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07:06:28

이병훈(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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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면 드래프트 시행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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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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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g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0

LG 트윈스 등번호 14번
김성수
(1986~1998)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병훈
(1990~1993)
신동수
(1994)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4번}}}
문승훈
(1989~1992)
이병훈
(1994~1996.5.24.)
동봉철
(1996.5.25.~199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00번
결번 이병훈
(1996.5.25.~1997)
지승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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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李炳勳 | Byeong-hun Lee
출생 1967년 5월 17일 ([age(1967-05-17)]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방초 - 선린중 - 선린상고 - 고려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0년 1차 2순위 지명 ( MBC)
소속팀 LG 트윈스 (1990~1993)
해태 타이거즈 (1994~1996)
삼성 라이온즈 (1996~1997)
해설위원 SBS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2001~2002)
TBS 야구 해설위원
원음방송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06~2014)
SPOTV 야구 해설위원 (2015)
가족 아들 이청하, 이용하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기타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현 야구 해설자. KBO 리그 LG 트윈스,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에서 외야수로 활동했다.

엽기해설 이병훈, 짧고 굵은 선수시절.

2. 선수 경력

선린상고 시절에는 투수 1루수 4번타자를 보기도 했었고, 고려대 시절에는 외야수로 동기생 김경기와 중심타선을 이뤘다. 고려대 4학년 시절에는 동기생 에이스 투수 박동희를 필두로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이 1년 후배였고, 1학년으로 이상훈, 마해영 등이 있었다.[1] 그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0년 1순위 김동수와 같이 LG 트윈스의 1차 지명 2순위으로 입단했다. 당시, 1차 지명을 앞두고 청룡은 이병훈과 고려대 동기인 윤혁을 두고 고민을 했는데, 아마시절 명성은 윤혁이 높았지만 팀내 비슷한 유형의 좌타자들이 많아 이병훈이 선택된 듯 하다.[2]

입단 첫 해인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우승을 위한 4승 가운데 2경기의 승리에 수훈을 세웠다. 먼저 2차전에서 연장전 진루 2루타를 쳐 밀어내기 결승점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했고, 다음 3차전에서도 2회초에 결승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한 것.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974729_STD.jpg

백인천 감독에게 샴페인을 퍼붓고 있다.[3]

타격에서 정확성이 떨어지고 타격 기술도 좋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터지는 장타로 백인천 감독의 눈에 들어서 신인 때부터 기회를 많이 받았다. '그라운드의 개그맨'이라 불릴 정도로 재치 있는 입담과 과장된 제스처로도 유명했다. 1992년에는 규정타석 미만이긴 하지만 타율 3할에 16 홈런으로 주전에 안착하는가 싶더니, 1993년 시즌 초반부터 갑툭튀한 박준태의 대두, 김경하의 입단으로 기회를 잃었다. 결국 받은 기회만큼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고 몸 관리에도 실패해 몸도 점점 비대해져서, 1993 시즌 후 김상훈과 같이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다.( 김상훈+이병훈↔ 한대화+ 신동수+ 허문회+김봉재)

해태 타이거즈 이적 초기에도 장타력 때문에 김응용 감독으로부터 기회를 곧잘 얻었으나 자기관리 실패로 성적은 점점 안 좋아지면서 1996년 시즌 중 동봉철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 되기까지 했다. 해태 시절 김응용 감독이 선수단 군기를 잡을 때 시범케이스로 이병훈을 자주 갈군 탓에 김응룡 감독과의 사이가 많이 안 좋아졌다. 물론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본인 책임도 있지만. 김응용과의 악연은 2013년 미디어데이 때 풀렸다.[4][5]

파일:external/file.dailian.co.kr/news1337663578_288703_1_m.jpg

그나마 그 트레이드도 입단 초기부터 이병훈을 마음에 들어했던 백인천이 삼성 감독으로 있으면서 온정을 베풀었다는 중론. 선수 생활 말년에 벌인 사업이 실패하는 등,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달랜다고 당시에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그러다 1997년 초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고 거기에 후유증까지 얻으며 선수 생활이 어려워져 은퇴했다. 1990년대 후반무렵, 김응용 감독이 이병훈 선수를 회고하면서 타자로 대성할 수 있었는데 술이 그를 망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다.

