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5:58:16

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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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과3. 검거4. 범인 요제프 프리츨의 삶5. 24년간 범행을 지속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6. 결과7. 사후8. 대중매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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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가해자인 요제프 프리츨(Josef Fritzl)이 연행되는 모습.

2008년에 전 세계를 경악시킨 오스트리아 근친, 납치, 감금 강간 사건. 영화 <>과 < 걸 인 더 베이스먼트>의 모티브가 되었다.

2. 경과

오스트리아 동부 암스테텐에 살던 요제프 프리츨은 당시 73세였고 유능한 전기 수리공이었지만 은퇴한 상태였으며 부인 로즈마리와 2남 5녀를 둔 겉으로는 친절한 이웃이었지만 실제로는 집안의 독재자이자 근친상간을 즐기는 성도착증 환자였다.

그는 셋째 딸 엘리자베트가 11세였던 1977년부터 그녀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왔다. 그러다가 딸이 18세가 되고 사회에 진출하기 직전이 되자 자신의 범죄가 드러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두려워하게 되었다. 실제로 딸은 17세 때 성폭행을 피해 가출하여 에서 살아간 적이 있었지만 경찰이 발견한 뒤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이에 요제프는 딸을 감금하여 지속적으로 성폭행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한편 자신의 범죄를 영구적으로 은폐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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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트가 갇힌 지하실의 구조도.

요제프는 1981년~ 1982년에 걸쳐 지하실을 토굴 감옥으로 개조했는데 그곳은 원래 방공호 용도로 쓰이는 곳이라 의심하기 힘들었다. 이중문을 설치했는데 첫 번째 문은 1m 두께의 책장 뒤에 숨겨져 있었으며 두 개의 문 모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 수 있는 전동식 철문이었다. 더군다나 문 두 개 외에도 비밀문까지 합쳐 총 8개의 문이 있었고 방음처리가 꼼꼼하며 각 문이나 통로는 아주 좁아서 탈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내부는 의외로 사람이 살 만하게 잘 꾸며져 있었는데 모두 본인의 힘으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이었다.

1984년 8월 29일, 요제프는 학교에서 다녀온 엘리자베트에게 지하실 정리를 도와 달라고 부탁하여 토굴로 끌어들인 후 그대로 구타하고 감금해 버렸다. 이후 태연하게 딸의 실종 신고를 하고 지하실에 갇힌 딸을 협박해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출했으니 자신을 찾지 말라는 편지를 쓰게 했는데 그렇게 딸이 가출한 것처럼 꾸미고 여태 살아 왔다.

이후 무려 24년에 걸쳐 요제프는 태평하게 부인 로즈마리와 살면서 3일에 한번 꼴로 지하실을 찾아 엘리자베트를 지속적으로 강간하고 음식을 줬으며 이 과정에서 7명이나 되는 아이가 태어났다. 그 중 세 명의 아이는 입양하고 나머지 세 명은 그대로 지하실에 감금했으며 한 명은 사망했다. 입양한 아이들은 나이가 많거나 울음소리가 컸기 때문에 입양한 것이었다.

엘리자베트가 처음으로 임신한 것은 1986년이지만 당시에는 임신 10주 만인 11월에 유산되었다. 1989년 첫째 커스틴, 1990년 둘째 스테판, 1992년 셋째 리사가 태어났다. 1993년 5월 요제프는 리사가 생후 5개월 때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출했다는 엘리자베트가 상자에 넣고 집 앞에 버리고 간 것으로 위장하여 리사를 양녀로 입양했다. 1994년 2월 넷째 모니카가 태어났는데 12월에 리사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베트가 유모차에 버리고 갔다는 것으로 위장하고 입양했다. 1996년 5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그 중 한 아이인 미카엘은 사흘만에 병으로 죽자 지하실 보일러에 집어넣어 대충 화장했다. 다른 아이 알렉산더는 1997년 8월 입양했다. 2002년 12월 일곱째 필릭스가 태어나자 입양하려고 했으나 부인이 돌보기 힘들다고 하자 지하실에 그대로 감금했다.

