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07:09:08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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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대표팀에 대한 내용은 북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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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종합팀
DPR Korea national football team
<colbgcolor=#ff1100><colcolor=#fff> FIFA 코드 PRK
축구 협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 (DPRKFA)
대륙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 연맹 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홈구장 김일성경기장 (40,239석)
양각도축구경기장 (30,000석)
릉라도5월1일경기장 (114,000석)
별칭 천리마 축구단
감독
[[북한|]][[틀:국기|]][[틀:국기|]] 신영남[1] (SIN Yong-nam)
주장단
C
장국철 (JANG Kuk-chol)
FIFA 랭킹 118위 (2024년 4월 4일 기준 / #)
Elo 랭킹 111위 (2024년 3월 27일 기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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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folding [ 대표팀 기록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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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1100> A매치 최다 출전 리명국 (RI Myong-guk)
- 120경기
A매치 최다 득점 정일관 (JONG Il-gwan)
- 76경기 / 26골
월드컵 최다 득점 박승진 (PAK Seung-zin)
- 2골 (1966)
첫 국제경기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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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vs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1:0
( 중국 베이징 / 1956년 10월 7일)
최다 점수차 승리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vs [[괌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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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21:0
( 대만 타이베이 / 2005년 3월 11일)
최다 점수차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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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vs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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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0:7
(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 2010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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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color: #fff; margin: 5px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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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1100> 세계 대회
월드컵 [진출] 2회
[최고] 8위/8강 ( 1966)
올림픽 [진출] 1회[2]
[최고] 8위/8강 ( 1976)
대륙 대회
아시안컵 [진출] 5회
[최고] 4위 ( 1980)
아시안 게임 [진출] 5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 1978)
EAFF컵 [진출] 4회
[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 ( 2005, 2015)
챌린지컵 [진출] 3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2010, 2012)
다이너스티컵 [진출] 2회
[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 (1990,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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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컬러 어웨이
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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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1. 개요2. 역사3. 역대 감독4.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5. 현재 선수 명단6. 역대 전적7. 연령별 대표팀8. 여담9. 출신 인물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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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문서. 2023년 4월 기준 피파 랭킹 115위의 약체다. 이러한 평가와는 별개로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를 거둔 팀이자 아시아 최초로 유럽 국가를 월드컵 본선에서 격파한 팀, 아시아 최초의 토너먼트 진출 및 원정 8강 진출,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우승국 격파라는 의외의 진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기도 하다.[3]

대한민국과의 상대전적은 17전 1승 9무 7패로 절대 열세. 심지어 1승도 1990년 평양에서 벌어진 홈 경기이고, 이마저도 1-1로 끝날 경기를 북한인 주심이 일부러 시간을 끌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북한에게 페널티킥을 줘서 북한이 간신히 승리한 경기이고 나머지도 남한을 상대로 심판이 북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행동을 하거나 더러운 수법까지 쓰며 필사적으로 했는데도 졌거나 겨우 억지로 비겼다. 실제 남한 국가대표팀들의 인터뷰를 보면 욕설이나 싸움을 거는 것 말고는 볼 것 없고 부상이나 당하지 말자는 반응이다. 반대로, 여자 축구의 경우 남한과의 전적에서 15승 3무 1패로 절대 우세를 보이고 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H조에서 같은 조에 속해 평양에서 1차 남북대결을 펼쳐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후 2021년 서울에서의 2차 남북대결을 앞두고 돌연 기권을 선언해서 월드컵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중국 회사 ' 인랑 스포츠'이며, 유니폼엔 협회 로고가 아닌 인공기를 부착한다. 과거 유니폼 스폰서로 아디다스[4], 휠라, 엄브로[5], 레게아[6], JAKO 등과 계약하기도 했으며, 대북 제재 영향으로 외국 용품 제조사의 후원이 어려워지자 2015년 경부터 8년여 간 북한 기업 '최우수' 사의 제품을 착용하기도 했다. 2019년 10월 15일에 있었던 남한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경기에서도 당시 해외에서 생산된 그 어떤 물품도 북한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미국 제조사 나이키의 유니폼을 입는 남한의 선수들과 유니폼 교환이 금지되었다.

주요 선수로는 한광성, 박광룡, 정일관, 장국철 등이 있다.

2. 역사

2.1. 과거~1966년

해방 이전부터 평양 지역에서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고, 실제 50~60년대 남한에도 실향민 출신의 선수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최정민.

북한은 남한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와 맞붙기 전에 이미 헝가리와 경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스코어가 10대0이었다고 한다.[7] 실제 이 경기를 뛰었던 선수가 훗날 월남해서 남한 대표팀에 들어가 헝가리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제공해 주기도 했다고.

2.2.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캡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깨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 첫 승과 함께 월드컵 8위(8강)[8]에 진출한 전적이 있다. 이 경기의 결과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당대 축구 종주국으로 명성을 떨친 잉글랜드 미국에게 0-1로 진 것과 더불어 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이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1966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아시아 + 오세아니아 + 아프리카를 통틀어 당시 16개국 본선 진출 티켓이 고작 1장밖에 부여되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보이콧을 했고, 아시아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월드컵 예선에 참여하지 않아서 예선 참가국은 호주와 북한 단 둘뿐이었다. 여기서 북한이 호주를 꺾고 16개국 본선에 진출했다.