종편 방송인 웰컴 투 돈월드에 나와서 1991년도 음주운전 얘기를 했는데[6] 본인이 음주 운전해서 페인트가게에 돌진했고. 그 페인트 가게를 뚫고 낚시점까지 박고서야 멈췄다고 한다. 이때 본인 연봉이 1800만원 정도였는데 보상으로만 6천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경찰들이 딱딱했는데 어제 본인이 홈런친 장면이 TV에 나오는걸 같이 본 후 경찰이 친절하게 해줬다고. 그 당시는 법이 음주에 관대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은 듯 하다.

1997년에 음주운전을 하다가 갓길에 세워진 컨테이너를 들이박는 대형 사고를 쳤다. 뇌를 여는 대수술을 하고 나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서 팀에 복귀했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7] 결국 시즌 도중에 방출되어 은퇴했다.

여담으로 신인시절에도 지금처럼 살집 있는 넉넉한 체구라서 둔할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주력은 평타는 치는 수준으로 현역 때 주 포지션은 중견수, 좌익수였다. 또한 1992년에는 KBO 리그 사상 5번밖에 없는, 대타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기록했다.[8]

본인이 인터넷방송 사사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9] 고려대 재학시절 후배들을 단 한 차례도 때리지도 않고, 기합도 안 주고, 집합도 안 걸고 졸업했다고 한다. 문제가 생기면 후배들 대신 자기가 감독한테 두들겨 맞고 끝냈다고 한다. 체벌과 구타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학원스포츠 환경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다.[10] 실제 고려대학교 야구부에서 폭력이 사라진 것은 2007년 양승호 감독이 취임한 이후부터이며 양승호 감독도 선후배간 구타까지 완전히 없애는데 2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박정혁 사건이나 숙소를 여러번 무단 이탈했던 김동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려대학교 야구부 내부의 구타와 군기는 상당히 심한 수준이었다.

3. 은퇴 후

은퇴 후 2001년부터 2002년까지 SBS 라디오 해설위원 → 2003년부터 2006년까지 LG 트윈스 전속 해설위원[11] TBS 해설위원 및 원음방송 해설위원 등을 거쳐 2006년 시즌 중반부터는 KBS 스포츠 해설위원이 되었다.[12] 드디어 전국구 입성.

기존의 해설위원들과 달리 재치 있는 멘트(야구팬들이 일컫는 말로 만담)를 줄곧 잘 하지만 재미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압권은 2012시즌 4월 2일 경기 해설 도중 당일 야구 내(內)적으로 의미있는 날이었는데, 오늘은 '또 다른 의미있는 날' 이라고 하길래 캐스터가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 결혼기념일이라고 했다. 정작 해설위원으로서 지식이 부족하다는 등 호불호는 갈리는 편. 특유의 입담 때문에 해설직 이외에 스타 골든벨 등의 예능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에도 자주 출연했다. 근데 문제는 표정변화가 거의 없어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선 이게 드립을 치는 건지 진지하게 하는 말인지 자주 애매해한다고.

명언으로는 ( 투수들의 패기 있는 투구를 주문하며) "남자는 구멍이 보이면 무조건 쑤셔야 되잖아요"가 있다.

사실 이렇게 은퇴 이후 여러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사실 현역 시절에도 사업을 실패해서 빚이 있던 상황인데, 은퇴 이후 고깃집을 차렸다가 큰 빚을 진 것이었다. 은퇴 이후 3년간 5차례 사업에 뛰어들다 빚진 금액만 무려 20억 원, 본인이 비유하기를 2년 반 동안 손님들에게 나간 고기보다 가족들끼리 먹은 고기가 더 많았다고.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해설가로 뛰어들기 시작했고 보험 판매를 하거나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가는 등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했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 하루에 20시간은 나가서 일한 것 같았다고. 게다가 예능에서 개그소재로 삼지만 이 당시 저예산 비디오 에로 영화에 캐스팅될 뻔한 적도 있었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배역이 마님을 꼬시다가 걸려 말그대로 사지가 찢겨 죽는 하인역이였다고 한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지나 빚을 다 갚고 재기에 성공했다. 인간승리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13]

때문에, 은퇴 이후 무작정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경고한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처럼 꼴이 날 수도 있으니까. 현역 때 100승을 했든 200승을 했든, 500홈런 이상 친 홈런타자든 간에 사업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면서 말이다.

2011년에 영화 수상한 고객들에 야구 해설위원역으로 등장하였다.

3.1. 해설위원 경력

워낙 개드립을 좋아하고 팬들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라 묻힌 감이 있지만, 의외로 야구 보는 눈은 정확하다. 드립을 쏟아내거나 지식을 풀어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라이트팬이 봐도 뭔가 아니다 싶을 해설을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선수 출신다운 날카롭고 감각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래서 남들 못 맞히는 것을 맞힌다는 평가가 많다.

