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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恐 韓 症 (간체자 : 恐韩症, 한어병음 표기 및 발음: Kǒnghánzhèng /쿵한정)중국에서, 한국과의 축구 경기에서 좀처럼 한국을 이기지 못하자 생긴 단어이다.
2. 상세
중국 축구는 아시아 내에서 너무 약체도 아니고 나름 다크호스 정도의 전력을 갖추고 있다[1]. 그런데도 중국은 대한민국만 만나면 이상하게도 기가 죽는지 이기지를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라이벌 일본이나 그 밖의 몇 팀한테는 이긴 적이 몇 번 있었음에도[2] 한국에게는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중국이 한국보다 축구 성적이 낮으니 자주 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 수준 차이를 감안해도 이상하리만큼 한국을 못 이긴다. 중국보다 피파 랭킹이 낮은 국가들도 한국을 가끔씩 이기는 모습을 보인다는 걸 생각하면 징크스라고 부를 만하다.한국과 중국의 축구 맞대결 역사는 꽤 오래 됐지만 1970년대 이전까지의 전적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의 기록이다. 한-중 축구 대결 기록은 국부천대 이전 중화민국의 기록부터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대표팀은 1954년과 1958년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2연속 금메달을 따냈고 1960 AFC 아시안컵 대한민국 본선에 출전할 정도로 아시아의 축구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한-중 축구 대결 기록에서 중국이 한국을 이긴 적이 딱 1번인데 1949년 홍콩에서 중국이 한국을 3:2로 이긴 기록이다. 물론 여기의 중국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이다.
국부천대 이후 대륙을 접수한 중국은 사회주의권이나 비동맹 국가와의 친선경기를 제외하고는 국제대회 자체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대만의 전력이 더 높았을 정도였다. 게다가, 문화대혁명 등으로 중국의 축구실력은 스스로 더 뭉개졌고 아시아에서도 묻혀졌다.
국제 무대에서 중국 축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1년 UN이 중국을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대만을 미승인국으로 축출한 이후다. 중국의 승인을 계기로 중국은 1979년 FIFA에 재가입했다. 한국과 중공의 첫 맞대결은 1978년부터다. 그리고 1984년에 말레이시아 메르데카컵에서 중국에게 0-1로 졌고, 이 패배가 1997년 최초의 성인 A대표팀 간 경기의 패배로 잘못 알려진 적이 있었다.
왜 그런가 하면 1984년 메르데카컵은 1988 올림픽팀[3]이 참가했고 중국팀도 B팀. 즉, 2군팀이 나와서 이긴 것이라 이 기록은 인정되지 않을 기록임에도 1997년 국내 스포츠 신문에선 위에 서술한 대로 A매치라고 왜곡하여 보도했었다. 그리고 중국에게 졌지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즉, 2010년 전까지 중국(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과 역대 성인 A대표팀 경기에서 61년 전인 1949년에 현재의 대만에게 한 번 진 적은 있었지만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게는 패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1983년 12월 17일 싱가포르 머라이온컵 2:0 승리, 86년 1월 18일 인도 네루컵 2:1 승리가 있기는 하나, 상기한 메르데카컵과 마찬가지로 요즘 기준으로는 A 매치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기록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당시의 머라이온컵, 네루컵 등은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프로축구구단과 U19~U21의 유스팀 등이 뒤섞여 뛰는 막무가내 대회[4]였기 때문에 참가한 한국팀은 2진급이었다.
청소년 대표팀의 공한증은 좀 더 일찍 끝났다. 2000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조별리그에서 중국에게 0-1로 져서 한국은 4강조차 못 오르고 2001년 아르헨티나 FIFA U-20 월드컵 진출이 무산되어버렸다. 그밖에 2002년 16살 이하 청소년팀이 0-1로 진 것을 비롯해 여러번이지만, 이 패배는 언론이 작게 보도해서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애초부터 청소년 대표팀은 원래 전력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패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도 했지만... 2000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당한 첫 AFC 주관 대회 패배는 당시 논란이 좀 있었다. 그 해 열린 아시안컵, 올림픽에서 싸그리 일본에게 성적으로 밀리면서 2002 한일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서 일본이 잘하고 대한민국이 밀려날 위기라고 언론 보도가 되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당시 언론에서 "이젠 중국에게 밀려 청소년 월드컵도 못 나가는데 뭐가 월드컵에서 잘하느니 기대를 하는 거냐?"라고 신나게 폭격당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당시 여러 협상을 하던 거스 히딩크 영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여자 축구는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열세라 해당사항이 없는 단어다.