북한의 16강 조별리그 상대는 소련, 이탈리아, 칠레였다. 소련은 유로 우승국에 당시에는 전설의 골키퍼 레프 야신이 있던 우승후보국으로 지금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당대 최강팀 중 하나였고 실제로 이 대회에서 4위를 기록했다. 칠레 역시 전 대회에서 개최국 어드밴티지에 힘업어 3위에 오른 강팀이었다. 이탈리아는 수페르가의 비극 여파로 1950년부터 15년 넘게 부진했지만 1966년에는 강력한 수비에 힘업어 펠레의 브라질, 개최국 잉글랜드에 이은 우승후보로 꼽혔고 실제로 다음 1970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다. 북한은 소련에게 0-3으로 무기력하게 패했지만 칠레와 비겼고, 최종전에서 이탈리아를 1-0으로 꺾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8강에 진출했다. 분노한 이탈리아 팬들은 귀국하는 자국 선수들에 달걀과 토마토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8강전에서 만난 포르투갈에 3-0까지 앞서기까지 했다. 물론 경기는 에우제비우가 그라운드에 나타나기 전이었고, 에우제비우가 출전하자 마자 연달아 4골을 폭발시켜서 북한 선수들에게 헬게이트가 뭔지 가르쳐줬다. 경기결과는 3-5로 포르투갈에게 패하며 8강 8위로 마쳤다. 특히 3-0으로 앞서다가 순식간에 5골을 연달아 얻어맞은 당시의 북한 선수들은 패배한 굴욕감보다도 아연실색이 앞섰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패배를 당해 이후 수용소에 끌려가고 말았다는 카더라가 있는데, 이것은 일부 선수가 고초를 당한 것이 와전된 것이다. 사실 김일성 입장에서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역전패 한게 아쉬웠을 뿐 어쨌든 2라운드까지 진출하는 성적을 올렸는데 잘가는 팀을 숙청시켜야할 하등의 이유 자체가 없었다.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에 의하면 사창가가 이유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당시 갑산파를 둘러싼 숙청에 애꿎은 축구선수들이 휘말렸다는 것이고, 실제로 이들 북한 대표팀이 수용소에 끌려간 것도 월드컵 몇 달 후였다고 한다. 스탠리 라우스 당시 피파 회장이 "공격에는 에우제비오, 골키퍼에는 레프 야신, 수비에는 신영규"라고 극찬받았던 신영규는 숙청당해서 지방의 도자기 공장 소속 축구팀에서 감독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70년대 말에 복권되어 평양에서 유소년 축구팀 관련 일에 종사했고, 말년에는 외국에 나가 살다가 1996년에 벨라루스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북한 대표팀 선수단 중에 확실하게 행적이 확인되는 인물은 이탈리아전에서 득점을 기록한 박두익이다. 박두익은 1970년대 북한 대표팀 감독으로 맹활약하면서 남한과도 여려차례 대결했고, 이후에도 북한 축구계의 대표로 여러차례 모습을 보였다.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北선수들 탄광행?' 그래도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차범근이 국가대표였던 당시 박두익과 맞붙은 적이 있다고 한다.

영국의 다니엘 고든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천리마축구단(The Game of Their Lives)을 보면 당시의 선수들이 다시 만나는 장면도 나오고, 그들 중 박두익을 포함한 몇몇은 꽤나 고위층으로 출세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출연한 인물은 당시 북한 대표팀 감독이었던 명려현, 골키퍼 리찬명, 수비수 림중선, 미드필더였던 림승휘, 한봉진, 박승진과 공격수 박두익, 량성국 등 8명이다. 그들이 인민복이나 정장을 입고 나온 장면에서 옷에 훈장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고위층으로 보인다.

다니엘 고든 감독은 이후에도 북한 정부의 협조하에 평양시의 두 여학생을 다룬 <어떤 나라>(2004년), 월북미군을 다룬 <푸른 눈의 평양시민>(2006년)을 연달아 제작하였다.

2.3. 1967년~2009년

안타까운건 정치에 의해 심히 좌지우지되는 북한 체육의 특성상 66년의 전력이 오래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9]

1970년대는 그래도 한가닥 하던 북한의 기세가 남아있어서 아시아권에서는 나름 성적을 거뒀다. 주로 이 시기 북한은 아시안게임 축구 올림픽 축구에 집중하며 출전했는데, 1974년 아시안게임 4위, 1978년 아시안게임 공동 금메달[10] 등 나름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었다. 또한 1976년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해 개최국 캐나다를 제치고 8강까지 기록하는 등[11] 선전했다. 이 시기 프로축구가 없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당시 아마추어만 참가할 수 있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내보내면서 좋은 결과를 많이 얻던 시절이다. 서유럽과 남미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거의 프로 선수들이니 올림픽(지역예선 포함)에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를 내보냈고.

1980년대 들어서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고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본선에 진출한 남한에 크게 자극받아 북한도 월드컵, 아시안컵, 연령별 대회 등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려 노력한다. 1980 AFC 아시안컵 쿠웨이트 본선 대회에 사상 처음으로 진출하며 4위라는 성적을 냈고, 특히 준결승전에서 만난 남한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여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나 정해원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남한이 승리를 챙기고 결승에 진출한다. 이 경기는 아직도 한국 축구사의 명승부로 남아있는 경기다. 하지만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불미스런 폭력 사태를 일으키면서 출전 정지 중징계를 받게 되면서 이 기세는 어이없기 꺾였고, 90년대 초반까지 북한 축구는 거의 올스톱되다시피 했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은 다시 아시아권에서 다크호스로 올라오는데, 1990, 1994 월드컵 최종예선에 연거푸 진출했고, 1992 AFC 아시안컵 일본 대회에 12년만에 다시 본선에 진출했으며, 특히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선 대진운이 크긴 했으나 무려 준우승, 은메달을 따내며 동메달의 남한보다 높은 성적으로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를 마무리했다. 1993년 인도에서 개최하는 소규모 축구대회인 네루컵에서 우승하는 등 북한 축구는 이 당시 꽤나 만만히 볼 수 없던 전력이었다.

그러나 그 유명한 고난의 행군이 1994년부터 터지며 북한 축구계는 그야말로 초토화, 1998년 10월에 열린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참가 전까지 약 5년간의 모든 국제 축구대회에 불참한다. 영양이 필수적으로 중요한 체육계에 대기근은 정말 치명적이었고, 이 당시는 정말 축구가 그깟 공놀이가 된 시기기도 하다. 1995년에 1998년 월드컵도 기권했으며, 한일 월드컵도 기권했다. 약 10년이 지난 이후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북한은 다시 국제 축구계에 복귀한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 최종예선에 진출하면서 깜짝 성적을 내기도 했고, 2005년 남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는 김영준의 결승골로 일본에 1대0으로 이기고 이어진 남북전에서 무승부를 거두는 등 호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2004 아시안컵 예선 도중 또다시 징계를 먹고 2007년 아시안컵 예선 자체에 출전하지 못하는 등 매끄럽지 못한 북한의 행정은 여전했다.