2009년 8월 30일 잠실에서 열린 KIA vs 두산의 경기에서 KIA의 대타 장성호가 만루홈런을 치고, 다음 타자 김원섭 백투백 홈런을 칠 때, 김동연 캐스터와 교대로 졸도 애드립을 쳤다.

6人의 해설가가 박찬호의 국내 첫시즌 기록을 예상하는 자리에서 가장 부정적인 의견을 냈는데, 결과적으로 정확하게 맞았다. 하지만 애정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2012시즌 10월 3일 박찬호의 국내 첫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이미 4실점을 한 2사 주자 2루 상황, 투수교체 의사를 물어보러 온 송진우 코치에게 이 여섯 번째 이닝을 마치고 내려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지만 바로 적시타를 맞고 내려가자 박찬호를 비롯한 힘든 후배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류현진의 MLB 낙찰금액($ 25M) 예상도 허구연과 함께 가장 가까운 금액($ 15M)을 예상해 안목은 확실히 있다며 재평가를 받았다. "류현진은 검증된 한국 최고 투수다. 제대로 받고 가야한다. 이보다 낮으면 보내지 않을 명분이 있다" 라는 멘트에 처음에는 크부심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니냐며 비웃음을 당했지만 패기넘치는 이 한마디는 오히려 결과적으로 득이 되었다. 다만 인터넷 방송 사사구에서 아담 던이 누구인지도 몰랐던 모습이나 평소 발언을 봤을 때, 메이저리그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가지고 발언한 것이 아니라 크부심에 대충 감으로 때려맞춘 듯 싶다.

또한 김응용의 감독 복귀에 대해 했던 독설 논란도 2013년 김응용의 행보로 인해 재평가를 받고 있으나, 김응용과의 관계로 인해 맞는 말이지만 이병훈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는 평도 있다.

이만수에 대해서도 유독 비판을 자주하는데 팬들은 그 이유를 현역 시절에 있었던 이만수와의 일화와 엮어서 추측하기도 한다.[14]

2014년 4월 5일 넥센 대 NC전에서는 풀카운트에 유인구로 승부하는 투수가 어디 있냐며 그런 해설은 말도 안 된다고 언급했다. 이 해설이 끝나자마자 4회말이 끝났는데, 캐스터가 "잠시 후에 이야기를 더 이어가겠습니다."라고 하니까 바로 하는 말이 (이야기) 다 한 겁니다.

2014년 5월 11일 넥센 대 LG전에서는 아래와 같은 해설을 보여줬다. 박병호선수가 이날 경기 초반 2타석 연속 볼넷으로 걸어나가자, 3번째 타석때 3B0S 때 안기다리고 스윙하였는데, 이때 이병훈曰, "박병호 선수가 계속 볼넷으로 나가니까 치고 싶은가봐요" 이 발언 직후 바로 다음 공에 귀신같이, 박병호의 14번째 홈런.

2014 시즌이 끝난 후 KBS N 스포츠의 해설에서 하차했다.

이후 아프리카TV에서 해설을 하다가 이병훈의 상남자TV 2015년 5월 마지막주에 SPOTV 해설위원으로 합류했고, 5월 28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 KIA 경기에서 해설에 복귀했다. 4회초 시작 전에 뜬금없이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더니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다고 자랑했다. 시즌 초반부터 이용철, 송진우 등 프로야구 해설자들의 실언과 자질부족, 편파중계 문제로 시끌벅적한 와중에 복귀했기 때문인지 큰 호응을 받았다. 이날 경기에서도 각종 드립을 쏟아냈는데, 3회말에 정근우가 1루에서 3루로 연속도루에 성공하고, 조인성이 희생타를 쳐 1루에서 아슬아슬하게 아웃되자, "(프로에서는) 공보다 빠른 사람 없자너요? 근데 사회인야구에서는 공보다 사람이 빨러요. 도루하믄 다 삽니다."라며 만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병훈 해설을 처음 접한 팬들은 갑자기 귀에 확 들어오는 목소리와 만담 같은 해설 스타일에 무슨 해설이 장사꾼같냐며 하차하라고 깐다. 그러나 의외로 야구를 보는 눈이 있고, 게임에서 흐름을 보는 안목이 있기 때문에 해설의 질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의 스타일을 까는 듯. 그러나 세상 누구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사람이 없고, 취향상 자신이 듣기 싫은 것 까지 강요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듣기 싫다고 하차하라는 것도 말이 안된다는 것. 비난이 아니라 비판을 해야 한다. 참고로 비슷한 느낌의 해설자인 축구 이상윤 해설과 비교하면 이병훈 해설 쪽이 재미로 보나 해설 퀄리티로 보나 전반적인 평가가 좀 더 낫다.

