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9:25:17

송진우(야구)

송진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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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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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35장종훈.png 파일:23정민철1.jpg 파일:21송진우1.jpg 파일:김태균 영결.png
장종훈
(2005.09.15.)
정민철
(2009.09.12.)
송진우
(2009.09.23.)
김태균
(2021.05.29.)
선수명 하단 일자: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 진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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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660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한화 이글스
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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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4명)
이상군
전대영
황종선 (1)
민문식
(10명)
김상국
한희민
이효봉
곽영진
김수길
김현태
윤홍식
유해덕
한연대
이원일 (1)
(3명)
김대중
이중화
안성수
(3명)
송진우
장정순
조양근
(3명)
강석천
황대연
진정필
<rowcolor=#fff>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지화동
김성한
양용모 지연규 구대성 길배진
<rowcolor=#fff>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rowcolor=#f7000d> 신재웅 홍원기
(고졸)
심광호
이상열
조성희
이성갑
(고졸)
고상천
오주상
지승민
김민규
(고졸)
김재현
임광규
조현수
박정진
(고졸)
문용민
<rowcolor=#fff>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조규수 김태균 신주영 안영명 김창훈
<rowcolor=#fff>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윤근영 유원상 장필준 (1)
최진호
박상규 김회성
<rowcolor=#fff>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김용주 (2) 유창식 (2) 하주석 (2) 조지훈 (2) 황영국
<rowcolor=#fff>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김범수 김주현 김병현 성시헌 변우혁
<rowcolor=#fff>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신지후 정민규 문동주 김서현 (2) 황준서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전면 드래프트 시행 년도 1R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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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6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한화 이글스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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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 1986 1987 1988 1989 1990
장명부 이상군 김용남 진정필 김대중
<rowcolor=#000> 1991~1992 1993 1994 1995~1999 2000
송진우 정민철 한용덕 정민철 한용덕
<rowcolor=#fff> 2001~2006 2007~2009 2010 2011~2012 2013
송진우 류현진 카페얀 류현진 바티스타
<rowcolor=#fff> 2014 2015 2016 2017 2018
클레이 탈보트 송은범 비야누에바 샘슨
<rowcolor=#fff> 2019~2020 2021~2022 2023 2024
서폴드 김민우 스미스 류현진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48a8ff><tablebgcolor=#48a8ff>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리그 선수
성구회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iki style="color:#181818"
<rowcolor=#000> 순위 선수 및 가입 당시 구단 기록 달성 시즌 활동 기간 비고
1 송진우 한화 이글스 210승 2006년 1989~2009 창립멤버 겸 초대 회장
2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2318안타 2007년 1993~2010 창립멤버
KBO 최초 2000안타
3 전준호 히어로즈 2018안타 2008년 1991~2009 창립멤버
4 이종범 KIA 타이거즈 2083안타 2010년 1993~2011 韓1797, 日286
우타자 최초 가입
5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2842안타 2012년 1995~2017 韓2156, 日686
6 이병규 LG 트윈스 2296안타 2012년 1997~2016 韓2043, 日253
7 장성호 한화 이글스 2100안타 2012년 1996~2015
8 임창용 삼성 라이온즈 386세이브 2014년 1996~2018 韓258, 日128
세이브 조건으로 최초 가입
9 오승환 한신 타이거즈 522세이브 2014년 2005~ 현역, 韓400, 日80, 美42
역대 최연소,최소시즌 가입
KBO 통산 세이브 1위
10 홍성흔 두산 베어스 2046안타 2015년 1999~2016 KBO 우타자 최초 2000안타
11 박용택 LG 트윈스 2504안타 2016년 2002~2020
12 정성훈 LG 트윈스 2159안타 2016년 1999~2018 내야수 최초 가입
13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2174안타 2016년 2001~2019
14 김태균 한화 이글스 2376안타 2017년 2001~2020 韓2209, 日167
15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2895안타 2017년 2001~2022 韓2199, 日622, 美74
KBO 출신 선수 중 역대 최다 안타
16 이진영 kt wiz 2125안타 2017년 1999~2018
17 최형우 KIA 타이거즈 2323안타 2021년 2002~2005,
2008~
현역
18 김현수 LG 트윈스 2377안타 2021년 2006~ 현역, 韓2236, 美141
19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2133안타 2021년 2007~ 현역
역대 타자 최연소,최소타수,최소경기
20 이용규 키움 히어로즈 2076안타 2022년 2004~ 현역
21 최정 SSG 랜더스 2133안타 2023년 2005~ 현역
22 황재균 kt wiz 2040안타 2023년 2006~ 현역, 韓2032, 美8
23 강민호 삼성 라이온즈 2000안타 2024년 2004~ 현역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역대 소속 선수
<rowcolor=#FFFFFF> 포지션 이름 역할 등번호
- 김인식 감독 -
- 김윤겸 수석코치 -
- 유지훤 타격&수비코치 -
- 송진우 투수코치 -
- 김구라 단장 겸 해설 -
- 성승헌 캐스터 -
- 이찬원 캐스터 -
외야수 양준혁 선수 10
외야수 윤현민 선수 11
내야수 윤석민(타자) 선수 13
내야수 안경현 선수 16
내야수 채태인 선수 17
투수 이동현 선수 18
포수, 외야수 홍성흔
C
주장/선수 22
투수 윤석민(투수) 선수 24
포수, 내야수 최준석 선수 25
포수 현재윤 선수 27
투수 김환 중계/선수 29
내야수 박종호 선수 31
투수 송창식 선수 38
투수 니퍼트 선수 40
내야수 마해영 선수 49
투수 봉중근 선수 51
내야수 김태균 선수 52
외야수 이대형 선수 53
투수 유원상 선수 55
투수 이한진 선수 77
}}}}}}}}} ||

