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17 14:19:36

SK 와이번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2018년 시즌 기록에 대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18년 문서를, 2019년 시즌 준비에 대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19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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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SK Wyverns
창단 2000년 3월 31일
법인 설립 2000년 3월 22일
법인명 ㈜에스케이와이번스[1]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구단명 SK 와이번스
지분율 ㈜SK텔레콤 100%
연고지 인천광역시[2][3]
구단주 최창원[4][5]
사장 류준열[6]
단장 손차훈
감독 염경엽
주장 이재원
홈 구장 숭의야구장 (2000~2001)
인천 SK행복드림구장 (2002~) [7]
2군 구장 SK 퓨처스파크
마스코트 파일:external/s20.postimg.org/athena1.png
아테나와울[8]
워드 마크 파일:external/s20.postimg.org/SK_Wyverns_Wordmark.png
홈페이지 파일:external/s20.postimg.org/Wyverns_initial.png |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external/s.ytimg.com/favicon_96-vfldSA3ca.png | 파일:external/www.helloants.com/tistory.jpg | 파일:네이버 포스트 로고.png |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png
공식 APP 파일:external/www.34windsorst.com/AppStore-icon-HighRes.png | 파일:Google Play.png
최종 우승 (4회)
파일:2007SK.jpg 파일:external/s20.postimg.org/2008.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2010_-.png 파일:Wyverns_2018_V4.png
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3회)
2007년, 2008년, 2010년
포스트 시즌 진출
한국시리즈
-1 (8회)
-2 [[한국프로야구/2003년|2003년]], '''[[한국프로야구/2007년|2007년]]''', '''[[한국프로야구/2008년|2008년]]''', [[한국프로야구/2009년|2009년]], '''[[한국프로야구/2010년|2010년]]''', [[한국프로야구/2011년|2011년]], [[한국프로야구/2012년|2012년]], '''[[KBO 리그/2018년|2018년]]'''
플레이오프
-1 (5회)
-2 '''[[한국프로야구/2003년|2003년]]''', '''[[한국프로야구/2009년|2009년]]''', '''[[한국프로야구/2011년|2011년]]''', '''[[한국프로야구/2012년|2012년]]''', '''[[KBO 리그/2018년|2018년]]'''
준플레이오프
-1 (3회)
-2 '''[[한국프로야구/2003년|2003년]]''', [[한국프로야구/2005년|2005년]], '''[[한국프로야구/2011년|2011년]]'''
와일드카드
-1 (2회)
-2 [[KBO 리그/2015년|2015년]], [[KBO 리그/2017년|2017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659
2008년 126경기 83승 43패
최저 승률 .338
2000년 133경기 44승 86패 3무
최다 승 84승
2010년 133경기 84승 47패 2무
최다 패 86패
2000년 133경기 44승 86패 3무
최다 관중 1,069,929명
2012년[9][10]
최소 관중 84,563명
2000년[11][12]

1. 개요
1.1. 구단 색상 일람1.2. 역대 구단 BI1.3. 역대 마스코트
2. 팀의 특색
2.1. 왕조 시절엔 벌떼야구
2.1.1. 저평가된 타선
2.2. 2016년 이후 - 홈런공장2.3. 여름만 되면 퍼지는 팀2.4. 부자 프런트
2.4.1. 현실
2.5. 팬덤 성향
2.5.1. 온라인상에서 취급
2.6. 선수 영입 스타일
2.6.1. FA 에서의 스타일2.6.2. 외국인 용병 영입
3. 팀의 역사
3.1. 연고지를 정하기까지3.2. 시즌별 일람3.3. 역대 유니폼3.4. 관련 기록
4. 영구결번5. 은퇴식6. 홈구장7. 논란
7.1. 인천야구 정통성 논란7.2. 프런트와의 갈등7.3. 사건 사고
8. 기타9. 지역 연고 학교10. 선수단11. 응원단12. 응원가13. 네임드 팬14. 같이보기15. 둘러보기
2018 SK 포스트시즌 결산 영상 - 플레이오프에서 한국시리즈까지

1. 개요

파일:SKV4.jpg
2018 CHAMPIONS! SK Wyverns!

인천야구의 상징이자 인천의 자랑[13][14]
포스트시즌만큼은 꼭 개근하려는 근성의 가을 DNA를 가진 구단[15][16]

KBO 리그의 프로 야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법정 퇴출로 인해 기존의 쌍방울 팀이 해체되면서 뿔뿔이 흩어진 전 쌍방울 선수들과의 계약+드래프트를 통한 각 구단 선수 2명씩의 차출, 용병 3명 계약등을 통해 구단을 구성, 초대 감독 강병철로 창단한 신생팀.[17] 창단 순서로 따졌을 때 KBO 제8구단이다. 2019년 시즌 기준 감독은 넥센 히어로즈 감독과 SK 와이번스 단장을 역임했던 염경엽이다. 전임 감독에는 강병철(2000~2002) - 조범현(2003~2006) - 김성근(2007~2011)[18] - 이만수(2011~2014) - 김용희(2015~2016) - 트레이 힐만(2017~2018)이 있다.

사실 영어 발음으로는 "와이번"가 맞지만, 구단은 "와이번"라고 불러줄 것을 권하고 있다. 따라서 "SK 와이번즈"라고 쓰면 틀린 표현이다. 다만 외래어 표기법은 와이번스이다 /z/로 발음되어도 s로 끝나면 '스'로 쓰게 되어 있으니까. 같은 맥락으로 " KIA 타이거즈"도 "기아"라고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치 않으며[19], 일본의 " 한신 타이거스"는 "타이거즈"라 불리는 걸 원치 않고 있다.

상징 마스코트는 '비룡( Wyverns)'. 대표 응원가는 ' 연안부두'. '비룡'이 된 이유는 연고지인 인천에 '비룡'의 이름을 딴 것이 많기 때문. 옛 용정리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말이 있어 '비룡리'로 불렸다가 이게 '독정리'와 합쳐서 '용정리'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현재의 '용현동'이 되었다. 인하대학교 캠퍼스에 비룡탑이 있고 인하대역 인근에 비룡삼거리가 있는 것도 이 지역의 원래 이름이 비룡리였기 때문이다.

과거 야구 갤러리에서는 구단을 부를때 슼, 스크, 주유소[20][21] 정도의 단어를 썼다. 2008년 이후에는 성적이 좋을 때만 생기는 전형적인 양산팬들 때문에 개념팬들까지 [22]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두산과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후보로 빠지지 않는팀이고 플레이오프 진출은 2016년과 2017년을 제외하곤 늘 해왔던 팀이라 가을야구 전문구단다운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23]

한국시리즈 우승을 4번( 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하였는데 준우승은 4번( 2003년, 2009년, 2011년, 2012년)이나 하였다. 특히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KBO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SK와 삼성 라이온즈가 세운[24]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은 이 시간 현재까지 KBO 리그 단일 구단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출전 기록으로 남아 있다.[25]

2007년 2008년에 한국시리즈를 연이어 우승하며 역대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룬 4번째 구단이 됐다.[26] 또한 2008년에는 126경기 체제 기준 페넌트레이스 시즌 최다승[27] 기록을 수립했고 2009년 8월 25일 문학 두산전부터 2010년 4월 2일 문학 한화전까지 무려 22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이 시간 현재까지 KBO 리그는 물론 아시아 프로야구 리그 사상 단일 구단 최다 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28]

연고지는 한반도 서쪽에 자리잡은 인천이지만, 올스타전에서는 동군이다. 이는 빙그레 이글스(現 한화 이글스) 창단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의 성적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에 빙그레를 서군에 넣었고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될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군에 넣은 게 쌍방울 해체 후에도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 2014년 시즌을 끝으로 동서군으로 팀을 나누는 방식이 사라질 예정이라 나머지 수도권 4개 구단과 엮이는것이 유력해 보였는데, 결국 동서군 구분이 각각 드림 올스타(구 동군)와 나눔 올스타(구 서군)로 이름만 바뀐채 유지되기로 함에 따라 올스타전에서 두산· 롯데· 삼성· kt와 한 팀으로 엮이게 되었다.

1.1. 구단 색상 일람

  • 기본적으로 2006년 CI 변경 이후로는 SK스포츠 소속 스포츠 팀들의 상징색은 모두 동일한 빨강-주황 컬러를 사용한다.
  • 즉 여기있는 색상값은 SK스포츠 산하 팀들이 모두 공유하는 색상이라는 뜻이 된다. 참고링크
파일:external/s20.postimg.org/Wyverns_initial.png SK 와이번스의 색상 일람
상징색 Pantone CMYK RGB
( 헥스 코드)
Red Pantone 186c M100 Y81 K4 R242 G0 B23
(#f20017)
Orange Pantone 158c M61 Y97 K4 R255 G99 B9
(#ff6309)
Pantone 137c M45 Y97 K4 R255 G140 B10
(#ff8c0a)
Black Pantone Black 6c K100 R0 G0 B0
(#000000)
Gray Pantone Cool Gray 6c K35 R166 G166 B166
(#a6a6a6)
Pantone Cool Gray 2c K10 R230 G230 B230
(#e6e6e6)
Gold Pantone 873c (Alternate Color)
( Pantone값만 있음)
Silver Pantone 877c
Beige Pantone 468c

1.2. 역대 구단 BI

SK 와이번스의 엠블럼 변천
파일:SK_Wyverns_logo_1st.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SK_Wyverns.svg.png
2000년~2005년 2006년~

팀의 상징색은 파랑색[29](2000년~2005년) - 빨강색(2006년~현재) 순이다. 팀의 상징색이 이렇게 바뀐 것은 팀의 모기업인 SK텔레콤의 역사와 연관이 깊다. 창단 첫 해인 2000년부터 2005년까지 SK텔레콤의 CI 색상은 파랑색이었고 자연스럽게 야구단의 상징색도 파랑색이었다. 와이번스와 더불어 SK텔레콤이 함께 운영하던 서울 SK 나이츠 농구단도 창단 첫 시즌부터 2005~2006 시즌까지 파랑색을 상징색으로 썼다. 그러다가 SK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빨강색을 CI 상징색으로 바꾸면서 야구단과 농구단의 상징색이 모두 빨강색으로 바뀌었다.

특이하게도 원형 로고를 가진 구단들 중 유일하게 야구공이 그려져 있지 않다.[30]

1.3. 역대 마스코트

파일:external/timetree.zumst.com/f8383328586a41e095ad7687fc9461e4.jpg
구단 초기부터 2007년까지 사용했었던 마스코트 비룡. [31]
파일:external/web-beta.archive.org/2006ms1.jpg 파일:external/timetree.zumst.com/1b5584c100b945a7a1d2dc19ea930d5b.jpg
2006년, SK로고가 교체됨에 따라 약간 바뀐 비룡. 2007년, 와우&팬토.
파일:external/static-a-timetree.zumst.com/?http%3A%2F%2Ftimetree.zumst.com%2F2014%2F06%2F02%2F03%2F4bd69fcc90984eacbdb0d769c89cf57b.png
2009년, 팬 페스트 행사에서 리뉴얼 된 와우와, 새롭게 공개된 윙키.
파일:/image/edaily/2012/04/10/1334022970.015847_PP12041000014.jpg 파일:attachment/Wingo.png

이후 2012년을 앞두고 새 마스코트를 발표했다. 그런데 우주복 마스코트 못지 않은 최악의 마스코트가 등장했다. 같은 그룹에서 후원하는 모 프로게임단의 마스코트는 인기가 정말 대단한데 뿐만 아니라 비룡은 어디 가고 웬 개미핥기냐라고 하면서 까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게 MLB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스코트 필리 패나틱(Philly Phanatic)을 그대로 가져다 베낀 수준이라는 것. 위의 그림에서 털 색깔만 초록색으로 바꾸고 유니폼만 갈아입히면 딱 나오는 수준.

파일:external/philadelphia.phillies.mlb.com/phanatic_1024x768c.jpg
게다가 저 색상을 바꾼 이미지로 구글 유사 이미지 검색을 돌리면 자동으로 Phillie Phanatic으로 인식해서 검색을 수행해 준다. 구글신의 눈은 역시 속일 수 없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원래 이름인 '윙고' 대신 모두들 솩우튀김(…)으로 부르게 되었다.

결국 좋은 소리 못 듣는걸 구단쪽에서도 인지한건지, 어정쩡한 타협안으로 여캐인 윙키는 내버려두고 와우는 짜르는걸로 결정되었으나 어째서인지 현 2015년 9월 홈페이지에서는 기존 마스코트인 와우와 윙키와 함께 윙고가 같이 있다. http://www.sksports.net/Wyverns/Wyverns/emblum/WyvernsCharacter.asp 대체 뭐지?

파일:external/www.sksports.net/20160330103202.jpg

2016년 새로운 마스코트를 공개했다. 바로 아테나. 그리스 신화의 그 아테나가 맞다. 연고지 및 구단명과 아무 상관 없으면서 동시에 표절논란까지 있었던 윙고보다는 낫지만, 이쪽도 연고지와 구단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동일하다.사실상 SK 아울스(Owls)

새로운 마스코트의 시구 이 와중에 댕이 오빠는 마스코트의 시구에 깜짝 놀랜건 덤. 참고로 이 시구 모델을 서유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공개 하루만에 미화짤이 나왔다(...)

