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6-19 19:23:06

배영수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131230>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2021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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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도형 · 73 정재훈 · 78 이병국 · 80 김진수 · 81 강동우
· 85 김주찬 · 86 강석천 · 88 김태형 [[감독#s-1.1|
]] · 89 공필성
· 90 고영민 · 91 배영수 · 110 유태현 · 111 천종민 '''
70 유재신 · 74 김지훈 · 76 이정훈 · 79 정병곤 · 82 권명철
· 83 이광우 · 84 김상진 · 87 박철우 · 조광희 · 백차승
72 조경택 · 구강현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군입대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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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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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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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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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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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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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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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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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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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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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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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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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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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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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KBO 리그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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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KBO 리그 승률왕

파일:6J8dpiu.png 2004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
정회열
(1999)
배영수
(2000~2014)
클로이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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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스
(2014)
배영수
(2015~2016)
김진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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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
(2016)
배영수
(2017~2018)
윤승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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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
(2010~2018)
배영수
(2019)
이동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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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현
(2018~2019)
배영수
(2020~)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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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베어스배영수코치.jpg
<colbgcolor=#131230> 두산 베어스 No.91
<colcolor=#ffffff> 배영수
裵英洙 / Bae Young-Soo
생년월일 1981년 5월 4일 ([age(1981-05-04)]세)
출신지 파일:대구광역시 휘장.svg 대구광역시 북구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학력 대구칠성초 - 경복중 - 파일:경북고등학교 로고.jpg 경북고
신체 185.7cm, 102kg[1]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1차 지명 ( 삼성)
소속팀 파일:samsung_lions_logo_1995.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2000~2014)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한화 이글스 (2015~2018)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2019)
지도자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2군 투수보조코치 (2020)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20~)
등장곡 Queen - 'We Will Rock You'[2]
가족 아내 규휘[3](1979년생)(2010년 결혼 ~ 현재)
(2011년생), 딸(2013년생), 아들(2017년생)
에이전시 파일:팀퓨쳐스.png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8회 (2002, 2005, 2006, 2011~2014, 2019)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4)
MVP (2004)
다승 1위 2회 (2004, 2013)
탈삼진 1위 (2005)
승률 1위 (2004)

1. 소개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연도별 성적6. 부정투구7. 이야깃거리
7.1. 펠릭스 호세와의 악연7.2. 야구 내7.3. 이야깃거리

[clearfix]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 소속이었던 투수이자 KBO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 공동 1위 (8회)[4], KBO 한국시리즈 최다 경기 등판 1위(25경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KBO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이자 우완 트로 이카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쳤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칠성초, 경복중을 거쳐 대구의 야구명문 경북고를 졸업했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푸른 피의 에이스가 있다. 토미 라소다 감독의 그 유명한 말을 인용한 별명이다. 본인도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한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5] 또 한 때는 "절정소년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 포크[6]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7]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8]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9] 지속적으로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영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하게 된다. 2018 시즌이 종료된 후에는 구단에서 은퇴를 제안했으나 현역 연장 의지를 밝히면서 한화를 떠나고 2019년부터 두산에서 활동하였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마무리 투수로 우승을 결정짓는 세이브를 기록 후 선수생활을 좋게 끝마쳤다.

2. 선수 경력

파일:25배영수.jpg
배영수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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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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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파일:f782dfc87d531025ea39ab4472f678db.gif 파일:1539325574100.gif 파일:ㄷㄴㅈㄱㅅㄱㅅㄱㄴㅂㅈㅇㄱ닋ㄱㅇ.gif
전성기 평균 145~8km/h, 최고 155km/h에 테일링까지 걸리던 패스트볼 평속 130km/h 중, 후반의 슬라이더 130km/h 후반에서 140km/h 정도의 평속이 나오는 스플리터[10]

KBO 리그 역사상 가장 빠르고 강력한 공을 던진 선발투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11]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스타일로 존 스몰츠 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평가되었다. 이닝 소화 면에서도 2004년 한국시리즈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비롯해 2005년도 최다이닝 4위, 2006년 팔꿈치 부상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의 연투능력이 있는 투수로서 강점을 보였다. 투구폼도 구속을 짜내기 위한 힘을 모으는 과정이 보이는[12] 스터프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투수로 KBO 리그 최고의 강속구 선발 투수였다.

