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22:25:19

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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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扶餘郡
Buyeo County
}}}
<colbgcolor=#15619a><colcolor=#fff> 군청 소재지 부여읍 사비로 33 (동남리)
광역자치단체 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 1 15
면적 624.53㎢
인구 60,561명[1]
인구밀도 97.46명/㎢[2]
군수
박정현 (재선)
군의회
7석[3]

4석[4]
도의원
1석[5]

1석[6]
국회의원
박수현
지역번호 041
홈페이지 파일:부여군 CI.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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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발전 초기2.2. 후삼국시대 이후2.3. 인구
3. 교통4. 관광
4.1. 특산물
5. 상권
5.1. 금융
6. 생활문화
6.1. 교육6.2. 음식6.3. 의료기관6.4. 기타
7. 정치8. 하위 행정구역9. 기타10. 출신 인물

[clearfix]

1. 개요

충청남도 남부에 있는 . 동쪽으로 논산시, 서쪽으로 보령시 서천군, 북쪽으로 공주시 청양군, 남쪽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군산시와 접한다.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여서 백제문화단지,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이 지역에 있다.

' 부여'라는 이름은 통일신라 때부터 이어온 지명이며, 백제 시대에는 사비, 소부리 등으로 불렸다.[7] 부여는 만주 지방에 있던 고대 국가라 상관없을 거 같지만,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부여 왕족이었고, 백제 왕들의 성씨도 부여씨였으며 백제 성왕이 국명을 남부여로 바꿨을 정도였다. 이 지역을 부여로 명명한 통일신라도 그 역사적 관련성을 인정한 것이다.

공주시[8]와 함께 백제문화제를 개회식과 폐막식을 번갈아가면서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9]에는 세계대백제전을 개최했다.

2. 역사

2.1. 발전 초기

기원전에는 청동기시대의 송국리 문화유형의 발원지였고, 그 이후 기원전 4~3세기 때 고조선 연나라에게 밀려나갈 때 발생한 이주민들의 한반도 이주 러시 후에는 삼한 마한 고포국의 영역이었다.

삼국시대인 그 이후 대강 4세기 즈음 백제 분서왕 혹은 비류왕 시기에 같은 마한의 백제국에 복속되었다. 이후 소부리(所夫里), 사비 등의 지명으로 불렸고, 공식적으로는 사비성이 된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개로왕이 죽고 한성백제가 몰락한 뒤 웅진백제시대인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쯤에 본격적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5세기 말인 동성왕 시기부터 왕이 자주 사비로 사냥을 나갔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때부터 정치적 중요성이 수도 웅진성(현 충청남도 공주시) 다음으로 큰 도시가 아니었나 추측하거나 혹은 동성왕대부터 의도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도시일 것이라 추측된다.[10]

백제 성왕이 국호를 ' 남부여'로 고치고 538년 웅진성에서 사비성으로 천도한 이래로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6대 122년간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다. 결국 부여가 도시개발이 안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고 말았다.[11] 660년에 백제가 멸망해 궁성을 비롯한 많은 문물이 소실되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한 백제인이 금동대향로를 땅 속에 묻은 것이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다.

남북국시대에 들어서는 중심지는 사비군(泗沘郡)으로, 현 임천면 일대는 가림군(加林郡)으로 불린다. 사비군의 속현으로는 진악산현(珍惡山縣, 석성면)과 열기현(悅己縣,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이 있었고 가림군의 속현으로는 마산현(馬山縣,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과 대산현(大山縣, 홍산면)이 있었다.[12] 신라 경덕왕의 전국 지명 한화정책 때 사비군은 부여군(扶餘郡)으로, 가림군은 가림군(嘉林郡)[13]으로 개칭됐고 그 아래로 진악산현은 석산현(石山縣)으로, 열기현은 열성현(悅城縣)으로, 마산현은 그대로, 대산현은 한산현(翰山縣)이 된다.

2.2. 후삼국시대 이후

후삼국시대 때는 후백제의 영역이었고, 후백제가 일리천 전투의 패배로 망할 때 고려의 영역이 되었다.

고려시대 때 감무가 설치되었고 조선시대 때는 부여현으로 재편되는 등 '부여'란 이름을 간직해왔다.

