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20:04:06

장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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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222222><colcolor=#000,#fff> 이동근 | 이호근 | 김진웅
파일:KBS N SPORTS 로고.svg 권성욱 | 강성철 | 이기호
파일:KBS 로고.svg 파일:KBS 로고 컬러 화이트.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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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 유희관 | 윤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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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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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순위 선수 및 가입 당시 구단 기록 달성 시즌 활동 기간 비고
1 송진우 한화 이글스 210승 2006년 1989~2009 창립멤버 겸 초대 회장
2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2318안타 2007년 1993~2010 창립멤버
KBO 최초 2000안타
3 전준호 히어로즈 2018안타 2008년 1991~2009 창립멤버
4 이종범 KIA 타이거즈 2083안타 2010년 1993~2011 韓1797, 日286
우타자 최초 가입
5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2842안타 2012년 1995~2017 韓2156, 日686
6 이병규 LG 트윈스 2296안타 2012년 1997~2016 韓2043, 日253
7 장성호 한화 이글스 2100안타 2012년 1996~2015
8 임창용 삼성 라이온즈 386세이브 2014년 1996~2018 韓258, 日128
세이브 조건으로 최초 가입
9 오승환 한신 타이거즈 522세이브 2014년 2005~ 현역, 韓400, 日80, 美42
역대 최연소,최소시즌 가입
KBO 통산 세이브 1위
10 홍성흔 두산 베어스 2046안타 2015년 1999~2016 KBO 우타자 최초 2000안타
11 박용택 LG 트윈스 2504안타 2016년 2002~2020
12 정성훈 LG 트윈스 2159안타 2016년 1999~2018 내야수 최초 가입
13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2174안타 2016년 2001~2019
14 김태균 한화 이글스 2376안타 2017년 2001~2020 韓2209, 日167
15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2895안타 2017년 2001~2022 韓2199, 日622, 美74
KBO 출신 선수 중 역대 최다 안타
16 이진영 kt wiz 2125안타 2017년 1999~2018
17 최형우 KIA 타이거즈 2323안타 2021년 2002~2005,
2008~
현역
18 김현수 LG 트윈스 2377안타 2021년 2006~ 현역, 韓2236, 美141
19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2133안타 2021년 2007~ 현역
역대 타자 최연소,최소타수,최소경기
20 이용규 키움 히어로즈 2076안타 2022년 2004~ 현역
21 최정 SSG 랜더스 2133안타 2023년 2005~ 현역
22 황재균 kt wiz 2040안타 2023년 2006~ 현역, 韓2032, 美8
23 강민호 삼성 라이온즈 2000안타 2024년 2004~ 현역
}}}}}}}}}}}} ||

장성호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9.svg 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7 2009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02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2 KBO 리그 타격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0, 2002 KBO 리그 출루율왕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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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2000안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전준호
(1991~2009)
2008년 / 2018안타
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정성훈
(1999~2018)
2016년 / 2159안타
이승엽
(1995~2017)
2016년 / 2156안타
박한이
(2001~2019)
2016년 / 2174안타
이진영
(1999~2018)
2017년 / 2125안타
김태균
(2001~2020)
2018년 / 2209안타
최형우
(2002~)
2021년 / 2323안타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이용규
(2004~)
2022년 / 2076안타
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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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홈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장종훈
(1986~2005)
2000년 / 340홈런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송지만
(1996~2014)
2010년 / 311홈런
박재홍
(1996~2012)
2012년 / 300홈런
이호준
(1994~2017)
2015년 / 337홈런
이범호
(2000~2019)
2017년 / 329홈런
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최정
(2005~)
2018년 / 458홈런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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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도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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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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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display: inline-table; max-width: 330px" <tablebordercolor=#ea002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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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주장직 폐지[1]
김성한
<rowcolor=#000> 1990 1991 1992~1994 1995 1996
김종모 한대화
이순철
선동열 김정수
<rowcolor=#000> 1997 1998 1999 2000~2001 2002~2004
이건열
이순철 (임시 주장)
이강철 이강철 이호성 이호성 이종범
<rowcolor=#fff> 2005 2006 2007 2008 2009~2010
김종국 이종범 이종범 장성호[2] 장성호 김상훈[3] 김상훈
<rowcolor=#fff> 2011 2012 2013 2014~2016 2017~2018
최희섭 김상훈[4] 차일목 김상훈 이범호 김주찬
<rowcolor=#fff> 2019 2020 2021 2022~2023 2024~
김주찬 안치홍[5] 양현종 나지완 김선빈 나성범
[1]: 김일권 이후 장기간 주장직 폐지 출처
[2]: 이종범의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3]: 마무리 캠프 직전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인한 주장 교체
[4]: 스프링 캠프 후 주장 교체
[5]: 2019년 5월 15일, 김주찬의 재활과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