감금 직후 9년 동안은 지하실에는 방이 한 칸뿐이어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이 이루어졌으며 1994년 엘리자베트가 지속적으로 확장을 요구하면서 요제프는 10여 년간 은밀하게 지하실을 조금씩 증축해서 방 4개를 더했는데 엘리자베트와 아이들은 맨손으로 땅을 파면서 거들어야 했다.

3.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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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일가의 가계도. 빨간색이 감금당한 아이들이며 연두색이 입양 형식으로 키워진 아이들이다.

24년 동안 벌어진 요제프의 근친상간과 감금, 4남 3녀 출산 사실을 부인이나 다른 가족들은 물론 집에 세들어 살던 사람도 전혀 알지 못했다. 권위적인 가장이었던 요제프는 부인이나 다른 사람들을 절대 지하실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검거도 정말 우연히 이루어졌다.

2008년 4월 19일 지하실에 갇힌 3명의 아이 중 하나인 19살이었던 첫째 커스틴이 신장에 문제가 생겨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혼수상태에 빠지자 엘리자베트의 간곡한 호소로 요제프는 커스틴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원인은 태어난 뒤 19년 동안 평생에 걸쳐 산소 결핍과 영양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이때 엘리자베트는 24년 만에, 커스틴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는 주민 등록이 안 되어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 진료를 받으면 그 즉시 누군지를 알 수 있는데 한두 살도 아니고 19세나 된 소녀가 등록되지 않은 것이 의심을 샀다.

특히 커스틴의 옷에 엘리자베트가 사랑한다고 쓴 노트가 있었는데 그렇게 사랑하는 엄마가 왜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수상하게 여긴 의사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엘리자베트 실종사건을 다시 수사하게 되었다.

4월 26일,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요제프는 엘리자베트와 지하에 감금했던 세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에게 24년 만에 딸이 돌아왔다고 되도 않는 구라를 쳤지만 이미 수사에 들어간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경찰은 요제프의 집을 꼼꼼히 수색하여 지하실을 발견했다. 이 공간에 대해 요제프는 당연히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결국 지하실 아이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 요제프와 딸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임이 밝혀졌다. 근친상간임이 확실했고 이에 따라 경찰은 두 사람을 일단 구속한 뒤 각각 격리한 채로 추궁한 끝에 엘리자베트로부터 '요제프를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 줄 것'을 조건으로 요제프가 친딸을 감금하고 무려 31년간이나 성폭행을 저질러 왔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경찰은 다시 요제프에게 이 사실을 근거로 강하게 추궁했으며 요제프가 결국 모든 걸 자백하여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4. 범인 요제프 프리츨의 삶

요제프 프리츨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갖은 학대에 시달렸으며 이 과정에서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성욕과 결합된 형태의 성도착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단, 상술했다시피 페도필리아는 아니었다.

성폭행 피해자는 어린 시절의 친딸을 빼면 모두 성인이고 그 친딸은 성인이 된 뒤에도 성폭행을 당했으며 주변 사람들도 프리츨이 여자에게 관심이 많다고는 했지만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증언은 하지 않았다.

또 이러한 성도착증을 내면에 지닌 그는 징역 1년 6개월을 복역한 강간 전과가 있었으나 오스트리아에서는 15년 이하의 징역형 전과는 삭제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프리츨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업을 계속했고 이 과정에서 친딸이 낳은 자식들을 입양할 만큼의 정당성까지도 확보할 수 있었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에게 입양을 허가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지만 전과가 삭제되어 확인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범죄자의 제2의 인생을 생각해서 전과 기록은 삭제하더라도 오스트리아 사회는 최소한 프리츨이 성범죄를 저지른 뒤 재범하지 않도록 정신적인 치료 및 관리를 했어야 했다. 이런 사건에 대한 대중의 경계가 심각해지자 세계 각국은 성범죄자의 신상을 장기간 공개하고 거주지 제한, 전자발찌 착용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이러한 사건의 전말과 발단에 대한 일화는 어린시절의 학대가 얼마나 끔찍한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낳는지 보여준다