파일:17영수.gif
2017년 한화시절 투구. 154~5km/h를 넘나들던 직구가 139km/h를 겨우 찍는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13]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14][15]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16]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17]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18]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의 스터프 자체가 줄어들었기에, 경기당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 능수능란한 컨트롤로 볼넷도 적게 내주고 타자를 요리하는데, 과거에는 실투가 나와도 강력한 구위로 범타에 그칠 수 있었지만 이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제구가 흔들리면 이를 커버해줄 스터프의 부재로 인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쉬워진 것.

화려한 전성기와 부진했던 황혼기를 모두 겪고 엄청난 갯수의 우승 반지를 가진 선수로 기억남는 대투수이긴 하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부정투구 이력이 다소 많은 점은 꾸준히 비판받는다.

4. 지도자 경력

2020 시즌부터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보직은 2군 투수보조코치.

두산의 투수진에 이용찬, 플렉센, 함덕주 등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김민규, 채지선, 이승진, 권휘 등 여러 유망주들이 빈자리를 채워주면서 중위권 싸움이 계속되자 2군 코치인 배영수를 좋게 평가하는 팬들이 많아졌다.

플레이오프 시작 전에 김원형 투수코치가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내정되는 바람에 불펜코치였던 정재훈이 투수코치가 되어 1군 불펜코치로 보직을 이동했다.

5. 연도별 성적

  • 붉은 표시는 리그 시즌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시즌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삼성 25 45⅓ 0 2 0 0 0.000 6.75 59 9 25 32 36 34 1.77
2001 35 169⅔ 13 8 0 0 0.619 3.77 169 11 99 96 82 71 1.52
2002 22 81⅓ 6 7 0 0 0.462 5.53 94 13 49 63 55 50 1.68
2003 30 163⅔ 13
(3위)
5 0 0 0.722
(5위)
4.51 174
(5위)
11 84 99 85 82 1.53
2004 35 189⅔
(3위)
17
(1위)
2 0 0 0.895
(1위)
2.61
(3위)
163 6 86 144
(4위)
65 55 1.25
(5위)
2005 31 173
(4위)
11 11 2 1 0.500 2.86
(2위)
148 10 61 147
(1위)
61 55 1.13
(2위)
2006 32 157⅓ 8 9 0 4 0.471 2.92 142 13 49 133 56 51 1.14
2008 27 114⅔ 9 8 0 0 0.529 4.55 127 15 41 71 59 58 1.44
2009 23 75⅔ 1 12 0 0 0.077 7.26 106 18 30 40 73 61 1.69
2010 31 119⅔ 6 8 1 0 0.429 4.74 136 11 46 64 69 63 1.45
2011 25 103 6 8 0 1 0.429 5.42 127 5 34 47 67 62 1.50
2012 26 160 12
(5위)
8 0 0 0.600 3.21 159 7 43 89 64 57 1.24
2013 27 151 14
(1위)
4 0 0 0.778
(2위)
4.71 193
(2위)
9 52 101 83 79 1.53
2014 25 133⅔ 8 6 0 0 0.571 5.45 171 14 45 111 87 81 1.57
연도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한화 32 101 4 11 0 1 0.267 7.04 124 21 53 56 93 79 1.61
2017 25 128 7 8 0 0 0.467 5.06 155 17 42 86 82 72 1.44
2018 11 55⅔ 2 3 0 0 0.400 6.63 69 6 22 47 42 41 1.51
연도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9 두산 37 45⅓ 1 2 0 0 0.333 4.57 50 4 16 10 25 23 1.35
KBO 통산
(18시즌)
499 2167⅔
(5위)
138
(6위)
122
(5위)
3 7 0.531 4.46 2366
(2위)
200 877
(5위)
1436 1184
(2위)
1074
(2위)
1.43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3년 1완투 0완봉
2004년 4완투
(1위)
2완봉
(1위)
2005년 2완투
(3위)
1완봉
(2위)
2012년 2완투
(5위)
0완봉
2014년 1완투 0완봉
2017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11완투 3완봉