송진우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Eagles_Champion_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9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02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우승코치
2015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02561> 파일: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 ||
{{{#!wiki style="margin: 0 -11px -5px"
{{{#182132,#DDD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1px"
{{{#000000,#E5E5E5
1982 1983 1984 1985 1986
황태환
OB 베어스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1987 1988 1989 1990 1991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1992 1993 1994 1995 1996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이상훈
LG 트윈스
구대성
한화 이글스
1997 1998 1999 2000 2001
이대진
해태 타이거즈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임선동
현대 유니콘스
신윤호
LG 트윈스
2002 2003 2004 2005 2006
송진우
한화 이글스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류현진
한화 이글스
2007 2008 2009 2010 2011
리오스
두산 베어스
김광현
SK 와이번스
로페즈
KIA 타이거즈
류현진
한화 이글스
윤석민
KIA 타이거즈
2012 2013 2014 2015 2016
장원삼
삼성 라이온즈
손승락
넥센 히어로즈
밴헤켄
넥센 히어로즈
해커
NC 다이노스
니퍼트
두산 베어스
2017 2018 2019 2020 2021
양현종
KIA 타이거즈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미란다
두산 베어스
2022 2023
안우진
키움 히어로즈
페디
NC 다이노스
}}}}}}}}}}}}}}} ||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2004 사랑의 골든글러브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061731> 파일:KBO 40주년 레전드 TOP4 로고.svg 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다 득표자 TOP 4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tablebgcolor=#061731><tablewidth=100%>
파일:KBO_40주년_선동열_B.png
파일:KBO_40주년_최동원_B.png
파일:KBO_40주년_이종범_B.png
파일:KBO_40주년_이승엽_B.png
1위 2위 3위 4위
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원년의 스타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박철순_B.png
파일:KBO_40주년_이만수_B.png
파일:KBO_40주년_백인천_B.png
파일:KBO_40주년_김성한_B.png
11위 12위 24위 25위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불굴의 의지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이상훈_B.png
파일:KBO_40주년_박정태_B.png
파일:KBO_40주년_니퍼트_B.png
파일:KBO_40주년_배영수_B.png
27위 32위 33위 35위
이상훈 박정태 니퍼트 배영수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82 세계선수권 주역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장효조_B.png
파일:KBO_40주년_김시진_B.png
파일:KBO_40주년_한대화_B.png
파일:KBO_40주년_김재박_B.png
6위 20위 28위 31위
장효조 김시진 한대화 김재박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강 선발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이강철_B.png
파일:KBO_40주년_정민철_B.png
파일:KBO_40주년_정민태_B.png
파일:KBO_40주년_조계현_B.png
9위 13위 18위 26위
이강철 정민철 정민태 조계현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성실함의 대명사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김태균_B.png
파일:KBO_40주년_박재홍_B.png
파일:KBO_40주년_박경완_B.png
파일:KBO_40주년_홍성흔_B.png
14위 17위 23위 36위
김태균 박재홍 박경완 홍성흔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근성의 야수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전준호_B.png
파일:KBO_40주년_이순철_B.png
파일:KBO_40주년_정근우_B.png
파일:KBO_40주년_박진만_B.png
34위 37위 38위 39위
전준호 이순철 정근우 박진만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강 좌타자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양준혁_B.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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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15위 19위 22위
양준혁 박용택 이병규 김기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우타 거포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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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29위 30위 40위
장종훈 김동주 심정수 우즈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전천후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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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_40주년_김용수_B.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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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8위 16위 21위
송진우 구대성 김용수 임창용
}}}}}}}}} ||
득표순위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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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로고(영문).svg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일간스포츠 선정 프로야구 40주년 기념 포지션별 올스타
2022. 01. 03. 일간스포츠 발표

OF

OF

OF

SS

2B

3B

1B

C

SP

SP

SP

SP

SP

CP

CP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1999 플레이오프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2 KBO 리그 다승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0, 1992 KBO 리그 구원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0 KBO 리그 승률왕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투수 마일스톤 기록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00승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김시진
(1983~1992)
1987년 / 124승
최동원
(1983~1990)
1990년 / 103승
선동열
(1985~1995)
1990년 / 146승
장호연
(1983~1995)
1993년 / 109승
윤학길
(1986~1997)
1994년 / 117승
정삼흠
(1985~1996)
1996년 / 106승
이강철
(1989~2005)
1996년 / 152승
조계현
(1989~2001)
1996년 / 126승
송진우
(1989~2009)
1997년 / 210승
김용수
(1985~2000)
1998년 / 126승
정민철
(1992~2009)
1999년 / 161승
김상진
(1989~2003)
1999년 / 122승
이상군
(1986~2001)
2000년 / 100승
한용덕
(1987~2004)
2000년 / 120승
정민태
(1992~2008)
2000년 / 124승
김원형
(1991~2011)
2005년 / 134승
임창용
(1995~2018)
2007년 / 130승
김수경
(1998~2012)
2007년 / 112승
이상목
(1990~2009)
2008년 / 100승
손민한
(1997~2015)
2009년 / 123승
이대진
(1993~2012)
2009년 / 100승
박명환
(1996~2015)
2010년 / 103승
배영수
(2000~2019)
2012년 / 138승
장원삼
(2006~2020)
2015년 / 121승
윤성환
(2004~2020)
2016년 / 135승
김광현
(2007~)
2016년 / 158승
장원준
(2004~2023)
2016년 / 132승
양현종
(2007~)
2017년 / 168승
송승준
(2007~2021)
2017년 / 109승
니퍼트
(2011~2018)
2018년 / 102승
차우찬
(2006~2023)
2019년 / 112승
유희관
(2009~2021)
2021년 / 101승
}}}}}}}}} ||
300세이브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오승환
(2005~)
2021년 / 400세이브
}}}}}}}}} ||
2000탈삼진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송진우
(1989~2009)
2008년 / 2048탈삼진
}}}}}}}}} ||
같이 보기: KBO 리그 타자 마일스톤 기록
}}}}}}}}} ||