5. 24년간 범행을 지속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

요제프는 딸을 감금하기 위해 굉장히 치밀한 계획을 짰는데 전기 기술자로서의 지식을 활용하여 토굴을 만들고 출입구를 자신 외에는 드나들 수 없도록 개조했다. 따라서 가족들은 물론 이웃들도 요제프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으며 그의 연기가 너무나 철저하여 경찰조차도 꼬리를 잡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물론 이웃들이 아예 아무 의심조차 없이 요제프의 폭력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진 않았다. 요제프는 평소에도 가족들에게 가혹했고, 혹독한 구타와 학대, 협박에 사실상 노예화된 가족들은 요제프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다. 결국 엘리자베스와 다른 가족들의 차이는 강간을 당했다와 당하지 않았다의 정도 였을 뿐, 가족들 역시 요제프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고, 이웃들도 그의 성질을 잘 알았기에 '또 폭행하는구나' 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무시했다.한마디로 아무리 남이라지만 허구헌날 폭행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웃들 역시도 비난을 면치 못할 일이다.

한편 엘리자베트는 탈출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 요제프가 출입구를 철저히 통제한 데다 평소 전기를 끊거나 식료품을 갖다주지 않는 일이 허다했으며 수시로 구타를 일삼았고 더욱이 그녀가 낳은 자식들의 생명줄을 들고 협박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완전히 아버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엘리자베트가 아이들을 출산했으니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혼자가 아니게 된 후에는 함께 저항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이들 모두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1]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지하실에서 살아 온 세 아이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미성숙했다. 안타깝게도 요제프의 양자로 처리되어 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 온 나머지 세 아이도 상태가 좋다고 보기 힘들었다.

6. 결과

이 사건이 알려지자 당연히 오스트리아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범죄가 잊을 만하면 벌어졌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성욕에 눈이 멀어 사람이기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친딸을 성노예화하고 24년간 사육한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요제프는 다음과 같이 강간치사 혐의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2] 정신과 치료감호소로 보내져 계속 복역 중이다.
  • 아동 성범죄
  • 학대
  • 과실치사 - 요제프는 태어난 직후 죽은 아이에 대해 관리 소홀로 죽었다고 주장했고 이를 반박할 확실한 증거가 없어 과실치사만 적용되었다. 엘리자베트의 증언도 이 부분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요제프의 변호사는 변호로 그래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함께 만들었다 궤변을 내세우면서 요제프가 감옥에 가선 안 된다고 그를 변호하였다가 암살 위협을 느끼고 변호를 철회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당시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납치, 감금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감금의 나라'로 찍힌 상황에서 경악할 만한 사건이 또 드러나면서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국가 이미지가 망가졌다고 한탄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오스트리아인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요제프 프리츨이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오스트리아에서 또 일어나기도 했다.

7.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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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엘리자베트.

요제프가 엘리자베트에게서 얻은 6명의 자식 중 중 요제프의 양자로 위장되어 밖에서 길러진 리사, 모니카, 알렉산더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평범하게 성장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감금당하기 전에 이미 18세였기 때문에 바깥 세상에 대한 기억이 있어 풀려난 후 곧 사회에 적응했다.

반면 엘리자베트와 감금되었던 커스틴, 스테판, 펠릭스 세 아이는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으며 그저 지하실에 설치되었던 텔레비전, 비디오 등으로만 세상을 접해 왔던 스테판과 펠릭스는 처음 보는 바깥 세상과 햇빛에 감동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언어 능력으로 자신들끼리 신이 나서 대화를 나누었고 펠릭스는 '바깥에 나와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제프가 재판을 받고 수감된 뒤 엘리자베트와 여섯 명의 아이들은 오스트리아 북부의 마을(자세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함께 살게 되었으며 프리츨이 기른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이 거짓말이고 자신들의 아버지는 바로 할아버지이기도 한 요제프며 어머니와 지하에 감금되어 있었던 다른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비극적인 점은 모든 아이들이 오랜 감금 생활로 인해 인해 지적장애 등의 다양한 신체,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3] 평생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었던 아이들은 더했는데 치과를 비롯한 병원에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보니 맏이인 커스틴은 발견 시점에 이미 치아 대부분을 잃은 상태였고 지하실의 천장이 낮았기 때문에 세 아이들은 자세도 심하게 굽어 버렸으며 스테판은 시력 청력의 손상 가능성도 제기됐다.

