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획차량 및 개조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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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 독일 국방군/차량, 퀴벨바겐, 슈빔바겐, 슈타이어 1500A, Büssing-NAG T500, Büssing-NAG G31, Büssing-NAG L4500, 오펠 블리츠, 포드 B3000S, V3000S, V3000A, 보르크바르트 B3000, 메르세데스-벤츠 G5, 메르세데스-벤츠 L1500, 메르세데스-벤츠 L3000, 메르세데스-벤츠 LG3000, 메르세데스-벤츠 L4500, 메르세데스-벤츠 L6500, 크루프 프로체, 타트라 T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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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독일 기갑 병기의 역사와 루머 | |
※ 당시 독일은 고질적인 무기부족, 점령국가의 치안을 이유로 기존의 노획 전차 및 차량(Beutepanzer)에 새로운 제식명을 붙여 사용했다. | ||
※둘러보기 :
나치독일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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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zerkampfwagen
독일 국방군 전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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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zerkampfwagen VI "Tiger" |
1. 개요2. 제원3. 표기법4. 개발사5. 성능6. 형식7. 파생형
7.1. 나치 독일
8. 실전9.
운용국10. 종전 후11. 티거피벨(교범)12.
미디어13. 모형14. 참고문헌15. 둘러보기7.1.1. 프로토타입 경합 모델
7.2. 소련7.1.1.1.
VK 45.01(P)7.1.1.2. VK 45.01(H) H2
7.1.2. 기술 기반 파생형7.1.3. 무장 교체 파생형7.1.4. 장비 추가 파생형7.1.5. 비무장 파생형7.1.5.1. 베르게티거- 라둥스리거 티거(Bergetiger- Ladungslegertiger)
7.2.1. T-VI-100
[clearfix]
1. 개요
|
|
현존하는 유일한 동태보존 티거인 티거 H1형 131호차의 기동 영상 |
우리 전차병들은 티거 전차의 성능에 완벽히 만족했으며 우리 보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 전차를 가지고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의 힘겨운 방어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평화를 누리는 티거 전차병 출신이라면 마땅히 이 '명품 전차'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 오토 카리우스 중위, 자서전 '진흙 속의 호랑이' 中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개발하고 운용한
중전차. 정식 명칭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1 (판저캄프바겐 젝스 티거H1/6호 전차 H1형)이었으나 1943년 3월 대대적인 개량을 거친 티거들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E[1] (6호 전차 E형)으로 명명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식 명칭보다는 Tiger I[2], 티거(타이거), 곧
호랑이라는 별칭으로 불렀고 1944년 2월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정식명칭에 Tiger가 들어가서 Panzerkampfwagen Tiger Ausf. E가 됐다.- 오토 카리우스 중위, 자서전 '진흙 속의 호랑이' 中
형식번호상 6호 전차라곤 하지만 5호 전차 판터보다도 앞서 개발되고 배치됐기에 대전 후기에 대세를 탄 경사장갑이 아니라 전통적인 대전 초기 독일군 전차의 특징인 수직방향 장갑을 채택하고 있다.[3]
티거는 4호 전차와 마찬가지로 보기륜이 8쌍이지만 보기륜을 일렬로 나열한 4호 전차와는 달리 보기륜을 서로 겹쳐서 만들었다. 그 결과 같은 공간과 같은 갯수임에도 티거 전차는 4호 전차에 비해서 보기륜이 커졌다.
|
1943년 1월 모스크바 고리키 공원에 전시된 극초기형 티거를 살피는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
하지만 티거의 진가가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42년 12월 20일, 튀니지의 레조 디 칼라브리아 항구에 도착하여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된 티거를 장비한 1942년 5월에 창설된 제501중전차대대는 이미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이 밀리는 상황에서 부대 자체도 티거를 완편 장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6] 11월 8일에 알제리로 상륙한 미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고 이후 3월 13일에 추가로 지원온 504중전차대대 1중대가 합류되면서 5월 17일까지 150여 대의 미군 전차를 격파하더니 카세린 전투에서 미1기갑사단을 격파하며 열 대의 피해만 입는 대활약을 펼쳤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항복할 때까지 티거는 총 일곱 대의 전투손실을 입었으며 그동안 300대가 넘는 영연방군과 미군의 전차를 격파했다.[7] 티거의 볼썽사나운 데뷔전을 기록했던 502중전차대대는 1943년 말부터 계속된 레닌그라드를 해방시키려는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독일 중전차 대대 중에서도 특출난 활약으로 수백 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 버리며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다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선 중대 단위로 투입된 티거가 하르코프 북방에서 펼쳐진 소련군 기갑부대의 반격을 분쇄해 내며 티거의 위력을 톡톡히 보였고[8] 여기서 티거는 설원에서의 기동전까지 수행해 내는 능력을 보였다. 한 예로 이 무렵 티거 두 대가 T-34 전차 수십여 대와 교전하여 16대를 격파하자 나머지 소련 전차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을 추격하여 57대를 추가로 격파했다.
그리고 전쟁 중반기 이후 각 전선의 독일군이 패퇴하던 무렵에도 노련한 전차병의 경험과 맞물려 다대한 전과를 기록했다.
티거는 대전기간 내내 우수한 방호력과 화력, 전술기동력으로 승무원들을 지켜주며 무수히 많은 전차 에이스들을 배출했다. 쿠르트 크니스펠 최소 168대 이상 격파[9], 오토 카리우스 최소 150대 이상 격파, 요하네스 뵐터 139~144대 격파[10], 미하엘 비트만 138대 격파, 알베르트 케르셔[11] 최소 100대 이상 격파 등, 티거는 100대를 넘는 격파수를 찍은 에이스를 14명 이상 배출했다.
보다 많은 티거 에이스들의 기록은 이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티거가 무적의 전차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연합군도 티거의 유명세만큼이나 대응책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서부전선에서는 M4셔먼의 76mm HVAP탄은 논외로 치더라도[12], 76mm M62 피모철갑탄이나 M79 경심철갑탄에는 900야드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면 관통될 위험이 있었고, 측면이 노출될 경우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뚫릴 위험이 높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90mm 대전차포 혹은 그것을 장비한 M36 GMC는 원거리에서도 17파운더보다 더 정확하고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90mm를 장착한 진짜 전차인 M26 퍼싱은 1945년에 남은 티거를 격파했다. 영국의 경우 17 파운더 대전차포나 그것을 장비한 셔먼 파이어플라이 경우는 명중률로 까이는 APDS 말고도 그럭저럭 쓸 만한 명중률을 보인 APCBC탄으로도 멀리서 티거를 충분히 격파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동부전선으로 가면 SU-85와 T-34-85의 85mm APCR이 근거리에서 티거의 정면을 관통 할 수 있었고 IS-2, ISU-122의 122mm는 중거리에서, SU-100의 100mm는 장거리에서도 티거를 잡을 수 있었다. SU-152, ISU-152의 주포이며 일반 견인포로도 사용된 152mm ML-20은 실전에서 맞추기는 어렵지만 명중만 시킬 수 있다면 곡사포의 무지막지한 고폭탄의 위력 때문에 티거의 차체도 뭉개트릴 수 있다.[13] 더불어 운용하는 지휘관이나 승무원이 미숙한 판단을 내릴 경우 502중전차대대의 볼썽사나운 데뷔전만 되풀이될 수 있음은 덤이다.[14] 물론 독일은 이 시점에서는 더 우수한 방어력의 티거 II나 판터로 생산라인을 변경하고 있었다.
티거의 자세한 내·외부 모습을 보고 싶다면 보빙턴 전차 박물관의 131호 차량에 대한 시리즈가 참고할 만하다. 인트로 외부 정비 내부(차체) 내부(포탑) 영상이 상당히 알차고, 특히 쉽게 보기 힘든 티거의 자세한 내부 모습과 각종 세세한 디테일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시리즈이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보다 보면 정말 세세한 부분에서 신경을 많이 쓴 전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제원
6호 전차 티거 제원 | |||
{{{#!folding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484848><colcolor=white> 제식명 |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1/E | |
형식번호 | Sd.Kfz. 181 | ||
전체길이 | 8.24m | ||
차체길이 | 6.20m | ||
전체너비 | 3.73m | ||
전체높이 | 2.86m | ||
주포높이 | 2.19m | ||
전비중량 | 56.9t | ||
탑승인원 | 5명(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무전수) | ||
엔진 | 초기형: 마이바흐-HL210 P45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 (669.5 Hp) | ||
중, 후기형: 마이바흐- HL230 P45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 (721.0Hp) | |||
엔진출력 - 회전수 | 700HP - 3000rpm | ||
600HP - 2500rpm | |||
배기량 | HL210: 21,000cc | ||
HL230: 23,000cc | |||
연료적재량 | 534L | ||
연료소비량 | 도로 기준 535L / 100Km(0.187km/L) | ||
최고속력 |
45km/h(도로) 20km/h(야지) |
||
항속거리 | 100km | ||
중량당 마력 | 12.3Ps/t | ||
현가장치 | 토션 바 | ||
변속기 |
Olvar 401216 (전진8단 후진4단) |
||
조향장치 / 구동륜 위치 | 메리트 마이바흐 / 전방 | ||
선회반경 | 3.44m | ||
무한궤도 폭 / 매수 | 72.5cm / 좌,우 각 96매 | ||
접지길이 / 접지압력 | 3.51m / 1.04Kg/㎠ | ||
초호능력 | 2.30m | ||
초월능력 | 79cm | ||
등판능력 | 35도 | ||
도하능력 | 1.20m | ||
주포조준장치 | TZF 9b(2.5배율) / TZF 9c (2.5 / 5배율 선택식) | ||
포탑회전방식 | 수동 및 유압겸용 | ||
무장 | 36식 56구경장 8,8cm 전차포 ×1 (92발) | ||
7.92mm 기관총 MG34 ×2 (4,200발)[15] | |||
9mm 기관단총 MP40 ×1 (전차병 휴대용) | |||
장갑 | 차체 전면 상부 102mm / 9도 | ||
차체 정면 중부 62mm / 80도 | |||
차체 정면 하부 102mm / 24도 | |||
차체 측면 상부 82mm | |||
차체 측면 하부 62mm | |||
차체 후면 82mm / 8도 | |||
차체 상면 26mm | |||
차체 바닥 26mm | |||
포방패 90~150mm | |||
포탑 전면 100mm / 8도 | |||
포탑 측면 82mm | |||
포탑 후면 82mm | |||
포탑 상면 26mm / 81도 ~ 90도[16] | |||
큐폴라 50~80mm | |||
가격 |
초기형 800000라이히스마르크[17] 중기형 이후 250700라이히스마르크 현재 시세 알 수 없음[18] |
||
생산량 | 약 1,350대 |
3. 표기법
원어 발음은 티이거에 근접하지만 한글의 외래어 표기법상 장음 표기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티거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긴 하다.[19] 정확히 하자면 티거와 티이거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20]연합군에서는 영어 발음을 따서 타이거 탱크라 불렀고, 한국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영어 발음인 '타이거'로 많이 불리다가 1991년 등장한 호비스트에서는 오리지널 독일어 발음이라면서 '티이거'라고 불렀다. '티이거' 표기는 호비스트 측과 분쟁으로 갈라진 사람들이 만든 책인 모델러2000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6년 호비스트에서는 표기법을 '티거'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카데미과학에서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자사의 해당 전차 모형 상품명에 타이거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그리하여 2010년대 이후에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타이거', '티이거', '티거' 3가지 표기가 쓰인다.
4. 개발사
티거 개발의 시초는 193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5년 7월 쿠머스도르프 기갑훈련 종료 후 결과 분석에서 15톤급 주력전차, 20톤급 지원용 중형전차, 30톤급 적 전선 돌파용 중전차의 개발요구가 제시되었는데 이 중 15톤급 주력전차 계획안은 3호 전차, 20톤급 중형전차 계획안은 4호 전차, 그리고 마지막 30톤급 중전차 계획안이 바로 티거의 개발 프로젝트가 된다.처음 제시된 30톤급 중전차 개발 계획은 DW(Durchbruchswagen, 두어히부룩스바겐: 전선 돌파차량) 계획이란 이름으로,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3호와 4호로는 접근 자체가 어려운 요새화된 방어선에 두터운 방어 장갑으로 둘러친 견고한 방어력을 기반으로 적의 십자 포화를 맞으면서 밀고 들어가 진격로를 개척하는, 중전차로서의 개념이 처음으로 제시된 프로젝트였으며 1939년 초 VK 30.01라는 이름을 받았으나, 화력과 장갑의 부족으로 같은 해 새로이 VK 65.01 설계와 80톤급 '포전차'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940년 프랑스 전역의 전훈을 받아들여 두 프로젝트가 모두 폐기되고 대신 '포전차'의 10,5cm용 포탑을 경량화하여 장갑을 증강한 VK 30.01 차체에 올리는 VK 36.01 계획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0,5cm 주포는 본디 곡사포로 대전차화력은 의심스러웠으며 이에 게라트 725 7,5cm 구경감소포의 탑재를 고려했다.
동시기, 독자적으로 VK 30.01 설계에 참여한 포르쉐사는 1941년 8,8cm 주포를 탑재한 VK 30.01 (P)를 완성시키고 성공적으로 시험운행했다. 두 차량은 차기 중전차 후보를 놓고 실질적으로 경합하는 처지가 됐는데, 1941년 5월 히틀러가 구경감소포 탑재에 딱지를 놓으면서 일단 포르쉐 사의 손을 들어주는 한편 양사에 현 설계의 장갑을 늘리도록 주문하면서 45톤급 중전차 VK 45.01의 설계를 놓고 양사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바르바로사 작전과 모스크바 공방전의 전훈에 따라 VK 45.01의 최종 설계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이 반영되었다.
- 요새화된 소련군의 전선 돌파를 위하여 ZiS-3 대전차포에 대하여 전방위 지근거리에서 생존 가능한 방어력을 확보할 것.[21]
- KV-1, T-34 전차는 물론이고 콘크리트 벙커도 일격에 격파할 수 있도록 8,8cm 대공포를 올릴 것.[22]
- 모스크바의 눈밭과 열악한 소련의 도로 사정을 고려하여 접지압 분산에 충분히 신경쓸 것.
- 45톤의 중량은 독일 공병의 표준 부교 가설능력이나 유럽의 일반적인 교량 제한 하중을 적지 않게 초과하므로 수심 4m의 도하 능력을 갖출 것.
