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9:57:11

1976 몬트리올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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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e161f><colcolor=#fff>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
Jeux de la XXIe Olympiade™ Montréal 1976
Games of the XXI Olympiad™ Montreal 1976
파일:1976 몬트리올 올림픽 로고.svg
파일:1976 몬트리올 올림픽 공식 포스터.png
대회기간 1976년 7월 17일 ~ 8월 1일
개최국
[[캐나다|]][[틀:국기|]][[틀:국기|]] 퀘벡주 몬트리올[1]
마스코트 아미크 (Amik)
주제가 "Bienvenue à Montréal"
(Welcome to Montreal)
참가국 92개국
경기종목 21개 종목 (198개 세부 종목)
개회선언 엘리자베스 2세
캐나다 국왕
선수 선서 피에르 생장
심판 선서 모리스 포제
성화 점화 스테판 프레퐁텐, 샌드라 헨더슨
개·폐회식장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

1. 개요2. 개최 과정3. 특징4. 경기 종목5. 대한민국 선수단6. 주요국 메달 집계7. 마스코트

[clearfix]

1. 개요

Olympic Flame & Opening Ceremony
개회식
폐회식
당시 CBC의 소개 영상
1976년 7월 17일부터 8월 1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21회 하계올림픽.

모스크바를 제치고 캐나다에서 올림픽 개최권을 얻은 대회다. 전 대회처럼 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많이 삐걱거린 대회이기도 하다. 반면,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68혁명의 의제인 자유주의와 탈권위주의가 적극 반영된 대회로서, 개회식 중 선수입장시 기수가 개최국 국가원수에게 경례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선수단이 이전처럼 열병식 스타일이 아닌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대적 올림픽의 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늘날 올림픽에서 선수단이 군대처럼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만으로도 몬트리올 올림픽의 파급력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2. 개최 과정

1976년 하계올림픽 투표 결과
<rowcolor=#ffffff> 국가 도시 1차 2차
캐나다 몬트리올 25 41
소련 모스크바 28 28
미국 로스앤젤레스 17 -
기권 - 1
개최권을 획득했지만 이 뒤로도 순탄하지 못했다. 석유 파동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대회 개막일까지 주 경기장이 완공되지 못하고 개폐식 돔이 지어지지 못한 상태로 경기를 진행한다. 여기에 바로 직전 1972 뮌헨 올림픽 검은 9월단의 테러로 뮌헨 올림픽 참사가 일어나면서 대테러 대책에 기존에 책정해놨던 대회 보안 예산의 무려 40배가 넘는 돈을 써야했다. 막대한 재정 지출 때문에 사상 최대의 적자를 보았으며 이 후폭풍은 몬트리올 시를 파산 직전까지 끌고 갔다.

여기에는 캐나다의 고질적인 영어권 - 프랑스어권( 퀘벡주) 대립의식이 한몫 했다. 퀘벡은 지금도 심심하면 캐나다에서 분리독립하겠다는 동네인데, 원래 올림픽은 '국가'가 아닌 '도시'가 개최 주체여서 경기장 건설 등의 예산지출을 해당 도시에서 해야 하나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지 않게 지원해준다. 그러나 퀘벡 주의 몬트리올에서 올림픽을 개최하자 퀘벡 주를 제외한 중앙정부 및 타 주 정부가 완전히 무시했다. 이것이 몬트리올 시가 파산 직전까지 간 가장 큰 원인이다.[2] 결국 캐나다는 특별세를 걷는 등의 조치를 통해 30년 후(2006년)에야 몬트리올 대회의 적자를 겨우 메울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2년 후 캘거리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은 흑자를 내서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듯 했지만...

그리고 34년 후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똑같이 복수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도 10억달러의 부채가 있다고 하여[3] 캐나다 국민들은 그저 한숨만 쉬고있는 상황...

