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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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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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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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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용만 (2) 장진범
조종규
(4명)
강정남
김윤환
조도연
문희수
(7명)
김기철
김태업
선동열
신태순
이순철
최상주
허세환 (1)
(10명)
강상진
김경호
김대현
김정수
김평호
백재우 (1)
신동수
이건열
장채근
차동철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백인호
박철우
김만후
송영복 (1)
조계현
한경수 (1)
이광우
이강철
장호익
정회열
이호성
오희주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박재홍 이종범 최재영 김동호 김종국
(고졸)
김상훈
김상진
서재응 (1)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오철민
(고졸)
김병현 (1)
김원 (1)
김준희 (1)
최희섭 (1)
(고졸)
강철민
김정진 (1)
이현곤
정성훈
(고졸)
류찬
김성호 정원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김진우 고우석 김주형 곽정철 한기주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정영일 (1)
오준형
전태현 정성철 심동섭 (2) 한승혁 (2)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박지훈 (2) 손동욱 (2) 차명진 이민우 김현준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유승철 한준수 김기훈 정해영 이의리
2022년 2023년 2024년
김도영 윤영철 (2) 조대현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연도 (1라운드 지명 선수)
}}}}}}}}}

김종국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8.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9.svg 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6 1997 2009

파일: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02

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2017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코치)
2019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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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차영화
해태 타이거즈
정구선
삼미 슈퍼스타즈
정구선
삼미 슈퍼스타즈
정구선
청보 핀토스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1987 1988 1989 1990 1991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강기웅
삼성 라이온즈
강기웅
삼성 라이온즈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
1992 1993 1994 1995 1996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
강기웅
삼성 라이온즈
박종호
LG 트윈스
이명수
OB 베어스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
1997 1998 1999 2000 2001
최태원
쌍방울 레이더스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
박종호
현대 유니콘스
안경현
두산 베어스
2002 2003 2004 2005 2006
김종국
KIA 타이거즈
안경현
두산 베어스
박종호
삼성 라이온즈
안경현
두산 베어스
정근우
SK 와이번스
2007 2008 2009 2010 2011
고영민
두산 베어스
조성환
롯데 자이언츠
정근우
SK 와이번스
조성환
롯데 자이언츠
안치홍
KIA 타이거즈
2012 2013 2014 2015 2016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정근우
한화 이글스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나바로
삼성 라이온즈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2017 2018 2019 2020 2021
안치홍
KIA 타이거즈
안치홍
KIA 타이거즈
박민우
NC 다이노스
박민우
NC 다이노스
정은원
한화 이글스
2022 2023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 ||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2 KBO 리그 도루왕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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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2000안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전준호
(1991~2009)
2008년 / 2018안타
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정성훈
(1999~2018)
2016년 / 2159안타
이승엽
(1995~2017)
2016년 / 2156안타
박한이
(2001~2019)
2016년 / 2174안타
이진영
(1999~2018)
2017년 / 2125안타
김태균
(2001~2020)
2018년 / 2209안타
최형우
(2002~)
2021년 / 2323안타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이용규
(2004~)
2022년 / 2076안타
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 ||
300홈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장종훈
(1986~2005)
2000년 / 340홈런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송지만
(1996~2014)
2010년 / 311홈런
박재홍
(1996~2012)
2012년 / 300홈런
이호준
(1994~2017)
2015년 / 337홈런
이범호
(2000~2019)
2017년 / 329홈런
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최정
(2005~)
2018년 / 458홈런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 ||
500도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 ||
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 ||

