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4-04 16:51:01

페르시아

1. 개관
1.1. 지역 이름1.2. 페르시아 & 이란1.3. 페르시아인 & 페르시아어족1.4. 위상1.5. 트리비아1.6. 페르시아와 한국
2. 고양이의 한 종

1. 개관

페르시아어로는 پارس (Pārs)[1]. 현재의 이란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 또는 그 지역을 중심으로 발흥했던 옛 왕조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1935년 3월 21일 팔라비 왕조의 레자 샤가 국호를 공식적으로 이란으로 바꾸었다.

1.1. 지역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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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이란) 역사상 마지막 왕조[2] 팔라비 왕조 국장. 팔라비 왕조의 왕관, 을 든 사자 태양(شیر و خورشید‎), 다마반드 산[3], 시무르그, 고대 조로아스터교의 상징물(Faravahar), 시아파 이맘 알리의 칼로 알려진 줄파카르 등 페르시아/이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다 들어가 있다.

1.2. 페르시아 & 이란

우선 "페르시아"의 어원은 고대 이란계 부족의 이름 혹은 지명인 파르스이다. 이들이 주로 살던 이란 남서부의 땅을 파르사(Pārsa)라고 했는데, 이 파르사 출신의 키루스 2세 아케메네스 왕조를 개창하면서 파르스 사람들이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 파르스/파르사를 그리스인들이 페르세스 혹은 페르시스(Perses), 페르시아라고 쓴 것이 서구 세계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한편 "이란"의 어원은 초기 인도유럽어족의 "아리아"다. 히틀러가 미치도록 좋아하던 아리아인과 통한다. 이것이 아베스타를 거쳐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가 되면 이란계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거의 굳어졌다. 비시툰 명문이나 낙시에 로스탐의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리아인이라고 써 있다. 고대 페르시아어로 아리아(ārya, ariya)라 하던 것이 사산 왕조 시대의 중세 페르시아어, 혹은 팔라비(Pahlavi)어로 에란(ērān)이 되었고, 이후 오늘날의 "이란"이 되었다.

이 두 이름 중 현지인들이 전통적으로 써 온 것은 "이란" 쪽이었다. 당시 이란계 종족들은 출신 지역이나 종족별로 쪼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현대의 이란 국경과 비슷한 강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 시대에 "아리아인"이라는 종족 관념이 점차 확대된 것 같다. 전술했다시피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는 지배층인 페르시아인들이 아리아인의 한 분파였을 뿐이지 공통적인 민족 정체성 따위가 확산되지 않은 다민족 제국이었다. 파르티아 역시 다민족 제국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하/파르니 정복자들,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 메디아인,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기타 등등의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 범주 안에서 수세기 동안 부대끼면서 공통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에란샤(ērānshar) 제국, 즉 사산 왕조의 국가 건설 과정인데, 사산 왕조는 "아리아인/이란인의 국가"(ērānšahr)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종교적, 추상적 개념에 가까웠던 "아리아인의 땅" 이라는 개념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여,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고,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구체적인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비 아리아인(ānērān)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종족들(사산 왕조의 지배 하에 있든 아니든 간에)을 타자화시킴으로써 이란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사산 왕조의 군주들이 "šahan šah ērān ud ānērān", 즉 이란과 비이란의 왕중왕이라는 칭호를 쓴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후 아랍의 정복과 이슬람 시대의 도래로 이란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었다. 아랍 문자와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오래 부대끼고 사는 통에 생활 습관의 변화,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자는 바뀌었을지언정 언어와 학문 분야는 대부분 유지되었고,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실질적 축'을 담당한 이란 출신 학자들과 문인들에 의해 이란이라는 이름과 독자적 문화, 정체성이 기억되었다. 7세기 아랍의 대홍수가 거쳐간 뒤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의 대홍수, 14세기 몽골의 침공 등으로 인해 이란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으나, 그 와중에도 이란의 독자적 정체성은 살아남아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팔라비 샤가 국호를 이란으로 바꾸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전에도 이란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를 페르시아보다는 이란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국호를 바꿨다는 것은 외국에게 자기 나라를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4]

