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宋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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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무제기(武帝紀)」 | 4권 「소제기(少帝紀)」 | 5권 「문제기(文帝紀)」 | |
유유(劉裕) | 유의부 | 유의륭 | ||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 8권 「명제기(明帝紀)」 | ||
유준(劉駿) | 유자업 | 유욱(劉彧) | ||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 10권 「순제기(順帝紀)」 | |||
유욱(劉昱) | 유준(劉準) | |||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 - [ 열전(列傳) ]
- ||<-6><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 41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 장영, · 유등지 ,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언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68권 「무이왕전(武二王傳)」 유의강 · 유의선 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 |
유유(裕) · 유의부 |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 ||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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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전(列傳) ]
- ||<-6><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1·12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은숙의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굉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무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범 · 유휴약 ·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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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1ba><colcolor=#fff> 여릉효헌왕(廬陵孝獻王) 劉義眞 | 유의진 |
|
시호 | 효헌(孝獻) |
작위 | 계양현공(桂陽縣公) → 여릉왕(廬陵王) |
성 | 유(劉) |
이름 | 의진(義眞) |
부모 |
부황
무제 모후 수화 손씨 |
생몰 | 407년 ~ 424년 |
재위 | 유송의 여릉왕 |
420년 ~ 424년 |
[clearfix]
1. 개요
남북조시대 유송의 황족이다.2. 생애
2.1. 초기 생애
407년 유유와 수화 손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용모가 빼어났다. 유의부와는 이복형제 관계였다. 413년, 남연을 정벌하고 노순을 평정할 때 공적을 세워 계양현공(桂陽縣公)에 봉해졌고 식읍 1,000호를 받았다.2.2. 북벌의 실패
416년, 유유가 후진을 정벌하고자 출병했고 417년 후진의 수도인 장안을 함락시켰다. 유의진은 어린 나이임에도 유유에게 종군하였으며, 백곡오(栢谷塢)에 머물렀고 동진 조정으로부터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로 제수되었지만 임명을 받지 않았다. 이때 동진 조정에서는 유목지가 병으로 죽었는데, 유목지의 죽음으로 입지가 불안해진 유유는 건강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유유 휘하의 장수들도 오랜 원정으로 인해 유유를 따라 돌아가려고 했기에 유유는 장수들만 남겨서는 관중의 민심을 안심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유의진을 도독옹량진3주사주하동평양하북3군제군사(都督雍涼秦三州司州河東平陽河北三郡諸軍事), 안서장군, 옹진2주자사로 삼고 호서융교위를 겸임하게 했다. 또한 태위부 자의참군 왕수(王修)을 장사로 삼아 유의진에게 관중을 위임했다.유유가 건강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관중의 부로들이 유유에게 와서 눈물을 흘리며 유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랑캐에게 짓밟힌 백성들이 제왕의 교화를 받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100년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의관을 바라보고 바야흐로 제왕의 은덕을 받고 있습니다. 장안의 무덤은 공가의 분묘요, 함양의 궁전은 공가의 저택인데, 이곳을 버리고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유유는 부로들을 달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정으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마음대로 이곳에 남을 수 없소. 그대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뜻에 감동해서 지금 내 차남을 여기에 남겨두고 문무에서 현명한 재능을 가진 이들에게 함께 이곳에 진수하게 했소.
유유는 뒤에 직접 유의진의 손을 잡아 왕수에게 건넸고 왕수에게 아들 왕효손(王孝孫)의 손을 잡아 유유에게 건네게 했다. 유의진은 다시 도독병동진2주사주동안정신평2군사(都督幷東秦二州司州東安定新平二郡諸軍事)로 진위되고 동진주자사를 겸임하였다. 당시 농우(隴右)에서 망명한 백성들은 대부분 관중(關中)에 있었는데, 유유가 농우를 다시 수복하길 바랬지만 동진주가 설치된 뒤 이들은 유유가 농우(隴右)를 공략하고 관중을 안정시킬 뜻이 없음을 알고 탄식하였다.
또한 유유는 건강으로 돌아갈 때 왕진악을 안서부 사마, 빙익태수(馮翊太守)로 삼고 심전자를 중병참군으로 삼아 유의진을 보좌하게 했다. 하지만 유유의 이런 인선이 가진 문제점은 우선 왕진악과 심전자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두 사람의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유의진이 겨우 11살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결국 유유가 떠난 뒤 북하의 혁련발발이 그 틈을 노려 장안으로의 침공을 개시했고, 이 와중에 유의진의 진영 내부에서는 왕진악과 심전자의 갈등이 폭발하여 심전자가 왕진악을 죽이고 심전자가 왕수에게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왕수는 유의진이 측근들에게 절제 없이 상을 남발하는 것을 줄여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샀는데, 사태가 벌어진 뒤 왕수는 유의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진악이 배신하려고 했기 때문에 심전자가 왕진악을 죽였습니다. 제가 지금 심전자를 죽인 것은 심전자가 다시 배신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유의진은 결국 왕수를 죽였다. 이렇게 유의진의 진영 내부의 갈등과 북하의 침공으로 인해 관중이 결국 혼란에 빠진 가운데, 유유는 주령석을 파견하여 유의진을 대신해 관중(關中)에 진수시키고 유의진에게는 소규모 부대를 이끌고 서둘러 복귀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이때 유의진 휘하의 장수들은 앞다투어 재물을 빼앗았고 빼앗은 재물과 여자들을 데리고 있다보니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다. 북하의 기병이 추격하려고 하자, 부홍지는 유의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위께서 신속한 진군을 분부하신 것은 혁련발발이 우리를 추격할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지금 대부분이 군수품을 지니고 있어서 하루에 10리도 못 가는데, 혁련발발의 기병이 추격해오면 어떻게 대비하시겠습니까? 마땅히 수레를 버리고 가볍게 전진해야 재앙을 면할 수 있습니다.