3. 타 종목의 공한증
3.1. e스포츠
과거 스타크래프트 팀 단위 리그( 프로리그, 팀리그)에서 GO 팀이 KOR만 만나면 번번히 깨지는 것을 두고 공한증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이후 팀 이름이 바뀌고, 나중에는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로 한 팀이 되어버리면서 그냥 사어가 되었다.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의 경우, 2013년부터 2017년 롤드컵까지 모든 해외 지역에서 공한증을 가질 정도로 대한민국의 프로리그인 LCK 팀들이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5] 그러나 2017년 올스타전에서 LPL 올스타가 LCK 올스타를 4강에서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부터 타 지역 리그들이 점차 상향평준화됨에 따라 LEC(유럽연합)와 LPL(중국)이 한국팀들을 상대로 대등한 전적을 이루면서 공한증이라는 말은 쏙 들어가버렸다.[6]
하지만 월즈에서의 T1 한정으로는 LPL에게 공한증이라고 할 수 있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의 월즈에서 단 한번도 T1에게 다전제에서 승리한 팀이 없으며, 2023년 월즈에서는 T1이 LPL 4팀 모두 때려잡고 LPL 상대로만 경기 전적 4승 0패에 세트 전적 11:1을 기록하고 우승을 차지해 LPL에게 공한증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리고 더 나아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월즈 BO3와 BO5 다전제를 기준으로 T1은 대 LPL 팀들의 전적에서 9승 0패 세트 스코어 26:5를 기록하고 있다.
오버워치 국가대항전인 오버워치 월드컵에도 공한증에 걸린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 사실상 오버워치 월드컵 한정 담당일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한민국에게 단 1세트도 못 따냈다. 2016년에는 결승전에서 노카운트 0:4 셧아웃,[7] 2017년에는 예선에서 만나서 또 0:3 셧아웃,[8] 2018년에는 또 예선에서 0:4 셧아웃[9]... 총합 상대전적 대한민국 11 : 러시아 0이라는 호러블한 전적을 자랑한다.
3.2. 펜싱
펜싱에서도 공한증을 가진 나라가 있다. 주인공은 남자 사브르와 여자 에페[10]에 두각을 나타내는 루마니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은 루마니아 선수들과 4번 경기를 치러 4번 모두 승리했다. 개인전에서는 남자 사브르의 구본길이 잘로미르를 32강에서 15대 12로, 여자 에페에서는 신아람이 머로이우를 15대 14로 이겼다. 개인전에서 상대적으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긴 했으나, 단체전에서는 루마니아가 그냥 썰려나갔다.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러시아를 꺾은 루마니아는 결승에서 독일과 이탈리아를 가볍게 누른 한국을 상대하였다. 한국은 초반부터 크게 앞서나갔다.비록 돌니체아누가 김정환에 나름 선전하며 추격했으나, 4바우트 추격은 16점에서 멈췄다. 이후 점수차가 곱절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후반으로 가서는 교체해 들어간 오은석에게 1대5로 썰렸고, 에이스 두미트레스쿠는 이 경기에서 구본길, 김정환, 원우영 할것 없이 각각 2대5로 3전 전패를 당했다. 결과는 한국이 45대 26으로 승리, 유럽은 처음으로 펜싱 단체전에서 메달을 비유럽권에 헌납했다.
그 바로 다음날 여자 에페 단체전 8강에서 붙었다. 여자 에페에서 대한민국은 참가국 중 가장 랭킹이 낮은데 반해, 루마니아는 세계랭킹 1위임은 물론 많은 전문가들이 금메달을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다. 승부는 2바우트에서 사실상 결정되었지만 리드하는 쪽은 루마니아가 아니었다. 신아람을 필두로 한 대한민국은 최인정의 초반 활약에 힘입어 루마니아와의 점수차를 차차 늘려갔다.
루마니아는 9바우트에서 뒤늦게 추격을 시작했으나, 결국 한국이 45점을 챙겨 경기를 종료시켰으며 7점 차로 승리했다.
4. 역대 전적
4.1. FIFA 월드컵
FIFA 월드컵에서, 중국은 대한민국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딱 한 번 만났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1:0 승리.그 뒤 중국은 1998년, 2002년 예선을 제외하고 모두 2, 3차 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대한민국과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공한증을 처음 극복했던 가오훙보 감독의 지휘아래 16년만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으로 진출하면서 오랜만에 최정예멤버와 대결할 기회가 돌아왔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3:2 승리.
하지만 최종예선 다음경기에서는 중국이 대한민국을 1:0으로 이겼다.