물론 페르시아라는 표현 역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우선 현재 이란의 공용어를 페르시아어(퍼르씨, fārsi)라고 부르며 아제리, 투르크멘, 쿠르드, 루르, 발루치, 아랍 등 이란 국내 소수민족/외국인들과 구분되는 주류 민족을 "페르시아인"이라고 부른다. 현 이란 인구 8천만 명 중 "페르시아인"으로 구분되는 숫자는 대략 5천만 명 정도이다. 또 고대에 Pārs라고 불렸던 지역은 지금도 Fārs이고, 인도 지역에 사는 조로아스터교도들도 Parsi라고 부른다. 이란계 제국의 대표격인 아케메네스 왕조와 사산 왕조가 둘 다 파르스 지역에서 발흥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1.3. 페르시아인 & 페르시아어족

현대 영어권에서는 국명이 이란으로 바뀌기 이전 페르시아의 역사를 다룰 때 Persians와 Iranians를 따로 쓰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Iranians는 어군 단위, 즉 인도유럽어족 아래 인도이란어파 아래 이란어군 언어 사용 인구를 가리킨다. 물론 "페르시아인"도 이 범주 안에 들어가며, 이들을 한 데 묶어 "이란계 종족"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어권에서 튀르크계 인종들을 다룰 때 현대 터키 공화국의 국민이나 언어는 "Turkish"로, 튀르크계 종족 전체를 가리킬 때는 "Turkic"으로 써서 구분하는 것처럼 이란계 종족들을 다룰 때도 현대의 이란인들은 "Iranian"으로, 이란계 종족 전체를 가리킬 때는 "Iranic"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직 그리 널리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한편 Persians는 그중에서도 아케메네스 왕조의 고대 페르시아어부터 사산 왕조 때의 팔라비어, 그리고 팔라비어에서 계승된 현대 페르시아어(New Persian)를 쓰는 이란 본토 주민들을 가리킬 때 쓴다. 상술한 바대로 현대 이란 국가의 주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란계 종족'에는 페르시아인 외에 쿠르드족, 파슈툰족, 타지크족, 오세 트족, 발루치족, 아르메니아(현재는 독립된 어파로 보는 견해가 우세), 루르족 등이 있다. 한편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도 페르시아계 종족들이 오랜기간에 걸쳐 주거해왔지만 이들은 튀르크인들과 혼혈되면서 튀르크계 언어를 쓰게 되었다. 물론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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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란계 종족(이란계 언어 사용자)들의 분포도. 현대 페르시아어(약 8~9천만 명)[5], 파슈토어(약 4~5천만 명), 쿠르드어(약 2~3천만 명), 발루치어(약 700만~800만 명), 루르어(약 600만 명) 등이 있다. 그 외의 다른 색깔이나 글씨들은 소수 언어나 지방 사투리들을 가리킨다. 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인 다리어(Dari)와 타지키스탄의 공용어인 타지크어(Tajiki)는 현대에 들어 인공적으로 이란의 페르시아어와 분리된 언어이므로 사실상 같은 언어로 취급된다. 이들을 전부 합치면 대략 2억에 가까운 거대한 민족 집단이 탄생한다. 물론 아프간에서 파슈툰과 비파슈툰 민족 사이의 피 튀기는 싸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민족의식 그딴 건 없다.

1.4. 위상

로마 제국 유럽 지역을 제일 먼저 통일했듯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아나톨리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이란/ 트란스옥시아나 등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여러 문화권을 통합한 거의 최초의 세계 제국으로서 세계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록 사산 왕조의 멸망 이후 페르시아는 이슬람 세계의 일부로 흡수되긴 했지만,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이란의 높은 수준의 문화와 각종 학문, 과학은 살아남아 이후 그리스·로마 문화와 함께 찬란한 이슬람 문화의 중추가 되었다.

