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6 15:06:40

홍명보

홍명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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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Korea Republic KFA.png

69대
파일:Korea Republic KFA.png

8대
파일:Korea Republic KFA.png

35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최영일
(1997~1998)
홍명보
(1998~2002)
유상철
(2002~2005)

}}} ||
홍명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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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수상
개인 수상
파일:브론즈볼.png
FIFA 월드컵 브론즈볼 2002
베스트팀
파일:2002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파일:Korea Republic KFA 2020.pn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츄리 클럽 가입 선수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순서 선수 이름 / 현재 소속팀 출전 횟수 데뷔 경기 은퇴 경기
1 홍명보 은퇴 136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1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4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5 차범근 은퇴 119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6 기성용 RCD 마요르카 110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7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아랍 에미리트)
2004.07.19
(vs 요르단)
7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
9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0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 ||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MVP
1991년 1992년 1993년
정용환
( 대우 로얄즈)
홍명보
( 포항제철 아톰즈)
이상윤
( 일화 천마)

199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창현
FW
임근재
MF
신홍기
MF
김현석
MF
신태용
MF
박태하
MF
신동철
DF
홍명보
DF
이종화
DF
박정배
GK
신의손
199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윤상철
FW
라데
FW
김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신의손
199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황선홍
FW
노상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김현석
MF
김판근
MF
아미르
DF
최영일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신의손
199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라데
FW
세르게이
MF
신태용
MF
바데아
MF
홍명보
MF
하석주
MF
김현석
DF
윤성효
DF
김주성
DF
허기태
GK
김병지
2002 K리그 베스트 XI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2 FIFA 월드컵
골든 볼
올리버 칸
실버 볼
호나우두
브론즈 볼
홍명보

}}} ||
Korea Football Association
파일:홍명보.jpg
이름 홍명보
洪明甫 | Hong Myung-bo
출생 1969년 2월 12일 ([age(1969-02-12)]세)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광진구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81cm[1] 체중 74kg | B형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2] / 은퇴)
축구감독
축구행정가
등번호 20[3]
소속 선수 상무 축구단(1991~1992 / 군복무)
포항제철 아톰즈(1992~1997)
쇼난 벨마레(1997~1999)
가시와 레이솔(1999~2001)
포항 스틸러스(2002)
LA 갤럭시(2003~2004)
감독 대한민국 대표팀(2005~2007 /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2007~2008 / 코치)
대한민국 U-20 대표팀(2009)
대한민국 U-23 대표팀(2009~2012)
안지 마하치칼라(2013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2013~2014)
항저우 뤼청(2015~2017)
기타 대한축구협회(2017~ / 전무이사)
국가대표 136경기 10골( 대한민국 / 1990~2002)[4]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학력 광장초등학교
광희중학교
동북고등학교
고려대학교[5]
종교 무종교[6]
가족 본인 1남 2녀 중 첫째
가족 배우자 조수미, 장남 홍성민, 차남 홍경민
별명 영원한 리베로, 명보형[7], 홍MB

}}}||
1. 개요2. 축구인 생활3. 아시아의 베켄바워?4. 논란
4.1. 러시아 월드컵 방송 3사 해설위원 비판 논란
5. 이야깃거리6. 홍명보에 대한 말,말,말7.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 축구선수 출신 감독, 축구행정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7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14년간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황선홍과 함께 H-H라인이라 불릴 정도로 199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었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황선홍과 함께 팀의 득점의 핵심이 되었을 정도였으며,[8] 국가대표팀에서 A매치 역대 최다기록인 136경기 출전 기록을 가졌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활약하여 한국팀을 4강(준결승전)까지 올려놓았다. 월드컵에서의 활약 덕분에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월드컵 브론즈볼과 월드컵 올스타 팀, FIFA 올해의 선수 후보 (37인, 17위), FIFA 100 등 엄청난 커리어를 쌓으면서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센터백이 되었다.[9]

