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1 15:56:56

조선총독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기관의 청사에 대한 내용은 조선총독부 청사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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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제국{{{#FFF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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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통치지 통치기관
사할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41px-Emblem_of_Karafuto_Prefecture.svg.png 가라후토(樺太)* 가라후토청
한반도 파일:조선총독부 휘장.png 조선(朝鮮) 조선총독부
타이완 섬 파일:대만총독부 휘장.png 대만(臺灣) 대만총독부
미크로네시아의 일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mblem_of_South_Pacific_Mandate.png 남양제도(南洋諸島) 남양청
랴오둥 반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airen.png 관동주(關東州) 관동주청
* 가라후토는 1943년 이후 내지(內地, ないち, 본토)로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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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일본 제국 한반도 통치기관
1905~1910 1910~1945
파일:대한제국 국기.png 대한제국 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일본령 조선
파일:1280px-Flag_of_the_Japanese_Resident_General_of_Korea_(1905-1910).svg.png 한국통감부 파일:조선총독부 휘장.png 조선총독부

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파일:조선총독부 휘장.png
1910. 10. 1. ~ 1945. 9. 28.
청사 소재지 경성부 경복궁 조선총독부 청사[1]
상징화 오동나무
통치 방식 무단통치 (1910~1919)
문화통치 (1920~1930)
민족말살통치 (1931~1945)
주요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토 마코토
미나미 지로
고이소 구니아키
아베 노부유키
설립 이전
한국통감부
해체 이후
미군정청

1. 개요2. 기관3. 역대 총독4. 조선총독부 청사5. 총독부 산하 행정 기구6. 기타7. 둘러보기

1. 개요

일본 제국 일제강점기의 조선에 설치한 통치 기관. 한·일 병합조약이 체결된 1910년에 설치되었고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1945년 미군정에게 행정권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해체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영어로 Government-General of Chosen이란 표기를 했으나, 현대 한국에서는 주로 Government-General of Korea로 표기하며,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of Korea란 표기를 하기도 한다.

2. 기관

조선 총독부 관보

1910년 8월 29일 병합 조약의 공포와 함께 칙령 제318호로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한반도를 조선으로 개칭한 일본은, 종래의 한국통감부를 대신할 목적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다. 총독부는 총독 아래 5부 9국의 체제를 갖추고, 총독은 일본군 육군이나 해군 대장 출신 중에서 임명되며, 조선의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정무를 총괄, 내각총리대신을 경유하여 천황에게 상주, 재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조선 내의 육군 해군의 통수권자이자 위임에 따라서 총독부령 및 명령, 그에 추가하는 벌칙을 내릴 수도 있었다. 내각총리대신 다음의 사실상 제2인자에 해당하던 직위.[2]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천황의 직속부로 내각총리대신의 지휘를 받지 않았다. 즉 제국 안의 제국. 일본 의회에서 독립한 또 하나의 정부였던 셈이다.

실질적인 또 하나의 정부가 될 수 있던 것은 총독에게 무지막지한 권한을 주었기 때문이다. 행정, 입법, 사법, 군 통수권까지 모두 갖고 있었는데, 일제는 조선 통치에 있어서 제국 헌법을 적용하는 대신 '제령'이라고 하여 법률이 필요한 부분을 총독의 명령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행정권을 가진 총독에게 사실상의 입법권을 준 것이나 다름없으며 긴급한 경우에는 총독이 제령을 먼저 발포하고 사후에 덴노에게 재가를 얻는 요식 행위를 거칠 수도 있게 하여 조선 내의 독립운동을 신속히 탄압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재판소의 설립과 판사의 인사 관리를 총독이 담당함으로써 사법부는 단순히 행정부의 관청이 됐고 자율성을 갖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총독은 조선에 주둔한 육해군 부대를 통솔할 수 있었으며 필요 시 만주 지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었다. 이처럼 삼권분립 따위는 가볍게 씹어먹는 막강한 권한이 총독에게 주어졌다. 다만 예산 문제 때문에[3] 일본 본토의 총리와 노골적으로 대립하기는 힘들었고, 1940년대에 들어서는 내외지 행정 일원화 조치가 취해져 총독이 내지의 주무 대신의 감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해서 9월 9일 미군정을 수립할 때까지 통치 기능을 계속 수행하였다.[4] 사실 8월 15일 항복 직전에 조선총독부는 국내에 남아 있던 민족 지도자 중에 가장 명망이 높았던 여운형과 접촉해서 행정권 이양 교섭을 진행하였다. 비밀리에 건국동맹을 조직해서 광복 이후를 대비하고 있던 여운형과 항복 이후 신변 안전과 본토로의 무사 귀환을 원하고 있던 조선총독부 사이에 행정권 이양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미국이 미군이 상륙할 때까지 조선총독부가 행정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라는 포고령을 내리면서 사실상 무산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8.15 광복 여운형 문서 참조.

