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1 21:44:58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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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POSCO(POhang Iron & Steel COmpany)
파일:SWs27OU.jpg
형태 주식회사
설립 1968년 4월 1일
설립자 박태준
대표자 최정우, 장인화
국가 대한민국
본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6261 ( 괴동동)
그룹 시가총액 26조 7,800억 원
( 2019년 7월 28일) #
공식 홈페이지 2노조 홈페이지

1. 개요2. 지배구조3. 연혁
3.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3.2. 광양제철소 건설3.3. 이후 현재까지
3.3.1. 대략적인 개관3.3.2. 2018년 ~
4. 역대 슬로건5. 역대 임원
5.1. 명예회장5.2. 대표이사 회장5.3. 부회장5.4. 대표이사 사장5.5. 대표이사 부사장
6. 특징 및 이야기거리
6.1. 공화 기업6.2. 조직문화6.3. 연봉6.4. 초대 회장6.5. 비판6.6. 교육6.7. 직원 복지6.8. 노동조합6.9. 광고6.10.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

세상을 더 넓게 Unlimit the Limit
포스코의 캐치프레이즈
50년의 도전, 100년의 새꿈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 슬로건

대한민국 대기업이자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 자회사들은 사실상 포스코에 필요한 사업을 영위한다.

철강산업을 주 산업으로 하며, 현재 포스코그룹은 대한민국에서 재계서열 6위(자산총액 기준)의 기업 집단으로

자산총액은 약 79조 7천억원이다.

전신은 1968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이며, 2002년 공식 회사 명칭을 포스코로 변경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항제철이라고 부른다. 애초에 '포스코'라는 사명 자체가 '포항제철'을 영문화시켜서 만든 명칭이기 때문.

IMF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 과정을 거쳐 2000년에 완전 민영화가 되었으며, 몇 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포스코와 그 계열사가 공식적으로 기업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대기업 집단이며,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 지배구조

2019년 10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국민연금공단 11.72%
파일:미국 국기.png 씨티은행[1] 10.0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자사주 8.1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우리사주조합 1.63%

3. 연혁

3.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

파일:포항제철ci.jpg [2]

포항종합제철공장 착공식


포항종합제철 제2기 설비공사 준공식 및 화입식


포항종합제철, 제 3기 설비확장공사 준공식


포항종합제철, 제 4기 설비 준공식

박정희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중 기초산업으로 철강 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사정으로 볼 때 국내자금으로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제철소 건설을 위해 주식을 공모했지만, 목표액 33억 원의 0.4%인 1,300만 원만 모였을 뿐이었다.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은 다들 무모한 일이라며 반대를 했고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를 두고 과시용 사업이라며 비웃기도 했다.

종합제철소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65년이었다. 그 해 5월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피츠버그 철강단지를 방문해 제철소 건립에 대한 의지를 더욱 더 다지게 되었고 미국의 제철소 건설 기술 용역회사인 코퍼스(Koppers Co. Inc)의 포이(F. Foy) 회장을 만나 이 의견을 피력하였다. 포이 회장은 국제제철차관단을 만들어 종합제철소 건설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부지 선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는데, 당시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이었던 황병태[3] 등의 에 의하면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이 종합제철추진단장으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제철소 후보지는 충남 서천(비인)[4], 경남 울산[5][6], 삼천포[7] 등 3곳이었고,포항은 후보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자기고향 챙기기는 여전해서 충남 출신인 공화당 김종필 의장과 김용태 원내총무(현재의 원내대표격)가 서천을 밀고,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울산을 밀고,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창 서정귀[8]가 삼천포를 밀고 있었다.[9]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각 지역을 미는 쪽에서는 대규모 투자라 거의 반목숨걸 듯 들이댔고 박정희는 세 부지를 둘러보고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황병태만 있는 자리에서 슬쩍 물어보고 포항에 대한 설명[10]을 들은 후 연극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후 열흘쯤 후 경제동향 보고회 자리에서 뜬금없이 황병태를 찾은 후 제철소 부지 설명을 요구하고 포항 이야기를 하게 하더니 즉석에서 포항으로 낙점했다고 한다.[11]

종합제철소 건설은 시작부터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었다. 세계은행은 채산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국내외의 많은 기관이나 회사들도 마찬가지로 제철소 건설을 회의적이라 보았다. 그러나 산업화 초입에 들어선 입장에서 철강의 자체생산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철소 건설을 성사시켜야 했었다고 한다.