1914년 조선총독부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석성군 일부, 홍산군, 임천군을 통합하여 현재의 부여군 영역이 되었다. 1960년 부여면이 부여읍으로 승격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9년에, 일본이 '내선일체'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는 일환으로 부여 부소산 일대(지금의 삼충사 위치)에 부여신궁을 건축하고자 공사를 시작하였다. 진구 황후를 비롯하여 백제와 관계 있는 일본의 옛 천황들의 신령 4위를 모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건물을 완공되기 전에 일본이 패전하고 우리나라가 광복하자, 만들다 만 부여신궁 건물을 부여청년동맹원들이 파괴하였다. 조선총독부가 부여신궁을 세우는데 너무 시골이라 공사가 지지부진하자 아예 부여를 신도(神都)라 칭하며 대대적으로 도시화하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부여 내의 시가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는데 그 영향이 지금도 남아있다.[14] 몇해 전 충남도청 이전에 든 비용이 당시 돈으로 16만 원이었는데, 부여신궁의 총 공사비는 24만 원이었다. 더군다나 히로히토 천황이 직접 공사 계획을 발표했다('충청남도 인터넷 신문' 인용).

당시 신궁에 모시려던 이가 임나일본부설에도 나오는 진구 황후 등이었던 점과 부여가 고대 일본과 관계가 깊은 옛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란 점 등을 드는 얘기가 있다. 부여신궁을 개발하면서 이 일대의 도로나 도시 정비 계획까지 잡혀있었으니 이때 개발이 진척되었더라면 금세 '부여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바 료타로의 '한나라(한국) 기행'에서, '일제가 망한 건 좋은데, 부여 일대 개발 때까지는 버텼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의 인터뷰가 소개된다.[15] 실제로 현재 부여군은 발전 상태에 비해서 읍내의 도로 정비가 잘 된 편이다. 그러나 만약 일제로 인해 부여가 개발되었다면 지금까지도 일본 극우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며 프로파간다로 써먹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또한 서울의 풍납토성처럼 사비시기의 백제의 유적을 발굴하는 일에 있어 지금 이상의 애로사항이 꽃필 것은 확정이다.

1960년대~ 1970년대까지 금강 내륙수운이 원활히 돌아갈 때 인근의 강경과 더불어 상당한 발전을 구가하였다. 하지만 부여에는 꽤 오랫동안 철도는 물론이거니와 고속도로도 없었던 데다, 1960년대~ 1990년대에 이루어진 경제 개발 정책으로 인해 경부선 경부고속도로가 통하는 충청 내륙 지역들과 달리 부여군을 비롯한 충남 서부 지역들은 인구 유출을 겪게 되었으며, 1990년 금강하굿둑의 완공으로 금강 내륙수운이 완전히 정지됨에 따라 부여의 발전 역시 정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군의 인구도 계속하여 감소하는 추세다.

그래도 아직 부여읍이 인구 2만 선은 유지했고[16], 규암면도 인구 1만이 넘고 코아루 휴엔하임 등이 지어질 정도[17]이므로, 군 치고는 그래도 아직 심각하게 몰락하지는 않았다.

2.3. 인구

파일:부여군 CI.svg 부여군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94,995명
1970년 180,060명
1975년 176,690명
1980년 163,769명
1985년 142,636명
1990년 126,908명
1995년 104,304명
2000년 93,687명
2005년 83,464명
2010년 75,029명
2015년 71,143명
2020년 65,354명
2024년 1월 60,86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0만 명
읍면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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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 18,644명
규암면 11,685명
은산면 3,585명
세도면 2,962명
홍산면 2,709명
석성면 2,703명
임천면 2,701명
장암면 2,556명
구룡면 2,252명
외산면 2,240명
초촌면 2,039명
남면 1,720명
양화면 1,608명
내산면 1,474명
옥산면 1,377명
충화면 1,090명
2023년 9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

3.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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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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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특산물

대부분 농작물이다. 이들 가운데, 부여8미라는 것이 있다.
  • 수박 - 함안의 브랜드에 밀리지만, 부여에서 생산량이 상당하다. 꽤나 오래전에 수박축제라는 행사가 존재했다.
  • 멜론 - 부여생산량이 전국 생산량의 30% 정도라 카더라. 과거 설빙에서 멜론빙수가 흥했을 때는 지역에 따라 가게 구석에 부여멜론 박스가 쌓여 있었을 정도.
  • 방울토마토 - 세도면이 유명하다
  • 오이
  • 양송이버섯 - 전국 생산량의 45%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 - 전국생산량의 12%를 차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윗동네 공주에 묻혔다. 밭이 넓은 건 이쪽.
  • 딸기 - 옆동네 논산에 묻혀서 그렇지 재배는 한다.
  • 표고버섯 - 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한다고 한다.