결국 1942년 4월 20일 히틀러의 생일을 최종 기한으로 양사의 시제품의 경합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때의 시제품 개발 일정은 매우 가혹했던지라 헨셸 사는 도저히 무리라고 탄원했고 그 결과 포탑은 포르셰 사에서 설계한 것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으로 차체만 경합 테스트 하게 된다. 포르셰 사 역시 기차역에서 최종 조립을 할 정도로 준비는 촉박하게 진행되었다. 경합이 시작되고 헨셸 사의 VK 45.01 (H)는 주행 중 엔진에 화재가 일어났다. 반면 포르셰의 VK 45.01(P)의 경우도 널리 알려진 문제였던 야지 기동은 성공했지만 오히려 도로 주행에서 고장났다고 한다. 하중 분배에 실패한 VK 45.01(P)와 비교하여 VK 45.01 (H)는 탁월한 조향능력과 험지 기동 능력을 선보이며 최종적으로 군부는 헨셸사의 VK 45.01 (H)에 손을 들어주었다. 독일어 위키피디아의 최신 갱신 내용에 따르면 포르셰 박사는 히틀러에게 양사의 테스트가 박빙이었고 하이브리드 기관의 완성을 장담하여 양사의 프로젝트를 모두 양산하자고 히틀러에게 건의하고 히틀러는 하이브리드 기관의 완성까지 3개월을 주고 동시에 여름 안으로 헨셸 사에 45대, 포르셰 사에 90대의 양산을 명령했다고 한다.[23] 이와는 다르게 워게이밍의 문서에 따르면 히틀러는 전차가 급히 필요했으므로 양사 모두 양산하라 명령했다고 한다. 포르셰 박사의 하이브리드 파워팩이 당면한 결점들은 끝없이 평평한 초원과 사막이 이어지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사막환경에서의 내연기관은 공기 흡기시 모래 유입으로 인하여 고장이 심할 수 있는 반면 모터 기관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기대하여 북아프리카 전선은 포르셰 사의 티거를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포르셰 사의 티거는 양산 납기였던 9월까지도 하이브리드 기관 안정화에 실패하여 10월 중 알베르트 슈페어가 재심사 후 발주를 취소한다. 덩달아 준비 중이던 3개 대대의 무장을 헨셸 사의 티거가 홀로 도맡아야 했으므로 초창기 중전차대대들은 궁여지책으로 3호 전차 N형을 혼성편성하게 된다.
VK 45.01의 개발도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주포 탑재 문제가 이유였다. 대공포를 전차포로 전용한 8,8cm 주포는 당시로서는 독일군이 보유한 대전차 화기 중에서도 손꼽히는 관통력을 자랑했지만, 독일군이 원하는 수준은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라인메탈 사에선 7,5cm 장포신 전차포를 개발 중이었고, 독일군 상층부는 이 주포에 눈을 돌려 티거에 탑재할 계획을 세운다. 7,5cm 주포에 맞춘 새로운 포탑도 설계했다.
이러한 선택엔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개발 당시 8,8cm 56구경장 포와 7,5cm 70구경장 포는 관통력 차이가 거의 없었던데다[24] 7,5cm은 구경이 작기 때문에 더 많은 탄약을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행양산분에만 8,8cm 주포를 탑재하고 이후 본격적인 양산형에는 새로이 설계한 라인메탈 포탑과 7,5cm 주포를 탑재하여 출고하기로 계획하기에 이르나 8,8cm 주포용의 신형 철갑탄이 개발돼 상기한 관통력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포/포탑 교체안은 없었던 것이 된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VK45.01은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저 70구경장 7,5cm주포는 후에 판터의 주포가 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티거는 당초 계획이었던 45톤에서 크게 벗어난 57톤의 무게를 갖추게 되었다.
5. 성능
|
티거의 내부 구조도 |
5.1. 방호력
차체 전면 102mm, 포탑 전면 120mm, 측면과 후면 80mm, 차체 측면 하부 60mm, 상하 장갑은 초기형 25mm, 후기형 40mm의 장갑을 골고루 둘렀으며 압연 강판을 교차로 끼워 용접하여 장갑이 쉽게 깨지는 일이 없었다. 영국군은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한 티거의 차대로 실험한 결과 티거의 장갑은 동급의 영국산 장갑보다 1~7%가량 우수하다고 판단했다.허나 티거의 상자 같은 수직형 장갑은 티거의 방호력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는 여전히 경사 장갑의 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독일 육군 수뇌부의 실책이었다. 월드 오브 탱크 기술자문 니콜라스 모런에 따르면 당시 독일 설계자들은 10도의 경사각과 변속기 쪽 급경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하며[25], 실제로 티거 전면 장갑은 102mm 10도, 4호 전차는 50mm 10도, 3호 전차는 50mm 12도 장갑이다.
오토 카리우스의 자서전인 진흙 속의 호랑이를 보면 티거가 실전 배치될 때 수령하러 간 카리우스가 생각하길 전쟁 전에 소련에 독일이 유압 프레스기를 넘겨주고 소련은 그걸로 멋진 경사장갑을 가진 T-34나 T-43(T-34(1943))을 만들었는데 우린 왜 아직도 수직 장갑을 쓰는 거냐고 생각하는 부분이 나온다.
독일이 이런 물건을 찍어낸 이유는 경사 장갑의 이점을 과소평가하고 단점을 더 큰 문제로 봤기 때문이다.[26] 경사 장갑의 가장 큰 단점은 같은 면적을 덮는데 좀 더 많은 장갑재가 필요하여 소모 자원과 무게가 늘어나고 경사 장갑 안쪽이 비게 되는 공간을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인데, 독일은 이러한 부분들에 좀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수직 장갑을 대폭 채용한 4호 전차 이전 전차와 6호 전차는 모두 2차 대전이 터지기 이전 전간기 중에 개발되었던 전차들이였는데 이러한 현대식 전차 개발 자체가 새로운 분야였고 수직 장갑과 경사 장갑의 이점과 문제점을 실전에서 아직 검증하지 못했던 단계였기에 이러한 식으로 경사 장갑의 이점을 과소평가한 경향이 있었다. 또한 트랜스미션은 어차피 차체 전면장갑 아래쪽에 위치해야 되는 점을 이용하는(M4 셔먼) 식으로 공간낭비를 최소화하면서도 경사 장갑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생각하는 발상 혹은 설계 노하우의 부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후 다양한 실전을 치르고 타국 전차 설계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경사장갑의 이점을 깨달은 독일은 티거 이후로 경사 장갑을 매우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5호 전차 판터, 헤처, 티거 2, 심지어는 8호 전차 마우스까지도 경사장갑 설계를 선택했을 정도이다. 프로토타입이나 설계도, 혹은 차체밖에 없던 E-100, 7호 전차 뢰베 또한 경사 장갑을 채택했으며 티거 2의 개수형인 야크트티거까지도 전면을 경사 장갑으로 처리했고, 대전차전 용도가 아닌 정찰전차 VK 16.02조차도 경사장갑으로 설계했을 지경이다.[27] 단, 이것은 독일이 경사 장갑이 수직 장갑에 비해서 압도적인 우수함을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각 장갑의 장점과 단점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체감한 것에 가깝다. 실제로 이후에 경사장갑을 채용한 전차들은 대부분 좀 더 높은 방어력이 필요한 전면에 집중되어 있으며, 측면장갑은 거주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수직에 가까운 얕은 각도를 보인 형상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비단 독일만의 변화가 아니며, T-34 시절에는 측면 장갑도 경사장갑으로 도배했던 소련도 세월이 지나서 측면 경사장갑의 공간적 불리함을 인지하고 T-44와 그 이후 전차들은 측면 경사장갑을 사실상 폐지하는 식으로 디자인을 변경한다. 미국의 주력인 셔먼 전차 역시 시리즈 내내 차체 전면에만 경사가 주어지고 측후면은 일관되게 수직 장갑이었으며 이는 이후 개발된 퍼싱과 패튼 시리즈, 에이브람스 전차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제2작전연구과가 1944년까지의 통계를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티거는 전투불능이 되기까지 평균 2.6발의 관통탄을 맞아야 했다. 이는 판터의 1.9발, 4호 전차 1.2발, 셔먼 전차 1.55발과 비교해 높은 수치였다. 다시 말해 관통탄을 맞고도 전투에 필요한 핵심 장비들이 망가지거나 승무원들이 무력화될 확률이 낮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방호력보다는 탈출 해치나 넓은 내부 공간에 더 좌우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중전차와 중형전차의 태생적인 차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1942년 9월 등장 시점에는 각국의 주력 대전차포로는 티거를 격파하기에 역부족이었는데, 소련은 티거를 관통할 수 있는 57mm ZiS-2 대전차포는 빈약한 대보병능력이 마음에 안 들어 소량만 생산해서 그 결과 영거리에서도 티거의 전면을 뚫을 수 없는 ZIS-3를 주력 대전차포로 사용하는 상황이었고, 영국은 윈스턴 처칠 수상의 판단으로 신형인 6파운더의 등장이 늦어진 데다 생산 설비의 부족으로 단포신 사양을 한동안 사용해야 했으며, 거기에 더해서 미국과 영국의 초기형 철갑탄의 탄자 붕괴 현상으로 인해 대전차전에서 골머리를 썩다가 현지 병사들의 임기응변으로 해결하는 상황이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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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S-3 대전차포와 단포신 6파운더에 대한 티거 터렛의 클로버 시뮬레이터[29]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43년부터는 티거에게도 점점 위험요소가 증가하게 되는데, 소련은 57mm ZiS-2 대전차포와 SU-122, SU-152, SU-85 등의 대구경 자주포들의 생산을 시작하고, 영국과 미국은 탄자 붕괴 현상을 완전히 해결했으며, 6파운더는 장포신이 생산되며, 17파운더의 생산도 본궤도에 올랐다. 또한 미국이 참전하면서 3인치 대공포를 장착한 대전차자주포가 전선에 대량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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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17파운더, 미국의 76mm, 소련의 85mm 대전차포에 대한 티거 포탑의 방호력 클로버 이들은 측면에서 티거를 충분히 잡을 수 있었지만 17파운더를 제외하면 티거와 정면에서 포화를 주고받는 건 현명한 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노르망디 상륙 당시 미군 지휘부는 이 점을 놓치고 있었다. |
5.2. 화력
8,8cm KwK 36 전차포 자체의 위력에 대한 정보는 8,8cm FlaK 참고. 티거의 주포는 사실상 8,8cm FlaK 36의 포를 거의 그대로 얹은 물건이라 구경장(L/56)까지도 동일하다. 등장 당시인 1942년 기준으로, 표준 교전거리 이내(종종 그 이상에서도)에서는 연합군의 모든 전차를 각도에 상관없이 일격에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포였다.1944년 후반 쯤 되면 연합국에 IS-2 같은 중전차들이 나오면서 슬슬 티거의 포가 먹히지 않게 되나,[30] 이 시기쯤엔 티거가 거의 소진되고 티거 2 같은 후속 전차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포의 위력과 별개로 사격 능력도 뛰어났다. 고성능 포구제퇴기, 안정된 무게중심의 고중량 차체와 서스펜션 덕에 오히려 원본보다도 훨씬 안정적인 사격이 가능했으며, 88mm라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구경의 일체형 포탄으로 장전 속도도 빠르고 휴행탄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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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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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ZF9b 조준기의 거리 측정망, 전차와 삼각형의 크기 비교로 목표거리를 계산, 당시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정확히는 슈트리히(밀) 개념이다. 삼각형의 윗 꼭짓점 사이의 거리를 4슈트리히로 잡는 것이 먼저다. 당시 중형전차들의 정면 폭은 약 3m, 측면 폭은 6m 정도 되는데 이때 조준경에서 8슈트리히의 크기로 보인다면 정면, 측면을 드러내고 있을 때 각각 약 8분의 3 곱하기 1천, 8분의 6 곱하기 1천으로 각각 약 375m, 750m가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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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획된 131호차 티거 |
부무장으로 포탑 정면에 MG34 동축 기관총, 그리고 무전수 위치에도 차체 기관총으로 MG34를 장비했다. 장탄수는 각 4,500발. 차내에는 비상상황을 대비하여 M24과 MP40 기관단총이 상시 비치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S미네라는 도약식 대보병지뢰를 연막탄 발사기를 통해 발사할 수 있었는데 대보병 효과는 만점이었으나 적의 소화기 집중사격 등으로 오작동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중기형부터는 폐지되었다. 이 장치가 오작동할 때 옆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폐지한 이유가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5.3. 기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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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2 마이바흐 HL230 P45 엔진 |
티거 전차는 근본적으로 1935년에 시작된 전선돌파차량 설계의 확대 및 계승형으로, 이 설계의 화력과 방어력을 개선하면서 30톤 급 설계에서 36톤급 설계로, 그 다음엔 45톤, 최종적으로는 완비 중량 57톤으로 계속 덩치가 커졌다. 그러나 이를 문제 없이 움직일 구동계는 준비되지 못한 상태였는데 동부전선의 수요가 매우 급했던 까닭에 신형 중전차를 서둘러 배치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40톤밖에 못 버틸 구동계[40]를 무려 57톤짜리 전차에 얹고 시운전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제식도입하여 곧장 전장으로 내보냈던 것이다.[41] 계속 생산하며 개량도 이루어졌지만 본디 30톤이었던 것을 57톤으로 비대하게 키웠던 데에서 발생한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군수지원 측면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졌다. 독일의 군수지원체계가 60톤에 육박하는 무게를 가진 장비를 운용하기 위한 절차가 전혀 없어 단순 주행 중에 고장이 빈발하는 이 전차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고, 전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용 구난전차가 제때 오지 않으면 차량을 버리고 탈출해야만 했다. 물론 전후 전차인 M48, M60, M1 전차도 엔진이 잔고장이 많았지만[42][43] 해당 중량의 장비를 운용하기 위한 절차를 갖추어 별 무리 없이 운용할 수 있었다.
티거는 중량 문제로 다리를 건너기가 어려워 도하를 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차체 전체에 방수 처리를 했다. 슈노켈을 장착하면 4m 깊이까지 도하가 가능했다. 이 방수처리와 수압 테스트 과정에서 티거 개발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고 알려졌으며 잠수능력을 포기한 중기형부터 생산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어차피 야지에서 도하를 하려면 준비하는 데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44] 위험했기에[45] 잘 쓰이지 않았다. 그나마 방수처리를 포기한 차량도 수심 1.6m 정도는 그럭저럭 도하가 가능했다고 한다.
티거의 중량은 이전까지 다른 기갑차량들은 별 문제 없었던 부분에서까지 새로운 문제를 일으켰다. 지반 자체가 티거의 중량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었다. 지반이 좋지 않은 동부전선은 물론이고 둑길이나 제방, 프랑스의 주거지역 등 지하실이 많은 지역에서는 지반 붕괴로 티거가 손실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티거 승무원들은 기동 중 이러한 위험을 항상 주의해야 했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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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션 바 구조와 3중 로드휠. 티거의 구동계는 특히 충격에 강해서 야지에서 고속주행시에도 차체는 안정을 유지했으며 주포를 발사해도 차체는 미동도 안 했다. |
하지만 하중 분산이라는 장점에 비해서 단점이 너무 치명적인데. 교차식 로드휠은 하중 분산에는 좋은 설계지만 바퀴가 너무 많아서 이물질이 잘 끼이는 것이 문제이다. 흙은 당연히 끼이고 진흙이나 돌, 얼음이 끼면 상당할 정도의 기동성에 제약을 받아서. 이 상태에서 전투기동을 하다 재수가 없으면 트랜스미션이 버티지 못하고 고장이 난다. 거기다 당시 티타임 전술 때문에 포탑 구동에 더해 목표를 향해 차체를 돌려 가뜩이나 약한 변속기 수명을 줄였다. 이렇게 해서 고장이 나면 정비를 받아야 하는데, 정비 시 고장난 한 개 이상의 로드휠 때문에 나머지 수십개의 로드휠들이 모두 정상이라도 몽땅 떼야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정비 비용 + 난이도 + 시간이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올라 버렸다. 또 전면 변속기를 수리하려면 포탑에다가 차체 상부를 모두 들어올려야 해서 그야말로 T-34, 셔먼 잡는 것에 비례해 유지 및 정비성이 아주 안 좋았다. 후대 전차들도 독일 전차의 설계개념은 받아들여도 이런 바퀴 겹치는 방식인 오버랩 설계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따라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정비 방식이다. 결국 유지보수 문제로 후기형에선 로드휠의 재질을 강철로 바꾸고 최 외측 로드휠은 제거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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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 적재된 티거, 열차 밖으로 나온 티거의 궤도를 확인할 수 있다. 티거는 열차칸에 연속 배차할 수 없고, 수송용 궤도로 교체하라고 규정했지만 이를 지켜 수송하는 사진은 별로 없다. |
티거의 최고속도는 이론상 45km/h로 T-34 전차에 밀리지 않는다. 나아가 야지에서도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타국의 전차는 대부분 야지에서 20km/h 정도가 한계였다. 다만 전차가 무거울수록 변속기와 및 종감속기의 부담도 커지는 편이었고, 때문에 티거는 이론상 T-34에 비해 야지 기동 시 신뢰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현실은 부품의 품질과 설계상 배려 덕분에 티거가 T-34보다 야지 기동 시 신뢰성이 나은 편이었다. 여기에 전차전은 자동차 경주가 아닌 관계로 단순히 최고속도나 중량 대비 출력이 우수하다고 성능이 더 뛰어난 것이 아니다. 궤도가 넓어 회전반경이 작았고, 당시 자동차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유압식 파워핸들을 갖추는 등[48] 조향장치의 질이 훨씬 뛰어났고, 전/후진 기어도 더 다양했다. T-34는 조향능력이 대단히 뒤떨어져 독일군 사이에선 '오리 궁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는 점에 비하면 티거는 기동성이 매우 뛰어난 전차였던 것이다.