2. 팀의 특색

전력에 대한 특성을 먼저 나열하고 기타 특성은 뒷부분에 서술함

2.1. 왕조 시절엔 벌떼야구

삼청태현 시절 때도 그랬지만 대대로 인천 연고팀은 준수한 투수력을 앞세우던 팀 컬러를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별칭이 짠물야구. 현대 유니콘스의 뒤를 이어 인천에 자리잡은 SK 역시 선발과 계투 모두 자원이 풍부한 걸로 유명했다. 다만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창단 직후의 SK는 쌍방울의 처참한 기반을 물려받은 탓에 제대로 된 투수가 거의 없었다. 재정난 탓에 계속 선수를 팔아먹으며 연명하던 쌍방울은 기존 투수진은 물론이고 2차 1픽 신인 마일영까지 현대 유니콘스에 팔아먹었기에 그 당시 SK에 제대로 된 투수라곤 이승호, 김원형, 오상민 2001년 영입된 외국인 에르난데스 뿐이었다. 게다가 김원형은 99시즌 여름 장종훈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1년간 개점휴업 상태였다.(00년 2승 13패 다패왕) 결국 초대 강병철 감독은 몇몇 투수에게 큰 부하를 걸 수밖에 없었다.

SK 초창기 에이스인 이승호 채병용은 팀을 위해 자신의 팔을 바쳤다. 이 2명이 자신을 희생한 덕분에 정대현, 윤길현, 제춘모, 엄정욱, 신승현 등은 별 혹사 없이 갈고 닦을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1년 조웅천 인천으로 돌아온다.[32] 후임 조범현 시절에는 강병철이 남기고 간 토대에 정우람 윤길현이 1군 레귤러로 완전히 자리잡고 김원형의 부활과 신승현의 성장, 위재영 영입, 송은범 입단 등이 이뤄졌다. 그리고 SK왕조를 이끌어갈 에이스 김광현 2007년 데뷔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들을 이어받아 우승을 일군 감독이 김성근으로 이른바 벌떼야구라 불린 불펜야구를 KBO의 트렌드로 만들며 1121로 승승장구했다. 이 시기 불펜야구로 인해 SK 투수들은 보직을 옮겨다닌 예가 정말 많았다. 송은범(선발-계투), 전병두(선발-계투), 고효준(선발-계투), 채병용(선발-계투), 정대현(롱릴리프-셋업-마무리) 등등. 한마디로 필승조와 추격조의 구분이 모호했다. 그나마 이 중 정대현은 덜 구른 편.[33]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후 후임 이만수는 김성근 시대에는 중용받지 못했던 윤희상 박희수를 중용하고 박정배, 전유수, 최영필 등을 영입해 어느 정도 손실을 메워내어 07시즌부터 12시즌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3회 우승, 3회 준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주축 투수들의 부진과 이탈이 맞물려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2015년부터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2017년에 이르러서는 왕조 시절을 이끌었던 투수들은 김광현 채병용 정도만 남고 다 이탈했지만[34] 투수 성적은 나쁘지 않다.

다만 과거의 불펜야구는 완전히 탈피했다. 지금의 SK는 선발과 타선은 나쁘지 않으나 불펜이 약한 팀이다.

2.1.1. 저평가된 타선

과거의 인천 야구팀들은 전체적으로 타선이 약했다. 하지만 SK는 타선이 약한 팀은 결코 아니었다. 타자 코칭과 유망주 보는 눈은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던 강병철 시기에는 최정 이전 SK 구단 사상 최고의 장타자였던 이호준을 성영재와 트레이드해 영입하고 이진영, 채종범을 성장시켰으며 삼성과의 트레이드로 정근우 이전 SK 2루를 책임진 정경배가 영입되고 조동화, 이대수를 테스트해 신고선수로 받아들이고 투수로 지명한 김강민을 외야수로 전향시켰다. 이진영, 김강민, 조동화는 SK 왕조를 설명할 때 빼놓아선 안되는 선수들이다.

후임 조범현 시기에는 FA로 박경완 김재현이, 트레이드로 박재홍이 영입되고 이재원이 지명받았으며 정근우, 최정, 김강민, 조동화, 박재상 등 왕조의 주축이 될 야수들이 1군에서 경험을 쌓으며 향후 치고나갈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걸 이은 김성근 시절에는 거포가 즐비한 타선은 아니지만 일발장타를 갖춘 타자들과( 박정권, 이호준, 김재현, 박경완 등) 빠른 발을 가진 중거리 타자들이( 정근우, 김강민, 조동화, 박재상 등) 두루 포진해 지뢰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2009년에는 타율-홈런-타점 모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벌떼야구로 불리는 투수진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바람에 공격력은 다소 묻히는 편.

2.2. 2016년 이후 - 홈런공장

파일:어케패러디했누.png
야덕일지에서의 패러디(...) Korean batter 불만 있어요? 원본
타자 친화적인 홈구장과 장타 포텐셜을 갖춘 야수들, 구장에 맞게 장타에 포인트를 둔 코칭을 바탕으로 KBO 최고의 홈런공장이 되었다. 2016년 탈쥐 듀오 각성한 86억 거포[35]의 활약에 힘입어 21경기 연속 홈런[36]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2017시즌에는 정의윤 최승준이 부진한 대신 한동민, 김동엽, 제이미 로맥이 홈런 레이스에 가담해 무시무시한 홈런페이스를 뽐내고 있다.[37] 더 무서운 것은 중심타자만 홈런을 잘 치는 것이 리드오프와 하위타선에도 펀치력을 갖춘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2017시즌 트레이드로 합류한 포수 이홍구와 힐만 감독 재임 이후 중용받고 있는 외야수 정진기, 베테랑 내야수 나주환 등 이다.

그러나 이 공포의 뻥야구에도 문제점이 있는데 홈런 많이 친다고 반드시 점수 많이 나고 전체 타선이 강한게 아니기 때문. 예를 들어 팀 홈런 2위, 팀 OPS 3위를 차지한 2016시즌 SK타선의 타점과 득점은 9위였다. 클린업의 최정과 정의윤이 67홈런을 합작했음에도 그랬다. 그해 테이블세터로 나선 이명기, 조동화, 고메즈의 출루율이 전부 3할 중반을 못넘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장타가 더욱 효과를 보려면 앞에 주자가 쌓여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2017시즌에도 팀 출루율은 최하위권이다. 김성근 시기에는 신인 야수들이 전혀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만수 시기에 이명기, 김성현 등에게 기회를 주며 육성해 김용희 시기 희망을 보나 싶었으나 꾸준한 모습을 보여 주진 못했다. 당장 위에 언급된 선수들 중에서도 김동엽, 이홍구, 정진기는 출루율은 3할 초반, 심하면 2할대를 끊는 공갈포다. 그래도 2017년 KIA 타이거즈에서 준족의 노수광을 데려왔고, 2군에서도 조용호, 최항 등의 젊고 빠른 선수들을 발굴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테이블 세터의 부재도 조금씩 해결되고 있는 중.

2.3. 여름만 되면 퍼지는 팀

대프리카에 사는 푸른 사자네가 여름만 되면 펄펄 날아다니는 것과 달리 이 팀은 희한하게도 매년 여름만 되면 성적이 안 좋아진다.[38] 모기업이 sk면 항상 이러나..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 문서를 봤다면 기분 탓이다. 선두권이나 상위권을 달리던 팀이 갑자기 3연패 이상의 장기 연패를 당하고 중위권으로 떨어지는 일이 많았고 원래 성적이 안 좋았으면 더 떨어졌다. 이것은 왕조 시절은 물론 초창기 청색 유니폼 시절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39] 특히 왕조 시절에는 4~5월에 왕창 승수를 벌어놓고 7월에 이를 까먹은 뒤 8월 이후[40] 날씨가 서서히 선선해지면 귀신같이 팀이 제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2016년은 가을에 더 말아먹어서 문제였지.

실제로 2011년에는 7월 초순에만 7연패를 당한 적이 있고[41] 그 다음 해인 2012년에는 2006년 이후 8연패라는 거대한 기록을 세우며 6위로 급락한 역사가 있다. 승패패승패패 루틴이 극에 달했던 2013년에도 7월을 말아먹으며 가을야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고 2014년에는 그보다 더한 추락을 경험하며 2005년 이후 9년 만에 8위로 떨어지는 대참사를 경험했다. 2015년 7월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데 3연속 역전 스윕패를 먹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나타내며 월간 승률 5할을 밑돌았다. 2016년도 홈런만 그저 뻥뻥 쳐댔을 뿐 선발진이 줄줄이 무너지며 월간 승률 4할을 겨우 채웠다. 그리고 2017년에는 후반기를 시작하자마자 7연패를 거하게 먹어버리며 6위로 추락했다.

이 팀이 여름마다 퍼지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선수들의 부상이 여름에 유독 몰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선수들의 실력이나 체력 문제보다는 운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경기 도중 예상치 못한 부상을 입기 때문. 2009년에 박경완이 6월 말 부상을 입고 시즌아웃된 것을 필두로 매년 여름만 되면 윤희상[42], 김광현, 최승준, 이재원, 한동민 등 많은 선수들이 돌아가며 부상을 당해 팀 전력 저하 현상이 나타난 것이 '여름 위기설'의 이유라면 이유다.

둘째로는 투수진의 과부하 내지는 집단 부진을 꼽을 수 있다. 다만 왕조 시절에는 김성근 감독이 워낙 투수들을 막 굴리다보니 선발, 중간, 마무리 할 것 없이 체력 부족을 호소하며 털리는 경우가 잦았다고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이상하게 투수진의 집단 부진이 뚜렷해졌다. 선발이 잘 던지고 타선마저도 잘 터진 경기에서 불펜이 말아먹는 일이 잦아졌는데 2017년 7월이 유독 그렇다.

2.4. 부자 프런트

일차적으로는 SK구단을 위한, 전체적으로는 한국야구의 활로가 될 수 있을 '스포테인먼트' 사업을 제창하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문학구장 문서에서 알 수 있듯 홈구장의 리모델링은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SK팬들이 매년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올해는 또 어디를 고칠까?"[43] 더불어 스쿨데이, 반려견 출입을 허용하는 도그데이, 불금데이, 토요일 불꽃놀이 등 다양하고 이색적인 행사를 많이 개최해오고 있다. 2016년 6월에는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진행해서 많은 야구팬들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매년 선발하는 객원마케터들이 제작하는 약빤(...) 영상도 팀의 특징 중 하나이다.

2010년을 전후하여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많이 놓쳐서 짠돌이 구단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상술한 스포테인먼트 사업의 스케일이나 2014년도에 FA선수 5명을 모두 잡은 점을 고려하면 재정은 확실히 부유하다. 사실 떠난 선수들에게도 넉넉하게 금액을 제시하긴 했다. 더 많은 금액을 써제낀 구단이 있었을 뿐. (근데 선수들이 이적한곳만 보면... 한화,LG,NC,롯데 밖에 없다)

이렇게 넉넉한 재정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는 재정지원 방식이 타 구단과는 약간 다르기 때문. 타 구단이 모기업 계열사에서 꾸준히 차입을 하여 지원하는 반면에 SK 와이번스는 회계상으로 SK텔레콤이 1조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며 추가적인 차입을 하고 있지는 않다. 쉬운 말로 1조 묻어둘테니 니들이 알아서 쓰세요 하는 소리.[44] 또한 홈구장인 인천 SK 행복드림구장 일대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구단에서는 문학구장의 세계구급 시설을 바탕으로 한 이벤트를 통해 구단 자립을 실현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이 넘들이 정우람을 96억(84억+한화로부터 12억 보상금)에 팔고 그정도의 돈을 들여서 미친 크기의 전광판을 지었다. 어느 정도냐면 주변 아파트에서도 전광판 그림이 보일 정도. 그리고 이벤트로 여기서 영화를 상영했는데 대박이었다.

2.4.1. 현실

위 문단에서 넉넉한 재정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2017년 4월 6일 공시된 SK 와이번스에 대한 감사 보고서에는 구단의 총자산이 133억원으로 나오며 이는 1조원 가량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기존 주장과 배치되며, 구단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자산은 유동성만기보유증권을 포함해서 16년도 기준으로 8억원이 조금넘는 수준으로 확인되었다.

만약 구단이 SK텔레콤의 주식 1조원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면 재무상태표는 물론 주석에 공시해야 하지만 16년도 감사보고서에는 SK텔레콤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며 재무상태표상 만기보유증권으로 가지고 있는 자산은 주석 4에서 확인하듯 국공채 390만원으로 확인되었다.

차입을 하지 않는다는 말 역시 맞지 않으며 재무상태표상에는 16년도 단기차입금 77억, 15년도 단기차입금 10억원이 존재하며 유동성장기차입금과 장기차입금에 대해서는 아래의 주석 8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모회사인 SK텔레콤으로부터 차입한 것이 확인되었으며, 구단의 총부채 규모는 177억으로 현재 구단의 자본현황은 자본잠식 상황으로 확인되었다.

손익계산서상 매출 역시 와이번스 구단의 16년도 매출액은 429억이나 이 중 상당액은 광고수입으로 262억을 기록했으나 계열사의 광고수입에 204억원이라는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는 것으로 확인되며 그 중 172억은 모회사인 SK텔레콤의 지원을 받는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다른 대기업 야구단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냥 일을 잘하는거여

2.5. 팬덤 성향

주요 팬 베이스는 인천광역시와 주변의 부천시[45], 시흥시[46], 안산시[47], 김포시[48] 일대이며, 서울에도 경인선 라인의 구로구 영등포구를 중심으로 작게나마 팬층이 존재했지만 이후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히어로즈 팬덤으로 많이 넘어간 듯 보인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인천과는 한참 먼 군산시 전북 지역에도 은근히 팬이 많다. 이는 와이번스의 전신격 팀이라고 할 수 있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영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최태원, 조원우, 김기태, 김원형, 박경완, 조규제, 이진영 등 과거 쌍방울을 빛냈던 선수들이 SK의 초창기 시절에도 꾸준히 활약했으며, 이승호, 정대현, 채종범, 이영욱, 엄정욱, 박정권, 신승현, 최경철 쌍방울 레이더스가 지명한 고교선수 출신 선수들 또한 은근히 많은 편이었기 때문이다.[49] 그래서 KIA에서도 군산 경기를 편성할 때 SK나 한화(가까우니까) 경기를 우선적으로 잡아 놓지만 더 이상 군산을 비롯한 전라북도 일대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전북지역 팬의 열기도 사실상 희미해졌다고 볼 수 있다.