그로부터 5년 후 중국은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부터 한국의 최정예 맴버랑 만났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3:0, 1:0 승리.
4.2. AFC 아시안컵
아시안컵에서는 중국이 대한민국을 예선에서 한 번, 본선에서 세 번 만났다.둘이 처음 만난 건 1980년 아시안컵 예선(1978년)이었다. 대한민국의 1:0 승리.
1988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또 만나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대한민국의 2:1 승리.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에서는 두 번 만났다. 1라운드에서는 2:2로 비기고, 3.4위전에서는 1:0으로 대한민국이 승리했다.
2019년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에서 만났고, 대한민국이 2:0으로 승리했다.
4.3. 그 밖의 A매치
그 밖의 A매치는 28번 치러졌다. 총 32전 19승 12무 2패 42득점 21실점. 득점과 실점수를 보면 알겠지만 19승 11무 2패의 처참한 성적에 비해선 패가 없는 게 신기할 정도로 대부분의 경기가 접전이었다. 3점차 승이 2023년 11월에 선전 경기장에서 1번 2점차 승이 6번이고 나머지 12번은 모두 1점차 승리이다. 가장 최근의 경기는 2024년 6월 11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1-0로 승리한 경기이다.여기서 확인할 것.
5. 중국의 설레발
중국은 60년째 대한민국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2004년 아시안컵은 중국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중국이 홈빨로 우승할 기세였고 중국과 대한민국의 조 순위가 모두 1위 혹은 모두 2위로 같을 경우 4강에서 둘이 만나도록 대진표가 짜여져 있었다. 그러나 중국만 4강에 올라가고 대한민국은 이란에 패해서 탈락하는 바람에 공한증 해소는 또 듀크 뉴켐 포에버처럼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 2007년 아시안컵에서 당시 중국 국대 감독인 주광후는 "이번엔 꼭 한국을 만나서 이기고 싶다"며 공한증 드립(?)을 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중국이 말레이시아를 5:1로 대파하고 중동의 강호 이란에 2:2로 무승부를 거두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며 잘 하면 주 감독의 바람대로 8강에서 대한민국을 만날 듯 싶더니만 마지막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0:3으로 지는 바람에 공한증 해소는커녕 아예 8강에 가지도 못했다.
- 2015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한민국이 A조, 중국이 B조에 배정되었다. 그런데 중국이 같은 조에 배정된 사우디, 우즈벡 등의 다크호스를 잡아내면서 조 1위 8강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마지막 상대는 북한). 당초 대한민국은 A조 2위 8강행을 할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측했기에 중국은 대한민국과의 8강을 기다린다며 대놓고 공한증 해소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호주를 이겨버려서 조 1위로 8강으로 진출해 중국은 호주와 8강에서 붙게 되었고 0:2로 털리며 광탈하고 말았다. 중국의 공한증 해소는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 2019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한민국과 중국이 같은 C조에 속해 마지막 3차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이전 2경기에서 대한민국은 한참 약체인 필리핀,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졸전을 펼치며 2경기 연속으로 겨우 1:0 신승을 거둔 반면, 중국은 키르기스스탄에 2:1 역전승을 거둔 데 이어 필리핀을 3:0으로 털어버리며 조 1위에 올라있었다. 이에 자신감이 상승한 중국은 대한민국전도 해볼 만하다, 한국을 꺾고 조 1위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한껏 기대를 품었지만 90분 내내 점유율, 슈팅수, 기타 등등 모든 지표에서 탈탈 털리며 0:2로 패배하고 조 1위를 내주고 말았다.
- 2020년 1월 9일 2020 AFC U-23 챔피언십 태국에서 드문드문 회심의 일격을 날려보기도 했지만 한국에 점유율, 슈팅 전환율, 패스 성공률 등 모든 경기력 수치에서 압도된 중국이었다. 그리고 후반 47분 이동준의 극장골로[11] 실점하며 0:1 패배했고, 결과적으로 C조 꼴찌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날 김학범호의 경기력은 그다지 좋지도 않았다.
6. FIFA 랭킹과 공한증
6.1. 중국의 한국 FIFA랭킹 추월?