이처럼 티거는 전술기동력은 좋은 반면 무거운 무게와 이로 인해 떨어지는 신뢰성, 낮은 연비 문제 때문에 자력으로는 전략기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독일이 수세에 몰리던 전쟁 중후반을 넘어가서는 연합군의 폭격에 전략수송을 담당하던 철도와 열차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되어 티거의 작전 능력과 전장 장악력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후기에 접어들면서는 독일이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티거의 전투력도 급감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르망디 상륙 당시 공습으로 파괴된 철도망 때문에 티거들은 전부 자력주행으로 전장에 도달해야만 했고, 태생적으로 이런 자력주행이 어려운 전차였다는 문제 때문에 고장으로 인한 비전투손실 차량이 수두룩했다. 노르망디 전역에서 상실한 티거 중 공습으로 격파된 차량의 수는 약 10% 수준에 그쳤지만[49] 공습을 피하기 위해 연료를 낭비하거나, 항공기를 피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기동로가 제약되는 문제, 매복 지점 상실 등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간접 피해를 입게 되었다. 동부전선에서도 자력 기동성이 크게 뒤떨어지는 티거와 기타 독일 전차들은 T-34처럼 장거리를 자력으로 주파하여 포위망을 형성하거나 유리한 지역을 선점하는 등 직접 전략 기동을 실시하는 소련 전차들을 막을 수 없었다. 바로 이 때문에 티거는 당장 눈앞에 닥친 전투는 이겨도 더 광범위한 전장에서 펼쳐지는 소련군의 전략기동을 저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위치를 내주고 후퇴하기를 무수히 반복해야 했다.
사실 위와 같은 전략기동에 대한 평가는 티거가 억울한 면이 있는데, 2차 대전기의 중전차들은 전부 전술적 승리 및 적 방어 진영 돌파가 목적이었지 전략기동은 불가능했다. 전략기동 자체가 중형전차의 몫이지 무겁고 정비소요가 큰 중전차가 할 일이 아니다. 다만 패배가 보이기 시작한 독일은[50] 그런 것을 구분해서 티거와 중형전차를 투입할 상황이 아니었고, 중전차대대는 막대한 실적을 보였기에 지원을 몰아줘 판터와 비슷하거나 더 좋은 가동률로 당장 투입이 가능하여 그 무거운 몸뚱이를 소방수로서 투입되었기에 부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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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로부터 피격당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찰기로부터 발각되지 않도록 기동흔적을 지우고 매복한 모습이다. |
6. 형식
티거는 이제까지 독일군의 주력이었던 3, 4호 전차 및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5호 전차 판터와는 달리 성능적으로 크게 개량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A형, B형등의 개량형으로 파생되지 않고 하나의 형식을 유지했으나, 편의상 외형적 특징을 기준으로 극초기형, 초기형, 중기형, 후기형으로 나뉜다.6.1. 극초기형
Tiger Ausf. H Early Production(티거 H형 선행양산기) |
6.2. H1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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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Ausf. H1[53] |
6.3. E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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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Ausf. E |
6.4. 후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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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Ausf. E Late Production |
6.5. 하이브리드 티거/좀비 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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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brid Tiger/Zombie Tiger |
대표적으로는 1944년에 티거 생산 라인이 폐쇄될 때 만들어진 54대의 티거들이 있다. 이 하이브리드 티거를 운용한 부대 중 가장 유명한 부대로는 페르만 전차 학교 소속 교관 프란슨 중위가 지휘한 페르만 전투단이 있다. 페르만 전투단은 6대의 티거와 5대의 판터를 주축으로 꾸려졌었고 1945년 4월 에센 지방에서 영미 연합군과 교전, 4월 11일 잔존 전차들 상당수를 비전투 손실로 손실하고 사실상 해체되었다. 페르만 전투단 소속 티거의 다른 특징은 넘버링 맨 앞부분에 F자가 들어가 있었다는 점이다.[57]
7. 파생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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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계열 차량 일람 사진 오른쪽부터 티거 1, 엘레판트, 티거 2 헨셸형, 야크트티거, 티거 2 포르쉐형 프로토타입 순으로 전시되어있다. |
7.1. 나치 독일
7.1.1. 프로토타입 경합 모델
7.1.1.1. VK 45.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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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K 45.01(P) |
7.1.1.2. VK 45.01(H) 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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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K 45.01(H) H2 |
7.1.2. 기술 기반 파생형
7.1.2.1. 티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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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zerkampfwagen VI Ausf. B "Tiger II" |
7.1.2.2. VK 45.02(H)
티거 2 개발 경합에 헨셸이 처음 제시했던 설계안으로 완전히 새로운 설계의 전차가 아니라 티거의 설계안을 약간 개선해 8,8cm 71구경장 포를 대충 얹어놓은 것에 불과한 티거의 개량형 격 전차였다. 내부적으로는 판터의 엔진과 냉각 시스템을 비롯해 판터의 부품을 공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너무 성의없는 설계안이었기 때문에 기갑총감부에서 기각을 먹여 시제 차량도 제작되지 않은 채 프로젝트가 폐기됐다.7.1.3. 무장 교체 파생형
7.1.3.1. 슈투름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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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rmmörserwagen 606/4 mit 38 cm RW 61 |
7.1.3.2. 티거 1 mit. 7,5cm A18 K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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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1 mit. 7,5cm A18 KwK |
7.1.4. 장비 추가 파생형
7.1.4.1. 보르크바르트 4호 조종 티거
보르크바르트 4호를 원격 조종하는 무선조종장치를 추가한 티거가 있다. 그중 안치오 전선에서 유기된 티거 한대의 사진이 베르게 티거의 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으나 실은 바로 이 보르크바르트 4호 조종용 티거다. 베르게티거와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은 베르게티거는 포탑을 들어낸 반면 보르크바르트 조종용 티거는 포탑을 그대로 얹어놓은 상태에서 크레인 등의 상부구조물을 추가한 점이 다르다. 보르크바르트 4호는 무선조종이긴 해도 근처에서 조종을 해야 했기에 튼튼한 전차에서 조종해야 안전했으므로 독일군 전차중 그나마 장갑과 기동성이 다른 중전차보다 훌륭한 티거가 담당했다.7.1.5. 비무장 파생형
7.1.5.1. 베르게티거- 라둥스리거 티거(Bergetiger- Ladungsleger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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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getiger |
임기응변인 만큼 포탑만 제거하고 차체 내부는 휑하게 드러내고 다니는 차량부터 최소한 나무로라도 뚜껑은 덮어준 전차 아예 크레인 등 상부구조물까지 올린 본격파 등등 다종다양하다. 다만 치타델레 작전시 페르디난트를 운용한 제653 중구축전차연대에 티거(P)섀시 3대와 파손된 페르디난트 섀시 2대를 이용하여 정식으로 베르게티거(P) 5대를 제작해 배치한 예가 있다.
이 베르게티거 중 가장 유명한 차량은 상단 사진의 차량으로 508 중전차대대 소속의 311호 차량이다. 508대대는 종전까지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합군을 막는 동안 각종 비전투손실로 78대를 잃은 전과로 중전차대대 중 졸전한 부대로도 유명한데 아마 이러한 비전투손실로 잃은 티거들을 견인하기위해 제작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최근 위 사진이 베르게 티거가 아닌 라둥스리거 티거로 폭발물 운반을 위해 특수 제작된 차량이라는 주장이 있다.
7.2. 소련
7.2.1. T-VI-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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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I-100 |
8. 실전
8.1.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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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뵐터 탑승 티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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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카리우스 탑승차량 "217호차"[60] |
티거를 운용했던 각 중전차대대의 목록과 투입된 전장은 중전차대대 문서 참조.
티거는 중요 장비였던 탓에 한대 한대의 손실이 대부분 기록으로 정확하게 남겨졌고 각 중전차 대대의 전투일지는 영어, 독일어, 일본어 등으로 출판되어 있다. 상세한 손실과 충원 요약은 링크에 정리되어 있다.
각 중전차 대대의 교전 기록 | |||
Unit | Losses | Kills | Kill/Loss Ratio |
schwere Panzer-Abteilung 501 (424) | 120 | 450 | 3.75 |
schwere Panzer-Abteilung 502[61] (511) | 107 | 1,400 | 13.08 |
schwere Panzer-Abteilung 503 (Feldherrnhalle)[62] | 252 | 1,700 | 6.75 |
schwere Panzer-Abteilung 504 | 109 | 250 | 2.29 |
schwere Panzer-Abteilung 505 | 126 | 900 | 7.14 |
schwere Panzer-Abteilung 506 | 179 | 400 | 2.23 |
schwere Panzer-Abteilung 507 | 104 | 600 | 5.77 |
schwere Panzer-Abteilung 508[63] | 78 | 100 | 1.28 |
schwere Panzer-Abteilung 509 | 120 | 500 | 4.17 |
schwere Panzer-Abteilung 510 | 65 | 200 | 3.08 |
13./Panzer-Regiment Grossdeutschland | 6 | 100 | 16.67 |
Ⅲ./Panzer-Regiment Grossdeutschland | 98 | 500 | 5.10 |
13./SS-Panzerregiment 1 | 42 | 400 | 9.52 |
8./SS-Panzerregiment 2 | 31 | 250 | 8.06 |
9./SS-Panzerregiment 3 | 56 | 500 | 8.93 |
schwere SS-Panzer-Abteilung 101 (501)[64] | 107 | 500 | 4.67 |
schwere SS-Panzer-Abteilung 102 (502) | 76 | 600 | 7.89 |
schwere SS-Panzer-Abteilung 103 (503) | 39 | 500 | 12.82 |
Total | 1,715 | 9,850 | 5.74 |
티거는 주로 공세의 선봉에서서 적의 화력을 받아내며 방어선을 뭉개는 임무를 담당했으며 소련의 공세에 시달리던 시점부터는 기동방어의 핵심전력으로 활용되었다. 전선을 뚫고 밀려 들어온 소련의 전차군단이 통신이나 보급 한계선에 도달했을 때 티거 전투단들이 이들을 섬멸했다. 대전 후반에는 강력한 주포와 넉넉한 휴행탄수의 장점을 활용한 방어전의 화신이 되어 영국과 소련군은 전선의 주요 교두보마다 티거의 매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유명한 전과들은 다음과 같다.
1943년 2월 11일, 로스토프 전선에서 503 중전차대대의 사벨 소위가 탄 티거는 76.2mm 포탄 11발, 45~57mm
대전차포탄 14발, 14.5mm 대전차총탄 227발을 맞았지만 단 한발의 탄도 티거를 관통하지 못하였고, 전륜과 차축 여러개가 파손되고 토션바 2개가 기능을 상실하고 대전차지뢰 3개를 밟았지만 적군을 유린한 후 60km 떨어진 아군 부대로 야지를 자력주행하여 돌아갔다.
이 밖에도 티거가 찍은 전차 무쌍의 기록은 셀 수 없이 많다. 더구나 생존성 역시 상당해서 전투불능이 되어도 일단 회수만 된다면 정비 후 재투입이 가능한 경우도 허다했다.[69] 오토 카리우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만일 작동 불능 및 회수 불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면 포탑을 간단하게 박살낼 수 있도록 포탑 주변의 수납 공간에 폭발물들을 설치해놨다고 밝혔다.[70] 회수작전은 주로 야간에 이뤄졌으며 실패할 경우 회수에 나선 티거가 주포로 격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밀 유지를 위해 노력했어도 티거가 전장에 투입된지 얼마 안 돼서 소련군들 사이에선 꽤 정밀한 티거 그림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가격 대 성능비로 보자면 티거는 대당 30만 라이히스마르크로 4호 전차(12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하면 대략 세 배, 판터(15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해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이다. 그러나 티거가 1943년 한 해동안 때려잡은 적 전차 및 자주포는 약 5천여 대 같은 기간 소련군이 잃은 전차 및 자주포는 총 2만 2천 대로 티거가 독일군 전차에서 차지하는 비율(5% 이하)을 생각하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대전차전에선 가격 대비 성능 또한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유의할 것은 이 티거의 가격은 평균가란 점이다. 티거 극초기형은 80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달했는데 소량생산[71]과 노동자 숙련도 부족 등이 원인이었다. 이후 생산량이 늘고 노동자들이 숙련공이 될 때 생산된 중/후기형까지 합쳐지면서 평균가가 하락했다.
그리고 전쟁사에서 두번 다시 못나올 기록이 있는데. 바로 군함과 포격전을 벌인 전차이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에서 504중전차대대 2중대 소속 티거들이 연합군의 구축함과 중순양함을 상대로 포격을 가했는데 결과는 티거들이 그냥 박살이 났다. 당연하지만 체급이 수십 배는 차이 나기 때문에 장갑이 없다시피 한 구축함이라도 전차는 장난감처럼 상대할 수 있다. 전차는 구축함에 여러 문 달려 있는 5인치 함포가 연사해대는 고폭탄 두세 발만 맞아도 박살이 나지만, 88mm 전차포로 구축함에 구멍 몇 개 뚫어봐야 큰 피해를 못 준다.
8.1.1. 운용상 문제
티거의 경우 운용상 난점에 대한 말이 많고 가동률 자체가 낮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사실이 아니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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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가 운용하기 쉬운 전차인 건 결코 아니었다. 티거의 경우 필수 정비과정이 복잡하고 힘들었다.