보유 기록
통산 최다 승리 210승
통산 최다 패전 153패
통산 최다 이닝 3003이닝
통산 최다 탈삼진 2048K
통산 최다 실점 1341점
통산 최다 자책점 1170점
통산 최다 피안타 2718개
통산 최다 피홈런 272개
통산 최다 피볼넷 1155개
최고령 출장 43세 2개월 10일[1][2]
최고령 승리 43세 1개월 23일[3]
최고령 홀드 43세 1개월 26일[4]
최고령 완투 39세 6개월 23일[5]
최고령 완봉승 39세 6개월 23일[6]
}}} ||
송진우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KPBPA_LOGO_N.png (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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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초대 2대 3대 4대 5대
송진우
2000.01~2001.06
이호성
2001.07~2001.12
김동수
2005.01~2005.11
이종범
2005.12~2007.11
손민한
2007.12~2009.11
6대 7대 8대 9대 10대
손민한
2009.12~2011.11
박재홍
2011.12~2012.12
서재응
2013.01~2015.12
이호준
2016.01~2017.03
이대호
2019.03~2020.12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양의지
2020.12~2022.12
김현수
2022.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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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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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송진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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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빙그레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1번}}}
이광길
(1985.4.20.~1988)
송진우
(1989)
지화동
(1990~1994)
{{{#ffffff [[빙그레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21번}}}
안성수
(1988~1989)
송진우
(1990~2009)
KBO 영구 결번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84번}}}
강석천
(2004)
송진우
(2011~2014)
권영호
(2015~2017)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21번}}}
KBO 영구 결번 송진우
(2018~2020)
KBO 영구 결번
}}} ||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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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룡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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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0 이승호 · 15 구대성 · 19 정대현 · 20 정민태
21 송진우 · 30 김수경 · 39 임창용 · 35 진필중
54 임선동 · 59 박석진 · 61 손민한
포수 22 홍성흔 · 26 박경완
내야수 5 김한수 · 6 김태균 · 7 박진만
18 김동주 · 31 박종호 · 36 이승엽
외야수 1 장성호 · 8 정수근 · 9 이병규
11 김기태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응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1 강병철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주성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2 아시안 게임
김인식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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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8 노장진 · 20 이승호 · 21 송진우
27 박명환 · 37 임창용 · 41 김진우
47 이상훈 · 51 조용준 · 55 정재복
포수 22 홍성흔 · 44 김상훈
내야수 1 장성호 · 3 박진만 · 5 김한수 · 10 김동주
14 김민재 · 16 김종국 · 36 이승엽
외야수 7 이종범 · 9 이병규
34 이영우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김성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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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송진우.png
<colbgcolor=#ff6600><colcolor=#ffffff> 한화 이글스 No.21
송진우
宋津宇 | Song Jin-Woo
출생 1965년 2월 16일[7] ([age(1965-02-16)]세)
충청북도 괴산군 증평읍[8]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증평초 - 세광중 - 세광고 - 동국대
신체 180cm, 75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8년 1차 지명 ( 빙그레)[9]
소속팀 세일통상 야구단 (1988)
빙그레- 한화 이글스 (1989~2009)
지도자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1~2012)[10]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2~2013)[11]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3~2014)[12]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8~2019)[13]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9)[14]
한화 이글스 육성군 투수코치 (2020)[15]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20)[16]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 (2021)
대덕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3)
세종원스톤야구단 감독 (20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불펜코치 (2015)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17)
프런트 대덕대학교 야구부 기술위원장 (2023~)
해설위원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5~2016)
경력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2000~2001)
KBO 재능기부위원 (202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15~2017)
본관 진천 송씨(鎭川 宋氏)[17]
가족 장남 송우석, 차남 송우현, 삼남[18], 외조카 이우찬

1. 개요2. 선수 경력3. 피칭 스타일4. 은퇴 이후
4.1. 지도자 경력4.2. 해설자 경력
4.2.1. 2015년4.2.2. 2016년
5. 논란
5.1. 부정투구 논란
5.1.1. 본인의 해명
6. 2012년 한-일 레전드 매치7. 기록
7.1. 그가 쌓은 금자탑
7.1.1. 수상 내역7.1.2. 최고령 기록7.1.3. KBO 최초로 달성한 기록들
8. 여담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송진우 선배님 같은 분들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야구로 최고가 된 사람들에겐 적이 많더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선배님 같은 분들은 철저하게 야구를 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야구 선수다. 야구 잘 하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 참고 자제하며 대기록을 세운 선배님이다. 난 정말 송진우 선배를 존경한다.
김태균

한화 이글스 투수이자 前 1군 투수 코치. 현역 시절 등번호는 21번.[19] KBO 리그 통산 유일한 200승 투수이며, 역대 최다승, 최다 이닝, 최다 탈삼진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이다.

2011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팀을 나와 2016년까지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있다가 2018년 한화의 투수 코치로 복귀했었고 이후 독립리그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을 맡았다.

2. 선수 경력

송진우의 선수 경력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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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통합 선수 경력 : 송진우(야구)/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2000년 2001년
2002~2006년 2007~2009년
}}}}}}}}} ||

3. 피칭 스타일

파일:송진우포심.gif
142km/h 포심 패스트볼
파일:송진우슬라.gif
131km/h 슬라이더
파일:송진우커브.gif
108km/h 커브
파일:송진우써체.gif
123km/h 포크볼
파일:송진우써클.gif
124km/h 서클체인지업

좌완 정통파 투수로, 매우 빼어난 제구로 유명했던 선수. 게다가 빙그레 이글스 시절에는 최고 구속 145 km/h를 던져서 좌완 파이어볼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상훈 구대성 등 최고 구속이 150km/h를 넘는 좌완이 등장하기 전까지 좌완으로는 거의 원톱의 구속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입단 당시부터 선발-중무리를 넘나드는 등 지속된 혹사로 인해 1996년을 정점으로 구속이 감퇴하면서 00년대를 넘어가선 140km/h대 속구를 구사하기는 어려워졌다. [20] 그렇게 되자 송진우는 서클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장착하며 기교파 투수로 거듭났고, 선수생활 후반기까지 선발 투수로 롱런하였다.

사실 송진우의 커리어 21시즌 중 풀타임을 선발투수로만 뛴 시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95~96, 02, 04~06시즌 정도만이 선발로 풀타임을 뛰었다고 볼 수 있는 정도며 이중에서도 계투 등판 자체가 아예 없는 시즌은 95, 06시즌밖에 없다. 빙그레 시절에는 에이스를 마당쇠처럼 운영하는 당시의 메타로 인해 계투 및 마무리의 비중이 컸고 아예 거의 전업 마무리로만 뛴 시즌도 있을 정도였으며, 94시즌 중반 이후부터는 전업선발이었다지만 전통적으로 구대성 빼면 없다시피했던 한화의 암울한 불펜 상황, 그리고 이를 포장하기 위해 팀 분위기 쇄신 등의 이유를 들어 시즌 도중 계투로 전향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그러한 강행군을 송진우는 무리없이 소화해내며 20년을 넘게 뛰었다는 점에서 정말 내구성 하나만은 올타임 넘버원이었던 투수다.

투수 수비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투구 후 타구 수비 능력이 출중했다. 몸이 유연하기도 하고[21], 빨리 수비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폼도 간결한 편이다. 실제로 투수도 내야수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본인 지론이기도 하다.