1969년 1월 하순 하와이. 박태준은 와이키키 해변을 걷고 있었다. 종합제철소 건설에 쓸 자금 조달을 위해 미국 워싱턴까지 날아갔지만 믿었던 국제제철차관단(KISA)의 프레드 포이 대표에게 퇴짜를 맞았다. 세계 철강업계와 금융기관들은 이름조차 낯선 후진국 대한민국에서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이 성공할 수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박태준은 쏜살같이 콘도로 돌아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서 협상은 실패했지만 마지막 방법이 있습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전용(轉用)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식민지배 기간 끼친 각종 피해에 대한 배상청구로 받기로 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의 자금 중 농수산 지원 용도로 사용하기로 한 자금을 제철소 건설로 돌려서 활용하자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기막힌 아이디어군. 대일 청구권 자금이 1억달러는 남아 있을 거야. 일본 정부는 임자가 설득해"
당시 정치권은 농수산 지원 용도로 쓰일 자금을 전용하는 데 반대했다. 국회의원의 80%가 농촌 출신이었기 때문. 하지만 박정희와 박태준은 국가의 농수산업 대신 제철소를 선택했다. [영남일보를 통해 본 현대사] <7> 구미공단·포항제철 건설

일본에 건너가 야하타 제철의 이나야마 사장과 신일본제철의 나가노 시게오 사장, 일본강관의 아카사카 다케시 사장 등 철강산업의 주역들을 만나 일일이 설득해 일본정부는 제철기술을 제공하기로 했고, 신일본제철의 기술로 지어지게 합의를 보게 되었다. 1968년 4월 1일 회사를 설립하고 1970년부터 건설에 들어간다. 이 때 박태준 회장은 첫 삽을 뜰 때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예정보다 일정을 1개월 앞당긴 1973년 6월 9일 마침내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는데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해당하는 1205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은 결과물이었다. 조업 첫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달러, 순이익 1200만달러(약 46억원)를 달성했다. 이로써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 됐다. 하지만 아직 국제규모에 크게 밀리는 기업이라 확장이 절실했고 제철소 4기가 완성될 때까지 13년이 걸렸다.

1978년 중국의 최고실세로 떠오른 덩샤오핑(鄧小平)이 신일본제철을 방문해 중국에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는데 ( 토법고로삽질을 경험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부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듯)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은 “제철소는 돈과 기술로만 짓는게 아니라 사람이 짓습니다.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는 지을 수 없습니다. 포항제철은 기적입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한 일화가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일기본조약의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받은 보상금을 포항제철소 건립에 전용, 징용 등 일제시대 전쟁에 동원된 피해자에게는 10%도 돌아가지 않았다. 포스코는 대성공한 이후에도 일제시대 전쟁에 동원된 피해자들에게는 한푼도 낼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양금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을 비롯한 변호인단이 포스코에 소송을 걸었는데, 소송에서 포스코는 김앤장을 동원하여 일명 찍어누르기를 시전하여 소송에서 승소하였으나, 본래 중립을 지키는 판사도 이례적으로 판결문에 "법리적 배상 책임과 별도로 도의적 지원을 하는게 옳지 않겠느냐"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포스코의 태도는 상당한 논란거리다. #

3.2. 광양제철소 건설


광양제철소 1기 설비공사 준공식


광양제철소 2기 공사 준공


광양제철소 3기 준공

현대차그룹 현대제철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 측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갖게 되었고[12], 지리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종합해서 전두환 정권 때 광양만에 있는 금호도가 제2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다. 다른 후보지[13] 울진은 너무 북쪽에 있어 안보 위협이 문제가 되고, 서산시· 태안군의 아산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전라도에 있다는 점에서 균형발전에도 들어맞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는 광양만이 최적의 입지인데도 아산으로 하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부지가 광양만으로 정해진 이후에도 포철 고위직들이 "호남인데..."라며 난색을 표하면서 광양만에서도 경상도 쪽인 하동에 짓자는 말을 했으나, 박태준 회장이 직권으로 광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14]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여주듯이 박태준이라는 상식과 합리적인 사고를 갖춘 유력자가 없었다면, 광양제철소는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발 더 나아가자면 여수국가산업단지까지 말이다.[15]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1985년 시작된 광양제철소 건설은 1992년 4기 공사가 완결됨으로써 포스코는 조강생산 2,080만 톤(연간)을 달성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0906_034_4.jpg

제철소 부지가 굉장히 크다. 대지 넓이가 무려 2,080만㎡(630만평)[16]로 세계 최대 규모의 제철소이며 대한민국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생산공장 중 단일부지로는 제일 넓다.[17] 1992년 제철소가 세워진 이후에도 잦은 간척 사업이 이뤄지면서 넓이가 더 넓어졌다. 넓이 만능 측정기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며 기초자치단체 서울 성동구의 경우 면적이 1,684만㎡ 정도인 것을 볼 때 일개 제철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철소 견학을 가 보면 공장 안내를 해주는 간부직원이 "포항제철소는 주조부터 압연까지의 공정이 U자 형태로 돌아나오게 배치되어 있지만, 광양제철소는 그보다 뒤에 지은지라 신기술이 적용되었고 부지도 훨씬 넓어서 용광로 주물부터 압연까지 전체 공정이 일자형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제철소 뒤에 있는 금호동 사원 주택단지까지 합치면 조그마한 신도시[18]라 불릴 정도. 실제 제철소와 광양 시내는 교량으로 연결된 또 다른 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

여담으로 이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광양만 지역은 본래 어업, 특히 김 양식이 대단히 발달한 지역이었다. 마침 김(金)과 철을 뜻하는 한자가 같아서 호사가들이 이에 대한 말을 많이 하는 편. 광양제철소 한켠에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남아 있으며 현지 어민들은 이주 보상금 및 제철소 취업의 우선권 등의 보상을 받고 광영동 등에 이주했다.