해태/ KIA 타이거즈 등번호 1번
이원식
(1995)
장성호
(1997~2010.6.7.)
안영명
(2010.6.8.~2010)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
안영명
(2009~2010.6.7.)
장성호
(2010.6.8.~2010.6.9.)
윤경영
(2010.6.10.~2010)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윤경영
(2010~2010.6.9.)
장성호
(2010.6.10.~2012)
정재원
(2013)
{{{#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번}}}
이승화
(2006~2012)
장성호
(2013~2014)
이우민
(2015)
{{{#fff [[kt wiz|kt wiz]] 등번호 1번}}}
고영표
(2014)
장성호
(2015)
고영표
(2016~2018)
}}} ||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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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김응룡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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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0 이승호 · 15 구대성 · 19 정대현 · 20 정민태
21 송진우 · 30 김수경 · 39 임창용 · 35 진필중
54 임선동 · 59 박석진 · 61 손민한
포수 22 홍성흔 · 26 박경완
내야수 5 김한수 · 6 김태균 · 7 박진만
18 김동주 · 31 박종호 · 36 이승엽
외야수 1 장성호 · 8 정수근 · 9 이병규
11 김기태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응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1 강병철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주성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2 아시안 게임
김인식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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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8 노장진 · 20 이승호 · 21 송진우
27 박명환 · 37 임창용 · 41 김진우
47 이상훈 · 51 조용준 · 55 정재복
포수 22 홍성흔 · 44 김상훈
내야수 1 장성호 · 3 박진만 · 5 김한수 · 10 김동주
14 김민재 · 16 김종국 · 36 이승엽
외야수 7 이종범 · 9 이병규
34 이영우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김성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3 야구선수권 대회
김재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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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1 조규제 · 17 조웅천 · 19 이강철
20 정민태 · 37 임창용 · 41 김진웅
47 이승호 · 51 조용준 · 55 김진우
포수 12 진갑용 · 44 조인성
내야수 1 장성호 · 3 박진만 · 5 정성훈 · 14 김민재
16 김종국 · 18 김동주 · 27 이승엽
외야수 7 이종범 · 33 박한이
35 이진영 · 62 박재홍
'''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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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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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6 조범현
수비·주루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정진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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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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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6 정민혁 · 20 윤석민 · 21 오승환
23 신철인 · 51 류현진 · 55 장원삼
59 이혜천 · 61 손민한 · 67 우규민
포수 44 조인성 · 47 강민호
내야수 1 장성호 · 7 박진만 · 8 정근우
10 이대호 · 16 박기혁 · 66 조동찬
외야수 9 이병규 · 15 이용규 · 31 이택근
35 이진영 · 62 박재홍
'''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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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9 양상문
타격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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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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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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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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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3 장원삼 · 14 류택현 · 17 전병호
19 정대현 · 22 한기주 · 47 권혁
51 류제국 · 61 박찬호 · 99 류현진
포수 26 박경완 · 44 조인성
내야수 2 김민재 · 3 고영민 · 7 박진만 · 8 정근우
10 이대호 · 18 김동주 · 31 이현곤
외야수 1 장성호 · 9 이병규 · 29 이택근
39 이종욱 · 53 이대형 · 69 민병헌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4''' 김경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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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7 김광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선동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 ||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6030801213_0.jpg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KBS · KBS N SPORTS 해설위원
장성호
張盛好 | Chang Sung-Ho
출생 1977년 10월 18일 ([age(1977-10-18)]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창천동[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충암초 - 충암중 - 충암고 - ( 호남대)
신체 183cm / 93kg
포지션 1루수, 좌익수[2], 지명타자[3]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6년 2차 1라운드 (전체 6번, 해태)
소속팀 해태- KIA 타이거즈 (1996~2010)
한화 이글스 (2010~2012)
롯데 자이언츠 (2013~2014)
kt wiz (2015)
해설 위원 KBS / KBS N SPORTS 야구 해설 위원 (2016~)
경력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22~2023)
병역 예술체육요원
(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부문 동메달)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66b3><colcolor=#fff> 가족 아내 진선미(1977년생)
딸 장서진(2002년생)
아들 장우진(2005년생)
등장곡 MC Sniper -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응원가 KIA 시절: 장윤정 - 사랑아[4][5]
롯데 시절: The Beatles - Let It Be[6][7]
공통 응원가: Johnny I Hardly Knew Ye[8][9][10][11][12]
}}}}}}}}} ||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3.2. 수비 및 주루3.3. 총평
4. 은퇴 이후
4.1. 해설자 경력4.2. 방송
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KBS, KBS N SPORTS 해설위원. 선수 시절 포지션은 1루수.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이종범과 함께 초기 KIA 타이거즈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 스나이퍼'라는 별명답게 통산 BB/K가 1.25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하며 9년 연속 3할 타율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한화-롯데-kt를 거쳐 2016년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KBS N SPORTS의 해설로 합류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강성철 아나운서와 함께 유튜브 야구라 채널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장성호의 선수 경력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통합 선수 경력: 장성호/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아마추어 시절 해태 시절 2001~2003년
2004~2005년 2006년 2007년
2008~2009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wiki style="margin: -16px -11px" 2000년 2002년 2003년 2006년 2007년 }}}
}}}}}}}}} ||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한국에서 외다리타법으로 가장 유명한 선수.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다리타법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수많은 타자들이 쓰는 타법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외다리 타법 타자들의 타격폼에는 별 묘사를 붙이지 않고 장성호의 요상한 타법에 외다리 타법이라는 별칭이 붙어버렸다. 일반적인 외다리타법이 몸의 리듬대로 발을 들어올려 자연스럽게 다시 딛는 과정에서 축적한 파워를 쏟아내는 과정인 데 비해 장성호의 발을 투수의 와인드업처럼 들어올려 포수 얼굴 방향으로 차내린 다음 내 딛는 타격폼은 외다리타법 중에서도 상당히 유니크하다. 동작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은근히 체력소모가 크고, 일반적으로는 큰 동작을 지탱하는 왼쪽 다리가 크게 흔들려 선구안이 흔들릴 가능성이 큰, 타격의 원칙중 하나인 '쓸데없는 동작을 줄이고 빠르게 반응'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될 법한 폼이다. 스스로도 꾸준히 타격폼에 수정을 가하려고 했으나 결국 디테일의 수정은 있었을지언정 스타일은 선수생활 내내 유지했다. 해태 시절엔 극단적으로 허리를 웅크린 폼으로, 좌타석에 들어선 정성훈의 타격폼과 유사했으나 팀이 KIA로 바뀐 다음 준비 자세에서 허리가 점점 곧추섰게 되었다. 극단적인 당겨치기 타자였으나 밀어치는 홈런도 곧잘 만들어냈다. 그 예가 2001년도 6월 14일~15일인데, 9호홈런을 두산 투수를 상대로 밀어쳐서 잠실에서 만들어냈고, 이튿날 10호홈런을 임창용을 상대로 밀어치는 홈런을 또 만들어 냈다.