6. 부정투구

2017년 4월 27일 롯데전 일정하지 않은 키킹 동작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잠시 멈췄다가 던지는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던진다. 명백히 다른 시간차로 던지는 동작은 부정투구이며 부정 투구를 떠나 타자를 농락하는 것에다 명백한 룰 위반이다. SBS 주간야구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다. 배영수 잘못도 크지만 심판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선 2사 주자 없음 상태에서 변칙 투구폼으로 던지는 것은 보크가 아니고 부정투구에만 해당되며 이같은 경우, 그 투구는 볼로 선언된다. 또한 해설의 문제도 있었는데 보크를 선언하라는 항의 하는 듯한 해설에 사람들 역시 보크로 기억하기 때문. 물론 타자를 기만하는 행위 자체가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지만 위의 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2017년 7월 12일 롯데전에서 로진백을 이용한 부정투구를 여러 번 한 것이 포착되었다. 그러고는 한 달 뒤인 8월 20일 롯데전에서 또 부정투구를 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파일:부정투구2.gif
파일:부정투구1.gif

이는 샤인볼(공의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어 던지는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규정에 의하면 로진백을 터는 행위는 스피드업 관련 규정에 따라 1회 경고, 2회부터 볼 판정을 받을 수 있으며, 현장 조사결과 허벅지에 왁스 바셀린 등이 묻어있어 부정투구임이 확인된다면 퇴장될 수 있다.

파일:영수긁적.gif

이후 MLB파크등 각종 야구커뮤니티에서는 배영수가 이전에도 이러한 행위를 했는지 찾았으며 그 결과, 2번의 롯데전 부정투구 외에도 kt, 넥센전에서도 똑같은 방식의 부정투구 의혹이 있는 행위를 한것으로 재조명되었다. 이전 부정투구 의혹 영상들



2014년 삼성에 있을 때도 똑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19]

배영수 본인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며 부정투구를 하지 않았고, 허벅지 유니폼에 문지른 기억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널들 모두 영상이 증거로 남아있고, 고의성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를 두는 행동을 한 배영수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며 규정상 명백한 부정투구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작 유니폼에 공을 문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부정투구에 관한 룰이 생긴 이상 행위의 의도나 경중을 떠나서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이야기.

이후 KBO측에서 부정투구가 맞으며 차후 적발시 엄중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배영수는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7월 12일 경기에서 로진백으로 2루심에게 지적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비슷한 사례를 2014년 8월 28일 오주원(당시 이름 오재영)선수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오주원 선수가 허벅지에 공을 문지르는 것을 김응용 감독이 보고 항의를 하여 구두경고를 받은 바 있다.

공 하나도 아껴써야 하는 한국 야구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생긴일이라는 반론도 있으나 가끔 한두번도 아니고 이렇게 커리어 내도록 지속적으로 공을 문지르거나 로진백을 바르는 행위를 해왔다. 사정이 어찌됐든 여러번 주의를 받아온만큼 배영수 본인이 자제를 했어야 했다.

자기입으로 자백한 송진우를 제외[20]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한두번 걸린 정도다. 환경 문제라면 같은 환경에 처한 다른 선수들이 다 그렇게 해야 하지만 부정투구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이런 행위를 반복하는 선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배영수 시대보다 더 열악했을 선배 선수들은 오히려 이런 문제 행위로 논란이 된 경우가 없었다.

단순히 공을 아껴 쓰기 위해서 털어내는 행위라고 보기 어려운 것은 먼지를 털어내는 행위라면 로진백을 바른 손으로 공을 문지르는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영수 부정투구 논란의 핵심은 공을 그냥 문지르는게 아니라 로진을 공에 바르는 행위이다. 이러면 공에 이물질이 늘어나기 때문에[21] 공의 수명은 더 줄어든다. 또한 유니폼에 문지르면 공에 미세한 흠집이 생기기 때문에[22] 당연히 공의 수명은 더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공을 아껴 쓰기 위해서 공을 닦는 행위라는 말은 궤변에 불과하다. 심지어 배영수 본인도 이런 주장은 하지 않는다.