3.3. 이후 현재까지

3.3.1. 대략적인 개관

이후 포스코는 1992년 김영삼 정부의 세무조사로 박태준 회장이 일본으로 떠나는 등 체제가 흔들리면서 부진을 겪을 뻔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박태준 회장은 1997년경 재보선으로 복귀했고 DJP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은 다시 안정되었다. 뉴욕 런던 증시에 상장되는 등 기업가치를 높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2000년에는 정부지분을 완전 매각함으로써 민영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19] 2002년에는 공식적인 회사명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에서 "포스코"로 변경[20]하였고, 덩달아 CI도 변경하게 되었다.

파일:포스코_NYSE상장(2).jpg 파일:포스코_NYSE상장.jpg

2007년에는 차세대 제선 공법인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를 준공하여 운영 중이며, 인도 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의 경우 외부에서 그룹 회장이 온 경우는 단 한 번, 김영삼 정부 시절 박태준 사단을 퇴출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전 회장 뿐이다.[21] 이외에는 모두 포스코 내부 인사가 임명되었는데, 특히 이구택 전 회장은 포스코 공채 1기이다. 하지만 공기업에서 출발한 기업이니만큼, 여전히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편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태준 사단은 대거 복귀하였는데 김대중 정부 시기 5대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6대 이구택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7대 정준양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회장 교체 과정에서 모두 정치권 개입이 있었다는 잡음이 있었다. 그리고 정준양 회장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퇴(...)했고 후임으로 권오준 회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권오준 역시 문재인 정부 성립 11달 만에 사임하며 그 전통(?)을 이어갔다. 포스코 회장 임기는 대략 5년이다.

3.3.2. 2018년 ~

7년만에 최고 수익을 갱신했다. 오랜 적자 속에서 나온 흑자로 포항시, 광양시의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있다.이후 새로 취임한 회장의 현장경영의 원칙 따라 중요 부서가 광양과 포항으로 이동된다. 서울로 가지고 갔던 전 회장과는 다른 행보이다.

철강업계 '10일 조업중지'에 "사실상 운영중단 처분" 초비상(종합2보)
철강업계, '10일 조업중지'에 강력 반발
철강업계, 지자체 조업정지 10일 처분에 "문 닫으라는 얘기냐"
'10일 조업정지' 선고한 지자체…논란 확산

2019년,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 제철소 핵심 설비인 고로(용광로)에 대해 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업계는 철강산업 전반적으로 천문학적인 손실이 날 위기에 처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쟁사인 현대제철은 이번 조치로 보수 비용을 제외하고도 8000억원의 손실을 예상했다. 환경단체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제철과정에서 생긴 오염물질을 저감시설 없이 블리더[22]를 통해 공기 중에 배출해왔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지자체는 대기환경보전법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결정했다.

하지만, 블리더 말고는 대체제가 없기 때문에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국철강협회는 "고로 안전밸브 개방은 전 세계 제철소가 지난 100년 이상 적용해온 안전 프로세스"라며 "조업정지 이후 고로를 재가동한다 해도 현재로선 기술적 대안이 없다"고 했다. 협회는 세계철강협회(WSA)에 문의한 결과, "안전밸브를 열어 배출되는 소량의 잔여가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환경단체와 지자체는 법령 위반의 근거로 대기환경보전법 제31조 2항을 들었는데, 여기서는 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공기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다만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라는 예외조항이 있는데 블리더는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정확히 이 예외조항에 해당한다.

그리고 10일 조업정지 처분이 실질적으로는 10일 동안 공장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연간 400만 톤의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가 멈추면 쇳물이 굳어져 복구 작업에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스테인리스강 제조업체 칭산(靑山)철강이 한국에 대규모 냉연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 이번 조치가 궁극적으로 중국에 국내 철강 시장을 내어 주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한대정 민주노총 포스코 지회장도 해당 조치에 대해 "블리더는 노내 압력을 정상상태인 2.3~2.7 Bar(기압 단위)로 조절하는 안전밸브로, 노내 압력이 급격히 올라갈 경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 또는 주기적으로 열어 철광석과 코크스를 녹일 때 사용하는 석탄에서 나오는 일부 일산화탄소와 압력을 맞추기 위해 주입하는 수증기를 배출한다. 고로에서 배출되는 이들 물질은 평소에는 회수해 발전소의 전력 생산 자원으로 보내지고 있어 고의로 오염물질을 대기에 내보낼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밸브가 자동으로 열리면 의도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염물질이 대기로 배출되는 문제는 있지만,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밝히고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말고 노사정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조업정지 처분에 대해 경쟁사인 현대제철은 2019년 6월 7일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와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으며, 이후 조업정지 처분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지자체 및 지역 환경 단체들과 소통이 부족했다"고 사과하면서도 "철강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며 자동차, 조선, 건설 등 경제 중심 산업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제철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우리가 미흡한 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6월 1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현대제철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7월 15일부터 10일간 내려질 예정이었던 고로 조업정지 행정처분은 보류됐다. 또한 향후 3~5개월 뒤에 열릴 행정심판도 현대제철의 손을 들어준다면,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은 없던 일이 된다. 포스코 역시 같은 행정처분을 받았으므로 동일한 혜택을 볼 가능성이 있다.

