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립 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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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国立博物館 / Tokyo National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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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홈페이지: https://www.tnm.jp/?lang=ko( 한국어)
교토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과 함께 메이지 시대에 개관한 3대 국립박물관이며 이후 규슈국립박물관이 추가되었다.
20세기 초에 건축되어 건물 자체도 역사가 꽤 깊다. 원래 우에노공원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묘지를 관리하는 칸에이지(寛永寺, 관영사)가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무렵 막부군과 유신 세력이 전투하는 과정에서 칸에이지가 불타버리자, 그 자리에 공원과 박물관을 세웠다. 박물관 건물 중 본관과 표경관이 각각 중요문화재로 지정받았다.
2. 구성과 전시품
본관을 비롯한 건물 6개 동과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관만 보려고 해도 하루가 필요할 정도로 방대하며, 전체 전시관을 꼼꼼히 본다면 사나흘 걸린다. 매 시즌마다 별도로 열리는 특별전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므로 아침 일찍가거나 금, 토요일의 야간개장 시간을 활용하는 편이 현명하다. 또한 상설전시도 전시유물이 매 기간 바뀌며 작은 테마전도 수시로 열린다.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소장유물 약 11만 7천 점, 이중 일본의 국보 89점과 중요문화재 640점이 있으며, 별도로 국보 55점, 중요문화재 258점을 기탁받아 보관하고 있다. 질적, 양적으로 일본 최고이자 최대의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또한 매년 가을에는 그해에 지정된 국보와 중요문화재(미술공예품 한정)을 모아 전시하는 신지정 국보 · 중요문화재 특별전을 열기도 한다. 국립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들을 묶어 법인화한 독립행정법인 국립문화재기구의 수장기구이며, 산하에 교토, 나라, 규슈 3곳의 지방 박물관과 도쿄, 나라 두 곳의 문화재연구소를 거느린다.
다만 일본 제일의 박물관은 맞지만 전체 아시아권 기준에서는 최대급은 아니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150만여점,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60만여점, 중국 중국국가박물관 100만점, 고궁박물원 160만점으로 소장품 기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이는 일본에서는 한 대형 박물관에 유물을 집중해서 전시와 관리를 하는 것보다는 원래 발굴된 위치에서 두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유물의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대부분 일본 박물관과 달리 제한적으로 허가한다. 기탁받거나 빌려온 유물은 대부분 촬영금지인데, 그런 유물 근처에는 항상 직원이 있어서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다만 본관 외에는 감시가 그렇게 심하진 않다고 한다.
소장품 중 국보와 중요문화재는 도쿄국립박물관/중요문화재 문서에 기재되어 있다.
2.1. 본관
박물관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일본의 문화재를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한다. 첫 건축 이래로 몇 차례 개축하였으나 1923년에 관동 대지진으로 박물관 건물 전체가 대파되어 1937년에 현 건물을 다시 세웠다. 현재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2층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2층에는 일본 미술의 흐름이라는 제목으로 선사시대의 미술부터, 불교미술, 궁정미술, 다도미술, 우키요에 등을 전시한다. 특히 2층의 2실은 국보실로 보기 힘든 국보(주로 회화나 서적)을 기간한정으로 공개한다. 1층에는 주제별로 조각, 칠기, 도자, 금속공예, 무기와 갑주, 역사자료, 아이누, 류큐, 근대미술 등을 전시한다. 1층에 위치한 뮤지엄샵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박물관 도록을 다 판매하므로 다른 지역의 전시도록을 구하기 편하다. 책장만 무려 2층에 걸쳐 있다.
2.2. 표경관(효케이관)
1909년 요시히토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하여 건설한 2층 건물이다. 관동 대지진 때 피해를 입지 않은 덕분에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는 가끔 열리는 소규모 특별전 기간 외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2.3. 동양관
본관 옆에 위치한 지상 5층, 지하 1층에 달하는 본관 못지 않게 거대한 건물이다. 중국 유물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유물 수준이 높다.
