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재팬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메이드 인 재팬(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국가별 생산제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
한국제 |
미국제 |
중국제 |
일본제 |
독일제 |
영국제 |
|
대만제 |
인도제 |
이탈리아제 |
1. 개요
일본제( 日 本 製[1])는 일본에서 생산된 제품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줄여서 '일제'라고 흔히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日本製'라고 하고, '日製'는 히타치 제작소(日立 製作所)의 줄임말로 통용된다. 좁은 뜻으로는 일본에서 생산된 물건을, 넓은 뜻으로는 일본의 제조업(계)까지를 뜻한다.2. 상세
미국, 독일과 함께 제조업 선진국으로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며, 특히 기계부품이나 산업기계 등 정밀 가공에 압도적인 강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 중국 등 신흥국의 발흥과 2000년대의 장기간 엔고로 경쟁력은 점차 떨어지는 추세이며, 2010년대에는 몇몇 제품들에서 품질이슈가 불거져 기존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현대 일본 산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고품질, 정밀생산이란 이미지와 달리 1960년대까지 일본은 공업 제품의 품질에서 뒤떨어진 나라였다. 사실 일본은 빠르게는 17세기부터 도자기 등 일부 제품군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는 산업화 이전 가내수공업의 틀에서 받던 평가였으며, 이 또한 어디까지나 서양에 없던 개성적인 제품이 주목을 받았을 뿐, 제품의 품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위 장인 정신이나 모노즈쿠리(物作り) 정신[2]과 같은 것들은 모두 이러한 가내수공업의 기능(craftmanship)이지 현대적인 기술(technology)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가내수공업의 발달이 반대로 대규모 공업의 발달 지체로 나타나면서 거꾸로 현대적인 생산관리나 품질관리 등의 도입이 주요 열강에 비해 늦어지고 공업 기술력이 부족해지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 부족이 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1940년대 태평양 전쟁으로, 기술 부족과 총력전으로 인한 인적, 물적 자원 고갈이 함께 겹치면서 제로센 등 전투기부터 전차까지 무기의 성능과 신뢰성이 부족한 것이 패전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상대국인 미국이 이미 전체적인 기술력에서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특히 그 전부터 품질관리 방법론을 개발하면서 압도적인 우위에 선 것과 대조된다.[3] 그나마 아시아권에서는 절대 우위였지만,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는 잘 만들었다에 지나지 않는다. 자력으로 간단한 공업제품을 만들 수 있는 생산라인을 갖출 수 있는 나라가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아시아에서 그나마 근대화를 이뤘던 나라도 없다시피 했다.
패전 후 서방세계의 일원으로 복귀한 일본은 경제 재건을 위해 공업 부흥과 수출에 나섰다. 마침 공산주의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해 미국이 일본 제품을 의식적으로 수입하기도 했는데, 당시 미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거 봐. 일제라서 잘 고장나지'였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3에서도 이를 인용한 대사가 있다.[4] 일본 또한 공업의 품질관리가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미국에서 W.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 등 전문가를 초빙하여 미국의 품질 기법을 배우게 된다.[5]
이런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이다. 이 당시는 개발도상국이 수입대체산업화 혹은 그와 유사한 정책으로 무역장벽을 형성하고, 외국 기업의 시장 진출을 대가로 기술이나 자본을 유치하는 형태의 산업구조가 유행하였다. 일본의 경우 일제 당시 근대화의 유산, 그리고 6.25 전쟁 특수 그리고 탄탄한 내수가 있어 이러한 과정을 상당부분 생략할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미국 기업을 상대로 같은 방식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연히 기술 전수, 제품 카피, 라이센스 생산 등을 동원하여도 초기에는 미제에 비해 열약하기 그지없는 품질을 자랑했고 이를 자국민에게 밀어넣으며 생산 노하우를 쌓아갔다.[6] 세계적으로 일제가 싸기만 한 짝퉁으로 유명했던 시기도 이 시기다. 