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행정구역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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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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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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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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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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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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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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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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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수창군 대구현 壽昌郡 大丘縣 757 |
양주
수창군 팔리현 壽昌郡 八里縣 757 |
양주
장산군 章山郡 750 |
양주
화왕군 현효현 火王郡 玄驍縣 757 |
상주
숭선군 군위·효령·부림현 軍威縣 757 |
구산현
龜山縣 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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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도
수성군 대구현 壽城郡 大丘縣 940 |
영남도
수성군 팔리현 壽城郡 八里縣 940 |
영동도
장산현 章山縣 940 |
영남도
창녕군 포산현 昌寧郡 苞山縣 940 |
영남도
상주목 군위·효령·부계현 壽城縣 1018 |
영남도
안동부 구산현 義興郡 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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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도
경산부 대구현 京山府 大丘縣 1018 |
영남도
경산부 팔거현 京山府 八莒縣 1018 |
영동도
경주부 하양현 慶州府 河陽縣 1018 |
영동도
경주부 장산현 慶州府 章山縣 1018 |
영남도
밀성부 현풍현 密城府 玄風縣 1018 |
영남도
일선군 군위·효령·부계현 軍威縣 1143 |
영남도
안동부 의흥군 義興郡 10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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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대구현 大丘縣 1394 |
경상도
성주목 팔거현 星州牧 八莒縣 1401 |
경상도
경주부 하양현 慶州府 河陽縣 1395 |
경상도
경주부 경산현 慶州府 慶山縣 1395 |
경상도
현풍현 玄風縣 1314 |
경상도
군위현 軍威縣 1390 |
경상도
의흥현 義興縣 1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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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대구군 大丘郡 1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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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대구도호부 大丘都護府 1466 |
경상도
칠곡도호부 漆谷都護府 1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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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
대구군 大邱郡 1895 |
대구부
하양군 안심면 河陽郡 安心面 1896 |
경상북도
의흥군 義興郡 1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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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대구군 大邱郡 1896 |
경상북도
하양군 안심면 河陽郡 安心面 1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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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제 ]]
강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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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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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대구시 大邱市 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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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직할시
大邱直轄市 1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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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한시대 ~ 남북국시대
<rowcolor=#fff> 대구광역시 옛 지명 | |||||
다벌(多伐) | 달벌(達伐) | 달불성(達弗城) | 달구벌(達句伐) | 달구화(達句火) | 달성 |
대구의 옛 명칭으로는 다벌(多伐), 달벌(達伐), 달불성(達弗城), 달구벌(達句伐), 달구화(達句火), 대구(大丘) 등이 있다. 모두 어딘가 비슷한데 한자의 뜻과는 관계 없는 고유어의 음차이다. 즉, 원래는 이 지역을 부르던 고유어가 있었으나,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한자로 그 음을 빌려 표기하다가 가장 널리 쓰이는 '대구', '달구벌'이 정착한 것이다. 달구벌이라는 말의 연원에 대한 설명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 '달구'의 '달'에 "높다", "크다"의 의미가 있고[1], 신라의 계림 사상에서 기원한 새로움 혹은 철기 문화의 상징인 '닭'에서 유래했다는 연구자료도 있다. 즉, '닭의 벌판'을 뜻하는 '닭벌'을 음차한 게 '달구벌'.
달구벌은 대체로 '크고 넓은 벌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대구시를 상징하는 새는 독수리다.[2] 다만, '달구' 또는 '달구화'와 같은 지명이 오늘날 확대된 대구광역시 전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현대의 대구광역시 중구와 달서구 성서, 서구 및 금호강 이남의 북구에 해당한다.
대구광역시 전역에서 발견되는 엄청난 규모의 지석묘(고인돌)군과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 유물의 존재로 말미암아, 삼한시대 혹은 그 전부터 군장 국가 형태의 소부족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고대 삼한시대에 들어서는 진한의 소국인 다벌국, 혹은 달구벌국 혹은 탁국(卓國)이었으며, 서기 108년 신라에 병합되었다. 244년 조분 이사금 때 달성(현재 달성토성)이 축조되기 시작하여 261년 첨해 이사금 때 완공되었다. 달성은 경주 월성과 비슷한 구조였으며, 해자를 포함했다. 달성 완공과 함께 나마 극종(奈麻 克宗)을 성주로 임명했다. 이후 신라의 군사적 요충지로 중시되었다.
통일신라시기에는 9주 5소경 중 양주 소속이었다. 이 때 지금의 대구 땅에는 위화군(喟火郡, 수성구), 위화군의 소속 영현으로 달구화현(達句火縣, 중구), 팔거리현(八居里縣, 북구 칠곡지구), 다사지현(多斯只縣, 달성군 하빈면), 설화현(舌火縣, 달성군 화원읍)이 있었다.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하면서 위화군은 수창군(壽昌郡), 달구화현은 대구현(大丘縣), 팔거리현은 팔리현(八里縣), 다사지현은 하빈현(河濱縣), 설화현은 화원현(花園縣)으로 고쳤다. 지금까지 사용하는 지명이 이 때 많이 등장했지만 신라 때는 이전 지명과 경덕왕이 고친 지명이 혼용되어 달구벌, 달벌 등의 지명도 계속 사용되었다.[3]
참조
689년 신문왕이 이 곳으로 천도를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기존 귀족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장보고군이 민애왕의 신라 관군을 상대로 20배 병력을 격파한 달벌대전이 이 곳에서 일어났다.
