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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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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오프는 1985년에 시작했지만, MVP는 1995년부터 수상하기 시작했다. 1999년과 2020년은 양대리그제로 플레이오프가 2경기 개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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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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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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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
金江珉 | Kim Kangmin
출생 1982년 9월 13일 ([age(1982-09-13)]세)
대구직할시 서구
(現 대구광역시 달서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본리초 - 대구중 - 경북고
신체 182cm, 85kg, O형[2]
포지션 중견수[3]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1년 2차 2라운드 (전체 18번, SK)
소속팀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 (2001~2023)
한화 이글스 (2024)[4]
병역 예술체육요원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등장곡 러브홀릭스 - 《 Butterfly》 (200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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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가 이탈리아 나폴리 가곡 《 'O Sole Mio》 (2017~2024)[5][6][SK-SSGver.][한화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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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내 박정선, 슬하 3녀
소속사 브리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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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영구 결번 가능성
4.1. 긍정론4.2. 부정론4.3. 한화 이적4.4. 은퇴 이후
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로 주 포지션은 중견수였다.

2001년에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왕조 시절부터 2023년까지[9] 팀의 외야를 책임졌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며 KBO 리그 역사상 세 번째로 20대, 30대, 40대의 나이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선수다.[10] 2024 KBO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로부터 4라운드 지명을 받아 프로 데뷔 23년 만에 팀을 이적하여 한 시즌을 보낸 뒤 2024년에 은퇴하였다.

2. 선수 경력

김강민의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김강민/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3. 플레이 스타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강민/플레이 스타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영구 결번 가능성

2023년 기준으로 KBO에서 은퇴 시기가 가시권에 들어온 선수 중 영구 결번에 관한 논쟁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선수 중 한 명이다. '영구 결번 여부에 논쟁이 있다면 그 자체로 영구 결번 자격이 없는 것이다[11]'라는 기존의 보편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강민의 영구 결번 가능성에 대한 논쟁은 김강민 한 명 뿐 아니라 영구 결번이라는 개념 자체를 둘러싼 여러 부수적인 논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꽤나 뜨거운 화두다. 이는 김강민이라는 선수와 그 소속 구단이었던 SSG의 특징에도 기인한다.

냉정하게 김강민은 타자로서 리그에서 지배적인 선수였던 적은 없지만 최정상급의 수비 능력을 포함한 야수로서의 위상은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선수다. 게다가 2020년대에 들어서는 뛰어난 자기 관리로 롱런하는 리그를 대표하는 베테랑이자 최장 기간 원클럽맨으로서의 위상까지 추가로 얻게 되었으며 2018년과 2022년 팀의 우승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가을 야구에서도 임팩트를 남겼다. 또 그 소속팀인 SSG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구단이기에 타 구단에 비해 기존 영구 결번의 소위 커트라인이 높지 않은 편이다.[12]

때문에 다른 팀이었다면 영구 결번이 논의되기 힘든 선수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이런 선수와 소속 구단의 특수한 상황이 맞물리며 SSG 랜더스의 원 클럽맨으로서 은퇴가 확실시 되는 김강민의 영구 결번 가능성은 '영구 결번은 리그 차원의 문제인가, 팀의 내부적인 의사 결정일 뿐인가?', '영구 결번에 있어 성적은 어느 정도로 고려되어야 하는가?' 등의 논쟁을 낳으며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2024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로 이적하게 되며 원만하게 영구 결번을 받기 위해서는 2024 시즌 전 은퇴를 선언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13]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강민의 이적이 인천 팬들의 영구결번 담론에 불을 붙였고, 오히려 한화 이적 후 팬들의 강력한 지지라는 대의명분이 생겨났다. 당장 3월 26일 한화의 인천 원정 경기에서 극적으로 9회 2사 후 타석에 들어선 김강민에게 SSG 팬들이 보여준 함성소리는 야구 팬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도 했을 정도.

4.1. 긍정론

김강민은 2022 시즌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KS MVP까지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SSG 랜더스의 팬들을 중심으로 영구 결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실 KBO의 팀들은 영구 결번에 있어 굉장히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관념을 고수하고 있지만, MLB의 경우를 보면 팀에 오랜 기간 헌신한 선수 +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라면 성적에서 약간 아쉽더라도 충분히 예우해주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강민의 경우도 누적으로나 비율 스탯으로나 리그 전체를 아우르는 최고의 선수라는 것에는 이견이 많겠으나 영구 결번은 리그보다는 팀의 결정에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다. 특히 박용택의 은퇴 투어 논란과 달리 영구 결번은 오로지 구단 내부적으로만 기획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 23년간(총 22시즌) 한 구단에서 뛰며 KBO 리그 사상 최장 기간 특정 팀 소속 선수로 활약[14][15]
  • 역대 세 번째로 20, 30, 40대의 나이에 모두 우승하고 PO, KS MVP 수상 이력
  • 베테랑으로서 다른 선수에게 모범이 되는 성실함과 훌륭한 프로 의식
  • 불혹의 나이에도 젊은 선수에게 뒤지지 않는 리그 상위급 수비력

