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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건이 벌어진 장소.1999년 5월 20일에 대구광역시에서 불상의 범인이 6세 아동 김태완 군의 얼굴에 황산을 부어 중상을 입히고 도주한 사건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되게 만든 사건, 어린이를 대상으로 저지른 묻지마 범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산 테러 사건이다.
'태완이 사건'라고도 불리며 태완이법 개정에 기여한 영구 미제사건이다.
2. 경과
1999년 5월 20일 오전 11시경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1동 191-11 주택가 골목길에서 학원에 가던 당시 6세(만 5세 10개월)[1]였던 김태완 군에게 갑자기 검은 비닐봉지를 든 정체불명의 남성이 나타나서 얼굴에 황산을 부은 뒤 달아났다. 태완 군은 얼굴을 비롯한 전신의 40~45%에 3도 화상을 입고 두 눈을 잃었으며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면서 경북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어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다 49일 만인 1999년 7월 8일 오전 8시 15분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태완 군은 아침에 학습지 학원에 가려고 집을 나선 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이런 변을 당했다. 범인은 황산을 멀리서 뿌린 것이 아니라 바로 뒤에서 태완 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입을 벌리게 한 뒤 얼굴에 황산을 쏟아붓는 묻지마 살인의 잔인무도한 행태를 벌였다. 황산은 태완 군의 눈과 입으로 들어가서 눈을 멀게 하고 식도와 기도를 태웠다. 태완 군이 비명을 지르자 집 밖으로 뛰쳐나온 모친은 태완 군이 반쯤 녹은 옷을 걸친 채 온 몸이 타들어가면서 필사적으로 집을 향해 기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서 곧바로 도주했고 대낮이었지만 유일한 목격자는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진술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 범인을 목격한 사람도 없어서[2] 경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태완 군이 사망하기 직전에 범인은 치킨집 아저씨라고 지목했으나 지목당한 사람은 무고라고 주장했다.[3]
3. 조사 및 언론
당시 PD수첩에서도 다뤄져 모든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샀으며 첫 방송이 나간 지 5일 만에 김태완 군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태완 군의 모친인 박정숙은 2000년 11월부터 2001년 2월 15일까지 19차례에 걸쳐 인터넷에 '49일간의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태완이가 죽던 날까지의 병상일지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는 <여성동아>에 실리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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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은 이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루었는데 방송이 나간 뒤 어떤 남자가 PD수첩을 통해 전화를 걸어 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흥분한 MBC는 경찰 관계자 및 PD수첩 스태프 전원이 출연한 특집 방송을 기획하고 오후부터 광고를 하기도 했으나 알고 보니 어이없게도 범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겠답시고 장난전화를 한 것이었고 그는 이후 경찰에 체포되었다. 결국 PD수첩 대신 특선 영화를 긴급 편성했다.
태완 군은 너무 어려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황산이 뭔지조차 몰랐고 자기가 뒤집어쓴 그 액체가 단지 '뜨거운 물' 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2013년 10월 30일 굿모닝 대한민국에서 이 사건을 다시 다뤘는데 당시 "검은 봉지로 황산을 끼얹었다"는 아이의 말을 들은 경찰이 의아해했다고 하며 이 때문에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어머니의 인터뷰가 나왔다. 즉 황산이 물병에 담겨있지 않고 검은 비닐 봉지 속에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PD수첩에서도 이 말을 듣고 직접 황산을 검은 봉지에 넣어 보니 놀랍게도 비닐이 타지 않았다. 2014년에는 추적 60분에서도 똑같은 실험을 했는데 실험자는 병과 같이 안정적으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범인은 아마 황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다만 비닐봉지에 액체를 담아 붓는 것이 워낙 쉽지 않고 비닐에 황산이 들어간다는 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상한 일이기 때문에 경찰이 의심했을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손에 안 튀기게 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길거리에서 비닐봉지에 액체를 담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혹은 비닐봉지를 아이에게 씌우고 비닐을 바로 빼서 도망갔을 수도 있다.
죄목도 상해치사죄[4]가 적용돼서 공소시효가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2013년 12월 3일 경찰은 재수사를 하면서 뒤늦게나마 상해치사 혐의가 아닌 살인 혐의를 적용해서 공소시효를 15년으로 연장했다. 이에 공소시효가 김태완 군이 숨진 날을 기준으로 해서 2014년 7월 7일까지로 연장되었다.
이 사건과의 연관성은 불분명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일어나기 2개월 전인 3월 21일에 대구에서 50대 여성이 얼굴 등에 황산 테러를 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2014년 6월 30일 MBC 리얼스토리 눈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방영했는데 공소시효가 7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들은 공소시효가 4일 남은 7월 4일 재정신청을 냈다. 이에 따라 공소시효가 3달 연장되었다.
