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20:46:23

박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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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222222><colcolor=#000,#fff> 이동근 | 이호근 |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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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 유희관 | 윤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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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PARK YONGT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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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경력
<colbgcolor=#fff> 아마추어 시절 <colbgcolor=#fff> 프로 지명
프로 경력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LG 트윈스
LG Twins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1차 FA)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2차 FA)' · 2015년 · 2016년 · 2017년 ' · 2018년 (3차 FA) · 2019년 · 2020년 · 2022년
국가대표 경력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Baseball Team
2006년 WBC
플레이 스타일
사건사고 및 구설
2009년 타격왕 획득 논란 · 2011년 LG 트윈스 청문회 사건 · 은퇴 투어 논란 · 양의지 배트 헤드샷 사건
기타
별명 · 박용택 마이너 갤러리 (XX아 나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 빅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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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시즌 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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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1171><colcolor=#fff> 투수 11 이대은 · 13 장원삼 · 19 신재영
20 선성권** · 21 송승준 · 47 유희관 ·
포수 12 박재욱 · 27 이홍구
내야수 1 유태웅* · 2 최수현 · 4 서동욱 · 5 문교원* · 8 정근우 · 10 이대호 · 16 정성훈
외야수 '''24 김문호 · 29 이택근 · 33 박용택 · 37 정의윤'''
*: 임대 선수, **: 육성선수
단장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장시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8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1 이광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2 오세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2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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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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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_Retired_LG_41_svg.png 파일:KBO Retired LG 9.png 파일:KBO Retired LG 33.png
김용수
(1999.04.19.)
이병규
(2017.07.09.)
박용택
(2022.07.03.)
선수명 하단 일자: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 진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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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c30452>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LG 트윈스
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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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조호 (1) {{{#!folding (12명) {{{#!folding (8명) {{{#!folding (9명) {{{#!folding (7명)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노찬엽
정태관
김영직
이국성
이용철
김상호
김기범
최훈재
나웅
김동수
이병훈
송구홍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임선동 이상훈 유지현 심재학 이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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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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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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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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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이동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김광희 박경수 장진용 박병호 김기표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1) 2011년 (1)
봉중근
김유선
이형종 오지환 신정락 (1) 임찬규 (1)
2012년 (1) 2013년 (1) 2014년 2015년 2016년
조윤준 (1) 강승호 (1) 임지섭 김재성 김대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고우석 김영준 이정용 이민호 강효종
2022년 2023년 (1) 2024년 (1) 2025년 (1) 2026년 (1)
조원태 김범석 (1) 지명권 양도
(1) 전면 드래프트 시행연도
(2) 지명 후 미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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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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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순위 선수 및 가입 당시 구단 기록 달성 시즌 활동 기간 비고
1 송진우 한화 이글스 210승 2006년 1989~2009 창립멤버 겸 초대 회장
2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2318안타 2007년 1993~2010 창립멤버
KBO 최초 2000안타
3 전준호 히어로즈 2018안타 2008년 1991~2009 창립멤버
4 이종범 KIA 타이거즈 2083안타 2010년 1993~2011 韓1797, 日286
우타자 최초 가입
5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2842안타 2012년 1995~2017 韓2156, 日686
6 이병규 LG 트윈스 2296안타 2012년 1997~2016 韓2043, 日253
7 장성호 한화 이글스 2100안타 2012년 1996~2015
8 임창용 삼성 라이온즈 386세이브 2014년 1996~2018 韓258, 日128
세이브 조건으로 최초 가입
9 오승환 한신 타이거즈 522세이브 2014년 2005~ 현역, 韓400, 日80, 美42
역대 최연소,최소시즌 가입
KBO 통산 세이브 1위
10 홍성흔 두산 베어스 2046안타 2015년 1999~2016 KBO 우타자 최초 2000안타
11 박용택 LG 트윈스 2504안타 2016년 2002~2020
12 정성훈 LG 트윈스 2159안타 2016년 1999~2018 내야수 최초 가입
13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2174안타 2016년 2001~2019
14 김태균 한화 이글스 2376안타 2017년 2001~2020 韓2209, 日167
15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2895안타 2017년 2001~2022 韓2199, 日622, 美74
KBO 출신 선수 중 역대 최다 안타
16 이진영 kt wiz 2125안타 2017년 1999~2018
17 최형우 KIA 타이거즈 2323안타 2021년 2002~2005,
2008~
현역
18 김현수 LG 트윈스 2377안타 2021년 2006~ 현역, 韓2236, 美141
19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2133안타 2021년 2007~ 현역
역대 타자 최연소,최소타수,최소경기
20 이용규 키움 히어로즈 2076안타 2022년 2004~ 현역
21 최정 SSG 랜더스 2133안타 2023년 2005~ 현역
22 황재균 kt wiz 2040안타 2023년 2006~ 현역, 韓2032, 美8
23 강민호 삼성 라이온즈 2000안타 2024년 2004~ 현역
}}}}}}}}}}}} ||

박용택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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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통령배고교야구심볼.png
199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s-2|{{{#a78329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박재형
( 배재고등학교)
박용택
(휘문고등학교)
김민규
( 북일고등학교)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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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2001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송지만
한화 이글스
이병규
LG 트윈스
심재학
두산 베어스
이병규
LG 트윈스
정수근
두산 베어스
2002 2003
송지만
한화 이글스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이종범
KIA 타이거즈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이종범
KIA 타이거즈

2004 2005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이병규
LG 트윈스
이진영
SK 와이번스
데이비스
한화 이글스
서튼
현대 유니콘스
이병규
LG 트윈스

2006 2007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이용규
KIA 타이거즈
이택근
현대 유니콘스
심정수
삼성 라이온즈
이대형
LG 트윈스
이종욱
두산 베어스
2008 2009
가르시아
롯데 자이언츠
김현수
두산 베어스
이종욱
두산 베어스
김현수
두산 베어스
박용택
LG 트윈스
이택근
히어로즈
2010 2011
김강민
SK 와이번스
김현수
두산 베어스
이종욱
두산 베어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이용규
KIA 타이거즈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2012 2013
박용택
LG 트윈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이용규
KIA 타이거즈
박용택
LG 트윈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2014 2015
나성범
NC 다이노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김현수
두산 베어스
나성범
NC 다이노스
유한준
넥센 히어로즈
2016 2017
김재환
두산 베어스
김주찬
KIA 타이거즈
최형우
KIA 타이거즈
버나디나
KIA 타이거즈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최형우
KIA 타이거즈
2018 2019
김재환
두산 베어스
이정후
넥센 히어로즈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로하스
kt wiz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샌즈
키움 히어로즈
2020 2021
로하스
kt wiz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김현수
LG 트윈스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홍창기
LG 트윈스
2022 2023
피렐라
삼성 라이온즈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나성범
KIA 타이거즈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박건우
NC 다이노스
홍창기
LG 트윈스
1980·199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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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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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신설 전 양세종
OB 베어스
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1987 1988 1989 1990 1991
유승안
빙그레 이글스
김용철
롯데 자이언츠
박철우
해태 타이거즈
박승호
삼성 라이온즈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1992 1993 1994 1995 1996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형석
OB 베어스
박재용
해태 타이거즈
1997 1998 1999 2000 2001
박재용
해태 타이거즈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로마이어
한화 이글스
우즈
두산 베어스
양준혁
LG 트윈스
2002 2003 2004 20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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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김동주
두산 베어스
김기태
SK 와이번스
김재현
SK 와이번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2007 2008 2009 2010 2011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홍성흔
두산 베어스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2012 2013 2014 20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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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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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LG 트윈스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최형우
KIA 타이거즈
양의지
NC 다이노스
2022 2023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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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로고.svg KBO 사랑의 골든글러브
역대 수상자

with 사회복지공동모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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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2000 2001 2002 2003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
진필중
두산 베어스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이병규
LG 트윈스
수상자 없음
2004 2005 2006 2007 2008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송지만
현대 유니콘스
조웅천
SK 와이번스
선수 일동
롯데 자이언츠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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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박용택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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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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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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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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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SK 와이번스
박석민
NC 다이노스
추신수
SSG 랜더스
수상자 없음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bordercolor=#002561> 파일: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로고.svg KBO 페어플레이상
역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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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1px -5px;"
{{{#182132,#ddd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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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2002 2003 2004 2005
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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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최기문
롯데 자이언츠
김기태
SK 와이번스
김태균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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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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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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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
KIA 타이거즈
강봉규
삼성 라이온즈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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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박석민
삼성 라이온즈
박용택
LG 트윈스
손승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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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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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성
LG 트윈스
나성범
NC 다이노스
2021 2022 2023 20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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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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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2 플레이오프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9 KBO 리그 타격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5 KBO 리그 득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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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BO 리그 도루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4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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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올스타 4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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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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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최다 득표자 TO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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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_40주년_선동열_B.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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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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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12위 24위 25위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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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불굴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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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위 32위 33위 3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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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20위 28위 31위
장효조 김시진 한대화 김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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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최강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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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13위 18위 26위
이강철 정민철 정민태 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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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위 17위 23위 3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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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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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안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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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009)
2008년 / 2018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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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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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19)
2016년 / 2174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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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 2209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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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 2323안타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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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 2076안타
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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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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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2005)
2000년 / 340홈런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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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14)
2010년 / 311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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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12)
2012년 / 300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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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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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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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200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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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2005~)
2018년 / 458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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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22)
2019년 / 374홈런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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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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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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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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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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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통산 최다 안타 2,504안타
10년 연속 3할 타율 2009년~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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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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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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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0> 1982~1983 1984 1985~1986 1987 1988
이종도
이해창 김재박 이광은 신언호
1989 <rowcolor=#fff> 1990~1991 1992~1993 1994~1995 1996
이광은 김상훈
김동재 노찬엽
최훈재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노찬엽
김동수
송유석 김선진 김정민
양준혁 (오프시즌 기간 주장)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서용빈 유지현
이상훈 이병규 조인성 서용빈
<rowcolor=#fff> 2007~2008 2009 2010~2011 2012~2013 2014~2015
이종열 조인성 박용택 이병규 이진영
<rowcolor=#fff> 2016~2017 2018 2019~2021 2022~2023 2024~
류제국 박용택 김현수 오지환
김민성 (임시 주장)
오지환 김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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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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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감독 대행 2대
이승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05.02.
~2022.10.17.)
박용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10.18.
~2022.11.06.)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11.07~ )
실제 경기일 기준
}}}}}}}}}}}} ||