위와 같은 이유로 김강민은 이미 인천 야구의 전설로 불리는 김광현, 최정에 못지 않게 상징적인 인물임은 확실하다. 팀의 모든 우승에 함께했다는 점 또한 구단의 역사에 기록될 상징성으로 부족하지 않다. 경기 외적으로는 0번이 딱히 선수들에게 선호받는 번호가 아니라 영구결번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만약 외야수 김강민이 영구 결번을 받는다면 SSG는 포수 박경완에 이어 사실상 영결이 확정적이라고 평가받는 투수 김광현, 내야수 최정까지 다채로운 영결 라인업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네 명이 곧 SK 왕조 시절의 주축 멤버였으므로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추억할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또한 SSG는 프랜차이즈 선수에게 대우를 잘해 주는 것으로 유명했으며[16] 이를 고려했을 때 영구 결번을 지정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신 SK의 기조가 그러했다는 것이며, SSG가 인천야구의 산증인[17]과도 같은 김강민조차 보호명단에 넣지 않고[18] 은퇴 예정(고려)[19]라는 메모하나 남기지 않아 타구단으로 지명되는 사태를 만들었으며, 선수에게 원클럽맨으로 끝낼거면 은퇴하라고 사실상 등떠미는(은퇴식 치러 줄 수 있다고 했다...) 막장 행보를 보였으니 지금도 베테랑들에게 대우를 잘해 준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4.2. 부정론

  • 구단의 기존 영구 결번 선수 및 유력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누적 성적
  • 프로 경력 23년 중에 시즌 전 경기 출장 시즌이 단 한 번도 없고 규정 타석을 채운 시즌이 5번
  • 선수 본인이 영구 결번에 대해 부담을 느끼며 회의적 #[20]
  • 선수 생활 마무리를 타 팀에서 지었음.

물론 반대하는 층도 상당수이며 영구 결번에 반대하는 팬은 주로 위와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김강민 본인 또한 조금의 논란이라도 생기면 안 하는 게 맞다고 밝힌 바 있고 괜히 어정쩡하게 영구 결번 지정했다가 차후에 야구 팬덤이나 커뮤니티 등에서 "김강민이 영구 결번급이 맞긴하냐?"라는 식의 부정적인 의견이 올라오게 되면 LG 트윈스 박용택 은퇴 투어 논란 때처럼 팬과 선수 모두가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적 성적도 아쉬움을 남기는데 김강민은 SSG에서 23시즌 통산 WAR 29.35[21]라는 영구 결번 후보라고 하기에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데뷔는 2001년에 했으나 제대로 된 주전 멤버로 뛰기 시작한 것은 김성근 감독 부임 후인 2007년부터였고 주전으로 도약한 후에도 부진한 시즌이 꽤나 있었기에 통산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기존의 영구 결번인 박경완과 비교를 해봐도 박경완은 10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뛰었지만 훌륭한 수비는 물론이고 타격에서도 홈런왕을 비롯 구단 역대 타자 단일 최다 WAR, SK 소속 통산 WAR 30.16(통산 WAR 67.63) 등 뛰어난 임팩트를 보여줬다. 박경완은 2011년부터는 노쇠화와 부상 여파로 제대로 뛰지도 못했고 오히려 누적 성적을 깎아 먹었는데 짧게 요약하자면 김강민이 23년간 SSG에서 쌓아올린 성적보다 박경완이 SK 소속으로 8년간 기록한 타격 성적이 더 좋았다.[22] 현역 선수 중 영구 결번 유력 후보인 최정 역시 수비도 수준급이며 타격은 구단의 타자 부문에서 대다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KBO 리그 전체로 봐도 역대 타자 WAR 1위를 차지할 만큼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김광현은 구단의 투수 부문에서 대다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누적 성적과 스타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위 세 선수는 팬덤으로부터 영구 결번 반대 의견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관하다.

만일 김강민이 주전으로 활약한 시즌이 많았다면 반대 의견은 훨씬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클럽맨 상징성이라고는 하지만 김강민이 종전 기록인 송진우, 권오준처럼 대부분의 커리어를 주전으로 뛴 것도 아니며, 최장기 원클럽맨이라는 타이틀은 김강민이 깼던 것처럼 언제든지 깨질 가능성이 있다. 당장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데뷔했던 팀 동료 최정이 더 오래 뛰어서 갈아치울 수도 있다.[23]

4.3. 한화 이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SG 랜더스/사건사고 문서
번 문단을
김강민 2차 드래프트 35인 보호명단 제외 및 은퇴예정선수 미표시 논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그러나 김강민이 2024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4라운드 지명을 받으면서 이러한 논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차 드래프트 이전 SSG 구단과 김강민 사이에서 이미 지도자 연수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 바 있다고 한다.[24] 한화의 지명을 받게 된 이상 원클럽맨으로 남기 위해 현역 은퇴를 선언할 가능성도 있고 즉시 전력감으로 보고 지명한 한화에서 뛰는 걸 선택할 경우 SSG 외 다른 구단에서 은퇴할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영구 결번을 못 받을 확률이 생겼다.[25]

물론 영구 결번이 꼭 원클럽맨으로만 뛰다가 은퇴해야 받는 건 아니고[26] 김강민은 타의로 이적당한 점, 이적했다 해도 23년간의 최장기 특정 팀 소속 선수란 역사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번 2차 드래프트로 인한 이적이 영구 결번 가능성에 영향을 끼칠 일은 사실상 없는 게 사실이다.[27] 당장 은퇴한다면 소속 구단이 없어져[28] 은퇴 경기만 못 치를 뿐 차기 시즌 홈경기 하나 골라서 시구 및 은퇴식 정도는 자연인 신분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고[29][30] 현역 연장을 선택해도 한화에서 시즌을 보낸 뒤 은퇴식을 치르는 목적으로 하루만 계약해서 은퇴식 및 은퇴 경기 치를 수도 있는 등 의외로 방법은 많다.