}}} ||
김종국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display: inline-table; max-width: 330px" <tablebordercolor=#ea002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 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주장직 폐지[1]
김성한
<rowcolor=#000> 1990 1991 1992~1994 1995 1996
김종모 한대화
이순철
선동열 김정수
<rowcolor=#000> 1997 1998 1999 2000~2001 2002~2004
이건열
이순철 (임시 주장)
이강철 이강철 이호성 이호성 이종범
<rowcolor=#fff> 2005 2006 2007 2008 2009~2010
김종국 이종범 이종범 장성호[2] 장성호 김상훈[3] 김상훈
<rowcolor=#fff> 2011 2012 2013 2014~2016 2017~2018
최희섭 김상훈[4] 차일목 김상훈 이범호 김주찬
<rowcolor=#fff> 2019 2020 2021 2022~2023 2024~
김주찬 안치홍[5] 양현종 나지완 김선빈 나성범
[1]: 김일권 이후 장기간 주장직 폐지 출처
[2]: 이종범의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3]: 마무리 캠프 직전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인한 주장 교체
[4]: 스프링 캠프 후 주장 교체
[5]: 2019년 5월 15일, 김주찬의 재활과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ea002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
{{{-3 {{{#fff
( 해태 시절 포함)}}}}}}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 초대 2대 3대
김동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
감독 대행
조창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
김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2000)

김성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4)
감독 대행
유남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
<rowcolor=#fff> 4대 5대
6대
7대
유남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
감독 대행
서정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
서정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2007)
조범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2011)
선동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2014)
<rowcolor=#fff> 8대
9대
10대 11대
김기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2019)
감독 대행
박흥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윌리엄스 파일:미국 국기.svg
(2020~2021)
김종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2023)
이범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 ||

해태/ KIA 타이거즈 등번호 16번
문희수
(1990~1995)
<colbgcolor=#091231><colcolor=#fff> 김종국
(1996~2010)
김희걸
(2011~2012.6.21.)
KIA 타이거즈 등번호 83번
정인교
(2006~2007)
김종국
(2011~2012)
홍우태
(2013~2018)
KIA 타이거즈 등번호 77번
이강철
(2008~2012)
김종국
(2013~2014)
김기태
(2015~2019)
KIA 타이거즈 등번호 74번
김실
(2014)
김종국
(2015~2023)
결번
}}} ||
A대표팀 참가 경력
[ 펼치기 · 접기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2 아시안 게임
김인식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8 노장진 · 20 이승호 · 21 송진우
27 박명환 · 37 임창용 · 41 김진우
47 이상훈 · 51 조용준 · 55 정재복
포수 22 홍성흔 · 44 김상훈
내야수 1 장성호 · 3 박진만 · 5 김한수 · 10 김동주
14 김민재 · 16 김종국 · 36 이승엽
외야수 7 이종범 · 9 이병규
34 이영우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김성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3 야구선수권 대회
김재박호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1 조규제 · 17 조웅천 · 19 이강철
20 정민태 · 37 임창용 · 41 김진웅
47 이승호 · 51 조용준 · 55 김진우
포수 12 진갑용 · 44 조인성
내야수 1 장성호 · 3 박진만 · 5 정성훈 · 14 김민재
16 김종국 · 18 김동주 · 27 이승엽
외야수 7 이종범 · 33 박한이
35 이진영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김성한
투수·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6 조범현
수비·주루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정진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김인식호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 손민한 · 17 오승환 · 15 구대성 · 21 정대현 · 26 서재응
27 박명환 · 28 전병두 · 36 배영수 · 41 정재훈
45 봉중근 · 49 김병현 · 51 김선우 · 61 박찬호
포수 20 진갑용 · 22 홍성흔 · 44 조인성
내야수 3 박진만 · 5 정성훈 · 6 김재걸
11 최희섭 · 14 김민재 · 16 김종국
25 이승엽 · 52 김태균 · 55 이범호
외야수 7 이종범 · 9 이병규 · 12 송지만
33 박용택 · 35 이진영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수비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류중일
투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선동열
주루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6 류지현
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0 조범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
파일:2023 KIA 프로필 김종국.png
김종국
金鍾國 | Kim Jongkook
[1]
출생 1973년 9월 14일 ([age(1973-09-14)]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주서림초 - 무등중 - 광주일고[2] - 고려대 (체육교육학, 92 / 학사)
포지션 2루수[3], 유격수[4]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6년 1차 지명 ( 해태)
소속팀 해태- KIA 타이거즈 (1996~2010)
지도자 KIA 타이거즈 2군 수비코치 (2011)
KIA 타이거즈 2군 작전·주루코치 (2012)[5]
KIA 타이거즈 1군 작전·주루코치 (2012~2021)[6]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21)[7]
KIA 타이거즈 감독 (2022~2023)[8]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작전코치 (2019~2021)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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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내 최세훈(1978년생), 아들, 딸
응원가 함중아 - 내게도 사랑이[9][10]
}}}}}}}}} ||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논란 및 사건 사고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야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내야수였다.[11]

