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19:56:38

김세진·이재호 분신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021003000120060426607_24.jpg
김세진(왼쪽), 이재호(오른쪽)
반전반핵 양키 고 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1]
당시 언론 보도에 ‘분신자살’이라고 표현됐는데 절대 자살이 아니에요. 그때만 해도 지도부가 석유를 끼얹고 위협하는 건 상징적인 몸짓이었어요.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고 대오를 반드시 지켜야 된다는 결연한 투쟁의지였던 것이죠.” - 김세진,이재호기념사업회 회장 장유식[2]

1. 개요2. 배경
2.1. 전방입소훈련에 대한 반발2.2. 학생운동의 대세, 반미
3. 전개
3.1. 전방입소 거부투쟁 시위의 계획3.2. 시위와 분신3.3. 사망
4. 영향5. 여담6. 외부 링크7. 둘러보기

1. 개요

1986년 5월 전방입소훈련을 반대하는 서울대학교 NL 학생들의 시위에서 김세진 이재호 분신한 사건.

2. 배경

2.1. 전방입소훈련에 대한 반발

그때는 학생들을 군 조직의 일부로 취급하던 시기였어요. 1학년 때는 문무대라고 불렀던 학생병영훈련소에서 일주일 정도 내무반 교육과 사격 훈련을 받았고, 2학년 때는 전방입소훈련이라고 해서 실제 전방 부대에 들어가 병영문화를 강제로 체험하게 했죠. 총학생회가 있기 전에는 학도호국단으로 학생들을 관리했고, 2학년 때까지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을 정도였어요. - 김세진,이재호기념사업회 회장 장유식

당시에는 교련이 교육과정에 남아 있었는데 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학생들은 2학년이 되면 필수과목으로 '전방입소훈련'을 받아야 했다. 이 훈련은 학생들을 군부대로 불러 모아 약 일주일 간의 군사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대학생들이 군부대에 가서 군대 예비체험을 하는 셈이었다.[3]

하지만 이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 강했다. 먼저 운동권 학생들은 전방입소훈련을 미제국주의의 용병교육이라고 여기면서 강하게 반발했고 일반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의 반발도 상당했다. 그래서 1986년부터는 전방입소훈련에 반대하고 그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2.2. 학생운동의 대세, 반미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소수의 선도 투쟁이었다면 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은 이론을 토대로 조직적으로 진행된 것이죠. 하지만 미국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농성자들도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반미가 아니다, 단지 광주학살의 배후를 묻고 미국이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것에 문제 제기하러 들어온 거다.’ 국민적 정서를 고려한 거죠. 그런데 86년이 되면서 반미를 전면적으로 내걸고 투쟁하게 된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지요. - 김세진,이재호기념사업회 회장 장유식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중에는 '반미자주화운동'이 있었는데 이 경향이 운동권 학생들에게 빠르게 퍼졌다. 1980년대에 대학에 입학하여 새롭게 운동권이 된 사람들은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알게 된 경우가 많았으며 그로 인해 파생된 미국에 대한 새로운 관점,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감, 통일 문제에 대한 인식 등을 통하여 반미 성향이 자리잡았다.[4] 그리하여 80년대 학생운동에서 '반미'라는 것은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였다. 다만 처음에는 반미를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반미' 정서는 점점 짙어졌다.

3. 전개

3.1. 전방입소 거부투쟁 시위의 계획

1986년 초 성균관대학교의 학생들이 전방입소훈련을 거부하고 철야농성에 들어간 사건이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서울대학교의 운동권 조직들은 자신들도 전방입소훈련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서울대학교도 곧 전방입소훈련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5] 1986년 4월 16일 '전방입소훈련전면거부 및 한반도미제군사기지화 결사저지를 위한 특별위원회'(전방입소거부특위)를 결성하고 위원장에 총학생회장 김지용을, 부위원장에 이재호를 선출했다. 이 단체는 결성되자마자 곧바로 시위를 계획했다.