2.4.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1 데스매치로 치러지는 1차예선에서 몽골을 가볍게 때려눕히고 3차예선에 올라왔고, 3차예선에서 대한민국과 한 조에 묶이더니 우리나라의 무재배 전문 감독님이 다른 팀은 거의 다 때려잡아놓고 북한한테만 두 번 다 신선한 0:0 무를 선사하며 남북이 동시에 최종예선에 진출하였다.

게다가 최종예선 마저 대한민국이랑 같이 묶였다. 아랍에미리트를 2승으로 때려잡고 사우디한테 1승 1무를 거뒀으며, 이란이 8경기 5무라는 평화축구로 자멸하면서 조 2위로 다이렉트 통과했다. 무려 44년만의 월드컵 복귀. 이 때 대한민국을 상대로 서울 원정은 잘만 와놓고 홈경기에선 태극기를 게양할 수 없다면서 3차예선과 최종예선 전부 중국에서 홈경기를 치렀는데, 다른 나라는 그런 거 없이 전부 김일성경기장으로 불러서 예선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홈깡패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최종예선 성적은 3승 3무 2패로 2패는 서울과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기록하였다.

그러나 조 추첨에서는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와 같이 묶이는 최악의 조편성이 나왔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 브라질전에서는 지윤남이 골을 터뜨리며 1:2 패배로 굉장히 선전하였으나, 2차전 상대이자 44년 만에 만난 포르투갈에게는 전반전까지 0:1로 잘 버티다가 후반전에서 갑자기 골먹쇼를 하며 6골을 내리 실점, 0:7로 대패하였다. 역대 월드컵마다 한 팀이 대량실점으로 참패하는 경기가 하나씩은 꼭 있었는데 남아공에서 딱 한번 터진 관광경기가 바로 이 게임이었다.[12] 이어서 코트디부아르에게도 0-3으로 지며 0승 3패 득실 -11로 본선 전체 최하위 월드컵 32등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당시 피파랭킹 105위 북한이 32강 본선에 진출하였다는 것만으로 선전했다.

더 무서운 것은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정일 포르투갈전을 실시간으로 봤다고 한다. 실제로 대회 직후 외신에서 북한 대표팀의 김정훈 감독이 감옥에 갔다는 내용이 보도되며 한동안 시끄러웠다.[13] 11월에 김정훈이 AFC 주관으로 카타르에서 열린 감독의 날 행사에 참석하며 오보로 판명나긴 했는데... 대북 소식통으로 유명한 ​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훈 감독이 잡혀간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귀국하자마자 감독은 바로 체포되어 로동교화소로 끌려갔고 선수들은 1주일간 특별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피파에서 북한 대표팀 아오지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북한에 해명을 요구하자, 당국이 부랴부랴 김정훈 감독을 석방하고 감독의 날 행사에 참여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훈은 카타르 행사 이후 본인과 가족들이 모두 사라졌고 현재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정훈의 아내가 남편을 구명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의 친어머니인 고용희 여사와의 친분을 언급했는데, 문제는 이 고용희 여사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백두혈통을 강조하는 김정은 입장에서 숨기고 싶은 역린을 들춘 셈이 된 것이다. #

타 종목의 북한 국가대표선수 출신 탈북자도 해당 선수들이 처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월드컵 이전까지 축구선수들은 선수촌에서 특식을 제공받으며 특별 대우를 받았으나 월드컵 이후 더이상 선수촌에서 볼 수 없었고, 처벌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에서 진다고 다 수용소에 끌려가지는 않지만 그렇게 대패했는데 처벌을 받지 않는 건 북한에서는 말이 안된다고. 당시 북한이 월드컵을 사상 최초로 생중계하였는데[14] 그만 대패하면서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오지같은 곳에 끌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로동교화 정도는 받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리명국이나 홍영조 등 몇몇 선수들은 이후에도 선수로 계속 뛰었기 때문에 적당히 처벌받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북한 소식통발 소식이 그렇듯 신뢰도는 그닥이므로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김 감독의 카타르 행사 참여까지다.

2.5. 남아공 월드컵 이후

2010 월드컵 진출과 동시에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도 진출권을 따놓았기 때문에 아시안컵도 진출하였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만났던 아랍에미리트와 이란, 그리고 이라크와 같이 묶였는데 공교롭게도 UAE을 제외한 세 나라가 부시가 지정한 악의 축이라 반미모임 드립이 돌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UAE와 비기고 이란·이라크에게는 지면서 단 한 골도 못 넣고 광탈했다. 놈은 악의 축 최약체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는 조 추첨 결과 일본,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15]과 같은 조가 되었다. 그리고 6경기 중 4경기를 치른 결과 타지키스탄 상대로 1승 거둔 거 빼고 일본[16]과 우즈베키스탄에 모두 져서 탈락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것도 약체 필리핀에 2-3으로 패하는 부진을 보였고 이 패배로 22년만에 역대 2번째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1990년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기록한 욘 안데르센이다. 다만, 선수 시절에는 활약했지만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마인츠의 분데스리가 1부 리그 승격을 이끈 것을 제외하면 미미하다.

이러한 원인은 북한대표팀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선수나 감독이나 현대축구의 흐름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당장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자국리그인 최상급축구련맹전 소속에 극소수의 재일 조선인 출신들이 J리그팀에서 뛰고 있다. 이렇다보니 북한도 최근 들어서 선수들을 유럽으로 진출시키며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치적 문제로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2016년 5월 미켈레 니콜레티 등 이탈리아 하원의원 2명이 북한 선수 최성혁과 세리에 A 팀인 피오렌티나간 계약에 관한 조사를 이탈리아 정부에 요구했다. 그 이유는 최성혁에게 지급된 돈이 북한에 흘러들어 가면 UN의 대북 제재 조치를 위반한 것 아니냐는 점과 최성혁의 활동 자유 등 인권이 보장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것이 부담이 되는지 피오렌티나 측은 최성혁과 계약을 취소했다.