그래도 나라라도 많이 참가하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다. 대회를 준비하는 기간에 뉴질랜드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완전 추방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친선럭비경기를 개최하자, 아프리카 국가들이 분노하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뉴질랜드에 대한 제재조치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IOC에서는 이런 요구를 무시하고 뉴질랜드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격분한 아프리카의 26개 국가들이 이것은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행위라면서 올림픽 집단 보이콧을 결정하였다. 이때부터 정치적인 문제로 인한 보이콧이 계속 일어난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때는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문제삼으면서 집단 불참했고,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전 대회의 집단 불참에 대한 보복으로 이번엔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불참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전 대회에서 대거 불참했던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참가해 그나마 나아졌지만, 북한을 비롯한 6개 친북 국가들이 대회를 보이콧하였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한 보이콧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 열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 사라진다. 물론 그렇다고 정치적 보이콧 논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러시아의 성소수자 탄압 및 우크라이나 문제로 서방 측에서 꾸준히 보이콧 문제가 제기되었고, 실제로 서방의 주요 정치인들이 소치 올림픽 개막식 참가를 거부하는 등 소프트한 보이콧이 일어났었다. 2020 도쿄 올림픽의 경우에도 북한이 보이콧을 하였지만, 명목상으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감염 방지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 집단 수용소 문제 등을 들어 몇몇 서방 국가에서 보이콧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선수단만 대회에 참가하고 정부 대표단은 대회 현장에 파견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 수준에 그쳤다.

또한 이때까지도 중국 대만의 국호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이미 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캐나다는 대만이 중화민국으로 참가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정작 IOC는 IOC 회원국인 대만의 참가를 거부하는 주최국 캐나다의 막무가내 행동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버렸다. 결국 대만은 이 대회 참가를 포기하게 된다. 정작 중국 자체는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으로 철저히 작살나 참가하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해 캐나다 국민들 내부에서도 말이 꽤 있어 영국계 사람들은 프랑스계 정치인들 중에는 돈만 밝히는 이가 많다고 조롱했고(당시 총리 피에르 트뤼도는 프랑스계) 정작 퀘벡시 사람들은 몬트리올 정치인들 중에는 돈만 밝히는 이가 많다고 조롱하였다.

3. 특징

이 대회부터 올림픽 성화 아테네에서 개최지로 옮겨졌다. 하지만 처음한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불이 꺼진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물론 예비성화가 있어서 그것으로 복구했다.

또한 이 대회부터 군대 열병식 스타일의 선수입장이 폐지되었다.[4] 1972년 뮌헨 올림픽 입장식과 비교해보면 4년사이에 천지개벽한 일. 다만 일부 국가(영국, 일본 등)는 이전과 같이 입장하면서 경례를 했다.

올림픽에서는 대통령 등 개최국 국가원수가 개회 선언을 하는것이 관례인데, 캐나다의 국가원수는 캐나다 국왕이므로 엘리자베스 2세가 개회선언을 했다. 또한 몬트리올이 있는 퀘벡이 프랑스어권이라 모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했다. 캐나다에서 열린 다른 올림픽에는 캐나다 총독이 와서 개회연설(88 캘거리 동계-장 소베, 2010 밴쿠버 동계-미카엘 장)을 했는데 이는 캐나다 국왕의 대리인 자격으로 하는 것이다.

파일:gettyimages-81457721-612x612.jpg
개막식 입장은 프랑스어 알파벳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나라 소개는 프랑스어와 영어 순서대로 했다. 프랑스어 'Corée'의 대한민국은 25번째로 입장했다.

본격적인 캐나다의 홈그라운드 악운이 슬슬 생겨난 대회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서 캐나다는 은메달 5개와 동메달 6개를 획득하였지만 금메달을 획득에는 실패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192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서 스위스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후로 최초로 개최국이 금메달을 따지 못한 사례가 되었다. 게다가 여기서 끝난게 아니라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도 노골드를 따는 최대의 굴욕을 얻었다.[5]

농구와 핸드볼, 조정에서 여자부 경기가 추가되었다.