전방입소거부특위는 전방입소를 거부하는 내용의 홍보를 진행하고 홍보지나 책자를 제작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들의 활약으로 서울대의 각 과들과 단과대학들은 서로 전방입소를 반대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에 고무된 전방입소거부특위는 4월 28일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농성할 계획을 짰다. 하지만 이 계획은 학교 측이 4월 28일부터 3일 간의 도서관 휴관을 공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종로구 연건캠퍼스 의대 도서관을 농성 장소로 정했고 거사일도 전방입소 전날인 27일로 정하고 지도부는 김세진과 이재호로 정했다. 그러나 두번째 계획도 정보가 노출되어 도서관 앞에 경찰이 진을 치는 바람에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두번째 계획까지 무산되자 그 날 밤 전방입소거부특위는 또 다른 농성 장소를 물색해야 했는데 오랜 토론 끝에 학교와 가까운 신림사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당시 서울대 인문대학 학생회장이었던 이정승은 신림사거리에 대하여 "신림 사거리는 전에도 가끔 가두투쟁 장소로 활용됐었죠. 의대 도서관 농성이 불발로 그치면서 많은 학생들이 연행되었기 때문에 다시 시내에서 집회를 잡기에는 무리였어요. 학교와의 근접성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시위 날짜는 4월 28일로 정해졌고 세번째 계획의 지도부는 두번째 계획과 동일하게 김세진과 이재호였다.

3.2. 시위와 분신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중략) 저의 행위는 한순간의 영웅심이나 학생회장이라는 것 때문에 억지로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대학 들어와서 읽은 수백 권의 책과 객관적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고뇌하며 오랜 시간 고민하여 얻은 결론입니다. (중략) 이 땅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교도소 안에서 고민하고 나와서도 변혁 해방운동에 이 몸을 바칠 것입니다. 구치소로 이송되면 다시 편지 드리겠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 1986년 4월 26일, 김세진이 부모에게 쓴 마지막 편지
물론 예고 없는 저의 결단으로 인한 충격에서 오는 부모님의 슬픔과 노여움에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지만 저의 생각과 행동이 결코 공호한 불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 장기적 전망과 믿음 속에서 증명되는 날 기쁨의 해후를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중략) 오래전부터 저는 자신의 삶을 준비해왔고 비로소 드러냈다고 봅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 이재호가 부모에게 쓴 마지막 편지

1986년 4월 28일 전방입소가 계획되어 있었던 400여명의 85학번 학생들이 가야쇼핑센터 부근에서부터 신림사거리까지 도로를 점거해 연좌한 채로 시위에 나섰다. 신림사거리 근처의 서강빌딩[6]에는 김세진과 이재호가 올라가 있었는데 여기서 둘은 학생들의 시위를 선도하면서 핸드마이크로 전방입소를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유인물을 뿌리면서 "반적반핵 양키 고 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라는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도 둘을 따라서 구호를 복창하면서 시위했다.

몇 분 후 경찰이 들이닥쳐 거리를 차지한 학생들을 몽둥이로 후려치면서 끌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이 있었던 건물에까지 경찰이 올라오자 김세진과 이재호는 가지고 온 시너를 온 몸에 뿌리고 경고했다.
"시위대에게 덤벼들지 마라.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 가까이 오면 분신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진압작전을 계속 펼치면서 둘에게 다가왔다. 마침내 김세진과 이재호가 가지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켜면서 온 몸에 불이 붙었는데 이재호는 불타는 채로 옥상에서 추락했고 김세진은 옥상 바닥에 쓰러졌다. 둘을 잡으러 온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던 학생들은 모두 그 분신을 목격했다. 그렇게 둘이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자 인문대학 학생회장 이정승이 대신 시위를 주도했다. 학생들은 김세진과 이재호를 생각하며 구호를 외치면서 노래를 불렀고 경찰에 연행되던 와중에도 한동안 시위는 끝나지 않았다.