선수/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를 모두 달성한 케이스. 다만 홍명보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병역 생활을 했었고 그나마 4대 독자여서 6개월만 복무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황선홍[10]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힘겹게 잔류하는 데에 성공했을 정도.]과 마찬가지로 극과 극을 경험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U-23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동메달(3위)를 차지하여 많은 국민들에게서 극찬을 들었으나,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마저 깨뜨리고 선수를 선발하는 등 속칭 ' 으리 축구( 엔트으리)'를 하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1무 2패라는 성적과 더불어 최악의 경기력까지 보이면서 국민들에게서 엄청난 비난에 받았다. 최고의 순간(2012 런던 올림픽)과 최악의 흑역사(2014 브라질 월드컵)을 모두 지녔기에 극과 극을 경험한 상황. 그런데 2017년이 되어서 항저우 감독에서 쫓겨난 후에도 여전해서...결국 2012년에 세운 공로마저 이대로 묻힐 위기. 위의 내용에 대한 것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문서와 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를 참조 바람.

다만 또 거꾸로 행정가로서는 (감독으로서의 커리어와 정반대로) 극과 극을 경험한 것이 특징. 조광래??? 초창기 축구협회에서 전무이사로 활동할 때는 본인이 A대표팀 감독 시절 졸전, 낙하산 인사 문제와 당시 축구협회의 무능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었는데,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에 김판곤 홍콩 감독을 초빙하여 축구협회의 미숙한 행정 처리를 상당히 개선시키긴 했다. 아직 장담은 불가능하지만 2019년 말 현재의 시점에선 분명히 감독 시절보단 행정가로서 더 유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실제 재능도 이쪽이 더 높아 보인다. 원래 본인의 꿈은 지도자가 아닌 행정가였는데, 처음부터 축협에서 앉혀준 국대 코치 말고 축협 행정가로서의 말단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면 지금보단 평가가 백배 나았을 것이다. 다만 감독 시절의 실패가 너무 커서 행정가로서의 긍정적인 면도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보니...

가족은 부모님과 배우자 조수미, 큰아들 홍성민, 작은아들 홍경민이 있다.

별명으로 좋은 의미로 ' 흥부, 홍명바[11], 통칭 영원한 리베로, 영원한 캡틴, 홍명보험' 등이 있으며, 나쁜 의미로 '돌명보, 홍보, 명보, 홍명박[12], 똥명보, 홍MB, 홍띵보, 홍띵넌, 홍덍보[13]' 등이 있다.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홍명보의 선수 생활에 대한 내용은 홍명보/선수 경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external/league-mp7static.mlsdigital.net/REUA_331263.jpg
2002 월드컵 준결승 진출 당시

2.2. 지도자 경력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홍명보의 지도자 생활에 대한 내용은 홍명보/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2012080500344_0.jpg
2012 올림픽 준결승 진출 당시

2.3. 행정가 경력

2017년 축협파동에 맞아 조직개편에 의해 전무이사로 선임되었다.[14] 참고로 박지성은 유스본부장이고 기술발전위원장은 놀랍게도 이임생.[15] 9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카리스마 캡틴이었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란 점을 높게 산 듯하다.그냥 조중연의 고대라인이라서이다. 분명 감독 시절의 실책이 크기는 하지만 선수 시절의 훌륭한 경력과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성과 등 실적이 없는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다 홍명보/지도자 경력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홍명보 본인은 이전부터 지도자보다 행정가 쪽으로 꿈꾸고 있었다.

본인의 자서전에도 행정가가 되는 것을 더 희망하기도 했으니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론 본인이 원하던 대로 행정가가 된 셈. 다시 감독직을 절대로 수행하지 않으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단 감독 생활의 끝이 썩 유쾌하지도 않았고 본인이 희망하는 진로로 다시 가닥을 잡았으니 감독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지도자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행정가의 길을 갈 작정이라고 한다.