하지만 생산 노하우가 축적되다보면 품질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이러한 경제 모델의 근간이고, 덤으로 일본은 거대한 내수시장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빠른 초고도성장까지 이어가다보니 노하우 축적 속도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즈음이 되면 일본이 세계 3위 경제대국에 등극했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미제와 일제가 품질면에서 차이점이 없어졌고, 특히 일본 자동차는 어느 정도 자가용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포화상태에 다다를 즈음에 오일 쇼크를 제대로 활용하면서 미국차를 시장에서 밀어내면서 미국 시장을 순식간에 잠식하는데 성공했다. 미국 자동차와 일본 자동차는 주거환경에 발맞춰서 설계되었는데 미국은 뉴욕이나 보스턴같은 오래된 도시지역을 제외하면 도로폭이 넓었기 때문에 차를 굳이 작게 만들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도로폭이 주요 간선도로도 4차선 안팎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에 맞춰 차를 설계했는데 처음에는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고도경제성장과 함께 기술력이 급성장하고 거기에 주거환경으로 자동차 설계가 도리어 장점이 되면서 재빠르게 기름 덜 먹는 차를 양산할 수 있었고, 미국차는 그러지 못하면서 1970년대 중후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급속히 늘렸고 미국자동차 시장에서 일본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었다. 미국에서 자동차 제조업의 비중이 높았던 디트로이트가 쇠퇴하고 치안부재의 도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7]
전자제품 역시 신칸센을 시작으로 해서 첨단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고 이윽고 1970년대 중후반이 되면 (당시로써는) 첨단 전자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빨리 여타 전자제품도 미국 전자제품 시장을 장악해나가는데 성공했다. 위의 백 투 더 퓨처 3의 대화에서도, 1980년대에서 온 주인공은 "일본에서는 최고품만 나온다" (All the best stuff is made in Japan) 라고 대답한다. 이렇듯 싸구려 자국산을 무역장벽으로 인해 억지로 소모하던 상황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른 기술력의 향상으로 품질이 향상되나가면서 뒤집었고 특히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로 일본인의 구매력이 과대평가되면서 완전히 일변하여, 이젠 수출용 제품보다 내수용 제품을 공들여 만드는 상황이다. 거품 붕괴로 내수가 침체된 이후에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 1970년대 당시 미국의 고금리 정책과 이후 이어진 레이거노믹스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일본이 열심히 쫓아가던 미국의 제조업이 자기들끼리 고꾸라지면서 자연히 일제가 부상할 환경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플라자 합의로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긴 했으나 첨단산업에서 자리를 잡은 일제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오히려 일본 완성품 제조업의 부진은 엔고가 만성화되는 와중 1980년대 한국, 2010년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2.1. 현재
대한민국에서 반일감정이 더욱 심했을 시절에도 일제의 품질은 인정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러한 경향은 일본제와 한국제의 품질의 격차가 줄어든 2000년대까지도 이어졌었다. 당장 언론에서도 일본의 기술력을 본받아야 된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1980년대에는 일본으로 해외 여행을 나갔을 때 일제 조지루시 밥솥을 사 온다거나 하는 식의 에피소드가 나왔을 정도, 물론 미제보다 객관적 품질이 앞서는 제품군은 정해져 있었으며 그렇지 않은 제품군도 만만찮게 많았지만 공통적으로 가성비는 앞섰기에 일제 선호 현상이 계속되었다고 보면 된다.[8]오히려 일제의 위상이 흔들린 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부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또한 일본이 취했던 경제 모델을 거의 그대로 따라갔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에게 받아온 차관 등을 이용하여 본격적인 연구개발 시설과 경제발전을 시작했는데 이후 1970-80년대 현대와 삼성 등 대기업들이 벤치마킹하고 따라잡고자 하는 목표는 일본이었다. 현대자동차도 포니를 시작으로 일본 자동차 회사의 엔진을 사다 쓰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도 그 시작은 저렴한 티비와 라디오 생산이었고 기술력이 부족했기에 일본회사와의 합작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한국 기업들의 역량이 쌓이고 19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조선업, 반도체, 가전제품 등에서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분야들이 생겨나며 세계시장을 석권해갔다.