모두 굿뜨래 브랜드마크를 달고 팔리며, 굿뜨래는 국내 농촌 브랜드화의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될 만큼 성과가 좋은 편이다.

5. 상권

2000년대 초에 들어서야 롯데리아가 들어올 만큼 열악한 곳이었으나 최근 들어서 다양한 프렌차이즈들이 많이 입점해있다.

카페가 지역 규모에 비해 정말 많이 입점해있다.[18] 전통도시답게 한옥 스타일로 지어졌거나 한옥을 콘셉트으로 하는 커피숍도 많이 있다.

영화관은 전통시장 쪽에 위치하고 있다. 버스터미널과 전통시장 인근에 위치한 금성시네마는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지하주차장이 있으며, 2관까지 있고 1층은 은행이었이다.[19] 술집 같은 경우는 딱히 밀집지역 같은 게 없다. 대부분이 동네 술집이다. 술자리 게임 같은 거 하기도 힘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음식점 같은 경우는 의외로 괜찮은 편이다. 처음부터 관광도시여서인지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몇몇 유명한 음식점들이 포진해 있다. 부소산이나 구드래공원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 관광지 식당은 말 그대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다 보니 부실한 식사를 하게 될 확률이 높다.

2013년 9월 8일 규암면에 롯데아울렛이 새로 생겼다.[20] 롯데아울렛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 땅값을 무료로 해줬다는 카더라가 있다. 꽤 많은 브랜드가 입점하였다. 이제 유명 브랜드를 사러 타지로 나가지 않게 된 일반 시민들은 환영했고, 부여읍 내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반대 운동도 벌였었지만 오픈 9년째인 현재도 매우 성업 중이다.[21]

5.1. 금융

부여군에 위치한 금융기관 [괄호]
제1금융권 [괄호]
국가기관
부여우체국 (16)
특수은행
농협은행(중앙회) (2)
시중은행
하나은행 (1)
제2금융권(상호금융) [괄호]
농업협동조합
부여농협 (4) 동부여농협 (3) 서부여농협 (3) 장암농협 (1)
세도농협 (3) 남부여농협 (2) 구룡농협 (3) 대전충남우유농협 (1)
부여축산농협 (2) 백제금산인삼농협 (1)
새마을금고
부여새마을금고 (4) 금강새마을금고 (1)
신용협동조합
부여신용협동조합 (1) 참우리신용협동조합(2) 새마을홍산신용협동조합(1)
산림조합
부여군산림조합 (1)
부여군 유일한 국민은행 부여지점이 2022년 7월 폐점하게 된다. #

6. 생활문화

부여군을 본관으로 한 성씨는 임천 조씨, 부여 서씨, 홍산 순씨 등이 있다.

6.1. 교육

파일:부여군 CI.svg 부여군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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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초등학교 궁남초등학교 규암초등학교 내산초등학교 대왕초등학교
마정초등학교 백강초등학교 백제초등학교 부여초등학교 석성초등학교
석양초등학교 세도초등학교 송간초등학교 내산초등학교 대왕초등학교
외산초등학교 용당초등학교 은산초등학교 임천초등학교 장암초등학교
초촌초등학교 충화초등학교 합송초등학교 홍산초등학교 옥산초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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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부여군 CI.svg 부여군 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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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부여군 CI_White.svg 충청남도 부여군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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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사고, ⊙: 자공고, ▣: 특목고, ◈: 특성화고, 이외 일반고
남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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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고등학교
,
이외 남녀공학
부여고등학교 부여여자고등학교 부여전자고등학교 부여정보고등학교 한국식품마이스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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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4곳, 중학교 11곳, 고등학교 인문계2곳 실업계 2곳 마이스터 1곳, 대학교 1곳이있다. 초등학교는 부여초, 백제초, 규암초를 제외하고는 1학년 1학급이다.[25] 고등학교는 부여고부여여고를 제외하고 남녀공학이다. 마이스터고등학교 한국식품마이스터고등학교가 있다.