오버랩되어 있는 전륜의 경우에는 하나의 교체를 위해 최대 9장까지 제거해야되는 경우도 빈번했으며 50톤이라는 무게를 받칠 잭과 크레인이 흔치 않은 관계로[73] 차체 밑으로 땅을 파고 내려가서 정비해야 하며 트랜스미션만 점검하려고 해도 포탑을 들어내고 트랜스미션을 통째로 꺼내야 하는 등 중장비 없이는 정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정비병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게다가 티거는 점점 악화되어가는 전황 속에서 소방대로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불끄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다른 전차들에 비해서 소수가 혹사당하는 와중에 유지/보수/점검에 할애할 시간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거기다 엔진이나 현가장치에 문제가 생겨서 노상에서 퍼지면 급박한 상황에서 50톤이나 되는 물체를 견인할만한 수단이 마땅찮았기 때문에 보통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같은 티거로 견인하려고 들었다가는 견인하던 티거도 같이 퍼질 확률이 높았기에 티거로 티거를 견인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했다. 운용 교범상에는 정비대 표준장비인 Sd.Kfz. 9 3대를 이어서 견인토록 했으며 후기에는 베르게판터 등의 중전차 회수차량으로 견인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Sd.Kfz. 9 숫자도 적은데다[74] 방어력의 문제로 전선 가까이까지 끌고 오기는 좀 곤란했고 베르게판터는 수가 적은지라 그냥 다른 티거로 견인하는 사진이 많다. 빌레르 보카쥬 전투 직후 231호차를 다른 티거로 견인하는 유명한 사진도 있다. 동부전선 한정으로 전투시 파손된 티거의 포탑을 떼어 견인차량으로 사용한 베르게 티거도 있었으나 페르디난트/엘레판트 운용대대의 포르셰 타입 티거를 개조한 베르게 티거 외에는 전부 현지 개조품으로 육군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지했다. 전쟁 말기가 되면 마땅히 견인할 수단과 시간이 없어 고장난 티거는 바로 방치/유기되기 일쑤였다.[75]
또한 큰 포를 탑재하고 공간성을 위해서 포탑을 크게 만들다보니 포탑 정면과 자체 사이의 틈이 크고 외부로 포탑링이 상당히 노출되어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은 승무원들이 탑승한 셔먼의 경우에는 티거의 포탑링에 포탄을 날려서 포탑 선회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험지주파를 위해 넓게 설계한 무한궤도에 포탄을 날려서 기동불능에 빠지게 만들어서 티거를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일을 해내기도 하였다. 당연히 이건 티거의 정확한 포격을 숙련된 조종기술로 회피 기동으로 피하면서 근거리까지 접근해서 정확한 사격을 날려야 가능한 일이지만, 숫적 열세 때문에 장거리전을 치루더라도 곧 근거리 접전이 벌어지는 독일의 전차전 특성상 티거가 100% 무시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8.1.2. 연합군의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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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벨 소위의 티거[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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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 후 표적시험용으로 사용된 티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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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대 티거 전투교육 자료 |
8.1.3. 소련
8.1.3.1. 85mm 등장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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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된 티거를 지나치는 T-34-76 |
티거를 괴롭히는 병기 중 하나는 대전차포였다. 대전차포는 전차에 비해 매복하기 쉬워 티거가 대전차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무리 76mm ZiS-3이 약했다 하더라도 측면이 노출되는 경우 무사할 수 없었다. 또한 티거와 판터 등장 이후, 소련은 ZiS-3보다 관통력만큼은 뛰어났던 예전의 무기인 57mm ZiS-2를 재생산해 대전차포로 사용했다. ZiS-2는 APCR을 사용한다면 500m에서도 150mm 정도의 강력한 관통력을 보유했는데 이는 85mm D-5T를 뛰어넘는 수치였다. 게다가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텅스텐 매장량이 넉넉한 소련은 상당량의 APCR을 확보해 둔 상태였다. 파편량이 적고 저구경이라 단발로는 티거를 격파할 수 없었지만 이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포가 작으면 작을수록 매복이 쉬워진다.
대구경 야포 또한 티거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1940년에 배치된 KV-2의 경우 152mm 야포를 사용하는데 이는 1세대 MBT도 직격당한다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게다가 직격당하지 않더라도 대구경 야포의 파편은 궤도, 광학장비를 충분히 손상시킬 수 있는데, 특히 야전에서 궤도가 손상될 경우 치명적이다.[78] 게다가 파편에 대해 방호를 성공한다 하더라도 152mm 야포는 약 2m 깊이의 호를 만들게 되는데[79] 이 또한 전차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오토 카리우스의 중대원 중 하나가 이런 야포가 만든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1942년 겨울에 첫 선을 보인 122mm를 사용하는 SU-122의 경우 직사사격과 곡사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는데 직사 사격으로 제한적인 대전차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122mm의 위력은 티거를 격파할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종합적인 성능은 여러 면에서 나빴지만, 이런 다목적 자주포들도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티거를 격파할 수 있었다. 티거 전차병들은 이를 소련의 구축전차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80]
그러나 앞서 서술했듯 이 들은 모두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티거를 격파할 수 있었고, 티거를 격파하는 데는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8.1.3.2. 85mm 등장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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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85 |
신형 중전차 계획도 당연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막강한 위력의 122mm 포를 탑재한 IS-2가 1943년에 등장했다. IS-2의 122mm 주포는 철갑탄의 관통력은 구경대비 낮았으나 대구경의 고폭탄만으로도 티거를 충분히 격파할 수 있었기에 대전차전 능력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방호력 역시 티거의 88mm로는 약점을 정교하게 노리지 않으면 격파가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다.[82] 오토 카리우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확실하게 "스탈린 전차는 우리의 것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소련 전차는 부족한 교신 능력과 조준 능력으로 우리보다 뛰어난 방호력과 공격력을 가졌어도 우리에게 패퇴하는 일이 많았다' 고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IS 시리즈들은 독일 중전차와 운용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 비교가 힘들다.[83]
1944년에 T-44가 등장했지만 실전 경험은 없다. T-44의 경우 T-34/85보다 여러모로 우수한 전차였지만 실전 경험이 없어서 티거를 상대로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겨야 한다. 독소전이 끝나고 세계대전이 거의 끝날 무렵인 1945년 중반에야 양산에 들어간 IS-3의 경우는 이집트군이 운용하면서 M48 패튼 전차의 90mm를 튕겨낸 전력도 있는 만큼 방호력면에서는 티거는 물론 티거 2보다도 훨씬 앞설 것이라고 기대되지만 45년은 되어야 등장해서 티거와 만날 일이 아예 없었다.
1945년 3월에는 SU-85를 대체할 SU-100이 등장했고, 100mm D-10은 1km에서도 160mm 이상의 관통력과 뛰어난 명중률을 자랑해서 티거에 대한 완전한 격파를 보장했다. 하지만 100mm 대전차포는 포미부의 크기가 상당히 큰 편에 속했기에, 이 포를 장착한 전차는 2차대전 중에는 SU-100만 양산되었으며. 전후에 해당 주포를 탑재한 T-54가 양산되었다.
8.1.4. 미국과 영국
1944년 7월 12일, 미군은 노획한 티거와 판터를 놓고 어떤 무기로 관통되는지 확인해 보았다. 판터는 정면에서 모두 관통되지 않았고, 측면과 후면은 제한된 거리에서 몇몇 무기가 성공했다. 이 사실을 아이젠하워에게 보고하자 그는 비통하게 대답했다. "76mm로 판터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오? 난 이게 훌륭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병기국은 이걸로 모든 독일 전차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소. 이제는 그게 안 된다는 걸 알게 됐구만."
- M26/M46 Pershing Tank 1943-53 - Steven J Zaloga - 자세한 이야기
- M26/M46 Pershing Tank 1943-53 - Steven J Zaloga - 자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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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 VC |
이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76mm M1 대전차포를 장착한 M4A1 (76) W 셔먼이 등장하며 화력에 대한 부재는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82공수사단의 제임스 개빈(James Gavin) 사단장은 부하들이 독일 중전차를 잡을 수 있게 된 시점은 판처슈렉을 노획하고 나서부터라며 후일 바주카로 독일 중전차를 잡으라고 교육한 것에 대하여 맹렬히 비난했다. 이는 M4 셔먼 전차병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사실 75mm L/40 주포로 측 후면에서 15도 이내의 탄착각이하면[88] 500m까지도 공략이 가능했으나 제대로 된 교리를 만들지 못하여 전차병들은 헛되이 죽어 나갔다. ( 아이젠하워에게 올라간 보고서) http://tanksandafv.blogspot.kr/2015/01/interview-with-steven-zaloga.html
영국군과 달리 서부전선에서 미군이 상대했던건 판터나 티거 2 였으며, 스티븐 잘로가가 양측 공식기록의 교차검증으로 확인한 티거와 미군과의 전차전은 단 3번 뿐이었을 정도로 조우 자체가 적기도 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신뢰성이 매우 떨어진다. 일단 스티븐 잘로가의 사료 분석 방식 자체가 자의적인 측면이 있어 걸러들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미군은 동 체급의 M26 퍼싱 전차를 들고 오긴 했지만 이런저런 문제 탓에 전쟁이 거의 끝난 뒤에 투입했기에 실전을 많이는 치르지 못했다. 그나마 퍼싱과 동급의 90mm 전차포를 탑재한 M36 GMC가 판터와 티거 같은 독일 전차를 격파할 수는 있었으나 대전차 자주포의 한계상 정면에서 티거와 격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선제공격당해서 박살나거나 서로 동시에 쏘고 양패구상 당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도 퍼싱의 경우 엘스도르프 근교에서 티거와 정면으로 격돌해 2차례 교전한바 있으며, 첫 교전에선 퍼싱이 티거의 선제 공격에 연달아 3발을 얻어맞고 전투불능에 빠졌지만 두번째 교전에선 티거가 격파당했다. 유럽전선이 끝나가던 시점에 미 제2기갑사단은 90mm 전차포에 대해 800야드 이내에서는 88mm와 대등하며 그 이상에서는 불리하다는 병사들의 일관된 증언을 모아 아이젠하워에게 보고했다.
반면에 영국군은 북아프리카에서부터 티거의 위험성을 인지했기 때문에 발빠르게 대처했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2,100~2,200대 정도의 셔먼 V, 셔먼 I, 셔먼 I 하이브리드가 셔먼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고. 1945년 5월 경에 남아있는 파이어플라이는 1,350대 정도였다. 또한 영국군의 PIAT은 전차의 상판을 타격할 수도 있었고 관통력도 바주카보다 미묘하게 높았던 관계로 종종 티거의 상부를 뚫어 격파하기도 했다.
8.2. 생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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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의 헨셸 공장에서 조립되는 티거 |
전쟁에 쓸 장비의 대량생산은 그 장비의 생산성 자체뿐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중공업규모와 자원, 생산 설비 및 노동력의 수급과 배분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이다. 80만 라이히스마르크의 생산가는 그렇다 치더라도[89], 티거는 30만 인시(人時)[90]에 달하는 노동력과 엄청난 양의 고급 자원을 소모했고 작전 중에도 많은 연료를 지속적으로 소모했으며 이는 연료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쉽게 감당할 것이 못 됐다.
독일의 산업능력은 미국과 소련에 비해서는 열세했으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비슷하거나 뛰어난 수준이었다. 이는 점령지의 공장을 다 돌려도 마찬가지. 아무리 강제노동이 되었든 뭐든 국내외의 유통망과 자원수급망 등에서 변화가 생겼고 점령군에게 100% 협력하리라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 게다가 아무리 해도 그러나 미국은 '원정'이었지만 독일은 '본진'에서 흠씬 두들겨 맞으며 전쟁 중이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열세해졌으면 열세해졌지 상황이 우세해질리는 만무했다.[91] 소련처럼 도망가서 다시 만들 시간도 공간도 없으니 더더욱 여유가 없었다.[92]
동맹국과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상호간의 협력이 비교적 원활했고 다들 한가락 하는 강대국들이 뭉친 연합국과는 달리[93] 독일의 동맹국들은 대부분 군사력이 약해서 나름 열심히 싸워도 세력에 한계가 있는 중소국가라 군사적으로는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자기네 사정도 열악해서 역으로 지원을 해줘야 했다. 대표적인것이 독일이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은 건 원래 괜히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가 엉덩이에 불이 난 이탈리아를 도와주려던 것이다.[94]
그러나 군사 부분이 아닌 그외 부분에서는 독일이 동맹국에게 엄청난 지원을 받았었다. 독일이 사용하는 원유의 최대 70%를 루마니아가 지원해줬으며, 독일이 사용한 대부분의 철들은 노르웨이가 지원해줬다. 또한, 전차의 자잘한 부품들은 헝가리가 상당수 지원해줬다. 결국 티거의 생산량이 적은 원인은 그저 비싸고 복잡한 사치품이어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소모전을 자초한데다 그나마 있는 여력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한 나치 독일의 정치력 문제도 고려해야하는건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티거는 오히려 정치인들에게 수혜를 받은 입장이며 미국은 정치적인 문제로 M4 셔먼의 업건이 늦어졌으며 소련은 T-34의 양산이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에게 심각하게 방해를 받았다. 그런데도 티거의 생산량이 심각하게 적다는건 티거의 생산성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미국이 티거의 설계도를 가지고 티거를 뽑아냈다면 티거가 셔먼 찍혀나오듯이 찍혀나오는 광경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티거와 비슷한 체급인 M6 전차의 경우 초기 양산시에만 월 250대를 생산할 계획이 있었으므로 그대로 5개월 반이면 독일이 2년간 생산한 티거의 숫자를 능가한다. 애초에 국력의 차이도 있지만, 독일의 경우 단일한 설계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변경이 잦아 생산성에 저하를 초래했지만 당연히 미국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기도 하다.
당시 나치 군부가 헨셸에 계약을 주면서 현장에서 요청되는 개선안을 즉시 반영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티거의 2년간 총 생산대수는 1,350대에 그쳤는데, 생산 초기와 비교했을 때 차체에 적용된 "사소한 개량"의 가짓수는 약 250개였고, 대부분은 전차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추가적인 부품의 장착이나 기존 부품의 질적인 개선을 요구했으며[95], 다수의 개선안을 한번에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 개선안이 제기될 때마다 설계에 적용시키는 방식이었다. 즉, 총 생산량이 1350대인 차량에게 무려 250개의 차체 파생형이 있고 각 버전당 생산된 차량이 평균 5.25대밖에 되지 않는, 마치 실제 차량의 생산은 등한시한 채 차량의 파생형 설계도를 수집하는 것과 같은[96] 처참한 생산성을 보여주었다.
생산 공정에 대한 이런 과도한 간섭 때문에 결국 한달에 최대 300대의 차량을 생산하기로 계획되었던 헨셸 공장에서 평균 60대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97] 이는 대서양을 건너는 원정군의 입장이었기에 중전차의 체급마저도 크레인의 최대 하역 중량인 40톤에 맞춰야 했던 영국, 미국과, 생산 공장을 우랄 산맥으로 이전한 후 열악한 철도망과 라스푸티차, 광대한 영토 때문에 항속거리가 가장 중요한 소련의 입장에서는 배가 너무나도 불렀던 것이다.