일본도 1990년대에 엔고로 인하여 가격 경쟁력을 잃어 고꾸라지고 일본 전자업체들이 버블경제 붕괴의 후유증을 채운다고 다수의 인력들을 구조조정하였다. 이때 해고된 인력들 다수가 한국 및 중국업체로 이직하면서 기술력이 유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 전자업체들이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보수적이고 임기응변적인 대처에 급급한 사이에, 빈 자리를 한국이 채우기 시작했다. 가성비로 승부하던 일제가 우수한 품질이나 가격이 비싸다는 이미지로 옮겨간 시기도 이때이다. 그리고 2010년대 후반부터는 중국제가 기술력이 어느 정도 올라오면서 가성비 시장을 차지하였다. 아베노믹스를 기점으로 일본 제조업이 큰 호황을 맞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특정 분야에서 일본의 우위를 찾아오지 못한 것처럼 전자 등 다수의 제품에서 한국제 및 중국제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일제의 명성이 이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내에서도 '일본제라는 이유만으로 잘 팔리리란 옛날의 환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엔고로 인한 가격 경쟁력 하락은 일제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쳤다. 엔고현상이 일어나면 일본 기업은 강도 높은 원가절감 압박을 받게 되고, 원가절감을 실시하다보니 품질마저 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례로 일제 필기구의 경우 1980-90년대 생산품보다 2000년대 생산품들의 품질이 더 떨어진다는 주장이 정설처럼 통한다. 전자기기 또한 마찬가지인데 일례로 소니 단파라디오인 ICF-SW22는 90년대 훌륭한 품질로 유명했으나 2005년 이후 생산품은 (유럽연합의 환경규제 때문에 사용한 무연납 때문인지 몰라도) 사소한 접촉 불량이 있고, 볼륨 품질에도 문제가 종종 생긴다. 소니 타이머 항목 참조. 그래도 자동차, 오토바이, 건설기계, 공구, 정밀 기계류, 화학 소재류, 로봇, 광학 제품 등등 여러 분야에서 그 명성이 이어진다.
다만 전자업계와 조선업계의 명성이 전성기에 비하면 추락했음은 사실인지라 개선을 요구받는다. 2010년대 들어와 소니를 비롯한 일본 전자업계가 도산 직전에 몰렸던 경영난에서는 벗어났지만, 본업인 전자산업의 경쟁력이 개선되었다기보다 이미 경쟁력을 잃은 가전과 반도체에서 손을 떼고 다른 분야의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소니는 전자보다 영화,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금융에서 수익을 내고, 파나소닉은 의료기기나 자동차 배터리 등 전장사업 분야를 주력으로 바꾸었다. # 샤프는 아예 대만의 폭스콘에게 팔렸으며, 도시바 또한 백색, 흑색가전 사업을 각각 중국의 메이디와 하이센스에 매각하고 이들의 일본 국내 시장용 브랜드로만 남아 있다.
조선 또한 2000년대 중국 업계의 덤핑 경쟁에 휘말린 데다 2013년 MOL 컴포트호 침몰 사고(미쓰비시 중공업 건조)를 필두로 2020년 MOL 와카시오 호 기름유출 사고(유니버설 조선 건조), 2021년 크림슨 폴라리스호 사고(쓰네이시 조선 건조) 등 일본제 선박의 안전성 문제가 의심되는 사고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21세기 초 미쓰비시가 어설프게 크루즈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건조 중 화재사고와 납품지연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반면 고부가가치 중간재, 예를 들어 정밀 화학제품(반도체용 실리콘이나 불소화합물, 탄소섬유 등)이나 기계부품(베어링, 소형 모터 등)에서는 위상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 2020년대에는 중저가류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한국이나 중국과 차별화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2.2. 2010년대~ 2020년대 품질 부정 문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와 일본 제품의 신뢰를 흔드는 부정 사례가 연속해서 터졌다.일본 제품은 2010년을 전후한 토요타 자동차와 타카타 에어백의 대규모 리콜 사태로 한차례 거대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여기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이 2017년 10월 고베 제강 데이터 날조 사건으로, 산업의 기초 소재인 금속을 납품하는 기업이 일회성도 아니고 수십년에 걸쳐 품질 데이터를 조작해 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결함에 불과(?)한 토요타나 타카타보다도 질적으로 나쁜 사건에 해당한다.