북한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 선임은 남한( 아나톨리 비쇼베츠)보다 1년 더 빨랐는데 1994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헝가리 출신의 체르너이 팔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당시 북한은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까지 진출했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남한과 일본에 0-3으로 참패하며 6개 팀 중 최하위를 기록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2019 아시안컵 최종예선에서는 레바논에 홈에서 2-2로 비겼으나 원정에서 레바논에 0-5로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2연전을 모두 4-1로 대승하였고, 홍콩과의 최종전을 2-0으로 승리하며 조 2위로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 또 남한과 한 조가 되었다. 간만에 남한이 평양 원정을 갔으나 무관중, 무중계로 방침을 바꿨다.[17] 경기 결과는 0-0 무승부. 그러나 정작 남한 홈경기 일정이 다가오자 코로나를 핑계로 기권했고 남한 홈 경기는 취소되었다.

전세계적인 코로나 19 사태 기간동안 북한은 단 한차례도 A대표팀 경기를 치르지 않다가, 2023년 11월 이후 2026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부터 다시 국제 대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3.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1100><tablebgcolor=#ff1100> 파일: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1956년 ~ 현재
*
미상
파일:북한 국기.svg
1대
김군남
파일:북한 국기.svg
2대
명례현
파일:북한 국기.svg
3대
박두익
파일:북한 국기.svg
4대
박두석
파일:북한 국기.svg
5대
양성국
파일:북한 국기.svg
6대
한봉진
파일:북한 국기.svg
7대
박두석
파일:북한 국기.svg
8대
정영성
파일:북한 국기.svg
9대
박두익
파일:북한 국기.svg
10대
김정민
파일:북한 국기.svg
11대
명동찬
파일:북한 국기.svg
12대
홍현철
파일:북한 국기.svg
13대
체르너이
파일:헝가리 국기.svg
14대
문기남
파일:북한 국기.svg
15대
명동찬
파일:북한 국기.svg
16대
리정만
파일:북한 국기.svg
17대
윤정수
파일:북한 국기.svg
18대
한형일
파일:북한 국기.svg
19대
김정훈
파일:북한 국기.svg
20대
조동섭
파일:북한 국기.svg
21대
윤정수
파일:북한 국기.svg
22대
김창복
파일:북한 국기.svg
23대
안데르센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24대
박용일
파일:북한 국기.svg
25대
김영준
파일:북한 국기.svg
26대
윤정수
파일:북한 국기.svg
27대
신영남
파일:북한 국기.svg




* 는 재임했던 감독들이 확인되지 않는 기간(1956년~1964년)
}}}}}}}}}}}}}}} ||

4.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1100, #ff1100)"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1100><tablebgcolor=#ff1100> 파일: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11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리명국 120회 2007.6.24 2019.1.17
}}}}}}}}}}}}}}} ||

5. 현재 선수 명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1100><tablebgcolor=#ff1100> 파일: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스쿼드
}}} ||
{{{#!wiki style="color:#ff1100,#ffffff; margin: -0px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color:#000"
<rowcolor=#ffffff> 포지션 등번호 한글 성명 영문 성명 생년월일 출장 득점 클럽 비고
<colbgcolor=#ffffff,#0c2c84><colcolor=#000,#fff> GK 강주혁 Kang Ju-Hyok 1997년 5월 31일 2 0 홰불체육단
신대성 Sin Tae-song 2000년 5월 30일 0 0 4.25체육단
유광준 Yu Kwang-jun 2000년 11월 5일 1 0 려명체육단
DF 김경석 Kim Kyong-sok 2000년 2월 19일 0 0 선봉체육단
장국철 Jang Kuk-chol 1994년 2월 16일 64 5 홰불체육단 주장
정금성 Jong Kum-song 1997년 1월 24일 0 0 리명수체육단
최옥철 Choe Ok-chol 1998년 11월 11일 2 0 기관차체육단
김유성 Kim Yu-song 2003년 7월 18일 2 0 압록강체육단
강국철 Kang Kuk-chol 1999년 9월 29일 10 0 리명수체육단
최진남 Choe Jin-nam 1998년 11월 20일 1 0 려명체육단
MF 김범혁 Kim Pom-hyok 2002년 4월 15일 1 0 려명체육단
정일관 Jong Il-gwan 1992년 10월 30일 78 29 조선체육대학
리은철 Ri Un-chol 1995년 7월 13일 27 1 선봉체육단
백충성 Paek Chung-song 2002년 2월 25일 0 0 려명체육단
김국범 Kim Kuk-bom 1995년 2월 19일 12 0 려명체육단
계담 Kye Tam 2000년 10월 6일 0 0 려명체육단
김현 Kim Hyon 2000년 3월 6일 0 0 압록강체육단
김성혜 Kim Sung-hye 0 0 선봉체육단
문인주 Mun In-ju 1999년 8월 22일 0 0 FC 기후
FW 김국진 Kim Kuk-jin 2000년 10월 11일 0 0 기관차체육단
한광성 Han Kwang-song 1998년 9월 11일 10 1 4.25체육단
최주성 Choe Ju-song 1996년 1월 27일 6 0 압록강체육단
리일송 Ri Il-song 2004년 1월 14일 2 0 4.25체육단
리조국 Ri Jo-guk 2002년 5월 9일 0 0 려명체육단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 마지막 수정 일자: 2024년 3월 21일
}}}}}}}}} ||