장성호의 스탯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선구안, 특히 볼삼비다. 8천타석이 넘는 타석에 서면서도 통산 BB/K이 1.25개에 달하는 괴물로 이보다 통산 BB/K가 좋은 선수는 장효조, 양준혁, 정구선 정도 뿐. 이 중 양준혁을 빼면 프로 극초창기 인물들이다. 이 괴물 같은 선구안을 바탕으로 2스트라이크를 먹은 후 스트라이크존을 좁히는 독특한 스타일의 승부를 한다. 아슬아슬한 코스의 공을 때리는 게 아니라 과감하게 보내버린다. 2스트라이크에서 그런 코스를 쳐 봐야 좋은 타구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13] 참고로 장성호는 초구 스트라이크도 잘 안친다. 해설위원이 되고서도 이 이론을 열심히 설파하고 있는데 문제는 KBO 올타임급 선구안을 가진 본인은 어설픈 코스를 과감하게 볼로 거를 수 있지만 과연 다른 타자들이 그게 될지는... 이용규와 장성호가 함께 전성기였던 2006년의 기아는 홈런은 적었지만 투수들이 가장 기피하는 팀으로 꼽혔다.

김재현과 함께 세이버매트릭스가 사랑하는 선수로, 데뷔부터 은퇴하는 시점까지 선수 시절 내내 높은 출루율과 볼넷/삼진 비율을 유지했기 때문에 생산력 지표가 실제 클래식 스탯보다 이상하리만치 높다. 스탯티즈의 창설, 스포츠 2.0의 창간 등으로 팬들의 야구보는 눈이 높아지면서 단순한 교타자인줄 알았던 장성호의 가치가 팬들 사이에서 크게 뛰었다. 양준혁과 더불어 9시즌 연속 3할 타율이라는 3할의 대명사라고 불릴 정도로 KBO의 전설적인 타격솜씨를 보였으며, 심지어 말년에는 양준혁과 더불어 '거꾸로 잡아도 3할'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타율이 2할대 중후반으로 폭락했어도 BB/K 수치는 거의 1개 수준을 유지했다. 일례로 더 높은 OPS와 홈런수를 기록하고 있어 겉으로는 별 차이 없어보이는 이호준[14]과 세이버 지표를 비교하면 누적이든 비율이든 장성호가 압살하는 수준이다. 비슷한 유형의 타자로 국내에는 김태균이 있고, 메이저리그에는 조이 보토를 예시로 들 수 있다.

3.2. 수비 및 주루

1루 수비는 객관적으로는 리그 상급이긴 했으나 1루수에게 필요한 땅볼 및 기습타구 처리, 포구 및 블로킹 면에서는 그저 그런 편이었고 순발력으로 이 부족한 부분들을 커버하는 편이었다.[15] 그러나 당시 거포가 부족했던 기아의 사정, 거포들이 모여드는 1루수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한 때 1루에 장성호 대신 다른 거포를 써야 되는 거 아니냐는 여론도 상당했으며, 구단 측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그에 따른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그로 인해 장성호는 포지션이 확실치 않았던 선수 초반 시절을 보낸 1990년대 후반을 제외하더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좌익수 출장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 와중에 기아는 장성호 대신 마해영, 김주형, 김경언, 홍세완, 이재주 등을 1루수로 꾸준히 실험했지만 결국 돌고돌아서 장성호였다. 1루밖에 못 보는 최희섭에 의해 외야로 강제 이동되기 전까지는 1루수가 주포지션이었다.[16]

주루에서는 100m 13.5초로 리그 평균 수준이였다.

3.3. 총평

140대의 wRC+와 40이 훌쩍 넘는 누적 WAR을 기록하며 동시대 KBO 타자들 중 20대에 가장 눈에 띄는 성적을 남기며 무시무시한 페이스를 보였다.[17] 그러나 비슷한 클래스의 타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부침과 반등을 반복해가며 완만한 노쇠화를 보인데 반해, 장성호는 만 30세에 접어들자마자 기량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 반등없이 확연히 커리어 페이스가 떨어졌다.[18] 선수 후반 저니맨으로 전락한 그를 영입한 팀들[19] 모두 전성기로 돌아가길 기대하기보다는 딱 한번의 반등을 노렸었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되려 그 몰아친 타이거즈 시절 전성기의 대단함만 강조되었을 뿐. 그래도 통산 war*가 55에 달하는 레전드 타자이다.

4. 은퇴 이후

4.1. 해설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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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은퇴 후에 2016년부터 KBS N SPORTS의 해설위원이 되었다. 현역 시절부터 화려한 입담을 자랑해서 많은 야구팬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 중. 선수 출신으로 여러 입담은 좋지만 정작 논리적인 해설자의 역량은 꽝이었던 이숭용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선출의 장점을 잘 살리며 호평을 받은 김선우 차명석처럼 말 주변이 좋은 해설자가 될 것인지, 박재홍 정민철의 뒤를 이어 성공적인 스타 선수 출신 해설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흥미로운 부분.