LG 트윈스 등번호 33번
홍현우
(2001)
박용택
(2002~2022)
KBO 영구 결번
}}} ||
A대표팀 참가 경력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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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김인식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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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 손민한 · 17 오승환 · 15 구대성 · 21 정대현 · 26 서재응
27 박명환 · 28 전병두 · 36 배영수 · 41 정재훈
45 봉중근 · 49 김병현 · 51 김선우 · 61 박찬호
포수 20 진갑용 · 22 홍성흔 · 44 조인성
내야수 3 박진만 · 5 정성훈 · 6 김재걸
11 최희섭 · 14 김민재 · 16 김종국
25 이승엽 · 52 김태균 · 55 이범호
외야수 7 이종범 · 9 이병규 · 12 송지만
33 박용택 · 35 이진영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수비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류중일
투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선동열
주루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6 류지현
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0 조범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 ||
파일:아겜용택.jpg
<colcolor=#ffffff> KBS · KBS N SPORTS 해설위원
<colbgcolor=#c30452> LG 트윈스 No.33
박용택
朴龍澤 | Park Yong-Taik
출생 1979년 4월 21일 ([age(1979-04-21)]세)
서울특별시 강동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울고명초등학교 (졸업)
휘문중학교 (졸업)
휘문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 경영학[1] / 학사)
신체 185cm, 91kg[2], B형
포지션 좌익수[3], 지명타자[4], 중견수[5], 우익수[6]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1998년 고졸우선지명 ( LG)
소속팀 LG 트윈스 (2002~2020, 2022)[7]
해설 위원 KBS / KBS N SPORTS 야구 해설 위원 (2021~ )
경력 KBO 전력강화위원 (2023)
병역 제2국민역[8]
소속사 스포스타즈[9]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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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30452><colcolor=#fff> 가족
<colbgcolor=#c30452><colcolor=#ffffff> 배우자 <colcolor=#373a3c,#ddd>한진영(1979년생, 2005년 12월 10일 결혼 ~ 현재)
자녀 딸 박솔비(2007년생)[10]
부모 아버지 박원근(1947년생)[11], 어머니
형제자매 여동생 박혜진(1980년생)
종교 무종교[12]
MBTI ESTJ
등장곡 T-max - Paradise(2009~2011)[13][14]
김범수 - 나타나(2011~2017, 2020, 2022)[15][16][17][18]
응원가 아리랑 목동(2002~2008) #[19][20]
박정아 - New Ways Always(2009~2017, 2022) #[21][22][23][24]
구단 자작곡(2018~2019) #[25][26]
홍경민 - 자작곡(2020) #[27][28]
}}}}}}}}} ||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이후
4.1. 은퇴식4.2. 해설 위원 경력4.3. 방송 활동
5. 별명6. 팬 서비스7. 사건사고 및 구설8. 여담9. 주요 기록
9.1. 2,500안타 달성9.2. 수상 내역9.3. 그 외 기록
10. 둘러보기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LG 트윈스 소속 야구 선수이자 現 KBS, KBS N SPORTS 해설자.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좌익수, 지명타자.

KBO에서 원클럽맨, 로컬 보이, 영구 결번에 모두 해당되는 10인 중 한 명이다.[29][30]

데뷔 때부터 주로 좌익수로 출전하였고, 입단 직후 당한 어깨 부상으로 송구에 약점을 보였다. 이후 2010년 LG의 외야가 빅5로 불릴 정도의 자원이 구성되자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하였고, 2011년도 역시 지명타자로 출전이 예정되어 시즌 전 장타자 변신을 선언하며 체력단련에 매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며 시즌 후 외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12시즌부터 15시즌까지 중견수 좌익수로 출전하다가 16시즌부터 지명타자로 완전 전업했다.[31]

이래저래 팀의 암흑기동안 여러 차례 산전수전을 겪었음에도[32], 그 와중에도 20년 가까이 팀을 꿋꿋하게 지탱해 준 LG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다. 데뷔 첫 해인 2002년 LG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에서 2013년까지 무려 10년이 넘게 계속된 하위권과 포스트시즌 복귀 등을 전부 겪은 다사다난한 21세기 LG 20년 역사의 산증인이다. 같은 시기에 팀의 간판이었던 선배 이병규도 잠시 일본에 진출한 적이 있지만 박용택은 한 번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 박용택은 팀이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팬과 구단에서 가치를 저평가받았고, 주장으로서 청문회를 겪는 수모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암흑기를 탈출한 이후 KBO 최다 안타를 경신하는 등 유의미한 기록을 달성하자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종국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김용수, 이병규의 뒤를 이어 LG의 3번째 영구 결번 선수가 되었다.

KBO 리그 사상 첫 개인 통산 2,500안타 달성자이다.[33] 그럼에도 선수 생활 끝까지 우승을 해보지는 못했다.[34]

공식 별명은 구단에서 응모전을 통해 붙여 준 '쿨가이'와 지하철 광고로 인한 '메트로 박'이었으나 2009년 수위타자 관련 사건과 더불어 비판 반 밈 반으로 별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렸으며, 현재도 김태균[35]에 이은 KBO 별명계의 독보적 아이콘 중 하나이다. 자세한 사항은 박용택/별명 참조.

2. 선수 경력

박용택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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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박용택/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2년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2006년
}}}}}}}}} ||

3. 플레이 스타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용택/플레이 스타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영결택.jpg

4. 은퇴 이후

4.1. 은퇴식

파일:은퇴택.jpg
FOR3V3R MR.TWINS
- 은퇴식 당일 LG 팬들이 관중석에 설치한 현수막. FOREVERE를 박용택의 등번호인 33번으로 치환했다.

2020 시즌을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은퇴식을 치르지 못했다. 박용택 본인도 관중 입장 제한으로 썰렁해진 야구장보다는 많은 관중이 함께 박수치고 환호하는 자리에서 은퇴식을 치르고 싶다는 의향을 밝힌 바 있다. LG 구단에서도 '트윈스의 심장'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박용택이라는 인물의 상징성을 고려해서 역대 프랜차이즈 선수 은퇴식 중 가장 화려하게 진행됐던 이병규의 은퇴식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더 화려하게 은퇴식을 치러줄 의향이 있다고 차명석 단장이 밝힌 바 있다. 다행히 2022년부터 야구장에 100% 관중 입장과 육성 응원이 허용됨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은퇴식과 영구 결번 지정식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2년 7월 3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은퇴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영구 결번 지정식도 진행될 예정이며, 구단에서는 가장 성대한 은퇴식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구단 차원에서 힘써서 선수 생활 가장 많이 들었던 응원가[36]도 은퇴식에 한해 원곡 저작권 보유자인 방시혁이 사용을 허가해 주었다. 거기에 중계 방송사도 박용택이 소속되어 있는 KBS N SPORTS에서 진행된다.[37] 이날 경기에 김태균의 선례가 있는 은퇴선수 특별 엔트리를 통해 3번타자 좌익수[38]로 선발 출장하였으며, 경기 시작 이후 환호를 받고 바로 김현수로 교체되었다.

은퇴식 당일은 모든 선수들이 33번을 달고 경기에 임하고 이름은 모두 박용택의 별명으로 채워졌으며[39] 관중 역시 이미 예매 단계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면서 만원 관중 하에[40] 은퇴 경기가 치러졌다. 하필 가장 성대한 은퇴식이 되어야 할 경기에 올 시즌 불안한 페이스를 보이던 임찬규를 선발로 내보낸 류지현 감독을 LG 팬들이 강하게 비판했지만[41][42], 다행히 임찬규는 롯데 타선을 5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경기도 이기면서 휘문고 선배 박용택에게 최고의 예우를 보여주었다. 오히려 5회까지 60구도 던지지 않은 완봉 페이스의 임찬규를 너무 빨리 내린 것과 타자들이 1점밖에 뽑지 못한 것 때문에 나머지 선수단이 까였으며, 특히 7회초 정훈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한 정우영은 대차게 까였다.[43][44] 다행히도 7회말 채은성 오지환 구승민을 공략하여 3점을 뽑아낸 덕분에 LG는 4대 1 승리, 위닝시리즈를 거두면서 팀 레전드의 마지막 가는 길을 좋게 장식하며 체면을 세웠다. 롯데 팬들도 경기를 지기는 했으나 처참하게 진 것도 아니었다 보니 경기 후에도 상당수가 남아 은퇴식에 참여했다. 박용택도 이를 인지하고 롯데 팬들에게도 인사를 남겼다. LG 팬들은 남아줘서 고맙고 어쩌면 이대호 은퇴식 때를 대비한 빌드업일지도 모른다는 반응이 있었다.[45]

경기 종료 후 LG를 상징하는 줄무늬가 새겨진 흰색 정장을 입고 그라운드로 내려온 뒤 영구 결번식과 은퇴식이 거행되었다.[46] 영구 결번식에는 LG의 두 영구 결번 주인공 김용수 이병규가 영구 결번을 직접 축하해 줬으며 뮤지컬 배우 카이의 지금 이 순간의 축하무대 후 고별사를 진행했다. 방송 출연이 많은 만큼 대본 없이 고별사를 진행했는데[47] 상대팀인 롯데 팬들을 향해서는 롯데와 연관된 별명인 사직택졸렬택을 직접 언급하며 2009년 타격왕 사건에 대해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막판에 가족 얘기를 할 때는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고별사 이후에는 고별가로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른 뒤[48] 선수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헹가레를 받으며 영구 결번식과 은퇴식을 마무리하였다.