4. 은퇴 이후

4.1.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송진우(야구)/지도자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해설자 경력

팀을 떠난 이후, 조성환과 함께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친정팀 경기를 해설하면 진다는 징크스가 있다.

4.2.1. 2015년

목소리 톤부터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는데... 그건 둘째고 해설 퀄러티도 상당히 아쉬운 수준이다. 흐름 끊는 말들은 물론이고 횡설수설하는 유체이탈 화법 같은 말들은 도무지 무슨 말 인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예로 2015년 4월 21일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간의 경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맞으면 홈런이고 치면 아웃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어록이 있다.
대표적인 엉뚱한 어록들
안타는 나와도 홈런을 못치고 홈런을 치면 실책을 해도 팀은 이긴다

아무리 봐도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 이 때문에 한화 이글스 팬들마저 송진우가 해설하면 음소거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해설로 데뷔한 정민철과는 180도 다른 행보. 이종범, 조성환 등 2015년 10구단 체제에 급히 합류한 해설위원들이 진통을 겪었지만 송진우는 그 중에서도 평가가 독보적으로 나빴다.

이 날 경기 이후 KBS N SPORTS 게시판에는

이 분은 대체 뭘 하고 싶으신 건가요?,
해설위원이 아니라 (한화)응원단장 같네요.,
이 분이 나오면 전 그냥 중계방송 안 볼랍니다.,
내가 다른 사람 욕 하려고 회원가입 하긴 처음입니다.,
하라는 해설은 안 하고 말 끊어먹지를 않나 자기 말만 늘어 놓지를 않나, 왜 앉아있는 거죠?, 사장님 그냥 이 분 짜르시라니까요 등 악평이 끊이지 않는다.

2015년 8월 13일 삼성 vs 기아 경기에서 1루에서 주루 플레이를 준비 중이었던 나바로 최형우타구에 직격당했는데도
"기아에게 행운이 따라주었습니다."
"맞으면 안 되죠, 피해야 됩니다."
등 이해할 수 없이 이기적인 해설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래의 항목에 나와 있는 사건마저 터뜨려 버렸다.

더 큰 문제는 KBS N이 해설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성환, 안치용보다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예 송진우를 단독으로 해설시키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이 사람 덕분에 하일성이 재평가받을 정도로 최악의 해설임을 KBS N은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23일 삼성 vs KT 전에서 타일러 클로이드 클리대로 호칭해서 삼성 팬들의 공분을 샀다. 사적인 자리와 공적인 자리를 구별하며 말하는 것을 망각한 처사이다.

4.2.2. 2016년

LG 투수들이 신중하게 가는 건지, 어렵게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정말 어렵게 가네요.
ㅡ 2016년 4월 LG 경기 중계 당시

2016년 4월 17일 한화 vs LG 전에서는 아무리 선수 시절 데뷔부터 은퇴할 때까지 뛰었던 팀이라지만 도가 넘은 한화 편파해설을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부엔 한화가 공격을 하든 LG가 공격을 하든 상관없이 한화 이야기만 했다. LG가 6:0으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한화가 3점차로 따라붙을 때에 나온 말로,
저도 승부산가봐요. 6:0이 될 때까지는 사실 중계하면서 흥미가 없었는데 이런 승부처가 되니까 저도 기분이 좋은데요
라는, 야구선수, 그것도 KBO에서 손꼽히는 레전드 투수 출신의 야구 해설자가 자신이 뛰었던 팀이 지고 있자, 중계 중인 경기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화를 보고는 "우리 구단"이라고 언급하는 등, 해설자로서의 기본이 부족하다. 이어 논란은 계속있었다. 삼성과 한화 경기에서 8회까지 경기가 무득점 승부로 흘러갔고 9회 삼성이 무사 1루와 2루에 기회를 맞아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해 1사 2루와 3루라는 작전을 성공한 뒤 한화 투수가 연속삼진을 잡자 박수소리가 중계방송 가까이 들렸다. 해설에 마이크 소리로 박수소리가 들려 팬들이 의심을 하면서 경기를 본 가운데 경기가 끝나고 중계실 카메라에 송진우의 박수 소리가 들린거였다.
--
4월 24일, 두산 vs 한화 전에서도 편파해설을 보여줬다.[23] 한화의 정근우가 호수비를 하자마자 굉장히 큰 목소리로
"역시 정근우네요"
라는 소리를 날리는가 하면, 권혁이 1루 베이스 커버 때 베이스에 살짝 스쳐서 세이프가 된 상황이 되자,[24] 투수들은 "베이스 커버시에 끝 부분을 갖다 대는 연습을 한다"라며 열심히 커버쳐 주는가 하면, 정수빈의 내야안타가 나왔을 때는, "맞히기에 급급했는데 안타가 됐네요."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 날, 한화가 두산한테 5대 0으로 지고 있다가 9회초, 신성현의 홈런으로 5대 1이 되었을 때는 해설의 본질을 잊은채 경기장의 분위기가 좋다며 흥분을 하였다.

김광현이 승리투수가 된 날 인터뷰로 김광현에게 까지 호되게 까였다. "저를 안 좋게 보는 것 같아요" 부터 시작해서 "저 힘 많이 뺐거든요" 등 거의 5분을 송진우에게 극딜을 가하는 김광현의 인터뷰가 재미를 주었다. 송진우는 경기 끝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5월 26일 LG vs 롯데의 경기 중계 중, 오지환이 대타로 나와 2루타를 기록하자, 생뚱맞게 는 이야기를 했다.

6월 22일에는
김기태 감독이 FA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라는 명언이 나왔다. 명색이 선수 출신 야구 해설자에다가 1년차도 아니면서 어느 선수가 FA를 했는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26] 준비도 안 하고 해설 하는 티가 팍팍 난다.

7월10일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자신의 팀이 우승했을 때 상대 팀 선수였던 조성환[27] 앞에서 대놓고라고 발언했다.

8월 4일 역시나 한화 vs KIA의 광주 3연전 중 마지막에 배치가 되어[28] KIA 선수들 칭찬은 일시적이지만 한화 편파중계는 영원하다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하였다. 이용철과 함께 배치가 되어 해설을 했는데, 오죽했으면 8회 이후론[29] 그냥 이용철하고 캐스터만 중계하는 듯한 기분. 그리고 9회초 2아웃 김태균의 헛스윙 삼진이 나왔을 때, 김태균이 파울이라고 주장하자
"잠깐. 지금은 파울인 것 같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
라고 말했다. 합의판정 결과는 당연히 헛스윙 삼진이었지만 중요한 건 해설자가 파울이라고 단정을 짓고 해설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잠깐. 한화 쪽에서 파울이 아니냐고 합의판정을 요청했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라고 말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7년 1월 11일, 당연히 이 따위 해설로 시청자의 귀를 썩게 했으니, KBS N SPORTS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마이크를 내려 놓았다.