여담으로 야구 해설위원 중 유일한 kt wiz 출신이다. 1년 뿐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런 특징을 본인의 해설 데뷔경기였던 LG와 kt의 시범경기 중계 해설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 kt 팬들은 드디어 매 경기마다 8월 이후 달라진 타격감이라느니 김진곤 김바위 아들 전준우 처남이라거나 고영표 KIA 타이거즈 소속 고영우 동생 같은 똑같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며 아주 즐거워했고, LG 팬들이 실시간 중계에서 임정우 얘기 좀 해달라며 하소연할 정도로 kt 관련 이야기를 많이 풀어냈다는 평이다.

해설가로는 사운드가 끊기지 않고,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뱉어준다. 반면 기존 중계진과의 호흡이 약하고, 콘텐츠 준비 기간 부족 탓인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진행이 미숙하고, 해설자인 자신의 발언의 무게를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첫 해라 그런지 이용철이나 송진우 등의 선배와 같이 해설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혼자 했을 때 훨씬 깔끔한 해설을 했다. 선수 시절 모아놓은 에피소드가 바닥날 경우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텐데... 도저히 선수 시절 에피소드가 바닥나질 않고 있다.[20]

2016년 당시 펄펄 나는 김재환을 보고 배리 본즈 같다고 하여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12월 26일에는 한국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청주 KB 스타즈의 경기에 객원 해설자로 참여해서 마치 오랫동안 농구에 몸 담은 농구인같이 해설을 했다.

언변은 확실히 좋은 편이고, 내용도 최상급 해설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야구 이해도가 말재주를 전혀 못 따라가던 그 분보단 낫다. 맞는 말이든 틀린 말이든 확고하게 하는 스타일이며 어떤 방송에 가져다 놔도 일단 말을 유쾌하게 잘 푼다. 그러나 언급했듯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지만 발언의 경중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데다 이 분을 제외한 모든 KBS 해설들의 중병인 편파해설 문제에 감염되고 있다는 점이 크나큰 비판을 받는다.

발언의 경중의 경우 실제 경기 해설에서보다는 분석 프로그램이나 합의판정 방송에서 불거진다. 전형적인 자기 철학이 너무 확고한 사람으로, 맞는 말을 할 때는 하염없이 맞는 말만 하고 이상한 말을 할 때는 하염없이 이상한 말만 하며 특별히 기준도 찾기 힘들다. 현 트렌드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국내 야구뿐 아니라 해외야구에 걸쳐서 아는 것이 많은 편이지만 때때로 나오는 갈피 잃은 말이 평가를 내리는 원인인 듯하며, 그 외로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문제에 대해 적절한 의견을 제시하는 편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충암고 2년 선배이며 KBS의 간판 아나운서 이광용과 함께 야구 중계를 했다. 그리고 부활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3의 야구편 패널로 나오고 있다. 매 회마다 감독 자리에 대한 야심과 더불어 세이버 스탯 관련 견해를 조심스레 내비치며, 공부하는 야구인으로서의 매력을 어필 중에 있다. 해설 성향에 걸맞게 현실에 대한 쓴소리와 색다른 접근은 덤.

2019년부터 이용철 해설위원이 지상파 중계에서 물러나면서 지상파 주 해설위원이 되었다. KBSN 해설위원 중 안치용 해설위원 다음으로 재임기간이 긺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관례와 다르게 지상파 중계는 1캐스터-2해설위원의 3인 체제로 진행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해설 경력이 타사에 비해 짧고, 상술한 몇 가지의 단점 탓에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팬들의 중평이다.[21]

2021 시즌부터 안치용 해설위원이 계약 만료로 하차하고, 이어 시즌 종료 후에는 장정석 역시 KIA 단장으로 부임함에 따라 경력으로는 최고참[22]이 되었다. 해설진의 무게감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었는데, 장성호는 오히려 메인 해설에서는 약간 내려오고 KBS스포츠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특히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이쪽에서 특유의 쌈마이한 캐릭터가 어울린다는 평. 김종국이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함에 따라 코치로 올거란 타이거즈 팬의 작은 바람이 있었지만, 현재는 없는 듯 하다.

도쿄올림픽에서 해설위원으로 꽤 수혜를 받는 중이다. 옐카나 야구라에서 꾸준히 선수발탁에 대한 이슈에 대해 언급했고, 국가대표가 메달을 따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해서도 가장 빠르게 정확한 문제점을 짚었다는 평가. 특히 MBC 스포츠에서 더블 엘리미네이션 룰도 숙지하지 못한 해설을 작렬한 데 비해 장성호는 스덕 출신이라 그런지 엠겜에서 주로 진행했던 더블 엘리미네이션을 다른 해설자들보다 잘 알았고 미국과 일본 선수단에 대해 빠삭하게 공부한 티가 나는 해설을 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2-23 V리그 여자부 개막특집 방송에 출연하여 배구인으로의 모습도 선보였다.

2023 시즌부터 염경엽 해설위원이 LG 1군 감독으로 부임, 신임으로 류지현 해설위원이 부임함에 따라 KBS 야구 해설진 중에서 경력으로는 최고참, 나이로는 두번째로 많은 해설위원이 되었다.

2023년 12월 5일 여자프로농구 BNK 대 우리은행 경기의 객원해설로 나와 7년만에 여자프로농구 중계를 맡았고[23] 2024년 2월 19일 아이러브바스켓볼 방송의 패널로 출연했다.

