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9:31:24

백제문화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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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photo.asiae.co.kr/2010030417433399834_1.jpg
1. 개요2. 주요 건축
2.1. 사비궁2.2. 능사2.3. 고분공원
3. 비판점

[clearfix]

1. 개요

정부가 지정한 백제 문화권이 대통령령에 의해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백제의 옛 수도 지역인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대에 조성된 백제 관련 테마파크. 롯데그룹의 민자투자를 받아 롯데부여리조트, 롯데아울렛 부여점이 옆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역시 이 단지 옆에 위치해 있다. 관람료는 어린이 3,000원, 청소년 - 군경 4,500원, 어른 6,000원.

총 100여만 평 규모로 1994년부터 충청남도와 문화관광부가 부소산과 낙화암 맞은편 백마강변에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지었으며, 단순히 시멘트나 합판 같은 현대 건축자재로 껍데기만 그럴 듯하게 드라마 세트장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연구와 고증을 해서 실제 소나무 등 전통 건축자재와 건축방식을 써서 건축물들의 내외부를 전부 '재현'한 것이 포인트다. 인간문화재급 장인들이 여럿 투입되었고, 심지어 능사 5층목탑 꼭대기 부분 도금을 위해 상당량의 순금을 썼다고도 한다.

1998년에 첫 삽을 떴을 때는 바로 부여가 고향인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까지 다녀갔다. 이 사업 자체가 JP의 주도로 충청권의 민심을 사기 위해 이뤄진 거라는 분석도 있는데 사실 생전의 JP는 고향인 부여의 백제문화를 크게 되살리고 싶어한 사람이었다. 현재의 궁남지도 김종필의 작품인데 거기에 새로 지어진 정자의 현판 글씨도 자기가 직접 쓰고, 궁남지를 조성하기 위해 본인이 주도로 여기저기 돈도 막 끌어다 모으고 노력 자체는 많이 했다. 물론 나중에 여기가 진짜 백제 후원이 맞느냐 논란이 나온것처럼 고증이나 이런건 당대 상황상 무시하고 만든거지만...어쨌거나 방법은 잘못됐어도 일본에서 발굴 중 백제와 관련된 흔적이 나오면 일본으로 직접 찾아간다던가 왕인 박사 묘도 참배하고 백제 관련된 행사는 꼬박꼬박 참가하는 등 그의 백제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었다. 한번은 부여의 정림사지를 재건하고 싶어서 일본 측의 도움을 요청했다가 한일관계 문제 때문에 좌절했던 적도 있었는데[1], 결국 나중에 총리 자리에 다시 올라서 이 사업을 시작하며 그 한을 일부나마 푼 것에 가깝다. 즉 충청권 민심 이전에 이 사업 자체가 나름대로 JP 입장에서는 꽤나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추진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

2010년 세계대백제전 개막에 맞춰서 2010년 9월 17일에 공개되었다. 롯데 그룹이 투자한 민자투자만 3100억 원대... 이거 안 했으면 예상 적자만 연간 100억 원대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단순 '역사 재현'만 목표로 하는 문화재단지가 아니라 '테마파크' 형식으로 개장되었다. 현재 롯데그룹에서 위탁운영을 하고 있다.

한참 뒤인 고려시대 건축물도 남은 게 얼마 없지만, 그래도 고려 불화 같은 회화 등에서 건축물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데 반해, 백제는 남아있는 건축물은 당연히 거의 없고,[2][3] 그림은커녕 기록도 별로 없어서 고증이 쉬울 리가 없다. 결국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 관련 유적이나 한국의 백제 관련 유적 등을 참조하여 고증했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문화재 단지에는 사비에 세워졌던 궁궐, 성왕의 능에 세워졌던 능사, 고분공원, 생활문화마을, 하남 위례성 등이 재현되어 있으며 그 이에도 백제역사문화관이나 위에서 설명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롯데부여리조트, 롯데아울렛이 들어서 있다.