여담으로 은퇴식 날 박용택 자서전을 발간한 출판사 측에서 구단과 별개로 싸인회를 개최하기로 했는데 박용택의 의중으로 시간 제한을 두지 않고 경기 개시 전 12:30~14:00, 경기 종료 후 시간 무제한이라는 파격 조건의 싸인회를 개최했다. 실제로 경기 종료 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물론 직관을 하지 못한 팬들까지 뒤늦게 경기장을 찾으면서 새벽까지도 싸인줄이 이어졌는데 그럼에도 무려 새벽 3시 30분까지도[49] 일일이 다 싸인을 해줬다고 한다. 더욱이 당일 서울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기온이 34.2도까지 올라갔으며 밤 또한 11시에 28도를 기록할 정도의 열대야였지만, 박용택은 구단 직원의 미니선풍기를 쐬면서도 땀 범벅이 되었지만 끝까지 웃으며 팬서비스를 해주었다고 한다.[50]

여담으로 박용택 아내의 인스타 스토리에 의하면 은퇴식 당일날 아내를 못 알아봤다고 한다. 이를 보고 ‘영구 결번에 이어 영결식까지 할 뻔했다.’ ‘가정에서도 은퇴할 뻔했다.’[51] 새로운 별명으로 ‘난죽택’이 생겼다는 등 각종 드립이 이어지기도 했다.

4.2. 해설 위원 경력

2021년부터 김태균과 함께 KBS N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발탁되며 해설택이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팬들은 다른 해설위원들처럼 특정 팀 편파 중계를 안 하기만을 바라고 있다.[52]

시범경기부터 해설에 참여하고 있는데, 적당한 딕션에 편파도 없었고, 적절한 유머도 첨가하여 좋은 평을 듣고 있다. 덤으로 목소리도 듣기 좋다는 평이 대부분.

4월 18일 삼성과 롯데의 경기가 KBS 2TV 지상파 중계로 변경되었는데[53], 뜻밖에도 그가 해설위원으로 등판하였다. 이날 김현태 아나운서의 횡설수설과 망언을 혼자 수습하며 진땀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4월 24일 KBS 지상파 중계로 잡힌 SSG와 키움의 경기에 전 키움 감독이었던 장정석 해설위원과 함께 또 지상파에 등판하였다. 이로써 지상파 중계에도 투입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 5월 5일 KIA와 롯데의 경기에서도 장정석 해설위원과 함께 등판하면서 KBS의 지상파 야구 캐스터[54]들과 한 번씩 호흡을 맞췄으며 5월 15일 KIA와 NC 경기에는 단독해설로, 5월 19일 NC와 LG 경기에서 장정석 해설위원과 함께 투입되면서 현재까지 2021년 KBS 지상파에서 방송된 모든 경기에 투입된 유일한 해설위원이 되었다.

정작 그의 해설을 제일 안 좋아하는 건 LG 팬들인데, 편파 중계라고 욕먹을 가능성을 의식해서인지[55] 오히려 지나치게 LG에게 박하게 해설을 한다는 의견이 있다.[56]
그리고 결과적으로 박용택 해설 시 LG의 승률이 처참한 게 제일 문제이다.

다만 심판친화적 해설이 종종 보이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심판의 제멋대로 스트라이크존이 명백한 상황에 가끔 옹호론을 펼치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팬들 사이나 인터넷상의 밈을 아는 듯하면서도[57] 존재만 알고 내용을 모르는 듯하여 팬들 입장에서는 종종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상황이 나오기도 한다.[58]

8월 13일 KIA와 SSG의 경기 전 노트북에 나무위키가 접속되어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인터넷 밈을 아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날 해설 때 야구 국대가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정신력으로 야구할 거였으면 저는 홈런 1500개 쳤다'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59]

KBS의 포스트시즌 중계에서도 장정석과 함께 해설로 나서고 있다. 박용택의 첫 포스트시즌 중계였던 2021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친정팀 LG가 두산에게 10:3으로 완패하며 탈락했는데, 강승화 아나운서의 두산 승리 콜을 착잡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게 카메라에 잡혀 LG 팬들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기도 했다.[60]

2022 시즌부터 그동안 여성 아나운서의 전유물이었던 아이 러브 베이스볼 MC로 활약하고 있다. 주 1, 2회 출연하며 박용택이 MC로 나오면 패널은 강성철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은 장성호로 고정되며 경기결과 요약은 강성철이 읊는다.

편성 사정상 거의 키움 경기 때 자주 해설을 하는데 이정후의 칭찬을 이래저래 많이 하고 있다. "이런 선수는 하루 빨리 해외로 가야됩니다." 같은.[61]

2022년 올스타전에서 유희관과 함께 해설을 맡았고 서로 엄청난 케미를 보여주면서 신들린 예능 해설을 선보였다.

2023년 들어서도 물오른 해설을 보여주며 사실상 KBS 야구 간판해설로 자리잡았다. 팬들의 반응도 좋고 동의하는 분위기. 특히 KIA팬들에게 상당히 호평을 받는데 8월 1일 포항 삼성전에서 비디오 판독 오심을 정확히 지적하면서 팬들에게 높은 해설 실력을 보여주었다.

2023년 11월 10일 한국시리즈 3차전을 중계했다. 본인의 현역시절 그것도 데뷔 시즌이던 2002년 이후 21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LG 트윈스가 지난 가을과 달리 본인의 중계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을 지켜봤다.[62] 이후 5차전에서는 직관을 갔다가 LG의 우승확정 후 덕아웃을 방문하여 후배들이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였다.

4.3. 방송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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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 선수 시절인 2013년 12월 아빠! 어디가?의 프로야구 선수 버전의 아빠! 진짜가?에 동료 선수인 이병규, 이진영, 손혁과 함께 출연. 딸과 처음으로 동반 출연했다. #
  • 은퇴 후에는 방송계로 진출. 2020년 12월 4일 강호동의 밥심에 같은 해 은퇴 선언한 정근우와 함께 출연했다. #
  • 2021년 5월부터 노는 브로에서 맏형으로서 고정 출연하고 있다. 출연 결정에는 지인들의 조언이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
  • 2022년 6월부터 최강야구에 주장으로 출연 중이다.[63] 안타깝게도 어느 순간부터 타격감 면에서 상당한 부진에 빠져 3번 타자이자 지명 타자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탓인지 제2대 감독, 김성근 감독이 오자마자 특타 훈련을 당했다. 아예,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2023 시즌 직전까지 특타 1번 고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특타를 통해 원래의 실력을 빠르게 되찾아 김성근 감독의 '이모티콘(!)'이 담긴 칭찬 메시지까지 받았고, 2023 시즌 3할은 기본, 타격 컨디션이 좋을 때는 4할에 가까운 타율을 보이며 중심타선에 안착, 감독과 팀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조선의 4번타자이자 작년에 은퇴하고 바로 합류한 이대호와 시즌 최다 타율왕, 타점왕 경쟁중이다. 본인도 예능이지만 1년동안 너무 놀림을 당했다며 올 해 잘해보겠다고 절치부심한 결과가 나오는 듯. 최강야구를 통해 LG 시절 경기장에서 미처 볼 수 없었던 인간적인 매력[64]이나 노력하는 모습에 팬이 되었다는 타구단 팬들, 일반인들도 상당히 많다.
  • 아이 러브 베이스볼의 진행자를 맡아 MC로 데뷔했다. 본인이 MC를 맡는 날에는 강성철이 필히 같이 투입돼서 경기결과 요약은 강성철이 읊어준다.

5. 별명

김별명 못지않게 별명이 늘어나서 결국 항목이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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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팬 서비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습니다. 팬보다 위대한 팀은 없습니다. 팬보다 위대한 야구도 없습니다. 우리 후배들에게 이 한마디를 하고싶었고, 진심으로 새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승반지 없이 은퇴합니다. 은퇴하는데! 우승반지 대신 (팬) 여러분의 사랑을 (심장을 가리키며) 여기다 끼고 은퇴합니다.
- 은퇴식 당일 박용택이 팬들에게 남긴 고별사 중 일부. 그가 평소에 팬들을 얼마나 챙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고별사다.[65]

각종 행사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잘 해주기로 유명하며, 팬들에게는 사인받기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사인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팬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좋은 케이스.

러브 페스티벌 행사에서는 그의 사인을 받지 못한 팬들에게[66] "끝나고 해드릴게요"라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행사가 끝난 후에 거의 한 시간을 사인해 주고 있었다. 결국 구단 관계자가 팬들의 양해를 구하고서야 사인회가 종료되었을 정도다. 또한 2014년에 있었던 두번째 FA에서는 협상을 기다리던 팬들이 구단 사무실 근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67] 박용택은 계약이 끝난 후, 사무실 바깥에서 기다리던 팬들에게 제일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사인을 해 주었다고 한다. 이후 있었던 인터뷰에서는 "팬 여러분 덕택에 계약할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했고, 덕분에 팬덕택이라는 훈훈한 별명이 하나 더 늘어났다.[68] 또한 "누가 내 사인을 비싸게 판다고 하면, 내가 팬들에게 사인을 남발해서 희소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발언으로 야구팬들의 찬양을 받기도 했다.[69][70] 자신의 사인볼이 중고나라에 올라온 것을 기자에 의해 알게되자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2017년 말 류중일 감독의 취임식 직후 몰려든 팬 중 한 명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라고 부탁했는데 이를 거절하면서 갑분싸 되는가 싶더니, 바로 "사진 대신 사인 해 드릴께요" 라고 하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71] 그리고 또한 퇴근 후 팬 사인 도중 새치기 하는 팬에게 "뒤로 가"라고 하면서 뒤로 보냈다. 이를 미루어보면 매너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것을 알수 있다.

LG 트윈스 경기를 직관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만나봤을 법 한 달마아저씨(박제찬씨)[72]가 2014년 6월 13일 돌아가시자, 비보를 듣고 직접 빈소에 찾아 조문을 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잔잔한 파장을 남겼다.[73] 입관식에도 참석하셨으며, 입관 때 본인이 쓰던 배트를 함께 넣어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가 나온 당일 박용택은 홈런포함 4타수 3안타 2타점의 맹타를 치며 보답을 했다. 참고로, 달마아저씨의 빈소에는 구단 관계자들이 찾아와 장례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며, 유지현 코치도 조화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LG 프런트가 칭찬받은 드문 사례들 중 하나.