고베제강 사건을 기폭제로 하여 산업 전 분야에서 부정이 연이어 발각되고 있다. 특히 이들 사건이 모두 최소 20년 이상 장기간 이어진 부정이기 때문에 더욱 타격이 크다. 가장 광범위한 부정이 드러난 닛산자동차와 미쓰비시전기의 경우 아예 어떤 데이터도 믿기 어려운 수준으로 조작이 저질러졌다. 또한 2021년에는 공업 전문잡지 닛케이 모노즈쿠리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38%가 실제 자신의 주변에서 품질 관련 부정을 접했거나 전해들었고 27%는 실제 발각되었다는 응답을 하여 품질 부정이 단순히 몇몇 기업의 문제가 아님을 드러내었다.( 기사)
2018년 2월, 월스트리트 저널은 일본의 제조업 모델이 부서지고 있다면서, 품질 데이터 조작 등의 불상사가 잇따르는 일본 기업의 현상과 원인을 분석했다. #1 #2
일본 정부 또한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2017년 12월에는 일본산업규격(JIS)의 상위법인 산업표준화법의 개정을 포함한 대책을 발표하고 2018년 6월에는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대신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이 참석한 공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
그러나 2020년대에도 여전히 품질 부정 사건은 끊기지 않고 있다. 2020년 이후 다수의 복제약 제조사에서 약물 혼입, 시험 조작 등의 부정이 적발되어 의약품 부족 사태가 벌어졌으며( #), 자동차 업계에서도 2023년 다이하쓰가 최대 4개월까지 조업정지가 내려진 것을 필두로 2024년 6월에는 토요타와 혼다 등 다수 제조사에서 총 38개 차종의 인증 부정이 적발되어 출하 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9]
3. 주요 제품군
마이크로 칩, 비디오 게임기[10], 음향기기, 오디오, 휴대용 음악 재생기 등의 전자제품부터 카메라, 자동차 및 산업용 로봇 등의 대형 산업 기계 등도 일제가 유명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21세기에 들어서는 백색 가전과 갈색 가전은 한국과 중국에게 점유율을 빼앗기고 현재는 내수용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건설 및 이공과학, 의료기기 분야에서 그동안 축적된 원천기술을 보유한 저력은 어디가지 않아서 여전히 한국보다 앞서고 있다.가격에 대해서는 한때 일본 제품은 일본 내 제품 경쟁이 워낙 극심해, 다른 나라에 꿀리지 않는 제품이 일본에서는 2류로 취급받아 수출을 나간다는 인식이 있었다. 현재도 수출용이 더 품질이 좋고 저렴하다는 인식이었던 한국 제품과 다르게 일본 제품은 내수용이 수출용보다 품질이 더 우세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래서 동일한 제품도 일본 공장에서 생산된 경우 외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더 비싸게 받은 적도 있었다.
자동차는 현재까지도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인기의 이유는 다름아닌 높은 내구성이다. 국내에서도 르노삼성 SM5 1세대가 일제부품으로 조립된 사례로 내구성 하나는 명차라고 호평받은 적이 있다. 다만 2010~2011 토요타 리콜 사태 등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미지가 손상되었다. 또한 스즈키, 닛산도 일본에서 연비조작과 무자격자 검사 같은 사고도 있어 비판받은 적이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가전업계의 몰락을 타산지석 삼아 토요타를 중심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일본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 변수는 전기차량이나 자율주행차같은 미래형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서 다소 보수적인 자세로 접근해서 시장 점거에 미흡하다는 말도 있다. 일본 전기차의 추락…도요타·닛산 올들어 '글로벌 톱10' 밖 밀려
문구류, 특히 금속제는 일본산이 성능과 더불어 경량화가 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위, 부엌칼 등이 대표적. 필기구도 일본제가 성능과 색감이 좋아 매니아층이 많다. 특히 알파벳보다 획이 많은 글자들을 사용하는 동아시아권에서는 일제 필기구가 구미쪽 필기구보다 인기가 좋다. 다만 형광펜은 샌포드, 스타빌로, 스테들러 등의 서양 브랜드가 일제 제브라 등과 경쟁하고 있다.