후삼국시대에는 수창군 호족 이재가 대구 지역을 다스렸다.
2. 고려
대구광역시의 지명 문서들에 가면 볼 수 있는 태조 왕건의 굴욕이 펼쳐졌던 곳이다. 한 눈에 보려면 여기로.대구현 지역은 경산부(현 성주군)에 속했다. 수창군을 수성군(壽城郡)으로 고쳤고 지금의 수성구로 이어졌다.
3. 조선 ~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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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행정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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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94153e> 도 |
경기 京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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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도
[1] 永安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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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이하 행정구역 | ||||||||
<colbgcolor=#c00d45,#94153e> 부 | 경주慶州 | 전주全州 | 영흥永興 [2] | 평양平壤 | ||||||||||||||
대도호부 | 안동安東 | 강릉江陵 | 안변安邊 | 영변寧邊 | ||||||||||||||
목 |
광주廣州 여주驪州 파주坡州 양주楊州 |
충주忠州 청주淸州 공주公州 홍주洪州 |
상주尙州 진주晉州 성주星州 |
나주羅州 제주濟州 광주光州 |
황주黃州 해주海州 |
원주原州 |
안주安州 정주定州 의주義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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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부 |
수원水原 강화江華 부평富平 남양南陽 이천利川 인천仁川 장단長湍 |
창원昌原 김해金海 영해寧海 밀양密陽 선산善山 청송靑松 대구大丘 |
남원南原 장흥長興 순천順天 담양潭陽 |
연안延安 평산平山 서흥瑞興 풍천豐川 |
회양淮陽 양양襄陽 춘천春川 철원鐵原 삼척三陟 |
경성鏡城 경원慶源 회령會寧 종성鍾城 온성穩城 경흥慶興 부령富寧 북청北靑 덕원德源 정평定平 갑산甲山 |
강계江界 창성昌城 성천成川 삭주朔州 숙천肅川 구성龜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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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
양근楊根 풍덕豊德 안산安山 삭녕朔寧 안성安城 마전麻田 고양高陽 |
임천林川 단양丹陽 청풍淸風 태안泰安 한산韓山 서천舒川 면천沔川 천안天安 서산瑞山 괴산槐山 옥천沃川 온양溫陽 |
합천陜川 함양咸陽 초계草溪 청도淸道 영천永川 예천醴泉 영천榮川 흥해興海 울산蔚山 양산梁山 함안咸安 김산金山 풍기豐基 곤양昆陽 |
보성寶城 익산益山 고부古阜 영암靈巖 영광靈光 진도珍島 낙안樂安 순창淳昌 금산錦山 진산珍山 김제金堤 여산礪山 |
곡산谷山 봉산鳳山 안악安岳 재령載寧 수안遂安 배천白川 신천信川 |
평해平海 통천通川 정선旌善 고성高城 간성杆城 영월寧越 평창平昌 |
삼수三水 문천文川 고원高原 단천端川 함흥咸興 [3] |
중화中和 상원祥原 덕천德川 개천价川 자산慈山 가산嘉山 선천宣川 곽산郭山 철산鐵山 용천龍川 순천順川 희천熙川 이산理山 벽동碧潼 운산雲山 박천博川 위원渭原 영원寧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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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현령(縣令, 종5품) 파견 |
용인龍仁 진위振威 영평永平 양천陽川 금포金浦 |
문의文義 |
영덕盈德 경산慶山 동래東萊 고성固城 거제巨濟 의성義城 남해南海 |
창평昌平 용담龍潭 임피臨陂 만경萬頃 금구金溝 능성綾城 |
신계新溪 옹진瓮津 문화文化 우봉牛峯 |
금성金城 울진蔚珍 흡곡歙谷 |
용강龍岡 삼화三和 함종咸從 영유永柔 증산甑山 삼등三登 순안順安 강서江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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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현감(縣監, 종6품) 파견 |
지평砥平 포천抱川 적성積城 과천果川 금천衿川 교동喬桐 통진通津 교하交河 연천漣川 음죽陰竹 양성陽城 양지陽智 가평加平 죽산竹山 |