승마 종목에서 영국 프린세스 로열 앤 공주가 참가하였다. 여자선수는 성별감정을 받은 뒤에 참가해야 되었지만 프린세스 로열 앤은 특별히 그런 절차 없이 승마종목에 참가할 수 있었다. [6]

루마니아의 체조선수인 나디아 코마네치는 14살의 나이로 올림픽에 출전하여 10점 만점의 연기를 7개나 선보이며 대회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게 된다. 그리고 그전부터 강국이었던 소련도 한국계 체조선수인 넬리 킴 3관왕을 하여 역시 나디아 코마네치와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고..

남자 단거리육상에서는 카리브해의 선풍이 불었다.

인구가 2,000만명도 안되는 작은 나라 동독 미국보다 더 많은 40개의 금메달을 쓸어가는 위엄을 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총 메달수로는 미국보다 딸리긴 하였지만 금메달 수로 따지면 소련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10,000m 종목에서 평균 25분의 기록이 나오는데 아이티의 찰스 올레무스(Charles Olemus, 1947~)의 42분 11초라는 막장기록이 나온 대회이기도 하다. 해당 선수는 전문 선수가 아닌 공무원이었는데 "서류정리 잘했다는" 이유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마라톤에서 카나쿠리 시조의 54년이 걸린 기록이 있지만 그거야 탈진에, 손발이 안맞아서 생긴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하지만 이건 뭐... 올레무스가 들어올 때 다른 선수들은 이미 탈의까지 다 끝났다고 한다.[7]

중거리 육상은 전통적으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영어권 국가 선수들이 강세를 보여 왔지만 이 대회에서 쿠바 알베르토 후안토레나가 남자 8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비영어권 국가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

후에 제9대 IOC 위원장을 역임하는 토마스 바흐는 이 대회에 펜싱 종목에 출전해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4. 경기 종목

5. 대한민국 선수단

  •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 22명, 선수 50명 참가[8]
    • 레슬링: 고진원, 김해명, 김화경, 백승현, 안한영, 양정모, 유재권, 이인창, 전해섭, 정윤옥, 최경수
    • 배구: 남자( 강만수, 김봉건, 김충한, 박기원, 이선구, 이선원, 이용관, 이인, 이춘표, 임호담, 정문경, 조재학) 여자(마금자, 박미금, 백명선, 변경자, 유경화, 유정혜, 윤영내, 이순복, 이순옥, 장혜숙, 정순옥, 조혜정)
    • 복싱: 김정철, 김주석, 박찬희, 최충일, 황철순
    • 사격: 박도근, 박종길, 이균, 이승균, 최충석
    • 유도: 박영철, 이창선, 장은경, 조재기
  • 대한민국 참가 성적 :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 획득. 종합순위 19위.
    • 금메달 : 레슬링(자유형 페더급) 양정모
    • 은메달 : 유도(라이트급) 장은경
    • 동메달 : 레슬링(자유형 플라이급) 전해섭
    • 동메달 : 여자 배구
    • 동메달 : 유도(무제한급) 조재기
    • 동메달 : 유도(미들급) 박영철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8102301382530003600-001.jpg

한국의 종합 성적은 금 1개, 은 1개, 동 4개로 종합 19위. 특히 레슬링 종목에 출전한 양정모는 이 대회에서 한국 스포츠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9][10] 즉, 올림픽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연주된 첫 대회라는 얘기. 공교롭게도 한국이 태극기를 앞세우며 첫 참가한 1948 런던 올림픽 이래 이 대회가 여덟 번째 참가였는데, 여덟 번째 도전 끝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칠전팔기라는 사자성어가 딱 맞아 떨어진다.

그 외에는 유도의 장은경[11]이 은메달을, 레슬링의 전해섭과 유도의 조재기[12], 박영철이 각각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또한 여자 배구 대표팀은 동메달을 따내 구기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이자 여자 종목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따냈다.[13] 동시에 체급 종목 이외의 종목에서 따낸 첫 메달이자 첫 단체종목 메달이기도 하다.