4.2. 방송

출연 연도 방송사 프로그램 역할
2016년 ~ 2019년 KBS N SPORTS 합의판정
2017년 KBS N SPORTS 아이 러브 베이스볼 2017 진행
2017년 ~ 2018년 KBS1 우리들의 공교시 시즌2 : 야자 타임
2018년 KBS N SPORTS 아이 러브 베이스볼 10 진행
2018년 ~ 2023년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3 진행
2019년 아이 러브 베이스볼 11 진행
2020년 아이 러브 베이스볼 12 진행
2021년 아이 러브 베이스볼 13 진행
2022년 아이 러브 베이스볼 14 진행
KBS 청춘야구단: 아직은 낫아웃 해설[24]
2023년 KBS N SPORTS 아이 러브 베이스볼 15 진행

5. 여담

  • 야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1~2학년 때 잠시 야구를 그만두고 오토바이[25]를 타고 놀았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갑자기 야구도 공부도 하기 싫어져서라고... 그 과정에서 도 어느 정도 했다. 그러나 고3 때 복귀한 이후 주장을 맡으면서 금방 팀 내 주전을 꿰차고, 프로에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 방황을 끝내고 복귀한 이후 첫 경기에서 바로 홈런 2개를 때려내기도 했다.[26] 그 당시 상대투수는 휘문고 김선우.[27] 참고로 이 시기에 박명환이 주목받던 충암고의 간판타자이긴 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진 못했다. 박명환과 함께 충암고의 199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김성근은 주목했다고 하지만...
  • 프로에 와서도 놀기 좋아하는 성향이 남아 있었지만, 선배들이 무서워서 야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기야 해태가 워낙 군기가 세기로 유명했으며, 장성호가 입단했을 당시의 해태의 군기반장은 남의 가족을 모두 살해하고 자살한 이호성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매우 부지런한 선수가 되어 연습때 가장 일찍 나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본인과 주변 사람들은 "해태에 지명되지 않았다면 야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 위에서 서술했듯이, 김성한을 코치로 만나 타격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역시 놀기 좋아했던 이호준과 함께 짬뽕 1그릇 시켜먹고 훈련했다고 한다. 이호준은 훗날 술회하길 본인은 맞아야 정신차리는 타입이었으며, 역시 김성한 코치에게 공을 돌리고 있다. 아직도 이호준과 장성호는 김성한을 어려워하며, 이호준은 장성호를 단순한 후배가 아닌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도 20대는 장성호, 30대는 이호준이라 불릴 정도로 장성호가 어릴때 잘 나갔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 김성한과 함께 출연한 최해식도 이호준과 장성호는 김성한 감독의 작품임을 말했다. 여담으로 김성한은 현역 시절부터 짬뽕을 좋아해서 송유석 이건열에게 짬뽕 한 그릇 사준 뒤 배팅볼을 던지게 했고 은퇴 후 중국집을 개업했다.[28]
  • 컨택이 매우 뛰어난 중장거리 타자였지만, 수비와 주루플레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누상에서 본헤드 플레이를 심심찮게 한 탓에 해태 타이거즈 시절 김응용에게 또라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KBO 정신병자의 원조인 셈. 1997년에는 대전 한화전에서 1루에 멍때리고 서 있다가 1점을 헌납해서 지는 바람에 김응용 감독이 패배에 빡쳐서 "넌 버스 탈 자격도 없어. 숙소까지 뛰어와!"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29][30] 다른 일화로는 장성호가 원바운드 타구를 놓치자 김응용 감독이 야구공 박스를 가져오라고 시키더니 경기를 보면서 공을 뒤로 던지면 그걸 글러브로 받아내는 일을 시켰다고 한다.
  • 똘끼가 있는 성격이라 정성병자 해태/ KIA시절 또라이짓의 스승이자 영혼의 콤비였다. 요새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아 한번은 직관을 온 한화 팬에게 그 팬이 응원하는 선수가 올해 결혼할 거라는 낚시를 하기도 했다. 저 특유의 성격에 칼같이 짜여진 해태의 문화가 더해져 장성호는 유난히 해태 내에서도 일화가 많은 선수다. 신인타자가 김응용 감독 앞에서 우동을 떡하니 시켜놓고 먹는다든가 하는 짓거리를 하도 많이 해서 코칭스태프가 질겁을 하면서도 저놈은 크게 될 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입담이 좋다는 평가 역시 이런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화법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199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등록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라면을 먹고 다음날 배탈이 나서(...) 트레이너실에 누워 있다가 김응용 감독이 그 모습 보고 '저 자식 왜 누워 있어? 당장 집에 보내'라고 해서 진짜로 그대로 집에 가 시즌을 마무리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31]
  • 경기 중에 매우 잘 웃는다. 심지어 공에 맞거나, 삼진을 당하거나, 병살을 치거나, 실책을 해도 웃는다…. 본인 말로는 천성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다 그렇게 한번 웃고 스트레스를 떨쳐버린다고 하는데, 팬들의 반응은 ' 식빵 굽는 것보단 낫다.'와 '야! 웃음이 나오냐?'의 두 가지로 갈린다.
  • 파일:attachment/JSH_mortar.gif
  • 전설의 절구질짤. 머리쪽으로 날아오는 한기주의 위협구를 이대호가 그대로 노려본 뒤 만루홈런을 때린, 이대호를 상징하는 장면이 등장한 그 경기다. 장성호 역시 만루에 섰고 총알같은 타구를 쳤는데 수비수에게 날로 걸리면서 더블플레이로 무산되고 난 후 덕아웃에서 분풀이를 한 장면. 무기력한 꼴찌팀의 주장의 분노에 타이거즈 팬들의 자존심을 저격한 장면이자, 역대급 부진을 겪던 이종범의 뒤를 이어 장성호가 모든 야구팬들이 인정하는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대관식을 하는 장면이었다.[32] 장성호가 불성실하다, 진지하지 못하다 같은 평가가 저 순간 이후 일순간에 모든 야구 커뮤니티에서 사라졌다.
  • 의외로 선수들에게 리더십이나 인성을 인정받는 선수. 기아 선수들이 직접 뽑은 주장이기도 했고 선수협 회장 선거에서도 손민한 다음으로 다득표하기도 했다. 롯데로 이적한 후 가진 각종 인터뷰를 보면 은근히 개그맨 소질이 다분한 것 같다. 입을 놀린 사례가 많아 팬들이 차기 해설로 주목하는 몇몇 후보 중 하나.
  • 1971년 7월 16일생의 6살 위의 최태성 역사강사와, 1977년생 동갑이자 국악인 남상일[33]과 2명의 얼굴이 닮았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성출이라는 별명도 있다. 2017년 11월 방영된 KBS N "합의판정" 이호준 편에서 설명하기를, 당구 선수 중에 장성출이라는 이름을 가진 왼손잡이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만큼 당구를 잘 쳐서 붙었다고.. 해태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낸 형인 이호준이 성출이라고 잘 부른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tjdcnfdl라는 단어를 아이디에 사용하고 있다.(현재는 탈퇴상태). 야구선수들의 당구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조성환에게 패배했고, 결승전에서는 이호준이 조성환을 꺾고 우승했다고 한다.
  • 태어난 시기라던가 프로야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졌던 것 치고는 적극적으로 인터넷 문화를 즐기기도 했으며 싸이월드 초창기 미니홈피에 질문을 남기면 직접 답도 해주곤 했었다. 또한 프로야구 스타크래프트 대회에도 참가한 적이 있고, MBC GAME도 알고 있는 빼도박도 못하는 스덕이다. 2013년 12월에 개최된 야구선수 당구대회 룰이 더블 엘리미네이션이었는데 그 룰을 박재홍에게 설명하면서 MBC 게임을 언급했다. 이후 해설자 신분으로 2020 도쿄올림픽 야구 경기 중계 때도 이 더블 엘리미네이션 제도를 잘 알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매끄럽게 설명하기도 했다.
  • 등번호가 1번[35]인데, 해태-KIA에서도 첫해(10번)를 제외하면 항상 1번을 달았고, 팀을 옮길 때에도 1번을 유지했다. 한화로 이적 후[36]에 1번을 달던 윤경영에게 양보받으며 상품권 30만원을 선물로 주었고, 롯데로 이적후에 1번을 쓰던 이우민에게는 미즈노 방망이 5자루를 줬고[37], kt로 이적후에 1번을 달던 고영표에게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신발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장성호에게 등번호를 양보한 선수들은 다음해에 모두 몰락했다. 윤경영은 이듬해 방출, 이승화는 꾸준히 못했고, 고영표는 방어율 5.79를 기록하며 익산 위즈 kt wiz를 오갔다. 그러나 고영표는 2017년부터 kt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 몇몇 팬들은 이름이 비슷한 장성호 - 장성우 - 정상호를 자주 헷갈려 한다.
  • 1999시즌 데뷔 첫 20홈런(24개)을 친 후 홀수해마다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38]