홍산鴻山 제천堤川 덕산德山 평택平澤 직산稷山 회인懷仁 정산定山 청양靑陽 연풍延豐 음성陰城 청안淸安 은진恩津 회덕懷德 진잠鎭岑 연산連山 이산尼山 대흥大興 부여扶餘 석성石城 비인庇仁 남포藍浦 진천鎭川 결성結城 보령保寧 해미海美 당진唐津 신창新昌 예산禮山 목천木川 전의全義 연기燕岐 영춘永春 보은報恩 영동永同 황간黃澗 청산靑山 아산牙山 |
개령開寧 거창居昌 삼가三嘉 의령宜寧 하양河陽 용궁龍宮 봉화奉化 청하淸河 언양彦陽 칠원漆原 진해鎭海 하동河東 인동仁同 진보眞寶 문경聞慶 함창咸昌 지례知禮 안음安陰 고령高靈 현풍玄風 산음山陰 단성丹城 군위軍威 비안比安 의흥義興 신녕新寧 예안禮安 연일延日 장기長鬐 영산靈山 창녕昌寧 사천泗川 기장機張 웅천熊川 |
광양光陽 용안龍安 함열咸悅 부안扶安 함평咸平 강진康津 옥과玉果 고산高山 태인泰仁 옥구沃溝 남평南平 흥덕興德 정읍井邑 고창高敞 무장茂長 무안務安 구례求禮 곡성谷城 장성長城 진원珍原 운봉雲峯 임실任實 장수長水 진안鎭安 무주茂朱 동복同福 화순和順 흥양興陽 해남海南 대정大靜 정의旌義 |
장련長連 송화松禾 장연長淵 강령康翎 은률殷栗 강음江陰 토산兔山 |
이천伊川 평강平康 금화金化 낭천狼川 홍천洪川 양구楊口 인제麟蹄 횡성橫城 안협安峽 |
홍원洪原 이성利城 길성吉城 명천明川 |
양덕陽德 맹산孟山 태천泰川 강동江東 은산殷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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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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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70년(성종 1)
함경도에서 개칭, 1498년(연산군 4) 함경도로 개칭. [2] 1470년(성종 1) 대도호부에서 승격, 1498년(연산군 4) 대도호부로 강등. [3] 1470년(성종 1) 부에서 강등, 1498년(연산군 4) 부로 승격. [4] 1592년 기점으로 속주로서의 지위 상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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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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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fff,#1f2023> 한성부(漢城府) | 한성, 고양, 파주, 교하, 적성, 양주, 포천, 영평, 연천, 광주(廣州), 가평 | ||||||||||||||
인천부(仁川府) | 인천, 부평, 강화, 교동, 금포, 통진, 양천, 시흥, 과천, 안산, 수원, 남양 | |||||||||||||||||
충주부(忠州府) | 충주, 제천, 청풍, 단양, 영춘, 음성, 진천, 괴산, 연풍, 청안, 여주, 이천(利川), 음죽, 용인, 양지, 죽산, 원주, 평창, 정선, 영월 | |||||||||||||||||
홍주부(洪州府) | 홍주, 결성, 예산, 덕산, 대흥, 서산, 해미, 태안, 청양, 정산, 아산, 온양, 신창, 당진, 면천, 보령, 남포, 서천, 비인, 한산, 임천, 홍산 | |||||||||||||||||
공주부(公州府) | 공주, 천안, 목천, 직산, 진위, 평택, 안성, 양성, 회덕, 진잠, 연기, 전의, 은진, 연산, 노성, 부여, 석성, 청주, 문의, 보은, 회인, 옥천, 청산, 영동, 황간, 금산(錦山), 진산 | |||||||||||||||||
전주부(全州府) | 전주, 고산, 익산, 함열, 여산, 용안, 옥구, 임피, 김제, 금구, 만경, 정읍, 고부, 태인, 부안, 고창, 흥덕, 무장, 장성, 영광, 지도 | |||||||||||||||||
남원부(南原府) | 남원, 운봉, 장수, 무주, 진안, 용담, 임실, 순창, 담양, 창평, 곡성, 옥과, 구례, 순천(順天), 광양, 돌산 | |||||||||||||||||
나주부(羅州府) | 나주, 남평, 광주(光州), 능주, 화순, 동복, 낙안, 흥양, 보성, 장흥, 강진, 해남, 영암, 함평, 무안, 진도, 완도 | |||||||||||||||||
제주부(濟州府) | 제주, 정의, 대정 | |||||||||||||||||
진주부(晉州府) | 진주, 산청, 단성, 함양, 안의, 하동, 거창, 사천, 곤양, 남해, 합천, 초계, 삼가, 고성(固城), 의령, 함안, 칠원, 창원, 진해, 웅천, 김해 | |||||||||||||||||
동래부(東萊府) | 동래, 기장, 양산, 거제, 울산, 언양, 경주, 연일, 장기, 흥해 | |||||||||||||||||
대구부(大邱府) | 대구, 현풍, 경산, 하양, 자인, 인동, 칠곡, 선산, 금산(金山), 지례, 개령, 성주, 고령, 청도, 영천(永川), 신녕, 의성, 비안, 군위, 의흥, 밀양, 창녕, 영산 | |||||||||||||||||
안동부(安東府) | 안동, 예안, 청송, 진보, 영양, 청하, 영천(榮川), 순흥, 풍기, 상주, 함창, 문경, 예천, 용궁, 영덕, 영해, 봉화 | |||||||||||||||||