사랑의 골든글러브 2회 수상(최다 수상자)에서 볼 수 있듯이 프로야구 선수 중 대표적인 선행 천사로 알려져 있으며, 팬들과 함께 자신의 야구용품을 경매에 내놓아 거둔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가 하면 2011년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 소감으로 팬들과 같이 연탄봉사를 제안해 사비를 털어 행사를 시작했고, 2011년부터 시작된 연탄 봉사는 팬들과 LG 선수단 대부분이 참여하는 연례 행사로까지 정착되었을 정도이다.

앉은자리에서 사인 1000개는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은퇴식 이후에 정말로 잠실 야구장 뒤편 캐치볼 그라운드에서 무제한 사인회를 개최하고야 말았다. 밤 12시가 훌쩍 넘어갔는데도 줄이 가득할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포토타임까지 생략해가면서라도 이걸 다 해줬고, 결국 새벽 3시반이 지나고서야 출판사 측에서 정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더 대단한건 다음날 아침 최강야구 촬영이 있었다는 것이다.

7. 사건사고 및 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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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담

  • 드물게 알려진 일인데, 타격 준비 자세에 걸리는 시간이 그 유명한 박한이보다 더 오래 걸린다. 다만 박용택은 처음에 타석에 들어설 때만 하지만 박한이의 경우엔 매 투구 1구 1구마다 하므로, 실질적으로 경기를 지연시키는 쪽은 박한이 쪽. 재미있게도 둘 다 1979년생에[74] 박씨, 대졸, 좌타자,[75] 그리고 백넘버가 33번이다.[76]
  • 33번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쓴 번호로, 당시 몸이 말라서 감독님이 꽉 찬 번호를 달라고 해서 달게 된 번호라고 한다. 참고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및 프로에서까지 무려 31년 동안 이 번호만을 썼는데, 나중에 알기론 소속팀에서 일부러 33번을 비워줘서 달 수 있었다고.
  • 부상으로 인해 어깨가 좀 약하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단점이 없는 호타준족인데도[77] 이상하게 저평가 받는 경향이 있다. 아마 활동 시기가 암흑기를 관통했고, 거기에 수위타자 논란까지 일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홈런 타자가 아니기에 화려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한다.
  • 2002년 데뷔하자마자 이병규 이후로 오랜만에 1군에서 풀타임으로 뛰는 신인타자로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시즌 후반부를 달려가던 9월 중순경 어느 날, 세수를 하다가 난데없이 세면대를 잡고 팔굽혀펴기를 시도하다 세면대가 박살나 손가락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한동안 라인업에서 제외되었으며 당시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선수도 아니다."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본인조차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을 만큼 흑역사 중 하나이다.
  • 2009년 11월 즈음에 LG 트윈스 갤러리에 본인 인증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인증글에 달린 댓글로 그날 박용택이 어쨌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 일명 쥐갤실록으로, 쉽게 말해서 박용택의 그날그날 성적에 따라 리플 분위기가 바뀐다는 것이다. 박용택이 잘할 때는 '메느님 찬양' 같은 댓글이 주로 달리지만, 찬물이라도 끼얹는 날에는 '찬물이 콸콸콸' 같은 찬물드립부터 시작해서 '마무리 투수 출격' 이다. 심지어 '또 그러면 집에 김동주 (or 이호성)찾아간다'는 차마 못 할 말까지 달릴 정도.그래도 비시즌 동안에는 박용택 응원 댓글이 많이 달린 걸 보면 LG팬들의 박용택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5, 6월달의 현기증 나는 찬물질로 인해 미칠 듯한 십자포화를 맞고 결국에는 공지에서 내려가버리고 말았다. 현재는 개념글 첫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2013년의 용암택 모드로 쥐갤러들의 재평가를 받으며 2013년 시즌 이후 당당히 공지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1월 17일, 갑자기 인증 글이 삭제되어 버렸다. 쥐갤.. 카오스행.. 삭제 사유는 본인이 직접 지우셨다고. 이에 야갤럼들은 박용택이 광역 고소미로 적금을 받아서 세 번째 FA를 챙기려 한다는 드립이 흥했다. 박용택이 못 할때마다 욕 댓글을 하나둘 적던 쥐갤럼들은 단체로 패닉 상태다. 이후 박용택 마이너 갤러리가 새로 생기면서 실록은 이 곳에서 편찬되고 있다. 여전히 실록은 욕이 반 사랑이 반이다.
  • 2012년 조인성이 FA로 팀을 떠나게 된 이후 박용택이 다시 FA가 될 경우 조인성처럼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용택의 경우 조인성과는 다르게 첫 번째 FA에서 소속팀 우선 협상기간 때 구단이 엄청난 옵션을 걸었음에도 군말하지 않고 곧바로 도장을 찍었다. FA의 경우 보통 시장에 나가는 걸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올린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이며 그만큼 구단에 충성도가 높다. 향후 LG 감독까지 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며 어깨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열심히 뛰어준 공로도 있는 선수다. 반면에 조인성의 경우 이미 전 FA에서 돈을 더 받기 위해 협상 기간을 질질 끌은 적이 있으며 SK에서 더 큰 금액을 지불했기 때문에 이동한 것이지 구단 윗선과 관계가 나빠서 간 것은 아니다. 결국 2014 시즌 후 FA 재계약 성공.
  • 2013년 2위 확정이 되자 참았던 눈물이 폭발해 눈물택과 콧물택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 2018시즌 종료 이후 4차 회의까지 갔는데도 좀처럼 FA 재계약 협상이 안 되고 있다. 구단은 박용택의 불혹을 앞둔 나이도 문제거니와 2018 시즌에 프로 통산 현역 선수 최다안타 경신을 제외하면 박용택이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수비도 안 되는 지명타자일 뿐만 아니라 이 해 팀이 또 완벽한 DTD 시즌을 보내면서 LG의 주장으로서의 자격ㆍ리더십 부재 논란이 지난 2011 시즌보다 더 크게 부각되었던 터라 큰 계약을 주기가 어려운데다가 시즌 중후반 팀의 극적인 추락으로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부각된 박용택의 리더십 부재ㆍ주장 자격 논란으로 일부 LG 팬들의 박용택을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지금 상황인데, 박용택은 진짜 4년 계약을 원하는지 시간만 계속 흐르고 있으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박용택이 욕심을 부린다는 의구심이 생겼으나 구단과 2년 계약에는 합의를 봤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봉 협상에서 또 문제가 터지면서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나이가 마흔을 앞둔 데다가 지명타자 아니면 나올 수가 없는 수비 못 하는 선수에게 2년 계약이면 대우가 나쁘다고 할 수가 없는데도 난항을 겪자 엄청 까였다. 2019년 1월 20일 LG와 2년 총액 25억원(계약금 8억원, 연봉 8억원, 옵션 1억)에 계약 체결했다. 우호적인 팬은 지난 2번의 FA 계약 때 적게 받았다는 평을 받았는데 말년에 보상받은 느낌이라는 평을 하고 부정적인 팬들은 노장에게 많이 줬다고 했다.[78][79][80] 사실 논란이랄 것도 없는 사안이다.
  • 메이저리그까지 살펴보면 콜로라도 로키스의 강타자였던 '산사나이' 토드 헬튼과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한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팀의 암흑기와 전성기를 모두 겪었다. 또한 둘 다 프로 선수 생활 동안 불과 한 번의 월드 시리즈, 한국 시리즈 무대에 올라가서 우승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또한 꾸준하게 장수한 리그 정상급 타자였고, 리그에서 포지션별 최고의 타격을 보여준 선수에게 수여하는 KBO 골든글러브 MLB 실버 슬러거를 똑같이 4번씩 받았지만 시즌 MVP는 못했다. 다만 타자친화구장인 쿠어스 필드에서 활동했던 헬튼과는 달리, 박용택은 투수친화구장인 잠실 야구장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KBO와 MLB의 비교 여부를 떠나서, 단순히 기록만 비교해봐도 박용택이 낮게 평가된다.[81]
  •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그의 응원가와 조인성의 응원가를 합친 무적엘지 조인성이 퍼졌는데 미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자 이거야말로 진정한 잉금님의 응원가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본래 응원가는 졸렬한 응원가라고 까였다.
  • 특이하게 30세 이후로 뛰어난 성적을 낸 타자 중 한 명이다. 보통 신체적 능력이 전성기인 27세 이후로 점점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고[82] 30세 전후로 성적이 떨어지면 몰락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박용택은 이를 정면으로 깨뜨리고 있다. 당장 밑의 통산 성적을 봐도 알 수 있다. 20대에는 .280정도 치는 적당한 중거리 히터였다가, 만 30세 시즌에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후, 타율면에서 단 한 시즌도 3할 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 이를 두고 혹자는 농담삼아 20대 때는 2할을, 30대에는 3할을 기록하고 있으니 40대가 되면 4할치는 거 아니냐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30대에 타고투저 시즌을 많이 만나서가 아니고 할지 모르지만 조정 타격수치를 봐도 30대 > 20대가 맞다. 물론 30대에 들어서 지명타자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아지며 타석에 집중할수 있게 되어 타격에 버프를 먹은 점이 있긴 하다. 따라서 나름 시대를 잘 탄 선수이기도 하다. 운이 좋았다는 뜻.[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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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 야구선수 이재우와 상당히 닮았다. 특히 이재우가 2013년 들어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거의 도플갱어 수준. 그렇다보니 이재우는 돡용택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소위 팬들은 이 맞대결을 미러전이라 칭한다. 사회인 야구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만화가 유영태도 이런 개그를 써먹었는데, 이재우가 사회인 야구 코치로 오게 되었다며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박용택이다. 뭐 그냥 대놓고 노린 개그다. 이 미러전에서의 성적은 타율 .400(15타수 6안타)으로 박용택의 승리. 