1996년 2월, 순위가 급상승한 중국은 대한민국의 순위 급하락에 힘입어 FIFA 랭킹 도입 이후 대한민국을 최초로 추월했으나 석 달 만에 한국 밑으로 내려앉았다. 다음 추월은 무려 21년 8개월이 지난 2017년 10월이였는데, 한국이 친선 경기에서 러시아에 2-4, 모로코에 1-3이라는 참패를 당하는 쓴맛을 겪었고, 한국의 FIFA랭킹이 51위에서 11계단 떡락해 62위를 차지하며 중국이 역대 두 번째로 한국의 FIFA랭킹을 추월했었다. 이후 축구굴기가 무색하게 대한민국과 중국의 FIFA 랭킹 차이는 계속 벌어져 2023년 9월 28일 기준으로는 두 국가 간의 랭킹 차이는 약 54계단(대한민국: 26위, 중국: 80위) 벌어져 있다.6.2. FIFA랭킹 상승 난이도
FIFA 랭킹은 큰 폭으로 떨어지기는 엄청 쉽지만 큰 폭으로 올라가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우승을 하고도 브라질의 아성에 막혀서 피파 랭킹 1등을 못했다. 반면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피파 랭킹 11등을 해서 유럽지역예선 톱시드를 달았지만 개나소나한테 다 쳐발리고 조4위라는 어처구니 없는 성적으로 광탈하는 바람에 피파 랭킹 54등으로 추락했다. 피파 랭킹 36등이였던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지역예선의 삽질로 인해 피파 랭킹 60등 근처까지 추락했다.피파 랭킹은 피파 점수라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데 1위와 2위의 간극이 거의 200점 가까이 차이난다. 2위와 3위의 차이도 거의 그 정도며 5위 이하부터 차이가 좀 줄어든다. 이 때문에 피파 랭킹은 등수가 높을 수록 올라가기 힘들다.[12]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2003년 이후 2006 월드컵 예선이 시작될 때부터 계속 지역예선에서 좌절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기네 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지 않는 이상 너무나도 힘들어 보인다. 그것도 최종예선조차 못가고 3회 연속 3차예선에서 탈락했다. 그것도 2006 월드컵 3차예선에서 쿠웨이트에게 골득실 차도 같아서 결국 다득점 싸움에서 1점차로 밀려 탈락한 것을 빼놓고 2010 월드컵 3차예선에선 카타르, 호주, 이라크에게 밀려 조 꼴찌로 탈락했고 2014 월드컵 3차예선에서는 이라크와 요르단과 만나 싱가포르를 제치고 조 꼴찌를 면하며 탈락했다.
그래서 희망을 걸어 볼 것은 아시안컵. 허나 아시아 시원찮은 팀들이 많아서 문제다. 실제로 2004년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홈빨로 결승까지 갔고 그 다음달에 FIFA 랭킹과 포인트가 현저하게 뛰어올랐다. 그러나 유로 2004에서 우승한 그리스에 비하면 많이 뛰어오르지도 못했다. 오히려 유로 2004에서 결승 진출 실패한 체코보다도, 심지어는 2004 AFC 아시안컵 중국에서 8강밖에 못 간 우즈베키스탄보다도 포인트를 더 올리지 못했다. 고작 8강에 그친 우즈베키스탄이 중국보다 포인트를 더 받은 게 아마 1라운드에서 거의 최강을 달리던 사우디를 1:0으로 제압한 덕을 본 것 같다.
유로 2004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그리스와 체코의 급상승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만약에 2004년 아시안컵에서 중국이 일본을 누르고 우승했더라면 FIFA 랭킹이 훨씬 더 크게 올랐을 지도 모른다. 그마저도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서 우즈베키스탄에게 8강전에서 3:0으로 대패하면서 탈락했고 2011년 아시안컵에서도 역시 우즈베키스탄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하면서 아시아 대회조차도 고전 중이다. 그러다가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조별예선에서 중국은 우즈베키스탄을 이기고 8강에 올라 어느 정도 발전했다는 평가다. 2019년에는 같은 조에서 만나 대한민국 1위, 중국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나 8강에서 각각 카타르, 이란에 패배하였다. 2023년에는 무득점으로 조별리그 탈락했다.
그리고 2026년부터는 본선 진출이 48개국으로 늘었다.
7. 2010년 이후 공한증의 역사
7.1. 끝나버린 공한증, 대한민국의 사상 첫 패배
2010년 2월 10일,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0:3으로 시원하고 완벽하게 털려버렸다. 개인기, 기본기, 스피드, 피지컬이 중국보다 훨씬 낮은 열세를 보이며 철저하게 털렸다.특히 그동안 진 적이 없었던 중국 상대로 그것도 3대떡으로 떡실신당했기 때문에 그 충격을 느끼는 정도는 오만 쇼크보다 매우 컸다.
자세한 내용은 중국 쇼크 문서로.