거기에다 독일은 전쟁 초기에 많이 노획된 적 전차의 유지보수에 매달리느라 군수지원이 난잡해지고 낭비도 심해졌다.[98]
동부전선이 장기화되면서 나치 수뇌부가 아무리 암덩어리라고는 해도 의도치 못한 소모전에 누적되는 인명손실 통계를 보며 '이대로 가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적자원이 고갈되어가던 독일이 똑같이 "양이 곧 질이다"라며 양산병기를 찍어내서 전선에 축차투입 하는 일은 전 세계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99]
바꿔 말하면, 소련처럼 전차 마구 찍어낼수도 없었지만, 공업력이 있다고 해도 만들 자원도 없었고, 만들었다 치더라도 미국처럼 그 승무원들을 보충하는 것도 어려웠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치 수뇌부가 다소 비싸고 숫자가 부족하더라도 고성능의 병기를 운용한 것은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100] 공업생산력, 지원문제뿐 아니라 인적자원문제에 있어서도 독일의 티거전차 선택은 불가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티거가 생산성이 부족한 병기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병기의 생산성이 해당 국가의 산업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병기 자체의 생산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생산량을 논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위에서 예를 든 T-34의 경우에는 무기대여법도 없고, 병기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평시 상황에서, 개발된지 얼마 안 돼 공장이 2개밖에 없을 때도 1년 동안 생산한 대수가 1,500대에 가깝다.
해당 국가의 중공업 규모, 자원 상황,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병기의 생산성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이 점을 지나치게 간과한 판단이다. 당장 세계 최강국인 미국조차도 비싸서 많이 운용하지 못하는 병기가 있음을 살피면 병기의 생산성은 해당 국가의 경제적 역량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이다.[101] 경제적 역량이 부족해서 많이 생산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 장비 자체의 생산성까지 나쁠 경우에 티거와 같이 타국과 생산대수에서 몇 배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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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정치력이 티거의 생산량을 깎아먹었다는 사항은 소련의 대숙청을 고려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티거는 독일 수뇌부에 의해 주력으로 지원받고 가장 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당받았기에 정치인들의 수혜를 본 것에 가깝다.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문제는 쿨리크 원수의 직접적인 훼방을 지속적으로 받은 T-34 전차가 더 크게 겪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정치적 문제를 겪어도 티거만 생산량이 처지게 된다면 생산성의 문제를 논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독일이 연합국의 폭격으로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웠다는 말도 소련 또한 핵심 영토와 중공업 파트를 모두 잃고 시작했음을 떠올려보면 그렇게 큰 디메리트가 아니다. 미국의 무기대여법이 병기 생산에 도움을 준 것은 맞지만[104], 위에서 언급했듯이 렌드리스가 존재하기 전부터 소련은 T-34를 붕어빵처럼 찍어내고 있었다. 결국 이건 티거의 생산성이 문제인 것이다.
티거가 특수병기이기 때문에 많이 생산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시 독일의 전차 가동률에서 판터, 4호 전차보다도 오히려 티거의 가동률이 높을 때도 있었음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그 가동률을 위해서 다른 전차들과는 달리 대대단위까지 정비부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위에서도 줄줄이 적혀있듯이 티거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활약한 전차이며 또한 가장 많이 가동된 전차이다. 다시 말해 결코 수요가 적은 특수병기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8.3. 총평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지금 독일군이 쓰는 5호 전차나 6호 전차를 타고 미군의 중형전차나
90mm 대전차 자주포를 상대로 싸울 것입니다.
- 윌슨 M. 호킨스Wilson M. Hawkins 중령, 제67전차연대 제3대대장
많은 정비소요와 낮은 생산성, 그리고 독일 전차들의 고질병인 낮은 연비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전투력 만큼은 대단히 우수한 전차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주로 교전하던 T-34나 M4 셔먼 등보다 높은 중전차라는 체급 차이와 개전 초기부터 티거 전차와 함께 산전수전 다 겪으며 모든 상황에 숙련된 승무원, 그리고 방어자의 이점이라는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연합군의 전차 부대에게 막대한 손실을 강요한 것은 그만큼 전투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라는게 확실하다. 즉, 전투력 자체만 놓고 본다면 매우 우수한 전차임은 확실하다. 그리고 정비성의 문제도 티거 1까지는 중전차임을 감안하면 불쾌해도 납득할 만한 수준이기는 했다고 하지만 보기륜이나 변속기 가는 사진보면 정비병 출신들은 그야말로 혐짤이 따로 없다.- 윌슨 M. 호킨스Wilson M. Hawkins 중령, 제67전차연대 제3대대장
또한 위에서도 누차 언급되었지만 단순한 수치상의 공·수·주 뿐 아니라, 공간 설계 자체가 넉넉하고 여유로운데다[105] 여러모로 승무원들을 배려한 설계로 인해 승무원들의 거주성 및 조작 편의성, 전투 지속 능력 등 카탈로그에 나오지 않는 장점들도 훌륭했다. 특히 이들이 주로 상대했던 소련군 전차나 영국군 전차들의 형편없는 편의성[106]을 고려하면 비교가 민망할 지경. 많은 퇴역 전차병들이 그때로 돌아간다면 티거를 고르겠다고 했다는 후문에는 이런 요소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전투 외적인 부분에서는 문제가 상당한 편이었는데 생산성이 형편없어서 항상 필요한 숫자에 비해서 턱없이 적은 수만이 존재했고, 정비가 복잡하고 힘들어서 높은 정비 소요와 함께 낮은 연비로 인해 대전 후반에는 연합군의 공세를 저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해 병기로서는 심각한 결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전장에 투입되는 전투 인원들은 물론이고 장비들을 운용하고 지휘하는 지휘관들에게는 크게 다가오는 문제인데 일례로 당시 동부전선의 오토 카리우스는 전투 중 전차에 손실이 생기거나 기동 불능에 빠지면 밤 중에 돌아가 견인해왔다. 그나마 정비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에는 티거 정비반이 대대마다 배치가 되어있고 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다른 전차들 이상의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떨어지는 생산성과 연비는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다만, 정작 티거를 굴리기 충분한 생산력을 가진 미국이나 소련에서는 오히려 티거같은 강력한 중전차를 운용할 필요성이 별로 제기되지 않았다. 미국이야 바다를 건너와야 한다는 특성상 전차의 대형화 자체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동부전선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지상 전차전을 벌이며 진격하던 소련 역시 IS-2와 같은 중전차를 개발하고서도 그렇게까지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고 오히려 생산성이 좋은 중형 전차인 T-34가 소련 전차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는 결국, 티거든 스탈린 전차든 강력한 중전차는 그 강력한 성능만큼 많은 자원을 소모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중형전차보다 생산성이 나쁠 수 밖에 없다는 데서 기인하는 문제이다. 얼핏 생각하면 '생산력이 충분한 국가에서는 그만큼 큰 생산력을 소비하는 중전차를 많이 생산해서 투입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여기기 쉽지만, 정작 충분한 생산역량을 확보한 국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효율이 좋은 중형전차를 그만큼 압도적인 대량으로 생산하여 전황을 주도하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는 쪽이 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숫자는 적지만 하나하나가 강력한 소수정예'는 멋있기 때문에 창작물에서 주인공이 속한 세력 등으로 선호되는 소재지만, 실제 전쟁의 역사에선 이러한 '소수정예의 대활약'보다 ' 일정한 수준을 갖추고 대량으로 뿜어져 나오는' 군대가 이기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숫자가 적은 쪽은 그 자체로 심각한 전략적 열세를 안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3대의 티거가 30대의 T-34를 상대로 전역에서 싸울 경우 티거 1대당 T-34를 4 ~ 5대씩 격파하더라도 나머지 15대의 T-34가 이미 우회하여 포위망을 형성하면, 장거리 자력주행이 안되는 티거의 앞날은 운이 억세게 좋아서 포위망을 빠져나오거나 나머지 15대도 격파해버릴 수 있었지 않은 이상에야 탈출하려 발악하다가 유기, 자폭해 버리는 수밖에 없다. 전차도 포탄과 연료를 보급받을 수 있어야 싸울 수 있으니 포위당하면 무력화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수많은 티거가 이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교환비, 소위 게임에서 말하는 '킬딸'은 밀려도 최종적으로 전장은 T-34가 장악하는 것이다. 사실 쿠르스크 전투 이후로는 정예병들이 박살나고 생산력도 하강하고 있던 독일군 기갑부대는 소련과의 '교환비'마저도 인력을 제외한 가격으로만 놓고 본다면 사실상 1대1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물론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미국의 퍼싱, 소련의 IS-2같이 티거와 동급이거나 같은 독일의 티거 II처럼 기존의 티거를 능가하는 중전차[107]도 나왔고, M36 GMC 같은 대전차 자주포나 ISU-152같은 티거를 한방에 격파 가능한 다목적 중 자주포도 나왔지만 국지전 상황에서는 티거처럼 가장 필요할 때 힘을 써준 전차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규모의 경제에 역행하는 전차였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평가에 있어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전차겠지만.
사실 영국과 미국은 티거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사용했을지는 의문이다. 바다를 건너야하기도 하고 긴거리를 빠르게 진격해야 하는 영미 입장에서는 40톤급 전차도 부담스러워했던 마당에 60톤급 티거는 수많은 페이퍼플랜 전차들처럼 버려졌을 것이다. 한참 공장을 뜯어 우랄 산맥 너머로 옮기던 대전 초중반 소련의 공업력은 독일에 비해 딱히 뒤진다고 하기는 어려웠고, 티거가 배치되어 본격적으로 활약한 대전 중반기 이후에는 랜드리스로 불리는 무기대여법의 지원까지 더해져 소련의 공업력이 명백히 독일에 비해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랜드리스 덕분에 경공업에 돌릴 자원을 몽땅 전차 생산에 집중할 수 있었긴 했지만 T-34 전차의 생산량만 보더라도 이는 명백하다. 영국 역시 소련과 같은 전차 생산력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무슨 티거같은 고급 전차는 영국에게는 사치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단지 생산력 우위를 기반으로 다수의 중형 전차와 그 중형 전차의 전투를 보조할 수 있는 중전차를 대량 생산 할 수 있던 소련이나 섬나라라는 특성, 그리고 동맹국인 미국의 지원이 있으니 전차에만 집착할 이유가 적었던 영국과는 달리 부족한 생산력으로 막대한 육군 전력을 지탱해야 했던 독일이기에 티거와 같이 소수라도 전술적 상황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일종의 슈퍼 병기에 집착했던 것뿐이다. 말하자면 독일은 어차피 적에 상응하는 규모의 전차를 생산할 수는 없으니 소량이라도 매번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전차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인 데에 비해 소련이나 영국은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우수한 병기에 대한 집착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1990년대에 생존한 2차 대전 참전 전차병 100명을 무작위로 고른 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때 어떤 전차를 골라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100명 모두 티거, 티거 2를 골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티거 전차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도 자서전 서문에서 티거 전차를 명품이라며 극찬하며 티거 전차를 타며 살아남은 모든 이들은 티거 전차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이다. 이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2차 대전 당시의 무기를 비교하는 프로그램에서도 티거와 셔먼이 비교된 적이 있었고 방송 막바지에 이들의 승무원들에게 다시 전차를 타면 어느 것을 타겠냐고 질문을 했었는데, 티거 승무원은 물론 셔먼 승무원도 티거를 골랐다. 러시아인은 물어볼 것도 없다는 투로 미국인은 당연한 걸 물어본다고 째려봤다고.
전차병 출신 노병들의 이런 일관된 고평가는 전차병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각 단차의 전투력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티거 가성비가 어쩌니 하는 문제야 국가 차원에서 높으신 분들이 고민할 일이고, 정비가 안 좋니 마니는 정비병이 짜증낼 일이지, 딱 하나 있는 목숨을 내걸고 전방에서 싸우는 전차병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자신의 목숨을 보장해 줄 높은 방어력과 기동력. 그리고 내 목숨을 위협하는 적군을 확실히 날려버릴 공격력을 가진 전차가 최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독일의 관점을 생각하면 티거는 최선의 선택으로 분류된다. 중전차인 티거를 만들 자원이면 3대의 4호 중형 전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티거의 3배의 4호 전차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해도, 전투력이 압도적인 티거와는 달리 4호 전차는 T-34나 M4 셔먼과 대등한 수준, 그것도 대전 말기로 갈수록 T-34와 셔먼에게 성능이 밀렸으므로[108] 4호 전차 3대가 티거 1대분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도 어렵다. 설사 티거를 포기하고 티거 만큼 4호 전차를 찍어냈다고 하더라도, 티거 2,000대를 4호 전차로 바꾸면 6,000대에 불과하다. 혹자에 따라서는 티거 1대 비용으로 4대로 생각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정도 숫자로는 T-34와 M4 셔먼의 압도적인 생산량 앞에 한 줌에 불과하며, 낮은 정비 소요를 고려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이는 전차가 파괴당하면서 잃는 정예 전차병의 인적 소모를 바탕으로 하는데, 고질적인 병력 부족 문제에 시달리던 독일에게 있어 더 빨리 망하는 짓에 불과했던 것이다. 허구한 날 자원이 모자라던 독일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정예화를 통한 물량의 격차를 극복하는게 가장 타당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높은 정비 소요와 낮은 생산성은 티거의 분명한 문제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티거를 포기하고 4호 전차를 찍어냈다면 독일은 더 빨리 패전했을 것이다.
역으로, 결국 티거가 결국 패퇴하게 된 이유도, 위에 서술된 것처럼 단순히 연합군의 물량이 많아서가 아니다. 연합군 측도 전차의 성능을 개량하고 전차 승무원의 자질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티거의 압도적인 질적 우위는 소련에서는 T-34-85 로 대표되는 85mm 구경의 전차가 나오면서, 미국에서는 M4 셔먼이 76mm 구경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깨진다. 이에 나치 독일은 급히 티거 2를 개발했지만 이미 IS-2와 M26 퍼싱의 물량공세를 막기엔 수량이 너무 부족했다.
9. 운용국
자세한 내용은 6호 전차 티거/운용국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종전 후
전후에는 5호 전차 판터나 4호 전차처럼 주변국/신생국에 보상 공여되지도 못했는데 생산물량 자체가 적었기도 했지만 1945년 4월 이전에 가동 가능한 차량 자체가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계속 소모에 소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베를린 전투에 참가한 차량도 있는 등 최후의 한 대까지 전투가 가능한 상태라면 어떻게든 전투에 투입하고 봤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노획 후 전시된 차량들이 미국과 영국, 러시아에 각 1대씩 있다. 미국과 영국은 티거는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한 이후 추가 노획하지 못했을 뿐더러 작동불능의 티거들이 발견되면 독일군에 의해 다시 운송되어 수리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소련은 1942년부터 운좋으면 노획했다가 1944년부터 줄줄이 노획, 보존 중인 것은 단 1대 뿐이고 나머지는 노획할 때마다 실험 및 자잘한 패전 때문에 선전용으로서 각종 화포의 표적으로 써먹은 탓에 원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현재 지금까지 살아남아 박물관에 남아있는 티거 전차들은 8대로 이 티거를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은 아래와 같다. 추가로 2020년 드론으로 항공 촬영을 하던 중 헝가리 가정집 뒷마당에서 원형에 가까운 녹슨 티거 초기형이 발견되어 총 9대로 증가했다. #
<colbgcolor=#484848><colcolor=white> 영국 | 보빙턴 전차 박물관 | 초기형 북아프리카 사양 131호차[109] |
프랑스 | 소뮤아 기갑 박물관 | 224호차 |
노르망디 Vimoutiers |
311호차 231호라는 곳도 있음 |
|
러시아 | 애국 공원 | 6호 지휘전차 E형 100호차 |
Military-historical Museum of Lenino-Snegiri | 불명 | |
독일 | 개인 소장 | 231호차 |
미국 | 기갑 기병 박물관 | 712호차 |
호주 | 호주 포병 기갑 박물관 | 114호차 |
|
호주 기갑박물관 티거 복원 영상 |
차량번호는 114번인데 대전기 114번 티거1은 1943년 6월~7월 쿠르스크에서 503중전차대대 소속으로 Feldwebel Alfred Rubbel이 전차장으로 탑승하여 참전 했던 사진이 남아 있다.