박용택이 스톡킹에 출연해서 밝히기론 이재우가 마운드에 있을 때 한 번 타석에서 씩 웃어주면, 혼자 땅에 던졌다 하늘에 던졌다가 하는 식으로 스스로 무너져서 상대하기 쉬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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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용택과 이재우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기동창[84]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6년 시즌 들어 박용택만 왕따당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2015-16 오프시즌에 심수창이 FA로, 이재우가 방출 후 이적으로 한화 이글스에서 모두 만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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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첫 해 풋풋한 박용택 두 프랜차이즈 스타의 풋풋하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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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2년차였던 2003년의 어느 날 2005년 올스타전에서 MBC 청룡의 1983년 유니폼을 입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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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2010년대 들어와서 안경 쓰고 콧수염을 기르고 살을 불린 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아랍, 인도 이미지 또는 일본순사 이미지가 붙어서 그렇지 20대 시절 박용택은 90년대 LG의 훈남선수였던 서용빈 김재현의 뒤를 잇는, 아니 동시대 LG의 꽃미남 듀오였던 이대형, 심수창과 함께 크보 대표 미남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잘생긴 선수였다. 그래서 2010년대에 야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은 박용택이 이런 시절도 있었냐 하면서 놀라는 경우도 있다. 사실 지금도 또래 선수들에 비하면[85] 잘 생긴 편이다. 2017년 KBO 골든글러브를 탔을 때, 나지완보다 내가 잘 생겨서 받은건가 농담조로 말한 것을 보면, 본인도 나름 외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2018년 5월 20일 LG그룹의 회장이자 LG 트윈스의 구단주인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날 LG 트윈스는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는데, 이 당시 주장을 역임하고 있던 박용택이 검은 리본을 달고 스타킹을 끝까지 올린 '농군 패션' 차림으로 경기하자는 제안을 했고, 이 경기는 차우찬의 호투에 힘입어 LG가 한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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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구마구2014에서는 모마만의 고유한 엘리트 중 하나로 나왔는데,[86] 그 성능이 심히 사기스럽다. 당장 컨택트만 봐도 82 백인천[87] 엘리트와 똑같다. 그리고 2014년 12월 3일 마구마구에서도 엘리트가 나왔는데, 컨택은 모바일 버전보다 2가 낮지만 수비와 스피드가 똑같이 84로 강화되었고 퀵스로잉이 잠재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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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의 아버지
  • 트와이스 일본인 멤버 사나가 아버지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야구팬덤에서는 박용택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들이 돌았다.
  • 그외 닮은 사람들이 많다. 야구인 박노준, 탤런트 이병욱, 남파간첩 무하마드 깐수(…)와 닮았다. 박시후와도 닮았다. 현재 KBS 유튜브에 태조 왕건, 무인시대 등이 무료 스트리밍되고 있는데, 이병욱이 사극에 자주 나오는 배우라서 박용택이 자주 소환될 듯하다. 냇가에서 전투하면 찬물택, 칼을 휘두르면 박용택 헛스윙이나 특타택, 장수를 베면 홈런택, 졸개를 베면 안타택, 헛소리를 하면 병살택 등 드립이 성행하고 있다.
  • 2016년 KBO의 사회공헌사업으로 대한적십자사와 손을 잡고 구단 별로 적십자사 홍보대사를 뽑았는데, LG에서는 박용택이 뽑혔다.
  • OPS 1.000을 한번도 넘겨본 적이 없다. 심지어 타격왕 시즌인 2009년에도 0.999라는 충격과 공포의 숫자를 남겼다. 물론 지나치게 크고 아름다운 통산성적을 보면 OPS에 크게 눈이 안 가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통산성적이나 시즌성적들이 좋기 때문에 놀라운 기록이기도 하다.
  • 찬물 이미지 때문에 득타율이 낮은 선수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통산 득타율 0.309지난 10년 동안 프로야구 득타율 3위에 랭크될 정도로 높은 득타율을 기록했다.
  • 도루 성공률이 굉장히 좋다. 260번 성공에 57번 실패로 82.44%를 기록할 때도 있었다. 역대 KBO에서 200도루 이상한 선수들 중에는 가장 성공률이 높았다. 하지만 세월에 따른 주루 능력의 하락은 어쩔 수 없는지 성공률이 큰 폭으로 떨어져 2017년 종료 기준으로 305성공 86실패(78.0%)를 기록 중이다. 물론 이도 충분히 높은 성공률로, 박용택보다 높은 도루 성공률을 기록중인 선수는 이종범(81.9%, 은퇴), 김상수(79.8%), 김민호(78.9%, 은퇴) 이종욱(78.8%, 은퇴), 김종국(78.4%, 은퇴) 5명에 불과하다.
  • 응원가가 바뀐 뒤로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쇠화가 극심하게 왔다. 응원가가 New ways always[88]이던 시절에는 LG 최고의 타자이자 리그 최고의 타자였지만 응원가가 바뀐[89] 2018년부터 귀신같이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뭐, 2018년에 한국 나이 40세였으니 부진과 부상이 온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인데 하필 응원가 저작인격권 사태의 시기가 겹쳐 팬들 사이에서 괜히 갖다붙인 게 크다.
  • 코로나 19 여파로 미국에 KBO 리그 경기가 중계되면서 뜻하지 않게 미국 야구 팬들의 인기를 조금씩 모으고 있다. 미 현지시간으로 5월 6일 오전 5시 30분에 중계된 두산전 타석에 오른 모습과 외야 관중석에 걸린 걸개를 ESPN에서 캡쳐해 보여줬는데, 이것이 계기가 된 듯. 특히 박용택의 외모와 착용한 안경이 주목을 받았는데, 41세라는 나이에 못지 않은 외모에 "전혀 41세 같지 않다."라는 댓글과 함께 '그가 쓴 Reading glass가 마음에 든다.'는 코멘트도 달렸다. 참고로 reading glass는 미국에서 독서 때 착용하는 안경으로 박용택이 쓴 안경과 흡사해 불린 것이다[90]. 또 야구 팬들답게 박용택이 생애 통산 2,319개의 안타를 기록했다[91]는 것에 '대단한 선수'라는 칭찬도 마지않게 올리고 있다. 일부 미국 팬들 가운데 아직 KBO 최애팀을 고르지 못한 일부는 박용택 때문에 LG 팬이 되겠다는 댓글도 달았다. #
  • "XX, 직구 하나도 안던지네"라는 박용택으로부터 유래한 밈이 있다. # 2020년 6월 13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롯데의 마무리 투수 김원중을 상대로 9회말 원아웃 주자 1,3루의 역전 찬스를 맞이하여 타석에 들어섰는데 그만 변화구가 3개 연속 들어와서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덕아웃으로 복귀하며 혼자서 했던 말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용택의 별명에 직구택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후 본인의 해설 위원 활동 중에도 김원중이 등판할 때나 타자들이 못치고 들어갈 때 혼잣말을 한마디씩 하는 타자들이 많고 본인도 그와 관련하여 유명한 짤이 있다며 유쾌하게 이 일화를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 KBO 리그 최후의 1970년대생 선수이다[92]. 박용택이 2020시즌 후 은퇴를 하면서 1970년대생 현역 야구선수들은 더 이상 KBO 리그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최훈의 신작 프로야구생존기 127화에서 특별출연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건 아니고 커브볼 일루전[93]에 대해 자문을 구한 인물로 나온다.
  • 프로야구에서 보기드문 성골 로컬 보이 중 한명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초-중-고교를 모두 졸업했고 심지어 대학까지 서울에 있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94]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한평생을 LG에서만 뛰다가 은퇴했으니 스타 반열에 오른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성골에 가장 적합한 선수라고 볼 수 있다.[95][96][97][98]
  • 김용달과 유투브 출연을 통해 우투좌타에 대한 담론을 나누었는데 우투좌타로 레전드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우투좌타들은 대부분 오른손잡이다 보니 평소에 왼손을 쓸일이 없다보니 정교함 요하는걸 할수 없다. 우투좌타 출신들이 펑고를 칠경우 대부분 우타에서 치며 김현수 오지환 자신의 예를 들며 우타에서 칠경우 일반 우타자보다 비거리가 더 나오며 오른손 잡이가 좌타석에서 치는 게 가능하면 차라리 스위치 히터를 하는게 낫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 박용택 자서전이 나왔다. 제목은 오늘도 택하겠습니다. 2021년 10월 1일부로 판매가 시작되면서 궁금한 팬들의 구매러쉬가 이어지고 있는데 시작부터 현역 마지막 타석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대비할 틈도 없이 기억폭행을 당한 LG팬들이 괜히 책에다 화풀이를 하고 있다. 그의 흑역사인 졸렬택과 청문회 사건도 언급하고 있다.[99]
  • 2022년 2월 21일에 열린 고려대학교 새내기 총학생회 OT에 연사로 초청되었다.
  • 2022년 7월 3일 은퇴식[100]과 더불어 LG 트윈스의 3번째 영구 결번 선수가 되었다.
  • 2022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유강남 채은성이 잔류와 이적 중 어디를 골라야하나 고민이 되어 조언을 구하러 찾은 적이 있는데, 박용택은 돈에 더 가치를 두면 이적하고, 팀에 남는 것에 더 가치를 두면 잔류하라는 식의 조언을 해줬다. 그러면서도 자긴 20억 더 주는 팀이 있었지만 팀에 남아 선수생활을 마쳐 영구 결번을 받았다며 내심 둘의 잔류를 바라는 것처럼 뜻을 내비쳤으나 결과는 둘 다 각자 롯데와 한화로 새둥지를 틀었다.
  • 타자 쪽에서 박용택이 LG의 19년 원 클럽 플레이어라면, 투수 쪽에서는 박용택보다 1년 먼저 입단하고 은퇴한 이동현이 LG의 19년 원 클럽 플레이어다.[101] 둘 다 2023년 현재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2023년 한국시리즈 5차전 유광잠바를 입고 잠실구장을 찾아 LG 트윈스의 29년만의 통합 우승 순간을 함께하였다. 본인은 다음날인 6차전 해설을 맡을 예정이었음을 알리면서 LG 팬분들은 내일 경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 정작 LG가 우승하고 나서는 엄청나게 기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부러운 마음이 컸다고 하며 극도로 우울해질 정도로 마음이 심란해졌다고. 선수 시절에 우승을 못했던 게 참으로 큰 한이 되었던 듯하다. #
  • 차우찬에 의하면 엄청난 주당.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에는 컨디션 조절을 위해 회식 자리를 제외하면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 은퇴 후 비염 때문에 코 성형을 했다. #

9. 주요 기록

9.1. 2,500안타 달성

2020년 10월 6일, 잠실 삼성전에서 이승현을 상대로 드디어 통산 2,500 안타를 역대 최초로 달성하였다. 이는 그가 데뷔 시즌인 2002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꾸준택의 면모를 보여준 덕에 결국 이루어 낸 대기록이다. KBO 최초이고, 양준혁의 기록보다 182개 더 많다.