11월 24일, 김강민이 한화 이글스와 합의를 통해 선수생활을 지속하기로 결정하며 23년 원클럽맨 기록을 마감했다. SSG 구단 관계자 측은 통산 기록만 놓고 보면 영구결번 기준에 부합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팀의 상징적인 선수이기 때문에 그만한 대우를 해주려고 고민하는 중이었으나, 김강민이 한화 유니폼을 입고 뛰다가 은퇴할 경우 이런 고민들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 선수도 굳이 영구결번에 집착하지 않고 구단에서도 딱히 상징성을 부여하기 어럽기에 김강민의 영구결번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31] 대신 장기적으로 비공식 임시 결번 정도로나마 남길 여지는 있다.[32]

다만, 오히려 김강민의 이적 이후 SSG의 팬들 사이에서 영구결번 담론이 활활 타오르게 되었고 많은 팬들이 그를 사실상의 영구결번 선수로 취급하는 등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구단이 입장을 바꿔 영구결번을 선택할지에 대한 논의는 은퇴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4.4. 은퇴 이후

한화 이글스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은퇴 이후 얼마 안 있어 SSG측에서 은퇴식 진행에 대한 안내를 올렸고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에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팬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김강민이 보여준 팀에 대한 충성심과 랜더스 팬들의 김강민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공고하므로 여전히 팬덤 내에서는 영구결번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다만, 상술했듯 타팀 팬덤에서는 다소 이견이 발생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2002년 신생팀 애리조나로 이적해 커트 실링, 김병현과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되는 랜디 존슨의 사례를 살펴보면 존슨은 시애틀에서 가장 오래 뛰었던 선수이나 당시 역사가 길지 않던 애리조나를 우승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은퇴 이후 애리조나의 영구결번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본인 또한 명예의 전당 입성 모자로 애리조나를 선택하기도 했다. 물론 존슨의 경우 입지전적의 커리어를 쌓은 대투수고, 김강민의 사례가 적확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여러 팀에 소속되고도 영결을 받은 선수는 MLB에서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애리조나는 랜디 존슨과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단숨에 팀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고 팬들 또한 영구결번을 통해 팀의 빛나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마이클 영은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면서도, 크랙 시즌이라 할만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고 통산 성적도 평범한 편이어서 명예의 전당 근처에도 못갔지만 텍사스의 프랜차이즈로 트레이드 전까지 13년을 함께한 공적을 인정받아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은퇴한 팀 웨이크필드의 사례 또한 참고할 만 한데, 영결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그가 오랜 시간 뛰었던 보스턴은 웨이크필드의 은퇴 이후 그의 번호를 누구에게도 배정하지 않고 있다. 성적으로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평범한 투수였지만 사실상 팀에 대한 충성심과 훌륭한 인품으로 선수단에 귀감이 된 점을 구단에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후 웨이크필드가 뇌종양으로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보스턴 팬들과 구단 또한 깊은 애도를 표했고, 보스턴은 MLB 구단 중에서도 유독 영결에 박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팬들의 높은 지지도를 갖고 있는 웨이크필드의 번호는 구단의 스탠스에 따라 향후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결국 영구결번이 가지는 의미가 단순히 성적이 좋아서, 입지전적의 기록을 쌓아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팀과 팬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강민의 영구결번은 결국 팀의 역사와 결부되어있고 이러한 서사가 프로야구의 상업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명예의 전당과 달리 영구결번은 시행 구단 단 하나만 적용되는 것이므로 타팀의 구성원과 무관하므로 타 팀 팬덤 또한 감놔라 배놔라 할 이유가 애초에 없다.

그럼에도 SSG팬덤을 제외하면 김강민 영결에 대한 부정적 담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에 키를 쥐고 있는 구단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만약 박한이가 명예롭게 은퇴하여 영구결번을 받았다면[33] 김강민 또한 비슷한 사례로 인용되었을 듯 싶으나 현재로서는 김강민이 애매한 성적+프랜차이즈의 첫번째 주자가 될 전망이다.