가장 위층인 5층에는 한반도 유물을 전시하는데, 대부분이 오구라 컬렉션이다. 가야 지역의 금관이나 조선 왕실의 익선관 등을 전시한다. 다만 소장중인 모든 한국 문화재가 오구라 컬렉션인 것은 아니며, 양산 부부총 출토 유물 일괄처럼 다른 경로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도 있다.
지하에는 동남아시아 유물을 전시하며, 특히 캄보디아 크메르 문명의 유물들은 제국주의 시절 프랑스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그 밖에 페르시아, 실크로드, 심지어 이집트의 미라도 상설전시한다.
1층에는 대중적인 레스토랑이 있는데 오쿠라 호텔에서 운영한다. 다만 이름이 비슷해서 착각할 수 있지만 오구라 컬렉션의 오구라 타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창립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재벌인 오쿠라 키하치로(大倉喜八郞)가 창립한 곳이다.[2] 이곳 외에는 근처에 딱히 식사할 곳이 없어서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이 많이 몰린다.
2.4. 평성관(헤이세이관)
본관 뒤편에 있는 건물로 1999년 나루히토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하여 개관하였다. 본관의 역할을 분담하는 곳으로 대규모 특별전을 개최한다.
1층은 일본 고고학 전시실로 하니와에서 시작해 에도시대에 이르기까지 고고학 발굴 유물을 전시한다. 2층은 특별전시실로 대규모 특별전이 개최되며 사진촬영은 금지이다. 전시 중인 유물 중에 국보나 중요문화재가 많다.
2.5. 호류지 보물관
박물관 한켠에 자리한 비교적 작은 건물이다. 메이지 시대 호류지(法隆寺)에서 천황가에 헌납한 보물을 전시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유명한 건축가 타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하였다. 2층 규모 건물로 1층에는 불상 위주의 전시, 2층에는 불상 외 금속공예품을 전시한다. 봄이나 가을에는 가면, 목조공예품, 서적, 회화 등을 공개하기도 한다.
이 전시관에도 레스토랑이 있는데 양식만 취급하고, 가격이 다소 비싸다.
건물로 가는 길에는 과거 돗토리 지역이었던 이나바 번의 다이묘 이케다 가문의 에도 저택 정문을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중요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는 유물이다.
2.6. 쿠로다기념관
박물관 정물 바깥에 있는 건물로 일본 근대의 서양화가인 쿠로다 세이키를 기념하기 위해 1928년에 지었다. 1년에 3회만 개방한다.
2.7. 정원 및 야외전시
본관 뒤편에는 옛 칸에이지의 정원을 복원한 정원이 있다. 정원에는 다실 등 교토, 나라 등지에서 옮겨온 고건축물 5동이 있는데 봄, 가을에만 공개한다. 정문에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동양관 앞에는 한국에서 반출된 문인석 등이 서 있다.3. 법인화
명칭 | 소속기관 | |||||
독립행정법인 국립문화재기구 | 도쿄국립박물관 | 교토국립박물관 | 나라국립박물관 | 규슈국립박물관 | 도쿄문화재연구소 | 나라문화재연구소 |
독립행정법인 국립미술관 | 도쿄국립근대미술관 | 국립서양미술관 | 도쿄국립근대미술관 | 국립국제미술관 | 국립신미술관 | |
독립행정법인 국립과학박물관 | 국립과학박물관 | |||||
독립행정법인 국립공문서관 | 국립공문서관 | |||||
대학공동이용기관법인 인간문화연구기구 | 국립역사민속박물관 | 국립민족학박물관 | 국문학연구자료관 | 국립국어연구소 | 국제일본문화연구센타 |
일본은 대처리즘을 받아들여 박물관, 미술관이나 연구소 등을 법인화한 상태다. 국립박물관을 공공기관 산하에 두고 직접 관할하는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3] 일본 내에서도 순수 인문, 예술 분야를 준 민영화라 할 수 있는 독립 법인화가 과연 옳은지 논쟁이 있다.