5. 논란

5.1. 부정투구 논란

2015년 4월 9일, 삼성과 롯데 경기 중계중에 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해당영상 (42초경부터 나온다)
(6회초 볼넷으로 출루한 손아섭이 배트 손잡이 부분에 테이핑을 한 것을 보고 송진우가 이것이 일종이 루틴이냐고 묻자 조성환이 타구의 비거리를 좀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에 했다고 답변한 이후)

송진우: 뭐 저 같은 경우는 시합 들어가기 전에 항상 글러브를 거 바세린으로다가 닦곤 했어요. 어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계속 했었고, 바셀린으로 닦다 보니까 포수한테 공이 날아올 때 공이 좀 끈적끈적해서 손에 그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죠. 너무 좋았어요.

조성환: 부정, 부정투구 아닙니까?;;

송진우: 어, 일단 한번도 안걸렸고. 어 그 정도 갖고는 부정투구라는 생각은 사실 안 해봤어요.

본인의 말대로 통산 21년의 선수 생활 동안 부정투구가 적발된 적이 없지만, 글러브를 손질할 때 바셀린을 사용하니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다는 표현은 부정투구에 대한 의심을 살만한 멘션이었다.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글러브는 글러브 전용 오일[30]로 닦는 것이 정석이다. 물론 송진우가 선수생활을 할 시절에는 흔히 구할 수 있는 바셀린으로 글러브 관리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현 사회인 야구 선수들도 가격 등의 이유로 바셀린을 많이 사용한다. 또한 글러브에 오일을 많이 도포하여 관리하면 글러브는 무겁고 부드러워 지나 글러브가 끈적해지며 공이 달라 붙는 느낌이 난다. 그런 느낌이 좋아 처음부터 오일을 대량 도포해 부드럽고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아 미국산 글러브를 쓰는 사람도 많다.

5.1.1. 본인의 해명

2015년 8월 21일 네이버 스포츠의 <라디오볼>에서 전화 상으로 바셀린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해당방송, 해명기사

이하는 송진우의 해명.
이 자리에서 이런(해명할) 기회가 있어서 좋다.
나는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그 당시 바셀린은 글러브를 청소하는 도구였으며, 어떤 선수도 바셀린을 투구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다.
당시에는 글러브를 닦는 소재가 없었다. 바셀린, 구두약(무광)으로 닦기도 했다.
야구장에는 심판, 기록원, 전력분석원, 카메라를 비롯하여 눈이 한 두개가 아니다.
21년동안 야구를 했는데 (부정투구를 했다면) 심판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번도 바셀린을 투구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으며,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 역시 일종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데 바셀린을 손끝에 바르고 공을 잡으면 매우 미끄럽기 때문에 원하는 곳에 절대로 공을 던질 수가 없다.
나는 마운드에서 타자와 열심히 싸웠을 뿐 다른 편법으로 타자와 승부를 한 적이 없다.
다만 방송에서 방송 초보인 지라 전달 과정에서 미스(실수)가 있었다.

이하는 송진우의 해명에 대한 안치용의 옹호이다.
내야수의 경우 글러브에 로진백을 터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글러브에 왁스가 묻어 미끄러워 공이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로진백으로 없애고자하는 것이다.
바셀린을 발랐다고 더 잘 던지고 공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구에 안 좋을수도 있다. 유리한 것은 없다.
바셀린은 청소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21년 12월 21일, 박재호 기자의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에 출연하여 공을 던지기 위해 사용한게 아니라 글러브를 닦을 때 사용했다고 재차 해명했다. #

6. 2012년 한-일 레전드 매치[31]

파일:/image/014/2012/07/20/20120720214602905.jpg

2012년 7월 20일, 한-일 레전드 매치에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 아직도 제구가 되는 130km/h이 넘는 공을 뿌리는 모습을 선보였다. 당시 나이가 48세인 것과 은퇴한 상태인 것을 생각하면 몸관리를 꾸준히 한 것을 알 수 있다.

7. 기록

7.1. 그가 쌓은 금자탑

  • 210승(1위) - 통산 2위는 양현종의 169승. 선발승 역시 163승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양현종이 2023년 9월 1일에 164번째 선발승을 기록하면서 선발승은 2위가 되었다.
  • 3,003이닝(1위) - 2위는 정민철의 2,394⅔이닝
  • 2,048 탈삼진(1위) - 2위는 양현종의 1,963탈삼진
  • 11시즌 두자릿수 승수(1위) - 2위는 정민철, 이강철의 10시즌[32]
  • 153패(1위) - 2위는 김원형의 144패. 통산 최다승에 가려져서 그렇지 통산 최다패도 송진우의 몫이다. 이는 20년 동안 선수 생활을 꾸준히 지속했기에 쌓인 어쩔 수 없는 기록으로 결코 부끄러워할 기록은 아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다승 투수인 사이 영, 일본프로야구 최다승 투수인 김경홍도 동시에 최다패 투수이다.[33] 이 때문인지 투수들에게 조언할 때 두려워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최다패 투수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 272피홈런(1위) 2718피안타(1위) 1341실점(1위) 1155볼넷(1위) - 최다패와 마찬가지로 선수 생활을 꾸준히 지속했기에 쌓인 기록이다.

송진우의 KBO 통산 기록들은 정말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들이다. 200승도 힘든 와중에 200승 100세이브를 한 데다가, 3,000이닝까지 소화했기 때문이다.[34] 피칭 스타일을 바꿔가면서 이렇게 롱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제구력 중심의 피네스 피처라고 해서 꼭 롱런하는 것도 아니다.[35] 거기에 송진우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왔기 때문에 4년을 손해보고, 1년을 실업팀에서 뛰고 와서 고졸 선수에 비해 5년이나 늦게 커리어를 시작해 누적에서 크게 불리한 상황이었는데도 누적 1위 기록을 많이 남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36]

KBO에서 활동했던 좌완 투수 중에서는 송진우가 100승을 처음으로 돌파했고, 그 다음으로 100승을 넘긴 좌완 투수는 장원삼이다.[37]

그리고 송진우의 기록들이 깨지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이 기록을 위협할 만한 A급 이상의 투수가 나오면 KBO를 떠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최소 1년이라도 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오더라도 공백이 생겨서 송진우의 기록을 넘기 어려워진다. 한국에서 평생을 뛰더라도 이제는 송진우처럼 중무리로 뛸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며, 또 코칭 스태프들이 이닝 소화도 제한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록 갱신이 쉽지 않다. 2022시즌에 양현종이 MLB에서 KIA로 돌아와서 4년 FA 계약을 맺었다. 양현종이 매년 10승, 100이닝, 100탈삼진을 기록하면 4년 내에 송진우의 기록을 여럿 경신할 수 있게 된다.