2500안타는 매우 진귀한 기록인데 우리보다 프로야구의 역사가 수십 년 앞서있고 선수층도 훨씬 두터운 일본조차도 2,500안타 이상 기록자는 채 10명이 넘지 않으며, 현재까지도 타격의 달인, 전설 논객으로 대접받는 장훈이 3,085안타로 일본 프로야구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이다. 물론 일본 선수 중 메이저리그를 경력을 합치면, 스즈키 이치로가 4,300개가 넘어 압도적인 1위이며 장훈이 부동의 2위이지만 다른 리그로 진출하지 않은 선수로 한하면 장훈이 1위의 기록을 차지하게 된다. 이 외에도 통산 안타 2,500개 이상의 기록은 노무라 카츠야, 오 사다하루, 마쓰이 가즈오, 마쓰이 히데키 등 일부만이 넘어선 기록이며, 오치아이 히로미츠, 나가시마 시게오, 후쿠도메 코스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 내로라하는 대타자들도 넘지 못한 기록이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적어도 한국에서 역대 최다 안타, 최초 2,500안타라는 기록이 어느 정도의 입지인지 비교는 가능하다. 비록 타격왕 경쟁에서 보여준 논란, 선수생활 막판의 영양가 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코 그런 해프닝으로 폄하될 수 없는 수많은 대기록을 달성한 대선수임은 분명하다. 타 팀 선수들이 괜히 마지막 방문 경기마다 은퇴 기념식을 해주는게 아니다. 더군다나 이 기록은 대졸 선수로서 달성한 기록인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근 고졸 선수들이 주류를 이루는 프로야구의 추세를 보면 고졸 선수들이 대졸 선수들에 비해 같은 조건이라면 프로 무대에서 최대 4년은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있을테니 2,500안타의 기록 자체는 언젠간 깨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졸 2,500안타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어 보인다.

박용택의 은퇴 이후에 누가 그의 기록을 넘을 수 있을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현역 선수 중에서 박용택 다음으로 많은 안타(2,209안타)를 친 김태균은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제 활약을 못하다가 8월 15일 이후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끝내는 박용택보다 일찍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후의 현역 선수들은 두 선수의 기록보다 밑이다. 그것도 2,200안타보다 아래에 있는데, 현역 선수 중 가장 많은 안타를 치고 있는 손아섭(이하 2023년 9월 28일 기준, 2,403안타)을 비롯해, 최형우(2,305안타) 김현수(2,207안타), 이용규(2,070안타), 최정(2,088안타)은 2,000안타를 돌파했고, 황재균(1,974안타), 강민호(1,949안타)가 2,000안타 가시권이라고 볼 수 있는데[102], 문제는 최형우는 상당히 많이 노쇠화하였으며, 이용규 또한 이전 시즌을 통으로 쉰 데다가 부상으로 인해 출전 횟수가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103][104] 박용택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는 매 시즌 150안타 이상을 치고 있는 손아섭과 김현수[105]정도만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박용택의 이 기록은 향후 4~5년 동안은 유지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박용택의 기록은 오로지 한 팀에서만 쳤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2,504안타 자체는 향후 손아섭, 김현수 등의 타자가 넘어설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단일 팀에서 2,504안타는 오랜 시간 동안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손아섭, 김현수는 타팀으로 이적했기에 이 기록을 깰 수 없게 되었고, 2022년까지 롯데 자이언츠 한 팀에서만 2,199안타를 기록한 이대호는 2022 시즌 후 은퇴했다. 그 다음으로 이 기록에 근접해 있는 타자는 2023년 마감기준 현재 2133안타를 때려낸 최정이 있으나 최정은 안타 생산 보다는 홈런과 OPS에 큰 강점을 지닌 타자라[106] 남은 커리어에서 박용택을 넘어설 정도의 안타를 기록할 가능성은 역시 크지 않다. 최정의 밑으로는 1,812안타의 전준우까지 내려가야 한다.

9.2. 수상 내역

수상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3회 (2009, 2012, 2013)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2017)
플레이오프 MVP (2002)
타율 1위 (2009)
득점 1위 (2005)
도루 1위 (2005)

9.3. 그 외 기록

  • 개인 통산 최다 안타: 2504 안타
  • 개인 통산 최다 타석: 9138 타석
  • 개인 통산 최다 타수: 8139 타수
  • 개인 통산 200홈런-300도루 동시 달성자(역대 1호)[107]
  • 10년 연속 3할 타율: 2009~2018(역대 1호)[108]
  • 7년 연속 150 안타: 2012~2018(역대 1호)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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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경력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Baseball Team
2006년 WBC
플레이 스타일
사건사고 및 구설
2009년 타격왕 획득 논란 · 2011년 LG 트윈스 청문회 사건 · 은퇴 투어 논란 · 양의지 배트 헤드샷 사건
기타
별명 · 박용택 마이너 갤러리 (XX아 나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 빅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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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2011년 4월 KBO 리그 월간 MVP
송승준
( 롯데 자이언츠)
박용택
( LG 트윈스)
이병규
( LG 트윈스)