중국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경기였으나, 황당하게도 당시 CCTV는 생방송 일정까지 잡아 놓고서도 이를 생중계하지 않아(다만, 지방 방송국들은 생중계), 중국 축구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생방송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하필 그 무렵 중국에서 축구 도박이 이슈가 되었고 춘절을 앞둔 시점이라 국민 감정을 고려하여 감독기구인 광전총국이 생중계를 금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참고로 레바논 쇼크와 유사하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은 레바논과 큰 차이가 없는 약팀인데, 레바논 쇼크도 중국에 진것 못지않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반면에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대표팀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본선 16강전에서 중국에 3:0 완승을 거뒀고 2012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가진 평가전에서도 1:0 승리를 거뒀다.
2010년 2월에 28경기 만에 0:3으로 대참패를 당한 후 한동안 중국과의 A매치는 없었고 3년 5개월 후인 2013년 7월 24일 동아시안컵 2차전에서 다시 맞붙었다. 전체적인 경기 내용은 대한민국이 주도했으나 공격 작업에서 세밀함이 부족했고 최전방 공격수 서동현이 고립되면서 결국 0:0으로 비겨 설욕에 실패했다.[13]
7.2. 2010 AFC 챔피언스 리그와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0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K리그 출전팀 모두(포항 스틸러스, 전북 현대, 성남 일화, 수원 삼성) 조별리그에서 중국 클럽을 이기며 2010년 국가별 클럽 통산 전적 8:0 올킬을 달성했다. 더불어 16강에서 수원이 베이징을 이기면서 9:0. 클럽 대항전에서 만큼은 아직도 강하다고 여겼는데 돈지랄로 무장한 중국 클럽들이 외국 유명선수들을 영입하면서 2012 챔피언스 리그에선 전북 현대 모터스가 광저우 헝다에게 1:5 대패를 당하면서 클럽 축구도 압도적으로 앞선다고 큰소리를 치기는 어렵게 되었다. 전북은 원정에서 3:1로 이겨 설욕은 했지만 결국 조 3위로 16강조차 못 가고 탈락했다. 그나마 성남 일화와 울산 현대가 텐진 테다와 베이징 궈안을 이겼다.그리고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한국이 중국을 3: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아직은 역대성적을 봐도 대한민국이 중국에게 앞서고는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날 중국 대표팀의 한심한 경기력에 열불이 터진 중국 관객들은 대한민국팀을 응원할 정도였다.
그러나 돈다발로 무장한 중국 슈퍼 리그의 팀들이 나서면서 2013년 광저우 헝다가 대한민국 구단들을 제치고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며 이것도 옛 말이 되었다. K리그의 장래를 생각하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지금 현재도 자금력으로 인해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이 중국 슈퍼리그로 이적하는 현상이 잦다. 그리고, 중국갔더니 실력이 중국화 되어버린다는 비난에 처한 홍정호나 여러 선수들 경우를 봐도 좋지 않았다. 그래고 2016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중국 리그는 4강조차 올라가지 못했으며 막대한 돈을 들여온 선수들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거기에다 2021, 2022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중국 팀들이 유스 선수로만 팀을 꾸리며 승점자판기 신세가 되었다.
7.3. 공한증의 부활
이후 중국에서는 5년 동안 한국한테 진 적이 없다며 공한증은 옛날 이야기로 치부했다. 중국과의 리턴 매치는 2년 후인 2015년 8월 2일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치러졌다. 중국은 국내파 최정예를[14] 동원한 반면 대한민국은 대부분이 A매치 데뷔를 치르는 신인들이었다. 중국에서는 대한민국을 한 발자국 더 앞지를 기회라고 설레발을 쳤고 중국 감독 알랑 페렝도 대한민국과 중국의 전력이 대등하다며 김칫국 드링킹을 시전했다.그러나 막상 경기가 치러지자 대한민국은 중원에서의 강력한 압박으로 중국과의 허리 싸움에서 완승을 거두었고 A매치 데뷔전을 치렀던 김승대와 이종호의 릴레이 골로 깔끔하게 2:0 승리를 거두며 공한증 2탄을 알렸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중국과의 역대 전적에서 17승 12무 1패로 크게 앞서나갔다. 중국은 국내파 최정예를 동원하고도 홈에서 대한민국의 신인들에게 박살났다.
자세한 항목은 슈틸리케호/2015년 EAFF 동아시안컵 항목으로.
그리고 2016 인도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2015년 중국에서 치러짐)에서도 대한민국이 중국을 중국 홈에서 4:0으로 처바르면서 중국은 일찌감치 탈락했다. 여담인데 이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중국, 대만, 마카오와 맞붙어서 중화권 3개 대표팀과 한 조에서 만나 마카오는 17-0, 대만은 6-0, 중국은 4-0. 무실점 27골로 털어버렸다.