4. 역대 슬로건

  • 우리의 기업/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포항제철 (1991~1992)
  • 다음 세대의 번영을 생각하는 포항제철 (1992~1993)
  • 신한국 건설에 앞장서는 포항제철 (1993)
  • 통신보국시대를 준비하는 포항제철 (1993)
  • 세계제일의 철강기업 (1995~1998)
  • 믿음직한 국민의 기업 (1998)
  • 철강으로 나라사랑 (1998~1999)
  •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2000~2011)
  • 아는 만큼 가까워집니다 (2012)
  • 위대함을 향해 갑니다 (2014)
  • Unlimit the Limit (2018~ )

5. 역대 임원

5.1. 명예회장

5.2. 대표이사 회장

현재 총 9명의 역대 회장 중 7명이 본사 사원 출신이다.
  • 박태준 (1981 ~ 1992)
  • 황경로 (1992 ~ 1993)
  • 정명식 (1993 ~ 1994)
  • 김만제 (1994 ~ 1998)
  • 유상부 (1998 ~ 2003)
  • 이구택 (2003 ~ 2009)
  • 정준양 (2009 ~ 2014)
  • 권오준 (2014 ~ 2018)
  • 최정우 (2018 ~ )

5.3. 부회장

  • 황경로 (1990~1992)
  • 정명식 (1992~1993)

5.4. 대표이사 사장

  • 박태준 (1968~1981)
  • 고준식 (1981~1985)
  • 안병화 (1985~1987)
  • 정명식 (1987~1992)
  • 박덕표 (1992~1993)
  • 조말수 (1993~1994)
  • 김종진 (1994~1998)
  • 이구택 (1998~2003)
  • 강창오 (2003~2006)
  • 윤석만 (2006~2009)
  • 이윤 (2006~2008)
  • 정준양 (2007~2009)
  • 이동희 (2009~2010)
  • 최종태 (2009~2012)
  • 박한용 (2012~2013)
  • 권오준 (2012~2014)
  • 김준식, 박기홍 (2013~2014)
  • 김진일 (2014~2017)
  • 황은연 (2016)
  • 오인환 (2017~2018)
  • 최정우 (2017~2018)
  • 장인화 (2018~ )

5.5. 대표이사 부사장

  • 정준양 (2006~2007)

6. 특징 및 이야기거리

6.1. 공화 기업

다른 대기업들과는 달리 초대 회장인 박태준은 자기 후손들에게 회장자리를 물려주지 않았고 사원 출신들에게 회장직을 넘겼으며, 이는 포스코가 계속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요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 비록 포스코가 공기업으로 시작되었으며 박태준에게 회장직을 승계할 수 있을 정도의 의결권이 없었던 점은 고려해야겠으나 애초에 과거 포스코에서 상당한 양의 주식을 박태준에게 주려 했는데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마음먹고 노력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수밖에 없다. 보통 애사심으론 불가능한 선택.

6.2. 조직문화

포스코는 남성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이다. 일단 박태준 명예회장을 위시한 창립멤버 대부분이 군인 출신이고, 제조업 중에서도 건설업과 더불어 현장이 가장 위험한 철강산업이기 때문에 남성적이고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문화가 강한 편이다. 한마디로 군대 분위기가 강하다. 요새 유행하는 회사 내의 수평적인 관계는 어지간하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이런 분위기 덕인지 포스코 임원 기내 승무원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제철회사 특성 상 안전하지 못한 곳이 매우 많다보니 안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포스코 부지 내에서 속도위반이나 안전장비 미착용 등으로 적발된다면 협력업체의 경우에는 협력업체의 사장이 출근시간에 출근길에 나와서 전 직원들을 상대로 사과와 안전 다짐을 하기도 하고 부지 내에서 흡연이 3번 적발될 경우 이유 불문하고 포스코 문을 영구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는 등 상당히 강한 통제가 많다.

6.3. 연봉

포스코의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세전 5,200만원 정도(2016)이며, 다른 계열사도 비슷하다. 그러나 포스코 생산기술직 사원의 경우 교대근무자[23]는 초봉이 4,800만원 수준(2017)이고 보통은 특근과 잔업이 많아서 이보다는 훨씬 많이 받는다. 노동 강도가 빡세고 위험하기도하고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현장의 특성상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이 크게 증가한다. 또 구조조정이 끝난 현재로써는 현장노동자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한번 입사할 경우 정년퇴직을 노려볼 만한 정도이다.