관중 수에 대해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의 영향의 야구붐과 더불어 한국시리즈 우승/준우승의 성적으로 2010년 전반기에 팀 창단 최다 기록인 9회 매진을 기록을 달성하고 한때 관중 동원 수 1위를 달리기도 했다. 이 시기 원년구단인 두산 베어스도 구단 역사상 최다인 9회 매진을 똑같이 기록했는데, KBO 원년멤버이자 창단 29년차 구단 후발 주자이자 10년차 구단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임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인천 팬들은 현대를 완전히 잊고 SK를 받아들인 듯 하다. 이 선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산만큼은 아니여도 여성 팬이 매우 많다. 2011년 시즌 이후 관중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었지만 2012년 시즌에는 9월 15일 KIA전에서 마침내 한 시즌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50] 100만 관중 돌파 기념 불꽃놀이 영상.

한국 프로야구 1억 번째 관중이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SK 팬인 친구를 따라온 원래 야구 팬도 아니었던 소년이라 SK로선 1억번째 관중과 함께 새로운 팬을 얻게 된 셈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1억번째 관중사건 문서 참조.

2017년에는 왕조가 옛날얘기가 되어서 그랬는지 많은 팬들이 응원을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보다는 소수의 팬들이 응원을 열심히 하고 대부분의 팬들은 응원을 대충대충 하거나, 아예 홈구장 1루, 원정 3루에 앉아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도 스포츠 팀이 다 그렇듯이 연승을 하거나 홈런을 뻥뻥 치거나 하면서 잘 나갈때는 홈 응원석이 후끈거리는 걸 볼 수 있다. 2017시즌은 김광현이 없던 시즌이라 시즌권 자체를 안 산 사람들도 많았고.

2018년에는 전년대비 22%의 평균관중 증가율을 기록하며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에 이은 3위의 평균관중으로 명실공히 인기구단으로서의 위상을 굳혀갔다. 매경기 호쾌한 장타가 뻥뻥 터지는 팀 컬러안타는 쓰레기,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준수한 성적,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관중 친화적인 홈 구장, 스포테인먼트를 내세우며 일 잘하는 프런트가 좋은 시너지를 나타내면서 팬을 끌어들였는데, 특히 여성 및 가족단위 관중이 전체 관중 증가율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눈에 띄는 신장세를 보였다. 여담으로, 응원가와 구호가 따라부르기 쉽고 재밌어서 귀에 쏙쏙 박힌다는 의견이 많다. 이로 인한 라이트팬의 유입도 쏠쏠한 듯 하다.

지금까지 많이 발전했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기도 하다. 2018 시즌 100만 관중 달성은 분명 의미 있는 기록이며, 구장 매진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 그러나 그 매진 경기들이 원정팀의 화력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51] 24,000석 규모의 문학구장을 20,000석 까진 채울 순 있어도 자력으로 꽉 채우기는 아직은 힘든게 사실이다.[52] 또한 대부분의 수도권팀들이 그렇듯이 수도권 이외의 관중동원력은 미진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관중동원에서 큰 성과를 거둔 SK 프런트이고 꾸준히 상위권 성적과 팀 컬러를 유지한다면 홈구장도 자력으로도 매진시킬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2.5.1. 온라인상에서 취급

나무위키나 네이버 댓글 등에서의 SK 팬들을 보면 선수에 대한 비판/비난이 다른 팀에 비해 잘 안 달리는 성향이 강하다. 즉 오랫동안 두고보다가 오랫동안 꾸준히 못하는 선수가 되어서야 겨우 비판과 비난이 허용되지, 몇 경기~몇 주 정도 못 하는 것 가지고는 아직까지 두고보자는 의견이 많다. [53]

실제로 대니 워스만 해도 거의 한 달 동안 못 나오는 와중에도 큰 비난이 달리지 않았다. 물론 5월이 되도록 못 나오자 그제서야 Worse하다느니 등등의 비판이 달리긴 했지만... 서진용의 경우도 나쁜 말이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달릴 때마다 칼같이 지워지다가, 블론세이브가 적게 나오는 해의 블론세이브 1위를 찍는 선수의 기록을 시즌 개막 1달만에 찍어 버리자 그제서야 조금씩 비판이 등장하였다.[54] 참고로 서진용이 마무리를 겨우 1달 반 했는데 블론세이브 4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선수에 대한 나쁜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물론 모든 팬이 이러지는 않기에 이런 믿음의 야구에 반발하여 못하고 불성실하며 불친절한 선수도 모두 빨아줘야 하냐는 팬과 직접 뛰는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선수를 까냐, 이래놓고 잘하면 빨아댈거면서 냄비근성 그만 보여라 하면서 팬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다.(...)

다른 팀 소속이었던 션 오설리반, 다린 러프, 이대호, 임창용, 대니돈, 박광열 등의 선수들이 시즌 극초반에 부진했던 것 때문에 나무위키에 온갖 비판과 비난이 달렸던 것과 비교하면...[55][56]

SK 와이번스 갤러리 제외. 여기는 다른 팀 팬들이랑 반응이 비슷하다(...)애초에 선수 비판한다고 수정전쟁 해대는 선비스러운 분위기가 싫으니까 솩갤로 가는거다

2.6. 선수 영입 스타일

신인드래프트에서 SK의 가장 큰 특징은 해외파 선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점이 있다. 2014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정영일이 입단 후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해외파 선수가 참가하는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중하위 라운드에서 해외파 선수를 지명하고 있다. 물론 해외파라고 해도 모두 KBO에 와서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KBO와 MLB는 수준차가 있는 리그이므로 해외에 나갈 정도면 기본적으로 야구를 잘했던 선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2.6.1. FA 에서의 스타일

2000년대 초중반엔 영입이 활발했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턴 외부 영입보단 재계약 위주로 가고 있다. 2019년 FA 전을 기준으로, SK가 외부에서 선수를 영입한 횟수는 5번이다.
연대 이름 영입 연도 원소속팀 계약
2000년대 김민재 2002년 롯데 자이언츠 4년 10억
박경완 2003년 현대 유니콘스 3년 19억
김재현 2005년 LG 트윈스 4년 20억7천만
2010년대 조인성 2012년 LG 트윈스 3년 19억
임경완 2012년 롯데 자이언츠 3년 11억

SK가 19년동안 외부 영입으로 지출한 금액은 총 79억 7천만원. 2013년부터 1군에서 뛴 팀이 2014년 FA에서 을 영입하며 사용한 금액인 80억원보다도 덜 썼다는 이야기이다. SK처럼 소극적인 두산 베어스 장원준 1명을 영입하며 든 금액보다도 적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알았겠지만, 2000년대에 영입한 세 명은 모두 SK의 로 군림하였다.[57] 그 후 2005년 이후 2012년까진 영입이 없다가 2012년 드디어 에게 30억원을 쓰며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그 둘은 전년도에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58] 둘 다 나이가 37살로 매우 많았다. 게다가 둘 다 본인은 재계약을 맺고 싶었지만 팀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은 잉여 신세였다. 그마저도 임경완 정대현과 트레이드에 가까웠다. 실질적인 FA 영입은 2005년이 마지막이라 볼 수 있겠다. 여기서 볼 수 있듯, SK의 외부선수 영입은 매우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내부 선수 재계약은 어떨까. 2018년 FA 전을 기준으로, SK가 재계약을 한 선수는 21명이다.
연대 이름 FA 연도 계약
2000년대 김원형 2002, 2007년 4년 14억[59], 2년 7억5천만[60]
조웅천 2004, 2008년 3년 8억, 2년 8억
조원우 2005년 2년 4.5억
위재영 2006년 3년 8억[61]
박재홍 2006년 2+2년, 총 30억[62]
정경배 2006년 3년 16억[63]
박경완 2007년 2년 10억[64]
이호준 2008년 4년 34억[65]
김재현 2009년 1년 7억
2010년대 박재홍 2010년 1년 8억
이승호 2012년 2년 2억
최정 2015, 2019년 4년 86억[66], 6년 100억[67]
김강민 2015년 4년 56억[68]
조동화 2015년 4년 22억[69]
나주환 2015년 1+1년 5억5천만
이재영 2015년 1+1년 4억5천만
박재상 2016년 1+1년 5억5천만
박정권 2016년 4년 30억
채병용 2016년 2+1년 10억5천만
김광현 2017년 4년 85억[70]
정의윤 2018년 4년 17억[71]
이재원 2019년 4년 69억

SK가 19년동안 내부 재계약으로 지출한 금액은 2019시즌까지 옵션 미포함 총 539억원. 외부 FA 영입으로 지출한 금액의 7배가 넘는다. 외부 영입보단 내부 재계약을 선호하는 SK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90억 이상을 지출한 적은 2019년 최정이 유일하다.[72] [73] SK 프런트의 능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018년엔 40억 이상이라면 안 잡는게 맞다는 팬들의 의견이 있던 정의윤을 무려 29억이고 심지어 옵션을 제외한 보장금액은 겨우 17억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잡으며 준척급 FA 선수들의 기준을 마련했다. 올시즌 FA에 대형 가 세명이나 있어서 정의윤이 큰 관심을 못 받을 것 같자 SK가 그냥 싸게 후려쳤고, 정의윤이 어쩔 수 없이 계약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옵션을 4년 연봉 총합과 같게 해 놓으면서 앞으론 옵션을 많이 걸어서 먹튀들이 생기지 않고 안정성 있게 계약하려는 좋은 모습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외부로 수출한 선수는 어떨까. 2019년 FA 전을 기준으로, SK가 재계약에 실패한 선수는 총 9명이다.
재계약 실패 이름 FA 연도 이적팀 계약금
투수 이승호 2012년 롯데 자이언츠 4년 24억+옵션 4억
정대현 2012년 롯데 자이언츠 4년 36억+옵션 6억
윤길현 2016년 롯데 자이언츠 4년 38억
정우람 2016년 한화 이글스 4년 84억
타자 김민재 2006년 한화 이글스 4년 14억
이진영 2009년 LG 트윈스 4년 44억
이호준 2013년 NC 다이노스 3년 20억
정근우 2014년 한화 이글스 4년 70억+옵션 7억
정상호 2016년 LG 트윈스 4년 32억+옵션 2억
18년동안 SK를 나간 선수들의 계약금은 옵션 미포함 362억. FA로 영입한 선수 총 금액의 4.54배다. 주요 수출팀은 롯데와 한화. 특히 롯데 자이언츠는 SK에서 영입한 선수 세명이 모두 불펜 투수인데 롯데로 가서 하나같이 망했다(...)SK 입장에선 이만한 잔반처리반이 없다.

2010년대부터 SK를 나간 선수가 입을 털 때가 가끔 있는데, 예를들면 이호준이라든지 정근우라든지 정우람이라든지...[74] 재계약을 맺은 최정의 "그냥 SK를 떠나기 싫었어요"와 자기 "가슴엔 언제나 SK" 라고 말한 채병용이 있고, 재계약에 실패했어도 이적 후 그 전 팀에게 예의를 베푼 윤길현과 정반대다.

2.6.2. 외국인 용병 영입

2015년부터 용병 영입 스타일을 보자면, 실력보단 인성이라 할 수 있다.

먼저, SK에 온 외국인 용병들을 살펴보자면
2000년 헨슬리 뮬렌-대체용병 틸슨 브리또, 타이론 혼즈 - 대체용병 하비 풀리엄, 빅터 콜[75]
2001년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틸슨 브리또, 호세 에레라[76]
2002년 페르난도 에르난데스-대체용병 다니엘 매기, 호세 페르난데스, 자니 러핀-대체용병 제프 잉글린
2003년 에디 디아즈, 트레비스 스미스
2004년 호세 카브레라, 틸슨 브리또[A]
2005년 호세 카브레라-대체용병 넬슨 크루즈, 헤수스 산체스-대체용병 론 차비치
2006년 시오타니 가즈히코-대체용병 제임스 세라노, 캘빈 피커링-대체용병 호세 카브레라[A]
2007년 케니 레이번, 마이크 로마노
2008년 케니 레이번, 다윈 쿠비얀-대체용병 케니 레이레이번이 분신술을 쓰고 이름에서 번만 뺐다-대체용병 에스테반 얀3대 콩가루 집안
2009년 크리스 니코스키-대체용병 게리 글로버, 마이크 존슨-대체용병 카도쿠라 켄
2010년[79] 게리 글로버, 카도쿠라 켄
2011년 게리 글로버[80] , 짐 매그레인-대체용병 브라이언 고든
2012년 마리오 산티아고, 아킬리노 로페즈-대체용병 데이브 부시
2013년 조조 레이예스, 크리스 세든[81]
2014년[82] 조조 레이예스-대체용병 트래비스 밴와트, 로스 울프, 루크 스캇흑역사만 세개다. 진정한 콩가루 집안
2015년 메릴 켈리, 트래비스 밴와트-대체용병 크리스 세든, 앤드류 브라운
2016년 메릴 켈리, 크리스 세든-대체용병 브라울리오 라라, 헥터 고메즈
2017년 메릴 켈리, 스캇 다이아몬드, 대니 워스-대체용병 제이미 로맥
2018년 메릴 켈리[83], 제이미 로맥, 앙헬 산체스
2019년 브록 다익손, 제이미 로맥, 앙헬 산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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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엔 실력이 검증된 선수들 위주로 계약을 하였다. 작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던[84] 조조 레이예스와 먼저 재계약을 하였다. 작년 다승왕 크리스 세든이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자 2014년 AAA에서 방어율 1.17로 엄청난 활약에 메이저리그에선 2이닝 7실점 경기 전까진 3점대 초반의 방어율로[85] 한국에 오기 전엔 많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로스 울프와 계약을 하였다.