해태-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서 나고 자라서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오로지 타이거즈 유니폼만 입고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도 단 한 번도 고향팀 타이거즈를 떠나지 않았던 원 클럽 맨 프랜차이즈 스타 로컬 보이다. 더구나 역대 타이거즈 감독 중에서는 사상 최초의 성골 순혈[12] 출신이었고 해태와 KIA 선수 시절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었기에 상징성이 남달랐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동명이인 연예인 김종국의 히트곡에서 따온 한 남자와 고글을 쓴 모습이 오리와 비슷하다는 데서 딴 고글 덕[13], 종국성[14]이 있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김종국(야구)/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1996~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wiki style="margin: -16px -11px;" 1994년 2002년 2003년 2006년 }}}

3. 플레이 스타일

통산 타율이 .247에 시즌 최고 타율이 .287일 정도로 타격이 좋은 편이 아닌 전형적인 수비형 내야수였으나, 수비 실력이 워낙 뛰어나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있었으면서도 안타가 될 법한 공을 신기에 가깝도록 쉽게 잡아내는 빼어난 수비를 보여준 2루수였다. 아마 시절부터 수비력 좋은 유격수로 유명했고, 프로에서도 무리없는 실력이었으나 해태 시절엔 이종범이 있었고, 이종범이 떠나고 유격수에 도전했으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가 부상에서 복귀했을 땐, 신예 홍세완[15]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수비에 있어서는 워낙 안정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16] 국제용 2루수라는 별명도 붙었고 실제로도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그 뿐 아니라 작전 수행능력과 도루 능력만 보면 당시 리그에서 손꼽힐 정도였으며, 커리어 하이였던 2002년에는 도루 50개로 1위를 기록하면서 정수근, 이종범, 전준호와의 경쟁에서 타이틀을 거머쥔 적도 있었다.[17] 통산 도루 성공률도 79.4%로 높은 편이다. 이종범과 함께 2000년대 초반 KIA 타이거즈 테이블 세터를 이뤘으며[18], 2000년대 KIA 타이거즈의 센터라인을 굳건히 지켜주었다.

4. 지도자 경력

김종국의 지도자 경력
통합 지도자 경력: 김종국(야구)/지도자 경력
2011~2021년 2022년 2023년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병역비리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 금메달리스트 자격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해태 타이거즈 선수 시절 병역 브로커에게 뇌물을 건넨 뒤 병역판정검사 내용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9] #[20] #[21]이 사실도 원래 알려지기는 1999년에 발각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묻혀졌다가 2024년 배임수재 혐의가 드러나면서 병역비리 사실도 함께 드러난 것이다.[22]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당시에도 병역비리에 연루된 KIA 소속 선수 가운데 유동훈, 이현곤, 손지환 이상 3인만 연루되고 김종국의 이름은 없었는데 이미 1999년에 걸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5.2. 배임수재 혐의

2024년 1월 28일, 김종국 감독이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KIA 타이거즈 구단은 25일 이 사실을 확인한 뒤, 27일 김종국 감독과의 면담에서 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김 감독에게 직무정지 조치를 내렸다. # 구단 담당기자 김여울은 김 감독이 금품 관련 내용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 자신의 SNS에 남겼다. # KIA 구단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후 김종국 감독의 거취를 포함하여 결정을 내릴 예정이며, 일단 1군 스프링캠프는 진갑용 수석코치가 대신 지휘한다.