2015년 기준으로 생산직원의 평균 근속연수 18.3년, 평균연봉은 7,000만원에 육박한다. 거기에 자녀 2명의 대학 등록금이 전액 지원되기 때문에 실질소득은 이보다 높다. 최근에는 개정되서 자녀 수는 제한이 없고 인당 8,000만원 한도로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바꿨다.

2018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평균연봉 9800만원이다. 출처

6.4. 초대 회장

초대 회장이었던 박태준은 경제에 관해 생판 모르는 군인이었음에도 적자투성이인 대한중석[24]을 맡아 1년 만에 흑자 전환시켰으며, 이후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으로 임명된다. 포스코의 성장에 있어 박태준 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여 제철소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였고, 이후 정치계에 진입하는 대신 포스코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두환으로부터 받아내기도 하였으며, 92년 포스코 양대 제철소의 완공 이후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면서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정치인으로서의 박태준의 역할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업인으로서 박태준은 큰 업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역시 군 출신에 사업가이자 일본/정치의 막후에 있었던 허풍쟁이 세지마 류조도 자기보다 수완이 뛰어나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6.5. 비판

박태준회장의 말따마나 선조들의 피로 얼룩진 회사라고 밝혔듯 포스코 자체가 한일협정으로 일본 정부에게서 받은 금액 중 상당부분에 해당되는 거액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회사인데, 대성공한 이후에도 당시 피해자들에게는 한푼도 낼 수 없다고 맞섰고, 그 결과 양금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이후 포스코에 소송을 거는 등 꾸준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포스코 스스로에게는 일본 기업들처럼 나라의 강제징용 제도를 직접 이용하여 금전적인 이득을 보았다는 사실은 없다. 40여년이 지나 롯데그룹이 징병제를 직접적으로 이용하여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를 하는 등[25] 포스코를 뛰어넘는 짓거리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포스코에게 결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비록 롯데의 시도가 포스코의 설립 배경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사안이라고 해도,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轉用)하여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설사 포스코가 망해도 변치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설사 롯데가 징병제를 써먹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여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6.6. 교육

포스코의 교육지원은 포스코교육재단을 중심으로 한 초·중·고등학교 교육과 포항공과대학교·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고등교육·연구로 나뉠 수 있으며, 이 역시 상당히 혁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포스코교육재단은 산하에 4개 고등학교, 2개 중학교, 4개 초등학교와 몇 개의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쓰지 않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설립했다는 특징이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특별활동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 왔으며 많은 분야의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있으며, 중학교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운영되고 있다.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 자율형 사립고로 운영되며[26]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는 전문계 고등학교 중에는 매우 잘나가는 학교이다. 지금은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되었다. 여기 졸업하면 어떻게든 포스코 관련된 회사는 보내준다고 보면 된다 근데 원체 잘나가서 별 차이는 없다는 듯[27] 학생들의 소질을 최대한 계발해 주자는 것이 이 교육재단의 목표였는데, 7~80년대에 이런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포항제철고나 포철공고 모두 경북권에서는 알아주는 일반계/전문계 고등학교이고, 광양제철고 역시 90년대 초반부터 매년 서울대 진학생을 5명 안팎으로 배출하는 학교였다.[28] 광양제철고는 현재 매년 10명 안팎의 서울대 진학생을 배출하는 학교로 거듭났다. 문제는 포항이나 광양이나 학구열을 비롯한 치맛바람이 쎄다는 것(...) 따라서 과외[29]를 비롯한 각종 선행학습이 지나친 편이다. 이는 부모들 간의 경쟁의식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다. 각 학교가 위치한 직원주택단지는 부모간의 학력이나 소득, 지위의 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 부모들의 자존심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

2015년에는 송도국제도시 인천포스코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30]

포항공과대학교(POSTECH)는 박태준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구상 계획에 따라 설립된 학교로, 2010년 영국 THE 선정 세계 28위 대학[31]으로 선정되는 등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는 90년대에 국내 최초로 지어진 가속기 시설이며, 국내 과학 기술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포항공대와 가속기의 건설에 관한 박태준과 김호길 포항공대 초대 총장의 일화를 찾아보면 상당한 대인배스러움에 흠좀무..할 것이다. 또한 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포스코, 포스텍과의 산학연 협동을 위해 포스코가 전액 출연하여 설립한 민간연구기관이다.