3.3. 사망

파일:021003000120060426607_27.jpg 파일:100450_29791_1754.jpg
치료를 받고 있는 이재호 김세진과 이재호의 장례식

온 몸이 숯덩이가 된 채 김세진과 이재호는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김세진은 전신의 60%에, 이재호는 전신의 80%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둘은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 서로를 걱정했다고 한다. 김세진은 5월 3일에, 이재호는 5월 26일에 각각 사망했는데 둘 다 23살의 청년이었다. 둘의 장례식은 그 해 5월 30일에 행해졌다.[7]

4. 영향

NLPDR 계열인 자민투 학생운동이 가진 지나친 급진성과 과격성으로 인해 호응을 받지 못했다.

김대중은 '학생·근로자 사이에 분신자살기도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그들의 목표가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이러한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일부 학생·소수학생들의 과격한 주장에 심한 우려를 표시하며 우리는 그 주장을 지지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발표하였다. # 이는 NLPDR 계열 학생 운동권과의 갈등을 불러와 인천 5.3 민주항쟁에 영향을 미쳤다. #

5. 여담

6. 외부 링크

7. 둘러보기

대한민국의 사망 및 실종 사건 사고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2000년대 이전 ]
정병섭 군 자살 사건(1972.1)S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1973.10)? / 김상진 할복 사건(1975.4)S / 김형욱 실종 사건(1979.10)V / 최승균 소위 사망사건(1984.4)D / 김세진·이재호 분신사건(1986.5)S / 신호수 의문사 사건(1986.6)? / 이철규 의문사 사건(1989.5)? / 한소희 실종 사건(1989.5.)V? / 신영철 어린이 투신자살 사건(1990.11)S / 경주 일본여대생 실종사건(1991.3)V / 개구리 소년 사건(1991.3)V?/ 정유리 실종 사건(1991.8)V / 김은정 실종사건(1991.9)V / 지한별 실종 사건(1992.8)V / 김성재 사망 사건(1995.11)? / 서지원 사망 사건(1996.1)S / 김광석 사망 사건(1996.1)S? / 김준배 의문사 사건(1997.9)? / 김훈 중위 사건(1998.2)? / 집단 따돌림 초등학생 자살사건(1998.10, 11)S / 송혜희 실종 사건(1999.2)V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2000년대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fff,#010101> 2000년 옥천 40대 여성 실종사건(4.)V / 강진 초등학생 연쇄 실종 사건(6.)V / 보험설계사 박이순 실종 사건(11.)V
2001년 강진 초등학생 연쇄 실종 사건(6.)V / 대구 여학생 실종사건(12.)V
2002년 수원 자동차 영업사원 실종사건(2.)V / 진천 초등학생 실종 사건(5.)V / 구미 여대생 실종 사건(8.)V / 순천 여고생 실종사건(9.)V / 함광열 이병 의문사 사건(9.)?
2003년 부산 엄궁동 초등생 실종 사건(4.)V / 인천 일가족 자살사건(7.)S / 모영광 군 실종 사건(10.)V / 제종철 의문사 사건(11.)?
2004년 이종운 변호사 실종 사건(7.)V / 칠곡 모텔사장 신부 실종 사건(8.)V / 일요일은 101% 장정진 사망 사건(9.)D / 우정선 실종 사건(9.)V
2005년 대구 봉덕동 실종사건(1.)V / 청주 부녀자 실종사건(2.)V / 이은주 사망 사건(2.)S / 서인천고 집단따돌림 자살사건(5.)S / 박종혁 실종 사건(8.)V / 노충국 사건(10.)DM
2006년 네이버 지식iN 자살 사건(3.)S / 양산 여학생 실종 사건(5.)V / 전북대 수의대생 실종 사건(6.)V
2007년 부산 중소기업 사장부부 실종사건(4.)V / 천화욱군 사망 사건 (7.)E / 베트남 연구원 실종 사건(10.)V
2008년 서천 종천면 할머니 실종사건(1.)V / 최진실 사망 사건(10.)S