* 고척 스카이돔에서 같은 KBS N SPORTS 해설위원 송진우와 투타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장성호의 패배.
  • 통산 안타수 5위임에도 골든글러브 수상 경력이 한 번도 없다. 이유는 이승엽처럼 동포지션에 다른 거물급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호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1~2003년 동안 이승엽은 매년 시즌 MVP. 1루수 포지션이라면 지명타자로도 활로가 있긴 했으나, 막상 장성호 본인이 1루수로 너무 성실히 출장하는 바람에 그런 일은 없었다. 이승엽의 일본 진출 이후에도 호성적을 냈으나 양준혁의 1루 전향(04), 이대호(06, 07), 김태균(05, 08)의 활약으로 타지 못했고 08년 이후에는 최희섭에게 밀려 1루 주전자리에서 멀어지면서 골글과도 멀어졌다.
  • 2019년 3월 26일 자신이 이용규에게 트레이드를 요구하도록 부추겼다는 일부 소문에 페이스북을 통해 강력히 불쾌감을 드려내면서 부인했다. 장성호 위원과 이용규는 KIA에 오랫동안 함께 활약하였고, FA나 트레이드로 이적한 팀이 한화였다 보니 이런 오해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화에서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적이 없다. 기사
  • 가족들을 광주에 내려보내고 따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자녀 교육 때문이라고. 짬내서 가족들 보러 내려가고 있다고 하며, 이후 방송에서 싸인 관련 질문을 한 팬에게 장성호 본인이 직접 자신의 싸인을 받으려면 광덕고 근처로 오라고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광덕고등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고 공개했다.
  • 타이거즈에서 오래 뛴 탓인지 타이거즈 이외 구단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인데 특히 한화 이글스 디스를 자주 강하게 하는 편이다.
  • 2001년 초 롯데 마해영과 트레이드 얘기가 오고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선수협 파동으로 찍힌 마해영을 롯데가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자 해태에서는 김창희를 제시했으나 롯데에서 장성호 아니면 안한다고 해서 트레이드 논의가 엎어졌다.[39]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마해영은 FA가 되어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어봤고, 장성호 역시 말년에 잠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어보고 뛰었다.
  • 2022년 9월 1일 KIA - 삼성 경기에서 해설을 했는데, 그 날 나지완이 은퇴 발표를 했다. 경기 중에 이를 이야기했는데, 나지완의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지완이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중에서 최다 홈런'을 기록했다는 언급을 했다. 바로 그 다음 말로 '저랑 홈런 갯수가 같습니다'라는 말을 했다.[40]
  • 스탯티즈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WRC+ 기준으로 2022년 4월 현재 기준 장성호는 31위, 이호준은 42위에 랭크되어 있다. 우르크가 10 가까이 차이난다. 물론 홈런을 원하면 이호준 팬이겠지만.. 그만큼 김응용의 혜안이 보인다.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수상에 가장 아쉽게 실패했다. 순위는 41위였고, 40위 우즈와 총 점수 차 0.32점 차이.[41]
  • KBS 이광용 아나운서하고는 충암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 웃을때 호탕하게 웃는 스타일이라서 호탕한 웃음의 대명사이기도 한다.