이후 한국 대표팀이 한 차례 불참한 뒤에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종합 순위 10위권을 유지하면서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나게 된 것을 보면, 이 대회에서 첫 금메달이 나온 것은 그야말로 한국 대표팀에게 그동안 막혀있던 혈이 뚫린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6. 주요국 메달 집계

<rowcolor=#ffffff> 순위 국기 국가 메달 합계
1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49 41 35 125
2 파일:동독 국기.svg 동독 40 25 25 90
3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34 35 25 94
4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10 12 17 39
5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9 6 10 25
6 파일:폴란드 국기(1928–1980).svg 폴란드 7 6 13 26
7 파일: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국기(1971–1990).svg 불가리아 6 9 7 22
8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6 4 3 13
9 파일: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svg 루마니아 4 9 14 27
10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4 5 13 22
19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1 1 4 6

7. 마스코트

  • 대회 마스코트는 아미크(Amik). 비버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14] 물론 로드킬 경고 사인판 같다, 죽은 동물 같다는 혹평이 있어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tumblr_lfqnfkvD6j1qgdxy9o1_400.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d859e03f47ce0c4719ce135c667b3957.jpg


[1] 몬트리올 이외의 지역에서도 일부 종목이 개최되었는데 그 지역중에 속해있던게 수도 오타와. 그러니 수도에서 열린 대회는 아니지만 수도에도 올림픽 경기장은 있는.... [2]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의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에 홈 구장인 스타드 올랭피크를 거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경기장을 운영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건설된 경기장을 1년 내내 어떻게든 활용이라도 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프랑스어권 캐나다에서 인기없는 야구 구단의 홈 구장으로 활용됐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3] 게다가 이 부채는 IOC같은 국제 연맹 등에서 지원 받고도 모자란 금액들이라고 한다. 몬트리올 때도 빚 때문에 개최 반대가 상당히 심했는데... [4] 이전까지는 모든 선수들이 타이밍에 맞춰 일제히 경례를 하거나(남자 선수들은 모자를 벗어서 가슴팍에 가져다 대는 국기에 대한 경례 자세, 여자 선수들은 관중석 바라보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5] 그러다가 22년이 지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야 한방에 보상받아 역대 최고 금메달 개수로 1위에 등극하게 된다. [6] 사실 승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올림픽 종목에서 남녀가 대등하게 겨루는 유일한 종목이 승마이다( 요트의 일부 세부 종목도 성 구분을 하지 않지만 모든 세부 종목을 성 구분 없이 하는 것은 승마뿐이다). [7] 1등과는 14분, 뒤에서 2등과는 8.5분이나 뒤쳐졌다고... [8] 출처 국제스포츠정보센터 [9] 양정모 선수의 고향이 부산광역시 경상도 및 부산 첫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10] 또한 양정모 선수의 금메달 수상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대회 당시 미필이었던 양정모 선수는 해당 대회에서 따낸 금메달 덕분에 예술체육요원으로의 편입이라는 병역특례를 얻게 되었는데, 이는 해당 제도가 1973년에 제정된 이후에 처음으로 혜택을 받은 체육인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11] 이름만 보면 여성 선수로 착각할 수 있겠는데, 남성 선수다. 이때까지만해도 여자 유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었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해당 인물은 경기도 의정부시 출신이고, 이후 유도 국가대표팀 감독, 용인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1996년 5월 12일에 급성 심장질환으로 사망. [12] 1984년까지 올림픽 유도는 체급별 경기뿐만 아니라 체중과 관계없이 참가할 수 있는 무제한급 경기도 있었다. 조재기는 자기 체급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후 삭발하고 무제한급 경기에 참가하여 3위를 했다. [13] 여자 배구 대표팀 멤버 중 윤영내는 2004년 사망하였다. 여성 개인 종목의 최초의 메달은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나왔다. 금메달리스트 서향순과 동메달리스트 김진호가 그 주인공이다. [14] '아미크'는 캐나다 동부 원주민 언어인 오지브웨(Ojibwe) 어로 '비버'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