2015년 6월 2일 한화:넥센 전 1회 말 한화 선발 배영수 이택근 타석에서 이병훈 해설은, "경기 전에 만난 배영수가 '오늘은 패스트볼을 위주로 던지겠다'고 했으니 오늘은 패스트볼이 많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배영수는 초구 슬라이더 그러자 이병훈은 "투수가 타자를 속이는 건 당연하지만, 해설위원을 속이면 안되잖아요"라며 억울해 했다.

2015년 9월 5일 한화:두산 경기 전 한화 라인업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감독이 선수들과의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아 선수단에 불만이 팽배한 상태라고 언급했다.

2015년 9월 10일 한화:두산 전 2회 초 오재원 타석에서 이병훈 해설은 "한화 선수들은 지금 다 대포를 맞고 나와. 진통제 말야"라는 발언을 하였다. 사안의 심각성[15]도 심각성이거니와, 내가 나머지 80%를 말하면 김성근 감독 물러난다고 말하는 등 매우 위험한 수준[16]까지 나가버렸다. 다음날 이병훈은 대포주사 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1년이 지나고 엠스플의 취재 결과 해당 발언은 사실로 드러났다.

4. 기타

  • 슬하로 2남이 있는데 모두 야구를 했다. 장남 이청하는 2010년 LG 트윈스 신고선수로 입단했다가 이듬해 방출되었고, 2011년 새로 창단하는 NC 다이노스 입단 테스트에서도 떨어지고 말았다. 여담으로 프로에 지명을 못 받아서 장남과 서먹하다고 한다. 2013년에 지명된 동생 이용하 2차 지명 인터뷰에 의하면 2013년 8월 현재 군 복무 중이라고 한다. 이후 2015년 3월 경에 연천 미라클에 입단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거기서도 나왔다.
  • 이병훈이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첫 해에 가끔 경기 후 집합[17]이 걸렸는데, 카리스마 군기반장 오궁갑이 악역을 맡았다. 자세한 것은 이병훈이 해태에 간 첫 날 이야기가 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성한이 말한 바에 따르면 해태 타이거즈의 군기반장 계보는 김일권,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 순으로 이어진단다. 김일권이 술회하기를 타교 출신 선수를 때리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군산상고 직속 후배였던 김성한을 화장실로 불러 몽둥이 찜질을 가했고 김성한도 이에 수긍하고 맞았다고 한다.
  • 이때 지도를 받던 차남 이용하는 성남고등학교에서 포수로 활동했고 2014 드래프트 2차지명 6라운드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았다. 2013년에 17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 7푼(54타수 20안타) 1홈런 14타점을 기록하여 공격형 포수의 자질이 보인다고 인정받기도 했다. 이용하 본인은 넥센 히어로즈가 가고 싶었던 팀 중 하나였다고 언급했었다. 지명 직후부터 페이스북에서 넥부심을 드러내서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선 이미 인기스타가 되었지만, 얼마 못 가서 선수 생활을 접었다.
  • 한편 장남 이청하의 이름은 술 청하에서 따왔다고 한다. 청하가 태어날 당시 이병훈의 아버지가 '술 좀 그만 마시라'는 의미에서 손자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 2013년 종합편성채널에 자주 출연했다. 표창원의 시사 돌직구 야구편에 출연했는데 고교, 대학 입시비리, 뇌물에 대해 일부 지도자들만 그렇다는 식으로 반응하고 야구선수가 야구를 그만 두었을 때의 문제도 잘된 사례만 이야기하는 등 야구계를 옹호하는 발언만 해서 당시 시청자들에게 반감을 샀었다. 다만 이건 본인의 인품과는 별개로 봐야한다. 한두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인맥으로 묶여있고 서로간 이해관계가 얽힌 좁은 체육계에서 이걸 있는 그대로 터뜨릴 인사는 아무도 없다.[18][19] 더군다나 이병훈은 해설자로 계속 그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다.