백제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 근초고왕 계백, 제왕의 딸 수백향의 세트로 이용되었으며, 배경이 고려 말인 대풍수와 가상의 역사인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한 황후의 품격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2. 주요 건축

2.1. 사비궁

사비궁(泗沘宮)은 삼국시대 왕궁 중 최초로 재현된 왕궁이다. 현재는 대외적 공간인 치조(治朝) 권역을 재현한 상태이다.
사진 설명
파일:정양문사진.jpg
정양문(正陽門)
백제문화단지의 정문이다. 하루 중 모든 기운이 왕성한 때를 지칭하는 정양(正陽)에서 이름을 따왔다. 뒤에는 넓은 광장이 있다.
파일:천정문.jpg
천정문(天政門)
사비궁 중궁(中宮)의 정문이다.
파일:천정전.jpg
천정전(天政殿)
사비궁의 정전으로 국가의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하여 결정했다는 천정대에서 이름을 따왔다. 왕의 즉위 의례, 신년 행사 등 각종 국가 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사비궁 내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파일:현정문사진.jpg
현정문(顯政門)
사비궁 동궁(東宮)의 정문이다. 예부터 임금이 궁성의 남문에 정령(政令)을 내걸고 시정목표를 알렸던 것에서 이름을 따왔다.
파일:문사전.jpg
문사전(文思殿)
동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문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문사전의 문(文)은 동쪽을 의미한다.
파일:연영전.jpg
연영전(延英殿)
주로 문신들의 집무 공간이며 천하의 인재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파일:숭지문.jpg
숭지문(崇智門)
동궁의 후문이자 북문으로 지혜가 있는 사람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파일:선광문이미지.jpg
선광문(宣光門)
사비궁 서궁(西宮)의 정문이다. 역대의 임금들이 거듭해서 밝은 덕을 베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파일:무덕전.jpg
무덕전(武德殿)
서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무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무덕전의 무(武)는 서쪽을 의미한다.
파일:인덕전사진.jpg
인덕전(麟德殿)
주로 무신들의 집무 공간이며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영물인 기린(麒麟)의 덕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의상 체험을 할 수 있다.

2.2. 능사

능사(陵寺)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졌던 백제 왕실의 사찰이다. 중문-탑-금당-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어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가람배치 형식을 하고 있다.
사진 설명
파일:대통문.jpg
대통문(大通門)
능사의 중문이다. 뜻이 크게 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파일:능사탑.jpg
능사(陵寺) 5층목탑
국내에서 최초로 재현된 백제시대 목탑이며 부처의 사리를 모시던 곳이다. 높이는 38m로 아파트 높이 13층 정도이다. 능산리 사지 목탑 심초석에서 발굴된 국보 288호 창왕명석조사리감(昌王銘石造舍利龕)에는 백제 위덕왕 14년 (서기 567년)에 사리를 봉안하고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파일:대웅전.jpg
대웅전(大雄殿)
능사의 금당으로 능사에서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다. 예불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백제 불상인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불상 앞에는 금동대향로가 놓여져 있다. 삼존불에 금을 덮지 않고 옻칠로만 마감을 한 것이 특징이다. 가끔씩 안에서 스님이 불경을 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일:자효당.jpg
자효당(慈孝堂)
능사의 강당으로 대중에게 불법을 설법했던 공간이다. 위덕왕의 성왕에 대한 효심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파일:향로각.jpg
향로각(香爐閣)
국보 제 287호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건물이여서 향로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불교용구 등을 보관하던 건물이다.

2.3. 고분공원

백제시대의 대표적 고분 형태를 보여주는 곳이다. 백제문화단지 화계조성부지에서 출토된 4기와 부여 은산면 가중리에서 출토된 3기 등 총 7기가 이전복원 되어 있다.
사진 설명
파일:석곽분.jpg
횡구식 석곽분
백제시대 고분의 한 종류이다. 관은 돌을 이용해 장방형으로 둘러쌌으며 내부는 육각형 구조로 활석을 사용하였으며 바닥은 잡석을 깔았다.
횡혈식 석실분1
석실의 구조가 완전한 형태이며 장방형 평면으로 연도부, 묘도, 배수구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육각형 구조이며 천정 덮개석은 대형판석 3매를 사용하였다. 묘실은 화강석 판석을 사용하였다.
횡혈식 석실분2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연도부와 묘도, 배수구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육각형 구조이며 천정 덮개석은 판석 6매를 사용하였다. 잘 다듬은 판석을 사용하였다.
횡혈식 석실분3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연도부와 묘도, 배수구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육각형 구조이며 천정 덮개석은 대형판석 3매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발굴 당시에는 2매가 발굴되었다. 잘 다듬은 판석을 사용해 축조하였다.
파일:석실분4.jpg
횡혈식 석실분4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이며 내부는 육각형 구조로 덮개석은 대형판석 3매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발굴 당시에는 2매가 발굴되었다. 잘 다듬은 화강암 판석을 사용해 축조하였다.
횡혈식 석실분5
말각장방형이며 내부는 육각형 구조로 덮개석은 장방형 판석 4매를 덮었다. 바닥 및 벽은 잘 다듬은 화강암 판석을 사용해 축조하였다.
횡혈식 석실분6
말각장방형이며 내부는 육각형 구조로 덮개석은 장방형 판석 4매를 덮었다. 벽은 잘 다듬은 판석을 사용했으며 바닥은 크기가 다른 판석을 박석하였다.