11. 티거피벨(교범)
|
Tigerfiebel |
도덕과 철학은 그 자체가 때때로 부도덕하다! 딱딱한 표정을 짓는 것은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티거 운용병들은 유머 감각을 익힐 것.
-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이 쓴 서문
티거에 탑승할
전차 승무원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갑총감 사령부 공인 매뉴얼(장비 운용 교범)로, 티거를 의인화한 엘비라 티거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여성의 비위를 맞추는 법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서 티거 전차를 다루는 법에 숙달되도록 이끄는 것이 이 책자의 목적이다. 탈 것을 여성화시켜 부르는 서양 문화에서는 인격화 자체는 특별할 것 없지만 이런 매뉴얼이 군에서 정식 채용된 매뉴얼이란 것이 놀라운 점이다.-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이 쓴 서문
2012년 번역되어 나온 오토 카리우스의 자서전 진흙 속의 호랑이 별책부록으로 완전번역되어 제공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출간이 늦어진 이유가 티거 피벨을 부록으로 주기 위해서였다. 책 자체도 흥미로우니 관심이 있다면 같이 구해서 읽어보면 된다.
또한, 기갑총감 사령부 공인 5호 전차 판터의 매뉴얼인 판터 피벨도 의인화까지는 아니지만 전혀 군용 메뉴얼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걸즈 앤 판처 3화에서는 레이제이 마코가 4호 전차의 조종을 위해 한번 훑어본 PzIV fibel이란 명칭으로 패러디되어 등장한다.
12.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6호 전차 티거/미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13. 모형
13.1. 프라모델
2차 세계 대전의 아이콘과 다름없는 전차답게 어지간한 프라모델 회사라면 안 건드린 곳이 없다. 아카데미과학, 타미야, 드래곤 모델, 이탈레리 등 쟁쟁한 프라모델 메이커에서 티거를 만들어왔으며 각 회사마다 특징이 있다.- 아카데미- 처음에는 타미야 카피본을 만들다가 이후 내부를 재현한 초기형으로 호평받았으나 이 당시 티거의 포탑이 비대칭이라는 것이 알려져 결정판에서 사장되었다. 그래도 내부재현은 준수한 편인데다 연결식 궤도[112], 에칭 그릴 등 가성비는 매우 좋은 편. 포탑 등을 개수한 중기형과 후기형이 나온 상태다. 그리고 초기형 부품과 후기형 부품을 혼합한 하이브리드형을 모형화해서 출시하였다.[113] 특징은 세계최초로 개발된 치메리트 코팅용 데칼이 포함돼 있다. 4D 퍼즐로도 발매되었는데 사막전 사양과 동계 컬러 사양이 있다. 최근 쿠르스크 전투 사양 초기형이 개수된 포탑으로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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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야- 1/35-대칭 포탑 건이 터지자 기존 생산품을 은근슬쩍 비대칭 포탑으로 개수하여 한동안 결정판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드래곤의 난입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결정판의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 조립성은 아카데미보다 약간 좋은 수준이나 가격적 메리트가 없다. DAK 극초기형은 마킹설정이나 전방 머드가드부분에 문제가 있다. 덧붙이자면 에칭부품이 없는 것도 흠.
1/48-초기형, 극초기형 독일 아프리카 군단 사양, 후기형이 존재한다. 초기형은 타미야 1/48의 특징인 다이캐스트 차체로 인해 꽤 묵직하다. 준수한 퀄리티와 적절한 가격이 장점이지만, 단점은 주포가 좌우 분할이라는 점. 사실 키트가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이해할만한 부분이긴 하다.
- 드래곤- 티거에 환장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114] 수많은 티거 바리에이션을 뽑아냈으며 그 중에는 치메리트를 몰드로 새긴 중•후기형이 있으며 비트만 탑승 티거는 초기형 티거의 결정판으로 인정받는다. 이 킷에는 남는 부품도 많아서 다른 회사 티거의 디테일 업용 재료도 된다.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나 에칭, 남는 부품이 가격을 커버한다. 비트만 탑승차량 이후에는 보빙턴의 131호 키트를, 이후 아프리카 군단 사양[115]을 계획하였다. 요즘은 후기형 007호차 '비트만의 마지막 티거'나 카리우스의 중기형도 나왔으나 후기형 찌메리트 버젼은 초기몰드의 찌메리트 품질이라 표면이 투박하고 거칠다. DAK 6608은 극초기형의 결정판으로 기존의 타미야 DAK 극초기형을 일격에 사장시켜버렸다. 물론 사이버하비의 화이트박스 DAK를 일반화한 제품이지만 그것과 다르게 전방 머드가드의 형태를 정확하게 재현해놓았고 그외 자잘한 면이 대폭 수정되어서 화이트박스의 존재의의도 없애버렸다.
- 이탈레리-가격 자체는 저렴하나 대칭 포탑 및 비교적 낮은 퀄리티로 사실상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에칭과 반연결식 빈터케텐(동계용 궤도)를 추가하고 치메리트가 기본으로 붙어져 있는 고급형도 나왔다. 이탈레리 제품의 문제는 금형 기술이 부족한지 차체와 포탑을 통짜로 뽑아내지 못해 면단위로 부품 분할한 곳이 너무 많으며 반연결식 캐터필러의 경우 곡면을 따라 둥그렇게 조립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어 제대로 자연스러운 캐터필러를 만드려면 타사의 별매 연결식 캐터필러를 구입해서 쓰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사실 티거만이 아니라 이탈레리의 모든 제품이 그러한데 '만들 땐 뼈빠지지만 만들고 나면 보기 그럴듯하다'는 게 거의 회사의 정체성이 될 지경이다. 그래도 항공기로 유명한 왕년의 모노그램 키트들에 비하면 이탈레리는 양반이다.
- AFV CLUB- 금속제 포신과 가동식 서스펜션을 재현하였으나 치메리트를 해주어야 하고 부품을 잘게 나눠놓은 탓에 조립성은 그렇게 좋지는 못한 편이다. 하지만 타미야보다 저렴하고 퀄리티는 미세하게 높은 편. 연질궤도는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나 붙이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다른 티거 키트에 비해 포탑 높이가 너무 높고 용접선 묘사는 부족하다. 단, 1/48 스케일의 티거는 결정판[116]에다 후기형의 경우, 치메리트가 몰드 처리다.
- Rye Field Model- 2015년 여름,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메이커로 첫 제품으로 다름 아닌 아프리카 군단 501 중전차 대대 사양의 극초기형 티거를 발매했다. 발매 이후, 사이드 스커트 장착 볼트 위치 오류, 두꺼운 배기구 커버 기둥, 과장된 용접선을 빼면 뛰어난 프로모션을 보여줬고 이 때문에 2005년에 딱 한 번 아프리카 군단 티거를 한정판으로 발매하고 그 이후, 생산하지 않는다던 드래곤에서 부랴부라 아프리카 군단 티거를 계획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최근 DS 연질궤도만 넣어주던 드래곤과 달리, 가동식 궤도를 넣어주면서 드래곤보다도 저렴해 화제가 됐다. 또한 2015년 11월엔 내부재현형 티거 초기형, 정확히는 쿠르스크 전투 당시에 503 중전차대대 3중대 소속 차량을 발매했는데 고퀄리티다. 가장 정밀한 내부재현 티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메리트가 있을듯.[117] 이후 아카데미처럼 페르만 전투단 소속의 하이브리드 사양의 티거도 발매했는데 꽤 비싸다.
- 트럼페터- 88mm 71구경 장착 사양 티거인 VK 45.02(H)를 발매하였다.
13.2. 종이모형
- 워게이밍 러시아서버에서 배부중이다.
- 페이퍼레플리카-티거 초기형의 도면을 구할 수 있다. 본인이 직접 도색할 수 있는 것도 덤이다.[118]
13.3. 브릭
-
옥스포드 완구
MILITARY WW2라인업으로 나왔으며, T-34, 5호 전차 판터, 윌리스 MB랑 같이 발매되었다.[119] 옥스포드답게 후한 악세사리는 물론이다. 다만, WW2 초기라인업인지라 해치가 탈부착식이고 들어있는 피규어는 전원 장교모자를 쓰고있다. 이는 아직 슈탈헬름 같은 부품이 개발단계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일군 일반병사는 P-38[120], P-51[121]에서나 얻을 수 있다. -
코비
8천 브릭으로 만들어진 131호차가 발매되었다. 제작 스탭이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출장을 가는 뉴스에 이어 내부와 보기휠 서스펜션까지 재현한 모델을 발매하였다. 해당 기업의 역대 모델 중에 가장 브릭이 많은 모델이며 포신까지 포함하면 길이 70cm, 너비 30cm의 정신나간 사이즈를 자랑한다. 브릭 수를 생각하면 무게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됨. 아직 대한민국에 정식 수입되지는 않았으며 가격은 무려 599유로. 1
14. 참고문헌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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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99> 전차 | 1호 전차 · 3호 전차 · 6호 전차 · 6호 전차 B형 · 카노넨야크트판처 |
제2차 세계 대전기의 헝가리군 기갑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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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헝가리 왕국군의 기갑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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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경전차 | <colbgcolor=#fefefe,#191919> 35M 안살도, 37M 안살도, TKS, C2P, 르노 UE, 1호 전차, 38M 톨디, 42M 톨디 II, 42M 톨디 IIA, 43M 톨디 III, T-38, 호치키스 H35, 호치키스 H39, V-3, V-4 | |||
중형전차 | 40M 투란, 3호 전차, 4호 전차, 5호 전차 판터, 소뮤아 S35 | ||||
중전차 | 44M 타스, 6호 전차 티거 | ||||
노획전차 | T-27, T-34-76, T-34-85, T-28, T-70, T-26S, BT-7, BA-6, T-20 콤소몰레츠, M3 스튜어트, M3 리 | ||||
장갑차 | 39/40M 처버, AB41 | ||||
자주포 | AHD, 마르더 II, 톨디 판셀바다즈 | ||||
돌격포 | 43M 즈리니 II, 44M 즈리니 I, 3호 돌격포 | ||||
구축전차 | 헤처 | ||||
차량 | 38M 보톤드, 오펠 블리츠, Kfz 70, 37M | ||||
자주대공포 | 40M 님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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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 헝가리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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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루마니아군 기갑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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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루마니아 왕국군의 기갑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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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1126> 장갑차 | Sd.Kfz. 222, OA. vz. 27, OA. vz. 30, SPW ușor, SPW mijlociu, Şeniletă Malaxa tipul, T-20, AB40/41, BA-10, BA-3-2, CKD Praga TN SPE 34/TN SPE 37 | ||||
전차 |
<colbgcolor=#ce1126> 경전차 | 르노 FT, 르노 R35, T-60, T-26BC, T-26SC, R-1, R-2, R-2a, R-2c, T-37A, T-38, BT-7C, 톨디 경전차C, 7TP | |||
중형전차 | T-3, T-4, T-5, C.L.T 34C, T-34-85, R-3, V-8-H, M3 중형C | ||||
중전차 | KV-1C, 6호 전차 티거C, IS-2C | ||||
대전차자주포/구축전차 | TACAM T-60C/M, TACAM R-2M, TACAM T-38M, R35 대전차자주포M, 마레샬 구축전차C/M, 헤처C | ||||
돌격포 | TAs T-3, 43M 즈리니C | ||||
차량 | Sd.Kfz. 8, Sd.Kfz. 11 | ||||
※ 윗첨자C: 노획차량 ※ 윗첨자M 자국생산 및 개조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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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 루마니아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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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기의 폴란드군 기갑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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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fefe,#c0392b>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군의 기갑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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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 차량 | 피우수트스키 장갑차, 포드 Tf-c, 오스틴-푸틸로프O, 제프리-포플라프코O, 가포드-푸틸로프O, 에르하르트 E-V/4O, 피어리스O, 피아트-이조르스키O, 푸조O, 카든 로이드 Mk.VIO, 르노 FTO, 르노 M26/27O, 르노 NC-27O, 피아트 3000O | ||
전차 | <colbgcolor=#fefefe,#c0392b> 탱켓 | TK-3, TKF, TKS | |
경전차 | 7TP, 빅커스 Mk. EO, 르노 FTO, 르노 R35O, 호치키스 H35O | ||
프로토타입 | TK-1, TK-2, TKW, TKS-B, PZInż.160, 4TP, 9TP, 10TP, PZInż.130 | ||
페이퍼플랜 | 13TP, 14TP, 53TP | ||
장갑차 | 경장갑차 | 푸조 장갑차O, Wz.28, Wz.34 | |
중장갑차 | Wz.29 우르수스 | ||
대전차 자주포 | TKS-D | ||
자주포 | TKD | ||
군용차량 | 모터사이클 | MOJ 130, 소쿠우 200, 소쿠우 600, 소쿠우 1000, 포드코바 98 | |
차량 | CWS T1, PF-508 와지크, PF-518 마주르, PF-508/518, 라플리 V15RO, 르노 AGKO, PF-618 그롬, Wz.34 하프트랙, 라틸 FB6O | ||
군용트럭 | PF-621L, PF-621R, 우르수스 A, 프라가 RVO, 베를리에 CBAO, 쉐보레 157 | ||
견인차 | PZInż.302, C2P, C4P, C7P, 시트로엥-케그레스 B2 10CVO, 시트로엥-케그레스 C6 P14/17/19O | ||
자유 폴란드군 장비 | 르노 FT, 르노 R35, 르노 R40, A13 Mk.III, 마틸다 I, 크롬웰, 크루세이더, 처칠, M3A3 스튜어트, 셔먼 I, 셔먼 IIA, 셔먼 IB, 셔먼 III, 셔먼 V, 셔먼 VC, 셔먼 IC, Mk.I 아처, 유니버설 캐리어, M3 하프트랙, 험버 장갑차, M6 스태그하운드, 모리스-커머셜 LRC, AEC 도체스터 ACV, M10 GMC, 3호 전차G형O, 4호 전차O | ||
폴란드 인민군 장비 | T-34-76O / T-34-85O, T-70O, IS-2O, BA-20O, 윌리스 MBO, BA-64O, M4A2 (76)O, BA-64, SU-57O, SU-76MO, SU-85O, ISU-122O, ISU-152O, 유니버설 캐리어O, M17 MGMCO | ||
폴란드 국내군 장비 | 쿠부시, Sd.Kfz. 251 D형O, BA-20MO, BA-202(r)O, M14/41O, 헤처O, 4호 전차H형O, 5호 전차 판터O, 6호 전차 티거O | ||
※ 윗첨자O: 타국에서 구매, 공여 및 노획 | |||
※둘러보기 :
폴란드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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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기의 캐나다군 기갑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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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캐나다군의 기갑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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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 <colbgcolor=#fefefe,#393b42>모리스-커머셜 LRC, 다임러 장갑차, 험버 Mk. IV 장갑차, 폭스 장갑차 | ||||
정찰차량, 기타 차량 | 링스 정찰장갑차, 모리스-커머셜 LRC, M3 스카웃 카, M6 스태그하운드, 험버 Mk. I 정찰차, 오터 LRC 경정찰차량, 쉐보레 CMP FAT 전장전개형 포병 트랙터, C15TA 장갑 트럭, 브렌건 캐리어 | ||||
전차 | 경전차 | M2A4, M3 스튜어트, 경전차 Mk.VI, M24 채피 | |||
중(中)형전차 | M3 리/그랜트, 셔먼 I, 셔먼 III, 셔먼 IV, 셔먼 V, 셔먼 VC | ||||
중전차 | Mk.VI | ||||
순항전차 | 센토어 IV, 그리즐리 I, 램 Mk.I, 램 Mk.II | ||||
보병전차 | 처칠 Mk.I, 처칠 Oke, 마틸다 II, 밸런타인 Mk.VII, Mk.VIIA | ||||
화염방사전차 | Ram Badger flame tank | ||||
자주포 | 비숍, 섹스턴, M7 프리스트 | ||||
대전차 자주포 | M10 GMC, M10 아킬레스, 아처 | ||||
자주대공포 | Crusader III, AA Mk.I, Mk.II/III, 스킹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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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차량 둘러보기 | ||
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판저캄프바겐 잭스 아우스퓌룽 E.