대학교는 4년제 국립특수대학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있다.

6.2. 음식

전북특별자치도와 가까운 탓에 전라도와 충청도가 혼합해 있는 듯한 음식들이 대부분. 대표적으로는 구드래 돌쌈밥이라는 곳이 있는데 구드래에 위치하고 20년이 넘게 성업 중이다. 돌솥밥에 여러가지 쌈들이 같이 나오는데 반찬이 많지만 대부분 구색 갖추기 수준.

읍내 전통시장에 시골통닭 같은 경우, 과거부터 치킨이 아닌 통닭과 삼계탕을 팔던 곳이었는데,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온 이후로 부여를 방문하게 되면 오게 되는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6.3. 의료기관

부여 경찰서옆에 부여 유일한 지역응급의료기관인 건양대학교부여병원(74병상)이 있긴 한데, 종합병원은 아니고 일반 병원급이다.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요양원도 뒤편에 위치해 있다.[26]

6.4. 기타

지역 특성상 바로 아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과 붙어 있어서 그런지 익산 쪽에서 유입되어 오던 사람들이 있다. 먼 과거 부여와 익산이 백제 중후기의 핵심 지역인 데다, 가까운 과거 경제 발전기에는 충남에서 가장 발전한 동네였던 강경과 맞붙어 있어서 전북에서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어있다. 실제로도 충청도 사투리에 약간의 전북 사투리가 섞여서, 구분하기 어려운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그러나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인 '거시기'의 사용은 드물고 '시방'을 자주 쓴다. 이는 논산 서천 등지도 똑같다. (논산시 반절 정도는 원래 전라북도에 속해있다가 충청남도로 부속되었다.)

1967년에는 농민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이 곳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올림픽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그냥 충남 지역의 16개 면에서 온 농민들이 선수로 참가해 심플하게 하루 만에 끝낸 행사였다. 농촌의 번영을 위한 취지로 열렸으며 종목으로는 손수레 빨리 끌기, 쟁기질 빨리 하기, 감자 빨리 까기, 경운기 빨리 몰기 등 농촌 생활을 스포츠화한 종목들이 있었다. 우승 상품으로는 비료가 주어졌으며 대회가 폐막된 후에는 참가상격으로 술과 음식을 나눠주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 올림픽은 1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대한뉴스 중 농민 올림픽

축구팀은 부여 FC K3리그 2016 시즌부터 2018 시즌 참가했었다.

7.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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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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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타

한창 행정구역 통합 시도가 잦았을 때 부여군에서 공주시에 '백제시'로 통합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무산된 적이 있다. 여러모로 공주 입장에선 손해인 데다가, 부여에서 공주시는 의외로 멀다.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의 주요 촬영지 중 한 곳이 부여였다. 그 중에서도 백제문화단지.

2023년에 공개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 소년시대"는 1989년의 부여군을 배경으로 하고있다.[27]

일부 몰지각한 지역 주민들이[28] 마을 통행료를 요구하며 장의차를 막는 기행을 보인 사건이 있었다. # 이 지역 뿐만 아니라 부여군의 다른 지역에서도 유골함도 못묻게 막고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있어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다. # 한편 이 J리의 당시 이장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태양광발전소 부지 진입 도로를 틀어막고 최대 1억의 뒷돈을 요구하여, 해당 업자가 결국 사업을 접은 일이 뒤늦게 밝혀졌다. 기사 2017년 10월 J리의 이장이 물러나고 새 이장이 선출되었는데, 새 이장은 전 이장단이 불법으로 받은 통행료 내역을 공개하라며 대자보를 붙인 귀농 부부를 J리에서 제명한 뒤 마을회관 등의 출입금지 조치를 하는 이른바 작은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기사 장의차 통행료 요구 사건 문서로.

2000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적용되기 전에는 영문 표기를 PUYO로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영문으로 이름이 같은 뿌요뿌요를 만든 컴파일의 사장 니이타니 마사미츠가 이를 보고 한국 방문 때 부여를 직접 들른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복성 중 하나인 남궁씨의 최대 집성촌이 있다.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 위치.