6.7. 직원 복지

직원 복지 면에서 포스코의 투자는 상당한 편이다.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화된 복지 정책이 주택 정책인데, 회사가 주택을 공급하여 분양함으로써 직원들이 주택 걱정을 하지 않도록 힘쓴 바 있다. 포항제철 건립 초창기인 1960년대 직원주택과 학교 건설을 시작함으로써 쓸데 없는데 돈 쓴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으나, 지금 와서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몇 안되는 성공적인 포드주의의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포항과 광양 양쪽 모두에 주택단지를 대규모로 조성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주변 주민들이 질투할 정도로 괜찮은 주거단지를 마련하였다. 포항이나 광양의 주택단지를 보면 동시기에 지어진 다른 주택단지들에 비해 엄청난 녹지비율과 체육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포항 효곡동 주택단지의 경우 경상북도 지곡시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포항 시가지와는 차원이 다른 주거환경을 보여준다. 심지어 포항에는 미관상 안 좋다고 (...) 전선을 모두 매립해서 전봇대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렇게 모여사는 탓인지, 기묘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단지 내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보다 준법의식이 높고, 아이들은 밖과는 달리 비행청소년이 적다...라는 것 등등.[32][33] 광양의 경우 건물의 노후화, 구조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단지가 공장지역 바로 옆에 있는데다가 저 바다건너에는 국내 최대규모 여수화학단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공기가 매우 나쁘다. 자녀 교육 문제만 아니라면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직원들이 굉장히 많은데, 자녀들을 포스코교육재단 산하 학교에 보내려면 포스코에서 조성한 주거 단지에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34]만 있고 그 이후로는 다들 금호동에서 탈출하려고 한다.[35]

그리고 생활비가 상당히 싸게 먹히는 편인데, 제철소에서 냉각수로 사용된 온수를 이용하여 온돌식 난방을 하기 때문에 한겨울에 펑펑 난방을 하고 온수를 사용해도 월 3만원이 안나올 정도로 난방비가 적게 들고, 단지 내에서의 전화는 회사 내선처럼 연결되어 있어 무료이기 때문에 전화비도 적게 든다. 심지어 포항지역 주택단지와 광양지역 주택단지간의 전화도 내선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식비는...

그렇지만 현재 포스코는 복지를 늘려가는게 아니라 줄여가는 추세이고 통화비도 휴대전화가 보편화된 현재로써는 의미가 없는 복지이고 애당초 원래 의미가 없었던 복지이다, 그리고 난방비도 원래 무료였다가 유료화된 이후로 계속해서 인상되는 추세이다. 그리고 포스코 부지 내부의 집들은 기본적으로 20년은 족히 넘은 집들이라 노후화가 심각하고 면적도 좁다보니 난방비고 뭐고 자녀들 교육 아니면 있을 곳이 못된다.

6.8. 노동조합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영향 덕에 1988년 처음으로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노조가 결성돼 조합원만 18,000여 명을 자랑했으나, 사측은 안기부 등 공권력을 동원해 이를 탄압했다. 1991년 노조 간부의 금품수수 비리 혐의로 사실상 와해돼 힘을 잃어 조합원이 10여 명으로 줄었고, 이로써 한국노총에서 제명당한 채 휴면노조화되어 노경위원회가 노사 교섭기구 노릇을 했다.[36] 그러나 2011년 6월 복수노조제가 통과돼도 실제 설립까지는 7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곳도 제철회사인지라 위험한 현장이 매우 많고 실제로 사망사고, 영구 상해 사고도 빈번히 발생하는 등 근무 환경이 가혹하기로 유명했으며, 1997년 삼미종합특수강 일부 공장 인수 후 신설법인 포스코특수강을 세웠음에도 일부 구 삼미 시절 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언론의 지탄을 받고 노조를 설립하게 된 삼성에 비하면 무노조 문제가 그닥 조명을 받지 못해서 포스코의 노조 설립은 여전히 요원해보였으나, 2018년에야 금속노조 포스코지부가 창설되었다. 뒤이어 기존 휴면노조도 한국노총 금속노련에 재가입해 정식 출범했다.

2018년 12월 12일 포스코에서는 노조위원장과 간부 2명을 해고하고 간부 2명에게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리는 처분을 하였다. 노조에서는 포스코의 노조 와해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갈등이 예상되지만 설립된지 얼마 안된 곳인지라 결속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이로써 민주노총은 교섭권을 잃게 되었고 한국노총이 단독으로 교섭권을 얻게 되면서 사측과 임금, 단체협상을 주도하게 되었다.

6.9. 광고

포스코는 주력 업종이 'B2B(기업간 거래)'성격을 가진 기업으로서, 일반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일이 거의 없다. 때문에 기업 이미지 광고에 주력하고 있는데, 좀처럼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광고를 여러차례 선보인 바 있다.
참조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전광판 광고