컨슈머 카메라는 일본이 시장을 잡고 있다. 미국, 유럽에 비해 후발주자였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보급을 많이 시킨 덕분에 호환성이 좋아서 일본 회사들이 시장을 점령했다. 이후에는 규모를 키워가며 80년대 이후로는 점차 성능면에서도 우위를 점하여 현재도 사진 전문가용에서는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이 등장해 판매가 감소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카메라 시장이 줄어들 뿐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위상이 줄어든 것은 아니며, 한편으로 스마트폰의 카메라 센서도 소니가 과반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 동영상 촬영용 카메라는 미국과 독일에게 밀려서 두각을 내지 못하고 있다.
4. 목록
- 일본제/목록으로.
[1]
Made in Japan(メードインジャパン) 라고도 한다.
[2]
<모노즈쿠리 - 일본의 제조업 전략>의 저자 후지모토 다카히로에 따르면 일본은 소위 조율형 산업에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모듈형과 대비되는 말로서 디램 반도체는 갈아끼울 수 있기 때문에 모듈형이고 디램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반도체 소재 제품들은 후공정 혹은 고객사(디램 반도체 생산 라인)의 최종 수율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스테이크 홀더간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조율형이라 부른다.
[3]
대량생산 체제의 아이콘
헨리 포드뿐만 아니라 월터 슈하트(Walter A. Shewhart)가 1920년대에 관리도를 개발하는 등 발전이 있었다.
[4]
후지타 덴의 자서전에 보면 1950년대 미국에 식기류를 납품할 때의 일화가 있다. 일본의 납품업자들의 물건은 '나이프와 포크는 우리가 최고지.' 하는 장인정신이 넘치긴 했지만 제품간 품질편차가 컸고, 무엇보다 (발주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정된 납기를 두 번씩이나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그만큼 생산 관리가 주먹구구식이였다는 것이다.
[5]
데밍은 초년 시절 상기한 관리도의 창시자 슈하트에게 지도를 받았던 사람이다. 1951년에는 그의 기부를 받아 일본에서 품질 발전에 공로가 있는 기업과 개인에게 수여하는 데밍상이 제정되었다.
[6]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50년대에는 미국이 일본을 자본주의 일원으로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술전수를 해주고 조악한 물건을 수입해주기까지 했다. 반면에 일본기업들은 내부적으로 카르텔을 형성,
국내에서는 자국민에게 원가보다 비싸게 제품을 판매하면서 반대로 미국에는 헐값으로 덤핑 수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생산 노하우를 축적해갔다.
일본 TV제조사 카르텔이 이 중의 하나다. 물론 상기 이유로 미국에서는 알면서도 60년대는까지 눈감아 줬다. 그러다 70년대 냉전이 어느 정도 약화되어 의도적으로 키워줄 이유가 줄어들고, 일본상품의 기세가 생각보다 커져 미국 제조사들이 피해를 입게 되자 미국에서도 통상마찰 등으로 반발했다.
[7]
다만 디트로이트를 위시한 러스트 벨트의 쇠퇴는 일본의 발흥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특히 큰 요인이 급격한 생산성 발전으로 고용 수요가 줄어든 것과 인건비가 저렴한 남동부로 자동차 산업이 대거 이전한 것이다.
[8]
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National 전기다리미보다 미국
GE 전기다리미의 품질이 더 좋았다. 사실 당시 GE 전기다리미는 1950년대 제품을 2010년대에도 사용한다고 할 정도로 튼튼하고 오래 가는 걸로 유명했다 문제는 가성비였지만.
[9]
적발된 부정행위 중 하나로 수출용 차량의 기준을 함께 적용해 일본 기준보다 무거운 충돌대차를 사용한 부정이 있다. 이 때문에 보다 엄격한 검사를 해서 실제 자동차 품질에는 관계가 없다는 오해가 있으나, 인증 부정의 본질은 적절한 절차 없이 품질관리 기준과 과정을 임의로 왜곡하는 데 있다. 또한 후방충돌 이외에도 출력 시험에 소프트웨어를 조작하거나 내장 부품을 사전 가공하는 조작 행위도 행해졌다. 비록 재검증에서 품질 기준을 충족하여 실제 인증 취소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얼마든지 실제 불량으로 이어질 소지는 남아 있는 것.
[10]
아타리 쇼크로 미국 게임 시장이 몰락한 후 1980~1990년대까지는
닌텐도가 독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