[2]
독일어로 티거 아인스라고 읽으면 된다. 티거란 별칭을 붙여 준 사람은
페르디난트 포르셰다.
[3]
이런 외형 탓에 오버로드 작전 등에서 연합군이 티거와 조우했다는 보고 중 상당수는 스커트 장착 개수를 받아 비슷한 실루엣을 가진
4호 H/J형이었다.
[4]
3대는 회수, 1대는 폭파 처리했지만 완파되지 않았고 그 한 대를 소련군이 확보하면서 귀중한 연구 자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5]
공차중량이 약 60톤이나 될 정도로 장난아니게 무거운 전차다 보니 진창에 한번 제대로 빠지면 기동불능 상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6]
2개 중대만이 티거를 배치받았고 나머지는
3호 전차 N형으로 편성되었다.
[7]
출처: Christopher W. Wilbeck, Sledgehammers: Strengths and Flaws of Tiger Tank Battalions in World War II.
[8]
미하엘 비트만이 티거 에이스로서의 능력을 처음 보인 게 이때였다.
[9]
단, 1944년부터 크니스펠은 티거의 후속작인
티거 II 중전차를 지급받고 최후까지 전투를 치렀다.
[10]
1944년 전투 도중 부상으로 훈련소 교관으로 활동하다 종전을 맞이한다.
[11]
오토 카리우스의 중대 소속으로 카리우스가 가장 신뢰한 전차장이다.
[12]
76mm T4/M93 HVAP 탄은 1944년 말에야 시험적으로 전차당 한두 발씩만 지급됐고, 1945년 2월에서야 제식 채용돼 대량 보급됐다. 티거의 전장 데뷔는 1942년, 생산 종료는 1944년 8월(45년 4월까지 생산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건 신규생산 종료 후 파손된 채로 회수된 티거의 부품을 조합해 만든 재생 차량이다. 일명 좀비 티거. 얼마 전까지 하이브리드 티거와 혼동되었으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산된 차량이다.), 그리고 독일이 항복한 유럽 승전 기념일이 1945년 5월 8일이다.
[13]
152mm 고폭탄 직격이면 현대의 3세대 전차조차도 전투불능 확정이다.
[14]
독일군은 중전차 대대를 구성해 독립적으로 운용하며 여기 배속된 전차병들은 탑승한 전차를 손실하거나 부상을 입어 후방으로 후송을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닌 한 보직이 변경되는 일이 드물어 상대적으로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승무원들이 많았다. 물론 신규 편성되는 중전차 중대의 경우 3호나 4호를 타다 옮겨 오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돌격포를 타다 전입해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티거는 중전차대대로 독립적으로 운용되었다). 후에 506 중전차 대대 4중대로 배속된 둥키르헨 구원 임무 중전차 중대도 첫 실전에서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다가 티거 하나를 완전 손실당했다.
[15]
지휘 전차는 동축기관총을 제거하고 추가 무전기를 장착했으며 탄약수가 조작한다.
[16]
1944년 이후에 제작된 후기형은 연합군 공군의 기관포 사격과 박격포 때문에 40mm로 강화됐다. 전차장용 큐폴라(탑승및 관측용 해치) 역시 이 때 개선됐다.
[17]
41년 기준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십만 달러쯤 되었다. 현재 가치로는 약 1,282,051달러가 되며, 대한민국 원화로 환산할 경우 14억 6282만 191원이다.
[18]
현재 남은 차량 중 여덟 대는 복원 중이거나, 박물관에 있다. 유일한 개인 소장 차량이 있긴 하나, 취득가는 알려지지 않았다.
[19]
사실 한글로 한국어를 표기할 때에도 장음은 표기하지 않는다. 예로 눈, 말 등이 있다.
[20]
독일어 모음들은 뒤에 자음이 1개만 오면 장음으로 발음된다. i와 ie 둘 다 복모음이 아니고 한 개의 모음취급이며, Tiger에서의 i와 ie는 둘 다 장음이다.
[21]
사람들이 많이 혼동하는데 티거는 모스크바 점령을 위해 개발된 공세용 병기이다. 80mm의 우수한 후방장갑이 그 증거이다. 전황이 악화되면서 방어전에 더 많이 쓰이게 됐고 방어전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며 소방수로 유명해졌을 뿐이다.
[22]
갑론을박 중이던 주포가 이때 갑작스럽게 8,8cm로 결정되는데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히틀러가 새로 계획하던 1942년의 하계공세 청색 작전 Fall Blau때까지 양산을 들어가려면 신형 주포 개발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가 큰 이유이다. 실제 티거는 VK 45.01 설계가 확정된 4월부터 불과 4개월 만인 8월에 첫 양산품이 롤아웃된다.
[23]
이에 맞춰 각각 45대 완편으로 헨셸 티거 기반의 502중전차대대, 포르셰 티거 기반의 501 및 503중전차대대가 편성 및 훈련이 진행되었다.
[24]
중거리 이하에서는 7,5cm L/70의 관통력이 더 좋다.
[25]
즉 독일 설계자들이 경사 장갑을 모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정말 몰랐다면
후기형 티거나
판터처럼 경사장갑을 가진 전차가 생산됐을 수가 없다.
[26]
https://youtu.be/98JbJuXE3JE?t=639
[27]
다만 이건 설계도만 존재한다.
[28]
M3 리의 75mm 포탄의 탄자 붕괴 현상 덕분에 대전차전에 에로사항이 생겨 병사들은 4호 전차의 탄두를 노획하여 장착하는 임기응변을 했으며, 4호 전차의 탄두는 작약이 들어있어서 신형 탄두가 보급되어도 꽤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29]
노란색은 탄자 붕괴 영역, 주황색은 거의 관통되지 않은 영역. 시뮬레이터의 거리 부분은 오차가 좀 있는 편이다.
정면과 측면 피탄각에 따른 관통거리 변화량을 주로 참고.
[30]
소련에서 실사격으로 테스트한 결과 IS-2의 측면, 그것도 차체를 1km 거리에서도 못 뚫었다. 반면 티거 2에 장착되는
8,8cm KwK 43 L/71 포는 IS-2의 두꺼운 전면부를 2.6km 밖에서 쉽게 관통할 수 있었다.
[31]
물론 티거의 평균 교전거리는 1km 전후로서 이것으로 2차 대전 전차가 2km 이상 떨어진 전차 격파를 일반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건
탑승자의 숙련도와 해당 전차와 포, 포탄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가능한 일이다.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컴퓨터 사격통제장치가 달린 3세대 전차인
T-80이 1,500m에서 66% 명중율을 보인다.
[32]
정확히는 제펠자파에서 약 10마일(16km) 북동쪽에 위치한 174고지
[33]
카셀의 헨셀 공장에서 생산된 초기형 티거로 1중대 3소대의 1호차가 되면서 131호가 되었다.
[34]
당시 영국군 제 48 전차연대 소속
처칠 전차 1개 소대가 선제 공격을 하여
6파운더 포 세 발을 명중시켰다. 이 포는 500m 이내에서 티거의 전면 차체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데다, 공격을 당한 부분이 치명적이였는데, 첫 번째 탄은 포신에 맞고
도탄되었는데 하필 이게 튕겨나오면서
포방패 아래를 강타했고(
Shot trap), 포탑링이 파손되어 포탑의 회전이 불가능해진다. 이때 생긴 파편이 상면 장갑을 관통하고 차 안으로 튀어서 조종수와 통신병에게 부상을 입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두 번째 탄은 포탑측면의 기중기용 돌출부에 명중, 이 또한 도탄되었으나 이 포탄은 포신 아래의 주포 상하작동기구를 파손시켰다. 그리고 세 번째는 문제가 많았던 해치에 명중했다. 결국 131호차 승무원들은 탈출(혹은 영국군에 의한 사살 추정)하여, 영국군이 131호를 노획하게 된다. 티거 131호는 현재 영국의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35]
다만 포방패 아래를 강타한 포탄은 처칠의 6파운더가 아닌 당시 174고지를 방어하던 셔우드 포레스터스 대대가 노획한 대전차포의 포탄일 수도 있다고 한다.
[36]
항공기용 엔진 제외.
[37]
선회반경은 각각 티거 3.44m / 셔먼 18.6m / T-34 7.7m / 4호 전차 5.92m였다.
[38]
4호 전차까지만 해도 궤도의 윗부분을 따로 지탱해주는 리턴롤러가 있었지만 리턴롤러 없이 교차식 서스펜션을 쓴 판터와 티거는 궤도 이탈이 매우 잦았다. 다른 예로는 T-34나 74식 전차. 이 문제점 때문에 현대 전차들은 대부분 리턴롤러를 장착한다.
[39]
이 때문에 산악지형이 많은 이탈리아에서는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른 적도 없이 기동 중 대부분의 차량을 잃었다. 고딕 라인 방어전 동안 64대를 손실했지만 이들 중 적이 격파한 차량은 5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얼마나 문제가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이때 티거와 달리 맹활약을 펼친 차량은
나스호른.
[40]
실제로 구동계통에는 병기국의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해 집어넣은 신형 광폭 궤도를 제외하고는 티거 전용 신규설계가 적용된 것이 없었고, VK 36.01의 구동계 부품을 그대로 유용한 부품이 대다수였다. 심지어는 더 이전의 설계안인 VK 30.01의 부품도 일부 섞여있었다. 그리고 그 궤도마저도 수송용 궤도는 헨셸의 기존 30톤대 전차의 일반 궤도였다.
[41]
Thomas Jentz; Hilary Doyle, Tiger I Heavy Tank, Osprey Pub., 1993, p.18
[42]
특히 M1은 에어필터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고 이전에 비해 급증한 연료 소비로 인한 보급부담과 기타 문제로 인해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43]
사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할 때에는 그에 걸맞은 오류를 겪을 수밖에 없다. M1전차의 경우 MMBF(mean miles between failure)가 목표치인 272는커녕 104.3 밖에 안 되었고 포트 녹스에서 시험할 때는 93.97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육군이 요구한 최소요구치는 320, 권장은 350 MMBF인데 한참 모자랐다. 당시 M60 전차는 같은 조건에서 생산 된 지 12년이 되었을 때는 242, M1테스트 당시에는 407정도였다. 에어 필터와 연료배관의 설계가 불완전했고, 연료배관에 문제가 있어 연료가 새는 데다 노즐은 균열이 쉽게 생겼고 변속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에어 필터 설계 문제로 터빈 블레이드가 손상되는 경우도 빈발했다. 궤도는 심심하면 이탈했다. 군수지원 체계도 미비해서 한 때는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 제대로 된 교범조차 없어 상황에 즉흥적으로 대응했다.
[44]
해치, 잠망경, 주포 및 기관총좌를 전부 고무로 밀폐해야 하는데 티거 여러 대에 이 짓을 하고 있느니 부교를 놓는 게 빠르고, 도하 중 차량에 침수가 발생하면 전차와 승무원이 훅 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K-21 참고.
[45]
출고 시에는 방수 처리가 온전하겠지만 방수처리된 부분에 피탄이 발생한 이후에는 어찌될지 모른다.
[46]
오토 카리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502 중전차대대의 어떤
상사가 전차장으로 있던 티거는 특히 운이 없어서 움직이기는 하는데 전진을 못하고 맨땅에서 땅만 파거나, 여러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티거를 전복시키거나 고장내는 등
비전투손실이 부지기수였고, 해당 전차장은
소비에트 연방영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47]
출처: 오토 카리우스, <진흙 속의 호랑이>.
[48]
티거만 그랬던 건 아니고 영국군의
처칠 전차도 파워핸들이 달려 나왔다.
[49]
총 126대 투입 105대 손실, 38대 전투손실, 13대 항공기에 의한 격파. 출처:Tigers in Combat, Vol. 1: Wolfgang Schneider
[50]
사실상 연합국과 소련은 1943년 중후기만 가도 독일이 승리할 가망이 없다는걸 알고 있었다. 독일또한 마찬가지로 느꼈을 것이다.
[51]
단 사진의 104호차는 포탑 측면 양 쪽에 보다 단순한 형태의 게펙카스텐을 추가로 달았다.
[52]
흔히 저먼 그레이라고 부르는 색이다.
[53]
상단 사진은
미하일 비트만 탑승차량이다.
[54]
전면 장갑에 한자 복자를 거꾸로 쓴 차량
[55]
단, 아래쪽 사진의 E형 지휘전차 100호차는 H1형 처럼 전조등 2개가 양쪽에 달려있다.
[56]
판터도 최후기형인 G형에서 조준경이 1개로 줄어드는 공통점이 있다.
[57]
일반적으로 대전기 당시 독일의 중전차들이나 대부분의 전차들은 "중대 번호"-"소대 번호"-"소속 소대의 차량 번호" 순서의 3자리 숫자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Ex:
217호 티거 = 2중대 1소대 7호차) 페르만 전투단일 경우는 첫 자리인 중대 번호를 F으로 통일하고 뒤의 두 자리만 숫자를 넣었다.
[58]
사진은 목업.
[59]
상단 사진의 차량은 포탑은 유지한 채 포신부만 크레인 윈치로 변경한 차량이다.
[60]
포탑 오른쪽(전차장 감시탑)이
오토 카리우스다. 1번 전륜의 외측 한장이 빠져 있는데 이는 기동륜과 로드휠 사이에 이물질이 끼어 기동의 방해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 뒤에 완충 고무가 빠진 로드휠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61]
오토 카리우스와
요하네스 뵐터 등이 복무한 대대이다.
[62]
쿠르트 크니스펠이 복무한 대대이다.
[63]
티거를 운용한 모든 대대를 통틀어서 kda가 제일 낮다. 실제로도 실전에서 비전투손실로 대량의 전차들을 날려먹거나 말도안되는 졸전만을 반복한 부대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중전차대대 문서에서 서술한다.
[64]
미하일 비트만이 복무한 대대이다.