이후 기자들의 후속취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금품수수' 의혹이 맞았으며, 이로 인해 현재 검찰 수사까지 받았고 이미 2024년 1월 24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중요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일규)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을 청구한 상황이라는 것. 구단은 이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가 제보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앞서 불거진 독립구단 입단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고 구단은 밝혔다. # 정황상 수사 당국이 2023년 뒷돈 수수 혐의로 불명예 퇴진한 장정석 전 단장 관련 압수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장정석이 챙겼던 돈 중 일부 금액이 김종국에게 흘러갔다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

후속 기사에 따르면 김종국 감독과 장정석 단장 모두 KIA 타이거즈 후원사로 나선 커피업체로부터[23] "타이거즈 후원사로 나서기 위해 장 단장과 김 감독이 힘써달라"는 취지로 건넨 금품을 여러 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여기에 특정 선수 기용 대가로도 받았다는 기사도 나왔다. # 김 감독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추정되는 60대 커피업체 오너는 전라북도 출신으로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의 오랜 팬이었고 특히 김종국이 현역 선수 시절일 때부터 팬이었으며 팬과 선수 간의 관계로서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을 정도라고 한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전 감독은 1억원대, 장 전 단장은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았다고 한다.

1월 2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중요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일규)는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1월 24일, 김종국과 장정석 전 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김종국은 공무원이 아니라 사인(私人)이기 때문에 혐의는 뇌물수수죄가 아닌 배임수재죄가 된다. 영장실질심사는 KIA 타이거즈의 스프링캠프 출국일인 1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오전 10시 30분에 이뤄질 예정이다. # 담당 판사는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

구속영장 신청 소식이 알려진 직후 KIA 구단은 김종국 감독의 수뢰 사실을 "품위손상행위"로 판단한 뒤 감독직에서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 다음은 KIA 구단 사과문 전문. #
팬 여러분께 사과 드립니다

KIA 타이거즈는 김종국 감독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로 KIA 타이거즈 팬과 KBO리그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야구 팬, 그리고 KBO리그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쳤습니다. 깊은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구단은 해당 사실을 인지한 즉시 김종국 감독과 면담을 통해 즉시 사실 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수사 결과와 관계 없이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된 이상 정상적인 시즌 운영이 불가하다고 판단해 직무정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KIA 타이거즈는 이번 사안에 대해 큰 책임을 통감하며 과오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감독 및 코칭스태프 인선 프로세스 개선, 구단 구성원들의 준법 교육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또한, 향후 구단 운영이 빠르게 정상화 될 수 있도록 후속적인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프로야구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팬 여러분께 불미스러운 일을 전해드리게 되어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KIA 타이거즈는 최근 불거진 장정석 단장의 품위 손상 행위에 대해 KIA 타이거즈 팬 여러분은 물론, 프로야구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팬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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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 김종국 전 감독과 장정석 전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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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 김종국 전 감독

만약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김종국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1983년 6월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의 경기 도중 심판위원장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돼 1주일간 서울성동구치소에 수감됐다가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처분된 뒤 풀려난 김진영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의 사례 이후 40년 만에 현직 프로야구 감독이 사법당국으로부터 구속 처리되는 사례가 된다. 무엇보다 개인 비리 혐의로 현직 프로야구 1군 감독이 구속되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 된다.[24]

검찰에 따르면 김종국은 2022년 7월 인천 문학구장에서 업체 회장을 만나 100만원권 수표 60장을 받았는데, 검찰은 이 과정에서 해당 업체가 구단 유니폼 견장 광고 계약 체결 및 편의를 부탁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5]

30일 오후 12시 경, 영장실질심사 후 장정석 전 단장과 함께 서울구치소로 이동해서 대기하였고, 오후 10시 경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석방됐다.


3월 7일 장정석과 함께 불구속 기소되었다.

5.2.1. 재판

  • 사건번호:
  • 재판부:

6. 여담

  • 타이거즈 역대 감독 중 타이거즈 선수 출신으로는 김성한, 서정환, 선동열에 이어 4번째 감독인데 현역 시절 해태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모두 입어 본 최초의 감독이다. 특히 해태 시절에는 해태라는 팀명 체제로 치른 마지막 경기인 2001년 7월 29일 광주 삼성전의 선발 베스트 10으로 출전했는데 당시 1번타자 2루수[26]였다.
  • 이외에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선수 출신 중 처음으로 프로 팀 감독을 달았다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대표팀의 주전 2루수였기 때문. 감독 선임 직후 시점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으나, 2022 시즌 후 같이 WBC 엔트리에 있었던 이승엽 박진만이 각각 두산과 삼성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유일한 사례는 아니게 됐다.
  • 국내 선수들은 물론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광주일고 시절과 해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KIA 인수 초창기에는 군기반장이었으며[27] 주장을 한 적도 있다. 광주일고 후배인 이호준[28]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특히 김종국에게 많이 맞았다고 털어놓았다.[29][30] 선수 생활 말년에도 그 기질이 있었는지 말년에 잠깐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최경환 박명환의 유튜브 채널인 박명환야구TV에 나와 관련 이야기를 풀었는데, 당시에도 김종국이 후배들의 기강을 굉장히 잘 잡았다라고 회상했다. 출처 본인이 갸티비에서 말하길 자신은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프로 선수면 프로 선수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기강을 잡았다고 밝혔다.
  • 별명으로는 동명이인 가수 김종국이 부른 노래 제목에서 유래한 '한남자'가 있으며 잘할 때는 '한남신'으로 업그레이드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플레이가 달라졌다고 해서 '딴남자'라고도 불렸는데, 타격 센스가 나아졌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크지만, 바로 전년도에 1년에 에러 2개[31] 밖에 안 냈던 선수가 한 경기에서 에러 2개를 저질러 악마와 거래를 해서 타격과 수비를 바꿨다는 말이 나온데서 나온 별명이다. 이외에도 트레이드 마크인 돌출된 입과 고글 때문에 '제트오리', '고글덕' 등의 별명도 있었으며, 국제전에서 특히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국제용 2루수'로도 불렸다. 이래저래 야구에서 지명타자도 있듯이 지명수비 제도가 있었다면 이종열, 김재걸과 더불어 주가가 더 높았을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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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래는 안경을 쓰고 플레이했으나, 은퇴 후 코치가 된 뒤로는 김종국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안경이 사라졌다. 라식 수술을 받은 뒤로 안경과 작별했다고. 다만 감독 취임 이후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고 마스크까지 같이 착용해서 경기 중에는 아예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리고 있다.
  • 김종국의 선수 시절 등번호였던 16번은 김종국의 은퇴 후, 김희걸이 가져갔으나[32] 2012년 시즌 중반에 삼성과 이뤄진 트레이드로 이적하면서 온 조영훈이 16번을 달게 되었다. 조영훈이 안경을 쓰고 16번을 단 모습이 김종국과 유사해 일부 KIA팬들은 흥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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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사람을 같이 세우고 보니 좀 닮았다. 물론 조영훈은 왼손잡이 좌투좌타, 김종국은 오른손잡이 우투우타이기 때문에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조영훈이 2012 시즌 후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으로 이적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 앞서 나왔던 것처럼 곱상했던 20대 시절엔 해태 시절이나 KIA나 아저씨 팬 비중이 높은 타이거즈 선수치고 여성 팬이 많은 편이었다. 은퇴한 후에도 종국 코치를 연호하는 여성 팬들이 보이는 편이다. 홍세완이 김종국의 여성 팬과 결혼했고 본인도 이것을 뿌듯하게 생각한 듯. 여기
  • 마구마구에서는 3슬롯에 하이점프캐치를 단 준수한 레전드 카드로, 타이거즈 계열 세트덱에서는 필수 카드였"지만" 1999 홍현우 엘리트 카드 베테랑이 가능해지면서 290만 거니를 호가하던 카드에서 50~60만 거니 선에 거래되는 쩌리로 전락했다. 물론 지금도 간간히 쓰고 있기는 하지만...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성한이 언급하기를, 수비력은 최고였으나 타력이 좋지 않아 본인이 타격코치 시절 열정적으로 가르쳐서 2할 1푼대의 타율은 2할 7푼대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김성한이 나가자마자 타율이 원상복귀되었다는 게 함정.
  • 선동열, 김기태에 이어 타이거즈 역대 감독 중 3번째로 팀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 출신이다.[33] 공교롭게도 선동열, 김기태, 김종국 모두 광주일고 출신들이다.
  • LG 트윈스 류지현과 함께 역대 프로야구를 통틀어서 순혈성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지역 최고 명문 야구부인 광주일고를 나왔으며,[34] 대학 졸업 후, 제2의 이종범으로 기대를 받으며 최고 명문팀이던 해태 타이거즈에 1차지명되었고, 구단 역대 최고 명장인 김응용 감독의 지도 하에 의 우승에 기여하며 왕조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힘을 더했다. 이후 모기업이 KIA로 바뀐 후에도 우승을 경험하였고, 2010년 은퇴 후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쉼 없이 코치 생활을 하였으며, 2017년엔 코치로도 우승을 경험한다. 그리고 2022년에는 팀의 감독에 취임한다. 정리하자면 선수 시절에 팀에 기여한 바가 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모기업이 바뀌기 전후의 우승을 모두 경험하였고, 팀의 왕조의 막바지를 함께하였으며, 코치 시절에도 우승을 경험하였다. 더불어 코치 시절까지 이적은 물론 휴식기도 없는 완전한 원클럽맨에다 연고지역 출생에 지역 최고 명문 출신의 로컬 보이까지 해당한다.
  • 감독 생활 중 선수 기용에 아쉬움을 보이며 KIA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고, 이 때문에 트위터같은 곳에서는 김종국을 욕하는 트윗이 도배될 때 마다 동명이인 가수의 팬들이 억울하게 고통받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36]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박경태가 술회하기를 박경태가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하고 합숙소를 무단 이탈하자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었다고 한다.
  • 김종국이 경질되자 무한도전에서 이를 예견한 듯한 짤이 나왔다. #