단, 홍명보의 행적에서 드러나듯 축협 파동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치라인을 탄 인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축구팬들은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박지성, 홍명보를 발탁한 축협의 깜짝인사가 애초에 근본적으로 스타 마케팅이자 2002년 추억보정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구조개편으로 이미지 쇄신을 꾀했던 축협의 이미지는 좋아지긴커녕 바닥을 모르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16] 애초에 전무이사라고 하면 고위 임원급 보직인데 홍명보는 행정가 준비를 하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행정 실무를 수행한 적은 없으니 못 해도 전무급의 고위직은 아닌 위치에서 시작해야 정상이다. 사실상 또 낙하산이다.

애초에 행정가라는 어감 때문에 착각하기 쉬울 뿐 우리가 생각하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은퇴 이후 한국 축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고위직을 지망했다고 봐야 한다. 현장에서 뛰기 보다는 바로 고위직에 오르고 싶어했다는 이야기인데 뒤에 나오는 해설가들 비판 발언들을 보면 아이러니할 뿐이다.

이후에 알려졌지만, 김판곤을 축협 부회장 겸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김판곤 말로는 서로간의 연이 전혀 없는데 도대체 왜 본인을 추천했는지 놀랐다고. 많이 아는대로 현재까지의 김판곤 영입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018년 3월 22일 서울 중구 두타몰 특설무대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컬렉션 런칭 이벤트 '이빨을 드러내라' 토크쇼에 참석했다.[17]

바이에른 뮌헨과 MOU계약을 맺기도 하고, 도쿄 올림픽을 위해 김판곤과 같이 선수차출을 위한 협상을 뛰는 등 행정가로서는 큰 실책이라 할 것 없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18]

3. 아시아의 베켄바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명보가 프란츠 베켄바워를 (롤모델로서) 의식하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는 홍명보의 자서전을 보면 명확히 드러나는데, 자신의 수많은 별명 중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별명을 제일 먼저 올려놓았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홍명보 본인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별명이라는 얘기이다.

마치 한국의 수비수들이 홍명보를 존경해서 제2의 홍명보라는 별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듯, 홍명보도 베켄바워를 존경해서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별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


일단 당시의 한국과 일본의 축구팬들은 홍명보를 진짜로 아시아의 베켄바워라고 인식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사실 선수로서의 홍명보와 베켄바워는 플레이스타일이 많이 다르며 홍명보는 사실 리베로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이는 이 문단에 잘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자.

물론, 홍명보의 실질적인 포지션이 바이에른 뮌헨식 앵커맨이었고 베켄바워도 이 포지션에서 자주 뛰었던 걸 생각하면, 아시아의 베켄바워나 리베로라는 호칭도 완전 엉터리는 아니라 볼 수 있다.

사실 동양의 둥가가 맞다


또한 홍명보는 자기 자서전에 본인은 은퇴한다면 감독이 아닌 행정가 쪽으로 가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책이 나온 시점인 2002년 월드컵 직전은 바로 베켄바워가 DFB 수뇌부이자 FIFA 핵심 인사 중 한 명으로서 화려하게 활약하고 있던 시점이다.

특히 베켄바워는 자신의 충실한 오른팔인 페도르 라트만을 대동해 역사상 가장 깔끔한 월드컵 유치전 승리를 거머쥐는 등, 그야말로 축구행정가로서는 전성기를 찍던 시점이다.

그리고 베켄바워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행정가 중에선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나마 플라티니가 베켄바워랑 비슷한 위상까지 올랐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축구행정가이나, 막후거래 관련해서 말은 많아도 적어도 일은 잘한다는 평을 받는 베켄바워와는 달리 플라티니는 부패한데다가 일도 못한다는 평을 듣는 것을 보면 사실상 베켄바워 말고는 세계구급 축구행정가로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스타플레이어는 없다 봐도 좋다.

홍명보도 그런 베켄바워를 보며 내심 그를 배우고 싶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베켄바워는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성공한 감독이란 것. 홍명보는 베켄바워랑 비교하면 감독 경력은 정말 초라하다.