[65]
비교적 상태가 나쁜 차량을 해체해서 부품으로 유용한 것이다. 대대에 따라서는 차량의 20%까지도 이런 식으로 소모되었다.
[66]
티거의 교환비 도표의 1차 출처는 Tigers in Combat, Vol I&II, Wolfgang Schneider, 2차 출처는
Tiger I infomation center이다.
[67]
자세한 것은
미하엘 비트만 문서 참조.
[68]
자세한 것은
오토 카리우스 문서 참조.
[69]
이건 티거만의 특징은 아니고 대부분의 전차가 회수만 되면 정비 후 재투입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70]
오토 카리우스는 어차피 자폭할 상황이면 X된 것이고, 자폭할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든 상황을 극복할 만한 것이기 때문에 자폭용 폭탄 대신
슈냅스라는 독일 토산주를 넣어두었다고 그의 회고록 《진흙속의 호랑이》에서 밝혔다. 자폭장비보다는 술이 동료들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71]
티거 초기형은 1942년 8월부터 1943년 6월까지 347대가 생산, 중기형은 1943년 7월~1944년 1월 동안 478대 생산, 후기형은 1944년 2월~1944년 8월 동안 530대 생산했다.
[72]
물론 고장이 덜 나서 그런 건 아니다.
[73]
동부전선에서는 땅이 진흙탕이 되기 일쑤니 잭과 크레인이 있더라도 별로 다를 게 없었다.
[74]
티거 총 생산량이 약 1,350대인데, Sd.Kfz. 9의 생산량은 약 2,500대 밖에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중포를 견인하느라 빠져야 했다.
[75]
이 고증을 따라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테일즈 오브 밸러의 캠페인중 하나인 '티거 에이스' 첫 미션에서 엔진이 고장나서 가만히 앉아서 수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툭하면 발생한다. 오죽하면 미션 도중에 "슬슬 엔진 나갈 때가 됐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행히도 승무원이 나가거나 하진 않고 차내에서 수리하는데다가 이 캠페인에서 티거는 전차 무쌍을 찍는다.
[76]
1943년 2월 11일, 로스토프 전선에서 76.2mm 포탄 11발, 45mm, 57mm 대전차포탄 14발, 14.5mm 대전차소총탄 227발, 대전차지뢰 3발을 맞고도 소련군을 유린한 후 60km 떨어진 아군 부대로 무사히 자력으로 복귀한 직후의 사진이다. 즉, 등장 초기의 티거는 사실상 격파수단이 없었던 소련군에게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77]
그런데 소련은 HEAT는 그렇다 쳐도 APCR은 영미보다 훨씬 더 많이 보급할 수 있었다.
[78]
승무원이 이를 수리할 수 있다고 해도 전투 중에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아군이 어느정도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구난전차가 있다면 모를까, 사실상 전투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다.
[79]
곡사 사격 및 신관 지상폭발 설정의 이야기다.
[80]
소련제 구축전차나, 자주포가 생긴게 비슷한 차종이 많다는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역할이 꽤 상이하게 다르다.
[81]
소련군은 SU-152 등을 '맹수 사냥꾼' 등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독일 측의 자료에 의하면 효과는 신통치 못했다고 한다. 명중률도 떨어지는데다 장전 속도도 길어서 선빵을 날리고도 역으로 반격당해서 격파당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애시당초 이건 대전차포가 아니라 축성진지 파괴용 야포이기 때문이다.
[82]
소련에서 실시한 실사격 테스트에서 티거의 88mm는 IS-2의 차체 측면을 1km 밖에서도 관통하지 못했다. 200m라는 초 근거리에 와서야 측면 포탑관통이 가능했다. 88/71포가 전면을 2.6km 밖에서 뚫은것과 대조적인 관통능력이였다.
[83]
본질적으로 소련과 독일의 중전차 운용 교리는 유사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독일식 중전차는 전선에서 구멍을 메꾸는 역할을 맡지만, 소련식 중전차들은 적의 전선의 취약점을 노려 전선을 찢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끊임없이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독일군 중전차와 다르게 소련군 중전차들은 임무를 완수하면 뒤로 빠져버린다. 이러한 운용교리 때문에 IS 시리즈의 분당 사격횟수와 휴행탄 수 부족이 소련군에게 큰 단점이 되지 않은 이유다.
[84]
6.25에서 T-34를 상대로 쓸모없다는 오명을 뒤짚어쓰기도 했다. 실제로는 320m 이내에서는 전면도 뚫을 수 있다.
[85]
미육군은 티거 격파 보고가 올라오면 즉시 전수 조사를 했다고 한다. 미군 기록으로 1944년에
M8 그레이하운드로 티거를 잡았다는 사례가 있기는 한데 다른 전차를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레이하운드 문서 참조.
[86]
대부분 티거라고 보고 된 전차들은 4호 전차였다.
[87]
병기국이 제대로 알았더라도 아이젠하워를 위시한 사령부나 말단 병사에게까지 제대로 교육되지 못했다.
[88]
실전에서 15도는 사실상 수직이다.
[89]
판터는 15만 라이히스마르크, 4호 전차는 12만 라이히스마르크.
[90]
쉽게말해 30만명이 1시간동안 일하면 티거 한대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전차 한대를 몇명이 만들까? 아무리 많아도 한 공장에 생산직은 천 단위밖에 근무하지 않을 것이다.
[91]
본래는 원정이 홈그라운드보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이고 모든면에서 철저하게 불리하지만 보급을 지속적으로 원활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고 공업력에 장기적으로 타격을 줄 만큼 장기화할 능력이 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다시 말하지만 일반적으론 원정이 모든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92]
특히 소련은 독일이 공장을 점령할 것 같으면 공장을 폭파하거나 최대한 챙길건 챙긴 다음 버리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장을 떼어다가
그냥 독일 전차가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 못 할 곳에다가 옮기는 걸로 해결했다.
[93]
영국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역사상 최전성기이던
대영 제국 시절, 그것도
빅토리아 여왕 이후로 쭉 이어지던 대영 제국의 최전성기 시절이었고, 미국 역시 이때부터 이미 혼자서 유럽 전체의 공업력을 웃도는 병참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 항복한 프랑스마저 순간 동원가능 병력이 독일을 훨씬 웃도는 600만 이상이었다. 거기에 세 나라 모두 자체적으로 개발&생산한 전차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모든 식민지를 포함한 영토를 다 합치면 지구 육지의 3분의 1 이상이 이들의 영토였다. 물론 연합국은 개전 10년전에
대공황을 맞긴 하지만 이 영향은 독일이 더 받으면 받았지 연합국들이 더 크게 받지는 않았다. 애초에 전쟁의 원인이 된 나치당이 득세한 이유가 대공황이다.
[94]
영국은 이탈리아를 단숨에 몰아냈으나, 이것이 히틀러의 주의를 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에르빈 롬멜은 이탈리아를 도와서 '적당히' 영국을 쫓아내라는 상급자의 의향을 무시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북아프리카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이때 겨우 한숨을 돌린 영국도 원래는 '2선'급으로 취급하던 북이탈리아 전선에 위기감을 느끼고 정면대결을 벌이게 된다. 물론 어차피 유럽 본토에서 밀려난 이상 북아프리카 전선은 영국이 언젠간 장악을 하려고 노력하는 때가 올 수 밖에 없다.
[95]
물론 후기형으로 갈수록 S-Mine, 연막탄 발사기 등 간략화되는 부분이 많기에 숙련도 향상과 겹쳐서 생산시간 자체는 줄어들었다.
[96]
히틀러의 밀리터리 동호인 성향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런 방식이 히틀러의 입맛에 맞았을지도 모른다.
[97]
Jonathan Parshall,
2013 International Conference on WWII - Kursk The Epic Armored Engagement
[98]
그나마 믿을만한 3호는 앞날이 불투명하고, 4호는 물장갑이고, 1,2호는 그냥 장갑차나 탱켓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었다. 체코에서 38(t)를 반강제로 도입했듯이, 독소전 초기의 독일군은 노획한 T-34에게 형식번호까지 매길 정도로 애용했다. 그 외에도 좀 쓸만해보이는 적군 전차는 가능한 노획해서 2선급이나 후방 치안 유지용으로 사용했다. 전차만 이런 것이 아니라 적군의 화포까지도.
마르더2의 주포가 소련제인 건 다 이유가 있다.
[99]
이 인력 어쩌고 하는 부분이 바로 나치의 병맛을 더더욱 맛 볼 수 있는 부분으로서 이렇게 인력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점령지의 유대인과 슬라브인들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인력으로 사용하는 대신 안그래도 그 부족하다는 자원을 퍼부어서 저런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끝까지 몰두한다. 즉, 위에서 보았듯 나치는 그 부족하다는 공업력을 스스로 망치는 한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그 부족하다는 가용 인력도 스스로 자진해서 까먹어 준 집단이었다. 스스로 실드거리를 없앤 한심한 집단이다. 물론 나중엔 대전기 말 소련군도 지나친 사상자로 인한 인적 자원 부족이라는 어려움을 겪게되긴 하지만 여전히 동일 시기의 소련군은 독일군의 수를 점점 압도하면 압도했지 감소하진 않았다. 연합군은 수적우위를 바탕으로 살아남은 베테랑들이 계속해서 신병들을 훈련시켜 전체 병력의 상향평준화를 꾸준히 일궈나간 반면에 독일군은 초반에 대활약하던 베테랑들이 지속된 소모전으로 죄다 죽어나가서 후반부에는 소련군한테조차 질적으로 딸리는 신병 등의 급조된 인적자원을 우겨넣어야 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질에서마저도 소련에게 밀리게 되자 독일의 인적자원은 압도적인 속도로 줄어들어갔다.
[100]
그 결정판이 바로
페이퍼 플랜과 황당한
시제품,
나치의 비밀무기로 알려진 병기들이다. 나치는 적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무기가 아니라 적을 효과적으로 놀래킬 수 있는 무기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맨 집단이란 평가가 나온 건 이 때문이다.
[101]
다만 미국 정도로도 충분히 치트키인 것이, 셔먼 전차와 T-34 전차의 생산성은 많이 차이났다. 독일의 장인정신이 어쩌고 그런말이 많이 나오는데, 셔먼 전차만 해도 T-34에 비하면 굉장히 복잡했고, 본토가 침공당해 전시 상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특성상 자주 중요한 부품마저 생략되던 일이 잦던 T-34에 비해 항상 설계 그대로 충실하게 제작되었음에도 동일한 수를 생산했다.
[102]
다만 이 차트가 명목 GDP인지 실질 GDP인지에 따라 해석이 좀 달라진다. 실질 GDP라면 공산권 국가들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103]
앞에서도 언급했듯 여러가지 이유로 스스로의 공업력을 까먹는 나치와 가능한 병기 생산 모델을 줄여서 소규모 모델로 통일하여 애초부터 닥치는대로 뽑기 좋게 만들었던 소련의 산업시스템 차이도 있다.
[104]
렌드리스는 실질적으로 1943년 이후부터 제대로 기능하기 시작하였고, 렌드리스로 소련이 직접 수혜를 본 것은 주로 항공 산업이다. 전차 장갑, 엔진 정도는 소련도 양산할 수 있는 물건이고 기술력이 뒤쳐지는 분야도 아니었지만 항공 산업에 필수적인 고옥탄 가솔린/윤활유 등을 생산하는 정유 기술이나 두랄루민 관련 기술이 떨어졌기에 이 분야에서 지원을 많이 받았다. 다만 철도 차량, 수송 트럭, 야포 견인용 트랙터, 하프 트랙 등 전차와 비슷한 자원/기술/생산 라인을 공유하고 광대한 전선의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런 물건들에 있어선 렌드리스의 비중이 매우 컸으므로 렌드리스가 간접적으로는 소련의 전차 생산에 크게 기여했다. 렌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은 전차 등 병기 생산에 주력하던 생산력의 상당 부분을 이런 보급 차량 생산으로 분산시켜야 했을 것이다. 항공기든 전차든 할 것 없이 각 단차/기체마다 유기적 작전을 위해 꼭 필요한 무전기 역시 대부분은 렌드리스로 지원 받았다.
[105]
단적으로 당시 추축국과 연합국을 막론하고 실전에 투입된 주력 전차들 중 포탑링의 지름(1,800 mm)이 가장 컸다. 이는 자연히 넓은 실내공간으로 이어진다.
[106]
셔먼을 위시한 미군 전차들은 편의성은 좋았지만 그 대가로 전고가 너무 높았으며, 티거 이후의 독일 전차들의 전고는 셔먼 보다도 높았기에 편의성이 좋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측면 방어력 부족은 셔먼과 독일 후반 전차들의 큰 약점 이였다.
[107]
IS-2가 독일에서 만들어졌다면 그 성능으로 중형 전차로 분류되었을 것이란 이야기는 틀린 말이다. 당장 타국의 중전차급 무게와 덩치의 판터도 중형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유는 중전차와 중형 전차가 단순히 무게와 크기뿐만이 아닌 용도에 따라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중전차가 흔히 대기갑전을 중시해서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초기 설계에서는
IS-2와 비슷한 용도를 상정하고 있었다. 다만 소련을 침공한 이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우수한 스펙을 갖춘 소련군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서 대기갑전을 대단히 중시하는 설계로 진행하게 된다. 독일이
IS-2 같은 전차를 만들어 냈다면 판터와 비슷한 덩치와 무게와는 별개로 그 용도에 따라 중전차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108]
4호는 애초에 10톤대 전차로 시작한지라 설계 자체가 개량 한계점이 명백했다. 한계까지 쥐어짜서 나온 최후 개량품인 H형조차 겨우 25톤에 불과했다.
[109]
1943년 튀니지 제펠자파에서 노획.
[110]
보존과정에서 수리 될 당시에도 남아있던 노획 당시의 도탄 흔적을 보존하여 전쟁의 참혹성을 관람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111]
영상중에 555번의 또다른 티거 1이 보이는데(영상의 4분25초쯤)이 티거는 진품이 아닌 레플리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해당 레플리카는
퓨리에서 워대디의
M4 셔먼 전차 중대를 전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티거 대역으로 등장한 차량이다.
[112]
여기의 연결식 궤도는 제공되는 본드를 발랐을 때 일부 녹아내리는 성질이 있기에 전차 아래쪽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한번에 진행하는 것이 좋다.
[113]
외형만 재현하였다.
[114]
아닌 게 아니라 모델러들에게 드래곤 사장이 티거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115]
플라츠 사 재포장판인
니시즈미 마호 버전은 오렌지박스 9142 비트만 초기형 티거의 재포장 버젼이다.
[116]
SKYBOW사가 도산하자 그 금형을 인수하여 뽑아낸 것이다.
[117]
재미있는 것은 아카데미에서 발매한 내부재현 티거가 나온 지 20년 만에 이 회사에서 내부재현 티거 키트가 나왔으며, 아카데미 내부재현 티거는 당시에 호평을 받아 해외 모형 행사에서 상을 수상받았는데 이 Rye field 내부재현 티거 키트도 그 행사에서 상을 받았다.
[118]
다만 포탑이 대칭형이라는 문제가 있다.
[119]
M4 셔먼은 이지에잇, 즉 한국전장 사양으로 따로 발매, 이후 브릭포매니아로 M4A2 출시.
[120]
퀴벨바겐,
8,8cm FlaK 동봉
[121]
3cm 대공포가 달린
슈빔바겐 동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