행정적인 측면을 봐도 이슬람 제국 시대에는 아랍인들, 셀주크 왕조 이후부터는 튀르크인들이 군사력에 기반한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실제 정부를 운영하는 관료들은 절대 다수가 페르시아인이었다. 터키어는 군인들이 쓰는 말, 아랍어는 성직자들이 쓰는 말, 페르시아어는 학자와 관리들이 쓰는 말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러한 풍토는 오스만 제국에서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관료를 양성하던 Mekteb-i şahane (왕립학교)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페르시아어를 배웠으며, 어린이들이 문자와 기초 학문을 배우던 종교학교에서는 코란과 함께 아랍어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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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세 시대에는 현재의 이란 국경 너머 트란스옥시아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이라크, 터키 일대까지 페르시아 문화권으로 간주했다. 이를 현대의 이란 국가 및 국경선과 구분하기 위해 대 이란(Greater Iran)이라고 부른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이란의 정체성이 확립된 사산 왕조 시대의 영역과 많이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이란의 위상, 즉 현재의 국경선과 시아파를 국교로 정한 점 등은 주로 16세기 사파비 왕조를 기점으로 형성되었다. 물론 시아파는 그전부터 페르시아 지역에서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9세기 압바스 칼리파, 11세기 셀주크 술탄에서 14세기 일 칸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의 지배자들이 대개 수니파인 데다 페르시아 외에도 다른 지역들까지 지배하는 대제국들이었으므로 시아파는 박해의 대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현대 이란의 국경과 거의 비슷한 강역을 가지고 시아파를 국교로 만든 사파비 왕조가 현대 이란의 근원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6]

1.5. 트리비아

왠지 그 유구한 역사와 이국적인 이름 때문에 중동을 제외한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비로운 나라로 여겨졌던 것 같다.

중, 근세 유럽에도 알렉산드로스 3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서사시나 책이 만들어지곤 했는데, 당시 책들의 삽화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의 나라보다도 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생물들과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미지의 세계마냥 묘사되곤 하였다.[7] 당시에 그려진 알렉산드로스 3세의 모습은 영락없는 중세 기사의 모습이다. 반대로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쓰여진 이스칸다르에 관련된 책들의 삽화를 보면 영락없는 튀르크/무슬림 귀족들이 그려져 있다. 페르시아에서 사산 왕조시기부터 알렉산더를 '사악한 로마인', ' 아르다시르 1세 등장 이전까지 페르시아를 500년 동안 혼란에 빠뜨린 악당'으로 묘사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역동적인 움직임과 액션씬으로 유명한 그리고 난이도와 잔학성으로 명성이 높은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도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신비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1.6. 페르시아와 한국

한편 " 쿠시나메(페르시아어: کوش نامه, Kush Nama)"라는 중세 페르시아의 서사시에 실린, 하킴 이란샨 아불 카이가 쓴 신화에서 특이하게도 한국사의 신라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등장인물과 요약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 아비틴 : 페르시아의 왕자
  • 프라랑 : 신라왕 타이후르의 공주로 아비틴과 결혼을 하게 된다.
  • 페레이둔 : 아비틴과 프라랑의 아들로, 페르시아를 되찾은 영웅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자 이란인들의 지도자 아비틴은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중국의 대혼란기에 이란인들의 안전이 위협받자 주변국 마친왕의 주선으로 신라로 망명했다. 아비틴은 신라왕 타이후르와 폴로 경기를 하거나 사냥을 즐기기도 했다. 또 신라-이란 연합군(!)을 결성하여 신라에 침입해 온 중국군을 물리치고, 중국의 성을 두 달간이나 봉쇄하고 마침내 함락시켜 세력을 대륙에까지 떨쳤다. 나당전쟁의 비밀

전쟁 후 신라로 돌아온 아비틴은 신라 공주 프라랑과 결혼했다. 아비틴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렸고, 공주 프라랑은 아들을 임신했다. 그런 어느 날, 그의 꿈에 신이 나타나 계시했다. 그대의 아들이 아랍의 폭정자 자하크를 물리치고 멸망한 페르시아를 위해 복수하리라는 것이었다. 이에 아비틴은 프라랑과 함께 이란으로 귀국했다.