강릉부(江陵府) | 강릉, 울진, 평해, 삼척, 양양, 고성(高城), 간성, 통천, 흡곡 | |||||||||||||||||
춘천부(春川府) | 춘천, 홍천, 낭천, 횡성, 양구, 인제, 철원, 금화, 금성, 평강, 회양, 양근, 지평 | |||||||||||||||||
개성부(開城府) | 개성, 풍덕, 장단, 삭녕, 마전, 이천(伊川), 안협, 금천, 토산, 평산, 수안, 신계, 곡산 | |||||||||||||||||
해주부(海州府) | 해주, 연안, 배천, 옹진, 강령, 장연, 송화, 풍천, 안악, 은률, 장련, 재령, 신천, 문화, 서흥, 봉산 | |||||||||||||||||
평양부(平壤府) | 평양, 삼화, 용강, 강서, 증산, 함종, 중화, 상원, 황주, 강동, 삼등, 성천, 양덕, 안주, 영유, 숙천, 순안, 순천(順川), 은산, 자산, 맹산, 영원, 개천, 덕천, 영변, 운산, 희천 | |||||||||||||||||
의주부(義州府) | 의주, 용천, 선천, 철산, 정주, 곽산, 박천, 가산, 태천, 구성, 삭주, 창성, 벽동 | |||||||||||||||||
강계부(江界府) | 강계, 후창, 자성, 초산, 위원, 장진 | |||||||||||||||||
함흥부(咸興府) | 함흥, 덕원, 정평, 영흥, 고원, 문천, 안변, 단천, 이원, 북청, 홍원 | |||||||||||||||||
경성부(鏡城府) | 경성, 부령, 길주, 명천,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 | |||||||||||||||||
갑산부(甲山府) | 갑산, 삼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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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
한성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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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 ||||||||||||||||
경기 京畿 |
1등군 | 광주廣州 개성開城 강화江華 인천仁川 | ||||||||||||||||
2등군 | 수원水原 | |||||||||||||||||
3등군 | 여주驪州 양주楊州 장단長湍 통진通津 | |||||||||||||||||
4등군 | 파주坡州 이천利川 부평富平 남양南陽 풍덕豊德 포천抱川 죽산竹山 양근楊根 안산安山 삭녕朔寧 안성安城 고양高陽 금포金浦 영평永平 마전麻田 교하交河 가평加平 용인龍仁 음죽陰竹 진위振威 양천陽川 시흥始興 지평砥平 적성積城 과천果川 연천漣川 양지陽智 양성陽城 교동喬桐 | |||||||||||||||||
5등군 | - | |||||||||||||||||
충청북도 忠淸北道 |
1등군 | 충주忠州 청주淸州 | ||||||||||||||||
2등군 | - | |||||||||||||||||
3등군 | 옥천沃川 진천鎭川 | |||||||||||||||||
4등군 | 청풍淸風 괴산槐山 보은報恩 단양丹陽 제천堤川 회인懷仁 청안淸安 영춘永春 영동永同 황간黃澗 청산靑山 연풍延豐 음성陰城 | |||||||||||||||||
5등군 | - | |||||||||||||||||
충청남도 忠淸南道 |
1등군 | 공주公州 | ||||||||||||||||
2등군 | 홍주洪州 | |||||||||||||||||
3등군 | 한산韓山 서천舒川 면천沔川 서산瑞山 덕산德山 임천林川 홍산鴻山 은진恩津 | |||||||||||||||||
4등군 | 태안泰安 온양溫陽 대흥大興 평택平澤 정산定山 청양靑陽 회덕懷德 진잠鎭岑 연산連山 노성魯城 부여扶餘 석성石城 비인庇仁 남포藍浦 결성結城 보령保寧 해미海美 당진唐津 신창新昌 예산禮山 전의全義 연기燕岐 아산牙山 직산稷山 천안天安 문의文義 목천木川 | |||||||||||||||||
5등군 | - | |||||||||||||||||
전라북도 全羅北道 |
1등군 | 전주全州 남원南原 | ||||||||||||||||
2등군 | 고부古阜 김제金堤 태인泰仁 | |||||||||||||||||
3등군 | 여산礪山 금산錦山 익산益山 임피臨陂 금구金溝 함열咸悅 부안扶安 무주茂朱 순창淳昌 임실任實 진안鎭安 | |||||||||||||||||
4등군 | 진산珍山 만경萬頃 용안龍安 고산高山 옥구沃溝 정읍井邑 용담龍潭 운봉雲峯 장수長水 구례求禮 | |||||||||||||||||
5등군 | - | |||||||||||||||||
전라남도 全羅南道 |
1등군 | 광주光州 나주羅州 영암靈巖 영광靈光 순천順天 제주濟州 | ||||||||||||||||
2등군 | 보성寶城 흥양興陽 장흥長興 함평咸平 강진康津 해남海南 무장茂長 담양潭陽 | |||||||||||||||||
3등군 | 능주綾州 낙안樂安 무안務安 남평南平 진도珍島 흥덕興德 장성長城 | |||||||||||||||||
4등군 | 창평昌平 광양光陽 동복同福 화순和順 고창高敞 옥과玉果 곡성谷城 완도莞島 지도智島 돌산突山 | |||||||||||||||||
