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별 명칭 | |
<colbgcolor=#ddd,#333> 한국어 | 소녀가극 |
한자 | 少女歌劇 |
일본어 | しょうじょかげ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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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미혼 여성으로 구성된 연극으로, 이름처럼 가극, 레뷰, 뮤지컬 등을 한다. 여성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성 배우가 극중 남자역을 맡는다.2. 역사
2.1. 소녀가극단의 결성
1909년 미츠코시 소년음악대(三越少年音楽隊)
1909년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음악을 연주할 소년들로 음악대를 만든다. 백화점 안에서 연주를 하며, 연주를 하지 않을 때는 청소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츠코시 소년음악대가 그 해 4월에 아동박람회에서 연주를 하고 대박을 치면서 다른 백화점이나 다른 시설 등의 판촉용으로 음악대를 결성한다.
1911년 시로키야 소녀음악대(白木屋少女音楽隊)
최초의 소녀가극단은 시로키야 백화점[1]에서 운영한 시로키야 소녀음악대이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활동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로 창단한 소녀가극단이 그 유명한 다카라즈카 창가대이다. 1913년 한큐 전철의 창립자인 코바야시 이치조가 다카라즈카 신온천의 접객을 위해 만든 창가대이다. 미츠코시 소년음악대를 모티브로 만들었는데, 그 해 12월 4명을 추가하여 다카라즈카 소녀가극양성회로 개칭했다. 1914년 4월부터 소녀가극을 공연하기 시작했는데, 1914년 3월 19일 오사카마이니치 신문에 실은 초회공연 광고에서 ' 일본 최초의 소녀가극(日本で初めての少女歌劇)'라고 한 것이 최초로 소녀가극이란 단어가 쓰인 것이다. 미츠코시 소년음악대와 차별하기 위해 소녀들로만 구성했다는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은 것 같다.
그 이후 여러 소녀가극단이 생겨났다. 1922년 4월 쇼치쿠 주식회사의 시라이 마츠지로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성공을 보고, 안무가와 작곡가를 초빙해서 만든 쇼치쿠 소녀가극단(松竹少女歌劇団)과 오사카 쇼치쿠 소녀가극단(大阪松竹少女歌劇団)(OSSK, 1943년 소녀를 떼서 OSK)을 창설한다. 이렇게 3대 소녀가극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28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몽 파리' 재상연
1927년 9월 1일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몽 파리(Mon Paris, モン・パリ 〜吾が巴里よ!〜)가 흥행에 성공하고, 1930년 8월 파리젯(Parisette, パリゼット)도 성공하면서 서양 레뷰가 인기를 끌게 된다.
여담으로 1940년대부터 소녀가극단에서 소녀라는 단어를 빼기 시작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1940년, 쇼치쿠 가극단과 오사카 쇼치쿠 가극단은 1943년 개명했다.
2.2. 쇠퇴와 부활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3대 소녀가극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녀가극단이 해단하게 된다. 이후로도 1960년대 가정용 TV가 도입됨에 따라 인기가 점점 시들시들해지게 된다.그러다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1974년 8월 29일에 당시 인기 만화였던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뮤지컬화하여 성공한다. 1977년 3월 25일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뮤지컬화하여 반등에 성공한다.
쇼치쿠 가극단은 성인향으로 잡다보니 팬층이 두텁지 못했고, 계속되는 부진에 1996년 6월 30일에 해단했다. 오사카쇼치쿠 가극단도 계속되는 부진에 2003년 해단을 강요당했지만 거부한 극단 멤버들이 NewOSK와 가극★비쥬(歌劇★ビジュー)로 갈라졌다. 이렇게 3대 소녀가극단에서 쇼치쿠가 스스로 쇠퇴해서 다카라즈카 독주 체제가 되었다.
현대에도 신생 소녀가극단들이 생기고 있다. 하우스텐보스 테마파크 홍보용인 하우스텐보스 가극단도 있고, 2020년 구마모토현의 타카모리마치의 로컬 아이돌로 결성된 096k 구마모토 가극단(096k熊本歌劇団)도 있다.
3. 개별 문서가 있는 소녀가극단
4. 소녀가극을 소재로 한 작품
- カーテンは今夜も青い (데즈카 오사무 작, 1958)
- ライジング! (히무로 사에코 작, 1981)
- 가극 소녀!!
- 사쿠라 대전 시리즈
-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 월드 다이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