7.1.1. 수상 내역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1999)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2)
플레이오프 MVP (1999)
승리 1위 (1992)
구원왕 2회 (1990, 1992)
승률 1위 (2000)

7.1.2. 최고령 기록

무려 21시즌, 만 43세가 될때까지 현역 생활을 했기에 다수의 최고령 투수 기록을 보유중이다. 참고로 송진우는 호적상으로는 1966년 2월 16일 생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는 1965년생이다. 물론 이 기록들은 당연히 주민등록상 출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한다.

이 기록에 근접한 선수로는 2013년 기준 최향남 류택현선수 밖에 없다. 둘다 1971년생. 실제로 최향남은 2012년에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 하였고, 2013년에 최고령 승리투수 2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2015년 기준으로 최향남은 다이빙 덕스를 거쳐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중국으로 가버렸고, 류택현은 은퇴 했다.

2015년 최영필이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42살의 나이로 2점대 후반을 찍으면서 기록을 갈아치울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최영필은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현역을 이어가면서, 정말 일부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7년 6월 9일 은퇴를 선언하며 다음 후보는 임창용으로 넘어갔다. 임창용은 2018년 시즌까지 뛰었으나 시즌 종료후 방출되며, 사실상 은퇴하게 되었다.

2017 시즌 종료 후, 같은 팀의 투수 박정진이 FA 계약으로 2년 더 현역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8년은 사실상 거의 쉬며 출전하지 못했고 2019년에 은퇴했다.

국내 야구 기록은 아니지만, 구대성은 호주 리그로 넘어가서 2014년에 만 44세의 나이로 출전하며 송진우의 최고령 경기출장을 넘어섰다.

하지만 류현진이 8년 170억의 초대형 계약을 맺으면서 만약 8년을 모두 채울 경우 최고령 출장 기록을 갈아치울 확률이 높다.
기록 당시 나이 날짜 장소 및 상대팀
최고령 출장 43세 7개월 7일[38] 2009년 9월23일 대전 LG전
최고령 홀드 43세 1개월 26일 2009년 4월11일 대전 롯데전
최고령 구원승 43세 1개월 23일 2009년 4월 8일 대전 두산전
최고령 선발승 42세 6개월 28일 2008년 9월 13일 문학 SK전
최고령 완투승/완봉승 39세 6개월 23일 2005년 9월 8일 문학 SK전
최고령 노히트 노런 34세 3개월 2일 2000년 5월18일[39] 광주 해태전[40]

7.1.3. KBO 최초로 달성한 기록들

8. 여담

  • 별명은 송골매, 송회장님(초대 선수협 회장을 역임), 송덕스(송진우 + 메이저 리그의 전설적 투수 그렉 매덕스의 합성).
  • 늦둥이 막내 아들을 제외한 장남과 차남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 선수로 활동 했다가 방출되었다. 둘다 좌완투수이고, 유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번은 아들을 보러갔을 때 아들이 야구부에서 포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도루저지에서의 불리함 때문에 좌투에게는 포수를 시키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들이 포수를 보고 있어서 감독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홈에서 2루까지 송구가 가능한 사람이 아들밖에 없어서 시켰다고 하는 이야기. 역시 피는 못속이나보다.
  • 200승 혹은 300세이브, 2000안타를 기록해야 가입할 수 있는 한국판 명예의 전당인 성구회의 1호 회원. 양준혁, 전준호와 함께 창립 멤버다.
  • 비단 이런 성적으로뿐만 아니라, 선수권익보호를 위한 선수협 창설의 주역 중 한명으로 참여하여 현재의 선수협을 만들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긴급 구조 SOS의 PD는 송진우 코치가 선수로서 은퇴하기 전에 예전 선수협과 관련된 만남에 대한 글을 올리며 경의를 표했다. 회장님의 짜증
협상 테이블에서 입 다물고 앉아 있기만 해도 고액의 연봉이 보장될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나서게 되었을까. 저는 뭔가 엄숙한 발언 내지는 숨겨진 속사정을 기대하면서 선수협 회장님 송진우 선수에게 그 이유를 물었는데 송진우 회장님은 갑자기 짜증을 버럭 냈습니다.