2016년 9월 1일,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에서 또 양 팀이 맞붙었다. 대한민국은 역시나 중국을 가패삼기로 몰아붙이며 전반 20분에 지동원, 후반 18분에 이청용, 후반 21분에 구자철이 릴레이로 골을 터뜨리며 3: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중앙 수비진들이 정신줄을 상실해 버린 댓가로 중국의 속공에 당하며 후반 29분, 후반 32분에 잇달아 실점하며 3:2로 신승했다.
어쨌든 승리하면서 전적을 18승 12무 1패로 벌리며 다시 한 번 한국이 중국의 천적임을 각인시키고 비록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의 공한증 무패라는 기분 좋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자신감을 되찾는 데는 성공했다.
7.4. 창사 쇼크, 다시 무너진 공한증
2017년 3월 23일, 중국 창사시에서 진행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에서 중국은 위다바오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대한민국에 승리하여 7년만에 공한증을 다시 벗어났다. 경기력 면에서도 중국이 앞섰다.
중국에서는 축제 분위기였던 반면에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전 맞대결에서 연승을 달리며 부활한 줄 알았던 공한증이 다시 무너진 건 둘째치고 안 그래도 3위 우즈베키스탄과 1점 차이밖에 안났었는데, 시리아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바람에 3위 우즈벡과의 승점 차는 그대로지만 4위 시리아와의 승점 차가 2점 차로 줄어버려 본선 진출이 더 빡세졌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슈틸리케호/2017년 문서로.[15]
다행히도 대한민국은 울리 슈틸리케를 경질하고 후임으로 부임한 신태용 감독의 수습으로 최종예선 2위로 마무리해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지만 중국은 최종예선 5위로 또 다시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같은 해 12월 9일, 동아시안컵에서 두 팀은 다시 만났다. 전반 9분 웨이스하오의 선제골로 실점한 대한민국은 김신욱과 이재성의 연속골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32분, 창사 쇼크 당시 결승골의 주인공이었던 위다바오에게 동점골 내주고 2:2로 비겨 설욕에 실패했다.
7.5. 또 다시 발동된 공한증
그 뒤 2019년 1월 16일 한국시각 오후 10시 반에 벌어진 2019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대한민국에 0 : 2로 패했다. 우레이가 부상으로 결장했다지만 유효 슈팅이 고작 1개에 그쳤으며 파울 14개에 경고 카드만 4장을 수집하면서 또다시 공한증이 발동되었다. 점유율, 슈팅, 유효슈팅, 패스성공률, 볼 경합 등 모든 지표에서 밀리자 중국 언론에서 공한증이란 단어를 먼저 쓰고 있다... # #
같은 해 12월 15일, 2019 동아시안컵 2차전에서도 대한민국은 전반 13분, 김민재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결과는 물론이고 경기력 면에서도 중국을 압도했으나 고작 1골에 그친 골 결정력 때문에 오히려 대한민국에겐 불만족스러운 경기였었다.
이듬해인 2020년 1월 9일,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태국에서 개최된 2020 AFC U-23 챔피언십 중국과의 C조 1차전 경기에서 이동준의 극장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으나 이전 A매치 맞대결에 비해서는 상당히 고전한 경기였다.
2022년 7월 20일, 일본에서 개최된 2022 동아시안컵 남자 축구 개막전에서 대한민국과 중국은 개막전에서 만나게 되었다. 다만 중국은 성인 대표팀이 아닌 U-23으로 출전했다.[16] 그리고 대한민국은 중국을 상대로 90분 내내 가둬놓고 두들긴 끝에 주천제의 환상적인 자책골과 김천 상무 듀오 권창훈, 조규성의 연속골에 힘입어 3:0 완승을 거뒀다.
2023년 3월 12일, 우즈베키스탄에서 개최된 2023 AFC U-20 아시안컵 8강전에서는 중국이 위구르족 선수들을 다수 영입해 피지컬적인 약점을 보강한 것이 효과를 보면서 적극적인 소림축구로 한국을 압박한 끝에 선제골까지 넣으며 다시 한 번 공한증을 타파하는 듯 했으나, 조별 예선부터 라인업이 고착화되어 선수들의 체력적인 열세가 심화된 것을 노린 김은중 감독의 교체 카드들이 통하면서 후반전에 동점골, 연장전에 역전골과 쐐기골을 연달아 넣으며 3:1 역전승을 거둠과 동시에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되는 차기 U-20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성공했다.
2023년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8강에서 다시 한중전이 성사되었고 2-0으로 중국이 탈락했다.