5. 여담

  • 별명은 인간을 넘어선 짐승같은 플레이라는 의미의 짐승강민, 짐강민, 김짐승이라 주로 불린다.[34] 그런 탓에 못하면 별명이 가축이나 지게로 바뀐다.[35] 18~19시즌에는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펼치면서 틀딱이 미래, 줄여서 이미래[36] 내지는 미래형, 이를 넘어 이젠 아예 프로 데뷔 년도인 2001년을 2001년생으로 바꿔 고졸 신인 취급하며 아가강민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37][38] 한화 와서는 한화 선수단 최고참이다보니 더 말할 필요 없는 큰형이라고도 불린다. 거기에 추가로 한화로 온 뒤 유난히 덕아웃에서도 배트를 들고 놓지를 않아서 빠따형이라 부르고 있다. 요나단 페라자는 김강민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 아무래도 출신지가 대구광역시라 그런지 인터뷰 중간중간에 살짝씩 동남 방언 억양이 들리는 편이다. 그래도 양준혁, 이승엽, 이대호, 추신수 등 다른 영남권 지역 출신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억양이 막 도드라지게 나오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스무살 때부터 줄곧 인천광역시에서 살았다 보니 입단 초기보다 사투리가 많이 줄어들기도 했다. 실제로 신경써서 말할땐 거의 표준어에 가깝다.
  • 폭발적인 활약을 보인 시즌은 없지만, 15여 년의 시간을 1군에 자리하며 이름을 알릴 수 있던 건 KBO 리그 최고의 중견수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라는 것. 내야수 출신이지만 외야수로 1군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는데, 주전급으로 성장하던 2000년대 말부터 리그 최상급의 수비라는 평을 받았고, 평균에 준하는 준수한 타격과 주루 능력까지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다. 2021년 기준 만 39세로 SSG 현역 야수 중 최고령 선수였으나 김강민보다 두 달 먼저 태어난 7월생 추신수가 입단하면서 최고령 야수 타이틀은 벗게 됐다.
  • 호타준족으로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타자지만, 부상 이후에 도루 개수가 줄었다. 물론 중견수로 계속 출장할 수 있을 정도로 수비능력은 여전하고 스피드 자체는 괜찮다. 37살에 시즌 절반을 결장했는데도 10개는 채우는 걸 보면 유지는 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초창기에 적었던 장타 능력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것으로 보인다.
  • 고교 야구 시절에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주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선수들이 단체로 김강민을 피해 탈출한 적이 있을 정도.[41] 현재는 군기반장보단 그냥 장난치는 동네형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그 모습이 어디 가진 않았는지 종종 팀이 안 좋다 싶으면 표정이 살벌하게 바뀐다.
  • 은근 유리몸 기질이 있어 전 경기 출장은커녕 120경기 이상 출장이 2007년, 2012년, 2019년, 2020년, 2021년 총 다섯 시즌으로 다소 많지는 않다. 오히려 전성기가 지난 2019~21년에 연속으로 120경기 이상 출전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 좌완투수의 공을 잘 치는 편인데 특히 양현종 킬러다. 통산 맞대결 전적을 보면 통산 130타수 41안타(2홈런) 타율 0.315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같은 팀의 3루수 최정도 좌완투수 중에서 류현진 킬러였다.[42]
  • 본래 굉장히 풍성했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탈모에 시달리는지 예전보다 머리숱이 적어졌다.
  • 2010년 12월 18일에 대구 프린스 호텔 별관에서 동갑내기 박정선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는 현대 무용을 전공했으며 지난 2000년, 고교 시절 친구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해 11년간의 긴 열애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었다고 한다. #
  • 포지션을 세 번[43]이나 전향하였다. 이 중에서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을 하게 된 계기를 SK 구단 유튜브의 '하루강민' 영상에서 직접 밝혔다. 어느 날 외야 한 자리에 구멍이 생겨 급작스럽게 외야수로 경기를 나가게 됐는데, 그 경기에서 다이빙 캐치와 보살에 성공해 계속 외야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외야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 입단을 투수로 했었고, 신인 시절에는 2루수로만 출장을 하다가 외야수로 전향한 케이스인지라, 가끔 나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책 때문에 수비를 못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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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쪽 홈플레이트 너머 지정석 그물망까지 간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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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땅바닥에 패대기 친다든가 하는 식.[44][45] 특히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 자격으로 출전하게 된 2007년 아시아 시리즈,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결승전에서 9회초 스코어 5:5로 동점인 상황에 악송구를 범했고 결국 주니치에게 역전을 허용하게 돼 코나미컵 탈락의 원흉이 돼버리면서 송구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이미지의 각인이 심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약점마저도 외야 수비에 능숙해진 후로는 없어졌으며, 현재 나이 40이 먹었는데도 SK 내에서 김강민의 수비력을 능가하는 중견수가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2020년에 입단한 최지훈이 꾸준히 경험치를 먹어가면서 김강민 못지 않은 수비력을 갖추면서 그의 후계자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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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중후반 시절에는 외모가 준수했던 편이라 나름 얼빠들도 꽤 끌어모은 편이다. 사실 지금도 스타일에 신경만 쓰면 충분히 잘 생긴 편이다.