2014년 7월 5일 KBS 추적 60분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방영하였다. 증거가 됐을 수도 있는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의 황산이 묻은 신발은 다른 증거품과 섞여 증거가 훼손되어 쓸모가 없고 태완군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남긴 약 300여 분에 가까운 증언밖에 남지 않았다.
당시 태완군이 5일 만에 정신을 차리자 경찰이 아닌 부모님이 즉시 캠코더와 녹음 장비 등을 직접 준비해서 간신히 정신이 든 태완군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 틈틈이 질문을 했으며 자신들은 그 아픈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에 죄스러워했고 '우리는 부모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태완 군의 부모가 이렇게 준비한 이유는 경찰이 "태완 군의 말이면 된다", "태완이한테 물어보라"고 했기 때문인데 정작 경찰은 그 증언을 무시했고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은 기억도 안 나고 아예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한민국의 단일 사건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진술 분석 전문가를 비롯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 12명이 달라붙어서 약 1개월간 집중 분석을 했는데 당시 경찰의 조사 결과와는 차이점이 매우 많았다. 경찰에서는 태완 군의 증언에 대해서 6세 아동이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고 부모의 유도진술에 의한 것으로 인해서 신빙성이 없다고 하였으나 전문가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상황을 정확히 증언한 것으로 판단해서 믿을 만한 증언이라고 하였다.
방송을 통해서 기존에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알려졌다.
- 사건 직전 같이 놀던 친구가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목격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황산이 담긴 검정 비닐봉투를 지목하는 등의 행동과 증언이 있었기 때문인데 추적 60분이 찍으러 간 2014년에는 이미 15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당일에 대한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찰은 태완군과 같이 놀던 그 친구가 지능이 약간 낮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고 무시했지만 그는 정확히는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이라 말을 어눌하게 했을 뿐[5] 지능은 일반인과 똑같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당시 경찰들은 말을 어눌하게 하니 멍청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그의 증언을 무시했다.
- 태완군은 골목으로 들어서 가던 중 학습지 교사가 다른 골목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테러를 당했으니 최소한 다른 누구보다 확실한 증인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피의자로 의심 받은 ○○ 아저씨와 그 ○○ 아저씨를 본 사람과의 복장에 관련된 증언에서 일치하지 않았고 태완 군의 부모는 경찰에게 증거 수집을 요청했으나 당시 경찰은 자신이 어떻게 증거를 수거하느냐며 수사를 기피했다. 4개월 뒤에야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의 가죽 신발에 황산이 묻은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오염된 옷과 함께 보관해서 쓸모가 없었다.
- ○○ 아저씨가 전봇대로 가는 방향도 증언과 일치하지 않았다. ○○ 아저씨는 가게에서 나왔다고 했으나 증인의 말로는 전봇대 맞은편에서 자신과 마주 보는 방향에서 왔다고 증언했다. ○○ 아저씨는 곧바로 전봇대로 간 것이 아니라 길을 가로질러서 약간 돌아갔기 때문에 증인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갔다고 증언했다.
- 태완군은 테러 직전과 직후 ○○ 아저씨의 목소리만을 기억하고 말하고 있었는데 이는 태완 군의 피해 사실을 최초로 인지하고 있었거나 제3의 범인이 있다면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 피의자로 의심받은 ○○ 아저씨는 테러 당시 자신의 가게에서 '태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으악'하는 비명 소리와 '사람 살려'라는 3층의 이모의 비명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더니 태완 군이 골목을 나와 전봇대 앞에 기대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으나 당시 태완 군을 발견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명소리는 없었다고 한다. 당시 태완군을 보게 된 또 다른 주민들은 비명소리가 났다면 자신의 집에 있던 사람들과 다 같이 밖에 나갔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더구나 현장 실험에서 비명소리는 들릴 수 없었고 간신히 신음소리를 내며 골목을 벗어났다.
- 피의자를 표현할 때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 아저씨가 피의자가 아니라고 입증하는 게 아니라 당시 누군지 정확하게 얼굴을 못 봤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시 태완 군은 비닐봉지는 정확히 봤지만 인물은 누군지 못 봤다고 증언했다.
전문가들이 내린 의견은
- 태완 군의 증언이 당시 상황과 상당히 일관적이고 강요가 아니라 자신이 자발적으로 발언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이의 증언은 신빙성이 상당히 높다.
- 피해 아동의 진술로는 ○○ 아저씨를 가해자로 특정하기 어렵다.
- 피해 아동이 진술에서 ○○ 아저씨를 지목하는 건 의미가 있다.
- 피해 아동과 ○○ 아저씨의 진술 간 상이한 점을 발견했다.