6. 역대 전적

6.1. FIFA 월드컵

  •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58위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일제강점기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1930년 우루과이
광복 이전 ( 일제강점기)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1934년 이탈리아
파일:프랑스 국기.svg
1938년 프랑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파일:브라질 국기.svg
1950년 브라질
FIFA 비회원국
파일:스위스 국기.svg
1954년 스위스
파일:스웨덴 국기.svg
1958년 스웨덴
파일:칠레 국기.svg
1962년 칠레
불참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66년 잉글랜드
8강 8위 4 4 1 1 2 5 9
파일:멕시코 국기.svg
1970년 멕시코
기권
파일:독일 국기.svg
1974년 서독
본선 진출 실패[16개국]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78년 아르헨티나
기권
파일:스페인 국기.svg
1982년 스페인
본선 진출 실패[24개국]
파일:멕시코 국기.svg
1986년 멕시코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90년 이탈리아
파일:미국 국기.svg
1994년 미국
파일:프랑스 국기.svg
1998년 프랑스
불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2002년 한일
불참
파일:독일 국기.svg
2006년 독일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10년 남아공
조별리그 32위 0 3 0 0 3 1 12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4년 브라질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파일:러시아 국기.svg
2018년 러시아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2년 카타르
예선 도중 기권[22][23]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2026년 북미
? ? ? ? ? ? ? ? ?
파일:스페인 국기.svg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파일:모로코 국기.svg
2030년 월드컵
? ? ? ? ? ? ?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34년 사우디
? ? ? ? ? ? ? ? ?
합계 8강 1회 2/23[24] 4 7 1 1 5 6 21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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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적 1승 1무 5패, 승점 4점을 기록하여 월드컵 랭킹 58위에 올라있다. 승점이 같은 나라는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쿠바가 있지만 평균 점수[25]에서 쿠바 1.33(승점 4점 / 3경기), 슬로바키아 1.00(승점 4점 / 4경기), 슬로베니아 0.67(승점 4점 / 6경기), 북한 0.57(승점 4점 / 7경기)를 기록하여 순위가 같은 네 나라 중 순위가 가장 낮다. 따라서 북한은 월드컵 2라운드에 진출한 팀들 중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팀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으며, 굵게 표시된 나라는 월드컵에서 우승한 국가들이다.
이탈리아 : 1승(1966)
브라질 : 1패(2010)
러시아 : 1패(1966)
포르투갈 : 2패(1966, 2010)
칠레 : 1무(1966)
코트디부아르 : 1패(2010)

대륙별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유럽 : 1승 3패
남미 : 1무 1패
아프리카 : 1패

북한이 월드컵 전적에서 앞서있는 팀은 이탈리아 뿐이고, 호각세인 팀 역시 칠레 뿐이며, 브라질, 러시아,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에는 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포르투갈전 3:5 패이며, 최다실점 기록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32강 본선 조별리그 포르투갈전 0:7 패이다. 공교롭게도 두 경기 모두 포르투갈 대표팀을 만나 패했다.

다음 대회는 이스라엘의 참가에 반대하며 불참을 선언, 이후로도 월드컵에 뜨문뜨문 참가하며 세계와의 격차를 벌리며 다시 변방으로 떨어졌다. 1994년 최종예선에서는 처참히 발리며 꼴지로 추락한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 두 월드컵을 또다시 불참했다. 여기에 북한의 자존심상 참가할 수 없는, 남한에서 개최한 2002 월드컵이 껴있기도 했다.

2006년 월드컵 예선부터 다시 참여를 재개하여 2010년 월드컵때 사우디와 이란을 누르고 44년만에 32강 본선에 올랐고 또다시 수수께끼의 팀으로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게 했던 팀이다. 하지만 32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조 추첨 직전 이탈리아에선 북한과 다시 붙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할 만큼 관심을 많이 받았던 팀이었고, 실제로 뚜껑이 열리고 브라질을 상대로 1점차로 분투하면서 발목잡이 역할을 하나 싶었는데 다음 포르투갈전에서 후반전에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광탈. 동무들! 아오지 탄광으로 가자우! 실력 자체는 좋은 편이 아니다.

6.2. 올림픽

  • 프로축구선수 참가 금지 시절에는 프로가 없는 공산권 국가들은 올림픽대표=월드컵대표 라고 생각하면 된다.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아시아 지역예선 을 겸하는 대회인 AFC U-23 챔피언십 16개팀 본선에서 조별리그 3경기 동안 2무 1패를 하였으나 조 2, 3, 4위가 모두 2무 1패로 승점이 2점으로 같아서 다득점을 따져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8강에서 카타르에게 연장 접전 끝에 패하면서 결국 또다시 올림픽 진출에는 실패했다.

6.3. AFC 아시안컵

  •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18위
대회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1956년 홍콩
AFC 비회원국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1960년 대한민국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1964년 이스라엘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1968년 이란
파일:태국 국기(1917~2017).svg.png
1972년 태국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1976년 이란
본선 진출 확정 후 기권[26]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1980년 쿠웨이트
4위[27] 9 6 3 0 3 10 12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1984년 싱가포르
출전 금지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8년 카타르
본선 진출 실패[10개팀]
파일:일본 국기.svg
1992년 일본
조별리그 8위[29] 1 3 0 1 2 2 5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96년 UAE
불참
파일:레바논 국기.svg
2000년 레바논
본선 진출 실패[12개팀]
파일:중국 국기.svg
2004년 중국
본선 진출 실패[16개팀]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파일:태국 국기(1917~2017).svg.png 파일:베트남 국기.svg
2007년 아세안
출전 금지
파일:카타르 국기.svg
2011년 카타르
조별리그 12위 1 3 0 1 2 0 2
파일:호주 국기.svg
2015년 호주
조별리그 13위 0 3 0 0 3 2 7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19년 UAE
조별리그 24위 0 3 0 0 3 1 14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3년 카타르
예선 도중 기권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27년 사우디
합계 4위(1회) 5/19 11 18 3 2 13 15 40

6.4.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대회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파일:일본 국기.svg 2003년 불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년 결선리그 3위 3 1 1 1 1 2 4
파일:중국 국기.svg 2008년 결선리그 4위 3 0 2 1 3 5 2
파일:일본 국기.svg 2010년 본선 진출 실패[4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년
파일:중국 국기.svg 2015년 결선리그 3위 3 1 1 1 2 3 4
파일:일본 국기.svg 2017년 결선리그 4위 3 0 1 2 1 3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년 본선 진출 실패[4강]
파일:일본 국기.svg 2022년 불참
합계 3위(2회) 4/8 12 2 5 5 7 13 11

6.5. 아시안 게임

6.6. 역대 한국전 성적

2019년 10월 15일 기준 남한이 7승 9무 1패로 절대적으로 앞서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2승 7무를 기록하며 예전처럼 크게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유일한 패배는 예전 노태우 정권 때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좋아졌던 시기(이때는 북한의 우방이었던 사회주의 동구권이 차례로 무너져서 북한이 엄청나게 체재위협을 느끼던 시대였다. 한국으로 말하면 반대로 미국, 일본, 서유럽의 국가들이 공산화 된 것 같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에 펼쳐진 1990년 평양 원정 남북친선경기로, 1:1로 끝날 경기를 당시 북한 심판이 90분이 지난 뒤에도 계속 경기를 노골적으로 끌며 98분에(...) 북한의 PK를 선언하고, 결국 실점하여 1:2가 돼서야 바로 경기를 종료했다고 한다.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펼쳐진 1차전은 막판에는 한국이 역습을 하면 전혀 얼토당토 않게 오프사이드를 분다던지 중계진마저 그냥 해탈한 듯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처음부터 북한이 이기게 하려고 짜여진 경기였다. # 마지막 페널티킥도 전혀 페널티킥을 줄 장면도 아니었다.