2009년 장자연 사건(3.)S / 김춘자 실종 사건(5.)V /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5.)S / 제주 제3산록교 추락사 사건(7.)E / 부산 고교생 매물도 변사 사건(8.)V?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2010년대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fff,#010101> 2010년 경주 여고생 실종사건VL / 김명철 실종 사건(6.)V / 박용하 사망 사건(6.)S / 강남경찰서 형사 의문사 사건(7.)?
2011년 김천 직지사 30대 남성 실종 사건(3.)V / 대구 집단따돌림 중학생 자살 사건(12.)S
2012년 김나현 사망 사건(1.)D 부산 여대생 실종사건(4.)? 충주 성심맹아원 의문사 사건(11.)? / 강동대교 실종 사건(11.)?
2013년 이방연 실종사건(1.)V / 남해고속도로 실종사건(5.)V / 성재기 한강 투신사건(7.)S
2014년 부평구 네모녀 연쇄 실종사건V / 청주 여고생 실종 사건(1.)V / 송파 세 모녀 사건(2.)S / 짝 출연자 사망 사건(3.)S / 경부고속도로 4중 추돌 사망사건(10.)T? / 신해철 의료사고 사망사건(10.)M /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11.)S
2015년 한서대학교 일본인 유학생 실종사건(1.)W / 성완종 자살 사건(4.)S / 인제 계곡 40대 남성 실종 사건(5.)V / 부천 세 자매 동반자살 사건(5.)? / 중앙대 음악학부 재학생 자살 사건(9.)S
2016년 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5.)V / 구미 아파트 물탱크 시신 사건(5.)SW/ 곡성 공무원 사망사건 (5.)E / 신안 장산도 남교사 실종 사건(5.)V / 방용훈 부인 자살 사건(9.)S / 권대희 의료사고 및 사망 사건(9.)M / tvN 혼술남녀 조연출 자살사건(10.)S / 제약회사 임원 실종 사건(11.)V / 한강 여대생 사망 사건(12.)WV?
2017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1).S / 대전 여중생 투신자살 사건(8.)S / 제6보병사단 소속 일등병 유탄 사망사건(9.)E / 김경숙 의문사 사건(9.)? / 안동 20대 여성 실종 사건(9.)? / 김주혁 교통사고(10.)T? /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12.)DM / 종현 사망 사건(12.)S
2018년 포항 경추골절 사망 사건(1.)?/ 제203특공여단 사격장 총기 사망사건(3.)E / 성폭행 피해자 부부 자살 사건(3.)S / 서울 영등포 일가족 투신 사건(3.)S / 육군 통신장교 석면 사망사고(3.)D / 제주도 세화포구 여성 실종사건(7.)V? / 김포 어린이집 교사 자살사건(10.)S 마포대교 투신 여성 신고 전화 논란(11.)S / 김규리 실종 사건(12.)V
2019년 강남 성형외과 프로포폴 불법투여 사망사건(4.)M / 탈북 모자 아사 사건(7.)H / 설리 사망 사건(10.)S / 구하라 사망 사건(11.)S / 제주 오픈카 음주 사망 사건(11.)T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2020년대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fff,#010101> 2020년 오리온 익산공장 직원 투신자살 사건(3.)S / 2019년 포항 남중생 자살 사건(3.)S / 택시기사 사설 구급차 환자 이송 방해 사건(6.)E /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집단 가혹행위 사건(6.)S / 진워렌버핏 사망 사건(7.)S / 부산 11세 어린이 실종 사건(7.)V /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사건(7.)VS / 고유민 사망 사건(7.)S / 인천 을왕리 음주운전 사건(9.)T / 창원 모녀 사망 사건(9.)? / 코미디언 박지선 사망 사건(11.)S / 서울 강서구 승무원 자살 사건(11.)S / 용산 모녀 사망 사건(12.)S / 고양 행주산성 20대 발달장애인 실종 사건(12.)?
2021년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4.)WV? / 포항 간호사 실종 사건(4.)S /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5.)S / 의정부호원초등학교 교사 2인 사망사건(6./12.)S / CJ대한통운 김포대리점 점주 사망사건(8.)S / 조재윤 하사 사망사건(9.)E / 담양 일가족 자살 사건(11.)S