거기다 이들은 TV를 통해서만 바깥 세상을 접해 왔던 탓에 현실 적응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펠릭스는 바깥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으며 아이들의 어휘력도 동년배에 비해 현저히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읽기와 쓰기를 조금 가르치기는 했지만 책 한 권 없는 지하실에서 나고 자랐으며 엘리자베트 자신이 11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데다 18세 때부터는 아예 지하실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세 아이 모두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요제프의 부인 로즈마리는 딸이 감금되기 전인 11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요제프의 협박으로 엘리자베트는 어머니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엘리자베트는 어머니 로즈마리와 멀어졌다고 인정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잘못이 없는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로즈마리가 기른 3명의 아이들이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게 된 그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면접교섭을 허락했다.

2009년 6월 오스트리아 신문은 엘리자베트가 '토마스 W'라고만 알려진 보디가드 중 한 명과 사귀면서 아이들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도 엘리자베트의 근황은 일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요제프 프리츨은 과거 수도원이었던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에 있는 가르스텐 교도소의 정신질환 범죄자를 위한 특별 구역에서 지내고 있다. 2012년에는 면회를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55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 로즈마리와 이혼하여 그녀가 연금을 수령할 권리를 박탈했다. 로즈마리는 남편의 노예나 다름없었지만 딸에게 저질러진 만행까지는 참지 않아 남편과 연을 끊어버린 것이다.

2019년 3월 오스트리아 국영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고령의 나이[4]에 오랜 수감 생활로 요제프의 건강 상태가 심히 나빠지고 있으며 치매에 걸려 정신도 오락가락 하다고 한다. 교도소 측에서는 그를 하루종일 자신의 호실 안에서만 지내도록 조치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이런 죄수는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범죄를 저질러서 전 세계적인 사회적 매장감이 되었고 공격에 대한 죄책감을 일절 가질 필요가 없어 다른 죄수의 학대 1순위 타겟이 되기 때문이다. # 이후에는 치매가 심해져 교도소 내 요양병원으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이 되어 수감된 지 15년을 넘기자 오스트리아 법에 따라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월이 되자마자 요제프 프리츨의 변호인이 이미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없는 치매 환자가 된 프리츨이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며 가석방을 신청하였다.

변호인은 일반 구치소로의 전환과 요양원 배치를 요청했으나, 2024년 3월, 비엔나 고등법원(OLG)은 요제프 프리츨의 가석방을 기각했다. 조건부 전환 심리에 공인된 치매 진단서 등의 정신과 보고서가 제출됐으나, 추가적인 의료 문서가 필요하다는 사유로 가석방이 기각됐다. 변호사 아스트리드 바그너(Astrid Wagner)는 88세의 프리츨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no longer dangerous)다며, 기각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전해졌다. 또한 다음 가석방 심리에 대해 변호사는 "프리츨 씨는 기다릴 수 있고, 100% 석방될 것이다."(Mr. Fritzl can wait. He is one hundred percent released from prison.)라고 자신했다. #

8. 대중매체


[1] 사실 근친상간으로 인한 유전질환이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으나 근거가 없는 얘기다. 근친상간으로 인한 유전적 변형 및 문제 등은 단 한 세대만에 이루어지진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 주걱턱은 근친혼이 몇 세대에 걸쳐 거듭되면서 대를 이어갈수록 심해진 것이지 단 한 세대만에 심해지지는 않았다. 즉 실제로는 앞서 언급된 커스틴처럼 영양실조와 열악한 환경이 문제였다. 참고 연구 자료(워싱턴대학 연구팀이 유전자상담저널에 게재한 논문. 미국 유전상담가학회, 보건성 후원), 참고 기사 [2] 사형이 없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법정최고형이다. [3] 근친상간으로 인해 일어난 문제라는 말도 있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근친상간으로 인한 유전적 변형 및 문제 등은 단 한 세대만에 이루어지진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 주걱턱은 근친으로 인한 세대가 대를 이어갈수록 심해진 것이지 단 한 세대만에 심해지지는 않았다. 참고 기사 친족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서 유전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기정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피해자인 아이들에 대한 2차 가해다. 아이들은 장시간 빛을 보지 못하고 사회화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제외하면 유전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타임즈 기사에서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상황을 우려할 뿐 현재는 이상이 없음을 밝혔다. [4] 2019년 3월 기준으로 83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