타자 용병은 전년도에 275만 달러를 받고 MLB 통산 135홈런을 때려낸 마구마구에도 2010시즌 레어카드가 있는, MLB 경력만큼은 지금까지의 용병중 Top3 안에 드는 루크 스캇을 영입하게 된다. 조조 레이예스 크리스 세든이었다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래도 경력만큼은 뛰어난 용병 3명을 뽑으며 SK의 2014시즌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하였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하니 웬걸. 유일한 재계약 멤버는 차근차근 먹튀 테크를 밟다가 박석민에게 고의성 다분한 헤드샷을 맞추고 퇴장당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퇴출당하고, 트리플 A 방어율 1점대 초반 특급 투수는 방어율 5.12를 기록하다 계투 전향 이후 좋은 모습을 보여주나 했지만 아들 문제[86]로 팀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고, MLB 135홈런 타자는 먹튀짓만 하다 감독한테 욕을 하고 퇴출당하게 된다.

그나마 집안 사정으로 팀을 나간 로스 울프는 팬들도 이해가 된다는 의견이 많았고, 구단에선 "We miss you, Wolf"라는 플랜카드를 경기장에 걸어놓았으나... 후에 진실이 밝혀졌으나, 미국에서의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이만수 감독이 자신을 마음대로 불펜 기용을 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결국 좋은 이별이 되지 못하였다. 사상 초유의 용병 3명 모두 퇴출을 겪은 SK. 이로 인해 용병은 실력과 돈이 아니라 인성이 중요하단 것을 깨닫게 된다.[87]

그 이후론 좋은 용병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대표적으론 2014년 대체용병 트래비스 밴와트11경기 9승 1패 방어율 3.1로 승리요정이 되고, 메릴 켈리는 2015년~2017년 평균이닝 190이닝에 2017년엔 탈삼진왕까지 거머쥔다. 2014년 용병의 수모를 겪고 뽑힌 용병들중 역사를 제외하고 보자면,

* 트래비스 밴와트 : MLB 경력 없음. KBO 경력(SK만) 2년간 23경기 평균자책점 3.6 14승 4패 106삼진
* 메릴 켈리 : MLB 경력 없음[88]. KBO 경력 4년간 119경기 729.2이닝 평균자책점 3.86 48승 32패 641탈삼진-2017시즌 삼진왕
* 크리스 세든 : MLB 경력 10년간 24경기. KBO 복귀 후 경력 2년간 26경기 136이닝 평균자책점 5.2 12승 10패 110삼진[89]
* 앤드류 브라운 : MLB 2007년 지명 후 타율 0.220 14홈런. KBO 경력 1년 타율 0.261 28홈런 5도루 121안타
* 헥터 고메즈 : MLB 타율 0.181 1홈런. KBO 경력 1년 타율 0.283 21홈런 16도루 129안타
* 스캇 다이아몬드 : MLB 평균자책점 4.37 18승 12패[90]. KBO 경력 1년 24경기 134.1이닝 평균자책점 4.42 10승 7패 59삼진 1무사사구 완봉승[91]
* 제이미 로맥[92] : MLB 통산 27경기 타율 .167 0홈런. 2016년 NBP 타율 0.113 0홈런. KBO 경력 2년 1032타석 타율 0.286 74홈런 6도루 254안타[93].

실력을 보고 뽑은 선수들보다도 실력이 좋다. 게다가 이들 모두 인성 논란은 없고, 오히려 인성이 좋다는 말만 많은데, 밴와트의 경우 자신에게 타구 부상을 안겨준[94] 오정복으로 가게 되자 오정복이 미안해하고 있을 때, 너가 없었다면 이 좋은 팀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다독여 주었다. 켈리의 인성은 워낙 유명하니 더 말하자면 입이 아프고, 브라운은 KBO에 오게 되자 최대한 한국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선수들과 친하게 지냈다. 세든 고메즈는 비록 실력은 그저 그러한 수준이지만, 수비력에선 그닥 좋지 못했지 인성만큼은 좋은 것으로 유명한 선수다. 특히나, 전임 감독 김용희 감독이 많이 기용을 했었다.

로맥의 경우 한창 자신이 부진할 때 타격코치의 말도 잘 들어주며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SK가 실력보단 인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2017년엔 인성 좋은 선수가 실력도 좋다는 것이 리그 전체에 퍼지고 있기에[95] 앞으로도 인성이 좋은 선수들 위주로 용병을 뽑을 것으로 예상된다.

3. 팀의 역사

3.1. 연고지를 정하기까지

현대가 서울로의 연고 이전을 노리느라 비워둔 인천을 연고지로 차지하였으며, 창단 초창기에는 숭의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구장의 노후화로 2002년 개장 당시 최신식 수준 구장으로 이름 높았던 문학 야구장으로 옮겨 현재까지 홈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천 연고지 결정에 대해 썰을 풀자면 우여곡절의 사연이 있다.

재정파탄 상태에 처한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하지 않고 기다리다 2000년 1월 13일 법정퇴출이 확정되고 나서야 웨이버 공시 처리된 구 쌍방울 소속 선수들과 개별계약하여 전력을 구성하기 시작한 SK 그룹은 창업지인 수원을 연고지로 선택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줄기차게 서울 입성을 노리다가 뒤에 실패하고, 인천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된다. KBO가 도시연고제를 추진하자 3월 11일 '다른 팀은 모두 광역 도시를 연고로 삼는데 SK만 일반 도시 수원을 연고지로 삼으라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 수원 성남을 묶어 연고지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3월 15일 인천을 연고지로 요구하여 연고지가 인천으로 확정이 된다.

SK가 갑자기 수원이 아닌 인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연고지가 수원으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가 형성될 즈음 안용태 창단준비팀장[96] 은 그룹 고위층으로 불려가 호되게 혼이 났다. "다른 팀들은 모두 광역시로 연고지가 넓은데 왜 SK만 중소도시냐"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작은 연고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SK의 자존심이 막후협상을 통해 인천을 택하게 한 것이다. 또한 새로 지어지는 최첨단 시설의 문학 야구장의 유혹도 한 몫을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인천광역시청에서도 달라붙어 SK를 설득했다. 짠물야구 링크 SK인천정유 (현 SK인천석유화학)도 인천에 있었으니 명분도 있었다.

부연고지로 일단은 수원구장이나 춘천 의암 야구장을 두고 있지만, 1군 경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는 '인천야구의 정통성'이라는 의미를 SK 쪽에서 매우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탓이기도 하며[97] '인천 SK' 구호를 외치면서 수원이나 춘천에서 홈 경기를 치르기에는 모양세가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 인천야구의 정통계보인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는 이후 현대 유니콘스 로 바뀌었고, 이들은 수원에 있다 목동구장으로 옮기고, 이후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형식으로 히어로즈가 되었다. 고로 정식적으로는 삼청태현으로 이어진 인천연고 프로야구의 계통은 끊어졌다. SK 와이번스는 1999년 시즌을 끝으로 해체되어 갈 곳 없어진 쌍방울의 선수들을 데리고 시작했으나, 이후 차근차근 인천 출신의 신인과 타 팀의 선수를 영입, 특히 김경기로 대표되는 인천 지역 스타를 영입해 인천의 야구팬들을 흡수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히어로즈가 현대를 공식적으로 인수하지 않고 신규창단을 선택한 이상, SK가 인천야구의 계승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팀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삼청태현과 SK가 '같은 팀'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쌍방울의 선수들을 인계했던 SK를 응원했던 구 쌍방울 팬들은 새로운 인천 SK 팬들과의 마찰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서서히 사라졌다. 태평양 데이 당시 SK가 까이는 패턴 중 하나가 슼방울, 솩방울이라는 표현이었다. 물론 쌍방울 레이더스와 SK 와이번스는 넥센 현대처럼 (공식적으로는) 남남인 팀이므로 이러한 태도가 문제될 것은 없지만,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수많은 구 쌍방울 팬들이 상심한 채 떠나갔다. 대부분은 현재 쌍방울의 전라북도 지역 연고권을 흡수한 KIA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상황. 그러나 전북에서의 KIA 외의 야구단 응원 비율은 SK가 확실히 높으며, 이를 보면 쌍방울의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는 아예 야구를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SK는 인천 야구의 계보를 이어받았지만 SK 이전 인천야구의 계보인 태평양과 그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의 인적 승계팀인 넥센 히어로즈가 있었기 때문에 SK가 태평양 데이 행사를 치르자[98], 야구계에서는 SK의 정통성 문제를 놓고 한바탕 크게 문제가 되었었다.

수원의 경우에도 2015년에 제10구단 kt 위즈가 창단되면서 SK의 부연고지와도 전혀 상관없게 되었다.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연고지 체제는 과거의 광역 연고지 체제에서 도시 연고지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를 문제시 할 제도적 근거는 없다.[99]

3.2. 시즌별 일람

SK 와이번스 시즌별 일람
{{{#!folding 펼치기 강병철 감독 조범현 감독
창단, 그리고 암흑기 아쉬운 준우승
8위 7위 6위 2위 5위
조범현 감독 김성근 감독
유망주들의 성장 왕조의 시작 2009
3위 6위 V1 V2 2위
김성근 감독 이만수 감독
2010 2011 2012 2013 2014
V3 2위 2위 6위 5위
김용희 감독 힐만 감독 염경엽 감독
2015 2016 2017 2018 2019
5위 6위 5위 V4
}}} ||

3.3. 역대 유니폼

파일:skuniform.jpg
2015년부터 사용중인 유니폼이다. 종류로는 얼트, 홈, 원정이 있다.[100]

홈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기존 유니폼의 라인을 없앤 심플한 디자인으로 구단 로고를 부각시켰으며, 유니폼 뒷면의 선수 이름을 제거했다.
원정 유니폼은 평가가 좋았던 기존 원정 유니폼의 붉은색에서 회색 컬러가 메인으로 변경되었다.
얼트 유니폼은 매주 일요일 홈경기마다 입으며, 연고지 팬들과의 교감을 위해 인천군 유니폼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미색 바탕에 연고지인 인천을 로고와 함께 새겼다. 인천군 유니폼과는 달리 인천의 영문 표기는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 맞게 INCHEON으로 넣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4. 관련 기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관련기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영구결번

SK 와이번스 영구결번
No.26 박경완

2014년 3월 10일, 박경완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 SK 와이번스 첫 영구결번. 인천 SK행복드림구장 백스크린 뒷쪽에 야구공 모양의 영구결번 기념 조형물이 있다. 야간 경기에는 조명이 들어온다. 창단 초창기의 시련을 극복하고 SK가 강팀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았고 2000년대 후반 V3에 지대한 공을 세운 전설적인 선수이기 때문에 구단의 첫 영구결번 사례가 됐다.

일각에서는 인천야구를 빛낸 슈퍼스타 중 한 명인 박재홍 해설위원의 현역 시절 등번호 62번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박재홍은 전성기가 현대 유니콘스 시절이고[101] 현역 은퇴 당시 SK 구단과의 결별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에서[102]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판단된다.[103]

김원형 역시 SK의 첫 100승투수이고 이적없이 쭉 한팀에서만 뛴 원클럽맨 레전드라 영구결번 후보중 하나였지만 아무래도 SK보단 쌍방울의 에이스란 이미지가 더 강하기도하고 쌍방울색을 지울려는 팀 정책상 최대한 쌍방울과 거리를 두었기에..... 안된 듯 하다안습[104]

현재는 타자 중에서는 최정이 가장 유력한 후보이고, 투수 중에서는 김광현이 그렇다. 둘 다 SK의 대들보격인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타 구단의 영구결번급 선수와 비교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커리어를 보유했으며 SK 와이번스의 우승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광현같은 경우는 부상으로 인해 연차를 이제서야 10년 정도를 넘어섰으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수 있으나, 여태껏 쌓아온 커리어와 상징성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대체적으로 판단되며, 실제로 2018년에 부활에 성공하였다. 최정은 2번째 FA에서 6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구단 차원에서 팀 레전드로 남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김성근의 38번도 영구결번 될 뻔한 적이 있다. SK프런트측에서 3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의 업적을 기리는 차원에서 먼저 제안해 몇차례 의견을 나눴으나 재계약 관련한 갈등끝에 결별한 김성근이 거절해서 성사되진 않았다. 천만다행한 일로 하마터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뻔했다.

5. 은퇴식

SK 와이번스는 원년 구단이 아닌 2000년에 창단된 구단인 만큼 창단 초기에는 은퇴 직전에 놓여있던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식을 많이 열어주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팀의 역사를 이어가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에게 은퇴식을 해주는 모습을 보이고있다.

