도 아니었을 뿐더러, 앞서 언급하였듯 해당 후보는 무소속이다. 10월 2일에 치르기로 한 재선거에서 투표 봉투 불량이 발견되며, 선거는 다시 연기되고 12월 4일에 치러졌다. 기존에 대통령이던 하인츠 피셔가 그 전에 퇴임함에 따라 취임 시기까지 대통령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재선거는 녹색당 출신의 무소속 판더 벨렌이 53.8%, 자유당 호퍼가 46.2%로 결과가 바뀌지 않았다.

2017년 10월 15일 총선에서 우파 국민당과 극우파 자유당의 약진이 확실시되어, 외무 장관을 지내고 국민당 당수에 오른 31세의 청년 정치인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차기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총리로 선출되면 세계에서 가장 젊은 정부 수반 중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사민당은 현직 케론 총리의 참모들이 상대당에 대한 네거티브 뉴스 공작을 페이스북을 통해 모의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지지율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예상되었던 대로 국민당이 득표율 31.5%로 1위, 사민당 26.9%, 자유당 26.0%로 2, 3위를 했다. 사민당은 여론 조사보다는 괜찮은 결과를 보여줬지만 녹색당은 3.3%로 창당 이후 역대 최악의 결과를 내면서 한 석도 건지지 못해 없어져버렸다. 2017년 12월 18일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신임 총리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국민당(원내 1당), 오스트리아 자유당(원내 3당)이 연립 여당을 형성했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원내 2당), NEOS-신오스트리아 자유포럼(원내 4당), 페터 필츠당(원내 5당)이 야당을 구성했으며 원외에 녹색-녹색 대안 등이 포진해 있다.

2019년 5월 17일에 자유당 대표이자 부총리인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가 2017년 당시 밀회를 가져 언론 통제를 할 것을 밝히고 담합을 모의하는 몰래카메카 영상이 독일 슈피겔 지를 통해 폭로되어 조기 총선이 결정되었고 부총리는 사퇴했다.

그리고 그 조기총선의 결과로 국민-녹색 연정의 출범이 아주 유력시 되고 있다고 한다.

9.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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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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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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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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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물

13.1. 유명인

13.2. 캐릭터

※ 해당국의 작품 제외.