5등군 | 대정大靜 정의旌義 | |||||||||||||||||
경상북도 慶尙北道 |
1등군 | 상주尙州 경주慶州 | ||||||||||||||||
2등군 | 대구大丘 성주星州 의성義城 영천永川 안동安東 | |||||||||||||||||
3등군 | 예천醴泉 김산金山 선산善山 청도淸道 | |||||||||||||||||
4등군 | 청송靑松 인동仁同 영해寧海 순흥順興 칠곡漆谷 풍기豐基 영덕盈德 용궁龍宮 하양河陽 영천榮川 봉화奉化 청하淸河 진보眞寶 군위軍威 의흥義興 신녕新寧 예안禮安 연일延日 개령開寧 문경聞慶 지례知禮 함창咸昌 영양英陽 흥해興海 경산慶山 자인慈仁 비안比安 현풍玄風 고령高靈 장기長鬐 | |||||||||||||||||
5등군 | - | |||||||||||||||||
경상남도 慶尙南道 |
1등군 | 동래東萊 진주晉州 | ||||||||||||||||
2등군 | 김해金海 밀양密陽 | |||||||||||||||||
3등군 | 울산蔚山 의령宜寧 창녕昌寧 창원昌原 거창居昌 하동河東 합천陜川 함안咸安 함양咸陽 고성固城 | |||||||||||||||||
4등군 | 양산梁山 언양彦陽 영산靈山 기장機張 거제巨濟 초계草溪 곤양昆陽 삼가三嘉 칠원漆原 진해鎭海 안의安義 산청山淸 단성丹城 남해南海 사천泗川 웅천熊川 | |||||||||||||||||
5등군 | - | |||||||||||||||||
황해도 黃海道 |
1등군 | 황주黃州 안악安岳 | ||||||||||||||||
2등군 | 해주海州 평산平山 봉산鳳山 | |||||||||||||||||
3등군 | 연안延安 곡산谷山 서흥瑞興 장연長淵 재령載寧 수안遂安 배천白川 신천信川 금천金川 문화文化 | |||||||||||||||||
4등군 | 풍천豐川 신계新溪 장련長連 송화松禾 은률殷栗 토산兔山 옹진瓮津 강령康翎 | |||||||||||||||||
5등군 | - | |||||||||||||||||
평안남도 平安南道 |
1등군 | 평양平壤 | ||||||||||||||||
2등군 | 중화中和 용강龍岡 | |||||||||||||||||
3등군 | 성천成川 함종咸從 삼화三和 순천順川 상원祥原 영유永柔 강서江西 안주安州 | |||||||||||||||||
4등군 | 자산慈山 숙천肅川 덕천德川 개천价川 영원寧遠 은산殷山 양덕陽德 맹산孟山 강동江東 증산甑山 삼등三登 순안順安 | |||||||||||||||||
5등군 | - | |||||||||||||||||
평안북도 平安北道 |
1등군 | 의주義州 강계江界 | ||||||||||||||||
2등군 | - | |||||||||||||||||
3등군 | 영변寧邊 정주定州 선천宣川 | |||||||||||||||||
4등군 | 초산楚山 창성昌城 구성龜城 철산鐵山 용천龍川 삭주朔州 위원渭原 벽동碧潼 가산嘉山 곽산郭山 희천熙川 운산雲山 박천博川 태천泰川 자성慈城 후창厚昌 | |||||||||||||||||
5등군 | - | |||||||||||||||||
강원도 江原道 |
1등군 | - | ||||||||||||||||
2등군 | - | |||||||||||||||||
3등군 | - | |||||||||||||||||
4등군 | 춘천春川 원주原州 강릉江陵 회양淮陽 양양襄陽 철원鐵原 삼척三陟 평해平海 통천通川 정선旌善 고성高城 간성杆城 영월寧越 평창平昌 금성金城 울진蔚珍 흡곡歙谷 이천伊川 평강平康 금화金化 낭천狼川 홍천洪川 양구楊口 인제麟蹄 횡성橫城 안협安峽 | |||||||||||||||||
5등군 | - | |||||||||||||||||
함경남도 咸鏡南道 |
1등군 | 덕원德源 | ||||||||||||||||
2등군 | 함흥咸興 단천端川 영흥永興 | |||||||||||||||||
3등군 | 북청北靑 안변安邊 정평定平 | |||||||||||||||||
4등군 | 갑산甲山 삼수三水 장진長津 이원利原 문천文川 고원高原 | |||||||||||||||||
5등군 | - | |||||||||||||||||
함경북도 咸鏡北道 |
1등군 | 경흥慶興 | ||||||||||||||||
2등군 | 길주吉州 | |||||||||||||||||
3등군 | 회령會寧 종성鍾城 | |||||||||||||||||
4등군 | 경성鏡城 경원慶源 온성穩城 부령富寧 명천明川 무산茂山 | |||||||||||||||||
5등군 | - | }}}}}}}}}}}} |
조선 시대에서는 '대구'의 한자가 공자의 이름인 구(丘)와 같아 이름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영조 때는 반려되었으나, 정조 초기 1783년 대구(大邱)로 한자를 바꿨는데[4] 이 역시 순조 때까지도 함께 쓰이다가 이후 정착했다고 한다. 현재는 대구(大邱)로만 쓴다.
중국어권에서는 간혹 구( 邱)와 구( 丘)를 헷갈려 "大丘"로 쓴 사례도 있다. 둘 다 뜻이 언덕이고 현대 중국어 발음에서도 발음(qiu)과 성조(1성)가 같다. 일본어로는 그 쪽의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가타카나로 "テグ(大邱)"로 쓰는데 간혹 일반인의 경우 한자를 헷갈려서 글자꼴이 비슷한 "대저(大 邸)"로 쓰는 사례도 발견된다.
대구의 진산(鎭山)인 달성산의 명칭은 옛 지명 '달구벌'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달성군이 정식 행정구역 명칭으로 남아 있어 도시명의 유래를 잇고 있다.