  • 2014년 10월 20일 아프리카TV 석주일, 조현일의 프로 농구 중계에 깜짝 등장했다. 원래 준플레이오프 2차전 안준모의 뮤직볼 중계에 함께 하기 위해 판교 아프리카tv 스튜디오에 왔다가, 경기가 취소되자 바로 옆방의 농구중계팀에 들이닥친 것이다. 석주일과 학교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있다고 한다. 의외로 초등학교 시절 농구를 했고, 소년체전에서 우승까지 했다면서 자신도 농구인이라고 드립질. 이때 팀동료가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감독이라고. 석주일과 함께 온갖 개드립을 폭발시키는 와중에, 의외로 농구를 보는 눈도 상당히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해태 타이거즈 시절 순혈과 이적생간의 대우 차이 때문에 겉돌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은 이호성이 식당에서 선수들이 회식을 할 때 이적생은 다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하자 열받은 이병훈이 이호성에게 쌍욕을 시전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이병훈 입장에서는 동갑내기에다 입단동기였던 이호성이 텃세나 부리고 구박했던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일이 계기가 돼 두 사람은 친해졌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실화라고 이야기했는데,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지금은 고인이 된 친구" 라고 에둘러서 이야기를 했다. 회식 자리에서 텃세를 부리던 이호성에게 "야, 이 씨발놈아! 딴 놈들은 몰라도 너는 그러면 안 되지??" 라고 분노하면서 이호성과 한 판 붙고 난 뒤 그 때부터 친해졌다고 한다. 이병훈 입장에서는 선배도 아니고 동갑에다 같은 해에 프로 입단을 한 동기가 텃세를 부리니 열이 어지간히도 뻗친 듯 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호성에게 열을 냈을 정도니... 그래서 이호성이 도피생활을 할 때 이병훈에게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호성이 결국 그 사건으로 죽음을 택하자 자신의 실패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 현역 시절 도루가 8개인데[20], 장채근을 상대로 무려 3개를 성공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형, 그 때 왜 저 안 잡으셨어요?"라고 물어봤었다. 그러자 장채근이 "느린 것들끼리 도우며 살자" 라고 했다고.
  • 우승에 대한 안 좋은 징크스가 있다. 1990년 창단멤버 신인 때 우승을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우승이었고, 직전년도 우승팀 해태로 이적하자마자 1994년 LG가 한국시리즈 2번째 우승해버렸다. 1996년 시즌 중 삼성으로 이적하자 이번엔 해태가 그 해 8번째 우승해버렸다. 그래도 신인때 한 번이라도 우승한 게 어디야
  • 2018년 이후부터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나빠지고 단순적발만으로도 임의탈퇴를 내릴 정도로 야구계가 음주운전을 엄하게 다루게 된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병훈은 시대를 잘 타고난 셈. 1991년 & 1997년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힌 커다란 음주운전 사고 두번을 낸 흑역사가 있는데, 만약 2018년 이후에 이렇게 했다면 진작에 볼드모트 처리됐을지도. 어찌 보면 이병훈이 해설계에 돌아오지 못 하는 이유도 이것이 한 몫 했으리라 추측된다.
  • 해태시절 연봉협상을 할 때 관계자가 "야! 우리가 선동열 연봉을 맞춰주려면 맛동산, 써니텐을 몇 개나 팔아야하는지 알아?" 라고 일갈하자 이병훈은 어이없어하면서 " 부라보콘도 있잖아요?" 라고 대꾸했는데 이 말을 들은 당시 김응용 감독이 싸대기를 후렸다는 썰이 있다.
  • 농구감독 유도훈과 친분이 있다. 어렸을 때 농구부에서 같이 농구를 하였다.
  • 제20대 대선을 얼마 앞둔 2022년 3월 1일에 10만 야구인, 야구팬의 이재명 지지선언에 동참하였다. 참고로, 전 삼미, 롯데 등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임호균[21] 등 여러 유명 야구인들도 위 행사에 참여하였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0 LG 트윈스 72 120 .258 31 4 0 1 19 15 3
1991 42 96 .219 21 4 2 2 14 9 1
1992 91 263 .300 79 10 0 16 45 34 1
1993 109 281 .256 72 8 0 6 23 19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4 해태 타이거즈 104 330 .279 92 7 0 8 41 38 0
1995 32 96 .271 26 5 0 2 14 9 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6 해태 / 삼성 65 131 .237 31 3 0 3 13 12 0
1997 삼성 라이온즈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8시즌)
515 1317 .267 352 41 2 38 169 136 8