3. 역대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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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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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초대 제2대 제3대 대행 제4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이토 마코토 우가키 가즈시게 야마나시 한조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사이토 마코토 우가키 가즈시게 미나미 지로 고이소 구니아키 아베 노부유키
한국 통감 · 군정 사령관 }}}}}}}}}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설명
임시 /
1대 총독
파일:Masatake_Terauchi.jpg 데라우치 마사타케 1910년 8월 29일 ~ 1916년 10월 14일 야마구치현 출신. 한국통감부와 총독부가 공존한 시기에 통감으로서 직무 대리함. 이후 기존의 지위에 이어 총독으로 승격, 초대 조선 총독으로서 무단 통치를 실시한다.
2대 총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asegawa_Yoshimichi.jpg 하세가와 요시미치 1916년 10월 14일 ~ 1919년 8월 12일 야마구치현 출신. 3.1 운동을 무력 탄압하는 등 무단 통치로 비판을 받아, 토지 사업을 완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3년만에 교체되었다. 여담으로 한국통감부 당시 통감부의 임시 통감[5]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3대 총독 파일:attachment/사이토 마코토/sa431.jpg 사이토 마코토 1919년 8월 12일 ~ 1927년 4월 4일 이와테현 출신. 형식상의 문화 통치 정책을 추진하여 기존의 강압적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로 방향을 돌렸다.
권한 대행 파일:우가키 가즈시게.jpg 우가키 가즈시게 1927년 5월 10일 ~ 1927년 9월 오카야마현 출신. 경제 개발 정책을 표방하면서 한국어 시간을 대폭 축소시키는 등 문화 말살정책의 초석을 펼쳤다.
4대 총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Yamanashi_Hanzo.jpg 야마나시 한조 1927년 12월 ~ 1929년 8월 16일 가나가와현 출신. 부패한 '금권 장군'. 조선총독부의옥(朝鮮総督府疑獄) 사건에 관련되어 사임하였다. 일설에는 타이완에서 조명하가 일본 황족(국구) 구니노미야 구니요시[6]를 칼로 찌른 사건의 책임까지 겹쳤다는 말이 있다.
5대 총독 파일:attachment/사이토 마코토/sa431.jpg 사이토 마코토 1929년 8월 17일 ~ 1931년 6월 16일 이와테현 출신. 형식상의 문화 통치 정책을 추진하여 기존의 강압적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로 방향을 돌렸다.
6대 총독 파일:우가키 가즈시게.jpg 우가키 가즈시게 1931년 6월 17일 ~ 1936년 8월 4일 오카야마현 출신. 경제 개발 정책을 표방하면서 한국어 시간을 축소시키는 등 문화 말살정책의 초석을 다졌다.
7대 총독 파일:미나미지로.jpg 미나미 지로 1936년 8월 5일 ~ 1942년 5월 28일 오이타현 출신. 내선일체 등을 주장하고, 지원병 제도를 실시해 강제징용으로 조선 청년들을 중일전쟁에 참전시켰으며, 일본어 사용 창씨개명, 신사참배, 황국신민서사 암송 등 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하였다.
8대 총독 파일:고이소 구니아키.jpg 고이소 구니아키 1942년 5월 29일 ~ 1944년 7월 21일 도치기현 출신.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였며, 조선 소년소녀들을 하시마 위안부로 끌려가게 했다. 1944년 도조 히데키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총리가 되었다.
9대 총독 파일:Nobuyuki_Abe.jpg 아베 노부유키 1944년 7월 22일 ~ 1945년 9월 28일 이시카와현 출신. 총리 출신이 총독이 된 경우. 마지막 해의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와 인력의 수탈에 총력을 다하였다. 국민 의용대를 편성하여 비협조적인 조선인을 대규모로 탄압, 검거했다. 패전 후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4. 조선총독부 청사