5달러 자전거 광고


I AM #STEELSTRONG 광고


포스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광고


숫자로 보는 포스코 광고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 광고

6.10. 기타

  • 정준양 회장 시절부터 강제적인 금연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다이어트 정책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회사 안팎으로 회장을 비난하는 말들이 많다. 물론 금연자들은 쌍수 들고 환영하고, 다이어트의 경우에도 회사에서 전적으로 지원해주긴 하지만... 무엇이든 너무 밀어붙이면 좋은 반응만은 나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현재는 유야무야된 정책이다.
  •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회사는 생산기술직과 사무직 가릴 것 없이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만능형 인재를 매우 선호한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스펙이 다른 회사보다 높은 편이다.문과 기준 오픽 IM3 이상 혹은 이에 준하는 어학점수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학점도 3점대 후반 이상이던지 이 이하라면 철강 관련 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고스펙이어야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입사에 필요한 스펙이 매우 높은편이지만 이에 끝나지 않고 "사회봉사경력" 역시 필요하다. 만약 포스코 입사를 노리고 있다면 생산직, 사무직 가리지 않고 vms나 1365 등에 등록이 되어 증명이 가능한 봉사활동을 최소 100시간 이상 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채우는 것이 권장되고 공고가 나온 날까지 3년 이내만 인정해준다.
  • 제철소 자체가 국가중요시설('가급' 국가보안시설)이다 보니 네이버 지도나 다음 지도와 같은 국내 지도에는 군부대에 준하게 표시되고,[37] 로드뷰에도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온다.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중요한 시설이므로 대한민국 해군에서 대대급 부대를 두어 방어한다. 그만큼 보안도 까다롭다. 사전에 출입등록은 필수요, 당일 제철소내 작업이 있다면 신청서에 반입하는 물자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출입증을 받으면 각 게이트에 있는 보안요원이 신청서에 적인 물자대로 있는지 차량 트렁크까지 검사하고, 신청서에 있는 물자와 일치하면 통과시킨다. 작업을 마치고 나올 때는 내부에서 승인 없이 반출하는 물자가 있는지 다시 검사한다. 그리고 제철소내 상세지도를 가지고 있다면 함부로 꺼내지 말것. 보안요원이 '이런걸 왜 가지고 있나'는 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양반이다.
  • 포항 대한민국 해군 6항공전단에서 근무하는 수병들은 전역하기 전 포항 투어를 시켜주는데 코스 중 한 곳이 포항제철소이다.
  • 제철소가 위치한 두 지역 사원 주택단지의 선거 표심이 각자 다르다. 포항 제철동과 지곡동에서는 영남 표심과는 반대로 민주당 계열 정당 득표율이 가장 높게 나오고, 광양 금호동에서는 역시 호남 표심과는 반대로 보수 계열 정당 득표율이 호남지역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위에 나온 이야기처럼 전국 각지에서 온 포스코 직원들의 영향이 끼친 것이다. 다만 효곡동에서 보수 계열 정당 표가 다소 낮은 것은 포항공대 교수나 학생들 같은 젊은 사람들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본격 지역감정 해소에 기여하는 포스코
  • 2018년은 포스코가 창립 50주년을 맞는 연도이다. 그래서 포스코가 '포스코 50년사'라는 사사(社史, 회사의 역사책)를 발간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이 책에 실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관련 내용을 대폭 삭제, 수정시킬 것이라는 얘기가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관련 매일신문 사설
  • 포항시 지역 사회에서는 포스코에 대해 서운함이나 섭섭한 감정을 조금 가지고 있는 듯하다. 관련 기사