  • 2023년 기준, SSG 선수단 내에서 하나의 등번호를 가장 오래 쓴 선수다. 신인 시절이었던 2001년~2002년에 37번을 달았다가 2003년부터 0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는데[46] 이 0번을 2003년부터 단 1차례의 변경도 없이, 심지어 팀이 SSG로 바뀐 후에도 계속 쓰고 있기 때문이다.[47] 그래서인지 차기 KBO 영구 결번 후보로 가끔씩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고 시리즈 MVP로 선정되면서 김강민에게 영결을 줘도 될 것 같다는 여론이 크게 증가했다. 팀과 구단주가 선수에 대한 대우를 확실히 해주는 성향이 있어 누적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어도 원클럽맨으로 뛰며 팀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누적으로는 앞서지만 팀 커리어에서 우승이 없는 선수들보다 영구 결번으로서 적합하다는 여론도 있다.[48] 0번이 야구를 제외한 다른 스포츠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번호라 더욱 희소성이 있기도 하고. 그러나 2024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로 SSG를 떠나 한화로 이적하며 영구 결번을 받기는 힘들게 됐다.
  • 2019년, 과거 벤치 클리어링 상대였던 류제국이 사생활 논란으로 야구계를 떠나자 네이버 등지에서 벤치 클리어링 재평가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선수 중 하나다. 거진 PTSD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데, 이유는 너무 잘 해서였다. 통산 롯데전 OPS는 본인 통산 성적과 큰 차이 없는데, 사직 야구장에서 OPS가 .9를 넘는다. 그리고 김강민 플레이 스타일 상 타석에서 못 쳐도 수비로 조지든가 주루로 조지든가 하기 때문이다. 특히 909대첩은 김강민 하이라이트의 절정. 이후 김강민은 나올 때마다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 자주 거론되며, 댓글에는 제발 은퇴해달라는 댓글이 다수. SSG 팬들만큼 열심히 박수 쳐줄 테니까 은퇴식은 롯데전에서 하라는 글이 꼴갤 개념글을 먹기도 했다. 기사로도 나왔다. 시간이 지나서 원망의 경지를 넘어 미운 정이 들었는지 꼴갤에선 김강민이 FA 신청을 했을 때 영입을 원하기도 했으며 은퇴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때 김강민 은퇴식은 사직구장에서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 박용택은 은퇴투어를 해야 하는가'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오갔을 때도 "박용택은 몰라도 김강민은 은퇴투어 해줄 테니 제발 은퇴해 달라"는 농담도 있었다. 심지어 롯데 선수가 아님에도 나는 갈매기의 포스터 구석에 김강민이 있다는 것이 뒤늦게 화제가 되어 벗어날 수 없는 롯데와의 악연에 롯데 팬들이 고통받고 있다. 비단 꼴갤뿐만 아니라 타 구다 갤러리에서도 김강민의 수비나 송구 장면을 보여주면 대체 짐승 언제 은퇴하냐는 하소연이 달리기 일쑤다. 2023년에도 은퇴를 하지 않고 SSG에서 뛰게 됨으로써 팀 내 외야수들 중 최장 근속 년수를 갱신했다. 심지어 이대호도 은퇴했는데 김강민은 더욱 뛰고 있으며, 2024년부터는 SSG 대신 한화로 뛰게 되면서 롯데 팬들의 절망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였으나 많은 출장 기회를 가지지 않고 은퇴하면서 드디어 벗어났다.
  • 최근에는 롯데 팬들보다 키움 히어로즈의 팬들이 김강민의 이름만 봐도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한다. 가을 야구에서 만날 때마다 키움 상대로 엄청난 임팩트의 홈런을 선보이며 키움을 좌절시켰기 때문. 김강민의 통산 포스트 시즌 홈런 6개 중 5개가 키움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49] 게다가 모든 홈런이 키움의 한두 점 차 리드나 동점 상황에서 터져나온 치명적인 홈런이다보니 그 충격이 더 할 수밖에 없다. 특히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의 끝내기 홈런은 시리즈의 향방을 사실상 결정지은 것은 물론, 김강민이 한국시리즈 MVP가 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엄청난 한 방이었다.
  • 나이가 40대에 진입했음에도 중견수 주전으로 나오는 일이 많다 보니 팬들 사이에선 노인학대라며 차기 주전 중견수를 발굴하지 못해서 김강민이 계속 출전하는 웃픈 상황을 자조하는 밈이 있다. 다행히도 2020 시즌에 최지훈을 발굴하여 후계자를 찾았지만 최지훈이 경험이 부족하고 21시즌에 부진하다 보니 여전히 김강민이 주전인 지라 김강민이 출전하면 노인학대라는 글이 꽤나 올라온다. 그럼에도 세 경기 연속 홈런에 여전한 수비실력을 보여주다 보니 강제로 은퇴를 할 수 없는 선수로 취급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 2021년 6월 22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13대 1로 지고 있었던 9회초 1아웃 상황에 등판하여 ⅔이닝 1사사구 1피홈런을 기록하였는데, 평균구속 135KM에 최고 구속이 무려 146km/h[50]을 찍었다. 김원형 감독이 부상을 염려하여 가볍게 던지라고 주문했는데 오히려 컨트롤이 안 돼서 홈런을 맞았고, 그 뒤부터 세게 던지다 보니 146이란 구속이 나왔다고 한다. 김강민의 그런 승부근성에 학을 뗀 김원형 감독은 아무래도 다칠 것 같다며 다음부터는 투수로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 유치원 학부형 계주에 참여했다고 한다. # 2021년에 올라온 글이지만 실제론 2014년에 있었던 일이 뒤늦게 발굴된 거라 한다. # 2021년 기준으로도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2014년에는 32도루(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을 정도로 지금보다 더 빨랐기 때문에, 치트키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불타는 그라운드 1화(14분 지점부터)에서 밝히길 세게 뛰지 않았고, 역전시키지도 않은 걸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 선수 경력이 긴 만큼 팬층도 두텁다. '별빛 김강민'이라는 김강민 팬클럽이 있을 정도다. 또한 그만큼 김강민의 팬서비스가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슼튜브의 콘텐츠 중 하나인 'W라디오'에 나와 시청자 사연을 읽어주는 코너에서 신인 시절, 자신을 응원하던 꼬마 아이를 10여 년이 지난 뒤에도 기억하는 모습을 보여줘 화제가 되었다. #[51]