바람의나라: 연 광고에서 고구려 군대와 부여 군대가 서로를 놀리는 플롯의 광고를 냈는데, 부여의 군대가 '부여군'으로 표현되면서 이 부여군을 연상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부여군청 반응이 궁금하다' '저도 부여 사람인데 군수님이 이거 봤으면 좋겠다' 이런 댓글들이 나왔다. 심지어 자기가 부여에서 태어났는데 기분 나쁘다며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1995년 간첩이 침투하여 군경과 교전을 벌인 적이 있다.

과거 내비게이션이 대중화되기 전 종이 지도책이 성행했을 때 국내 시들의 시가지 지역을 확대한 지도를 모아둔 코너가 있었는데, 몇몇 지도의 해당 코너에 군 지역임에도 유일하게 부여읍내가 수록된 경우가 있었다. 관광 도시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점을 반영한 듯하다.

10. 출신 인물


[1] 2024년 3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2] 2024년 1월 기준. [3] 부여군 가선거구 (부여읍, 규암면): 서정호, 박순화
부여군 나선거구 (은산면, 외산면, 내산면, 구룡면, 홍산면, 옥산면, 남면, 충화면): 김영춘, 장성용
부여군 다선거구 (양화면, 임천면, 장암면, 세도면, 석성면, 초촌면): 조재범, 조덕연
비례대표: 장소미
[4] 부여군 가선거구 (부여읍, 규암면): 민병희, 노승호
부여군 나선거구 (은산면, 외산면, 내산면, 구룡면, 홍산면, 옥산면, 남면, 충화면): 김기일
비례대표: 윤선예
[5] 부여군 제2선거구 (은산면, 외산면, 내산면, 구룡면, 홍산면, 옥산면, 남면, 충화면, 양화면, 임천면, 장암면, 세도면, 석성면, 초촌면): 조길연 (3선) [6] 부여군 제1선거구 (부여읍, 규암면): 김기서 (재선) [7] 수도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인 서울의 어원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서울의 보다 직접적인 어원은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긴 하지만, 소부리도 동계어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8] 백제 때의 웅진 [9] 이용우 군수 재임시절이었다. [10] 이러한 점은 고구려 마지막 수도인 평양성과 매우 흡사하다. 평양 역시 313년 미천왕 한사군 정복 이후 고구려령으로 편입되었고 장수왕 시기 이전부터 제2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고국원왕이 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소도 평양이고 광개토대왕대에 이미 평양 지역에 9개의 사찰을 지었다는 기사나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평양에서 출발했다는 기사로 미루어 볼 때 평양 역시 427년 장수왕의 천도 이전부터 완성되어있던 도시라고 볼 수 있겠다. [11] 이건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시도 마찬가지이다. [12] 남북국시대의 행정구역은 보통 삼국시대의 행정구역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 부여 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던 걸로 보인다. [13] 한자만 다르다. [14] 부여읍 초입 로터리부터 군청 앞까지의 도로가 당시 일제가 닦은 신작로다. [15] 물론 친일파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당시 부여가 개발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나온 대화다. [16] 2021년 3월에 딱 3명 차이로 2만 선이 붕괴했다. [17] 사실 부여읍이 옛 백제의 수도이기 때문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엄청 부담스럽다. 곳곳이 국가지정문화재+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 허가받는데도 시일이 걸리고, 공사하다가 문화재가 발굴될 수 있으므로... [18] 특히 궁남지 일대에 정말 많이 있다. [19] 은행이 2022년에 철수한 이후 실내풋살장 간판을 달고는 있지만 운영은 안 하고 있다 [20] 그와 동시에 롯데리조트와 롯데스카이힐CC도 같이 생겼다. [21] 아울렛에 대부분 옷을 사러 가기에 그나마 지역상권에 문제가 많이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25] 이 세 학교를 제외하곤 학생수가 많이 적다. [26] 이 요양원은 건양대에서 운영하고 있다. [27] 단 촬영은 부여군에서 하지않았고 경기도 양평군이나 강원도 춘천시에서 진행되었다. [28] 옥산면 J리라고 알려졌는데 옥산면에 J로 시작하는 장소는 중양리 말고는 없다. [29] 지역구: 대전광역시 대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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