7. 이야깃거리

7.1. 펠릭스 호세와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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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영쑤! 돈 두댓![23]

2001년 9월 18일 마산 롯데전에서 호세에게 빈볼성 투구로 볼넷을 준 뒤 후속타자인 얀에게 또 다시 빈볼성 투구를 계속 던져 허리를 맞추자 얀이 분노, 심판이 말리고 있는 사이 1루에서 분노한 호세가 달려와 주먹으로 배영수를 강타했다. 마운드에서 날아갈 정도로 강하게 맞았다. 맞은 이후 공을 집어던지려다 참았다고 말했으며, 중재하던 이민호 심판도 하도 족발과 맥주병을 맞아서 심판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 훗날 배영수가 말하길, 호세는 벤치에서 사인도 있고 해서 계속 몸쪽으로 던진 거지만 얀에게는 슬라이더가 손에서 빠졌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출장 정지를 먹자,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은 다음 날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어느 신인 선수를 콜업하는데, 그 선수가 바로 이대호. 그리고 호세는 그해 KBO 역사에 남을 성적을 올리고도 폭행사건으로 깎인 이미지와 투표단의 용병 차별로 여러모로 본인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타자들에게 밀려서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후 배영수가 성적이 좋아지자 호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참교육자라는 말과 함께 그의 죽빵을 강타한 펀치는 참교육으로 불렸다. 타팀 팬들이 자기 팀의 못하는 선수를 보고 죽빵을 때려달라면서 "참교육 한 번만 시켜주세요."라고 말한다[24]. 장난인 줄 알았지만 방망이까지 들고 나와서 온몸으로 거부했던 신승현이 그렇게 됨으로써 완벽한 참교육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작 이 폭행 사건 당시 배영수의 성적이 엉망이었냐면 그건 또 아닌게, 2001년 당시 배영수는 13승을 거두며 이미 실력이 물이 오른 상태였다. 호세 또한 배영수의 실력을 알고 있어서 저런 선수가 몸에 맞는 공을 저런 식으로 던질 리가 없다는 생각을 가져서 화를 낸 것. 본인도 나중에 참교육 사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사건 이후 제가 야구를 잘 하게 되었습니다. 예, 참교육 맞습니다 ㅋㅋ"라는 말을 했다.

2018년 11월 2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이승엽 유소년 야구캠프 with 대구광역시'에서 배영수 앞에 모인 초등학생들이 배영수 면전에 대고 호세 주먹 아팠냐?며 곤욕스러운 질문을 날리기도 했다. "호세 주먹 아팠나요?" 배영수 향한 초등학생 '돌직구' 은퇴 후 인터뷰에서는 하도 많이 들은데다 팬들도 즐기는 거 같으니 그러려니 한다고 밝혔다.

2019년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며 다른 호세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 호세가 골든글러브를 받자 대리 수상하였다(...). 라면을 많이 사주겠다고 한 건 덤. #

7.2. 야구 내

  • 2013년 8월 8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추가하였는데, 이로써 배영수는 통산 112승째를 따내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에서 현역 시절 기록했던 111승을 뛰어넘어 삼성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 2006년 WBC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던진 공은 아예 해설이 일부러 맞춘 것 같다고 대놓고 말했지만, 그때 한창 30년 발언 덕에 이치로에 대한 반발심이 들끓을 때라 '열사' 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환영받았다. 그리고 당시 구대성과 짜고서 일부러 맞춘 거라고 후에 밝혔다. #[25]
  • 이러니저러니 해도, 21세기에 들어선 후 삼성은 2014년초를 기준으로 7회 우승 중 6회가 배영수가 데뷔한 후 달성한 것이고, 이승엽이 떠난 2000년대 중반의 삼성의 최대 흥행카드이기도 했다.
  • KBO 통산 최다 보크 기록을 가지고 있다. 12개. 폭투도 통산 3위에 랭크되어있다. 이 중에는 2019년 9월 14일 전설의 끝내기 보크도 있다.심지어 이보크는 무투구 보크이다. 그래서 배0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보크가 아니라는 사람도 일부 보이지만 투수판을 밟고, 1루수가 루에서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1루 견제 시도를 한 거 자체가 보크다. 안 던졌으니 1루 위투에 걸리고, 설령 던졌어도 시간 지연 취급되어 보크다.
  • 슬라이더를 박명환에게 배웠다고 한다. 올스타전에서 만났을 때 슬라이더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2004년에 MVP타는걸 보면서 박명환은 괜히 가르쳐줬다고 생각했다고(...).