1419년(조선 세종 원년) 대구현(달구벌, 현 중구, 달서구 성서, 서구, 북구 중 금호강 이남[5])·수성현(시지를 제외한 수성구, 남구 및 달성군 가창면 일대)·해안현(동구 동촌, 공산 일대)·하빈현(달성군 하빈면, 다사읍 일대)을 통합하여 대구군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466년에 대구도호부로 승격 #하고, 1601년과 1685년에 화원현(달서구 월배, 달성군 화원읍, 옥포면)까지 대구로 통합했다. 같은 시기에 풍각현(현 경북 청도군 풍각면, 각남면, 각북면)도 대구로 통합되었지만 구 풍각현은 구한말 월경지 정리 개편으로 청도군에 편입되었다.
1466년 대구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01년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다. 경상감영은 역사가 참 복잡한데, 조선 초기에는 경주부에 있었다가, 태종 7년(1407년)에 경상도를 낙동강을 기준으로 좌/우도로 나누면서, 좌도는 경주부, 우도는 상주목에서 관할하도록 했다. 그러다 여러 가지 부작용 때문에 다시 경상좌/우도를 하나로 합치며 경상감영을 상주목에 두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분리됐다가 합쳐지기를 반복하면서 성주의 속현 팔거현(현재 칠곡군), 대구도호부, 안동대도호부 등으로 이전하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 29년( 1596년) 대구도호부에 경상감영이 세워졌는데, 왜군의 침략으로 인해 대구도호부는 파괴되고 감영은 안동대도호부로 옮겨갔다. 그러다 1601년, 안동대도호부가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대구도호부에 세워졌고 그 후로 경상감영은 쭉 대구도호부에 정착하게 되었다.
구한말 대구 일대의 행정구역 상황. 현재의 청도군 각북면, 각남면, 풍각면(이상 구 풍각현 지역)까지도 대구부 관할에 있었으나, 1906년 청도군으로 편입되었다.
조선 후기 대구도호부는 총 34개의 면(面)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4개 면은 현재 청도로 이관된 구 풍각현 지역에 있었고, 현재의 대구광역시에 속한 지역에 위치한 면은 30개이다.[6] 호구총수의 기록에 따르면 1789년의 대구도호부 인구는 6만 1천명이었는데, 그 당시 경상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군현이었고[7] 인구 2만 8천명 정도의 중소도시였던 동래도호부의[8] 2배가 넘었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이 23부제로 개편되었을 때 대구부 소재지가 되었다.[9] 1896년 다시 13도제로 바뀌면서부터는 경상북도 관찰사 소재지가 되었다. 1906년 풍각면, 각남면, 각북면을 청도군으로 이관했다. 또한 현풍군의 낙동강 북부 지역을 고령군으로 이관했다.
4.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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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까지만 해도 대구는 경상도에서 경주, 상주, 진주보다 작은 도시였다. 하지만 경부선 철도의 부설로 인해 경부선 철도와 낙동강 수운의 교차점에 위치한 대구는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반면 경부선 철도 노선에서 소외된 경주, 상주, 진주는 상대적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말 대구는 서울, 평양, 부산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1914년 4월 1일 실시된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한 대구부와 달성군의 행정구역 상황.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구부는 현재의 중구 일원(면적 약 9㎢)만 대구부로 남고, 나머지 영역은 현풍군과 통합하여 달성군으로 분리되었다. 일본어로 대구는 타이큐(タイキウ→たいきゅう), 달성은 타츠죠(タツジヤウ→たつじょう)라 발음했다.
1917년 달성군 수성면 대봉동이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1938년 달성군 성북면 남부, 달서면, 수성면이 대구부에 편입되어 면적이 115.68㎢로 늘었다. 이 때, 성북면 북부( 금호강 이북)는 공산면에 편입되었고, 달서면에 속했던 감삼동이 성서면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해안면은 동촌면으로 개칭되었다. 이 때부터 공산면과 동촌면은 달성군의 월경지가 되었다. 동시에 대구부 동부출장소(구 수성면), 서부출장소(달서면), 북부출장소(구 성북면 남부)가 설치되었다. #
당시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 동양의 모스크바라는 별칭에 걸맞게 공산주의 색이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짙은 지역이었다.[10] 1946년의 대구 10.1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상감영공원에 대구 10.1 사건의 흔적이 있다.
5. 미군정
1945년 8월 15일 해방 시기 대구부와 달성군의 행정구역 상황.
1946년 10월 1일부터 대구 10.1 사건이 일어났다.