11. 관련 문서


[1] # [2] # 슬러거 변신 선언으로 벌크업을 했을때는 100kg가 넘어갔었다. 하지만 벌크업이 오히려 독이 되어 대실패한 이후 곧바로 체중을 감량하였다. [3] 신인이던 2002년을 시작으로 2003년, 2005년~2009년, 포지션 플레이어로서 마지막 주전이었던 2015년에 주전 좌익수로 출전하였으며, 주로 중견수로 출전했던 2012년과 2013년에도 좌익수로 많은 경기를 뛰었다. 더불어 은퇴시즌인 2020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 한경기 이상을 출전한 사실상 박용택을 대표하는 포지션이다. 은퇴식을 치렀던 2022년에도 좌익수로 이름을 올렸다. [4] B I G 5라 불리던 쟁쟁한 외야 주전 자원을 보유했던 LG의 상황상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주전 지명타자를 맡게 되었다. 이후 다시 외야로 돌아갔으며 2016년부터 전업 지명타자가 되어 2020년 은퇴할때까지 거의 지명타자로만 출전하였다. 결과적으로 지명타자로 출전한 경기수가 좌익수 출전 경기와 100경기 차이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많다. [5]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주전 중견수로 출전하였다. 주로 좌익수로 출전했던 2015년에도 중견수로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였다. [6] 2004년에 주전 우익수로 출전하였다. [7] 2022년 7월 3일 은퇴선수 특별 엔트리를 통해 3번타자 좌익수로 선발출장했다. 경기 개시 직후 그라운드에 나서고 김현수와 교체 아웃되었다. [8] 아마추어 시절 턱부상으로 인한 판정. [9] 손혁, 양현종, 조동화가 소속되어 있다. [10]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미국으로 대학을 갈 계획이라고 한다. [11] 농구선수 출신, 당대 기준으로 상당히 늦은 나이로 출산. 프로 출범 이전 실업농구 시절 명성이 높은 가드였다고 한다. [12] 직접 무종교라고 밝히며 수정을 요구했다. #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13] 2009~2010년에는 메인 등장음악이었고 2011년에는 1번타자로 나온 날에만 쓰였다. [14] 2022년에는 LG트윈스 후배이자 고등학교 후배인 이민호가 등장곡으로 사용하였다. [15] 내 눈앞에 나타나~ (박용택!) 왜 네가 자꾸 나타나~ (박용택!) 두 눈을 감고 누우면 왜 니 얼굴이 떠올라~ (L~G! 박용택!!) [16] 시크릿 가든 OST 곡이다. 시크릿 가든이 유행하던 시기에 구단측에서 꽃미남으로 밀고 가기 위해 골라준 곡이라고 한다. 본인은 처음 들었을 때 손발이 오그라들었다고. 반주는 "왜 내 눈 앞에 나타나"에서 왜를 빼고 부르는게 포인트. [17] 2017 시즌 이후 저작인격권 문제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다가 2020년 10월 28일 잠실 마지막 정규시즌 홈 경기에서 대타로 출전할때 3년 반 만이자 마지막으로 틀었다. 협의가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등장곡으로 원곡의 일부를 재생하는 행위가 저작인격권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결론이 안 나와 있는 상황이라, 그 애매함을 이용해서 한번 틀었던 것일 수도 있고 원작자에게 양해를 구한 것일 수도 있다. 이 날 육성응원이 금지되어있었으나, 엄청난 떼창이 이루어졌다! 2년 뒤, 2022년 7월 3일 열린 은퇴식에서 박용택이 그라운드로 모습을 드러내자 역시 이 노래가 틀어지면서 엄청난 떼창이 이루어졌다. 물론 2022년에는 원곡 재생을 하는 방식의 등장곡은 다시 부활하였다. [18] 최강야구에서도 같은 등장곡을 사용하고 있으며 괄호부분에 LG 부분을 생략하거나 그 자리에 홈런을 넣어 사용하고 있다. [19] 안타~ 안타 안타~ 안타 안타 박용택~ [20] 녹음자의 말에 의하면 2003 시즌까지는 확실히 썼다고 했지만 2008년 남성훈 응원단장 시절까지 쓰였다. [21] 여담으로, 해당 노래의 원곡은 2008년 GM대우의 새 슬로건(New ways, Always) 홍보를 위해 제작된 곡이었다. GM대우는 못 살리고 2011년에 쉐보레로 전환되어 사라졌지만, 응원곡으로서는 성공한 셈. 원곡 [22] 무적 L!(L!) G!(G!) 박용택!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 오오 X4. 원래는 무적 L!G! 박용택 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추임새가 들어갔다. [23] SBS 스포츠가 만든 '야구본색 2' 다큐멘터리 '택의 기억' 편에서 LG 골수팬으로 유명한 가수 홍경민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LG 팬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노래를 언급했다. 본인이 콘서트를 하고 있다가 무심결에 야구 얘기가 나왔고 "여기 계신 분들 중에 LG팬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 후 홍경민이 즉흥적으로 박용택 응원가 도입부를 부르자 앞에 있던 일부 팬들이 본능적으로 '오오 오오오오~'를 이어부르며 특유의 율동을 해서 홍경민도 놀랐다고 한다. [24] 2018 시즌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방시혁은 사용해도 된다는 입장이었으나 편곡자였던 원더키드가 사용을 거부했다. 여타 다른 곡과 마찬가지로 저작권료 문제라는 루머도 있었지만 이 설은 은퇴식 당일 경기에서 중계석에 특별출연한 박용택 본인이 부정했다. 뭔가 여러모로 복잡하게 꼬였다고 한다. 이 응원가는 KBO 최고의 응원가 5위 안에 들을만한 명곡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하지만, 2022년 7월 3일, 프로듀서인 방시혁과 원곡 가수 박정아 등의 허락을 받아 은퇴식에서 이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1회 교체 때 한 번, 은퇴식 때 한 번 잠실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잠실을 가득 메운 LG팬들은 추억의 응원가를 마지막으로 떼창했다. [25] 오오오 엘지 박용택~ (박용택!) x4 [26] 팬 공모전을 통해 나온 곡 중 박용택이 직접 골랐다. 전상규의 야잘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강승호에게 주기 위해 만든 곡이며, 그렇기에 방정맞고 발랄하게 만들었지만 엘런트에서 후렴구까지 전부 잘라먹고 도입부만 반복한다고 한다. [27] 무적 L! G! 박용택~ 무적 L! G! 박용택~ 무적 L! G! 박용택~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오오~ X2 [28] 홍경민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용택의 원래 응원가(New Ways Always)와 박자, 빠르기가 동일하다. 거기다 가사까지 비슷하다. 이와 달리 평은 좋지 않았는데 신나지 않고 음조가 어두워서 그런 듯 하다. [29] 김용수, 김태균, 박용택, 선동열, 이대호, 이승엽, 이종범, 정민철, 송진우, 장종훈. 이들 중 김태균, 선동열, 이대호, 이승엽, 이종범, 정민철은 NPB 경력이 있으며, 이대호는 MLB 경력까지 있기에 해외 리그까지 포함해서 순수 원클럽맨은 4명이다. 송진우, 장종훈, 김태균은 광역시 출신은 아니지만 지방 구단은 제2 구장을 도내에 짓는 등 도 전체를 연고지로 삼는 것에 가까우므로 로컬 보이라 할 수 있다. [30] 다만 KBO가 1999년까지 광역연고제, 2000년대 이후 도시연고제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선동열의 출생 당시 주소지가 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인 전라남도 광산군인 것을 감안하자. [31] 입단 당시 LG 감독이었던 김성근이 박용택에게 외야에서 하루에 공을 500개 이상 던지게 하는 가혹한 훈련을 시켰고, 그 여파로 어깨가 망가져 공격은 좋으나 수비에서는 줄곧 부진을 나타냈다. [32] 같은 기간 동안 LG 한 팀에서 8명의 감독들이 거쳐갔고, 감독대행도 2명이나 있었다. [33] 한미일 프로야구 사상 개인 통산 2,5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박용택을 포함해 총 109명이다. 미국에서 101명이 2,500개 이상의 안타를 쳤고(여기는 19세기 말부터 존재했던 리그임을 감안하면 적은 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시즌의 경기수도 한국과 일본보다 많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8명만이 2,500안타 고지를 넘어섰으며, 그 가운데 최다이자 유일한 3천안타 이상 기록자는 3,085개 안타의 장훈이다. 단일 리그에서 세운 공식 기록상으로는 박용택이 한국 유일의 2,500안타 달성자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한-일 통산 2,842안타를 친 이승엽과 한-미-일 통산 2,895안타를 친 이대호도 있다. [34] KBO 리그에서 2000안타 이상을 친 타자 중 손아섭과 함께 유이하게 프로야구 우승 기록이 없다. 2000안타 클럽 중 박용택을 제외하고, 양준혁부터 가장 적은 안타를 친 전준호까지 모두 우승 기록이 있다. 한편 KBO 리그만 한정했을 때 우승 기록이 없는 2000안타 클럽 멤버로는 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타자인 이병규 한화 이글스 프랜차이즈 타자인 김태균,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도 있다. 그러나 이병규의 경우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2007년 우승 경험이 있고, 김태균은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2010년 우승 경험이 있으며 이대호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2014년, 2015년 연속 우승 경험이 있다. [35] 박용택과 같은 해에 은퇴했고 이제는 KBS N SPORTS 동료가 됐다. [36] "무적 L! G! 박용택! 오오 오오오오 오오 오오오오오"인 그 응원가다. [37] 이 날 캐스터도 박용택의 부탁으로 메인 캐스터인 권성욱 캐스터가 아닌 이호근 캐스터가 담당했으며 해설위원은 보통 1명씩 해설을 담당하지만 은퇴식은 역시 박용택의 부탁으로 김태균, 유희관 2명이 담당했다. 또한 은퇴식 영상이나 박용택 스페셜 영상을 모두 KBS N SPORTS에서 제작했다. [38] 김현수의 타순과 수비 위치이다. [39] 김현수는 용암택, 오지환은 소녀택, 유강남은 팬덕택, 임찬규는 휘문택, 이민호는 찬물택을 마킹했는데 정우영졸렬택을 골랐다가 일부 LG 팬들에게 호되게 질책을 듣고 결국 '흐뭇택'이라는 마킹을 달았다. 다만 졸렬택 역시 찬물택처럼 본인이 요청한 마킹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박용택이 본인 스스로 즐겁게 풀어보자는 뜻이었는데 팬들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박용택이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40]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발생 이후 첫 번째 잠실야구장 만원 사례였다. [41] 은퇴 경기 주간에 우천취소가 2경기 있었기에 로테이션 상 에이스 케이시 켈리나 최근 페이스가 좋던 이민호의 등판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42] 심지어 경기 후 임찬규의 인터뷰에 따르면 박용택마저도 임찬규에게 등판 소식을 듣고 욕을 했다고. [43] 진짜로 졸렬택을 달고 나왔으면 더 까였을 것이다. 경기 종료 후 승리투수가 되면서 정우영의 졸렬한 승리투수 관리라며 잠깐 조롱당했다. [44] 구단 유투브 비하인드에서는 실점 직후 박용택이 생각났다고... 박용택의 반응은 임찬규의 승리만 날리면 된다였다. [45] 공교롭게도 이대호의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도 사직 LG전으로 예정되어 있다. [46] 앞서 영구 결번식과 은퇴식을 진행했던 김용수와 이병규는 LG 유니폼을 입고 행사에 참석했다. [47] 고별사의 첫 머리가 "저 생방송 MC인 것 아시죠?"였다. [48] 원곡은 전인권의 곡이지만 이날 실제로 흘러나온 노래는 응답하라 1988 OST에 담긴 이적의 리메이크 버전이었다. [49] 이것마저도 관계자가 말려서 겨우 끝낸 거라고 한다. [50] 이 싸인회 도중에 김용수가 밤 11시경에 잠깐 방문했었는데, 그 때문에 김용수도 잠시나마 강제로 싸인회를 열어버렸다. [51] 이 얘기는 박용택이 고별사에서도 언급했다. 대본 없는 고별사를 하다 보니 막바지까지 아내에 대한 얘기를 못할 뻔했는데 스스로 생각이 났는지 "큰일 날 뻔 했다. 아내에 대한 얘기를 한마디도 안하고 넘어갈 뻔했다"라면서 "잠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은퇴할 뻔했다"라고 말했다. [52] 전직 선수 출신 해설위원들이 소속팀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많이 겪는 문제인 데다 LG에는 서용빈이라는 아주 나쁜 선례가 있었기에 더욱 우려가 됐었다. [53] 당시 방영 중이던 주말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에 주연 이광남 역할로 출연 중이던 배우 홍은희가 코로나19 확진자 밀접 접촉자 분류로 인한 2주 자가격리로 촬영 일정이 전면 연기되면서 해당 주에 통째로 결방이 되었고, 그 때문에 재방송 시간대가 통째로 펑크나면서 야구가 급히 대체 편성된 것. [54] 김현태, 강승화, 이광용 아나운서 [55] 역시 LG 출신으로 같이 KBS에서 해설위원으로 재직 중인 봉중근이 LG 편파 중계로 악명이 높다. 