7.3.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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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호처럼 어린 시절이 상당히 불우했던 선수 중 하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 후 모두 도망치고 할머니와 누나가 함께 돌봐줬다고 한다. 그러나 2005년 4월 2일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 때 완봉승을 챙기는 날 임종하셨다고 한다. 이 날 경기할 때 모자 챙 안쪽에다 '할머니 생각'이라고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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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에 기술된 부상과 재활 과정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걸었던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이경필이 배영수에 대해 염려하기도 했다.
  •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한 인터뷰에서 그가 있었던 팀에서 생각나는 선수 3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배영수를 꼽았다.
  • 삼성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까방권을 부여해 주었으며, 이 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으로 빠졌을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절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으며 갈수록 배영수를 금지어 취급 하는 경우가 많은 편. 커뮤니티별로 살펴보면 삼갤에서는 그 존재 자체로 금지어 혹은 조롱거리 취급을 당하며 사자후는 04년 한국시리즈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배영수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경북고 진골이 삼성을 배신하고 갔다는 점 때문에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호적인 곳은 사사방 엠팍. 사사방은 기본적으로 선수보다는 구단 프론트(+ 류중일)와 김성근을 더 싫어 하기 때문에 배영수보다는 삼성 프론트(+류중일)이나 김성근을 조롱하는 용도로 배영수를 언급하면 몰라도 배영수 자체를 욕하는 경우는 그 휴지통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편. 엠팍은 쓸데없는 키배거리를 만들기 싫어서인지 일부 삼성팬이나 한화팬이 삼성시절 배영수를 언급하거나 혹은 삼성팬이 한화로 간 이 후의 배영수를 조롱하는 글을 남겨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다.
  • 2010년 12월 19일에 2살 연상인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인 규휘(본명 박성희)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딸 2명을 낳았다. 딸바보 등극.
  • 2017년 5월 10일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다고 한다. #
  • 2019년 5월 5일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득남한 것으로 보인다. #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우선 그가 투혼을 발휘했던 걸로 잘 알려진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당시 고졸 신인으로써 돌풍을 일으키며 그해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를 모두 차지한 한화 류현진과 맞대결을 펼치게 되자 노장과 신예의 대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2006년 당시 배영수는 만 25세에 불과했다. 배영수의 노장 이미지는 2009년에 나온 게임빌 프로야구 시리즈 중 하나인 2010 프로야구에서도 드러나는데, 투수 스킬 중 11년차 이상 투수에게 주어지는 '노련함' 이라는 스킬이 등장하는데, 배영수의 경우 2009년 기준 만 28세였는데도 '노련함' 스킬이 붙어 있었을 정도였다. 또한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넥센 김성태와 선발 맞대결을 펼친 경기에서는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이젠 데뷔 18년차, 나이도 36세라 노장 맞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개인통산 100승 달성 후 인터뷰에서 고마운 사람으로 가족 다음으로 배우 박재정을 언급했다. 경북고 동문으로 박재정이 1년 선배인데, 박재정이 배영수 결혼식 사회를 봐줬을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 2013년 3월 30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 김현수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개만두를 시전하였는데 그 다음 등판인 4월 7일 NC전에서 "개만두 아십니까. 저, 개만두 됐습니다. 개만두!"라고 기자들한테 말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영수의 멘탈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 그리고 깨알같은 선배 박찬호의 디스까지 #
  • 배영수 아줌마[28], 배영수 이모, 꽹가리 이모 등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유명한 팬이 있다.[29] 직관팬들은 시끄럽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항상 배영수 유니폼을 입고 와서 꽹가리를 두들기며 응원하는 중년 여성으로 예전에는 김실을 응원하셨으며, 이 후에는 아들이 배영수와 동갑이라서 배영수를 응원했다고 한다. 삼성팬들에게 워낙 유명인사였던 지라 2014년 7월 29일 경기에서는 삼성 구단에서 이 배영수 이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 하지만 이 날 경기는 차우찬 핵폭발 하면서 패배... 이 분은 배영수 이적 후 김상수로 갈아타셨다고 한다. 이젠 상수아지매
  • 통산 승리 5위이다.
  • 두 번이나 팀을 옮겼는데도 권혁과 계속 같은 팀의 선수로 활약했다.[30]
  • 팔꿈치 부상 부위가 악화되어 6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
  • 현역시절을 종합하면 선발투수로 이룰수 있는 모든것을 참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낸 케이스이다. 데뷔 이후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승왕부터 탈삼진왕, 승률왕을 만들어내고, 한국시리즈의 기적같은 삼성의 2002년 우승과 노히트 노런을 만들어내고, MVP등극한 다음 팔꿈치 수술로 인해 몰락했을때 한화로 가서 재기선수상을 타냈으며, 그 이후 두산으로 이적해 한국시리즈에서 돌고돌아 두산 베어스에서 마지막 행가래 투수까지 커리어에서 투수의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전부 경험하게 되었다.