7. 관련 문서



[1] 주식예탁증서(DR)의 예탁기관으로 의결권은 각각의 DR 소유주들에게 있다. [2] 2002년 공식적인 회사명을 포스코로 바꾸기 전까지 사용되던 로고이다. Pohang Iron & Steel Company에서 P, I, S를 조합한 로고이다. [3]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한국외대 총장, 주 중국 대사, 통일민주당 부총재 등을 지냈으며 노태우 정권기에 서울 강남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김영삼 정권 말기 문경·예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4] 서해안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므로 종합제철소 건립에 따른 파급효과가 전국적으로 골고루 미칠 것을 내세웠다고 한다. 반면, 약점으로는 바다의 수심이 얕아 화물선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5] 이미 다른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제철소가 추가로 들어선다면 경제적인 상승효과를 낼 것이라는 장점을 어필하였다고 한다. 약점으로 이미 다른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상태여서 대단위 부지를 필요로 하는 종합제철 사업에서는 터를 잡기가 곤란하고 정유, 비료공장과 같은 기간산업체들과 한데 있어야 한다는 위험부담도 존재했다고 한다. [6] 당시는 광역시가 아니라 경상남도 울산시였다. [7] 현재의 사천시로 기존의 항만 시설을 확장하는 식으로 제철공장 부지를 마련할 경우 개발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것을 앞세웠다고 한다. 약점으로 연관공장이나 야적장을 마련할 만한 배후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8] 1958년에서 1961년까지 통영 지역구 민의원으로 활동했고, 재무부 정무차관도 역임했다. [9] 사실 이렇게 따지면 TK출신 박정희와 황병태가 TK챙기기를 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뭐 결과적으로야 성공했지만.. [10] 6·25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작전을 지휘했던 밴플리트 장군이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뒤 웨스팅하우스의 고문을 맡으면서 미국 기업 대표들로 방한 투자단을 구성해 종합제철소 예비조사를 실시한 후 포항을 추천했다고 한다. 또한, 포항 바다가 깊어 추가로 준설을 하지 않아도 10만 톤급의 화물선이 드나들 수 있었던 데다 배후지도 넓었다는 장점을 들었다. [11] 예정에 없던 이야기라 김종필 의장은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박충훈 상공부 장관, 구태회 공화당 정책의장도 뻥쪘다고 한다. 국장급이 상급자인 부총리도 모르게 질러버린 거라.. [12] 현대는 이후 인천제철과 한보철강 을 인수한 뒤 현대제철을 출범시킴으로써 일관제철소를 갖게 된다. [13] 추가적으로 삼천포도 있었다. [14] 국영기업 고위직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인 걸 보면 당시에 호남에 대한 지역차별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5] 이 부지선정을 두고, 포항제철소 설립시부터 포스코 측과 합작관계를 맺어 온 일본 기업인 도멘(동양면화: 원래 미쓰이물산의 레이온사업부였다가 훗날 종합상사로 독립) 서울지사장이었던 모모세 타다시는 자서전에서 "하동 쪽으로 붙여 지으려는 것에 대해 내가 반대 의견을 낸 적 있다"라고 써놓았는데, 판단은 각자 알아서... [16] 서울 도봉구의 면적과 비슷하다. [17] 포항 포스코 부지 넓이는 약 1,200만㎡, 울산 현대중공업 공장 넓이는 약 500만㎡로 알려져 있다. [18] 공기질은 영... [19] 지분율만 따지고 보면 포스코는 외국계 기업이다. [20] 이전에도 대내외적으로 POSCO라는 명칭은 사용되긴 했다. [21] 1994~1998년 재임. 전두환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22] 고로/용광로 최상부에 설치하는 안전 밸브로,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갈 때 가스를 배출해 설비 가동을 안정시키고 작업자의 안전을 보호한다. 제철, 제강 산업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설비로 분류된다. [23] 용광로는 가동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기 때문에 24시간 직원이 근무하여야 한다. 포스코의 경우 과거에는 4조로 나누어 3교대로 8시간 근무에 6일 근무 2일 휴무를 하는 형태였다.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부서와 많은 계열사가 4조 2교대로 12시간 근무에 2일근무 2일휴무의 근무패턴을 가지고 있다. [24] 지금의 대구텍 [25] 롯데월드타워를 짓기 위해 활주로 이전 공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 때 롯데는 '현역병은 인건비가 사실상 공짜이니 서로 좋은 것 아니냐'며 아예 대놓고 공군 현역병을 활주로 공사에 직접 써먹으려고 시도했다가 공군 수뇌부에게 걸려 크게 털린 바 있었다. [26] 이 두 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신청한 이유 중 하나는 직원 자녀들을 확실하게 받아주기 위해서이다.포항은 60%를, 광양은 70%를 포스코 및 계열사 자녀로 뽑는 전형이 따로 있다. [27] 그리고 이것도 옛말인 게, 2010년 이후부터는 포스코에서 군대 때문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은 잘 안뽑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탑클래스 그룹을 제외하면 추천서는 구경도 못한다. [28] 당시 광양의 경우 워낙 촌이었기 때문에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모두 순천고· 순천여고로 유학가는 형편이었다. [29] 포항의 경우 포항제철고를 비롯한 지곡단지가 포항공과대학교 바로 옆에 위치하여 과외교사 공급이 매우 용이하다. 아예 포스텍 수학과 졸업하고 눌러앉아 학원교사하는 경우도 있다. [30] 포스코건설, 포스코대우 등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포스코 계열사들의 자녀들이 많이 재학 중이다. 학교 부지가 포항-광양 두 제철고교보다 많이 협소하다. [31] 영국 타임'지'가 아닌 The Times Higher Education 이라는 영국의 고등교육전문지이다. [32] 사실 일부 고위 임원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생산직 직원들 역시 일반 시민들과 다를 바 없는 성장배경과 학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연봉이 도시 서비스 산업의 기반이 되는 탓에 이러한 우월의식이 존재한다. 여튼 이 때문에 지역의 일반 주민들은 단지 주민들을 질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질투가 아니다. [33] '아이들이 비행청소년이 적다'는 21세기에 이르기 전 까진 반 즈음 맞는 말이었다. 외부와 단절 되어있고 사립학교에서 부모 환경이 사실상 같다시피 한 아이들만 모여있다보니 문제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건 너도 갖고 있다'보니 성격 차이를 제외하곤 갈등 요소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땐 제철소 단지 밖에 나가도 학생들이 갈 곳이 없었으니...) 하지만, 인터넷의 보급 및 단지 외 광양 지역과의 교류가 쉬워지면서 지금은 다 똑같다. [34] 자녀가 공부를 굉장히 잘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상위 60%에도 못 들어서 못가는 경우는 그보다 일찍 나간다. [35] 광양지역의 경우 원래 현재와 같이 공장 바로 옆에 단지를 조성하지 않고 현 광양읍 근처에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하지만, 그놈의 보상 문제 때문에... [36] 2000년 '포항제철노동조합정상화추진위원회' 결성 후 2003년 및 2004년에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각각 노조 정상화 시도를 했으나 강제해산 또는 참여율 저조로 인한 자진해산을 겪었다. 반면 하청업체의 경우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2006년에 '금속노조 광양지역지회(현 포스코 사내하청지회)'를 결성했으나, 사측은 계약해지, 한국노총 가입 유도 등으로 거듭 탄압했다. [37] 2019년 1월 현재 출입문 정도는 정상적으로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