특히 봉중근은 2020 포스트시즌에서 그야말로 최악의 편파 해설을 선보인 여파로 2021 시즌부터 지상파 해설 콜업이 안 되고 있다. [56] 다만 가끔은 LG 선수들에게 조언을 건네곤 한다. 대표적으로 고우석에게 확실한 변화구를 가지라고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진짜 커브를 연마하면서 2022 시즌 리그 최고의 마무리가 되었다. [57] 본인의 주요 짤 중 하나인 김원중에게 삼진먹고 돌아서며 식빵굽는 짤을 언급한 적도 있다. [58] 5월 19일 NC-LG전 해설 중 송은범에 대한 밈 '찡은범'에 대해 옹호하기 위해 원래 웃는 상이어서 그렇다는 언급을 했다. 그냥 웃을 때 안타를 맞고 인상 쓰면 덜 맞아 생긴 밈일 뿐인데 말이다. [59] 모든 스포츠를 막론하고 많은 프로선수들이나 프로선수 출신의 사람들이 정신력에 대한 비판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태업으로 이어진 경우도 아주 종종 있기도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웬만하면 정신력이나 투지 부족이 실패의 큰 원인인 경우는 드물다. 그냥 까는 데에만 집중하거나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분석력이 없으니 패배의 원인으로 말하는 것이 정신력이다. 프로 레벨에서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것은 정신력이 아닌 본인의 실력이며, 정말로 정신력이 부족하면 프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60] 물론 해설위원의 자리는 어느 한 팀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자세를 요한다. 이날 박용택의 해설 내용 자체도 중립적이었다. 현실적으로 거의 20년 동안 몸담았던 팀과 그 팀의 라이벌 팀간의 맞대결을 중계하면서 온전히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 표정을 보고 그를 편파 해설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61] 참고로 그날은 이정후가 역전 적시타를 LG 트윈스 상대로 기록했던 날이다. [62] 8회말 박병호의 역전 투런 홈런이 나올 때는 침묵했는데 9회초 투아웃에서 오지환의 극적인 역전 쓰리런 홈런이 나올 때는 오! 오!!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당연하긴 하지만 말만 안했을 뿐 속으로는 LG가 이기길 바라고 있었던 듯. [63] 은퇴식 전에 촬영을 시작하였고, 은퇴식 후 새벽 3시 30분까지 사인회를 한 다음 날에 바로 경기에 참가할 정도였다. [64] 청소년 국가대표경기 당일 제작진이 제일 기대하는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자기라고 말하는 등 자기애가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만큼 전 프로출신 레전드답게 결과로서 보여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웃고 넘어간다. 국가대표전때 저 답변을 했던 날 8회 2사 1루 상황에 2루타를 뽑아내면서 2사 2,3루 상황을 만들어내 투수 김택연의 멘탈을 흔들었고 결국 볼질로 인해 선취점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박재욱의 타선때 매의 눈으로 홈에 집중하다가 실투가 나오자마자 홈으로 쇄도하여 추가점을 만들었다. [65] 그는 이 날 본인 추산으로만 은퇴식 전과 종료 후를 합쳐 최소 3500장 이상의 사인을 하며 은퇴식을 마무리했다. [66] 러브 페스티벌은 선수들을 몇 개 조로 묶어놓는다. 행사에 참가할 때면 특정한 조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박용택이 참가한 조가 아니면 사인을 받지 못한다. [67] 당시 분위기는 급박했다. 구단 공홈에서는 팬들의 FA 계약 요청 서명운동과 영상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박용택의 이름은 수 시간 동안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 [68] 박용택이 자서전에서 밝히기를,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69] 하지만 본인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사인 거래가 문제면 종이에 미리 해서 뿌리면 되지 않나? 그런데 직접 말로 한 기억은 없다"고 했다. [70]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야구선수는 미우라 다이스케다. [71] 보통 야구선수들은 사인 대신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그러니 사진보단 사인이 희소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72] 뇌병변 지체 4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면서도 LG 트윈스의 경기를 잠실, 문학, 목동, 멀리는 대전, 창원까지도 따라다니시던 열혈 LG팬. [73] 생면부지까지는 아니며 팬사인회에서 수줍어 했다던 사연을 공개했으며 잠실로 보이는 곳에서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74] 단 박한이는 빠른 1979년생으로 1978년생과 동기라 1년 선후배 관계다. 실제로 인터뷰 등을 보면 박용택은 박한이를 부를 때 형이라고 부른다. [75] 박용택은 우투좌타 박한이는 좌투좌타 [76] 단, 박한이는 프로 1년차에 32번을 달았었다가 33번으로 옮긴 것이다. 즉 둘 다 2002년부터 쭉 33번을 단 셈. [77] 통산 19시즌 동안, 213 홈런과 313 도루로 박재홍에 이어 2번째 200-200기록, 역대 최초 200-300을 기록했다. [78] 다만 지금까지 보여준 활약에 비해 FA로 받은 돈은 그리 크지 않아서, 나름 납득한다는 의견도 있다. 라뱅은 3년 25억에 계약한 바 있다. [79] 차후 밝혀진 바로는 금액과 기간은 꽤 빠르게 합의했으나 은퇴 후 조건을 맞추는 게 시간이 좀 걸렸고 심지어는 어차피 안 가기에 그냥 몇달동안 느긋하게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80] 사실 프런트들은 전지훈련지 섭외, 구장관리, 연봉협상으로 인해 오프시즌 때 더 바쁘다. 거기에 인사이동도 팀워크에 해를 끼친다고 연말에 하기에 남는게 거의 확정인 선수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 [81] 토드 헬튼(MLB 통산 17시즌) - 슬래시라인 .316 / .414 / .539, 2519안타, 369홈런, 1406타점 vs 박용택(KBO 통산 19시즌) - 슬래시라인 .308 / .370 / .451, 2504안타, 213홈런, 1192타점 [82] 메이저리그 이야기지만 신체능력만 놓고 보면 만 27세도 아니고 만 18세가 피크라는 연구 결과까지 있을 정도다. 다만 뼈가 다 굳는 나이는 만 24~25세 정도가 맞으며, 20대에는 아직 신체능력이 빠르게 감소할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경험에서 오는 이득까지 고려하면 만 26~27세가 가장 성적이 좋다는 통계가 있다. [83] 박용택은 28세 이전까지 매년 타격폼을 바꿔야만 했다. 이전까지 슬림하지만 탄탄한 근육질 몸을 가진 박용택을 타격코치들이 장타자로 손 보고 싶어 가만 두지 않았다. 하지만 2008, 2009년 LG에서 같이 뛴 외국인타자 로베르토 페타지니와 함께 뛰고 나서 본인만의 타격이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본인 스스로 타격폼을 수정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바뀐 점은 타격시 몸의 무게 중심을 하지 않는 것과 이전과 다른 오프스텐드로 타격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조금씩 타격폼을 수정해가며 타격하는 것이다. [84] 박용택은 1979년생, 이재우는 빠른 1980년생이다. [85] 박용택과 동갑내기인 98학번 선수 중 리그에서 이름을 그나마 알린 선수를 꼽자면 최희섭, 이현곤, 안치용, 이혜천, 김수경, 현재윤, 이재우, 추승우 정도가 있다. 추승우가 그나마 샤프하게 생긴 편이고, 현재윤은 나중에 동안 이미지가 생겼으며, 신인 시절부터 한동안 안경을 썼던 김수경은 모범생 이미지가 있었다. [86] 온라인 마구마구에는 2014년 12월 3일 추가 전까지 그의 엘리트가 없었다. 사실 초기 모바일 출시 당시에는 00년도 선수까지 업데이트되어 있었기 때문에 00년 이후에 LG는 엘리트 카드가 없어서 덱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온 카드였다. 08봉중근 엘리트 카드 역시 같은 이유. [87]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 기본 컨택트 91. [88] 무적 L!G! 박용택 워어어어어어어 워어어어어어어어 x4 [89] 워어어 엘지 박용택~ 박용택! x2 [90] 아울러 별칭으로 해리 포터가 착용했던 안경과 똑같다고 해서 '해리 포터 안경{Harry Potter Glasses}'이라고도 부른다. [91] 다만, 그가 2,319안타를 친 것은 2018년 6월 23일이었다. 이 시점 즉, 2020 시즌 전까지의 그가 친 안타는 2,437안타. [92] 1979년생 [93] 강력한 회전수를 가진 커브볼이 타자의 눈앞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94] 다만 대학생 시절 실제로 합숙훈련을 하며 지냈던 곳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송추야구장이었다. 물론 종종 수업을 들어올 때는 안암캠퍼스로 왔다고 한다. [95] 류지현 감독 역시 서울에서 태어나고 초중고를 모두 서울에서 나왔으며, 서울연고의 대학인 한양대를 졸업하고 LG에서만 뛴 원클럽맨으로 박용택과 굉장히 비슷한 케이스를 보여줬다. [96] 前 LG 트윈스 감독 류중일 역시 삼성의 대표적인 성골이었으나, 삼성이 아닌 LG에서도 감독 생활을 이어나감으로써 순수 성골의 이미지는 없어져 버렸다. [97] 범위를 넓혀 박용택처럼 팀의 연고지에서 태어나 해당 도시에서 초-중-고교를 나와서 고향팀에서만 뛰었던 성골 후보들을 찾아보면 SSG 랜더스의 이재원, 삼성 라이온즈의 구자욱, 대학교도 서울에서 다닌 두산 베어스의 최원준 정도가 있다. 은퇴 선수 중에는 대구 출신으로 삼성의 레전드가 된 이승엽이나 부산 출신으로 롯데의 레전드가 된 이대호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이쪽은 해외리그 경험이 있다. [98] 박용택보다 1년 먼저 LG에 입단하고 은퇴한 이동현 울산광역시 태생이다. [99] 진짜 책에서 "졸렬택"을 대놓고 써놨다. [100] KBS N SPORTS에서 7월 2일 경기를 해설하던 중 막간에 아주 적극적으로 본인의 은퇴식에 오라는 홍보를 했다. [101] 단, 이동현은 2005~2006 시즌 동안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102] 일단 최형우는 2021시즌 초에, 손아섭과 이대호는 2021년 중반 즈음에 2,000안타를 달성했고, 이용규와 김현수 모두 2022시즌에, 최정은 2023시즌에 2,000안타를 기록했다. 다만, 최형우는 선수생활 초중반에 방출이 된 점이 걸림돌이다. [103] 실제로 2020 시즌이 끝난 직후, 원래 이 항목에 있던 정근우(LG)는 은퇴를, 김주찬(KIA)과 이용규(한화)는 원래의 소속팀에서 방출되었다. 다행히 이용규는 극적으로 키움에 합류해 2,000안타에 대한 가능성을 열긴 했지만,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한 김주찬은 끝내 원하는 구단을 만나지 못한 채 2021년 1월 5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가뜩이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인해 각 구단마다 선수, 코치 할 것 없이 칼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이다. [104] 최형우는 2021 시즌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면서 박용택 은퇴 이후 현역 최다 안타 1위 타이틀을 손아섭에게 빼앗겼고, 2022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을 겪으면서 2,400안타 달성도 힘들어 보이는 상황이다. 이대호는 안타 하나 차이로 2,200안타 달성에 실패했다. [105] 손아섭과 같은 동년배이지만, 통산 안타 숫자가 다른 이유는 김현수가 2년 정도 MLB에서 활동하며 국내 리그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손아섭보다 1년 정도는 먼저 2,000안타를 달성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106] 의외로 커리어에서 150안타를 넘겨본 시즌이 없다. [107] 200홈런-200도루로 범위를 낮추면 박재홍에 이어 박용택이 2호 기록 달성자다. 이후 2022년 황재균이 200홈런을 기록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108] 양준혁, 장성호, 손아섭 등 리그를 호령한 교타자들이 이 기록에 도전했지만 박용택을 제외하고는 모두 9년 연속 3할 기록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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