초창기 총독부 청사는 남산에 있던 구 통감부 건물을 이어받아 사용했다. 이 건물은 6.25 전쟁 당시 소실되었고, 현재 그 자리에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한편 우리가 흔히 조선총독부 청사로 알고 있는 경복궁의 건물은 1926년에 완공되어 이때부터 사용되었으며, 1995년 철거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조선총독부 청사 문서 참고.

5. 총독부 산하 행정 기구

  • 총독부 설치 당초의 직제다.
  • 총무부(總務部)
    • 회계국(會計局)
      • 산하 2과
    • 인사국(人事局)
    • 외사국(外事局)
    • 문서과(文書課)
  • 내무부(內務部)
    • 학무국(學務局)
      • 산하 2과
    • 지방국(地方局)
      • 산하 3과
    • 서무과(庶務課)
  • 사법부(司法部)
    • 형사과(刑事課), 민사과(民事課), 서무과(庶務課)
  • 농상공부(農商工部)
    • 상공국(商工局)
      • 산하 2과(課)
    • 식산국(植産局)
      • 산하 3과
    • 서무과(庶務課)
  • 탁지부(度支部)
    • 사계국(司計局)
      • 산하 2과
    • 사세국(司稅局)
      • 산하 2과
    • 세관공사과(稅關工事課)
    • 서무과(庶務課)
  • 총독관방(總督官房)
    • 비서과(秘書課), 무관(武官)
  • 참사관(參事官)
  • 각종학교(各種學校)
    • 각 직할보통학교(直割普通學校)
    • 관립고등여학교(官立外高等女學校)
    • 관립실업학교(官立外實業學校)
    • 관립외국어학교(官立外國語學校)
    • 관립고등학교(官立高等學校)
    • 관립사범학교(官立師範學校)
    • 법학교(法學校)
    • 성균관(成均館)
    • 중학교(中學校)
  •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
  • 사목회의(士木會議)
  •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 평양광업소(平壤鑛業所)
    • 산하 2과
  • 총독부 의원(醫院)
  • 영림창(營林廠)
    • 산하 2과
  • 인쇄국(印刷局)
    • 산하 2과
  • 전매국(專賣局)
    • 산하 3과
  • 세관(稅關)
    • 산하 5과
  • 임시토지조사국(臨時土地調査局)
    • 산하 3과
  • 통신과(通信課)
    • 산하 5과
  • 철도국(鐵道局)
    • 산하 8과
  • 감옥(監獄)
  • 재판소(裁判所)
    • 고등법원(高等法院) → 공소원(控訴院) → 지방재판소(地方裁判所) → 구재판소(區裁判所)
      • 각 검사국(檢事局)이 대응 시설로 설치됨. 단 구재판소에 대응하는 것은 검사(檢事)
  •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경무국[7]
    • 서무과, 고등경찰과, 경무과, 보안과, 위생과
    • 직할경찰서(直割警察署, 경성 주재) → 경찰서, 경찰분서(警察分署), 순사주재소, 순사파출소
    • 경무부(警務部, 각 도별) → 순사파출소, 순사주재소, 수상경찰서, 경찰서
  • 각 도(道, 1관청官廳 2부部)
    • 자혜의원(慈惠醫院)
    • 군(郡) & 부(府) → 면(面)
  • 취조국(取調局)
  • 중추원(中樞院)