이렇다보니 국가와 관계가 미묘해지는 부분이 있다. 국유 문화재의 전시 문제가 그것이다. 기존 소장품은 소유자는 국가, 관리자는 국립박물관으로 정리하였으나 문제는 문화청 소장 문화재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문화청에서 적극적으로 지정문화재 혹은 가치 있는 문화재를 구매하는데, 문화청은 별도 전시시설이 없다. 법인화 이전에는 문화청 소유 문화재를 자연스럽게 국립박물관에 전시했으나 이제는 법인화되었으니 이런 관계를 재고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4] 이런 문제 때문에 도쿄국립박물관에는 문화청 출장소를 따로 만들어 별도의 수장고에서 문화청 문화재를 관리하는 이상한 구조를 이루었다.
4. 오구라 컬렉션
도쿄국립박물관에는 대한민국 유물들도 전시하는데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 전시실을 채우는 유물 상당수는 일명 ' 오구라 컬렉션'에 속하는 유물이다. 1908년 대구에서 제연합자회사를 창립하여 재산을 축적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가 오랜 세월 수집한 문화재들이다. 오구라는 1920년대 대구, 경주 일대에 도굴이 성행했을 때 물건만 좋다면 종류나 값을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오쿠라 컬렉션은 토기, 고고품, 석조품, 조각, 칠공예, 회화, 서예 등 종류가 다양하다.1945년 광복 직후 오구라의 수집품 수백여 점을 회수하여 대구시와 경주시로 옮겼지만[5] 컬렉션 내에서도 가치가 높은 문화재는 이미 일본으로 반출된 뒤였다.[6] 1982년 오구라가 사망하자 아들이 소장품 1040점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일본 정부는 이 유물 중 8점은 국보, 39점은 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오구라 컬렉션은 1960년대 일본에서 한국문화재 귀환운동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반환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개인이 수집한 유물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확실한 사실은 오구라 컬렉션중 조선왕실 유물 9점, 금관총 출토 유물 8점, 부산 연산동 고분군 출토 유물 4점, 창녕 출토 유물 13점 등 총 4건 34점이 도굴품이라는 것이다. 유네스코 협약에서는 불법취득한 문화재는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7] 이 유물들이 도굴품이라는 정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근거는 수집자 오구라 본인이 작성한 ‘오구라 컬렉션 목록’이다. 여기에 유물들의 출토지역과 원소장처가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도굴의 확실한 정황증거다. 그러나 도쿄국립박물관 측은 도굴품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유물들을 기증받아 박물관 윤리강령을 위반하였다고 한다.
도쿄 박물관에 전시 중인 오구라 컬렉션에 속하는 한국 문화재 목록은 해당 문서에 첨부되어 있다.
5. 관련 문서
[1]
당연히 학생증만 보여주면 한국 대학이든 미국 대학이든 할인된다.
[2]
사실 오쿠라도 한국에서 여러 사업을 하면서 한국 문화재를 약탈했다.
[3]
요즘 한국에서도 일부 국립 박물관을 법인화하는 추세이다.
[4]
한국에서도 서울대학교의 법인화 과정 당시 박물관과 규장각, 도서관 소장 문화재와 서적을 어느 것을 국유로, 어느 것을 서울대 소유 및 관리로 할지 논쟁이 된 적이 있다.
[5]
이 유물들은 훗날
국립대구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1964년 대구 503방첩대가 오구라가 살던 집 지하에서 유물 200여 점을 추가로 발견하여 그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보내었다.
[6]
송산리 고분군 6호분을 도굴한
가루베 지온과 같이 유출했다고 알려졌다.
[7]
하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식민지 경영과정에서 불법유출한 유물들로 박물관을 채운 국가들 대부분이 무시하는 탓에 사실상 사문화된 협약이다. 이 박물관들이 협약을 따르면 대표 유물들이 전부 빠져나가 박물관 유지가 불가능해질 정도이다. 일본 역시 다른 나라들과 발맞추어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의 주장을 무시로 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