6. 관련 문서


[1] 박동희는 건국대 신입생 이종범에게 홈런을 맞아 속이 상했고 이병훈은 술을 사주면서 위로했다고 한다. [2] 윤혁은 당시에 막 창단된 쌍방울에 입단했다. 이후 두 사람은 모두 삼성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했다. (윤혁-95년 이병훈 - 96년 시즌 중 ~97년) [3] 오른쪽에서 샴페인을 퍼붓고 있는 선수가 이병훈이다. [4] 해태 시절 전지훈련지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에 호텔로 돌아오다가 로비에서 선수를 감시하고 있던 김응용 감독에게 걸린적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너무 술이 떡이 돼서 오바이트까지 했다고. 이게 1995년에 있었던 일이다. 덕분에 이병훈은 1995 시즌에 몇 경기 못 나오고 동봉철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삼성으로 갔다. [5] 삼성 이적 첫 해에는 롯데전에서 2홈런(대구에서만)을 쳤는데 해태 이적 첫 해인 94년에는 롯데전에서 2홈런(광주)을 치기도 했다. [6] 1997년도 음주운전과는 다른 사건. [7] 당시 티배팅을 제대로 하질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정지해 있는 공도 못치는데, 투수가 던지는 공을 제대로 칠 수가 없지 않은가…. [8] 이 홈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이 경기 전날 이병훈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속이 쓰려 죽을 상황이었는데, 백인천이 대타로 냈다고 한다. 좌익수 쪽으로 깊은 장타를 날린 이병훈은 2루까지만 가자는 생각에 2루에 거의 다다를 때쯤 설렁설렁 뛰려고 했는데, 주루코치가 3루까지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3루까지 또 뛰어가는데 또 이게 웬걸, 아예 홈까지 돌리는 것이다. 당시 좌익수는 깊은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으려고 했다가 실패했기 때문. 그래서 속으로 'XXX 좌익수 XX같은 놈 그걸 제대로 처리 못해서 속쓰려 죽겠는데 뛰게 만드냐.' 라며 엄청 욕했다고. 남들은 한번 칠까 말까한 인사이드 파크 홈런 상황에서 그는 술 때문에 좌익수에게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러닝을 했던 것이다. 참고로 그 좌익수 이호성이었다. 다만 이호성이 살인범인 것과는 별개로 이호성과 친했던 듯 하다. 영상에서 '제 친구랑... 제 친구랑 지금은 이제 뭐 고인이 됬지만...' 이라고 이호성을 언급한다. [9] 사사구 31회 Part 2 말미에 이 내용이 들어 있다. [10] 그래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통보를 받았을 때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트레이드 이후에도 군대보다 심한 선후배 관계와 구타, 그리고 텃세에 상당히 고생했다고. 이병훈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다른 팀에 있다가 해태로 가는 선수들은 아예 깡패가 되거나 아예 바보가 돼서 쥐죽은 듯이 지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야 했었을 정도로 텃세가 심했는데, 결국 계속되는 텃세에 참지 못하고 모든 선수와 코칭스텝이 지켜보는 가운데 뒤집어 엎었다고 한다. 영상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 이후 해태 선수들과 상당히 친해졌다. [11] 이 때 캐스터로 같이 하던 안준모는 2014년부터 아프리카 방송에서 "안준모의 뮤직볼"을 진행하고 있다. [12] 다만 2008년까지는 KBS와 더불어 TBS에도 출장을 나가고 있었다. [13] 이 내용은 2008년 3월에 방영된 뉴스 후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편에 나와 있다. 빚을 갚기 위해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14] 여담으로 SK 와이번스 팬들은 이 일화를 근거로 이만수를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천하의 개쌍놈 급으로 비난한다. [15] 사석에서는 진통제의 은어지만 공석에서는 금지 약물인 데포메트롤을 지칭한다. [16] 즉 사실일 경우 김성근 감독은 바로 사퇴해야 하고 거짓말일시 이병훈이 법적 처벌을 받는 경우가 가능해진다. [17] 해태 내에서는 미팅이라고 표현한다. [18] 어느 종목이던 몇개 안되는 학교출신들이 인맥으로 모두 묶여있는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작은 사회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19] 고교야구부가 불과 50여개이고 이중에서도 실제 프로급 선수를 계속 배출하는건 불과 10여개 학교뿐인 게 대한민국 야구계의 현실이다. 과거 실업야구 시절부터 이 10여개 학교출신들이 사실상 대한민국 야구판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20] 본인은 통산 5개 정도 했다고 주장한다. [21] 더불어민주당 체육위원회 부위원장