물론 2012 올림픽 동메달과 같은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2014 월드컵이나 항저우 뤼청 감독 시절처럼 안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어쨌거나 홍명보는 베켄바워가 거쳤던 길인 스타플레이어 -> 명장감독(?) 올림픽 동메달 땄으니 그냥 그렇다 쳐주자 -> 행정가 수뇌부의 길을 착실하게 밟고 있다.


적어도 행정가로 뽑히는 선임과정 관해선 굉장히 논란이 많은 홍명보이나 현재까지는 (행정가로서는) 유능하단 평을 듣고 있기에, 그가 과연 베켄바워의 길을 걸어서 진짜 피파에서 한국을 대변하는 축구행정가가 될지 플라티니의 뒤를 이어 행정가로서도 처참하게 몰락할지는 지켜보도록 하자.

근데 행정가로서의 행보는 지가 있는 단체 대빵한테 빌붙는 것도 그렇고 베켄바워보단 플라티니랑 더 비슷하단 게 문제다

4. 논란

4.1. 러시아 월드컵 방송 3사 해설위원 비판 논란

2018년 7월 5일 열린 대한축구협회 기자 간담회에서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주 요지는 "해설위원들이 첫 월드컵부터 계속 월드컵에서 성공만 해본 사람들이라 선수들이 못하는 것에 대해 공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감독이 되어) 현장 경험을 하고 오면 더 좋은 해설이 될 것 같다."인데, 이 내용이 들리기에 따라서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당시 한국 공중파 방송사 해설위원인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에게 " 감독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 2002년의 성공은 그동안 실패했던 선배들이 힘을 모여서 된 것이고, 세 해설위원은 그것을 토대로 첫 월드컵부터 성공을 경험하고 그걸 바탕으로 이후에도 계속 월드컵에서 성공만 했다"며 월드컵 기간 중 해설위원들의 지적 및 개선 요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남겨 각 언론 및 네티즌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홍명보의 말대로 세 선수들이 2002 한일 월드컵 성공 이후 국가대표에서 계속 성공적인 결과를 낸 것은 아니다.[19]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과로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 때문에 대표팀 경기력이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 욕을 먹었고 그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첫 승의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결국 1승 1무 1패로 예선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고 당시에도 16강 진출 실패라며 성공이 아닌 실패라 언급되었다. 또 원정 사상 첫 승을 거두는 성과에 대해서도 그 1승의 상대가 3패를 당한 토고라며 폄하되었다. 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원정 사상 최초로 16강 진출을 달성했지만 높아질대로 높아진 기대치에 16강 진출이 당연하게 생각되어 큰 환호를 받지도 못했다. 오히려 8강 진출 실패라며 염기훈이나 이동국, 허정무 감독 등이 큰 비판을 받았다. 즉,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월드컵에서 항상 성공만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에서야 다시 1990년대로 돌아가 16강 진출이 원래 어려운 것이다란 인식 하에 평가받지만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때의 16강 진출은 전 대회 4강팀으로서 당연히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

또한 박지성은 당시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이었다. 한마디로 이미 현장에 있었음에도 대한축구협회 소속인 홍명보가 같은 축구협회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박지성을 비판하는 것 역시 모양새가 이상한데 이영표와 안정환 둘만 떼어 비판하는 게 더 이상하기에 한꺼번에 말한 것으로 보인다.