7. 관련 문서


[1] WBSC 공식 등록명 [2] 67회 졸업 [3] 1359경기 중 1024경기 출전하였으며, 커리어하이였던 2002년엔 골든글러브 수상과 국가대표 발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주 포지션은 2루수였지만,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 적도 있으며, 1루수와 3루수로 출전한 적도 있다. 주로 키스톤 콤비의 역할을 맡았지만,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했다. [4] 아마 시절 유격수로 유명했으며, 프로에서도 이종범이 떠난 유격수 자리에 정착할 뻔했지만 부상으로 무산되었고, 부상에서 복귀했을 땐, 신예 홍세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다시 2루로 정착하였다. 홍세완이 부상으로 이탈이 잦아진 2004년부터 유격수 출전이 늘어났고, 2007년까지 2루수 못지않게 유격수로 출전하였다. 통산 284경기 출전. [5] ~6월 11일 [6] 2012년 6월 12일~2021년 5월 19일 [7] 5월 20일~ [8] 2024년 1월 29일, 품위손상행위로 경질 [9] KIA의 김종국~ 오오오오오오오~ KIA의 김종국~ 당신뿐이라오~ [10] 이 응원가는 후배 안치홍이 물려 받았으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아 별로 쓰이진 않았다. [11] 주 포지션은 2루수이고 유격수도 가끔씩 봤었다. [12] 광주 출신으로 광주에서 학교를 나와서 광주 연고팀에서만 선수와 코치를 지낸 사람은 역대 10명의 감독 중 김종국이 유일했다. 3대 타이거즈 감독인 김성한도 타이거즈 연고지 출신으로 연고지 내 학교를 나와서 타이거즈에서만 선수와 코치를 지낸 뒤 타이거즈 감독을 지냈으나 광주가 아닌 군산 출신이다. [13] 엉덩이가 커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 [14] 수비력이 좋아 2루 자리에 성벽이 있는 것 같다는 의미의 '종국성', 이 별명은 서남 방언인 '성'과 발음이 같아 종국이 형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한다. [15] 매해 두자릿수 홈런에 유격수 최초 100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전도유망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아쉽게 활약 기간이 짧았다. [16] 총 14시즌 동안 통산 실책이 단 112개. [17] 경쟁자였던 저 3명이 모두 KBO 역사에 남을 대도임을 기억하자. [18] 데뷔하고 몇년간은 주로 9번타자로 나섰으나 부상을 털어내고 기량이 오른 후, 01년에 복귀한 이종범을 받쳐주는 당시 유행하던 작전 수행과 빠른 발 스타일의 2번타자 역할을 수행해냈다. 특히 2002년도엔 그의 실력이 정점에 올라 50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의 타이틀을 얻게 되고, 그해 2루수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19] 이 당시 함께 적발된 사람 중에는 당시 LG 트윈스 선수였던 서용빈도 있었다. 병무청 직원에게 2500만원 상당의 술 접대를 하는 조건으로 병역 면탈을 시도했던 사실이 이 때의 사건이었다. 다만 병역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뇌물공여죄가 인정돼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다. [20] 부친을 통한 병역면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1] 해당 커뮤니티를 통해 김종국의 병역비리가 밝혀졌다. [22] 사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그의 병역비리 사실을 모르는 야구팬이 상당수였을거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대중화 