2018년 기준 13명의 은퇴식 선수를 배출하며 10개 구단 중에서 LG 트윈스 다음으로 많은 은퇴식을 치러준 구단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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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 : 1984년 삼성 라이온즈 데뷔, 1997년 쌍방울 이적, 2000년 8월 13일 은퇴식[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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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기 : 1990년 태평양 돌핀스 데뷔, 2000년 SK 이적, 2002년 4월 9일 은퇴식[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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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 1993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4년 4월 4일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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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2년 SK 이적, 2006년 4월 8일 은퇴식[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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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천 : 1989년 태평양 돌핀스 데뷔, 2001년 SK 이적, 2010년 3월 28일 은퇴식[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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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배 : 1996년 삼성 라이온즈 데뷔, 2002년 SK 이적, 2010년 3월 28일 은퇴식[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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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 1993년 LG 트윈스 데뷔, 2005년 SK 이적, 2011년 10월 1일 은퇴식[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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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형 :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12년 4월 8일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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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 1996년 현대 유니콘스 데뷔, 2004년 SK 이적, 2013년 5월 18일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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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 :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3년 SK 이적, 2014년 4월 5일 은퇴식[]SK 와이번스 구단 역사상 첫 영구결번이며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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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 2003년 두산 베어스 데뷔, 2008년 SK 이적, 2016년 10월 8일 은퇴식[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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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상 : 2001년 SK 와이번스 데뷔, 2017년 9월 9일 은퇴식[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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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화 :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멤버, 2018년 9월 8일 은퇴식

구단 특성상 차후 리빙 레전드로 평가받는 김광현 최정은 은퇴식은 물론 영구결번 헌액의 가능성이 있고 SK 왕조 시절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박정권, 김강민, 나주환, 채병용, 윤희상, 박희수 등에게도 꽤 큰 규모의 은퇴식을 해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포함시키긴 애매하지만 팀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에 공헌을 하고 왕조 시절 SK 와이번스의 클린업으로 활약하 펄녀의 마수를 손수 막아줬 NC 다이노스 소속 내야수 먹튀 이호준도 마지막 인천 원정 때 구단에서 조촐한 은퇴 기념 행사를 챙겨주기도 했다.[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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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고별전에서 SK 와이번스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이호준의 모습

6. 홈구장

참고로 2014년부터 인천 문학운동장의 시설에 대한 운영 및 관리를 수행하는 위탁 운영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이 아니라 야구장을 포함한 경기장 전체( 박태환수영장 제외)이다. 경기장 일부에 대한 관리를 위탁한 사례는 있었지만 모든 시설에 대한 관리를 위탁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한다. 덕분에 SK 프론트 입장에서는 경기장 전역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

6.1. 인천 SK행복드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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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인천 SK행복드림구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mediask.co.kr/20160418_SK%ED%96%89%EB%B3%B5%EB%93%9C%EB%A6%BC%EA%B5%AC%EC%9E%A5_02.%EC%BD%98%ED%85%90%EC%B8%A0%EC%9D%B4%EB%AF%B8%EC%A7%80_%EA%B7%9C%EB%94%94.jpg
전세계 스포츠 경기장 전광판 크기 9위를 기록하고 있는 행복드림구장의 빅보드[115]

6.2. SK 퓨처스 파크

2006년까지는 용현동의 SK 와이번스 2군 구장을 사용했으나, 구장이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 지구로 정해진 터라 도원 구장으로 잠시 이전, 하지만 도원 구장까지 축구장 지으려고 헐리고 결국 송도에 위치한 열악한 야구장을 2군 임시 경기장으로 쓰게 되었다. 야구장 바로 옆에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시설이 있는데, 이 시설에는 나오는 악취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빈번하다.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강화군 길상면에 새로운 2군 시설이 지어진다 하여,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으나, 시와의 부지 매매 관련 협의가 잘 안되었는 지 한동안 건축은커녕, 삽질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2013년까지 송도내의 LPG기지내의 야구장을 임시 2군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드디어 시와의 협의가 끝났고, 2013년 4월 첫 삽을 떴다고 한다. 연습 경기장은 일단 2014년 내에 완공 예정이라고 발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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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까지 공정률이 30%에 불과해 팬들의 걱정이 많았으나 이후 작업속도를 내면서 공사를 시작한 지 정확히 2년이 된 2015년 4월 1일, SK퓨처스파크 개관식이 거행되었다. SK퓨처스파크는 8만6762m²(2만6245평)의 대지에 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수펙스돔(실내훈련장), 패기관(숙소) 등 4가지 주요 시설로 이뤄졌다. 주경기장(2군 훈련과 경기 전용)과 보조경기장(재활·잔류·육성군 전용) 모두 실전을 치를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됐다. 실내훈련장은 투수와 야수 시설을 분할해 건립됐다.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신경을 썼다. 또 숙소는 37개 객실 모두를 1인1실로 만들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수용할 계획이다.

7. 논란

7.1. 인천야구 정통성 논란


인천팬들을 끌어들이려는 일환에서 2002년 8월 24~ 25일에 과거 인천을 연고로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는데, 당시에는 아직 삼미의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 수원을 연고로 한 채로 멀쩡하게 살아있었던 관계로(...) 이벤트 이름도 꿈★의 이벤트[116]가 되었으며, 결국 가슴의 별에는 삼미 로고의 S 대신 SK가 박혀있는 유니폼으로 대신했다.

더군다나 올드 유니폼 데이의 흑역사였던 2008년 태평양 데이에서는 현대가 없어졌고 태평양 돌핀스의 모기업이었던 태평양도 회사명을 ' 아모레 퍼시픽'[117]이라고 바꿨기 때문에 태평양 로고를 붙이고 경기했지만, 하필 그 때의 상대가 히어로즈였다(…).[118] 여기에 SK가 KBO에만 행사의 사전 협의를 하고 히어로즈 측에는 통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거에 같은 한 팀을 응원했던 히어로즈들과 SK팬들 사이에서 더욱 깊은 갈등과 대립을 낳고 말았다...[119] 더구나 이 사건 자체가 SK에게는 아킬레스 건과도 같았기에 SK는 중재조차 할 수 없었고, 그냥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어야 했다.

2009년 9월, 이 문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데, 바로 히어로즈 프런트에서 '과거 히어로즈의 전신이 된 팀'(그러니까 삼미와 태평양도)의 유니폼 모양의 LED 뱃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언론에서 떠들 정도로 사태가 크진 않았지만, 이미 양측 팬들간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한때 같은 한 팀 응원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인천'을 이은 팀과 '사람'을 이은 팀 간의 싸움에서 과연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120][121]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선 태평양데이 같이 연고팀을 떠나보낸 팬을 위해 정착팀이 옛 연고팀의 올드유니폼 행사가 종종 있는데, 그 중 태평양데이와 가장 유사한 사례는 시애틀 매리너스가 옛 연고팀 시애틀 파일러츠의 유니폼을 입은 행사이다. 시애틀 파일러츠는 밀워키로 연고를 이전하고 밀워키 브루어스로 구단명을 바꾸고 현재도 존재 중, 또 밀워키 브루어스도 행크 아론을 기념하기 위해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을 입는데 이 구단 역시 연고를 이전하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구단명을 바꾸고 존재하는 상태이다. 또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사라진 옛 니그로리그 연고팀 블랙삭스의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또 과거 뉴욕(브루클린)에서 연고 이전한 LA 다저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우처럼 연고지 이전 전의 기록들을 모두 인정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히어로즈의 정당성을 말하는 이도 있지만 앞서 말한 메이저리그 두 팀과는 달리 연고지 이적과정에서 벌어진 잡음으로 삼청태현의 전신들과 공식적으로는 별개의 팀이기 때문에 엄연히 차이가 있다.

이 문제는 SK와 넥센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이며,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동안 대립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보를 하더라도 골수 팬들은 인정을 안 하는 상황이 분명히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간혹 SK 와이번스의 창단을 놓고 현대처럼 쌍방울 레이더스를 버리고 연고이전했다고 까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 경우는 인천을 둘러싼 연고이전과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물론 이것마저 문제삼고 나온다면 할 말은 없다. 이외에도 꼴찌를 밥먹듯이 하거나 우승하고 잘나가나 싶더니 뒤통수 치고 떠나버렸던 인천 연고 야구팀들의 역사 탓에 여러 가지로 말이 많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SK의 프론트는 쌍방울과의 단절과 동시에 인천 연고를 강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일례로, 구단 응원문구에 공식적으로 연고지 이름이 들어가는 구단은 와이번스가 유일무이하다[122]. 또한 1986년 이후 국내 최초로 지역명을 유니폼 상의 전면에 표기한 것 역시 SK[123].

SK에서 의도적으로 쌍방울의 역사와 단절한 것은 전주 출신의 야구팀이 인천야구의 계승자를 표방한다는 또다른 개족보가 생기게 된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모양새는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어차피 SK가 연고지를 전주에 둘 마음이 없었던 만큼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일단 SK가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할 이유는 전혀 없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인기팀이 아니었고 전북, 전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팀을 인수하여 연고지 이전해서는 '이제부터 인천팀'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아예 인천을 연고지로 둔 신생팀을 창단하면서 인천 마케팅을 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면 문제가 생긴다. 비록 인천 연고의 원 주인이 다른데로 눈을 돌렸다가 망하기는 했었지만, 원 주인이 한동안 멀쩡히 있었는데도 새롭게 인천 연고의 주인 자리를 차지한 격이었기에 인천 야구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시비가 붙는 것만큼은 반드시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 인천 연고의 원 주인이 망하고 얼마 안 되어 추모행사 격으로 태평양데이를 했는데 예상대로 원 주인의 역린을 건드린 꼴이 되고 말았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3월, 현대 유니콘스의 모기업이었던 하이닉스SK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돌고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돌이킬 수 없이 너무 멀리 돌아와 버렸다.[124]

7.2. 프런트와의 갈등

노리타 깽판질과 김성근 야신거품의 가장 큰 피해자.

대한민국 최고의 프런트는 아닐지라도 일 괜찮게 하는 프런트인데 김성근 때문에 안 먹어도 될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초대 강병철 감독과 후임 조범현 감독 모두 아주 좋은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임기를 채우고 원만하게 물러났으며, 연봉 협상에 대한 잡음이 거의 없고, 심지어 김성근의 깽판질도 4년 넘게 참아줬다. 그러나 김성근 야신거품이 한화에서 벗겨지기 전까진 이런 부분에 대해 인정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성근이 불펜혹사와 비매너, 더러운 야구로 왕조시기 내내 악명을 떨쳤는데 팬들은 감독님이 언론과 친밀하지 않아 비난에 가까운 기사가 쏟아지는데 이거 보호 안 해주고 뭐 하냐며 프런트를 깠다. 김성근이 한화 감독이 된 이후 노리타를 제외한 팬들이 모두 실감했듯이 그게 보호하려 한다고 보호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보호해야 될 사안도 아니었지만 그땐 그랬다. 애초에 김성근이 언론과 친밀하지 않다는 거부터 김성근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라 통했던 헛소리.[125]

2011년 7월 29일에 구단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폐쇄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 페이지로 대체했을때도 엄청나게 욕을 먹었고 동년 8월 17일자로 김성근 감독이 자진 사퇴를 선언했을 때도 분명히 김성근이 구단을 엿먹인 상황이었지만 김성근 비판하는 팬은 한 사람도 없었고 프런트가 모든 욕을 먹었다.

급기야 노리타들은 문학구장 소요 사태를 일으켜 구단에 수천만 원의 손해를 입히고, 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운동까지 벌어는 희대의 깽판을 저질렀다. 박종윤 박희수를 바꿔오려던 트레이드를 저지하고, 김성근이 혹사로 망가뜨린 전병두의 재활을 지원하는 등 유능하고 무능하고를 떠나서 옳은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그게 제대로 평가받는 건 김성근 거품이 꺼지고 난 다음에나 가능했다.

FA에도 기민하게 대처하여 2013년 정근우가 구단의 제시액을 걷어차고 한화로 이적할 무렵엔 정근우가 70억을 걷어찼다라고 발표해 갈팡질팡하던 SK 팬덤의 공격목표를 친히 지정해 주는 한편, 다른 구단이 정근우에게 최소 70억 이상으로 베팅할 수 있도록 밑밥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이만수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최정, 김강민, 조동화를 잔류시킨 다음에 중요도가 떨어진 나주환 이재영을 내놓음으로써 확실하게 매듭지었다. 2015년에는 박정권, 채병용은 잡고 정우람, 정상호, 윤길현은 내보내 비난받았으나 시즌 들어가고 그 선수들 성적 나온거 보고나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126]

계약기간 지켜주는 건 이만수나 김용희도 마찬가지라서 2015 시즌 종료 후 잠시 김용희 감독 경질설이 돌았지만 코칭스태프 개편안에 관해 선을 그으며 임기를 지켜줬다. 결국 김성근빼곤 다 좋게 좋게 이별했다. 후임 인선도 매끄럽게 해서 16년 말에 감독면접을 거쳐 트레이 힐만 감독을 비롯해 차기 코칭 스태프 조직을 끝내놓고 17년 1월 염경엽 단장 영입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용틀임마당 없앴다고 지적받는 소통부분은 SK 와이번스 트위터/페이스북이 메시지도 받아주고 더욱 활발한 소통을 하기 시작하고 결정적으로 '플레이 위드'의 등장으로 '이미 용틀임마당의 대체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최소한 소통 안하는 프런트는 아니다. 그리고 용틀임마당 폐쇄가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인지도 의문이다. 삼성 사자후 LG I love Twins, 롯데 갈매기 마당, KIA 호랑이 사랑방 등 다른 팀의 공홈을 살펴보면 건전하게 돌아가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인신공격성 글이 올라오는 건 기본이고 좆문가질에 연령대 높은 이용자들도 여럿 있다 보니 지역주의에 기반한 글들도 굉장히 많이 올라온다. 엠팍처럼 선비질이란 비아냥을 먹더라도 규제를 통해 과격한 언사를 거르는 것도 아니고, 디씨처럼 처음부터 그런 걸 상정하고 노닥거리는 곳도 아니다 보니 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 엠팍같은 곳에서야 우리 용틀임마당은 그냥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고 미화하는 사람들도 나오지만 그럼 김성근 재계약하라고 글 도배한 건 누구 문학구장 혼자 불탔단 말인가?