이후 서울에서 펼쳐진 경기에서는 황선홍의 결승골로 남한이 1:0으로 승리했다. 당시 양 국가는 유니폼에 국기, 협회 휘장 등 팀을 상징하는 어떤 표시도 하지 않기로 합의하였고, 유니폼은 남한이 빨간색, 북한이 흰색으로 나섰다.

7. 연령별 대표팀

7.1. U-23 대표팀

7.1.1. AFC U-23 아시안컵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AFC U-23 챔피언십 대회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2014
조별리그 10위 4 3 1 1 1 3 2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2016
8강 8위 2 4 0 2 2 6 8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2018
조별리그 9위 4 3 1 1 1 3 4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2020
조별리그 12위 3 3 1 0 2 3 5
AFC U-23 아시안컵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2022
기권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2024
굵은 글씨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는 대회
합계 8강 (1회) 4/5[34] 13 13 3 4 6 15 19

7.2. U-20 대표팀

7.2.1. FIFA U-20 월드컵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파일:튀니지 국기.svg
1977년 튀니지
예선 탈락
파일:일본 국기.svg
1979년 일본
파일:호주 국기.svg
1981년 튀니지
파일:멕시코 국기.svg
1983년 멕시코
파일:소련 국기.svg
1985년 소련
파일:칠레 국기.svg
1987년 칠레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89년 사우디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1991년 포르투갈
파일:호주 국기.svg
1993년 호주
파일:카타르 국기.svg
1995년 카타르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97년 말레이시아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1999년 나이지리아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01년 아르헨티나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03년 아랍에미리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2005년 네덜란드
파일:캐나다 국기.svg
2007년 캐나다
조별리그 19위 2 3 0 2 1 2 3
파일:이집트 국기.svg
2009년 이집트
예선 탈락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2011년 콜롬비아
조별리그 21위 1 3 0 1 2 0 6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2013년 터키
예선 탈락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2015년 뉴질랜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년 대한민국
파일:폴란드 국기.svg
2019년 폴란드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23년 아르헨티나 [35]
합계 조별리그 (2회) 2/23[36] 3 6 0 3 3 2 9

7.2.2. AFC U-20 아시안컵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AFC youth 챔피언십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59 말레이시아
불참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60 말레이시아
파일:태국 국기.svg
1961 태국
파일:태국 국기.svg
1962 태국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63 말레이시아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1964 남베트남
파일:일본 국기.svg
1965 일본
파일:필리핀 국기.svg
1966 필리핀
파일:태국 국기.svg
1967 태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8 대한민국
파일:태국 국기.svg
1969 태국
파일:필리핀 국기.svg
1970 필리핀
파일:일본 국기.svg
1971 일본
파일:태국 국기.svg
1972 태국
파일:이란 국기.svg
1973 이란
파일:태국 국기.svg
1974 태국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1975 쿠웨이트
4강[37] 3위 13 7 4 1 2 9 6
파일:태국 국기.svg
1976 태국
우승 [38] 1위 10 7 2 4 1 6 4
파일:이란 국기.svg
1977 이란
불참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1978 방글라데시
4강[39] 3위 15 7 4 3 0 13 2
파일:태국 국기.svg
1980 태국
불참
파일:태국 국기.svg
1982 태국
참가 금지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85 UAE
기권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86 사우디
4강 3위 9 5 3 0 2 5 3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8 카타르
조별리그 6위 3 3 1 0 2 4 7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1990 인도네시아
준우승 2위 10 5 3 1 1 11 4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92 UAE
기권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1994 인도네시아
불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 대한민국
파일:태국 국기.svg
1998 태국
예선 탈락
파일:이란 국기.svg
2000 이란
불참
파일:카타르 국기.svg
2002 카타르
기권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2004 말레이시아
파일:인도 국기.svg
2006 인도
우승 1위 13 6 4 1 1 10 3
AFC U-19 챔피언십 대회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08 사우디[40]
8강 8위 5 4 1 2 1 6 3
파일:중국 국기.svg
2010 중국
우승 1위 15 6 5 0 1 12 3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12 UAE
조별리그 9위 4 3 1 1 1 6 3
파일:미얀마 국기.svg
2014 미얀마
준우승 2위 8 6 2 2 2 10 7
파일:바레인 국기.svg
2016 바레인
조별리그 16위 0 3 0 0 3 2 9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2018 인도네시아
조별리그 12위 3 3 1 0 2 4 7
AFC U-20 아시안컵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23 우즈베키스탄
불참
합계 우승 (2회) 13/41[41] 108 65 31 15 19 96 61

7.3. U-17 대표팀

7.3.1. FIFA U-17 월드컵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파일:중국 국기.svg
1985 중국
불참
파일:캐나다 국기.svg
1987 캐나다
예선 탈락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1989 스코틀랜드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91 이탈리아
파일:일본 국기.svg
1993 일본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1995 에콰도르
파일:이집트 국기.svg
1997 이집트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1999 뉴질랜드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
2001 트리니다드 토바고
불참
파일:핀란드 국기.svg
2003 핀란드
예선 탈락
파일:페루 국기.svg
2005 페루
8강 8위 4 4 1 1 2 7 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 대한민국
16강 15위 4 4 1 1 2 3 10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2009 나이지리아
실격
파일:멕시코 국기.svg
2011 멕시코
조별리그 18위 2 3 0 2 1 3 5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13 UAE
예선 탈락
파일:칠레 국기.svg
2015 칠레
16강 14위 4 4 1 1 2 3 7
파일:인도 국기.svg
2017 인도
조별리그 23위 0 3 0 0 3 0 5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9 브라질
예선 탈락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2023 인도네시아
불참
파일:국기.svg
2025 FIFA U-17 월드컵
합계 8강(1회) 5/19[42] 14 18 3 5 10 16 34