1947년 4월 1일에 동· 리급 일본식 행정구역을 청산했다. #
개편 전 | 개편 후 |
명치정(明治町)1·2정목 | 계산동1·2가 |
본정(本町)1·2정목 | 서문로1·2가 |
서성정1·2정목 | 서성로1·2가 |
경정(京町)1·2정목 | 종로1·2가 |
원정(元町)1·2정목 | 북성로1·2가 |
금정(錦町)1·2정목 | 태평로2·3가 |
동성정1·2·3정목 | 동성로1·2·3가 |
팔운정(八雲町) | 수창동 |
수정(壽町) | 수동 |
시장정(市場町) | 동산동 |
북내정 | 북내동 |
횡정(橫町) | 서야동 |
시장북통 | 시장북로 |
서내정 | 서내동 |
남성정 | 남성로 |
수정(竪町) | 인교동 |
달성정 | 달성동 |
팔중원정(八重垣町) | 도원동 |
덕산정 | 덕산동 |
대화정(大和町) | 대안동 |
동천대전정(東千代田町) | 동일동 |
서천대전정(西千代田町) | 장관동 |
동운정(東門町) | 동인동 |
행정(幸町) | 태평로1가 |
궁정(弓町) | 사일동 |
삼립정(三笠町) | 삼덕동 |
남용강정(南龍岡町) | 공평동 |
북용강정(北龍岡町) | 완전동 |
남정(南町) | 남일동 |
동본정(東本町) | 교동 |
남욱정(南旭町) | 문화동 |
북욱정(北旭町) | 상덕동 |
전정(田町) | 화전동 |
전정(前町) | 전동 |
영정(榮町) | 용덕동 |
봉산정 | 봉산동 |
촌상정(村上町) | 향촌동 |
칠성정 | 칠성동 |
상정(上町) | 포정동 |
동문정 | 동문동 |
상서정 | 상서동 |
하서정 | 하서동 |
신정(新町) | 대신동 |
남산정 | 남산동 |
대봉정 | 대봉동 |
6. 대한민국 (대구직할시 승격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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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8월 15일에 김천부, 포항부와 같이 대구부(府)에서 대구시(市)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잠깐 임시수도로 격상되어 정부기능이 집중된 적이 있었으나 다부동 전투로 북한군이 대구역에 포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자 다시 부산에 임시수도 자리를 내주었다.
6.25 전쟁 후 분단이 고착화되며 평양이 주요 도시 순위에서 사라지고, 자연히 대구는 서울, 부산에 이은 제3의 도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957년 11월 달성군 동촌면, 공산면, 성서면, 월배면, 가창면을 대구시에 편입하여 대구시의 영역이 대폭 확장되었다. 이는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게리맨더링이라 한다. 당시 대구시는 무려 기(己) 선거구까지 있었다. 그러나 5년 후…
1963년 동촌면을 제외한 4개 면[11]을 달성군으로 복귀시켜 대구시의 영역은 다시 쪼그라들었다(...). 이 때 월배면과 성서면의 경계는 1958년과는 다소 달라졌다.[12] 또한 같은 해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중구, 동구, 남구, 서구, 북구가 설치되었다. 공산면은 다시 외롭게 달성군의 월경지가 되었다가, 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 당시 재편입되었다.
1973년 7월 달성군 화원면 대곡동이 월배면에 편입되었다. 1975년 10월 서구 원대동 일부, 노곡동, 조야동 및 동구 신암동 일부가 북구로 편입되었다. 동시에 북구로 편입된 원대동 일부는 노원동이 되었고 신암동 일부는 대현동이 되었다. 달성군 월배면은 1979년, 성서면은 1980년에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1980년 동구 남부가 수성구로 분리되었다. 이 때 신천동 중 국채보상로 이남 구간은 수성구 수성동4가가 되었다. 동시에 남구의 남산동과 대봉동 북부가 중구에 편입되고 남구에 잔류한 대봉동은 이천동으로 개칭되었다.[13]
7. 대구직할시 승격 (1981년 7월) 이후
1996년까지의 휘장[14] |
1992년의 광고
1981년 7월 대구직할시 승격 당시 행정구역 현황.
1981년 7월 1일 경상북도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15]되면서 달성군 월배읍, 성서읍, 공산면 및 경산군 안심읍[16], 고산면[17], 칠곡군 칠곡읍[18]을 편입했다.
1987년 1월 동구 연경동이 북구에 편입되고, 서구 본리동 일부가 남구에 편입되어 본동이 되는 등 각 구 사이에 미세한 행정구역 경계 조정이 있었다.
1988년 1월 1일 서구와 남구의 각기 일부[19]를 분리하여 달서구를 설치했다.
1995년 1월 1일 대구직할시에서 대구광역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3월 1일 경상북도 관할 군이었던 달성군의 대구광역시 편입이 시행되어 달성군을 대구광역시 산하 기초자치단체로 두게 되었다.( 1995년 대한민국의 행정구역 개편) 이 당시 대구직할시는 내무부에 달성군뿐만 아니라 경산시(당시 경산시, 경산군)와 칠곡군 지천면, 동명면까지 대구에 편입하는 안을 건의했고, 내무부도 이들 지역 모두 대구에 편입시킨다는 방침이었지만 # 경상북도의 반대로 인해 내무부와 당시 여당 민주자유당은 달성군만 대구에 편입시키는 안을 확정했다. 달성군이 생각보다 산지가 많은 편이고 행정구역도 월경지가 많아서 시가지와 산업단지가 분산되어 개발되며 현재까지도 평지가 많은 경산시(도농통합 이전 경산군 포함)를 편입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20] 당시 대구시 당국 역시 경산 편입을 염두에 두고 지하철 연장 등 도시계획을 수립했지만 # # 달성군만 편입되며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의 경산시 연장 등이 미뤄졌다.[21]
시역 확장 외에도 달서구 분구 역시 검토되었으나 #, 직할시(광역시) 자치구 분구 기준인 50만에 아슬아슬하게 미치지 못해 # 분구에 실패했다.[22] 또한 달성군의 대구 편입 이후 가창면을 수성구에, 다사읍(당시 다사면), 하빈면을 서구 혹은 달서구에 편입하자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구자춘의 반대로 기형적 행정구역이 유지되었다.