  • 동갑내기 스타인 추신수가 오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생활을 끝내고 불혹에 다가선 나이에 SSG 랜더스로 오면서 KBO 데뷔를 했는데 이때 김강민 본인이 추신수의 팀 적응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나이가 동갑인데다가 팀 내에서도 최고참이라서 그런지 서로 간의 우애가 매우 두터운 편이다.
  • 2023년 기준으로 40대로 생년월일이 3위이지만[52] KBO 경력으로 보면 최장수 선수다.[53]
타격편 수비편
  •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데뷔 후 22년만에 처음으로 CF 광고를 찍게 됐다. 모기업인 신세계그룹 계열사의 할인 행사인 쓱데이 광고로 김강민이 타석에 들어서 한우, 삼겹살, 계란, 세제 등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을 쳐주는 내용과 반대로 수비에서 물건을 잡아내는 내용이다.
  • 2024 시즌 2차 드래프트로 한화로 이적하게 된 이후 단숨에 맏형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연소 외인 요나단 페라자와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 야구계에서 자기가 할아버지라고 하니 페라자는 '하라버지'라며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고 스프링캠프 때는 "너 아이큐 두 자리지?" 라는 말에 페라자는 큐두를 CUTE로 알아듣는 모습을 보인다. 정규시즌에는 페라자에게 수비 조언을 하고 페라자가 이를 받아들이며 호수비를 보이기도 한다. 보통 40세를 넘은만큼 체력문제로 벤치에 있거나 대타 혹은 대수비, 체력안배용 선발출전을 하지만 공식유튜브 이글스tv에서는 거의 씬 스틸러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서 사랑을 받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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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전 기록은 박경수의 37세 7개월 18일. [2] 다음 프로필 기준 [3] 주전으로 도약한 2007년부터 계속해서 주로 맡고 있는 포지션이다. 본래 투수로 입단하고 2군에서 내야수로 뛰기도 했지만 외야수 전향을 권유 받았고 전향 후 점차 수비력이 좋아지며 2000년대 후반부턴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수비가 궤도에 오른 이후로 노쇠화의 기미 없이 꾸준히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으며 불혹의 나이에 들었음에도 중견수 수비에 있어서 여전히 리그 상위권의 활약을 보인다. (2020 시즌 종료 기준 1480경기 출전) [4] 한화 이글스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나 지난 23년간 보여준 노고와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SSG 랜더스에서 은퇴식을 치뤄주기로 결정했다. KBO 리그 은퇴선수 특별 엔트리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 유사한 사례로는 2018년 kt wiz 소속으로 은퇴했으나 2024년 두산 베어스에서 은퇴식을 치뤄준 더스틴 니퍼트가 있다. [5] 안타 김강민~ 안타 김강민~ 안타 김강민~ 오오오오~ 김강~민~ 오오오오~ 짐승강민~ 오! 김~강민~ ×2 [6] 한화 이글스 이적 후에도 기존 응원가를 그대로 사용한다. 나주환의 사례처럼 황석빈이 다시 녹음했다. [SK-SSGver.] # ( 황석빈 재녹음 이전 버전) [한화ver.] # ( 황석빈 재녹음 버전) [9] 흔히 얘기하는 '파란슼' (창단 당시부터 2005년까지 썼던 로고가 파란색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시절부터 現 SSG까지 모든 로고를 달아 본 선수는 김강민과 2005년 입단한 내야수 최정 둘뿐이다. [10] 다른 선수는 진갑용 임창용. [11] 과거 김강민 본인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동일한 입장을 밝힌 바가 있다. 김강민은 누구 하나라도 "왜?"라고 한다면 당연히 안 해야 된다며 모두에게 인정받은 레전드만이 영구 결번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12] 정확히는 박경완 1명 뿐인데 박경완은 선수로서의 입지는 김강민과 비교할 수 없이 높으나 프랜차이즈, 원클럽맨으로서의 입지는 김강민보다는 떨어진다. 프로 커리어를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시작했고 1998 시즌부터 5년간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기 때문이다. 김광현 최정이 영구 결번 입성을 예약해 둔 상태이며 이 둘의 결번 이후에는 다른 팀 못지 않게 커트라인이 올라가겠지만 이 둘은 김강민 뒤의 차례가 될 것이다. [13] 물론 후술되어 있지만 영구 결번을 받기 위한 조건에 꼭 원클럽맨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강민의 영구 결번 긍정론 중 가장 큰 요인이 23년간 한 구단에서 충성적으로 뛰었으며, 이적도 본인의 의지가 아닌 구단에서 선수보호를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타의로 이적한 거라 팬들은 김강민을 보호조치를 하지 않는 구단을 욕했다. 반대로 김강민이 경기에서 보여준 측면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팬층이 제법 있는 선수였기에 원클럽맨 유지 여부가 다른 선수보다 중요한 기준일 수밖에 없다. [14] 2023년까지는 최장 기간 원클럽맨이었으나 2024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4라운드 지명을 받아 이적하면서 원클럽맨은 깨지게 되었다. 최장 기간 소속 선수 타이틀은 남아있으나 원클럽맨 타이틀보다는 아무래도 무게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5] 현재 공동 2위는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21년을 뛴 송진우와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 21년을 뛴 권오준이며 현역 1위이자 역대 4위는 SSG 랜더스에서 20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최정이다. 