3. 비판점

파일:external/news.kbs.co.kr/1264704.jpg

백제문화단지의 능사 5층목탑. 복원된 것이다.

우선 제기되는 비판점은 백제문화단지에 재현된 건축의 형태와 비율이 백제유물인 청동소탑편, 또는 호류지같이 백제와 동시대로 여겨지는 건축물과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양식이라고 해도 각각의 건축물별로 다른 점이 있었다거나, 호류지의 건축 양식도 현지화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니 백제식과 완전히 동일했다는 근거는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백제의 건축 중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당대 유물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하다.[4]
옥충주자 백제문화단지 천정전
파일:external/s17.postimg.org/tamamushi.jpg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93cc3764-s.jpg 파일:shitennoji-3.jpg

유물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옥충주자 같은 백제 혹은 신라시기의 유물이 있음에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된 근거이다. 다만 옥충주자의 원산지가 한반도인지,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제작한 유물인지는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므로 온전히 고증에 반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출신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당대 건축 양식인건 변함없다. 당시에는 한반도나 일본이나 모두 중국에서 건축을 들여오던 시기라 사실 어느 나라 것인지 중요하진 않단 지적도 있다. 실제 이 옥충주자는 남북조시대 남량의 건축 양식인데 백제 장인들이 만든 일본 사천왕사와 같은 양식이다. 백제문화단지 재현단 측에서는 기와의 배치나 내림마루 부분의 곡률, 하앙의 배치와 형태 등에서 옥충주자를 상당히 참고했다고 밝혔다.
백제 청동소탑편 재현 능사 5층 목탑의 하앙 부분
파일:external/s14.postimg.org/f0006957_4a96b9eb32efe.jpg 파일:external/s13.postimg.org/12131.jpg
백제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청동소탑편에서는 끝부분이 살짝 깎인 하앙의 형태나, 처마의 곡률 등을 고증에 반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건축기법을 통해 살펴보자면,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풍판과 같은 부재를 박공 지붕에 쓴다거나, 공포와 부연이 발달한 시기의 두터운 비율을 가진 지붕은 역시 백제의 건축양식이라기에는 신뢰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점이 주된 비판점이 되었다. 심지어는 복원안이나 모형보다도 기둥들이나 각 부분들의 높이가 낮아 둔탁해보이기까지 한다. 기둥 위의 포작(지붕과 기둥을 결합하는 구조)을 보면 국내 유일의 하앙식 고건축물인 화암사의 것과 유사해 보이는데, 시기상 백제보다 훨씬 뒤에 건립되었고 하앙이 퇴화되는 조선시대의 건축물과 유사해 보이는 것도 타당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물론 국내 유일한 현존 하앙식 건물이라는 점에서 고증에 참조하지 않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그런데 백제 시절 건축을 복원 하면서 조선 시대 건축물의 보고 고증하는게 맞는가란 의문이 든다. 이 점과 관련하여 현대 한국의 목수들은 조선시대의 건축에 익숙하기 때문에 아마 작업의 용의성을 위해 조선시대의 건축 기법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만하다. 현대에 지어진 삼충사 등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하앙조차 현대에는 사용되지 않는 기법이다.
카이류오지 5중 소탑(8세기) 카이류오지 5중 소탑(8세기) 능사 5층 목탑
파일:external/s21.postimg.org/1213.jpg 파일:external/s28.postimg.org/800px_Kairyuou_ji_gojyushoto.jpg 파일:external/s21.postimg.org/12131.jpg