2005년에는 달성군청이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11동에서 달성군 논공읍으로 이전하였다.
2018년 3월 1일에는 달성군 유가면이 유가읍으로, 동년 11월 1일에는 현풍면과 옥포면이 각각 현풍읍과 옥포읍으로 승격했다.
2023년 7월 1일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이 시행됐다.[23]
[1]
현존하는 비슷한 발음을 가진 낱말 중에서, 평북 방언으로는
갈기를 뜻하는 단어가 있고, 그 외에도 물건을 뭉쳐놓은 모양을 뜻하는
타래도 있다. 물체가 솟아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2]
그래서
대구 FC가 창단될 때 팀명을 '대구 이글스'로 정했다가
야구팀이냐는 반대여론이 거세서 그냥 평범하게 대구 FC로 팀명을 바꿨다.
[3]
이 때문에 현대 대구의 지명 중에도 과거 달구벌과 달벌 등에 삽입된 '달(達)'자를 넣은 곳이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달서구와
달성군.
[4]
邱는 원래 지명이나 인명에서 丘를 피휘하기 위해 만들어낸 한자이다.
[5]
무태조야동을 제외한 금호강 이북의 북구는
칠곡군 출신.
[6]
덧붙여, 이 당시 대구도호부를 구성하는 면의 이름이 상당히 규칙적이었다. 옛 대구현 지역은 단순 방위로(서상면, 동상면, 동중면 등), 옛 해안현, 하빈현, 수성현, 풍각현 지역은 옛 현의 이름과 방위를 합성한 이름으로(해서촌면, 하남면, 수동면, 각북면 등), 화원현 지역은 지명에서 따온 이름으로(월배면, 옥포면 등) 작명되었다.
[7]
1, 2, 3위는
경주부,
상주목,
진주목, 이 중 가장 인구가 많은 경주부의 인구는 약 7만 2천명이었다.
[8]
2만 8천명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관할 구역에서
북구,
강서구,
기장군을 제외한 지역의 인구이고, 이 지역들을 모두 포함한 현재의 부산광역시 관할 구역의 인구는 약 4만 명 정도이다.
[9]
대구 지역은 대구부 대구군,
현풍군.
[10]
같은 시기 평양은
기독교 색이 짙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다.
[11]
단 파동, 서변동, 동변동, 평광동은 대구시에 잔류하였다.
[12]
원래 성서면 소속이었던 송현동이 이 때는 월배면으로 편입되었기 때문.
[13]
쉽게 말해서 중구와 남구의 경계가
달구벌대로(당시 대동로, 대서로)에서
명덕로(당시 명동로, 명서로)로 변경되었다.
[14]
해당 휘장은 일제강점기 대구부 시절부터 사용된 휘장으로, 한자 大邱를 형상화한 것이다.
(참고) 앞 링크에 나온 9개 휘장 중 《
내 고장 상징물총람》이 발간된 1987년에는 대구의 것만 유일하게 살아남아 쓰였다. 각 자치구에서는 자체 휘장을 만들기 전에는 이 대구시 휘장 가운데 점을 빼고
中,
東 등 한자로 된 구 명칭을 넣어 사용했으며, 현재의 휘장으로 바뀐 뒤에도 한동안 대구광역시 휘장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1996년부터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이후에도
대구광역시교육청 등에서 응용한 로고를 사용한 적이 있으며, 현재도 맨홀 등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15]
같은 날
경기도 인천시도
인천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같은 도의
영천군 영천읍도
영천시로 승격되었다.
[16]
현재의 동구 안심 1~4동 및 혁신동
[17]
현재의 수성구 고산 1~3동(
시지)
[18]
1980년 칠곡면에서 승격, 현 북구
칠곡지구 일원
[19]
서구 중
성서,
성당동 전역과 내당동 일부(현
두류동 일대), 남구 중
월배 전 지역
[20]
사실 1981년
광명시 승격을 참고하면 1989년의 경산읍의 경산시 승격 역시 사실상 경산의 대구 편입 무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21]
달성군 대구 편입 후
1호선이 당초 종점이던
진천역에서
대곡역으로 한 정거장 연장되고(
2호선이 착공되던 1996년 진천 ~ 대곡 구간을 착공해 2002년 대곡역이 개통했으며, 2016년에
설화명곡역까지 연장되었다.), 2호선의 차량기지 위치가
성서에서
다사읍으로 변경되며 2호선의 서측 종점이
문양역으로 변경된 사례를 고려하면 경산이 대구에 편입됐을 경우 충분히 경산 연장 구간까지 대구 시내 구간과 동시에 착공할 수 있었다.
[22]
사실 이때
다사읍과
하빈면을
성서와 묶는 형태로 갔다면 충분히 분구될 수 있었고, 현재 겪고 있는 행정구역 문제도 깔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
[23]
다만
군위군은 주변 군들과 비교해도 대구광역시와의 연계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많다. 군위군이 대구에 편입된 이유는 실생활권이나 역사성이 아닌 군위군이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의성군과 공동유치하는 조건으로 대구 편입을 요구해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거래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