고액 연봉자들이 왜 이러느냐구요? 그 질문 백번도 더 듣겠네. 아니 당연히 우리가 총대를 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이해 안돼요? 연봉 천만원 받고도 감사합니다 하는 애들이 이런 거 할 수 있겠어요? 우리한테도 지금 이렇게 대하는데 걔들이 나서 봐요.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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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끗하고 점잖은 이미지의 소유자이지만 2006년 한화 vs 현대 전에서 안영명이 빈볼성 투구로 김동수 선수에게 싸대기를 맞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불같이 뛰쳐 나와 이단 옆차기를 작렬해 벌금 100만원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원래 난투극이 벌어져도 신발에 박힌 스파이크 때문에 선수가 다칠 확률이 높아져서 발차기는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46][47][48] 덕분에 송진우는 이때 사건 딱 하나로 역대 프로야구 난투극 Best 장면 때마다 항상 등장 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이단옆차기를 맞은 것은 김동수도 아니고 벤치 클리어링 말리러 나간 송지만. 게다가 송지만은 한화에 있다 현대로 트레이드되어 송회장과도 한솥밥을 먹은 사이었기 때문에 조금 억울했다고 한다.
다른데 였으면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먹이 얼굴로 갔다. 어떤 언론에서는 나보고 품위 없다고 하던데, 후배가 얼굴에 주먹으로 맞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 선배로서의 품위 인지는 잘 모르겠다.
  • 위에서도 나왔지만 의외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자주 즐겨보는 스덕이라고 한다. 2009년 당시 인터뷰에서도 아발론 MSL 2009 우승자인 김윤환에게 축하한다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로 즐겨본다고 한다.[54] 스타 실력도 꽤 되는지 한화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스타크래프트 잘하는 사람으로 언급한 적도 있을 정도. 사실은 차남 송우현과 친해지기 위해 배웠다고 한다.[55]
  • 스타리그를 즐겨봤던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게임을 즐기는 편인데, 90년대 중후반~2000년까지 대전 둔산동 게임프라자 매장[56]을 가끔식 방문하여 패키지 게임을 구입하는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다. 둔산동 게임프라자 매장의 사장에게 선물로 사인볼을 두개 줬다고 한다.
  • 2010년 10월 30일(천하무적 야구단 2010년 11월 20일 방영분) 뇌경색으로 투병 중인 KIA 타이거즈 김동재 코치의 쾌유를 위한 일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의 자선 경기가 열렸는데, 일구회의 선수로 참가했다. 포지션은 당연히 투수였으며, 마지막 이닝인 7회초 7:7 동점 무사 3루의 위기상황에서 구원 등판하였다. 천무단은 은퇴한지 1년 밖에 안된 현역이나 다를 바 없는 송진우 코치를 투입하는 것은 반칙이나 다름없다고 항의를 하였지만, 항의는 기각되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역시나 3타자를 땅볼, 삼진, 삼진으로 간단히 막으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경기는 7회말 무사 만루 찬스에서 한대화 감독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8:7 로 일구회 올스타가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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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2014 1주년 기념방송 예고대로 02 송진우(가명:박흥진)의 엘리트 카드가 업데이트되었다.[57]
  • 컴퓨터 마구마구에서도 엘리트가 추가됐는데 연도는19승에 17세이브를 거두면서 다승, 구원왕을 동시석권한 92년도로 추가됐다.
  •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대전 으능정이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유세에 참여하기도 했다.

  • 같은 KBS N SPORTS 해설위원 장성호와 투타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영상을 보고 확인하자.
  • 일본프로야구 최다승 투수인 카네다 마사이치처럼 왼팔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현역 시절 아이싱을 받지 않았으며, 손톱깎이를 쓰지 않고 사포를 이용해 손톱을 관리했다고 한다. #
  • 은퇴 할때까지 선수시절 내내 데뷔때의 허리둘레를 유지했다고 한다.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가벼운 팔 운동이나 몸을 계속 움직이는 걸로 유명했다.
  • 용병들이 보는 송진우의 첫 모습은 매우 유쾌한 코치 정도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송진우의 기록을 알려주면 놀라면서 반응이 바뀐다고.
  • 논란이 있긴 하다. #
  • 축덕인 것으로 보이는데, 한화와 같은 연고지의 대전 하나 시티즌의 홈경기를 종종 직관한다. 2022년 4월 9일 대전 홈경기도 방문했는데, 이날은 전광판에서 송진우의 모습을 잡아주며 축구장 장내 아나운서가 소개해주기도 하였다.
  • 통산 KBO 최다승 투수지만, 막상 한 시즌 20승은 기록하지 못했다. 1992년 19승이 최다승 커리어로[58], 통산 100승을 넘긴 최동원, 선동열, 정민태, 김시진과 다르게, 단독 시즌 20승이 없는 선수로 통산 최다승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인데 이것을 바꿔말하면 그만큼 송진우가 기복없이 꾸준히 성적을 내왔기에 이러한 대기록을 달성했다고도 볼 수 있다.
  • 2023년 5월 22일 고향인 증평군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