7.3. 사건 사고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기타

  • 견제 응원이 없기로 유명했었다. 2007년까지는 견제구호[127]가 있었으나 2008년 윤길현 욕설 사건 이후 김성근 감독의 의견으로 타 팀 선수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없앴다고 한다.[128]
  • 또 김성근 감독이 기자들과 대화 중 "일본에서는 내야에서는 조용하게 야구보는 사람들이 오고 외야에서 주로 응원을 하는데, 그 이유가 투수들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함이다. 응원하는 건 좋지만 투수 견제구호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투수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한 이후로 SK 팬들이 자발적으로 견제 응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 하지만 2011년 8월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이후 김성근 팬덤을 중심으로 한 SK 팬층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견제 응원이 부활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시즌부터 견제 응원이 부활했다.[129]
  • 타팀팬들이 SK를 비하하는 명칭으론 기본적으로 이 있고[130] 여기게 다양한 접두어,접미어를 붙이는데 접두어로는 대표적으로 10, 접미어론 벌레 蟲이 자주 쓰인다. 이중 충이란 명칭이 SK고유의 별칭[131]이라 이해하면 된다. 벌레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2007 코시의 정근우의 다리잡기, 2008 시즌 윤길현 사건, 이기고 있는 9회말 2아웃에서 투수교체 등등으로 지저분하게 야구한다는 의미. 여기에 야구본지 얼마 안되는 티 팍팍내던 SK팬[132]들을 조롱하는 의미도 있다. 이른바 2008년부터 야구본 놈들 베이징 뉴비 .[133]
  • 충이라 불리는 이유를 몇가지가 더 꼽아볼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다음과 같은 이유는 절대로 아니다. 원문
    각 팀을 가리키는 비하적 표현이 없지는 않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를 중심으로 확산된 별명이기는 하지만 SK 와이번스를 ‘충’, 두산 베어스를 '범죄두' 한화 이글스를 '꼴칰', LG트윈스를 ‘헬쥐’ 혹은 '조작쥐'로 일컫는 식이다. ‘충’은 SK의 우리말 발음에서 비롯됐고, (이하 생략)

    SK의 우리말 발음이 어떻게 충으로 연결되는지는 오로지 저 글을 쓴 기자 자신만이 이해할 것이다(...). 사실 충이 아닌 슼을 대입하면 맞는 말이긴 하니 굳이 기자를 옹호해주자면 슼이 아닌 충으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 슼충의 어원은 팀이 한창 잘나가던 07년 김성근 감독 특유의 완벽주의와 승부에 대한 집착이 타 구단 팬들의 반감을 사서 구단의 마스코트인 '비룡'을 비하하며 '이런 쫌생이 야구를 하는 팀은 비룡이 아니라 지렁이 같은 놈들이다'라고 깎아내리는 과정에서 지렁이=미물=벌레=蟲의 과정으로 이어진것이다.
  • 이란 별칭은 야구판에선 와이번스 이외의 타팀에겐 잘 안 쓰이지만, 야구판을 벗어나서 xx충이란 별칭이 붙으면 xx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인간 이란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최근엔 이 게임에서 가장 널리 쓰인다.
  • 그리고 SK 프런트가 2014년부터 문학야구장 위탁 관리전권을 인천시로부터 위임받으면서 야구팬들이 미래의 비전으로써 바라던 구단이 직접 야구장을 관리하는 꿈과 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팬들도 프런트를 욕하는 와중에 이 일만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점점 더 발전하고 프런트에서 말해오던 볼파크로써 달라지는 문학야구장을 기대해보자. 그리고 2015 시즌 개장을 앞두고 엄청난 개보수가 이루어 졌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 문서 참조.
  • SK그룹 계열사 중 SK E&S( 코원에너지서비스, 부산도시가스의 모기업)라는 회사가 있는데, 정작 이 팀 홈구장이 있는 곳은 삼천리 공급권역이다. 창단 당시 연고지를 획정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것.
  • 여담으로 위탁관리전권과 관련해서 사건이 하나 있었다. 2014년 2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구단 사무실이 위의 위탁 전권과 관련해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구단측과 인천시 공무원간의 유착 혐의를 수사한다고 한다. 그리고 4월 8일 수사결과로 인천시 당국과 SK 구단 사이의 유착혐의는 없는 것으로 최종결론이 났고 유착혐의와는 별도로 구단 전직 임원 A와 응원대행업체 사장 B의 횡령 사실이 드러나 입건되었다. 유착 혐의를 파려고 했는데 엉뚱한게 걸렸다.
  • 2016년부터 kt 위즈 2군이 수원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야구장을 떠나 익산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1군과 2군의 연고지가 같은 유일한 구단이 되었다. 강화군 인천광역시 소속이기에 가능한 일. 그러나 NC 다이노스가 2019년부터 NC 다이노스 2군의 홈 경기장을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바꾸면서 1군과 2군의 연고지가 같은 두 번째 구단이 됐다.
  • 유튜브에 투수들의 불펜피칭 영상을 많이 올린다. 쑈께이(...)라고 소리지르는 불펜포수 아재(가 아니라 포수 겸 코치 허웅)의 고함이 일품(...)
  • 2013년부터 2017년까지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우위를 점해본 적이 없다. 2013년 6승 10패로 밀렸지만 2014년에는 8승 8패로 동률을 맞췄다. 하지만 2015년 5승 1무 10패, 2016년 6승 10패로 털렸고 2017년 전반기까지 6승 3패로 선방하다가 후반기 마산 3연전에서 역스윕을 당했다. 그리고 9월 마산 2연전 시리즈를 모두 내주면서 7승 9패로 열세로 마감했다. 그리고 양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처음 붙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SK가 5-10 으로 정진기 빼고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NC 다이노스 감독 김경문이 두산 베어스 시절 SK 와이번스에 깨져 번번히 우승을 놓쳤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어쩌면 통쾌한 복수일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우승 경험이 없기에 완벽한 복수라고 하긴 좀 뭐하다. 하지만 2018년에는 NC 상대로 11승 5패로 우위를 점했다.
  • KBO 한국시리즈 한정으로 3차전 만큼은 절대 지지 않는 팀이다. 문학에서 열린 200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1승 1패 후 현대 유니콘스에 역전승을 거뒀고 잠실에서 열린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격렬한 벤치 클리어링 끝에 두산 베어스에 대승을 거뒀으며 또 잠실에서 열린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최정의 홈런을 앞세워 두산 베어스에게 이겼다. 문학에서 열린 2009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2년 전처럼 또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박정권의 홈런에 힘입어 KIA 타이거즈에게 승리했다.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선발투수 이승호 구원투수 이승호의 호투에 힘입어 삼성 라이온즈에게 이겼다. 2011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그때까지는 사람처럼 던졌던 송은범의 호투로 삼성 라이온즈에 승리를 거뒀고 2012년 한국시리즈 3차전 삼성 라이온즈 수비진의 실책 연발로 승리했다. 2018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메릴 켈리의 호투와 제이미 로맥, 이재원의 홈런에 힘입어 두산 베어스에 승리했다.
  • KBO 리그에서 유일하게 사이클링 히트와 인연이 없는 팀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선수도 없고, 허용한 기록도 없는 유일한 팀이다.
  • 모자 로고가 청주 우암초등학교 야구부의 모자랑 똑같다. 색만 다르고 글자만 그대로 똑같은 셈.
  • 은근 대형 선수를 뽑아갈 기회를 놓친 드래프트들이 수두룩하다 (...) 대표적으로 2014년 드래프트의 김하성 거르고 ~ 이건욱~[134] 유서준이 유명하다.[135] 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뽑는 2차 드래프트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잠재력이 있는 내야수들이 있어도 뽑아놓고 별로 안 쓰거나, 아니면 아예 뽑지를 않았거나, 심지어는 다른 팀에 넘겨버렸던 등 여러 삽질이 있다. 이 때문에 서른을 넘긴 김성현 나주환이 여전히 주전 키스톤 콤비로 활약하는 등 내야진의 세대교체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나마 트레이 힐만 체제에서 박승욱 박성한이라는 신예들이 발굴되었고, 강승호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등 점점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부분.
  • 여타 수도권 구단과는 달리 아이돌 시구를 잘 안하는 편이다. 그래도 뜻 깊은 시구는 자주 하기 때문에 팬들이 시구로 불만을 갖거나 하진 않는다.

9. 지역 연고 학교

과거에는 인천+ 경기+ 강원 이란 프로야구 최대 팜을 보유하는 것에 비하면 스카우트 능력은 극악이란 평가가 다수였다.[136][137][138] 허나 2010년 시즌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어 지역연고제를 활용하기가 힘들어졌다. 당장 전면 드래프트 도입 후 시행된 세 차례의 드래프트에서 인천 출신 선수는 고졸, 대졸을 막론하고 1명도 지명되지 않았다. 그래도 2010년 드래프트에선 좋은 투수들을 잘 뽑았다는 평.[139]

10. 선수단

11. 응원단

2018 시즌 SK 와이번스 응원단
응원단장 정영석
장내 아나운서 김우중
치어리더 강윤이, 김나영, 배수현, 오지연, 이다연, 이미래, 이지현
SK 와이번스 역대 응원단장
순서 이름 기간
초대 박상돈 2001년
2대 김용문 2002년 ~ 2005년
3대 원명호[141] 2006년 ~ 2007년
4대 홍창화 2008년
5대 박홍구 2009년 ~ 2013년
6대 정영석 2014년 ~ 현재

12. 응원가

13. 네임드 팬

일단 와이번스 구단의 역사가 길지 않고 삼청태현 시절로 스펙트럼을 넓힌다고 해도 1983년[142], 1989년[143], 1994년[144], 1996년[145], 1998년[146]을 빼고는 성적이 변변치 못했던데다 팀의 주인이 통째로 자주 바뀌었던 아픈 역사가 여러번 되풀이됐던 탓에 다른 팀에 비해서 유명인 팬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특히 현대 유니콘스의 야반도주로 팬심을 돌린 사람들이 대다수. 대부분은 인천광역시 출신이거나 인천광역시에 거주 중인 인사들이 와이번스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13.1. 인천광역시 출신

  • 염경환
    - 이 사람도 삼청태현 시절부터 골수 야구팬이다. 2010년에는 SK 와이번스 편파방송 캐스터를 맡기도 했다.
  • 힙합 그룹 리듬파워( 보이비, 행주, 지구인)
    - 그룹 멤버가 모두 인하부고 출신이다.
    방사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같은 인천 출신인 라임어택의 피쳐링을 받은 "인천 상륙 작전"이라는 곡을 내기도 했다.
    특히 행주의 가사 내용은 야구와 관련한 내용으로 빗댄 것이 많고[147], 앨범 커버 자체가 문학구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잘생겼다 리듬파워' 라는 앨범에서는 대놓고 SK 모자도 나온다.
    다이나믹 듀오의 "만루홈런"을 리믹스한 "만루홈런 인천 Remix"에는 씨잼이 참여했으며, 원래 가사인 "I'm feeling like 이대호"에서 이대호 대신 김경기를 넣었고, 가사 내용도 인천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2016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 초청돼 시구와 특별 공연을 했다. 여러모로 덕력도 비범하고 성공한 덕후도 되었고, 아마 이 시점에서 제일 잘 알려진 SK팬이 아닐까 싶다.
    2018년 KBO리그 홈 개막 2연전 마지막 날인 3월 25일, 리듬파워가 만들어 공식적으로 쓰이는 응원가를 직접 선보였으며, 세 멤버가 시구를 동시에 하는 코믹한 상황도 연출했다. 1회초가 끝났을 때 SK 응원단상에서 공연도 했었다.
  • 홍인규
    -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들과의 문학 직관 사진을 종종 게시한다. 다만 생계형 개그맨인지라 다른 팀 시구도 거절하지는 못하는 듯(...)
  • 정인영
    - 연수여고 출신. '야구여신'이라 불리며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응원팀을 밝히지 않았지만 야구 프로그램을 그만 둔 후에는 고향팀 SK를 응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싸이월드 스킨은 이대형
  • 유승호
    -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고양시로 이사를 갔다. SK 와이번스가 파란색 유니폼을 입던 2006년 이전에도 한 번 시구한 경력이 있으며, 2008년 어린이날에도 시구를 했었다. 여담으로 이 날은 SK와이번스 도그 미르가 처음으로 문학구장에 등장한 날.
  • 런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김장미
    - 최정의 열렬한 팬임을 자부했고 SK 시구도 하고 싶다고 인터뷰 한 바 있다. 실제로 2012년 8월 경 성사될 수 있었으나 일정의 충돌로 현재까지 보류가 되고 있는 듯.
  • 은서(우주소녀)
    - 팬싸인회에서 자신이 SK 와이번스의 팬임을 밝힌듯 하다. 인천광역시 출신이라 연고지를 따라서 팬이 된듯 하다. 링크.