유의진은 부홍지의 진언을 따르지 않았지만, 부홍지의 말대로 북하의 기병 수만 명이 유의진의 후방을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보국장군 괴은이 후방을 차단했지만 막아내지 못했고 청니(靑泥)에서 대패하여 수많은 장수들과 왕사(王賜)가 사로잡혔다. 유의진은 다행히 앞에 있었기 때문에 수백 명의 군사들과 함께 달아날 수 있었고 날이 저물면서 북하의 기병들이 유의진을 추격하지 못했다. 유의진은 덤불 속으로 달아났다가 중병참군(中兵參軍) 단굉(段宏)이 단기로 유의진을 찾으며 외치는 소리를 듣고 기뻐하여 단굉과 합류했으며, 단굉은 유의진을 부축하여 돌아갔다. 유의진은 단굉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의 일은 진실로 나에게 모략이 없었소. 하지만 대장부가 이런 상황을 겪지 않고 어떻게 어려움을 알겠소?
유유는 청니에서의 패전에 대해 듣고 유의진의 행방을 물었는데, 먼저 도착한 이들은 모두 밤중에 도망치다보니 유의진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고조는 매우 분노하여 당장에라도 다시 북벌을 감행하려고 했는데, 사회가 간언했음에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유의진이 살아있다는 단굉의 보고를 받고는 생각을 접었다.
유의진은 뒤에 도독사옹진병량5주제군사(都督司雍秦幷凉五州諸軍), 건위장군(建威將軍), 사주자사(司州刺史)가 되었고 지절은 예전과 같이 받았다. 또한 단굉을 유의진의 자의참군으로 삼았다가 이윽고 황문랑(黃門郞)으로 전임시키고 태자우위솔을 겸임하게 했다. 유의진은 낙양에 진수하려고 했지만 낙양이 황폐화되었기에 대신 양주자사(揚州刺史)로 전임되고 석두(石頭)에 진수하였다.
2.3. 유송의 건국
420년, 유유가 동진의 마지막 황제인 공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르고 유송을 건국하니 이가 초대 황제인 무제였다. 유의진은 이때 여릉왕으로 책봉되고 식읍 3000호를 받았으며, 동성(東城)에 주둔하였다. 하지만 유유가 제위에 오른 뒤 유의진은 기뻐하지 않았는데, 시독박사(侍讀博士) 채무지(蔡茂之)가 그 이유를 물으니 유의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편안할 때는 위험을 잊지 말아야하는데, 편안할 때는 무엇을 의지할 수 있겠는가?
421년, 사도(司徒)로 임명되었다. 422년, 사지절, 시중, 도독남예예옹사진병6주제군사(都督南豫豫雍司秦幷六州諸軍事), 거기장군, 개부의동삼사, 남예주자사로 임명되고 역양(歷陽)에 진수하려고 했으나 그 도중에 무제가 사망한다.
2.4. 폐서인과 죽음
유의진은 총명하고 글을 애호했지만 경거망동했고 덕업이 없었다. 또한 사령운, 안연지, 혜림(慧琳)과의 왕래가 잦아졌는데, 유의진은 자신이 뜻을 얻었을 때 사령운과 안연지를 재상으로 삼고 혜림을 서예주(西豫州) 도독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고명대신인 서선지 등은 유의진이 사령운, 안연지와 너무 친하게 지내는 것을 싫어해서 범안을 유의진에게 보내 침착하게 타일렀으나 유의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사령운은 비고 소박하며, 안연지는 천박하니, 이것은
위나라의
문제가 이야기했던 명분과 절조로 자립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는 것이오. 다만 그들의 성품에서 의기투합에 대한 말을 잊지 않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교유하는 것이오.
유의진은 역양으로 부임하기 직전 동부(東府) 앞에 부대를 정렬시켰는데, 당시 무제의 국상 중인 상황이라 유의진이 탄 배는 색을 칠하지 않아서 어머니가 탄 배에 미치지 못했다. 유의진은 사령운, 안연지, 혜림 등과 함께 부대를 사열하고 배에서 잔치를 벌였으며, 측근의 신하들에게 어머니의 배에 있는 계단을 떼서 자신의 배에 달도록 명했다.
역양에 부임한 뒤 유의진은 조정에 많은 물품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선지 일파가 매번 유의진이 요구하는 물품의 양을 줄여서 보내다보니 유의진은 조정을 매우 원망하여 조정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한편 소제 유의부가 정사를 보지 않고 사치를 부리자, 서선지 등은 몰래 소제를 폐위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의진이 폐위되면 다음 순위가 유의진이 되었는데, 이들은 유의진이 경솔해서 사직을 맡을 수 없고 또한 유의진이 소제와 대립했기 때문에 조정에 상주하여 유의진을 폐서인하였다.
유의진은 폐서인된 뒤 신안군으로 옮겨졌는데, 장약지가 여기에 대해 상소를 올렸다가 양주(梁州) 참군으로 좌천된 뒤 살해되었다. 이후 서선지 일파가 소제를 죽일 때 신안군에 있던 유의진도 서선지가 보낸 사람에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