2022년 잼미님 사망 사건(1.)S / 김인혁 사망 사건(2.)S / 제주대 병원 영아 의료사고 사망 사건(3.)M / 서울 창신동 모자 고독사 사건(4.)E / 김포 FC U-18 유소년 선수 자살 사건(4.)S /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5.)S / 가양역 인근 20대 여성 실종 사건(6.)V / 가양역 20대 남성 실종 사건(8.)V? / 가양역 인근 30대 여성 실종사건V /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8.)S / 포천시 보배드림 뽀이81 자살 사건(9.)S / 백지원 실종 사건(10.)VL/ 강원 전방부대 이병 총상 사건(11.)S / 탈북 청년 사망 사건(11.)?
2023년 울산 남구 20대 여성 실종 사건(1.)V / 김부영 창녕군수 사망 사건(1.)S / 거제 SUV 차량 추락 사건(1.)ST / 태백 혹한기 훈련 이병 사망사건(1.)? / 대구 공군 정일병 자살 사건(2.)S / 인천 미추홀구 일가족 사망사건(3.)S / 남양주 야산 변사 사건(3.)S / 이재명 전 비서실장 사망 사건(3.)S / 제9공수특전여단 상병 사망사건(4.)S? /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 여고생 추락사 사건(4.)S / 도곡중 흉기 난동 및 도곡렉슬 추락사 사건(4.)SI / 문빈 사망 사건(4.)S / 김해 예비군 훈련장 사망 사건(5.)D / 양주 육군부대 일병 총기 사망사고(5.)E / 임블리 사망 생중계 사건(6.)S / 서울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7.)S /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7.)E / 윤세준 실종 사건(8.)V / 봉천동 고등학생 실종 사건(8.)VL / 서울신목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8.)S / 군산 초등학교 교사 투신 사건(8.)S / 대전관평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9.)S / 전주 40대 여성 사망 사건(9.)? / 송파·김포 일가족 사망 사건(9.)S / 경부선 신도림역 공중교통사상사고(10.)S / 표예림 사망 사건(10.)SW / 자승 분신 사건(11.)S / 이선균 사망 사건(12.)S / 아내 성인방송 강요 사망사건(12.)S
2024년 올림픽대교 시신 사건 (1.)? / 태안 일가족 사망 사건(1.)S / 아산 경찰관 자살 사건(1.)S / 제주 오피스텔 추락사 사건(1.)S / 부천 원미구 도당동 등산로 시신 사건(2.)S / 김포시 공무원 사망 사건(3.)S / 동작구 부구청장 사망 사건(3.)S / 2024년 의정부시 공무원 사망 사건(4.)S / 만화 갤러리 유저 자살 추정 사건(4.)S / 제32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수류탄 폭발 사고(5.)EI / 제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5.)E / 제51보병사단 일병 사망 사건(6.)E /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일가족 자살 사건(6.)S / 안산 동급생 흉기 난동 사건(7.)SI / 서울 시청역 교차로 차량 돌진 사고(7.)TI / 봉화 농약 중독 사건(7.)SI / 사천 채석장 사망 사건(8.)? / 인천 20대 남성 실종 사건(8.)V? / 하동 순찰차 40대 여성 사망 사건(8.)E / 경기도지사배 철인3종 경기 익사 사건(8.)W }}}}}}}}}
범례: 병사(D), 아사(H), 익사(W), 의료사고(M), 실종(V), 자살(S), 교통사고(T), 기타(E), 생존한 상태에서 발견(L), 부상자도 존재하는 사건(I), 의문사 및 경위 불명(?) }}}}}}}}}



[1] 김세진과 이재호가 분신 직전의 시위에서 외친 구호. 이 구호는 당시 대학가의 반미 운동을 대변한 것이다. [2] # [3] 1주일 간의 문무대 교육과 1주일의 전방입소훈련을 받은 학생은, 현역 복무 일 경우, 해당자의 군 복무기간을 각 각 45일 씩, 총 90일을 단축 해주는 보상안을 시행했다. [4] 이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다. [5] 서울대학교의 전방입소훈련 일자는 4월 28일이었다. [6] 현재 신림로 356번지 CU편의점 건물 [7] 이날 장례식에는 김세진, 이재호 외에도 이동수도 함께하여 총 3명이 합동장례식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