다만 일본에서도 시기가 앞서는 초기 고건축물에서는 마치 조선시대 건축을 연상시키는 둥그런 서까래와 네모진 직사각형 부연이 쓰인 적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고대에도 부연이 발달한 두꺼운 지붕이 쓰인 적이 있고, 도래인과 백제 유민을 통해 백제의 건축 기술을 거의 그대로 수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8세기 초반 건축 유물이 특히 그러하다. 8세기에 만들어진 카이류오지 5중 소탑의 경우 부연의 형태마저 현대 한국의 목조건축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직사각형의 부연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위의 사진을 참고해보자. 지붕의 곡률이나 전체적인 실루엣이 의외로 재현된 능사 5층 목탑과 상당히 유사하다. 현재로서는 백제의 건축양식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건축물들 보면 백제 건축을 어느 정도 알수있는데도 당시 건축 양식과 조선식 건축의 혼합으로 복원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청과 같은 세부적인 장식에 대한 비판점으로는, 우선 단청 색상이 너무 광택이 선명해 화학안료 같고, 고구려 벽화 등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초록 계열의 색을 너무 많이 사용하였으며 벽을 분홍빛으로 칠한 것이 조선시대의 느낌이란 비판이 있다. 세부적인 문양 쪽으로 가면 더더욱 의아스러우며, 단청업자와의 마찰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 또한 미적 감각이 결여되어있다는 점에서도 넷상에서 크게 비판받았다 #. 일단 문화단지 조성 사업단 측에서는 단청 문양을 재현하기 위해 무령왕릉 출토 유물의 격자 무늬라든가 금동대향로, 무늬 벽돌 등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작 1100년대 ~ 1200년대 건축으로 추측되는 봉정사 극락전의 경우에도 해체 조사 중에 나온 고려시대 단청문양은 붉은색 바탕의 단청이던 것이나, 고려불화나 고구려 벽화등에서도 바탕색으로 붉은색을 사용한것은 한국 고대건축의 대다수가 붉은색 바탕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참고로 고려 불화에서의 변천사나 현존하는 한국 중국 건축의 단청 변화를 보면 상록하단은 14세기부터 대중화 되었다고 볼수 있다.
이은희 박사의 논문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의 上綠下丹 단청기법 수용](2016)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초록색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바탕색이 초록색인 것은 잘못된 게 맞다. 중국 건축에서도 바탕색이 녹색인 상록하단이 처음 등장하는 게 중국 북송 시기이다. 당나라 건축 관련 유구에도 청록색 단청이 쓰이긴 하나 바탕색이 전부 붉은색 또는 옻칠한 검은색을 띄고 있어 바탕색이 녹색인 상록하단과는 단청 양식이 다르다. 또한 백제문화단지의 단청 문양은 고구려와 백제 벽화나 유물에서 따온 것을 보아 이 부분에서는 고증을 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탕색이 붉은색이 아닌 녹색인 것과 색감 고증이 문제인 것이다. 상록하단 자체는 삼국시대부터 쓰인 건 맞다. 다만 바탕색이 녹색이 아닌 주칠 단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색이었고 단청 색감도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고구려 용강대총에 묘사된 단청의 바탕색이 붉은색으로 된 주칠인 게 명확히 나와있고 발해 고분 벽화에서 발견된 단청 양식도 바탕색이 역시 붉은색이다.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건축에 바탕색이 녹색이 아닌 붉은색이었다는 건 당시 출토되는 유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가장 큰 문제점은, 벽의 색깔을 고려 후기에나 사용되는 선홍색으로 사용했다는것이다. 이는 시대상 백제문화단지의 원형인 능사나 사비궁과 150년의 연대차이가 나는 호류사에서도 백색을 사용한 것을 고려하면 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개다가 최근에 복원완료된 월정교의 문루는 벽채를 백색으로 마감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신세가 되었다.

파일:external/s1.postimg.org/Q7_122.jpg
장식면에서는 무늬가 찍힌 전돌이나 추녀 마구리 장식 등을 쓴 것은 고무적이지만, 왕궁과 사찰 건축물 복원에 쓰인 수키와, 금동 장식, 풍경 등이 삼국시대 널리 쓰인 출토유물과 맞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풍경의 경우엔 완공 이후에 따로 만들어 달아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와의 경우 회칠을 노출시키지 않고 깔끔하게 재현한 것은 좋지만[5], 조선시대의 기와 배치와 곡률을 사용해 결국 치미의 위치가 어긋나 바깥으로 튀어 나와버렸다. 부실복원인지 제대로 고증대로 복원 할시 왜색논란을 경계한 궁여지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대 건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개선되는 바 향후 개선되기를 기대하자.
[1] 2011년 인터뷰에서 (나중에라도) 꼭 이루었으면 하는 미완의 숙원사업이 뭐였는가 하는 질문에 제일 먼저 나온게 정림사지 복원사업이었던 걸 보면 정말 어지간히도 한이 되었던 모양이다. [2] 백제 당대 건축물 중 무덤을 제외하면 그나마 원형에 가깝게 남은 건 미륵사지 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 정도. [3] 즉, 백제 당대의 건물은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다. 경주 불국사도 여러번 다시 지어서, 신라시대 때와 다를 거라는 말이 많지만, 백제는 그런 거도 없다. [4] 호류지의 경우 현재의 건물은 한 번 완전히 불타버리고 나서 서기 670년 이후에 재건한 것이다. 항목 참조. [5] 김해가야테마파크같이 분홍색 벽칠에 조선식 회칠을 떡칠한 것보다 훨씬 발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