홍명보는 "세 해설위원은 대한민국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좀 더 현장에 와서 받은 것을 돌려주고 축구계가 더 발전하도록 일을 했으면 한다."라는 발언을 덧붙였다. 저 말도 대단히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게, 해설위원들 역시 많은 팬들을 위해 나름의 지식을 동원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팬들이 스포츠를 좀 더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해설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상 해설위원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최선의 해설을 통해 국민들을 즐겁게 하면 그게 바로 혜택을 돌려주는 것이다. 현장직은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리이고, 해설위원은 편하게 구경이나 하는 자리라는 식의 발언은 당장 축구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종목의 해설위원들을 폄하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2002 한일 월드컵의 선수들이 혜택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이기에 거스 히딩크라는 전 대회에서 팀을 4강으로 이끈 명장을 데려오고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K리그를 중단하는 등의 축구협회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거스 히딩크라는 명장을 만나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실력이 업그레이드되고 월드컵의 성공으로 병역 면제와 함께 여러 선수들의 유럽 진출의 길이 열리는 등 국가적인 혜택을 받은 것은 분명이다.[20] 이전의 한국 축구는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직 투혼으로 결과를 바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에 대해 이미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는 2000년대 한국 축구를 10년 가까이 이끌어갔다.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높아진 기대치로 많은 부담감 속에서도 어느 정도 국민 기대치에 부응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반드시 지도자나 행정가가 되어 계속해서 한국 축구를 위해 뭔가를 하라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위의 항목에서 서술했듯이 특히 축구협회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은 홍명보가 할 말은 더욱 아니다. 대한민국 축구판에 홍명보만큼 협회 덕 많이 본 선수가 어디있단 말인가?

또한 홍명보는 과거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당시 월드컵 감독의 자격으로 MBC를 찾아 안정환, 송종국에게 "해설은 너희 생각대로 하면 된다. 좋은 얘기만 하면 안되고 쓴소리도 해라. 쓴소리를 듣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건 바로 너희 역할"이라고 조언한 바가 있어, 4년 만에 자신의 말을 뒤집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게 되었다.[21]

게리 네빌 마냥 입으로만 실컷 이상적인 축구 이론을 털어놓다 막상 본인이 실전을 맡으니 처참한 모습을 보여준 케이스도 분명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EPL의 축구 감독들이 게리 네빌에게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마구잡이로 떠든다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은 국가대표 선배로서 선수들에게 애정어린 비판을 하기는 했어도 게리 네빌마냥 작정하고 모두까기 식의 비판을 퍼붓지는 않았다. 게리 네빌은 감독 경험도 없으면서 감독들에게까지 말도 안 되는 무분별한 비판을 해설 시간은 물론이요 분석 데스크에서까지 상습적으로 진행한 반면,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이 쓴소리를 한 것은 경기 해설 중 짧은 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던 사람과, 국가대표 선배로서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애정어린 비판을 하는 것을 등치시킬 거리가 아니다. 이 정도 비판과 평론도 할 수 없다면 국가대표는 절대로 비판받아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고 해설자는 하는 것 없이 맞장구나 치는 사람에 불과하다. 결국 홍명보의 이 발언을 까는 기사도 나오고 많은 커뮤니티에 퍼지며 팬들의 비판을 거세게 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누가 봐도 꼰대스러운 발언이었으니 말이다.

단, 2018 월드컵 때의 해설진이 실망스러운 해설을 보여준 건 사실이긴 하다. 이영표는 2014 때의 일침갑, 초롱도사는 간데없고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 같은 이상한 염불이나 외우고 있고, 안정환은 2014 때도 해설면에서 좋은 평을 못 들었는데 2018 때도 해설가로서 성장한 점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박지성은 아예 해설이 너무 재미가 없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22] 문제는 이런 세간의 해설진 평가에도 홍명보의 해당 발언 이후 여론이 바뀌어 홍명보가 욕먹었던 것. 홍명보 본인의 실언과 업보 때문인데다, 2014년 시절의 발언과 앞뒤가 안 맞고 열심히 일하는 후배들에게 일침만 놓는 꼴이였던 것이 문제다. 본인 딴엔 ( 카잔대첩 이전의) 신태용호가 해설진한테 팩트, 노팩트 거르고 맹목적으로 여러 매체에서 뚜들겨 맞는 걸 보고 4년 전의 자신이 생각나 안타까워 제대로 알고 비판하라고 나름의 쉴드를 쳐준 것 같다만, 국가대표팀을 향한 제대로 된 변호를 해주기는 커녕 너희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해버리니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붓는 꼴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발언 이후 안정환은 간접적으로나마 선배한테 한소리 들었다 생각했는지, 해설하는 내내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해설 질이 좋지 않아도 비판받은 것도 한몫 한다.