13.2. 인천광역시 출신

14.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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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K그룹 산하 스포츠단 브랜드인 SK스포츠 내의 프로팀은 프로야구팀 SK 와이번스와 프로축구팀 제주 유나이티드만 법인으로 설립되어 있다. 나머지 프로팀인 서울 SK 나이츠 SK텔레콤 T1은 별도 법인이 아닌 SK텔레콤 내에서 관리되고 있다. [2] 도시 연고로는 인천광역시이며, 광역 연고로는 부천시, 김포시, 안산시, 시흥시 등 인천과 인접한 수도권 서부 지역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기도 북부 지역도 SK의 광역연고에 끼우기도 한다. 의정부나 파주에서는 당연히 인천이 수원보다 더 가까우니까 다만 팬 베이스는 서울 서부가 주축인 넥센 히어로즈와 살짝 겹친다. [3] 과거 광역 연고제 시절 인천 연고팀의 연고지 범위는 인천광역시를 넘어 경기도 강원도, 이북5도(...)까지 크고 아름다운 수준이었다. 1차 지명 신인 우선지명 연고지도 인천, 경기, 강원지역이었다. 현재는 인천광역시 내 3개 고등학교( 인천고, 동산고, 제물포고)와 경기도 내 일부 고등학교( 성남시- 야탑고, 구리시- 인창고)에 대해 SK가 우선 지명권을 갖고 있다. 경기도 지역의 지명권은 수원시 연고 팀인 kt 위즈와 분할해서 보유하고 있는 상태.(수원의 두 학교( 유신고, 장안고)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 중 SK가 성남 야탑고와 구리 인창고를 지명 대상 학교로 택했고 신규 창단 팀들은 적절히 갈라서 1차지명 대상에 넣었다.) [4]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막내 아들이다. 현재 SK가스와 SK케미칼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야구에 심취한 열혈 야구팬이라고 알려져 있다. [5] 와이번스 창단 이전인 1990년대 후반부터 SK그룹의 회장은 최태원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구단주를 맡은 적은 없다. 창단 초창기부터 구단주를 맡았던 사람은 SK그룹 회장과 SK텔레콤 명예회장을 지낸 손길승 씨였다. 이후에는 구단주 대행 체제로 이어졌는데 SK텔레콤 사장 출신인 정만원 부회장이 구단주 대행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래도 최태원 회장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야구장을 찾아 일반석에서 임원들과 와이번스를 응원하곤 한다. 2007년 2008년 우승 때는 헹가래도 받았다. 참고로 최태원 회장은 SK그룹 스포츠단 6개 중 여자 핸드볼팀을 제외한 어느 구단에서도 구단주를 맡지 않고 있다. 축구단 SK에너지 대표이사, 농구단 게임단 SK텔레콤 대표이사, 남자 핸드볼팀 SK하이닉스 대표이사가 구단주다. [6] 배우 류준열과 동명이인 [7] 문학 야구장. 2015년 3월 31일자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8] 아테나의 상징 중 하나가 올빼미. [9]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0] 경기 당 평균 16,211명 [11]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2] 경기 당 평균 1,281명 [13] 삼청태현이 1982년부터 1999년까지 18년간 인천에 있었고, SK가 2018년에 창단 19년차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인천에서 가장 오랫동안 야구를 하는 프로야구단이 되었다. [14] KBO 세 번째 이뤄냈다. [15] 2000년 창단 후 19번의 시즌을 치르면서 가을야구에 오르지 못한 것은 8시즌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창단 초기인 2000~2002년은 팀 전력 자체가 리그에서 독보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6] 2018 포스트시즌에는 역대 최다 승차인 14.5경기를 뒤집는 업셋 우승을 달성하며 가을의 전설임을 입증하는 동시에 역대 한국 시리즈 승률 2위인 50% 고지에 올랐다. 오직 해태-기아 타이거즈만이 더 높은 한국시리즈 승률(100%)를 기록하고 있다. [17] 따라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역사를 계승하지 않는다. [18]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중에서 유일하게 경질되었다. [19] 이 쪽은 "기아"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 탓. 한글 '기아' 표기는 과거 해태의 가난한 이미지가 연상된다고 해서(...) 영문 표기를 쓰고 있다. 그런데 KIA도 군사용어랑 겹치는데 그 뜻은 무려 '임무 수행중 사망(전사)'이다. 어차피 극소수만 아는 거라 무시하자. 영어권에서는 이미 개그소재 [20] SK 와이번스의 모기업은 정유사업을 관할하는 SK에너지가 아니라 SK텔레콤이다. 2005년까지 SK 와이번스와 SK 나이츠, SKT T1이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것이 바로 과거 다른 SK 계열사와는 별개로 되어 있던 SKT의 청색 CI를 따랐기 때문이다. 진짜 주유소로 볼 수 있는 쪽은 법인화 이전의 부천 SK와 제주 유나이티드. [21] 하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주유소라는 명칭은 주유소 알바생을 연상시키는 유니폼으로 인해 붙여졌다. # [22] 두산이 최악이다를 줄여서 돡이라 불렀는데 그것을 응용한 것. [23] 2000년 팀 창단 이후 2017년까지 18번의 시즌동안 SK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던 해는 2000, 2001, 2002, 2004, 2006, 2013, 2014, 2016년 등 총 8번이다. 그나마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아무 것도 갖춰져 있지 않던 꼴찌팀을 새로운 팀으로 다져가던 과정이었기에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했던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24] 삼성은 2010년 한국시리즈부터 2015년 한국시리즈까지 6년 연속 KS 무대를 밟았다. 이 기간 중 4회 우승, 2회 준우승. SK 와이번스는 3회 우승, 3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25] 3위 기록은 해태 타이거즈( 1986년~ 1989년)와 두산 베어스( 2015년~ 2018년)의 4연속 진출. [26] 역대 한국시리즈 2년 이상 연속 우승 사례는 해태(1986-89년, 1996-97년), 현대(2003-04), 삼성(2005-06년, 2011-14년), 두산(2015-16년) 등 총 5개 구단만이 이룬 업적이다. [27] KBO 리그 단일 시즌 순수 최다승은 2016년 두산 베어스의 93승. [28] 아시아 프로야구 리그 사상 단일 시즌 단일 구단 최다 연승 기록도 SK가 보유하고 있다. 2009년 8월 25일 문학 두산전부터 9월 26일 문학 두산전까지 19연승. [29] 파랑색이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상징 색 파랑보다는 조금 짙은 색상이다. [30] 다만 창단 당시부터 2005 시즌까지 썼던 푸른색 원형 구단 로고에는 야구공이 그려져 있었다. [31] 2000년 중반에 용돌이, 용순이로 이름이 변경된 듯 하다. [32] 리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KBO가 마련한 신생팀 전력지원책의 일환으로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에서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준우승팀( 두산 베어스)에서 21명 외 1명을 현금 트레이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 조웅천과 같이 현대에서 넘어온 선수가 조규제였고 두산에서 온 선수는 강혁이었다. [33] 김성근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이러한 투수운용은 장기적으로는 팀 투수진에 크나큰 독이 되고 말았다. 야인으로만 죽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김응룡도 살리지 못한 팀으로 간 후에야 이러한 점이 드러났으니 참으로 씁쓸한 단면. [34] 이승호(은퇴), 정대현( 롯데 자이언츠로 FA 이적 이후 은퇴), 정우람( 한화 이글스로 FA 이적), 윤길현( 롯데 자이언츠로 FA 이적), 송은범( KIA 타이거즈, 이후 한화 이글스로 FA 이적), 고효준(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이후 롯데 자이언츠), 전병두(부상으로 인한 은퇴) 등. [35] 참고로 김성근 시절에는 다운스윙을 하지 않아 혼나곤 했는데, 이만수 시절 메이저식 어퍼스윙을 장착하고 나서야 홈런에 눈을 뜬 것이다. 본인 스스로 홈런왕이 된 것은 이만수 덕이라고 하며 직접 밝힌 내용. [36] 2016년 6월 14일 대구 삼성전~7월 9일 인천 kt전. 이 기간 중 무려 39개의 홈런이 쏟아졌고 그 중 3분의 1인 13개를 최승준이 몰아쳤다. [37] 개막 이후 57번째 경기인 2017년 6월 7일 문학 넥센전에 한동민이 홈런을 치면서 시즌 팀 홈런 갯수가 무려 100개를 넘어섰다. 이는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빠른 시점에 팀 홈런 100개를 돌파한 것이며 역대 단일시즌 팀 홈런 최고기록(213개)을 세웠던 2003년의 삼성 라이온즈(58경기 만에 팀 홈런 100개)보다도 1경기가 빠른 페이스다. 그야말로 역대급 팀 홈런 페이스. [38] 비슷한 사례가 매년 5월만 되면 방망이 대신 삽으로 야구했던 두산 베어스 오월두산 이야기. [39] SK의 첫 번째 가을야구 진출 시즌이었던 2003년에도 4~6월에 선두로 치고 나가며 승승장구했지만 역시나(!!!) 7월에 폭망하면서 결국 그 해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해야 했다. 그래도 특유의 가을본능이 이 때부터 발휘된 모양인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를 연달아 무패 스윕으로 제치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40] 정확히는 광복절 직후부터 [41] 이 당시 SK의 7연패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록이었는데 김성근 감독의 SK 부임 이후 최다연패 타이기록이었다. [42] 2014년 모두가 아는 그 부상에서 복귀했는데 바로 타구에 손가락을 맞아 시즌아웃된것도 여름이다. [43] 마지막으로 고칠 만한 것이 3루 띠전광판의 교체라는 의견이 나왔는데... 진짜로 전광판을 고쳤다. [44] 넥센을 제외한 타 구단은 1년에 150억~200억 정도의 적자를 보며, 이를 메꾸기 위한 차입으로 연 200억 정도가 들어간다. 삼성은 삼성카드, 두산은 두산중공업, NC당연히 NC소프트에서 돈이 들어가는 식. 한때 흑자를 보기도 한 롯데의 경우도 매년 롯데제과를 통해 130억원이 광고비 명목으로 지원되고 있다. 09년부터 10억원 가량 흑자를 꾸준히 본것도 170억원의 수익과 더불어 계열사 광고 130억원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45] 부천시는 최근 들어 근처에 고척 스카이돔이 인접해 있는 넥센 히어로즈와 팬덤이 조금씩 나뉘었지만, 그래도 SK 와이번스의 팬이 더 많다. 여전히 SK 행복드림구장은 부천에서 가까운 데다가 쌍방울 시절부터 팬들이 많았기 때문. 또한 수도권 전철 1호선 서울 도시철도 7호선이 인천까지 다니기 때문에 교통편도 문제가 없다. [46] 2012년 수인선 개통으로 접근성이 나아지고 있다. [47] 김광현의 고향이며 시흥시와 마찬가지로 수인선 개통으로 야구장과의 접근이 수월해졌다. [48]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되면서 검단 지역을 통해서 접근하기가 쉬워졌다. [49] 다만 시대가 흐르면서 쌍방울 레이더스가 지명했거나 신고선수로 영입했던 선수는 각각 박정권과 이대수- 조동화를 제외하고 거의 SK에 적이 없다. 쌍방울에서 현역으로 뛰었던 경험이 있던 선수는 이제 이진영이 유일하며 그나마도 kt 위즈에 있다. 별개로 박종훈 박계현 군산상고 출신이지만 SK의 전국 단위 2차 지명을 통해서 온 케이스이며, 출신고가 신일고이지만 고향이 전북 군산 출신인 채병용도 위와 마찬가지. [50] 인천 연고 프로스포츠 팀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51] 예를 들면 엘지, 기아, 한화 [52] 그러나 인기팀이라는 엘롯기 중에서 자력으로 홈구장을 매진시킬 수 있는 구단은 롯데 기아 정도 이지 엘지나 두산도 잠실구장이 워낙 커서 자력으로 매진은 힘들다. 한화도 분명 인기팀이지만 홈구장이 워낙 작아서... [53] 사실 다른 팀들에 비해 위키러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일 올라오는 경기 기록을 보면, 한 회 한 회 정성껏 적는 팀도 많은 반면, SK 기록을 보면, 그냥 간단하게 하루 경기를 두 줄 정도로 요약만 해 놓는다. * [54] 거기다가 서진용은 시즌 초반에 비해서 실력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불펜들이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이 줄어들고 칭찬이 늘어나고 있다. SK 팬덤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좋은 예. 다른 불펜이 약한 팀들 보면 그나마 나은 선수라고 해서 쉴드치고 칭찬하고 그런거 없이 걍 쌍욕한다 [55] 다른 선수들은 그냥 반등의 기회 없이 꾸준히 못하거나 반등하는 듯 하다가 도로 추락했기 때문에 냄비라고 보기 어렵지만, 다린 러프의 경우는 초반 한 달을 제외하면 꾸준히 잘했는데 그 초반 한 달 동안 발디리스보다 못하다느니 등의 온갖 개쌍욕을 먹었다. [56] 심지어 모 팀의 경우는, 에이스 투수가 포스트시즌에서'만' 못한다는 이유로 나무위키에 먹튀 항목에 당당히 올라가고(현재는 지워진 상태) 당연히 할 줄 알았던 재계약에도 실패했으나(그 선수가 상위 리그로 간 것도 아니다. 그 선수는 그 후로 마이너리그와 중남미, 대만을 전전하고 있다.), SK 팬들은 켈리가 두 번의 와일드카드전에서 모두 크게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두 경기 못한 건데 왜 까냐는 반응이 대세이다. 악플이 두려운 선수여. SK로 입단하라 [57] 일례로 마구마구에선 세 명이 모두 SK 소속 레전드카드가 있다. [58] 조인성 타율 0.267 15홈런 2도루, 임경완 방어율 3.42 15홀드 [59] +옵션 3억 [60] +옵션 1억 [61] +옵션 9천만 [62] +옵션 2억 [63] +옵션 1억5천만 [64] +옵션 2억 [65] +옵션 4억 [66] 이후 옵션 4억이 추가로 있다고 밝혔다. [67] +옵션 6억 [68] +옵션 4억 [69] +옵션 2억 [70] 옵션 미공개 [71] +옵션 12억. 