2023년 11월 2026 FIFA 월드컵 2차예선 2차전에서 중국은 홈인데도 불구 유효슈팅 0개를 기록,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3-0으로 패배했다.
2024년 6월 2026 FIFA 월드컵 2차예선 6차전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 중국은 1-0으로 패배했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3차예선 조 추첨을 위한 톱시드 차지가 필요한 상황이였다. 그래야만 일본과 이란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경기를 최소 무승부, 최대 승리를 취해야만 2차예선 탈락이라는 굴욕을 피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태국이 6차전에서 싱가포르를 무조건 이긴다는 가정 하에. 그러나 후반 60분, 이강인의 패스와 이강인의 쇄도에 이은 슈팅으로 경기는 1-0으로 마무리지어졌다. 경기 도중 중국팬들의 야유와 욕설에 이전 원정경기 때의 3-0 스코어를 손으로 보여주는 손흥민이 압권.
7.5.1. 번외: 베트남발 공한증
2019년 아시안컵 이후로 2022년 동아시안컵 이전까지 A매치에서 대한민국과 중국은 마주친 적이 없었으나 2022년 2월 1일, 대한민국의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3-1 완승을 거두면서 최종예선 첫 승과 대 중국전 첫 승과 함께 중국의 최종예선 탈락을 직접 확정지었다.
중국은 외국인 선수들을 대거 귀화시키는 강경책을 내세워 최종예선에 진출했으나 여전히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호주와 일본에게 연달아 패배를 당한 채 똑같이 2연패에 빠진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과 3차전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중국이 우레이의 극장골에 힘입어 3-2로 간신히 이겼으나 귀화 정책 이전부터 베트남을 상대로 전승중이었던 중국에게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경기력이었다.[17]
이후 중국은 오만과 호주를 상대로 무승부라도 거두는 등 본선 진출 희망을 간신히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일본과의 7차전을 앞두고 축구계에 닥친 임금 체불 문제로 상당수의 귀화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지도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안 그래도 이전 맞대결에서 귀화 선수들 위주로 기용하고도 일본에게 패배를 당했는데[18] 귀화 선수들이 대거 빠진 지금 상태로는 안 봐도 뻔한 결과다. 결국 이전보다도 더더욱 털리면서 일본에게 0:2 완패를 당했고 남은 3경기에서 모두 이기는 반면에 3위 호주가 전패를 하면서 15점이라는 골 득실차를 넘어야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19][20] 산술적으로만 진출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사실상 탈락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7전 전패로 이미 탈락이 확정된 베트남을 만나는 중국은 베트남이라도 잡고 가야 했지만 이전 맞대결에서 귀화 선수들을 등에 업고도 3-2로 간신히 이겼는데 이번에는 그 귀화 선수들이 상당수 빠진 상태에서 베트남 원정을 떠나는 상황이라 상당히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경기 시작 16분만에 2실점을 하고 후반 31분에 또 다시 추가 실점을 하면서 베트남을 상대로 무려 3실점이나 하기에 이르렀다. 후반 추가시간에 만회골을 기록했으나 무승부나 역전을 하기에는 당연히 역부족이었고 결국 대한민국의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을 상대로 역사상 첫 패배를 당하는 대참사가 터졌다.
중국은 이 경기 패배로 최종 예선 탈락 뿐만이 아니라 베트남전 전승 행진도 마감되었으며,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최종 예선에 진출한 베트남의 최종예선 첫 승[21]과 첫 승점의 제물이 되는 큰 굴욕을 겪었다. 더군다나 8차전은 한국 시간 기준으로 춘절 당일이었는데, 같은 날 대한민국[22]과 일본,[23] 베트남[24]의 축구팬들은 축제 분위기인 반면에 중국의 축구팬들만 초상집 그 자체가 되었다.[25]
8. 유사 사례
자세한 내용은 공한증/유사 사례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국내에서야 중국이 축구 못한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건 국가의 지원이나 인구 등 환경에 비해 못한다는 거지, 아시아에는 중국보다 심각하게 축구를 못하고 피파 랭킹이 낮은 팀이 수두룩하다. 2024년 4월 4일 기준으로 피파 랭킹 185위인
부탄 축구 국가대표팀이 그 예시. 월드컵 아시아 예선, 아시안컵 등 아시아 국가만 참여하는 대회를 보면 중국이 1포트 하위권 내지는 2포트 상위권에 위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아시아가 아니라 전세계 200개국으로 쳐도 80위 안팎이면 중간 이상이다.