최정이 랜더스 소속으로 3시즌만 더 뛰게 된다면 이 부문 기록을 갱신하게 된다. [16] 영구 결번까지는 아니더라도 1군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낸 원 클럽 플레이어에게는 꽤 성대하고 알찬 은퇴 행사를 치러 줬다. [17] SSG 팬들 다수가 인천야구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인천야구를 중시하지 거는 것은 팬에 반하는 행위이다. [18] 은퇴를 앞 둔 베테랑을 보호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타 구단의 지명을 받은 이상 구단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를 앞둔 정근우는 보호명단에서 제외됐고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아 이적을 하게 되어 한화 팬들의 아쉬움을 산 바가 있다. 그나마 이 쪽은 FA로 한 차례 이적한 적이 있어 김강민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KIA 타이거즈의 상징과도 같은 이종범 2012년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 명단에서 자신이 제외됐었다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이종범의 경우 다행하게도 팀 내 위상과 나이(당시 만 41세)를 고려해서 타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KIA 타이거즈에서 은퇴하면서 성대한 은퇴식과 함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본인은 현역 연장을 위해 다른 팀이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고 덧붙혔다. [19] 실제로 한화 이글스는 최고참 정우람을 플레잉 코치로 선임하며 은퇴 예정 선수라는 점을 알렸고 보호 명단에서도 제외됐으나 9구단 모두 지명하지 않았다. [20] 이영미 유튜브 채널 인터뷰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내용을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21] 한 시즌으로 환산 시 약 WAR 1.27 정도라고 볼 수 있다. [22] 박경완은 SK 소속으로 타출장 .259/.374/.446 OPS .820 wRC+ 120.5 sWAR 30.16을 기록했고 김강민은 타출장 .274 출루율 .340 장타율 .410 OPS .750 wRC+ 99.2 WAR 29.35를 기록했다. 상술했듯이 박경완은 최고의 임팩트와 더불어 KBO 리그 포수로서 역대 최고의 수비 실력까지 겸비한 완전체 포수였다. 이 때문에 자팀 팬덤으로부터 영구결번 반대 여론이 거의 없었다. [23] 최정은 2023 시즌 기준으로 SSG에서 20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으며, 김강민과 3시즌 차이가 나는데 비해 나이는 5살 어리다. 김강민이 2023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기에 최정은 SSG 소속으로 3시즌만 더 뛰게 되면 KBO 리그 최장기 원클럽맨 기록을 갱신하게 된다. 게다가 통산 홈런 467개를 넘겨 이승엽 현 두산 감독을 제치고 한국프로야구 홈런수 통산 1위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최정은 김광현과 같이 현역 선수 가운데 영구결번 지정이 확실시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4] 누가 먼저 제안하였는지는 기사마다 내용이 다르다. 구단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보도한 기사도 있고, 김강민이 먼저 제안하였다는 기사도 있다. [25] 일부 언론에서는 지명이 된 이상 최소 1년은 지명된 팀에서 활동해야함으로 선수 배려 차원에서 무상or현금 트레이드를 해줘야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26] 양준혁 같은 경우 삼성(1993~1998) → 해태(1999) → LG(2000~2001) → 삼성(2002~2010)으로 무려 세 곳에서 뛰었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영구 결번 선수가 됐다. 또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선수협 결성 시도에 따른 보복성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 선수로 은퇴한 최동원이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 결번을 받은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은 현역 시절 쌓아올린 성적이 김강민보다 압도적이라는 점이 김강민의 타팀 이적 시 영구결번에 제약이 될 것이다. [27] 쉽게 말해 영구 결번 줄 거였으면 이적을 해도 줄 거고 영구 결번을 안 준다면 이적을 안 해도 안 줬을 거란 얘기다. [28] 2차 드래프트 지명을 거부하게 되면 두 시즌간 다른 구단과도 계약할 수 없게 된다. [29] 은퇴 경기도 명백한 1군 리그 경기이기 때문에 타 구단 선수나 미등록 선수는 절대로 경기에 나올 수 없는 반면에 시구나 은퇴식은 경기와 별개의 행사이기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 [30] 실제로 은퇴식은 아니지만 나중에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80~90년대 레전드급 선수 몇몇은 은퇴 이후 영구 결번만 따로 진행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레전드 선수였으나 구단과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결국 방출당했고 은퇴식 조차 치르지 못하다가 팬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7년이 지난 2003년이 돼서야 영구결번이 지정된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가 있다. 구단에서는 아무런 공식 행사도 진행해주지 않은 터라 당시 코치로 몸을 담고 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은퇴와 영구결번 관련 작은 행사를 치러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 또한 본인이 원치 않는 이적으로 인해 은퇴식도 없이 초라하게 은퇴한 것도 모자라 롯데에서는 팀을 떠난 지 23년, 은퇴한 지는 21년이 되도록 한 차례의 시구 초청을 빼고는 최동원에게 찬밥 대우를 보였다. 2011년 최동원이 사망하고 여론의 비난을 받자 그제서야 영구결번이 지정되었다. [31] KBO의 타 구단 소속으로 은퇴하고도 영구결번이 지정된 사례는 1990년 삼성에서 은퇴한 롯데의 레전드 최동원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최동원이 롯데를 떠난 지 23년, 은퇴한 지 21년이 되도록 깜깜무소식이었으나 최동원 사망 후 과거 롯데 프런트의 레전드 푸대접이 재조명되면서 팬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마지못해 영구결번을 해준 것. KIA 타이거즈 선동열은 1999년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으나 해태를 떠나 주니치로 이적하던 1996년에 이미 영구결번이 지정됐었다. 