7.3.2. AFC U-17 아시안컵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AFC U-16 Championship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5 카타르
불참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6 카타르
4강 4위 3 5 0 3 2 4 7
파일:태국 국기.svg
1988 태국
조별리그 9위 1 4 0 1 3 4 10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90 아랍에미리트
예선 탈락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92 사우디아라비아
4강 4위 7 5 2 1 2 7 4
파일:카타르 국기.svg
1994 카타르
예선 탈락
파일:태국 국기.svg
1996 태국
파일:카타르 국기.svg
1998 카타르
조별리그 7위 6 4 2 0 2 5 6
파일:베트남 국기.svg
2000 베트남
불참
AFC U-17 Championship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02 아랍에미리트
예선 탈락
파일:일본 국기.svg
2004 일본
준우승 2위 8 6 2 2 2 6 4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2006 싱가포르
준우승 2위 9 5 3 0 2 14 9
AFC U-16 Championship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08 우즈베키스탄
실격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10 우즈베키스탄
우승 1위 16 6 5 1 0 13 3
파일:이란 국기.svg
2012 이란
조별리그 12위 3 3 1 0 2 2 7
파일:태국 국기.svg
2014 태국
우승 1위 11 6 3 2 1 12 6
파일:인도 국기.svg
2016 인도
4강 4위 8 5 2 2 1 9 6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2018 말레이시아
8강 5위 8 4 2 2 0 7 4
AFC U-17 아시안컵
파일:태국 국기.svg
2023 태국
불참
합계 우승 (2회) 11/19[43] 80 53 22 14 17 83 66

8. 여담

  • 2000년대 이후부터 남한과 비슷하게 유스 연령대에서 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대회에선 꾸준히 4강 내지 우승까지도 하고, 적어도 토너먼트 라운드까지는 가서 유스 월드컵 진출권도 자주 따간다. 17세 이하 대표팀은 2007년 남한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에 출전해서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근데 그 외로는 세계무대에서 성적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 딱히 특유의 전술이라 할만한 부분이 없으며 기회를 틈타 전원공격 후 전원수비라 할 수 있는 군대축구를 구사하며 선수 전반적으로 다혈질이다. 특히 일본과 만날 때 이 다혈질 축구는 극에 달하고 남한과의 대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 유스팀이 괜찮은 성적을 내는 이유는 북한 당국이 유망주를 대거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유학을 보내기 때문이다. 2017년 30여명의 북한 유망주가 유럽의 축구학교에 유학하고 있다고 보고됐으며, 이들이 제대로 성장해서 해외리그에 잘 정착한다면 북한 축구의 중흥을 이끌 수도 있다. 이미 한광성이나 최성혁과 같은 1998년생들이 세계 최고의 리그중의 하나인 세리에 A나 그 하부리그인 세리에 B에 진출해 있다가 강력한 대북제재로 인해서 현재는 모두 자국으로 떠났다.[44]
  • 북한이 유스 레벨에서 잘 하는 이유가 나이를 조작해서 오버에이지 플레이어를 내보내고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선수들 외모들이 많이 삭아보이기 때문. 실로 예전에 선수 연령을 속여서 징계를 받은 적도 있긴 하다.[45]
  •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빗대어 한국 웹상에서는 농담조로 남북한과의 경기에서 북한이 지면 "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간다"는 말을 하곤 한다. 당연히 아주 보내버리는 것은 아닌데 죄라고 해봐야 단순히 성적이 나쁘다고 수용소에서 험하게 고생시키는건 얘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재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노동에 투입된다는 증언도 있는데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대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46] 참패한 북한 대표팀이 귀국 즉시 교육농장에 보내져서 감자를 캐는 강제노동을 당했다고 한다. 어차피 선수 아니었으면 해야만 했던 노동이었을지도 물론 정치범들이나 범죄자들처럼 몇년씩 험하게 굴리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몇주 정도의 지옥훈련 수준이다. 에당초 북한에 축구선수가 많은 편도 아니어서 무자비로 수용소로 보내면 팀이 작살날수도 있다.
  • 매우 폐쇄적인 국가이다보니 매번 북한의 축구 대표팀에 대한 인적 정보를 찾기가 힘들다. 대회때마다 북한 선수 한두명은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데 이러한 찬사를 외국의 유명 선수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일명 북한의 ㅇㅇㅇ 시리즈. 예를 들자면, 압록바, 레반동무스키, 북제마, 반미스텔루이, 함흥민, 북폰, 저메인 대포동 등등이다. 노르웨이 출신 욘 안데르센 감독이 팀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한 대표팀 감독 시절 연봉은 10억 원 이상에 최고급 호텔을 숙소로 제공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북한 전반, 스포츠 분야에서 유일하게 개인 취향에 의해 스포츠화(축구화)를 선택해서 신을 수 있는 종목이다. 북한 실정상 쉽지 않은데 주로 중국의 스포츠용품점에서 공수한다고 한다.
  •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공격수였던 김명원을 골키퍼로 등록해 논란이 이어졌었다. 그러나 FIFA에서는 골키퍼로 등록된 김명원은 골키퍼로만 출전이 가능하다며 못을 박았고 이에 대해 북한 대표팀 측에서는 김명원이 원래는 골키퍼 출신이라며 골키퍼로 등록시켰다라며 엉뚱한 답변을 하면서 논란이 되기까지 했다.
  • 2015년 FIFA U-20 월드컵에서 헝가리, 브라질,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3전 전패에 1득점 12실점을 기록하며 같이 3전 전패당한 미얀마(2득점 13실점)에 골차이로 밀려 최하위인 24위로 마감했다.
  •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에서 유리한 대진을 받기 위해 고의로 패배한 사실이 드러났다. # 결국 2018 AFC U-19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를 박탈당했다.
  •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스스로 밝히는 공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종합팀'이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남한 기자가 북한이란 표현을 써서 질문하자 김정훈 감독이 "북한이란 나라는 없다."라며 질문의 내용을 무시하고 넘어갔다. 이에 일부 보수 언론은 북한이란 나라는 없다니 황당하다며 김정훈 감독과 북한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기자의 잘못이 맞다. 북한이란 단어는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 점거한 반국가단체라는 뜻이 포함된 단어이다.[47] 만일 김정훈 감독이 이 질문을 듣고 인터뷰에 응했다면 자신들이 북한이라는 단어에 동의한 것이 되어 북한에 돌아가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북한이란 단어가 들어간 질문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고 남한 기자가 시비를 걸러 간 것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인터뷰를 하러 간 것이라면 북한이란 단어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한편 팀이라는 단어도 북한에서도 쓴다.