된 스마트폰 같은 IT기기도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3] '인크커피'라는 커피업체로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 2024년 초대형 매장을 입점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24] 양승호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고려대학교 야구부 감독 시절 억대의 금품을 받고 입시 부정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적은 있으나 롯데 감독에서 물러난 뒤의 일이었다. [25] 시기상 7월 1일~3일 문학 SSG전 도중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KIA는 문학 SSG 3연전을 연달아 1점차 패배로 스윕당해 7연패의 수렁에 빠지고 소크라테스가 코뼈 부상을 당하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못 한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이라는 작자가 팀을 추스르지는 못 할 망정 뒷돈 받는데만 급급했다며 분개하는 팬들이 많다. [26]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라인업은 1번 김종국-2번 최익성-3번 장성호-4번 산토스-5번 신동주-6번 이동수-7번 김창희-8번 김상훈-9번 홍세완 이었다. [27] 해태 시절까지 포함하면 김일권,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 순으로 군기반장 계보가 이어진다. [28] 고교 기수로 보면 이호준이 2년 후배지만 해태 입단 연번으로 치면 1994년에 입단한 이호준이 1996년에 입단한 김종국보다 더 먼저다. 이호준은 고졸로 입단했고 김종국은 대졸로 입단했기 때문. 그러나 프로 경력이 아닌 나이로 선후배를 가르는 야구계 특성 때문에 이호준은 김종국을 깍듯이 선배로 모셨다고 한다. [29] 이 때 이호준이 한 말은 "내가 1학년 때였는데 3학년 형들은 타격감이 떨어질 때면 여지없이 1학년 후배들을 인간 타이어로 삼아서 방망이로 때렸다. 참고로 그때 3학년이 재홍이 형이었다. 펀치력이 셌던 재홍이 형에게 맞을 때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고 하니까 옆에서 스윙 연습하던 박재홍이 갑자기 째려보며 "야! 누가 그러면 진짜 내가 때린 줄 알잖아~"하고 푸념섞인 원망을 했다. 그러자 당황한 이호준이 타겟을 바꿔 "재홍이 형한테는 한 대도 안 맞았다"면서 "종국이 형한테는 많이 맞았지"라고 말을 바꾼다. [30] 하지만 프로에 와서는 성격을 바꾼 듯, 점잖은 학구파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2009년 한국시리즈 때 사람들이 놀란 것이다. [31] 참고로 이 기록은 역대 2루수 1시즌 최소 실책 타이기록이다. [32] 참고로 이 번호를 탐내던 또 다른 KIA 선수는 짐짝. [33] 옛 광역 연고권인 전라도 전체로 역대 타이거즈 감독의 출신지 범위를 넓히면 해태 원년 멤버였던 전북 군산 출신 김성한 전 감독도 포함된다. [34] 대학교의 경우, 당시 연고지에 야구 명문 대학은 물론 야구부가 있는 대학교 자체가 없었기에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나 구단 최고 레전드인 선동열의 모교이자 후에 소속 구단의 모기업 회장이 되는 정의선 회장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다. [35] 08~09년간 같이 선수생활을 하던 최경환에 따르면, 평소엔 조용하나 분위기를 잡을 땐 확실히 하는 스타일의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36] 이는 야구 관계자들과 동명이인의 연예인이 있을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