2001년 해태 타이거즈 매각 이후 KIA 타이거즈로 재출발하는 과정에서 선동열의 영구결번을 해지하고 당시 초특급 신인 김진우에게 등번호 18번을 배정했고 2002년 초까지 18번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연습경기를 뛰기도 했으나 결국 팬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어 KIA 타이거즈에서도 선동열의 영구결번이 유지됐다. 실제 사진 [32] 2024년 1월 19일 SSG 랜더스의 2024 시즌 선수단 등번호가 공개되었고 0번을 배정받은 선수는 없었다. [33] 물론 박한이는 김강민보다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기에 단순비교로는 어폐가 있으나 이승엽, 양준혁 등의 사례를 생각하면 박한이의 영결 명분은 오랜 기간 삼성맨으로 활약한 역사의 지분이 크다. [34] 만화가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늑대인간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35] 이러한 영향인지 대만야구위키에는 김강민의 대표 별명이 짐승과 가축으로 표기되어있다. [36] 공교롭게도 이미래는 당시 SK의 치어리더 이름이기도 했다. 현재는 NC 다이노스를 거쳐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이후 김강민이 한화로 이적하며 2024년부터 다시 한 팀 소속이 되었다. [37] 예시로 2021년 5월 23일 문학 LG전에서 앤드류 수아레즈를 상대로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오원석과 함께 고졸 신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 [38] 심지어 쓱튜브에서도 은근슬쩍 김강민의 자막 위에 01년생이라고 적어놓기도 한다. [39] 김강민은 SK에 지명을 받기 전까지 인천과 연고가 전혀 없었던 터라 당연히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입단 초기 인하대 후문 인근 빌라촌에서 자취를 해야 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입단 후 한동안 2군에 머물렀던 그의 입장에서는 당시 2군 경기장인 SK 드림파크까지 걸어서 출퇴근해야 했고 인천에서 자취하는 비인천 출신 청년들이 주로 많이 사는 자취방 밀집지역 중 하나가 인하대 후문 쪽이어서 그 곳에서 자취하기로 했던 듯하다. 사실 박재상, 조동화, 박정권 등 또래의 동료들과도 왕조 개창 전까지 인하대 후문 부근 빌라촌에서 살면서 어울렸다. 넷 다 과거 20대때 추억하면 인하대 후문이나 용현동, 학익동에서 같이 놀던 얘기를 꺼낸다. 2군 구장이 문학구장에서 아예 먼 강화도에 있는 현재는 강화도 하숙집이나 빌라 등에서 자취를 하는 선수들이 많다. [40] 팀 커리어는 4명 중에 제일 좋지만, 이들에 비해 2군 생활을 오래했고, 주전으로 발돋움하기까지도 기간이 꽤 길었기에 통산 기록이 가장 떨어진다. 다만 중견수 수비가 궤도에 오른 후론 항상 수비 잘하는 선수로 거론 되어왔고 타격도 2010년을 기점으로 성장하여 종합적으로 봤을 때,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하였기에 한 시기를 대표하는 중견수 그룹으로 묶이기에 부족함은 없다.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언급된 셋은 2000년대 중반부터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김강민은 후발 주자로 2010년부터 그런 별칭을 얻었다. [41] 2016년 1월 13일 《라디오볼》에서 언급. [42] 류현진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증언한 바에 의하면, 볼을 던져도 쳐냈다고 한다. [43] 투수-내야수(2루수)-외야수 [44] 심지어 패대기 송구는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으로 했다. [45] 이게 일종의 습관성일 수도 있는데 일본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카네모토 토모아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주전 꿰차기 전부터 주전되고 나서 무시무시한 타격으로 각성했을 때에도 수비할 때 저런 정줄놓는 송구와 패대기 송구를 해대서 경기 끝나고 감독에게 매번 살인펑고를 받으면서 수비연습을 했다고 한다. [46] 여담으로 0번을 쓴 이유는 0번이 특이해 보여서라고 한다. 이후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고 한다. [47] 게다가 김강민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를 받았기 때문에 군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난 적도 없었다. [48] SSG의 현역 선수 중 가장 유력한 영구 결번 후보로는 최정이 있다. 무슨 일이 있지 않는 이상 100% 확정이다. 김광현 역시 팀에서의 상징성으로 치면 만만치 않고 2022년에 복귀했기 때문에 영구 결번 확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최정이나 김광현이나 아직 30대 중반의 나이이기 때문에 은퇴까지의 시기는 꽤 먼 편이기에 그나마 그 전에 영구 결번이 생긴다면 현재로썬 김강민이 가장 유력하다. 김강민은 둘에 비하면 기록적인 면은 좀 떨어지긴 해도 팀의 몇 안 되는 원 클럽 맨에 주전으로 자리잡은 왕조 시절부터 팀에 꾸준히 기여한 부분도 많으며 공격적인 스탯은 떨어져도 수비 부분은 매우 좋기 때문에 영구 결번의 확률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SSG는 영구 결번이 전신인 SK 시절 박경완 단 1명만 존재하고, 애초에 KBO 리그 구단들이 영구 결번을 주는 사례가 굉장히 적다는 걸 생각하면 확률이 높진 않다. 그래도 영구 결번은 명예의 전당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 만큼 구단 내 상징성 등으로 보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49] 2018년 플레이오프에서 3개,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2개. [50] 문학 야구장 전광판 기준으로는 145.7km/h [51] 이 당시 사연의 주인공은 수험생이어서 김강민의 친필 사인이 담긴 실착 유니폼을 선물로 주어 또 화제가 되었었다. # 여담으로 이 학생은 응원에 힘입어 대학도 잘 갔다고 알려졌다. [52] 1위는 추신수, 2위는 오승환. 모두 1982년생으로 41세이다. [53] KBO에서 23년차이며 추신수는 선수시절 대부분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보내고 KBO 리그 경력은 3년차이며, 오승환은 대졸 선수로, 2005년에 입단하고, 일본프로야구와 MLB를 거친 전례가 있다. 반면 2022년에 은퇴한 이대호와 입단 동기이기는 하나, 이대호 또한 NPB와 MLB를 거쳐 6년의 공백이 있었기에 2022년부터 최장수 선수이기도 했다. 2021년에는 그보다 1년 선배인 이성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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