6. 관련 문서


[1] 2022년 7월 19일 유튜브 채널 야구라 [2] 99시즌에 트레이시 샌더스 양준혁이 들어오면서 1루수와 지명타자 자리가 채워지자 주전 좌익수로 나서게 되었다. 이 둘이 떠난 이후에도 00, 01, 04, 07시즌에 주포지션인 1루 못지 않게 출전하였고 09 시즌엔 백업 좌익수로서 한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좌익수로서 수비 실력도 썩 나쁘진 않아서 이후에 최희섭의 입단과 함께 포지션 관련 문제가 일어난걸 생각하면 차라리 처음 주전 좌익수를 맡았던 99시즌부터 전업해서 뛰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더불어 전성기 시절 이승엽 김태균에 밀려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99시즌 부터 좌익수 자리에 완전히 고정되었다면 동일한 성적을 유지했을시 수상도 가능했을 것이며, 타이거즈 올스타로 보더라도 1루수 자리엔 영구결번급의 성적과 상징성은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팀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김성한이 있기에 팀의 결번급 레전드임에도 세컨드 팀에 뽑히게 될 상황이라 좌익수로 고정되지 못한게 여러모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3] 이전까진 지명타자 출전이 거의 없었는데, 11시즌부터 그 빈도가 늘어났고 12시즌부턴 1루수보다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13시즌부터 은퇴할 때까지는 사실상 전업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4]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장성호! 장성호! (x4). 후에 안치홍이 이 응원가를 물려받았다. [5] # 장윤정의 사랑아가 조금씩 들린다. [6] 롯데의 장성호~ 자이언~츠 장성호~ 오오오오오오 오오오~ x2 [7] 장성호가 나간 후엔 하준호가, 하준호가 나간 뒤엔 김재유가 이 응원가를 물려받았다. [8] 동인도 회사 소속의 영국군에 끌려가 실론에서 강제로 싸우다가 반병신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남편을 아내가 알아보지 못한다는 내용의 곡이다.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노래로 훗날 미국으로 건너간 아일랜드인들이 남북 전쟁중에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 노래는 북군의 군가가 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이다. [9]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버려 날려버려 날려버려 날려버려 스!나!이!퍼! 장!성!호! [10] 이 응원가는 조지훈 응원단장이 기아 응원단장 시절때 만든 응원가였으며, 한화와 롯데를 거쳐 이후 선수 말년이었던 kt에서도 동일곡을 계속 사용했다. [11] 롯데 시절 가사는 최강롯데 자이언츠 안타 장성호~ HEY! 최강롯데 자이언츠 안타 장성호~ HEY! 최강롯데 자이언츠! 최강롯데 자이언츠! 스!나!이!퍼! 장!성!호! 홈 경기에서는 '최강' 부분을 '부산'으로 바꿔서 부른다. 응원가에 '날려라'를 쓰지 않고 '쌔리라'를 사용하는 롯데 구단 특성상 불가피했던 가사변경. [12] 2010시즌 한화에 오고나서 최강한화 이글스의 안타 장성호 최강한화 이글스의 안타 장성호 날려버려 날려버려 날려버려 날려버려 최!강!한!화! 장!성!호! 로 잠시 사용했는데, 장성호의 요청으로 KIA시절 가사로 다시 돌아갔고 이후 kt로 이적 후에도 가사까지 동일하게 응원가를 사용했다. [13] 이 철학과 완전히 반대되는 접근을 보여주는 선수가 바로 이용규. 그는 2스트라이크에서 오히려 존을 넓혀서 접근을 하는데, 볼이라 생각하고 흘려보내다가 스트라이크가 선언되어 삼진을 당하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고자 시도하여 본인의 빠른 발을 이용하여 내야 안타를 만들어내거나 상대의 실책을 유도하자는 마인드이다. [14] 빠른 76년생에 장성호보다 2년 먼저 데뷔를 했지만, 데뷔 시즌 투수로 뛰었던 것과 병역비리로 인한 공익근무로 인해 타자 커리어로서는 2년 정도가 빠진다. 은퇴는 장성호가 2년 먼저 은퇴를 했지만,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성적을 내었기에 직접 비교가 가능한 대상. [15] 외야수 출신답게 플라이처리가 귀신이었다. 특히 담장에 착 달라붙는 1루수 파울플라이 타구 처리는 신의 경지. 물론 그게 1루수비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는 없지만. [16] 최희섭의 큰 키에서 나오는 포구안정감은 물론 그의 1루 수비 실력이 뛰어난 점도 이유였다. 1루수의 체격은 내야수들의 타게팅에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인시절의 김선빈이 가장 큰 혜택을 받았다. [17] 당시 동나이대에 그를 확실히 넘은 선수는 이미 일본으로 간 이승엽 심정수 둘뿐이었다. [18] 그래도 타격 능력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니라서 한화 이글스 시절에도 최진행, 김태균 다음으로 타격 스탯이 좋았다. 