[2]
한국과 달리 일본을 상대로는 그냥 몇 번 이긴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전적에서 12:10으로 약간 우세하기까지 한다. 다만 2000년대 이후로 일본에게는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바꿔 말하면 2000년대 이전까지는 도리어 일본이 중국의 승점 자판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다. 참고로 1990년대 이전까지의 일본은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축구를 못했었다.
[3]
1985년에서야 1988 올림픽팀에 나이 제한이 없고 프로 선수도 출전이 허용된다고 규정이 확정되었고 그 전에는 "프로 선수가 뛰지 못 한다 or 23세 이하 규정을 적용한다"처럼 규정이 혼란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자국에서 열리는 1988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프로 규제도 피하고 나이 규제도 피할 수 있는 20살 전후의 어린 선수들로 현재의 U-23 올림픽 대표팀처럼 선발을 하고 대표 1진 못지않는 투자로 인해 사실상 대표 2진에 가깝게 육성하던 대표팀이었다.
[4]
일례로 1983년의 네루컵은 헝가리 올림픽 대표팀이 중국 U19팀을 꺾고 우승했고, 1985년의 머라이온컵 우승은 유고슬라비아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이었다. 이 때 3위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5]
물론 중간에 공한증을 극복한 사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5 MSI에서
SKT T1을 꺾고 우승한
Edward Gaming과
2017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LCK를 꺾고 우승한 중국
LPL, 그리고 역으로 한국 킬러라는 명성을 떨쳤던 대만
LMS의
Flash Wolves.
[6]
MSI로 따지면 2015, 2018, 2021, 2022, 2023년에 LPL 팀이 T1을 포함한 여러 LCK팀을 상대로 다전제에서 이기거나 우승을 차지하고 있다.
[7]
매 경기마다 완막/완밀을 당하면서 카운트조차 따지 못했다.
[8]
그나마 이 때는 마지막 3세트에서 1카운트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9]
여기도 2세트에서 2카운트를 따냈지만 경기는 패배.
[10]
2012년 단체 세계랭킹 1위.
[11]
경기 종료 40초 전에 들어갔다.
[12]
기본적으로 점수는 상대방의 랭킹이 높으면 높을수록 많은 점수를 받게 되어 있는데 자신의 랭킹이 높으면 당연히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상대방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
[13]
그 전에 중국은 홈에서 태국한테 1:5로 대참패하고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도 잘랐다. 그런 중국과 비겼을 만큼
당시의 성인 대표팀이 막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4]
중국은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거의 없어 국내파가 최정예다.
[15]
7년 전 공한증이 처음 무너졌을 때는 그 동아시아컵이 비중이 큰 대회도 아니었고 본선을 몇달 앞두고 여러가지 전술적인 실험을 하는 과정에 당한 패배였기에 욕은 먹었을지언정 곧바로 한일전에서 승리하면서 어느정도 정상참작은 되었었다. 그러나 이번 패배는 월드컵 본선 여부가 직결되는 경기였기에 과정과 결과 모두 처참한 모습을 보여준 이상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마저도 미적거리다가 한타이밍 늦은 축협의 삽질은 덤.
[16]
감독도 성인 대표팀의
리샤오펑 대신 U-23의 알렉산다르 얀코비치가 지휘봉을 잡았다.
[17]
3차전을 포함해 중국과 베트남의 상대 전적은 7전 전승으로 중국이 압살하고 있었다.
[18]
일본이 분명 경기력이 좋지 않았는데 그 일본보다도 더 못해서 0:1로 패배했다.
[19]
본선 직행이 아닌 플레이오프다. 진출한다 하더라도 A조 3위가 유력시되는 아랍에미리트를 이기고 또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남미 국가를 꺾어야 본선 진출을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중국 대표팀의 실력으로는 아랍에미리트에게도 밀리는데 유럽과 함께 전 세계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는 남미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
이후 대륙간 플레이오프는
호주와
페루가 월드컵 진출을 놓고 맞붙게 되었다. 결과는 승부차기 끝에 호주가 페루를 꺾고 본선에 진출했다.
[21]
특히 이 기록은 베트남 뿐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22]
설날 당일 시리아전 승리로 본선 직행이 확정되어 아시아 최초의 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23]
본선 직행 확정은 아니지만 사우디전 승리로 2위 굳히기와 함께 1위 사우디와 승점 1점차로 좁히기에 성공해 본선 진출에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24]
총리가 경기장을 직접 방문해 박항서 감독과 선수들에게 직접 세뱃돈을 수여하기도 했다.
[25]
오죽하면 화가 난 나머지 TV를 망치로 가격하고 뜯어내 내팽겨치고 발로 밟아 박살낸 중국 축구팬의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