[1] 자신의 인스타그램 건강검진 결과다. [2]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손승락 응원가의 원곡과 같다. [3] 본명 박성희 [4] 또 다른 한명은 해태에서 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최다 경기 등판 2위(23경기)를 기록했던 가을 까치 김정수. [5] 모바일 게임인 2011 프로야구(게임)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6]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지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 [7]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그리고 2019년 9월 14일 공을 하나도 못 던지고 끝내기 보크를 저지르는 바람에 배0구가 되었다. [8] 말 그대로 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9] 배영수의 성적 자체가 선발 확정시켜 줄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장원삼과 윤성환 둘 다 나이 30을 훌쩍 넘겨 언제 노쇠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5선발 육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선발을 육성하지 못한 것의 부작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주전 투수들이 이탈하자 바로 나타났다. [10] 잡는걸 보면 스플리터가 맞다. 배영수 본인도 스플리터를 던진다고 한다. [11] 알다시피 전체 투수 중에서는 배영수보다 빠른 공을 던진 투수들이 많으나 그런 투수들은 죄다 불펜투수로 선발투수가 155km를 찍는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야구에서도 보기 힘들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저정도면 평균 이상이다. 당장 메이저리그 대표 파이어볼러가 아롤디스 채프먼 노아 신더가드로 평가받는데, 노아 신더가드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파이어볼러하면 아롤디스 채프먼과 더불어 노아 신더가드가 왜 나오는지 생각해보자. 신더가드는 불펜이 아니라 선발이다. [12] 던지기 전에 힘을 모으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투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3]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14] 이는 플레이 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 [15]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인데,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 [16]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와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 #,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 #,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 # [17]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 [18]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 [19] 본영상 35초부터 [20] 이쪽도 커리어 내도록 해왔던 루틴이라 자백했다. [21] 로진 자체가 이물질이고 로진을 바르면 다른 흙먼지도 더 달라 붙게 된다. [22] 그렇기 때문에 부정투구가 된다 [23] 실제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24] 그런데 호세의 도핑 경력으로 인해 타 팀 팬들은 드립이더라도 싫어하는 모습이다. [25] 봉중근이 훗날 밝히길 제일 먼저 자기가 맞추겠다고 손들었으나 구대성이 125km/h 로는 아프지도 않다고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26] 아이러니하게도 조인성과 배영수는 훗날 한 팀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27] 그리고 14년 후 그는 정수근의 친정팀인 두산으로 오게 된다. [28] 현지 대구쪽의 삼성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영수아지매. [29] 원래는 김실의 팬이어서 실이아줌마라고도 불렸었다. [30] 삼성 ~2014, 한화 2015~2018, 두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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