    하지만 이후 정작 조선중앙방송이야말로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을 '남조선'도 아닌 '괴뢰'라고 표기하고 부른 것이 발견되어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생겼다. #
  • 북한 축구 대표팀의 역사를 보면, 심판을 폭행했다던지, 경기후 관중들이 상대팀 버스를 에워싸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던지, 대회중 기권을 선언한다든지 등등 피파나 afc 등에 징계를 받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여자축구 대표팀도 경기 후 심판을 폭행해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국제축구계에 문제아 수준 사실 북한 스포츠의 막나가는 행태는 비단 축구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 홈경기는 김일성경기장에서 하는데, 천연잔디가 아니라 인조잔디를 깐 경기장이다. 북한에도 릉라도5월1일경기장 등 천연잔디 구장이 있지만 홈어드밴티지를 극대화 하려고 하는지 월드컵 예선 등 중요한 경기는 김일성경기장에서 한다. 북한 홈팀의 일방적인 응원과 인조잔디구장 + 북한체재 특유의 분위기 등으로 외국선수들이 위축되는 것이 합쳐져 홈경기에서는 잘 지지 않는다.

9. 출신 인물

현재, K리그 부산 아이파크에서 뛰고있는 재일교포 출신 안병준이 있다.

10. 관련 문서


[1] 언론 표기에는 '신용남'이라는 표기가 다수이나, 북한 매체에서는 '신영남'으로 표기하기에 신영남이 맞다. [2] 1964 도쿄 올림픽 16개국 본선 진출권을 얻었으나 당시 북한올림픽위원회의 대회 전면 불참 선언으로 나가지 못했다. [3] 이 역사적인 대기록은 모두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달성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아시아에서 FIFA 월드컵 8강 이상의 기록은 한민족 대한민국과 북한만이 보유하고 있다. [4]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5]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6] 2010 남아공 월드컵. [7] 당시 북한이 남한보다는 약간 강했긴 하나 세계 최강 헝가리에 비빌 급은 못 되었다. [8] 당시 2라운드 [9] 이때나 지금이나 공산주의 국가들은 정치에 있어서 국가 정세도 당연하고 스포츠계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국제 스포츠계에선 당시엔 심하게 제재할때도 아니였다. [10] 이때 같이 금메달을 수상한 국가는 바로 대한민국이였다. 당시 규정상 승부차기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진기록이 나올 수 있었다. [11] 8강전 폴란드에게 5:0으로 대패했다. [12] 전 대회에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아르헨티나에 관광을 당했고(0:6) 그보다 더 전 대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삿포로에서 독일에게 떡실신을 당했다.(0:8) [13] 오죽하면 북한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2골을 넣은 티아구 멘데스가 경기가 끝난 이후에 " 북한 선수들이 끌려가는 게 매우 걱정되긴 하지만 우리도 코트디부아르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16강에 진출하려면 한 골이라도 더 넣야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득점을 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14] 이 때 북한에서 중계권을 구걸해 개막전 남아프리카 vs 메히꼬 경기를 틀어준 짤이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15] 원래 시리아였는데 시리아가 부정 선수 참가를 이유로 실격당해서 타지키스탄으로 변경. [16]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이 1-0으로 이기기는 했다. [17] 관중수용은 대회가 아닌 이상 코로나 19같은 특수한 경우와 양팀의 합의가 된 경우를 제외하면 전적으로 개최국의 권한이다. 중계의 경우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은 최종예선의 경우 AFC가 직접 관할하지만 그 전단계 예선까지는 개최국 축구협회(일반적으로 홈팀)이 가진다. 즉 최종예선이 아니라면 홈팀 국가가 중계방송 제작을 안할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16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22] 2차예선 진행 도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을 이유로 기권 [23] 이 때문에 애꿎은 투르크메니스탄이 북한을 3-1로 이긴 경기가 취소되어 그로 인해 어부지리로 지역예선에서 탈락하게 된 반면 레바논이 북한한테 0-2로 진 경기도 취소된 덕분에 투르크메니스탄이 나가 떨어진 자리로 들어와 레바논이 최종 예선에 합류하게 되었다. [24]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 [25] 승점/경기횟수를 나눈 점수 [26] 6개팀(6강) 본선 76아시안컵에 진출 확정되었으나, 북한은 기권하였고, 북한 기권 후 중국이 대신 76아시안컵 6개팀(6강) 본선에 진출하였고, 중국은 76아시안컵 3위를 기록했다. [27]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4위 [10개팀]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29] 이 대회 때는, 기존 10개국에서 본선 8개국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지역 예선 통과 후 8강 본선 92아시안컵이었다. [12개팀] 본선 2000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16개팀] 본선 2004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4강] 본선 동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4강] 본선 동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34] AfC U-23 아시안컵 본선 출전 비율 [35] 2021년 대회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취소 [36] FIFA U-20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 [37] 쿠웨이트와 공동 3위 [38] 이란과 공동 우승 [39] 쿠웨이트와 공동 3위 [40] 이 대회부터 3.4위전 폐지 [41] AfC U-20 아시안컵 본선 출전 비율 [42] FIFA U-17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 [43] AfC U-17 아시안컵 본선 출전 비율 [44] 이 때문에 북한의 대표적인 해외파이던 박광룡도 오랫동안 활동하던 스위스 리그를 떠나야만 했다. [45] 다른 종목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1990년대 초 북한의 체조 요정으로 불렸던 김광숙이 나이를 속인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고 사라진 사례가 있다. [46] 1994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과 남한에게 각각 0-3으로 연패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47] 남한으로 치면 '남조선'에 해당하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