6. 기타

  • 역대 조선 총독은 모두 현역 일본 육군 / 해군 대장 계급이었다. 특히 해군 대장이었던 사이토 마코토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육군 출신이었다. 1919년 3.1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여파로 일본 본토에서 '무력 통치'에 대한 반발이 일었고[8]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민간인인 문관 출신도 총독이 될 수 있도록 법령이 개정되었다. 실제로 3대 총독으로 문관을 고려하고 당시 총독부 정무총감으로 있었던 야마가타 이사부로를 후보자로 정했으나( http://dk01337.egloos.com/v/4207921) 일본 육군, 그 중에서도 조슈벌의 수장이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무산되었다. 문제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사부로는 아리토모의 아들이었다! 자기 파벌의 이익을 위해 아들의 출세도 포기한 것.
  • 이후 일본 제국이 패배하는 그 날까지 단 한 번도 문관 출신이 총독으로 부임한 적이 없다. 이 점은 실제로 문관 출신 총독들이 부임하였던 대만총독부와 구별된다. 대신 대만총독은 조선총독보다 의전상 서열이 낮았고,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총리의 지휘를 받았기 때문에 문관 출신이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일본에게 있어서 대륙 진출의 지정학적 핵심지였던 조선의 가치가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군부의 집착도 그만큼 심했던 것. 참고로 1926년 일본 황실 의제령에 따른 궁중 석차 의전상 조선총독은 제6위에 해당하고, 대만총독은 제11위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친임관(현재로 치면 장관급 등 최고위직 관료라고 볼 수 있다)이다. 비교를 위해 놓자면 제2위 내각총리대신, 제3위 추밀원 의장, 제5위 원수, 제7위 전임의 내각총리대신·추밀원 의장, 제10위 육·해군 대장으로 의전도 꽤 높았던 편이다.
  • 북방경영을 위하여 총독부를 평양에 설치한 고려총독부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기각되었다고 한다. 만선사관의 한 단면. 실제로 평양에 고려총독부가 설치되었다면 조선이 아니라 고려, 그리고 Korea라는 명칭이 일제 식민통치로 쓰여진 이름이 되었을 것이다. #
  • 유주현(류주현)의 《조선총독부》라는 대하소설이 있다. 1964년에 신동아에 연재되었으며 출간 후 몇 차례 복간되었다.
  •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송영길의원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를 조선 총독에 빗대어 논란이 되었다. 역대 조선 총독들 모두가 콧수염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계 미국인인 해리스 대사가 콧수염을 길러 외모까지 유사하다는 내용까지 나돌았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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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광화문 근정전 사이 흥례문 권역에 존재했었다. 그야말로 경복궁의 핵심 위치에 총독부 청사 건물을 박아 놓았던 셈. [2] 의전 서열도 높았는데, 전임 내각총리대신이나 대만 총독대만총독은 내무대신급이다.보다 상위급에 해당하며, 자세한 것은 하단 참조. [3] 식민지 조선은 말 그대로 돈 잡아먹는 하마였다.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은 공업은 덜 발달해서 끊임없는 투자가 필요했는데, 그 와중에 치안 문제로 인한 지출도 만만찮게 요구되는 지역이었다. 그 때문에 총독은 항시 도쿄의 의회에게 손을 벌려야 했고, 도쿄는 주로 이 예산권을 이용해 경성의 총독부를 통제했다. [4] 하지만 최후의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자기 재산만 쏙 빼서 조선에 남겨진 일본인들은 나몰라라한 채 도망갔고, 미군정이 도달할 때까지 불과 한 달 동안 조선총독부 관료들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과 그 가족들이 무사히 재산을 가지고 일본 본토로 귀환할 수 있도록 인플레이션을 노리고 화폐를 미친 듯이 발행했다. 이 조치로 미군정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엄청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해서 사실상 경제 붕괴 상황이 초래되었다. [5] 정확하게는 이토 히로부미의 선대 [6] 쇼와 덴노의 장인 [7] 경술국치 직전인 1910년 6월 대한제국의 경찰권을 박탈하면서 경무총감부를 설치하고, 조선주둔군 헌병대 사령관이 이를 겸직했다. 1919년 헌병경찰제를 폐지하고 경무국으로 바뀌었다. [8]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3.1 운동을 전후로 격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중국에선 5.4 운동이 터졌고, 일본은 한창 다이쇼 데모크라시 바람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갔고 군부에 대한 대립이 극심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