5.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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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짤.다른 종목의 돌부처, 스티븐 시걸? 아니면 이 사람??
이 말 보고 한번 더 본 사람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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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 8강전에서 영국을 승부차기로 꺾고 4강 진출을 확정짓고.
아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8강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짓고 난 후. 그리고 그와 관련된 . 쿨타임 10년짜리 웃음

파일:홍명보 승부차기.gif
  • 위의 짤에서 보이듯이 사적인 자리에서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며 침착하고 과묵한 성격이다. 결혼을 한 뒤 아내와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서 홍명보의 아내는 가끔 인형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홍명보의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에서 직접 언급했다. 참고로 선수시절 나온 TV프로그램에서 직접 밝히길 프로포즈는 '김치찌개를 잘끓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끓여줘...'였다고. 근데 이런 스타일의 인물은 입만 열면 지혜가 드러나는 명언이 술술 쏟아져 나오는데, 홍명보는 오히려 입만 열면 논란을 키우니 (그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조차 제발 입 다물라 할 정도로) 정반대라 할 수 있다. 본인 특유의 논란을 몰고 다니는 화법을 잘 알아서 말을 안 하는 걸지도...
  • 팀에서의 등번호20번. 처음 국가대표로 출전했을때부터 달았던 번호로 황선홍의 18번, 안정환의 19번과 함께 홍명보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잡았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함께 가장 유명한 20번 선수로서 한국 축구 한정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등번호가 되었다. 홍명보가 은퇴하자 그를 존경했던 포항 후배 이동국이, 이동국의 국가대표 차출이 불안해지자 제 2의 홍명보라는 평가를 받는 홍정호가 이어받았다. 지금도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공격수가 주로 다는 20번을 수많은 한국 수비수들이 너도나도 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게 5-0으로 진 경기에서 프랑스의 스트라이커 니콜라 아넬카에게 "와 봐! 새X야!"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도는데, 사실 이는 거짓이다. 애초에 말 자체가 별로 없는 홍명보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욕설을 하는 모습이랑 매치가 되는가?[23]
  • 홍명보가 홍명바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으니. 8강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 상황에서 호아킨의 슛이 이운재에게 막혀 대한민국의 4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KBS 서기철 캐스터가 흥분한 나머지 홍명보를 홍명바로 발음한 것.

파일:attachment/홍명보/japanhmb.jpg
  • 놀랍게도 홍명보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만화가 존재한다. 제목은 홍명보 이야기. 이 만화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화이며 작가는 닥터 노구치의 작가인 Toshiyuki Mutsu가 그렸다. 한마디로 작가가 홍명보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정성껏 만든 만화책이다. 스펀지 시즌1에서도 다룬 바 있다.
  • 두 아들의 이름이 각각 홍경민(!?)과 홍성민인데 공교롭게도 가수 홍경민의 본명이 홍성민이다.