무려 12명의 전문가가 만든 보고서까지 들고 갔음에도 경찰 측은 무조건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만 강조하고 물증과 목격자가 없어서 사건 해결이 불가능하다면서 15년 간 반복했던 말을 또 했다. 태완 군의 부모는 경찰에게 보고서를 주고 검사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 많은 양의 보고서를 전화로 말해 줬다고 한다. 즉 검사 측에서는 전달받은 게 없다. 더군다나 경찰은 "종합보고를 통해서 달라진 게 없다"는 검사 측에게 보고서를 주려고 했는데 검사가 무시했다고 한다. 검사는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4. 경찰의 실책과 무능
위에 언급한 것처럼 경찰은 태완 군과 친구의 진술을 무시했으며 누가 황산을 구입했는지 확인조차 않은 건 물론이고 목격자에게 치킨집 사장과 다른 사람들이 찍힌 사진을 보여줬을 때 엉뚱한 사람을 지목하게 했다. 더군다나 재수사했을 때 사건 현장에 장비도 없는 채로 황산을 찾는답시고 땅을 파는 비상식적인 행동도 저질렀다.[6] 이런 행적들로 인해 해결 가능성이 있었던 사건을 사실상 방치해 미제사건을 만들고 태완 군과 유가족의 억울함을 평생 풀지 못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대한민국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허나 이러한 엄청난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찰은 유족들한테 끝내 위로금이나 사과 한 마디 없었으며 이에 대해 언급을 꺼리거나 변명하기에 바빴다. 이 사건을 다룬 방송에 나온 형사들과 범죄 전문가들도 기가 막히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정도였다.5. 영구 미제
2014년 7월 4일 대구지방검찰청에서 태완 군의 부모님이 유력 용의자를 상대로 제출한 고소장에 대해 '혐의 없음' 결정이 나왔으나 유가족이 즉각 재정신청을 내면서 공소시효가 극적으로 정지되었으며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고등법원에서는 3개월 이내로 공소제기 혹은 기각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다만 고등법원에서 기각 결정을 내릴 경우엔 사건은 영구 미제로 분류되며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해진다. #2014년 12월 10일, 대구고등법원 제3형사부는 2014년 12월 24일 오후 3시 재정신청 2차 심문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2월 3일 대구고등법원에서 재정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영구 미제사건이 되게 생겼다. 피해자 부모는 대법원에 재항고하였다. # 이 사건으로 인해 흉악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론이 대두되었다.
2015년 2월, 피해자 부모는 대법원에 재항고하였으며 재항고 제기 시부터 재항고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재정 신청 기각 결정의 집행이 정지되므로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검찰의 공소 제기에 대한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2015년 7월 10일 대법원이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영구 미제사건이 되었다.
결국 2015년 7월 24일 국회는 이 법에 대한 투표를 한 결과 단 한 개의 반대표도 나오지 않았으며 4개의 기권표만 있었을 정도로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깝게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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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신청의 경우 3개월 이내에 결정이 나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상 규정이 있지만 이는 훈시 규정으로서 몇 개월, 몇 년이고 법원에서 시간을 끈다면 국회에서 태완이법을 통과시켜서 이 사건 역시 태완이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었으나 법원에선 정확히 형소법의 규정에 맞춰 3개월 이내에 결론을 지으면서 영구 미제사건이 되었다.
한 가지 실낱 같은 희망이 있다면 범인이 해외에 도피해 있는 기간 동안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만약 진범이 해외에 도피해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진범이 처벌 회피를 목적으로 해외 도피를 했다면 아예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에 귀화하고 한국 국적을 버렸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공소시효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입국 금지 이외의 처벌 자체가 힘들 수 있다. 어쨌든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가 간섭할 수 없는 외국인이 되고 그 나라에서는 살인범이든 말든 어쨌든 그 나라 국민으로써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9] 아니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처럼 범인이 다른 범죄로 체포되어서 교도소에서 복역했거나 복역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6. 피해자
<colbgcolor=#353535><colcolor=#fff> 김태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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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전 촬영한 사진. | |
출생 | 1994년 7월 17일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 |
사망 | 1999년 7월 8일 (향년 5세) |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2가 경북대학교병원 | |
사건 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191-12 |
가족 | 아버지 김동규 (1964년생), 어머니 박정숙 (1964년생), 형 (1990년생)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종교 | 불교[10] |
사인 | 독살 |
6.1. 생애
1999년 5월 20일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서 학원에 가다가 정체불명의 성인 남성에게 황산테러를 당해서 화학화상을 입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실명되었을 뿐 아니라 전신의 약 40%에 3도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49일 만인 1999년 7월 8일[11] 사망하였다.사망 전에 병상에서 전신에 화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지구용사 선가드의 한국판 주제곡[12]을 불러 본의 아니게 해당 주제곡이 김태완의 추모곡이 되기도 했다. 또한 다 나으면 골드런 로봇을 갖고 놀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대목.