9. 관련 문서



[1] 2009년 4월26일 잠실 두산전 [2] 투수, 타자 모두 포함해서 최고령 기록이다. 참고로 2009년 9월 23일에 은퇴경기를 가지고, 1타자를 상대하였으나, 이는 기록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3] 2009년 4월 8일 대전 두산전 [4] 2009년 4월 11일 대전 롯데전 [5] 2005년 9월 8일 문학 SK전 [6] 2005년 9월 8일 문학 SK전 [7] 호적상으로는 1966년생이나 실제로는 1965년생 [8] 현재의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당시 행정구역상 괴산군 증평읍이었고, 증평읍은 2003년에 괴산군으로부터 분리되어 증평군으로 승격하였다. [9] 당시에는 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아마추어 선수만 출전만 가능했던 까닭에 88년에는 실업팀인 세일통상 야구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듬해인 89년에 입단했다. [10] ~7월 5일 [11] 2012년 7월 6일~2013년 7월 17일 [12] 7월 18일~ [13] ~6월 23일 [14] 6월 24일~ [15] ~6월 7일 [16] 6월 8일~ [17] #. 송정공파(松亭公派)-춘천(春川) 사암종중(沙岩宗中) 27세 규(圭) 항렬. 족보명은 송진규(宋津圭). 아버지 송병영(宋炳玲, 1925. 1. 25 ~ 2019. 8. 27)는 26세 병(炳) 항렬이다. [18] 2018년생이며, 첫 부인과 사별한 뒤 재혼한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19] 빙그레 입단 당시에는 1번을 달았다. 2년차이던 1990년부터 21번을 달고 은퇴할 때까지 바꾸지 않았고, 그 후로는 KBO 영구 결번되었으나 2018년 본인이 코치로 돌아와 다시 해당 번호를 달았다. [20] 97~02년경 까진 최고 143 km/h, 평균 138~142 km/h 정도를 던졌고, 40줄을 넘어간 06~08년엔 최고 140 km/h, 평균 134~136 km/h를 던졌다. [21] 유승안이 감독일 때 송진우를 시즌 중 계투 전향시키면서, "송진우는 흑인처럼 몸이 유연하다"라고 말한 것이 매우 유명하다. 다만 하필 흑인을 비유로 드는 바람에... [22] 실제로 누가 한 말이긴 하지만, 이건 야구가 아닌 축구 단기대회에서나 적용되는 말이다. 당연히 축구도 장기 리그전에서는 수비만으로 이기긴 힘들다. 차라리 "공격은 못해도 수비를 잘하면 (상대를) 압도하지는 못해도 우승은 가능하다" 정도로 표현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공격으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해도 수비빨로 이기는 경우는 있기 때문. 다만 표현 방법이 서툴렀을지언정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하다. 공격으로 시즌 중 1승, 1승을 거둘 수는 있으나 결국은 시즌 우승, 포스트 시즌의 우승은 수비가 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이 차이가 대부분 수비에서 나온다 [23] 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장원준이 고작 몇 시간 차이로 송진우 - 장원삼 - 김광현에 이어 4번째로 좌완 100승 투수가 된 날이었다. 두산이 만약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이 아니였으면 3번째가 장원준, 4번째가 김광현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야구에 만약은 없다. [24] 흔히 아는 베이스 커버가 아닌, 말 그대로 베이스 끝부분에 발을 들이댔다. [25] 오지환의 하체가 탄탄하고 몸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놓고 직설적으로 엉덩이가 탐난다고 표현하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느낄 수 있다. 차라리 하체가 좋아보인다 혹은 몸관리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저 몸을 갖고 싶을 정도로 부럽다라고 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26] 참고로 김기태는 삼성에서 뛰던 2000년 FA가 되어 4년 총 18억에 삼성과 재계약한 바 있다. [27] 조성환은 99년 한국시리즈 당시 엔트리에 없었다. [28] 앞의 두 경기까진 장성호 안치용이 해설이었다. [29] 이 날은 8회말 2아웃 4:4 상황에 대타로 나온 김주형이 역전 3점 홈런을 날렸다. [30]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91VTw-aorgL._SY355_.jpg 미즈노 스트롱 오일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고가의 스쿠알렌 오일 등이 있다. [31] 선동열 김재박 한대화 등 당시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들이 나오고 장소도 잠실 야구장이라 그때 상황을 재연해낸듯 했다. [32] 10년 연속 두 자릿수는 이강철이 유일. [33] 최다패 2위인 김원형도 선수 생활을 근 20년 가까이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당시 최약체인 쌍방울 레이더스와 그 쌍방울 선수들을 인수한 SK 와이번스의 초창기를 지낸 탓도 크다. 물론 김원형 역시 134승을 기록했긴 했다. [34] 다만, 미국 MLB에는 송진우 선수의 기록을 무색케 할 괴물들이 넘쳐난다. 1990년대를 호령했던 팀 한 투수는 송진우의 200승 100세이브 기록을 MLB에서 달성했고, 그의 동료는 한술 더 떠서 무려 5000이닝을 넘게 소화했다. 참고로 MLB에는 300승 투수만 23명이 있다. [35] 이 부분은 손민한이 부상으로 인해 신음한 것이나 배영수가 구위를 잃고 나서 어중간한 피칭스타일 때문에 몇 년간 고생한 걸 보면 더더욱 느낄 수 있다. 통산 다승 2위인 정민철 역시 구위를 잃고 나서 고생하다가, 피칭 스타일을 바꾸면서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롱런에는 실패했다. [36] 물론 메이저리그에는 라이브볼 시대의 기록들만 해도 송진우를 "따위" 수준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엄청난 누적 기록을 남긴 선수들이 많다. 물론 이건 리그 역사와 수준의 차이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라이브볼 시대만 쳐도 역사가 100년이 넘고,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이는 메이저리그와 크보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송진우가 못하다는 게 아니라 저런 선수들이 너무 대단한 것이다. [37] KBO리그 최초의 100승 투수는 김시진이다. 김시진은 프로 데뷔 5년만에 통산 100승을 넘기면서 역대 최단기 100승 기록도 가지고 있다. [38] 투수 타자 모두 포함해서 최고령 기록 [39] 타이거즈가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5월 18일에 광주 홈경기를 치른 날이었다. [40] 그리고 지금까지 KBO 리그에선 한국인 노히트 노런이 없다. 이범석 김광현이 9회 2사에서 정말 아깝게 노히트 노런이 깨진 바 있다. [41] 2위는 양현종 168승 [42] 메이저리그에선 존 스몰츠,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에나츠 유타카만이 달성했다.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의 성격이 많이 달라서, 두 분야에서 모두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은 결코 쉬운게 아니다. [43] 송진우 이외의 선수들 중에선 구대성(1996년, 한화), 신윤호(2001년, LG)만이 달성한 기록 [44] 이 기록은 구원승과 세이브를 합쳐서 세이브포인트(SP)로 구원왕 타이틀을 결정했던 2003년도까지만 적용된다. 세이브만으로 최다세이브 수상자를 결정하는 2004년부터는 다승-구원 동시 석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45] 상대가 당해 투수 골든글러브를 탄 신윤호인데다가 이 해 한화는 0.5경기 차이로 5위 해태-KIA를 제끼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더욱 의미 있는 기록이다. 다만, 덕아웃의 사인을 훔쳐서 친 거라는 의혹이 있다. [46] 이때 금기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발차기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밝힌 바가 있는데, 본인이 사람 얼굴에 손찌검을 하는 것을 매우 모욕적인 행동이며,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흥분을 해서였다고. 당시 강연에서 이 에피소드를 예로 들며 나중에 선생님이 되셔서 절대로 아이들에게 손찌검은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본인은 차라리 빠따로 엉덩이 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47] 비슷한 예로 NPB의 전설적인 400승 투수인 가네다 마사이치 롯데 오리온즈 감독을 맡던 시절 긴테츠 버팔로즈 용병 짐 트레버 사구를 맞고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다가 화를 못 참고 또 다시 그라운드로 뛰쳐나오다 넘어지자 냅다 발차기를 날린 적이 있다. [48] 참고로 박찬호 또한 발차기 때문에 중징계와 역대 MLB 난투극 Best 10에 올랐다. 다만 송회장님의 경우, 당일 선발투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파이크 달린 야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49] 간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생전에 간 기능이 떨어져서 보름 가량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50] 참고로 송진우가 선수 시절 부인과 결혼한 게 1992년 11월이었다고 한다. [51] 한식집 이름은 온게임넷 스타 리그 공식 맵인 개마고원에서 따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52] 한식집 운영 당시 명의는 송진우의 부인 이름으로 명의를 두었다. 송진우 은퇴 당시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직전에 고깃집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래도 고기집 경영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 듯 하다. 가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고 한다. 다만 가격은 그 식당의 위치가 한 몫 한 듯. [53] 물론 입지가 그 식당의 가격의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54] 정작 당사자인 김윤환은 맥심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야구에 관심이 없다고 했으며, 심지어 송진우를 보고 농구선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55] 채널 뷰 드림메이커 별을 쏘다 2 방송 중. [56] 2001년에 폐업해서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이다. [57] 다른 신규 엘리트는 95 전준호(가명:박현석), 06 권오준, 89 박정현(가명:김석연). [58] 다승왕 타이틀도 이 때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