파일:attachment/홍명보/개만보좋.jpg
  •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요술봉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이는 봉(보)의 일본어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 개그. 원작에서는 4권 제 51막에서, 애니메이션에서는 1기 9화에 등장. 변신시 사용자의 아버지를 누드로 만든다. 여담이지만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만화 자체에서 한국인 이름을 엉뚱한데다 많이 쓴다. 월간 최홍만이라든가, 월간 최지우라든가,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 야마토가 연재된 월간 최용수라든가...[24] 거기에 위 짤방은 축까들이 홍명보 및 홍명보호를 깔 때 등장하기도 한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오재석, 김승규와 함께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3~4위전 이란과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 중 병역혜택을 우선으로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연평도에서 전사한 장병에게 염치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 남들이 피자, 햄버거 등을 섭취할 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했다"고 말하며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운 야구국가대표팀을 비하 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사실 야구선수들은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패스트푸드로 때운 반면 축구대표팀은 국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 매끼 한국음식을 비롯한 호화로운 식사를 했다. #
  • 브라질의 축구선수 둥가가 그와 비슷한 면이 많다. 해당 문서 참조.
  • 게다가 차범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하석주와 감동의 재회를 했었는데[25] 칼럼에서 차범근은 98 월드컵 이후 자신에게 연락을 안 한 선수는 하석주와 홍명보뿐이라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또 커졌다. 하석주야 각주에도 적혀 있듯이 죄책감이 너무 커서 연락을 못 했다고는 하지만, 홍명보에게는 그럴 이유도 없었고 게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여론에게 비호감으로 찍힌 터라....
  • 김판곤 국가대표 선임 위원장이 벤투감독을 선임하기 직전에 여론이 험악해지자 마음고생이 심해져서 댓글에 대한 경험이 많은 홍명보한테 전화를 걸었고, "결과가 나오면 여론은 바뀐다"며 김판곤을 위로해줬다.

  •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6년간 본인이 만든 장학재단인 홍명보장학재단을 통해 홍명보 자선축구대회를 개최했었다. 16년간 총 22억 8천만원이 모였고 주로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 [26] 2018년 마지막 자선 경기 하이라이트
  • 현역시절 94년 미국월드컵, 유럽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전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수의 스페인팀과 대표적인 명문팀 FC 바르셀로나에서 영입제의를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2002년 당시 기사 원문은 삭제된 상태고 퍼온 기사 내용만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
  • 잘 알려진 사실로 빠른 69년생이라 황선홍과도 상당히 친하다.
  • 파일:띵보분노.jpg
2018 월드컵 당시 방러해 락커룸을 찾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일명 '손흥민 어딨어?' 영상에서 축협 고위 인사 중 하나로 빠르게 지나갔는데, 하필이면 째려보는 듯한 표정이라 소소한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출처(일베링크 주의) 일식집에서 알바하다가 홍명보가 왔을 때 맥주 잘못 알아듣고 잘못 내왔을 때 표정이 저랬다는 댓글이 압권.

6. 홍명보에 대한 말,말,말

파일:na1339632097.jpg
"홍명보는 한국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낳은 기형아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27]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해설자
"홍명보가 만일 지금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유럽에서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그러나 지금 늦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의 칼럼리스트 랍 휴스
"마치 두 명의 말디니가 서 있는 것 같군요."
이탈리아 해설자,세계 올스타 경기에서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수비를 조율하는 홍명보를 보고
" 나폴리를 떠나 유벤투스로 가게 된 치로 페라라의 자리를 홍명보로 메우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SSC 나폴리 구단주,1994년 홍명보의 영입에 실패한 후
"한국이 예선탈락한 것은 결코 한국 축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차범근 감독은 홍명보같은 유능한 선수를 몰라봐 그를 공격수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나톨리 비쇼베츠
"골대를 지키고 있다 보면 앞에 선 등번호 20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모른다."
미나미( 가시와 레이솔 골키퍼)

7. 둘러보기

파일:Korea Republic KFA 2020.pn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츄리 클럽 가입 선수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순서 선수 이름 / 현재 소속팀 출전 횟수 데뷔 경기 은퇴 경기
1 홍명보 은퇴 136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1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4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5 차범근 은퇴 119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6 기성용 RCD 마요르카 110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7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아랍 에미리트)
2004.07.19
(vs 요르단)
7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
9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0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 ||