이란으로 돌아온 프라랑이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파리둔이라 했다. 그러나 아비틴은 자하크에게 잡히고 곧 처형당하고 말았다. 훗날 아들 파리둔은 자하크를 철끈으로 묶고 그의 군대를 물리쳐 이란의 영웅이 되었다. 파리둔은 이 소식을 외조부 타이후르에게 보냈으나 그는 이미 사망했고,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 가람에게 전달되었다. 파리둔과 가람의 우정과 친선은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이상의 이야기는 신라와 페르시아 간에 어느 정도의 교류와 교감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다만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적당히 신비롭고 막연한 이국적 이미지를 활용한 신화로 이해하는 편이 온당할 듯.

상세 내용은 #1, #2 #3 참고.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195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인 허민이 발표한 '페르샤 왕자'라는 가요가 있는데, 역시 신비한 중동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또한, 재미있게도 거의 30년 후에 나온 게임인 페르시아의 왕자와 제목이 거의 비슷하다. 또한 그 가사를 봐도 페르시아의 왕자(혹은 귀공자)가 공주를 찾아 다닌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페르시아의 왕자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더 클래식의 대표곡 마법의 성 작곡가 김광진이 이 게임을 하다가 영감을 얻어서 쓴 곡이다.

2. 고양이의 한 종



[1] 단, 이는 "페르시아" 자체를 학문적으로 지칭하는 것에 한하고 그 외에는 فارس (Fārs)라고 더 많이 쓴다. 페르시아어가 아랍어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아랍어에 [p\] 발음이 없어 [f\]로 발음해 아랍어로 فارس 라고 쓰던 것을 페르시아어에서 역수입한 표현이 فارس (Fārs)이다 (예: زبان فارسی, zabān-e Fārsi; 페르시아어) [2] 간혹 페르시아와 이란의 역사를 단절시킨 후 팔라비 왕조를 페르시아 역사상 마지막 국가라고 칭하는 경우도 보이는데 확실하게 틀렸다. 애초에 페르시아라고 불렸을 때도 정작 자기들 스스로는 이란이라고 부르고 다녔다. 그냥 페르시아의 역사 = 이란의 역사이다. [3] دماوند. 데마반드라고도 한다. 해발 5,610m로 중동 최고봉인 동시에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화산이다. 높은 산이다 보니 페르시아 신화에서도 비중있게 등장하여 올림포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란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배틀필드 3에서도 맵으로 나온다. [4] 덤으로 아예 국호에 "샤한샤"를 박아서(کشور شاهنشاهی ایران, Kešvar-e Šāhanšāhi-ye Irān, 직역하면 State of Shahanshah of Iran 정도) 왕국에서 제국 격으로 올렸다. 그래서 팔라비 가문에게 정식으로 존칭을 쓸 때에는 imperial majesty를 쓴다. 물론 정치 막장으로 해먹다 쫓겨난 지금에는 아무 의미 없다. [5] 페르시아인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고, 별도의 민족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Gilakis & Mazanderanis 포함. 대략 5백만~1천 만 명 정도 된다. [6] 페르시아에서 이처럼 시아파가 대세가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두 가지만 꼽아 보자면 첫째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수니파 칼리파들에게 박해를 당한 아랍 시아파 세력이 주로 도피한 곳이 칼리파 제국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페르시아 북부와 호라산 지역임을 들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원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잃은 페르시아인들이 아랍인들과 종교적으로 완전히 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내에서도 반골적(?)인 시아파를 선택하여 수니파 아랍인들에 대항할 명분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수니파 정통 교리에 반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즉 수피즘의 기원이 페르시아라는 점도 고려해 볼 만하다. [7] 이런 페르시아에 대한 허구적 상상을 묘사한 작품으로는 300이 제일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