공개된 옵션금액중엔 가장 크다. [72] 최정 역시 4년 계약으로 따지면 70억 수준이다. [73] 물론 김광현의 옵션 포함가까지 다 합치면 90억은 넘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74] 특히, 선수회 상조금을 모두 달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뜬금없이 FA로 KT 이적을 한 유한준이 억울하게 욕을 먹었다. 대차게 SK팬들은 유한준 까다가 오히려 욕을 두배로 쳐먹었다. [75] 용병 3명 보유 2명 출전이 가능했는데 콜의 등판에는 무조건 한명이 빠지는데 풀리엄이 빠지고 브리또가 내야수라 항상 나왔었다. [76] 하지만, 이 선수들은 각각 삼성과 롯데로 트레이드 된다. 사상 최초 KBO 선수와 외인 선수들의 트레이드 [A] 이적 후 재계약, 이전 소속 팀은 삼성 라이온즈. [A] 이적 후 재계약, 이전 소속 팀은 롯데 자이언츠. [79] 사상 최초 전년도 용병 모두 재계약. 특이하게도 둘 다 대체용병으로 들어와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80] 사상 최초 3년연속 재계약 [81] 시즌 후 일본 야구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진출 [82] 처음에 뽑았던 용병 3명 모두 중도퇴출. 이 년도의 실패로 인해 2015년부턴 용병을 실력보단 인성 위주로 뽑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좋은 용병들을 많이 뽑게 되었으니, 어쩌면 2014년 1년을 버리고 SK의 미래를 얻은 것일지도. SK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신, 파도파도 미담만 나오는 갓동니뮤ㅠ [83] 사상 최초 4년연속 재계약 [84] 당시엔 용병의 계약금이 정해져 있어서 2013년엔 그정도 금액에 적당한 실력이였다. [85] 시즌 방어율 4.15다. 털린 경기를 포함해도 나쁘지 않은 성적, [86] 아들이 실어증 자폐증에 걸렸다고 한다. [87] 울프의 당시 성적을 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88] 지명은 받았으나 마이너에서는 중상위권의 좋은 성적이나 ML 승격 콜이 계속 밀렸다 [89] SK 최초의 외인 다승왕 [90] 기록상으론 좋아 보이지만 2012년 평균자책점 3.57 12승 9패를 찍은 이후 꾸준히 하향세를 타더니 2014년엔 트리플A 평균자책점 최하위를 기록했다. 최하 2등은 노폭전드. [91] SK 역대 3번째, SK 용병 최초. [92] 금지어의 대체용병 [93] 역대 최저타석 30홈런. [94] 이 부상으로 밴와트는 SK에서 퇴출당했다. [95] 링크가 걸린 선수 모두 한때 KBO에 적응을 잘 못 해서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때가 있었던 선수들이지만, 타격코치의 조언도 잘 듣고 감독의 말도 잘 들으며 실력도 KBO 탑급이 된 선수이다. [96] SK케미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SK그룹이 김대중 정부 고위층의 프로야구단 창단 권유를 받아들이자 야구단 창단 준비팀장으로 발령이 났고 이후 SK 와이번스의 초대 사장으로 선임됐다. KBO리그 각 구단 사장들의 모임인 KBO 이사회에서는 '파이터' 내지는 '깡패 사장'(...)으로 유명했던 사람. 아닌게 아니라 일면식도 없었던 박용오 당시 KBO 총재에게 다짜고짜 전화해 "SK에게 서울 연고지를 주시오."라고 요구한 적도 있고 창단 초기 신생팀에 대한 지원 방안으로 1라운드 신인 추가 지명을 강하게 요구한 사례도 있다. 서울 연고지는 못 얻었지만 인천, 경기, 강원 연고권을 얻었고 2001년 2002년에는 2차 1라운드에서 3명의 신인을 뽑기도 했다. 이 때 뽑은 선수들이 윤길현 제춘모. 그러나 2001년도 2차 1라운드에서 이대호를 거르는 바람에..... [97] 현대 서울 입성에 실패하고 수원불법 점거한 탓도 있다. [98] 하필이면 당시 상대가 넥센이었다. [99] 같은 이유로 롯데 자이언츠 마산에서 경기를 안 해도 제도적으로 문제가 될 근거는 없다. 전북, 전남을 모두 아우르는 연고지를 갖고 있음에도 기아 타이거즈 2009년, 4년만에 다시 군산시에서 경기하기로 협정을 맺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광역연고제가 사실상 부활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1차지명권 행사와 지역 연고지는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군산상고 전주고를 대상으로 1차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NC 다이노스가 군산 홈 경기를 추진하려다가 이내 접은 사례도 있고, 울산 문수 야구장에서 롯데가 제2구장 홈 경기를 치르는 것을 봐도. [100] 사진 순서대로 [101] SK에선 2008년 이후로 쭉 하향세 [102] 그래도 은퇴식은 SK 구단 프런트가 배려를 해준 덕에 나름 화려하게 진행됐다. [103] 사실 예전에 KT가 현대 유니콘스를 해체 후 재창단 방식으로 인수 • 창단하기 직전이었을 때 박재홍을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박재홍이 현대와 현대 팬들의 상징이라서 그랬다고 하는데, 만약 KT가 그대로 야구단을 창단해서 박재홍을 영입했다면 그 팀에서 영구결번이 될 수 있었을지도.... 물론 다들 알다시피 결국 kt는 야구단 창단을 철회했고 듣보잡 센테니얼이 현대의 선수단과 프런트를 승계해서 히어로즈를 창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104] SK시절 성적이 쌍방울 시절과 비교하면 좀 차이나긴 했다. 쌍방울때 워낙 잘한거긴 하지만... [105]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 은퇴식 [106] 문학야구장 개장 후 첫 페넌트레이스 홈 개막전 [107] 2006 시즌 페넌트레이스 홈 개막전 [108] 정경배 코치와 합동 은퇴식 [109] 조웅천 코치와 합동 은퇴식 [110] 2005년 SK 와이번스로의 이적 전까지 LG 트윈스의 상징적인 선수였던 점을 감안해 본래 2011년 6월 25일 문학 LG전에서 은퇴식을 성대하게 치르려 했다. 그러나 이때 인천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경기를 치르지 못했고 결국 10월로 은퇴식이 미뤄졌다. [] [112] 구단 최초의 은퇴 경기로 전병두의 은퇴경기 답게 전병두가 선발투수로 나와 딱 한 타자만 상대하고 실질적인 선발투수인 윤희상으로 교체되었다 [113] 구단 최초의 원 클럽 플레이어 은퇴식이자 SK 와이번스 출신 선수 첫 은퇴식 [114] 같은 해 은퇴를 선언한 이승엽이 은퇴투어를 진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호준에 대해서도 마지막 원정 방문경기 후 은퇴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소소하게 해줬는데 SK 구단 주최의 이벤트 규모가 가장 컸다. [115] 전세계 야구 경기장 중에서 1위이다. [116] 정식 이벤트 명칭인 꿈★의 이벤트에서 별 문양은 꼭 들어가야 한다. 이 명칭이 2002 월드컵 4강전 당시 붉은악마의 카드섹션 문구였던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 [117] 사실 퍼시픽은 태평양을 영어로 쓴 거다. [118] 현대 유니콘스 인적 승계팀이다. [119] 물론 법적으로 태평양과 히어로즈의 연계성은 없으므로 SK가 히어로즈 측에 통보를 할 의무는 없었으나... 더군다나 그 당시 히어로즈 덕아웃에는 태평양 시절부터 팀의 부침을 지켜봐 왔던 이숭용 전준호(투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전준호는 "우리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라며 씁쓸해했다. 그리고 얼마 뒤 방출되어 SK로 왔지 [120]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인천 출신의 유명 유격수 투수는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21] 또한 정민태의 경우, 현대가 해체되기 전인 2007년 무렵에 SPORTS 2.0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천 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이 진심인지, 혹은 2000년 당시엔 서울로 가고 싶었다가, 현대 서울에 정착하지 못하자 차라리 수원보다 인천이 낫다는 뜻인지, 혹은 그저 언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122] 인천SK. LG는 무적LG, 넥센은 히어로즈, 그외 확실한 응원문구를 정하지 않은 NC와 kt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최강OO(최강한화, 최강삼성 등)을 쓰며, 롯데가 홈경기 한정으로 부산롯데를 가끔씩 쓴다. 여담이지만 현대의 응원문구는 막강현대. [123] 사족으로, 과거에는 여러 구단들이 연고지역명을 유니폼의 어깨 부분에 광고와 같이 달았지만, 마지막까지 유지했던 건 유니폼에 대구를 새겨 넣었던 삼성...이었는데, 2013년부터 대구 마크를 제외시켰다. 대신 들어간 건 삼성화재. [124] 만약 현대 유니콘스가 인수전까지 해체되고 않고 유지되었다면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를 망설였거나 과거 프로농구때처럼 두 개의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참고. [125] 이 당시 SK 팬들이 원수 취급했던 사람들이 민훈기, 스포츠동아 김영준, 최민규 기자 등이다. [126] 정우람은 마무리가 81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당한 탓도 크다만, 아무래도 이별 과정이 좋지 못하여 팬덤 내에서도 ' 그 XX' 정도로만 언급되는 편이다. [127] 구체적으로 "야! 그러면 안되지이~" 라는 구호를 외쳤다. [128]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견제구가 들어오면 투수가 아닌 자기팀 주자에게 뛰어! 라고 외친다. [129] (삐빅!) 쩔어! x3 '쩔어'는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인천 방언 중 하나다. [130] 두산베어스의 비칭인 '돡'과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다. 즉, "스크(SK)가 최악이다" = '스악' = '솩'. [131] 물론 안좋은 쪽으로 [132] 이 이미지는 최근 여성팬들이 급증한 두산에 넘어갔다. 이른바 얼빠천국 [133] 08년 부터 야구봤다는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야구 전체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이 全勝우승으로 금메달을 따면서 야구보기 시작다는 것, SK로 한정하면 그 해 SK가 한국 야구사에 남을 강팀의 족적을 남기면서 유입된 쪽이란 것. 어느쪽으로든 기본적인 규칙도 모르는 한마디로 양산형 팬이란 의미. 하지만 2008년부터 야구를 봤다고 해도 2018년 기준 벌써 10시즌째다. 이젠 완전 초보라 할만한 수준은 아니다.하필 나잇대가 그때 10대, 20대 였던 사람들은 뭐가 되나 [134] 이건욱은 kt위즈 우선지명에서도 노릴 정도로 2014년 드래프트 대상자 중에서도 최상급의 유망주였다. 이건욱 외의 인천팜 1차 지명 유력후보는 인하대의 박민호와 야탑고의 이승진이었다. 김하성은 안중에도 없었단 소리. 넥센 히어로즈가 육성을 잘 한 케이스로 봐야 올바르다. [135] 그나마 저건 1차 지명이었기 때문에 2차 지명에서 김하성을 데려올 기회가 있었지만, 정작 2차에서는 김하성을 거르고 박규민 유서준을 골랐다. 그러나 박규민은 고질적인 부상으로 2018년을 마지막으로 방출됐고, 유서준과 이건욱도 각자의 자리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SK가 놓친 김하성은 넥센 히어로즈의 핵심 내야수로 맹활약하고 있으니 SK 팬들의 속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으로 망가져가고 있다. [136] 이 지역은 특히 '투수천국'으로 널리 불렸고 요 근래에는 국가대표 에이스급 투수인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이 배출됐다. [137] 현재 강원도 영서 지방은 춘천시( 춘천고 해체, 강원고), 원주시( 원주고) 한화 이글스 팜으로, 영동 지방은 강릉시( 강릉고), 속초시( 설악고) 삼성 라이온즈 팜으로 편입되었다. [138] 여담으로 SK는 신인 지명이 아닌 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2차 드래프트에서도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다 (...) [139] 대표적으로 1픽인 문광은과 2픽인 박종훈이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문광은은 중간 계투에서 제 몫을 충실히 수행하다가 2018년 LG 트윈스로 이적했고, 박종훈은 처음에는 웨시퍼라 불리며 SK 스카우터들의 영 좋지 않은 능력을 보여주는 예시로 쓰이다가 제구력이 안정된 후에는 SK의 주축 선발 투수로 발돋움했다. [140] 다만 부천고등학교 KT wiz의 팜으로 넘어갔다. [141] 현재는 퍼니러브의 사장으로 있다. 그리고 2012년 FC 서울의 V맨(응원단장)으로 활동했다. [142] 장명부를 앞세워 삼미 슈퍼스타즈가 돌풍을 일으켰던 해 [143] 태평양 돌핀스가 인천야구 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해 [144] 태평양 돌핀스가 인천야구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해 [145]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 [146]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야구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쥐었던 해. 그 이후 2000년, 2003년, 2004년은 수원 연고로 우승한 것. [147] 예를 들면 "86 Tiger, No KIA Just 와이번스, 치고 또 달려 이 분위기를 달궈, 잔챙이들 긴장해둬 바짝, 발빠른 근성 내 flow는 언제나 두발짝, 다시 또 들어선 타석 터지는 문학 함성, 홈런보다 더 값진 번트로 흐름을 탔어" 같은 가사 [148] 한국시리즈의 시구자는 KBO에서 직접 선정. [149] 9회말 2아웃, 고등어, 해피송, 슈퍼맨의 '오늘도 달리고달리고달리고달리고' 부분에서 따온 도루 응원가 등. 의외겠지만, "왼쪽~ 오른쪽~ 워어어~ 투! 혼! S! K!" 이 응원가도 노라조의 '꿀 한 통 설탕 한 스푼' 이란 노래에서 따왔다. [150] 안산시 김광현의 고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