[1] 대한축구협회 기록. 링크 [2] 스위퍼 [3] 이후 이동국, 장현수에 이어 2019년 현재 권경원의 고정 등번호가 되었다. [4] 1998년 3월 7일에 열린 홍콩 대표팀과의 다이너스티컵 경기를 포함하면 137경기가 된다. FIFA에서는 이 경기를 A매치로 인정하나 홍콩팀엔 게리 매키언(Gary McKeown)이라는 잉글랜드 국적의 외국인 선수가 기용되어 있어서 대한축구협회와 홍콩 축구 협회는 A매치로 인정하지 않아 KFA에서는 136경기로 기록함. [5] 축구 명문으로 과거부터 한국 축구에는 고려대 라인이 많다. [6] # [7] 형의 이미지를 빗댄 이름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에 진출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생겨난 별명이다. [8] 최종전인 독일전에서 2:3으로 석패했는데, 전반전에 0:3으로 끌려가다가 후반전에 황선홍 홍명보가 연달아 득점하여 2:3까지 치고 올라갔었다. 카잔 대첩 전조 [9] 아시아에서 가장 수준급 선수가 나오기 힘든 포지션이 센터백과 골키퍼이며 아시아 센터백 중 홍명보의 커리어가 독보적이기에 역대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시아 베스트 11을 뽑을 때 그의 파트너로 거론될 수 있는 선수들이 유럽에서 커리어를 보낸 요시다 마야, 라만 레자에이, 쑨지하이 정도. [10] 황선홍은 클럽팀 감독으로서이다. 그 역시 극과 극을 경험했다. 당장 FC 서울에서 황선홍은 2014년 홍명보와 비슷한 삽질을 했었다. 결국 황선홍이 쫓겨난 뒤 최용수 [11] 2002 월드컵 8강전 당시 KBS 서기철 캐스터의 발음 때문에 붙여진 이름. 홍명바! 4강 4강 흐으으헝엉엉.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홍명바'라는 아이스바가 나왔다 카더라. # [12] 실제로 채널A에서는 이명박과 홍명보에 대한 평행이론을 방송한 적이 있다. 링크 [13] 바리에이션으로 띵튽 홍띵넌 이라는 반어법(...)적 표현이 있다. [14] '축구협회 조직개편... 전무 홍명보, 유스본부장 박지성', 김태현, 국민일보, 2017년 11월 8일 [15] 홍명보와 함께 고려대 라인 [16] '한국축구 쇄신 핵심 '홍명보·박지성'… 위기 탈출 '특급 조커'로 나선다', 권영준, 스포츠월드, 2017년 11월 8일 [17] 인사말하는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이사, 2018년 3월 22일, 네이버스포츠 박지혜 기자 [18] 물론 김판곤 쪽의 공이 더 큰 것은 맞지만 축구협회가 그동안 비주류 인사가 선임되기 힘든 구조였음을 생각하면 홍명보가 그를 초빙한 건 잘한 것이라 봐야한다. [19] 특히 안정환은 국가대표로 활약하기 시작한 게 히딩크 부임 후인 20대 중후반부터로 자신의 월드컵을 시작하자마자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기 때문에 기회가 아예 없던 것이다. 안정환의 국가대표 데뷔는 1997년. [20] 다만 안정환은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커리어가 완전히 꼬이기 시작했다. 안정환 문서 참조. [21] 게다가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대표팀에 뽑지 않겠다고 해놓고서는 박주영을 발탁한 게 바로 홍명보였다. [22] 그래도 해설의 질 자체는 박지성이 제일 나았다. 안정환같은 경우는 역으로 재미만 있었다. [23] 홍명보는 기분이 수틀리면 욕 대신 그 특유의 돌부처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살짝 깔고 째려노려보는 버릇이 있다. 대표적으로 후술할 문재인 대통령의 손흥민 어딨어? 영상이랑 술집에서 홍명보를 만난 알바가 술을 잘못 내왔던 썰 등이 있다. [24] 몇몇 자막에서는 제이온스라고 되어있다. 뜻은 같고 발음의 차이. [25] 하석주는 월드컵 때 자신이 한 실책이 너무 죄송스러워서 그 이후로 차범근과 연락을 못 했다고 한다. [26] 댓글은 맹목적인 비난이 많아 보지 않는게 좋다. [27] 참고로 이 발언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홍명보의 플레이스타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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