6.2. 친구 이모군의 진술
김태완 군의 청각장애가 있는 친구인 이모 군은 당시 사건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으며 김태완 군의 부모와 안면이 있던 이웃 아저씨 A씨를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경찰은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김태완 군도 친구와 똑같은 주장을 했으나 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기억이 온전치 않을 것이라는 점과 어린이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하였다.7. 매체 보도
- [스포트라이트][15-1] '태완이 엄마' 눈물의 인터뷰 - jtbc
- [시사매거진 2580] 6살 태완이를 덮친 '황산테러' - MBC
- PD수첩 : [1028 회] 공소시효,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 MBC
- 추적60분 '마지막 단서, 태완이 목소리' - KBS
- 김복준의 사건의뢰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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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4년
7월 17일생이다.
[2]
사건 발생 10여 분 전 골목길에서 30대 중반의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다는 진술이 있긴 하였으나 최초 목격자나 신고자는 모두 김태완 군이 황산을 뒤집어쓴 이후의 모습만을 보았으며 다른 수상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3]
피의자로 지목된 치킨집 아저씨가 자살했다는 낭설이 돌기도 했다.
#
[4]
죽게 할 생각 없이 상해를 입혔을 때 그 상해가 원인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5]
원래
청각장애가 있으면 들리지 않을 뿐 말하는 기능에 문제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하고 지금 자신이 어떤 발음으로 말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느낄 수 없으므로 발음이 비교적 어눌해진다. 간혹 청각장애가 있음에도 발음이 비교적 정확한 사람들은 철저히 훈련해서 교정에 교정을 거듭한 것이다.
[6]
행시 출신의 간부급 경찰이 아닌 하급 경찰들로 한정하면 옛날 경찰들은 막말로 '지능 검사만 통과하면 꽂아준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전문성과 인성이 결여된 인간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니 민간인에게 현장 검시를 맡긴 것과 비슷한 기행을 보여주기 식으로 종종 벌였다.
[7]
공소시효를 이미 폐지한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있던 사건에 대해 마구 소급 적용을 할 경우 법적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공소시효를 없앨 당시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은 소급 적용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공소시효가 형식적으로나마 도과한 후 해당 범죄를 처벌한 경우는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을 뿐이다.
[8]
법안 자체는 2012년 9월에 발의되었다.
[9]
그 나라에서 따로 처벌받거나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인도되는 경우도 있지만
후진국인 경우 그 나라에서 개별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려우며 인도 조약의 경우 체결 안 된 나라로 도피했을 것이고 한국과 상호 체결된 국가가 몇 없다. 당장
유럽만 해도 상당수의 국가가 한국으로 범죄자를 인도해 주지 않는다. 한국은 집행은 되지 않더라도 성문법상으로는
사형제가 폐지되지는 않은 상태인데 일부 서북유럽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나치 독일이
사회 경제적인 효율을 높이겠다고 노동 능력이 없는 장애인과 환자, 노년층을 처형하는가 하면
고리대금업으로 서민들을 착취한다는 이유로 유대인을 처형하고
타국 침략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나치 독일군 징집에 응하지 않거나 국외 파병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사형하는 등등 끔찍한 짓을 하도 많이 저질렀다 보니 사회 문화적으로 그 어떠한 사유로도, 설령 살인자라고 할지어도 정부 조직에서 개인의 생명을 임의로 박탈할 수 없다고 보는 관점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럽계 사형 폐지 국가들은 중범죄자에 대해서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하거나 차라리 피해자나 피해자 직계 혈족의
사적 보복을 암묵적으로 허용할지언정 사형 판결은 내리지 않는다. 해당 사건은 한국에서는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진범은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지만 유럽에서는 엄벌주의 국가라면 가석방 불허 종신형으로 사회에서 영구 격리를 당하거나 온정주의 국가라면 5~30년 정도의 유기징역형을 받는 대신 유가족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범을 붙잡아서 살인범 면상에 똑같이 황산을 들이부을 경우 그에 대한 유가족의 처벌은 집행유예나 좀 극적으로 감면 받을 경우 벌금 1~2천만원 내고 퉁칠 수도 있는 식이다. 한국은 아무리 동기에 따른 선처를 받아도, 아무리 밀접한 혈족 또는 직계 가족이라고 하여도 진범이 확정 판결을 받았어도 이런 식으로 보복할 경우 2~3년형 이상은 받을 가능성이 높고 실형은 못 피한다. 대신 진범은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다. 이외에도 국제정세 등 여러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생략한다.
[10]
부모님이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며 당시 빈소의 영정사진에 염주가 걸려있었다.
[11]
김태완의 생일 9일 전이었다.
[12]
맨 앞 "무지개 다리놓고 가고 싶어도 / 지금은 갈 수 없는 저 먼 우주는 / 아름답고 신비한 별들의 고향"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