14. 관련 문서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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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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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스트리아의 헌법 재판소장이었다. [2] 법무부 장관을 겸임한다. [3] 2002년까지는 오스트리아 실링이었다. 은행에서 기한없이 유로로 교환이 가능하다. [4] 대한민국과 오스트리아는 수교 연도를 조선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연도인 1892년으로 간주한다. [5] 서유럽이나 중부유럽에 속해 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까지는 동유럽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6]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7]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면적은 676,615㎢, 인구는 52,800,000명이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하고 난 1919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면적은 83,879㎢, 인구는 6,800,000명으로 거의 1/8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8] 그래도 관광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세계7위정도로 큰 편이며, 사실 관광업비중이 전체에서 10%이내이면 결코 작은 게 아니다. 1% 이내에 있는 나라들도 많다. 흔히 관광에만 매달리다 망했다고 언급되는 그리스의 경제가 그래도 괜찮던 2008년 기준으로 보면, 당시 그리스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한 비율이 18.2%였다. [9] 정작 당사자는 ‘ 호주댁’이라 불리고, 호주 공군기가 뜨면 ‘사위 나라 구해주러 왔나보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출신으로 네등분되어있어서(영미프소) 군인을 보낼 여건이 아니었다. [10]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4년에는 면적 681,727 km2로 유럽에서 2번째로 영토가 크고, 인구 52,800,000명으로 유럽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하고 나서 1919년에는 현재와 같은 면적 83,879 km2에 인구 6,800,000명으로 거의 1/8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11] 오스트리아의 인구는 독일의 1/10 정도에 불과하다. [12] 외교부 안에서도 주 오스트리아 대사는 고위직에 속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 총장도 오스트리아 대사로 근무. [13] 한국외대 독일어과에서 운영중인 독일 원서 도서관 이름이 오지리 도서관이다. 독일어로는 Österreich Bibliothek. 독일식 대륙법이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이런 표현에 현재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법학 서적에서 이런 표현을 처음 접하고 오지리가 어느 국가인지 헷갈려하는 법학도들이 많다. 민법에서는 이후에 나온 최신 법학자들의 서적은 이런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14]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있는 건물이다. [15]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는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편이라, 바이에른 사람과 오스트리아 사람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어디 사람인지 말하기 전에는 겉모습이나 말투로 자기들끼리도 구별을 잘 못한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쭉 살았던 히틀러(오스트리아에서는 서부와 동부를 오갔다)는 프랑스로 가서 몇해 살다가 독일로 이민가기로 했을때, 바이에른으로 이민을 갔고, 거기서 군대도 가고 정치도 하며 자기 인생의 기반으로 삼았다. 게다가 고향이 오스트리아에서도 바이에른 접경 지역이어서, 그가 바이에른 정계에 입문할 때도 언어적인 곤란이 없었고,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것처럼 해서 오스트리아 출신임을 쉽게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바이에른 뿐만이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활동하는 유명 정치인이 되어 베를린에서 많이 활동하게 되자, 오스트리아-바이에른 사투리 때문에 평생 놀림을 받아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 [16] 부르겐란트 크로아티아어라고 불리며 크로아티아 본토에서 쓰이는 크로아티아어와는 다르게 일부 표현이 변형되어 있다. [17]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을 때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헤맸다는 증언도 더러 존재한다. EF 영어 능력 지수 통계도 개인 간의 편차 등을 모두 반영한 정확한 통계라 볼 수 없으며, 비영어권 국가에 여행을 가서 영어로만 의사 소통이 되지는 않는다. 그나마 외국인이 영어로만 의사 소통이 잘되는 유럽 국가는 저지대나 스칸디나비아계(북유럽) 쪽. [18] 여담이지만, 그래서인지 헐리웃과 같은 대규모 문화매체나 축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에 관련된 것이 아닌 이상, 해외의 문화 매체에 대한 관심도도 높지않다. 가령, 최근 암스테르담이나 코펜하겐을 비롯하여 케이팝의 인기를 등에 업고 BTS의 안무를 가르쳐주는 댄스코스가 많이 생겨나고있고, 실제로 케이팝에 대한 관심도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한국 사람이라 소개하면 케이팝에 관한 것을 먼저 묻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여성들 중에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런게 별로 없다. [19] 그래도,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관대한지라 수위높은 성적 표현이나 온 몸을 문신으로 뒤덮고 다니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까지 그러하지는 않다. 그리고 대마초는 이곳에서 엄연히 불법이며, 암스테르담이나 코펜하겐처럼 길에서 대놓고 피우다간 잡혀간다. [20] 이것만으로도 말이 많았다. 춥고 더운 건 주관적인 건데 그걸 담당자가 머플러를 둘러도 됩니다, 안됩니다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을 불러올 만한 일이다. [21] 2015년 신생아 8만4321명 중 1만760명이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2016년 신생아 8만7675명 중 1만2794명이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다. [22] 어떤 해에 생산한 포도에 곰팡이가 많이 생겨서 다수의 와인이 귀부 와인으로 생산되었고 해당 와인은 대히트를 쳤다. 하지만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였기에 이후 생산된 와인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고 와인의 판매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수의 와인 판매점에서 와인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부동액을 첨가하여 판매하였다. 덕분에 오스트리아는 부동액 관련 농담에 자주 출연한다. [23] 외교권과 정당간의 의견 조율 권한만 있는 독일과 달리 오스트리아는 국군통수권과 거부권도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다. [24] 틈만 나면 반유대주의적 발언에 친나치적 발언을 하는 탓에 1991년 케른텐 주지사에서 짤린 적도 있을 정도. 그 이후로도 국회에서 무장친위대는 존경받아야 하며, 나치 수용소는 단순히 훈육 캠프였을 뿐이라는 등의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 1999년 주지사직에 복귀한 이후로는 새로 당까지 만들었지만, 2008년 10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사인이 무려 어머니 생신날을 맞이하여 게이바에서 동성 애인이랑 왕창 퍼마시고는 술에 잔뜩 취한채, 관용 폴크스바겐 페이톤의 운전대를 잡고 어머니 집을 향해 과속하다가 사고를 냈던 것이다. 참고로 그 동성 애인은 하이더가 죽고 하이더의 당 총재가 되었다. [25] 자유당의 전신인 독립연합(VdU)은 동유럽에서 추방된 독일인과 옛 나치 인사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정당이었고, 1955년 자유당이라는 군소 정당과 합당하면서 현재의 오스트리아 자유당이 되었다. 이 당의 첫 지도자였던 안톤 라이트할러는 나치 장관이자 친위대 장교 출신이었고 2번째 지도자인 프리드리히 페터 역시 성향은 온건한 편이었지만 SS장교 출신이었다. [26] 토마와 리리나의 아버지. [27] 프란츠의 딸이자 토마의 이복 여동생. [28] 이와츠치(과거 오스트리아) 소속 멤버들이다. [29] 과학반 반장. [30] 과학반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