한화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자 그가 커리어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마지막 시즌인 2012년에도 리그 OPS 20위에 WAR 2.5를 기록하며 리그 상위권 타자로 활약하며 전성기만큼은 아니였지만 장성호라는 선수의 클래스를 증명했다. [19] 하필이면 그 팀들이 하위권을 전전하던 한화와 kt, 여러 보완 포지션에서 적절한 백업요원(1루수, 외야수, 왼손대타)이 필요했던 롯데였다. [20] 해태 출신 해설자였던 이종범과는 한참 차이나는 연배지만 이래봬도 해태 레전드 취급받을 정도로 선수 생활을 오래 했다. 어떻게 보면 바닥날래야 바닥날 수가 없기도 하다. [21] 안치용 해설이 단독 해설로 중용받지 못하는 이유는 안치용 문서에서도 충분히 설명중이니, 안치용문서의 해설자 경력 문단 참고바람. [22] 나이로는 최고참은 염경엽 위원. [23] 이날 MVP 박혜진은 장성호를 몰랐다. [24] 5회(삼성 라이온즈 2군 전)부터 해설로 등장하였다. [25] 야구라에서 본인 항목을 읽으며 수정을 요청했다. 자기는 혼자 오토바이를 탔고, 폭주족은 집단으로 다니는게 특징이니 자신은 폭주족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26]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한 장성호의 충암고 2년 선배 신윤호는 "1학년 때 들어와 있어야 되는데 안 들어오고 나 졸업하니까 그 때 야구하고 있어~ 어이가 없어가지고 참.."이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27] 김선우가 그야말로 고교를 평정하던 시절이다. [28] 광주 상무지구에 하이난을 오픈했으나 매각하고 현재는 나주혁신도시에서 더 하이난을 운영중이다. [29] 기사에 의하면 김응용 감독은 기자에게 "장성호가 소질은 있는데 노력을 해야 말이지. 성격도 얼마나 느긋한지." 라는 인터뷰를 했으며, 김 감독은 장성호를 야구선수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으며, 그래서 조금은 비정한 충격 요법을 썼다고 했다. 이게 처음은 아닌게 과거에도 선수단 전체에게 시전하기도 했다. [30] 내용에 의하면 버스가 떠난 후 장성호는 흙 묻은 유니폼을 입은 채로 훈련 가방을 어깨에 훌쩍 둘러 메곤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대전 시내를 관통해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의 숙소까지 1시간 가량 뛰었으며, 가는 도중 대전 시민들의 숱한 눈총을 받기도 했으나 때론 비아냥도, 우스개 농담도 귓전을 때렸지만 앞만 보고 달렸으며, 숙소에 도착했을 때 김응용 감독이 현관 앞에 서 있었는데, 김 감독은 땀과 흙이 범벅이 된 채 뛰어오는 장성호를 발견하곤 획 돌아서 숙소로 들어갔다. [31] 이 사실은 2021년 4월 24일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의 시즌 2번째 맞대결에서 권성욱 캐스터와 호흡을 맞추면서 김응용 前 감독이 타이거즈 레전드 데이 기념 시구자로 초청받았을 때 1996년 한국시리즈 시절 김 前 감독과의 추억 회상 장면이 나오면서 직접 밝혔다. 그리고 유튜브에서도 다시한번 저 썰을 풀었는데 감독님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나보다 생각했다고. # ## [32] 하지만 이 장면을 '마늘 빻을 땐 장성호'라는 파일명으로 희화화하기도 했다. [33] 부인 이원아(1985년생의 7세 연하 미모의 금융인)으로 2016년에 결혼했음 [34] 실제로는 네이버 지식인 아이디와 실제 장성호가 사용한 아이디가 일치했던 것 뿐으로, 저 글을 실제 장성호가 썼다는 증거는 없다. 확인사살이라고 떠돌았던 건 장성호가 저 tjdcnfdl가 (인터넷상에서 쓰는) 자신의 아이디가 맞다고 한 것 뿐으로, 실제 네이버에 들어가서 저 글을 썼다고 인정한 게 아니다. 링크 나중엔 요시 그란도 시즌 마냥 좋은게 좋은거란 식으로 되버린 듯 하지만. [35] 야구를 시작할 때 감독님이 추천한 번호라고 한다. 마침 1번이 비어있었고. [36] 원래는 안영명이 달았던 31번을 그대로 달았다. [37] 스톡킹에서 이우민이 밝힌 뒷 이야기로는, 김경언에게서 장성호가 롯데로 이적하니 1번 양보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야 성호형 롯데 온단다 1번 주라이 [38] 2001년 23홈런, 2003년 21홈런 / 2002년과 2004년은 절묘하게 20개에 1개 모자른 19개씩 쳤다. [39] 알다시피 마해영 김주찬, 이계성과 트레이드되어 삼성 라이온즈로 갔다. [40] 참고로 타이거즈 데뷔 선수 출신 중 최다 홈런은 이호준이다. 337홈런을 기록했다. [41] 이 때문인지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3 200회에서 특별히 자체적으로 시상식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